나는 3년 전에 진도현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결국 갈라섰다. 그때 진도현은 사업에 실패해 매일 술집을 드나들면서 술에 취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술에 취한 남자가 다가와서 강제적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두려움에 덜덜 떠는 나를 본 진도현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이 여자를 건드린다면 평생 후회하도록 해줄게.”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진도현을 3년이나 사랑했다. 나는 진도현을 응원해 주었고 정신을 차린 진도현은 지금 상업계를 주름잡은 진세 그룹을 창립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내가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진도현과 결혼하는 바람에 가문에서 쫓겨났다.재벌가의 아가씨가 아닌 나를 사랑해 주는 진도현을 사랑했고 우리는 서로를 아꼈다. 회사에 신입 여직원이 들어올 때마다 진도현은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면서 말했다.“예린아, 휴대폰 마음대로 봐도 돼. 난 오직 너뿐이니까!”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진도현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날 믿어줘서 고마워.”나에게 믿음을 주는 이 남자와 평생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저번에 진도현의 본가로 내려간 뒤로 진도현은 나를 멀리했다.내가 차에 올라타자 박서연이 새로 준비한 옷을 건넸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옷을 입었다. 박서연은 3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예린 언니, 집으로 갈까요?”“아니, 이번에는 병원으로 가서 검사받고 의사 소견서를 부탁할 거야. 날 괴롭힌 모든 사람한테 복수할 생각이거든.”나는 상처투성이가 된 다리를 쳐다보면서 3년 전에 있었던 일을 회억했다.3년 전,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진도현의 본가로 가서 결혼식에 참석했다. 본가가 있는 마을은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특이한 풍습을 고수해 왔는데 그 본질은 풍습을 빙자한 괴롭힘이었다. 특히 신부 들러리를 괴롭혔는데 헤엄칠 줄 모르는 여자여도 물가에 마구 던졌다. 시어머니는 나를 가문 남자들한테 소개해 주었다. “신부 들러리는 많을수록 재밌
남자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깜짝 놀랐고 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신부 들러리만 애타게 찾았는데, 드디어 찾았어!”남자 몇 명이 나를 부축했고 다른 남자들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다른 신부 들러리가 보이지 않자 달려 나와서 내 뺨을 후려갈겼다.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해서 바닥에 쓰러졌고 천막 앞에 마구 흩어진 못에 손이 찔려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남자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고 흙이 잔뜩 묻은 구두로 나를 밟았다. “다른 년들이 어디로 갔는지 당장 말해!”나를 두고 도망간 여자들을 다시 잡아서 나랑 같이 괴롭힘당하게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나를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다 도망갔으니 오늘 신부 들러리는 너 한 명이네? 곧 게임을 시작할 테니 마음껏 즐겨.”나는 마당 중간으로 끌려갔고 남자들은 신이 나서 룰을 알려주었다. 10분 내로 신부 들러리가 입고 있는 옷조각을 가장 같이 수집한 남자가 신랑 신부의 첫날 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호각 소리가 울리자 남자들은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손에 난 상처 때문에 나는 빨리 도망갈 수 없었고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남자들한테 겹겹이 둘러싸였다. 내가 옷깃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쉽게 옷을 찢지 못했다.수많은 남자의 손결이 소름 끼쳤지만 더 무서웠던 건 예리한 칼날이었다. 보다 못한 한 남자가 작은 칼을 꺼내서 내 옷 위로 그었고 그은 자리마다 상처가 생겨서 피가 흘렀다. 다른 남자들은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었고 내 옷조각을 가지려고 안간힘 썼다. 많이 가질수록 짜릿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과 허리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남았고 나는 통증에 못 이겨 손을 놓았다.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내 옷은 전부 찢겼고 남자들은 옷조각을 들고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러고는 서로 옷조각을 빼앗으려고 몸싸움했고
진도현은 믿기지 않는듯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고 진도현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진도현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달려와서 외투를 벗어 나에게 덮어주었다.“도현아, 너는 마을에 이런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나는 진도현 품에 안겨 물었다. 그러자 진도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나와 거리를 유지했고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예린아, 난 네가 똑똑해서 도망갔을 줄 알았는데...”진도현은 입술을 깨물었고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비서 박서연을 불렀고 진도현이 나를 안아 들어 차에 올랐다. 박서연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예린 언니,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가서 증거라도 확보해요.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예린아, 지금 신고하면 나도 조사받아야 할 거고 내가 경찰서에 가면 어머니가 네 사진을 공개할 거야. 그 사진을 보고도 너를 좋아할 남자가 나 말고 또 있을까?”진도현이 박서연의 말을 끊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유난히 낯설었다. 내가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자 진도현은 부드러운 어조로 위로해 주었다.“예린아,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을 당했든 늘 사랑할 거야. 오늘 일은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널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지?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하자. 네 뜻대로 할게, 응?”“하지만...”박서연이 반박하려고 하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집으로 가자.”나는 부모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뒤로 진도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났고 나를 대놓고 걸레 취급했다. 우리는 매일 다른 방에서 잤고 진도현이 일찍 퇴근한 날에 내가 먼저 씻고 나오면 욕실 수증기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씻었다. 날 더러운 쓰레기 취급했고 나랑 닿았던 모든 것을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다가 한 번 사랑을 나누었고 나한테 통보하듯 말했다.“며칠 뒤에 해외로 출장 가는데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그러니까 날 기다리지 마.”저녁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16억짜리 유골함은 이미 박살 났으니 환불하지 못할 것이고 진도현과 시어머니가 업보를 받은 것이다. 그다음 목표는 진도현과 마을 사람이었고 누구도 법의 심판에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과 의사 소견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정윤지의 등장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진도현 본가로 가는 것은 내 계획의 일부였다.지난번 마을 사람 결혼식 때 감시 카메라가 없어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진도현의 본가로 가서 시어머니의 휴대폰을 몰래 빼내려 했다. 사진과 영상이 유출될 위험도 있었고 직접 본가로 가야 사람들이 본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장례식을 치른 날의 모든 것이 감시 카메라에 찍혔고 스스로 무덤을 판 정윤지까지 같이 경찰에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멍청한 정윤지한테 반한 진도현도 멍청하다고 여겼다. 3년 동안 이런 남자를 사랑한 것이 후회스러웠고 순진하고 어리석었던 내가 우스웠다. 어리석은 대가를 이미 치렀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를 차례였다.경찰서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진도현이 보낸 이메일을 열어 보니 나의 이혼합의서에 사인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고 카톡으로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진도현: 예린아,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나한테는 오직 너뿐이야, 널 만나지 못하니까 하루 종일 가슴이 갑갑해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예린아,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응? 집 비밀번호는 왜 바꾼 거야? 아니면 네가 우리 집으로 올래? 와본 적이 없으니 어디인지 모르겠구나... 이 주소로 오면 돼, 그 여자랑 연락 끊었고 소란을 일으킨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예린아,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은 없어.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와 주면 안 돼?]그 뒤로 술에 취했는지 전화를 몇십 통씩 걸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던 진도현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와도 좀처럼 기쁘지 않았다. 우리가 뜨겁게 사랑할 때, 진도현은 애교가 많았고
정윤지는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면서 불륜녀를 혼내줬을 뿐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은 어이가 없었고 정윤지한테 물었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는 거죠? 정윤지 씨야말로 불륜녀인데요.”정윤지는 멈칫하더니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 아니에요.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불륜녀예요. 사랑받지 못한 그 여자가...”옆에서 지켜보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그럼 환자분은 사랑받는 쪽인데 남자가 16억을 배상하라고 한 거예요? 이거 완전 나쁜 놈이네.”정윤지는 멍하니 바닥만 내려다보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불륜녀예요. 사랑받지 못한 그 여자가...”정윤지가 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고 정윤지 가족들은 영상을 보자마자 연을 끊어서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기에 배상금을 낼 수 없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진도현은 재판이 있을 때마다 출석하지 않았고 매일 회사에 틀어막혀 일만 했다. 나랑 연락이 닿지 않아서 답답한지 회사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진도현: 예린아, 나 오늘 14시간이나 일했어, 얼른 칭찬해 줘! 회사 이번 달 매출액이 10퍼센트나 올랐어, 나 잘했지?]진도현은 3년 전처럼 회사의 모든 일을 보고했지만 나는 아픈 과거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진도현이 저지른 잘못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마구 찔러댔다.3년 동안 함께하면서 진도현은 절대 상인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회사를 창립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 달 된 지성 그룹 지사보다 수익이 적었다. 이번 달에 매출액이 증가한 것은 내가 진세 그룹을 인수하려는 것을 발견한 상업계 라이벌 회사가 일부러 값을 올리기 위해 손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멍청한 진도현은 부단한 노력 끝에 얻은 보답인 줄 알았다. 나는 경찰서에 시어머니의 휴대폰을 증거로 제출했고 그 마을의 이상한 풍습을 전국에 알렸다. 영상 속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날 밤 전부 잡혔고 조사를 마친 뒤에 경찰이 나한테 알려준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마을 풍습 속에서
나는 진도현과 몇 년 전부터 별거했다. 그런데 오늘 이 사실을 아는 진씨 가문 사람이 나한테 전화를 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예린아, 네 시어머니 돌아가셨어. 도현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너라도 와서 장례식을 치러야지.”나는 시어머니가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슬픈 마음보다는 팽팽하게 늘어져 있던 줄이 툭 끊긴 것처럼 마음이 느슨해졌다. 3년 전, 진도현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 별거 후, 진도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나의 문자와 전화를 무시했고 온종일 비즈니스 파티거나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유흥을 즐겼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떴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진도현이 미웠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큰 결정을 내렸다. 이번 주 회의를 모두 미루고 진도현의 본가로 내려가기로 했던 것이다. 비서 박서연은 보디가드 열 명을 데리고 나와 함께 본가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진도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얼마나 바쁘기에 전화를 받지 않는지 궁금했던 나는 진도현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진도현은 새로 구입한 스포츠카 사진을 한 시간 전에 게시했다. 진씨 가문 사람 말로는 시어머니가 생전에 자신이 세상을 뜨면 꼭 특별 제작한 유골함을 준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자그마치 20억 정도 되는 유골함이 욕심나서 한참 고집을 부렸지만 세상을 뜬 뒤, 비통한 표정으로 슬퍼하는 가문 사람들은 유골함에 관한 말을 꺼냈다가 돈을 뜯길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다.나는 고민 끝에 진도현의 카드로 결제했다. 그러자 전화를 받지 않던 진도현이 결제 내역 문자를 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뭘 샀길래 그 많은 돈을 쓴 거야? 당장 환불해.”나는 간만에 연락이 닿은 진도현과 말싸움하기 싫어서 차분하게 타일렀다.“얼른 본가로 와, 장례식을 치르는 중이니까.”진도현은 장례식에 조문하러 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멈칫하다가 물었다.“누구 장례식인데?”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가문 어르신 장례식이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휴대폰을 껐다. 정윤지도 나처럼 상처받은 불쌍한 사람 같아서 어쩐지 짠해 보였고 만약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생각했다.진도현은 여전히 내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고 전화하지도 않았다. 시어머니 시체는 이미 화장했기에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문자를 보냈다.[나: 오늘 저녁까지 본가로 와, 오지 않으면 하관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낡은 별장이다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보내주지 않으면 풍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진씨 가문 사람들은 화투를 치기 시작했고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멀찍이 앉았고 진씨 가문 사람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보디가드한테 먼저 식사하라고 말했다.방 안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출입문 쪽으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천천히 문을 열자 정윤지와 마주쳤다. 정윤지 뒤로 사람이 8명 정도 더 있었는데 모두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몽둥이를 들었다. 난동 부리러 온 것이 틀림없었기에 나는 살짝 겁을 먹었다.“정윤지 씨,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요?”정윤지는 멈칫하더니 곧바로 팔짱을 끼고는 뒤따라온 사람들한테 말했다.“이 사람이 바로 불륜녀야, 확실해졌어! 그렇지 않으면 내 이름을 알 리가 없잖아?”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정윤지가 내 뺨을 후려갈겼고 장례식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그 충격을 못 이기고 바닥에 쓰러졌다. 정윤지는 피식 웃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내 멱살을 잡았다.“내 남자 친구는 오지 않았으니 연약한 척하지 마, 볼수록 구역질 나거든.”정윤지는 또다시 내 뺨을 때렸고 뾰족한 손톱 끝에 살결이 스치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맞아서인지 나는 억울했고 화가 나서 정윤지의 뺨을 때렸다.정윤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불륜녀 주제에 날 때려? 네가 저지른 불륜이 사랑인 것 같아? 내 남자 친
“죽은 사람을 들먹여서 돈을 받아낸 거지? 너를 보니까 이 가문 사람들도 어떤 놈들인지 짐작이 돼. 내 남자 친구 돈에 또 손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정윤지는 같이 온 사람들과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박살 냈다. 정윤지가 8명 정도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각자 몽둥이 하나씩 들고 있었다. 영정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고 액자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내가 직접 가져온 도자기 꽃병은 하나에 200만이 넘었지만 그 사람들의 손에 전부 박살 났고 꽃병 파편이 가득 튀어서 내 다리에 상처를 냈다. 말려야 할지 고민했지만 벽에 달린 감시 카메라가 있었기에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정윤지 씨, 당신이 지금까지 박살 낸 물건값이 2억이 넘어요. 돈이 넘쳐난다면 더 박살 내든지 마음대로 하세요.”정윤지는 내 말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는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와 내 뺨을 후려갈겼다.“그 입 닥치지 못해? 네까짓 게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네가 쓴 돈은 다 내 남자 친구 돈이고 그 돈으로 산 물건을 내가 박살 내겠다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정윤지가 내 머리채를 잡고 당기자 중심을 잃은 나는 넘어졌고 질질 끌려갔다. 비단 원피스가 꽃병 파편에 긁혀 구멍이 났고 끌려가면서 원피스가 단번에 찢어졌다.나는 의식적으로 가슴을 막았고 정윤지의 눈빛에 흠칫 놀랐다.“이 원피스 엄청 비싸 보이는데, 내 남자 친구가 사준 거겠지? 당장 벗지 못해? 내 남자 친구가 사준 것들 전부 내놔!”나는 정윤지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에 원피스를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 남자 친구가 바람났으면 그 사람한테 가서 소란을 피워야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죠?”정윤지는 같이 온 사람들을 불러서 나의 두 손과 두 발을 잡게 했고 내가 입고 있던 원피스와 속옷을 거침없이 찢기 시작했다. “이 걸레 같은 몸으로 도현 씨를 유혹했으니 넘어갈 만도 하지. 여자가 봐도 부러운 몸매인데, 도현 씨는 오죽하겠
정윤지는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면서 불륜녀를 혼내줬을 뿐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은 어이가 없었고 정윤지한테 물었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는 거죠? 정윤지 씨야말로 불륜녀인데요.”정윤지는 멈칫하더니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 아니에요.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불륜녀예요. 사랑받지 못한 그 여자가...”옆에서 지켜보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그럼 환자분은 사랑받는 쪽인데 남자가 16억을 배상하라고 한 거예요? 이거 완전 나쁜 놈이네.”정윤지는 멍하니 바닥만 내려다보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불륜녀예요. 사랑받지 못한 그 여자가...”정윤지가 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고 정윤지 가족들은 영상을 보자마자 연을 끊어서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기에 배상금을 낼 수 없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진도현은 재판이 있을 때마다 출석하지 않았고 매일 회사에 틀어막혀 일만 했다. 나랑 연락이 닿지 않아서 답답한지 회사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진도현: 예린아, 나 오늘 14시간이나 일했어, 얼른 칭찬해 줘! 회사 이번 달 매출액이 10퍼센트나 올랐어, 나 잘했지?]진도현은 3년 전처럼 회사의 모든 일을 보고했지만 나는 아픈 과거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진도현이 저지른 잘못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마구 찔러댔다.3년 동안 함께하면서 진도현은 절대 상인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회사를 창립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 달 된 지성 그룹 지사보다 수익이 적었다. 이번 달에 매출액이 증가한 것은 내가 진세 그룹을 인수하려는 것을 발견한 상업계 라이벌 회사가 일부러 값을 올리기 위해 손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멍청한 진도현은 부단한 노력 끝에 얻은 보답인 줄 알았다. 나는 경찰서에 시어머니의 휴대폰을 증거로 제출했고 그 마을의 이상한 풍습을 전국에 알렸다. 영상 속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날 밤 전부 잡혔고 조사를 마친 뒤에 경찰이 나한테 알려준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마을 풍습 속에서
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16억짜리 유골함은 이미 박살 났으니 환불하지 못할 것이고 진도현과 시어머니가 업보를 받은 것이다. 그다음 목표는 진도현과 마을 사람이었고 누구도 법의 심판에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과 의사 소견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정윤지의 등장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진도현 본가로 가는 것은 내 계획의 일부였다.지난번 마을 사람 결혼식 때 감시 카메라가 없어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진도현의 본가로 가서 시어머니의 휴대폰을 몰래 빼내려 했다. 사진과 영상이 유출될 위험도 있었고 직접 본가로 가야 사람들이 본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장례식을 치른 날의 모든 것이 감시 카메라에 찍혔고 스스로 무덤을 판 정윤지까지 같이 경찰에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멍청한 정윤지한테 반한 진도현도 멍청하다고 여겼다. 3년 동안 이런 남자를 사랑한 것이 후회스러웠고 순진하고 어리석었던 내가 우스웠다. 어리석은 대가를 이미 치렀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를 차례였다.경찰서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진도현이 보낸 이메일을 열어 보니 나의 이혼합의서에 사인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고 카톡으로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진도현: 예린아,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나한테는 오직 너뿐이야, 널 만나지 못하니까 하루 종일 가슴이 갑갑해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예린아,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응? 집 비밀번호는 왜 바꾼 거야? 아니면 네가 우리 집으로 올래? 와본 적이 없으니 어디인지 모르겠구나... 이 주소로 오면 돼, 그 여자랑 연락 끊었고 소란을 일으킨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예린아,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은 없어.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와 주면 안 돼?]그 뒤로 술에 취했는지 전화를 몇십 통씩 걸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던 진도현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와도 좀처럼 기쁘지 않았다. 우리가 뜨겁게 사랑할 때, 진도현은 애교가 많았고
진도현은 믿기지 않는듯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고 진도현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진도현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달려와서 외투를 벗어 나에게 덮어주었다.“도현아, 너는 마을에 이런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나는 진도현 품에 안겨 물었다. 그러자 진도현은 몸을 뒤로 빼면서 나와 거리를 유지했고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예린아, 난 네가 똑똑해서 도망갔을 줄 알았는데...”진도현은 입술을 깨물었고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비서 박서연을 불렀고 진도현이 나를 안아 들어 차에 올랐다. 박서연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예린 언니,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가서 증거라도 확보해요.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예린아, 지금 신고하면 나도 조사받아야 할 거고 내가 경찰서에 가면 어머니가 네 사진을 공개할 거야. 그 사진을 보고도 너를 좋아할 남자가 나 말고 또 있을까?”진도현이 박서연의 말을 끊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유난히 낯설었다. 내가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자 진도현은 부드러운 어조로 위로해 주었다.“예린아,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을 당했든 늘 사랑할 거야. 오늘 일은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널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지?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하자. 네 뜻대로 할게, 응?”“하지만...”박서연이 반박하려고 하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집으로 가자.”나는 부모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뒤로 진도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났고 나를 대놓고 걸레 취급했다. 우리는 매일 다른 방에서 잤고 진도현이 일찍 퇴근한 날에 내가 먼저 씻고 나오면 욕실 수증기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서 씻었다. 날 더러운 쓰레기 취급했고 나랑 닿았던 모든 것을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다가 한 번 사랑을 나누었고 나한테 통보하듯 말했다.“며칠 뒤에 해외로 출장 가는데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그러니까 날 기다리지 마.”저녁
남자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깜짝 놀랐고 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신부 들러리만 애타게 찾았는데, 드디어 찾았어!”남자 몇 명이 나를 부축했고 다른 남자들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다른 신부 들러리가 보이지 않자 달려 나와서 내 뺨을 후려갈겼다.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해서 바닥에 쓰러졌고 천막 앞에 마구 흩어진 못에 손이 찔려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남자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고 흙이 잔뜩 묻은 구두로 나를 밟았다. “다른 년들이 어디로 갔는지 당장 말해!”나를 두고 도망간 여자들을 다시 잡아서 나랑 같이 괴롭힘당하게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나를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다 도망갔으니 오늘 신부 들러리는 너 한 명이네? 곧 게임을 시작할 테니 마음껏 즐겨.”나는 마당 중간으로 끌려갔고 남자들은 신이 나서 룰을 알려주었다. 10분 내로 신부 들러리가 입고 있는 옷조각을 가장 같이 수집한 남자가 신랑 신부의 첫날 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호각 소리가 울리자 남자들은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손에 난 상처 때문에 나는 빨리 도망갈 수 없었고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남자들한테 겹겹이 둘러싸였다. 내가 옷깃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쉽게 옷을 찢지 못했다.수많은 남자의 손결이 소름 끼쳤지만 더 무서웠던 건 예리한 칼날이었다. 보다 못한 한 남자가 작은 칼을 꺼내서 내 옷 위로 그었고 그은 자리마다 상처가 생겨서 피가 흘렀다. 다른 남자들은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었고 내 옷조각을 가지려고 안간힘 썼다. 많이 가질수록 짜릿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과 허리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남았고 나는 통증에 못 이겨 손을 놓았다.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내 옷은 전부 찢겼고 남자들은 옷조각을 들고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러고는 서로 옷조각을 빼앗으려고 몸싸움했고
나는 3년 전에 진도현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결국 갈라섰다. 그때 진도현은 사업에 실패해 매일 술집을 드나들면서 술에 취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술에 취한 남자가 다가와서 강제적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두려움에 덜덜 떠는 나를 본 진도현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이 여자를 건드린다면 평생 후회하도록 해줄게.”어리고 순진했던 나는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진도현을 3년이나 사랑했다. 나는 진도현을 응원해 주었고 정신을 차린 진도현은 지금 상업계를 주름잡은 진세 그룹을 창립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내가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진도현과 결혼하는 바람에 가문에서 쫓겨났다.재벌가의 아가씨가 아닌 나를 사랑해 주는 진도현을 사랑했고 우리는 서로를 아꼈다. 회사에 신입 여직원이 들어올 때마다 진도현은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면서 말했다.“예린아, 휴대폰 마음대로 봐도 돼. 난 오직 너뿐이니까!”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진도현은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날 믿어줘서 고마워.”나에게 믿음을 주는 이 남자와 평생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저번에 진도현의 본가로 내려간 뒤로 진도현은 나를 멀리했다.내가 차에 올라타자 박서연이 새로 준비한 옷을 건넸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옷을 입었다. 박서연은 3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예린 언니, 집으로 갈까요?”“아니, 이번에는 병원으로 가서 검사받고 의사 소견서를 부탁할 거야. 날 괴롭힌 모든 사람한테 복수할 생각이거든.”나는 상처투성이가 된 다리를 쳐다보면서 3년 전에 있었던 일을 회억했다.3년 전,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진도현의 본가로 가서 결혼식에 참석했다. 본가가 있는 마을은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특이한 풍습을 고수해 왔는데 그 본질은 풍습을 빙자한 괴롭힘이었다. 특히 신부 들러리를 괴롭혔는데 헤엄칠 줄 모르는 여자여도 물가에 마구 던졌다. 시어머니는 나를 가문 남자들한테 소개해 주었다. “신부 들러리는 많을수록 재밌
나의 말을 들은 진도현이 멈칫하더니 영정 사진을 보자마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박살 난 영정 사진 액자를 매만졌다. 자신의 어머니 사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어떻게 내 어머니 장례식이야, 어떻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아무도 나한테 연락하지 않은 거지?”진도현은 큰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목 놓아 울었다. 액자 유리 파편이 진도현 가슴팍에 박혀서 하얀 셔츠를 빨갛게 물들였다. 하지만 진도현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고 영정 사진을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지 직접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진도현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나는 병원에서 받은 사망진단서와 화장 서류를 진도현 앞에 던지면서 말했다.“세 날 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병원에 이송했을 때는 이미 늦었대. 당신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가문 사람들이 나한테 연락한 거고 내가 당신 대신 장례식을 치른 거야.”정윤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황급히 진도현을 데리고 나가려 할 때, 진도현이 정윤지의 뺨을 후려갈겼다. 진도현은 산산조각 난 유골함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손을 덜덜 떨었다.“그, 그럼 이건...”진도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애써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당신 어머니가 생전부터 원하던 유골함이라서 당신 카드 긁은 거야. 당신이 못한 효도 내가 했으니까 됐지? 당신 여자 친구는 어머니를 천한 여자라고 욕하면서 16억 유골함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고 하던데? 어머니 유골함을 박살 내서라도 당신 돈을 가지겠다고 하더라고... 아, 어머니는 죽어서도 지옥 불에 활활 타서 고통받을 거라고 했었지.”한 무더기 가루 앞에 무릎 꿇은 진도현은 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울부짖었고 정윤지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정윤지의 몰골이 말이 아
유골함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부서졌고 위에 빼곡히 박혀있던 다이아몬드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삽시에 가루와 먼지가 흩날리자 모두 코와 입을 막았다.보디가드와 몸싸움하던 진씨 가문 사람들은 이곳에 남아있다가 큰 일에 휘말릴까 봐 재빨리 가방을 챙겨 도망갔다. 먼지가 날리는 와중에도 정윤지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너도 네 어머니처럼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고 유골함도 없을 정도로 구차한 죽음을 맞이하길 바랄게.”“누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는 거지?”정윤지가 계속해서 욕하려 할 때, 진도현이 나타났다.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된 진도현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예린아, 설마 날 만나기 위해서 거짓말한 건 아니지? 네 어머니 진작에 돌아가셨잖아.”진도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정윤지가 품에 안기면서 애교를 부렸다.“도현 씨, 왜 이제야 온 거예요? 촌구석에서 굴러먹던 저년한테 괴롭힘당했다고요!”정윤지의 말에 진도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진도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윤지는 진도현을 더 꽉 끌어안으면서 애교를 부렸다.“도현 씨, 저 여자랑 무슨 일이 있었든지 상관 안 할게요. 아니, 아예 없던 일로 할 테니까 저 여자가 쓴 16억을 돌려달라고 해요. 그럼 회사 근처에 아파트 하나 살 수 있잖아요, 내 말대로 해줄 거죠?”정윤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외투를 입었고 진도현과 같이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진도현은 16억이라는 말에 생각이 났는지 날 붙잡고 물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누가 죽었고 16억은 어디에 쓴 건데?”나는 정윤지가 몽둥이로 박살 내서 바닥에 엎어진 영정 사진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진도현은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인 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 집은 내 명의로 된 별장이었고 시어머니가 편히 지내도록 내어줬을 뿐이니 진도현은 지씨 가문의 장례식인 줄 알았을 것이다. 진도현은 내가 시어머니가 지내는 집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로 말했다. “여기서 장례식을 치르는 걸 우리 어머니한테
“죽은 사람을 들먹여서 돈을 받아낸 거지? 너를 보니까 이 가문 사람들도 어떤 놈들인지 짐작이 돼. 내 남자 친구 돈에 또 손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정윤지는 같이 온 사람들과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박살 냈다. 정윤지가 8명 정도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각자 몽둥이 하나씩 들고 있었다. 영정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고 액자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내가 직접 가져온 도자기 꽃병은 하나에 200만이 넘었지만 그 사람들의 손에 전부 박살 났고 꽃병 파편이 가득 튀어서 내 다리에 상처를 냈다. 말려야 할지 고민했지만 벽에 달린 감시 카메라가 있었기에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정윤지 씨, 당신이 지금까지 박살 낸 물건값이 2억이 넘어요. 돈이 넘쳐난다면 더 박살 내든지 마음대로 하세요.”정윤지는 내 말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는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와 내 뺨을 후려갈겼다.“그 입 닥치지 못해? 네까짓 게 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네가 쓴 돈은 다 내 남자 친구 돈이고 그 돈으로 산 물건을 내가 박살 내겠다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정윤지가 내 머리채를 잡고 당기자 중심을 잃은 나는 넘어졌고 질질 끌려갔다. 비단 원피스가 꽃병 파편에 긁혀 구멍이 났고 끌려가면서 원피스가 단번에 찢어졌다.나는 의식적으로 가슴을 막았고 정윤지의 눈빛에 흠칫 놀랐다.“이 원피스 엄청 비싸 보이는데, 내 남자 친구가 사준 거겠지? 당장 벗지 못해? 내 남자 친구가 사준 것들 전부 내놔!”나는 정윤지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에 원피스를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 남자 친구가 바람났으면 그 사람한테 가서 소란을 피워야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죠?”정윤지는 같이 온 사람들을 불러서 나의 두 손과 두 발을 잡게 했고 내가 입고 있던 원피스와 속옷을 거침없이 찢기 시작했다. “이 걸레 같은 몸으로 도현 씨를 유혹했으니 넘어갈 만도 하지. 여자가 봐도 부러운 몸매인데, 도현 씨는 오죽하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휴대폰을 껐다. 정윤지도 나처럼 상처받은 불쌍한 사람 같아서 어쩐지 짠해 보였고 만약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생각했다.진도현은 여전히 내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고 전화하지도 않았다. 시어머니 시체는 이미 화장했기에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문자를 보냈다.[나: 오늘 저녁까지 본가로 와, 오지 않으면 하관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낡은 별장이다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보내주지 않으면 풍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진씨 가문 사람들은 화투를 치기 시작했고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멀찍이 앉았고 진씨 가문 사람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보디가드한테 먼저 식사하라고 말했다.방 안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출입문 쪽으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천천히 문을 열자 정윤지와 마주쳤다. 정윤지 뒤로 사람이 8명 정도 더 있었는데 모두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몽둥이를 들었다. 난동 부리러 온 것이 틀림없었기에 나는 살짝 겁을 먹었다.“정윤지 씨,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요?”정윤지는 멈칫하더니 곧바로 팔짱을 끼고는 뒤따라온 사람들한테 말했다.“이 사람이 바로 불륜녀야, 확실해졌어! 그렇지 않으면 내 이름을 알 리가 없잖아?”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정윤지가 내 뺨을 후려갈겼고 장례식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그 충격을 못 이기고 바닥에 쓰러졌다. 정윤지는 피식 웃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내 멱살을 잡았다.“내 남자 친구는 오지 않았으니 연약한 척하지 마, 볼수록 구역질 나거든.”정윤지는 또다시 내 뺨을 때렸고 뾰족한 손톱 끝에 살결이 스치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맞아서인지 나는 억울했고 화가 나서 정윤지의 뺨을 때렸다.정윤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불륜녀 주제에 날 때려? 네가 저지른 불륜이 사랑인 것 같아? 내 남자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