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하던 밤이 자정이 지나자 서서히 고요 속에 잠겼다. 모두들 피곤해져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서우는 오래전부터 이미 지쳐 있었지만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몽동이가 그런 그를 안고 방으로 갔다.사여묵도 송석석을 품에 안았다. 따뜻한 이불 속 온기가 그녀의 마음도 따스히 녹여주길 바랐다.송석석이 무언가 말을 할 줄 알았으나 그녀는 아무 말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의 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사여묵은 그녀가 이미 잠들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송석석은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저 움직이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것들은 꾹 참고 견뎌야 한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아픔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하지만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그녀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사여묵은 마음이 아팠다. 그는 그녀가 너무 걱정되었다.그녀는 행복하면 항상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슬플 때에는 그에게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항상 그렇게 슬픔을 숨기면서 그에게는 이성적이고 차분하며 미소를 유지한다.사여묵은 황제에게 조금은 미웠다. 그는 본래 남강에서 돌아오면 송석석과 천천히 감정을 쌓은 후 정식으로 청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한마디로 그들의 혼사는 불가피한 것이 되고 말았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에게 청혼할 마음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서 적어도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송석석은 날이 밝아서야 잠이 들었고, 혜태비가 궁에서 돌아오지 않았기에 일찍부터 인사를 올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뜬금없는 폭죽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한참 멍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그러자 보주가 들어와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장군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정원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관리라고 하였습니다."“부인들도 왔느냐?” 송석석이 물었다. 왕부의 주모로서, 부인들이 오면 그녀도
잠시 생각에 잠기던 송석석이 대답했다. “보통 여자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면 이해할 수는 있어. 하지만 너희 시씨 가문은 다르잖아. 명색의 명문가에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문이고 고모 때문에 혼삿길에 걸림돌이 생기긴 했지만 이미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가문인데 뭘 더 높게 오르려 하는 거야? 기준을 낮춰 남편이 권력을 가진 가문에서 살면 오히려 더 편안하지 않아?”“그래서 내가 어리석다고 하는 거야.” 시만자가 송석석에게 동주 귀걸이를 걸어주며 말했다. “연왕이 시씨 가문을 노리고 있는 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오늘 아침 일찍 이미 진성을 떠났고 너의 고모의 장례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어.”“사람들을 붙인 거야?” 송석석이 물었다.“맞아, 감시하고 있어.” 시만자가 송석석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좀 웃어봐. 요 며칠 동안 네가 웃는 걸 본 적이 없어. 만약 나에게도 자손들이 있다면 난 그들이 매일 웃기를 바랄 것이야.”송석석은 신만자의 손을 살짝 쳐냈다.“남편도 없으면서 무슨 자손을 바라긴 바래?”“세 발 달린 개구리는 찾기 어렵다지만 두 발 달린 남자는 쉽지 않겠어?” 시만자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론 무기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송석석은 시집을 잘 가긴 했지만, 왕실의 자질구레한 일들로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만자에게 어울릴만한 남자는 없었다. 새해 첫날은 초대하고 초대받으면서 그렇게 순조롭게 지나갔다. 그렇게 다가온 정월 대보름에는 더욱 많은 축제와 행사들이 있었고 사여묵은 조금 늦은 시간에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큰 우박에는 재해가 뒤따른다.사여묵은 대리시경이긴 했지만 동시에 경위 지휘사였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보내 송석석의 안전까지 살폈다.날씨는 너무 추워서 뼛속까지 에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뒤뜰에 있던 매화나무들은 우박에 쓰러졌다. 그것은 혜태비가 이식해 놓은
이미 너무 지쳤던 노인순은 왕부에서 차린 따뜻한 차와 죽을 두 그릇이나 비운 후, 한 그릇 더 줄 수 없는지 물었다. 그 말에 송석석은 만 냥의 은표와 따뜻한 죽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전강후부 노부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개를 들어 송석석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손과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돈을 모았지만 겨우 칠백 냥이었다.노인순이 감동에 겨워 말을 잃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혜태비가 말했다. “여봐라, 은표를 담을 상자를 가져오거라. 그리고 이 부인께 그 중 2만 냥을 드리거라.”며느리가 하는 일이니 그녀가 당연히 지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기부금이 두 배였기에 노인순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릴 뻔했다.“흥분하지 마시고 앉으세요.” 송석석은 노부인이 흥분한 나머지 혈압이 높아질까 걱정되었다. 그러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노인선의 손주 며느리들도 감정이 북받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중 한 명이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실 오늘 장군부에 갔었습니다. 본래 기부를 요구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들도 연이어 결혼식을 올리느라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지요. 단지 할머니께서 그 당시에 너무 지치고 목이 말라서 죽 한 그릇을 요청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이 부인이 나와 나이도 많으신데 거지꼴로 구걸하신다며 모욕적인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한 푼이라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모은 돈 대부분을 기부했는데 말이지요.”“그 입 당장 다물지 못할까!” 노인순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외출을 자주 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장군부와 북명왕비의 옛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지금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할머니의 호통에 당황한 그녀는 곧바로 사과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절대 의도한 건 아닙니다. 단지 태비와 왕비께서 두말없이 이렇게 많은 은표를 기부해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
그러고 보니 장군부의 상황을 들여다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저 전북망의 두 부인이 노부인을 잘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때 혜태비가 입을 열었다. “다른 이와 서로 맞지 않으면 그것이 누구든 말부터 험해지고 악독한 단어만 골라 가며 비난하더구나.”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혜태비는 다소 움츠러진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그 모습에 신만자가 웃으며 물었다. “그 속에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그러자 혜태비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전에 덕귀태비와 다툰 적이 있는데 철저하게 패배당하고는 친히 들러 위로해 주시는 황제 앞에서 내가 입을 험하게 놀렸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 언니가 와서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마 냉궁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었을 거다.”송석석과 신만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가끔 장소 불문하고 멋대로 말을 할때가 많았다.그녀를 매우 아꼈던 태후도 이제 시어머니가 된 그녀에게 적당한 비판을 하게 되었다. 명절 기간 동안 궁에 머물렀던 것은 아마 시어머니로서의 도리를 배웠던 것 같다. 궁에서 돌아온 그녀는 송석석에게 전보다 훨씬 잘 대해주었다.며칠 후, 이방이 전강후부 노부인을 ‘거지’라고 욕했던 일이 퍼져 진성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그것은 재해로 피해가 어마어마했던 진성이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그 중 많은 재난민들이 노인순이 보내준 솜옷과 식량을 받았기 때문이다.게다가 노부인은 수십 년을 하루와같이 선행을 해왔고, 선제마저도 그들에게 ‘천사 가문’이라는 표창을 내렸다.만약 평범한 자가 그녀를 모욕했다면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하필 평판이 안 좋은 장군부 이방의 짓이여서 백성들이 더욱 분노한 것이었다.그들은 썩은 채소와 오물을 장군부 대문에 마구 던졌고, 심지어 한밤중에는 악취가 담겨있는 물을 뿌리기도 했다. 심지어 한 통이 아니었다. 그 일 때문에 장군부가 있는 골목의 집들이 모두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장군부는 골목의 앞쪽에 위치해 있었고
하지만 몇몇 이는 송석석이 북명왕비이고 본래 국공부의 적녀이라 재산이 많았기에 그 정도는 응당해야 하지 않냐는 반응들도 있었다.반면에 장군부는 가난한 데다 노부인이 오랜 병으로 앓고 있기 때문에 기부하지 않아도 이해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즉시 반박되었다.“궁핍하다는 말을 단단히 잘못 이해한 것 같군. 듣자 하니 전북망이 이방을 맞이할 때 결혼예단금은 만 단위였다고 하더군. 게다가 왕부인이 혼수로 얼마나 많은 돈을 들고 왔는지 보지 못했단 말인가?”“그 궁핍 속에서도 그자들의 양식 창고에서 자네들의 1년 양식이 아무렇지 않게 굴러다닌다네!”“그 정도로 쪼들린다면 기부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왜 노부인을 ‘거지’라 욕하느냔 말이다! 올해 아흔이 넘는 년세로 추운 날씨에도 걸어 다니며 기부금 모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모두 재해 지역의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냔 말이다!”“북명왕부가 충족한 건 맞다. 그럼, 자네는 한 푼도 없는가? 적어도 십 냥은 있지 않나? 그중에서 1, 2냥이라도 기부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나? 자네들도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그래서 그들이 그릇이 크다고 하는 것이고 넓은 포용력을 지닌 자들이라 하는 것이라네! 진성의 귀족 가문에 돈이 없겠는가? 왜 하필 그들만 삼만 냥을 기부하였겠는가?”백성들이 다투는 소리가 너무 커 왕부에까지 다 전해질 정도였다. 송석석은 사람을 보내 기부 명단을 살펴보게 하니 북명왕부가 확실히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것이었다.북명왕부가 주목받으려고 일부러 노린 것 같은 느낌에 송석석은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전강후부 노부인은 분명 기부 명시서를 관청에 올린다고 하였지, 공표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말이다.그녀가 전에 기부를 했을 대에도 공표한 적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공표한 것인지 의문이 갔다. 그녀는 단순히 재해 지역 백성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 기부한 것
송석석은 그만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확실히 알아봐야 하니 시만자더러 그녀를 붙잡아오도록 명했다.“그자를 본 적이 있느냐?”한녕의 눈이 반짝였다.“궁에 들어와 황후께 인사드리러 오셨을 때 보았습니다.”“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더냐?” 송석석이 물었다.“잘 모르겠고 그냥 보자마자 좋아졌습니다.”송석석도 제수찬을 본 적이 없었다. 첫눈에 반했다면 외모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그럼 내가 사람을 보내 물어봐도 되는 것이냐?”“그건 제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고 어머니와 형님이 결정을 하셔야 되는거 아닙니까?” 한녕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하지만 저는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공주의 혼사는 사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누가 마음에 드는지에 따라 임금의 명령만 하면 된다. 하지만 송석석은 제수찬의 마음이 궁금했다. 만약 그가 단지 왕실의 권위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것이라면, 결혼 후의 삶은 불행을 피할 수 없다.황후의 뜻을 송석석은 잘 알고 있었다. 제씨 가문의 자제들이 모두 뛰어났지만, 공주와 혼인을 시킨다면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삼방 아들, 바로 제수찬이 가장 적합했다. 그러면 다른 휼륭한 자제들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하지만, 혜태비는 별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도 제씨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오 공자와 하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제수찬은 삼남으로서 출세가 없다고 여겼다. 또한 특별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도 아니고 견식도 풍부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 종일 하찮아 보이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습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같았다.그래서 송석석이 그녀에게 물었을 때 잠시 침묵에 빠졌다. “오공자는 안 되는 것이냐?”“한녕은 제수찬을 사모하고 있습니다.”“그런들 무슨 소용이냐? 좋아하는 것은 잠시일 뿐, 함께 살게 되면 싫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러니 능력 있는 자라 되지 않겠느냐?”“그렇다고 한들 한직에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사여묵에게 송석석은 이 일을 얘기해 주었다. 사여묵은 외투를 벗어 이주에게 건네고,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제수찬은 전형적인 귀종자요. 한가로운 삶을 추구하는 쪽이라 한녕과 그야말로… 천상백필이라고 할 수 있겠군.”“며칠 후면 제씨 가문에서도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저는 절차대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녕도 그에 동의했습니다.”“그럼 한녕의 결혼이니 그녀의 기호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 같소. 오라버니인 내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한녕과 어머니가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소.”그는 송석석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이 말을 당신에게도 하고 싶었지만, 자격이 없는 것 같소. 아버님과 형님들의 군공으로 당신은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아야 하는데 말이요.”그러자 송석석이 미소 지으며 화답했다.“당신의 말씀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사여묵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정말이오? 그럼 내가 진심을 말할테니 피하지 마시오. 내가 처음으로 전장에 나갔을 때 단 한가지 신념, 오로지 남강을 되찾고 송석석과 결혼하겠다는 생각뿐이었소.”그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이를 본 이주는 재빨리 물러갔다.송석석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이제 바라는 대로 되었네요.”“그렇다면 당신은?” 그의 목소리는 잔뜩 긴장되어 보였다.“나와 결혼이 당신이 바라던 거 맞소?”송석석이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를 얼굴을 묻었다.“저도 항상 바라왔던 바 입니다.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그는 더욱 강하게 송석석을 품에 안았다. 너무 뜨거운 포옹에 그녀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이로써 나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소.”한참 동안 그의 품에 안겨있던 송석석이 그를 밀어내며 물었다. “몽동이가 군을 세우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이미 시작되었소. 몽동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원래 나와 함께 출정했던 사람 중 백여 명은 내 왕부의 사람이
송석석이 그의 얼굴을 꼬집으며 말했다. “어머님 앞에서는 이렇게 못된 얼굴 하지 마세요. 그러면 어머님도 당신이 꾸짖으려 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그러자 사여묵이 그녀의 손을 낚아채더니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타고난 위엄이니 어쩔 수 없네.”“저를 대하는 것처럼 어머님께도 다정하게 대하세요.”사여묵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당신 말대로 하겠소.”송석석은 직접 혜태비를 모셔 오겠다면 음식을 가져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불안했던 혜태비는 몇 번이나 그의 기분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를 안심시켰다.“좋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으십니다.”혜태비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사여묵은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 오셨습니까?”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평소와 같은 침착한 표정, 군인의 위엄이 넘쳐흘렀다.아내의 말을 잘 듣는 그는 혜태비에게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모습에 혜태비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선황제가 분노하기 전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그도 잔잔한 미소를 짓다 거침없이 몰아쳤었기 때문이다.사여묵은 그렇게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듯했다.“앉거라.”혜태비는 편안한 자세였다. 송석석이 있으니 사여묵이 선황제처럼 분노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잠시 후, 한녕과 서우도 자리에 합류했다.침대 위와 식사 중에는 말을 아껴야 하는 법,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대화도 눈길도 오가지 않았다.송석석은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만을 골라 손수 담아주었다. 자신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는 송석석의 세심한 행동에 혜태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뒷정리를 하고 있는 하인들을 바라보던 혜태비는 갑자기 눈물이 확 쏟아질것만 같았다. 갑자기 가슴이 저려오더니 무한한 행복감에 취해버렸다.자녀들이 곁에 있고 상대를 탓하거나 매서운 눈빛 하나 없이 평화롭게 식사를 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