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료받고 난 후, 송석석은 단신의와 그의 제자를 직접 배웅했다.단신의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주의를 주었다.“내력을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싸움도 되도록 피하게 하고. 상처 입은 곳이 단전인데다가 내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급히 돌아왔으니…… 진맥할 때도 기를 모아 몸을 보호하려 하더군. 정말 큰일 날 뻔하였다. 지금 그는 깨지기 쉬운 계란처럼 아주 연약한 상태이기에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면 쉽게 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알겠냐?”“그리고 그의 이러한 상황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은 가장 믿을 수 없으니 말이다.”송석석은 단 백부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그가 말한 대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다짐했다.같은 시각, 황실에서는 염선생이 사람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왕야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했다. 긴 여정에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고, 게다가 추운 날씨 속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치르며 눈으로 배를 채워 위장이 상했으니 이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회복해야 했다.염선생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은 그들 부부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송석석은 사여묵을 부축하여 함께 혜 태비의 방으로 갔다. 그들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단신의를 청했다는 소식을 들은 혜 태비는 고 씨 유모를 보내 상황을 물어보았고, 사여묵이 위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 외에는 별다른 상황은 알지 못했다.혜 태비는 수척해진 아들을 보며 마음이 아파져,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얘야, 이제 남강은 가고 싶은 자들이 가게 하고, 싸우고 싶은 자들이 싸우게 해라. 너는 이제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안정된 삶을 살아야지. 아니면 아이라도 낳는 것이 어떻겠냐? 그래야 더 이상 싸우며 죽고 살고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혜 태비는 그가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임을
그는 송석석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결코 측비나 첩을 맞이할 생각이 없소. 낭자에게 두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이오. 항상 나를 믿어야 하오.”송석석은 애틋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믿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당시 어찌 그렇게 단호히 거절했겠습니까?”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믿었으며, 이는 그들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감정의 파란이 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폐하의 병은 단신의의 진찰을 받았소?” 사여묵이 물었다.송석석은 그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받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그를 언급하지 않으셨기에 감히 누군가 그를 추천하지도 못했습니다. 태후께서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사여묵은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폐하는 마치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았소. 처음 폐하를 봤을 때, 마음속으로 정말 깜짝 놀랐소.”송석석은 가끔 황제를 봐왔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십 년을 더 먹은 것처럼 보인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초췌했고, 그 눈동자마저 흐릿했다.송석석이 말했다. “육부상서와 허어사가 단신의를 추천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 궁을 나서서 황실에 왔을 때 비밀리에 단신의를 찾아온 것이라고 변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육부는 더 이상 추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목 승상마저 추천하지 않은 건 의아합니다.”목 승상은 모든 일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사여묵은 갑자기 예전 일을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전에 폐하께서 병중이셨을 때, 목 승상이 민간의 유명한 의사를 불러 입궁시켰소. 그러나 폐하는 병세가 다시 악화되자 분노하시어 그 명의를 처형시켰소. 아마 목 승상은 그래서 더 이상 추천하지 않은 것일 거요.”송석석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그렇소. 듣기로는 그 명의가 단 백부의 친구라고 하던데.”사여묵은 놀라 말을 잠시 멈추었다. “모후께서도 단 백부와 그 명의의 관계를
다음 날, 공로 축하연은 취소되었다. 궁에서는 황제가 갑자기 풍한에 걸려 기침이 심하다고 전해왔다.비록 축하연은 열리지 않았지만 공적에 대한 상훈은 곧바로 내려졌다.방천허는 남강군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정이품 정국장군으로 진위하였다.제린과 다른 무장들은 정삼품과 종삼품 무관으로 진위하여 여전히 남강에 주둔하게 되었다. 동시에 남강에 장군부를 세우는 비용 또한 지급된 덕분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전사한 장병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위로금이 지급되었고, 부상당한 장병들에게는 십 량의 은하가 지급되었다.모든 이들의 공로가 명확하게 정해진 가운데, 유독 사여묵의 공로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선 천 금과 오십 필의 비단과 옷감이 상으로 주어졌으며, 여전히 대리시경에 임명되었다.상 지급에 관한 명령에서는 북명왕 사여묵의 노고와 공을 확실히 인정하며, 상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운 것을 칭찬했다.칭찬은 매우 화려했지만 다소 공허한 느낌이었고, 사실 천 금보다 실질적이지도 않았다.사여묵도 그것을 딱히 바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친왕으로서 조정과 백성의 은혜를 받으며 자라왔기에 그에 따른 책임을 다했을 뿐이었다.황제의 이 풍한은 두 번의 아침 조회를 연속으로 결석하게 만들었고, 사여묵이 궁에 들어가 알현을 요청했지만 소집되지 못했다.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모두 황제의 병세에 대한 소식을 파악하려 했지만,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중병이라고 거의 확신했다.황제가 풍한에 걸린 이후로 태의들은 모두 궁에 상주하여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3월 13일, 약왕당의 청작이 사여묵의 재진을 위해 방문해서 단신의의 말을 전했다.“사부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폐하께서 사부를 청해오라 명하신다면, 그저 승낙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사여묵의 상처는 이미 완전히 치유되었기에 더 이상 단신의가 직접 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 두 번 모두 청작이 왔던 것이다.옆에서 청작의 말을 들은 송석석이 놀라며 물었다. “폐하께
몇일 전, 숙청제는 오 대반을 약왕당에 보내 단신의의 행방을 묻게 했다. 그러자 약왕당에 있던 이들은 단신의가 이미 성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전했다.오 대반이 돌아와 위 사실을 보고하였고, 숙청제는 단번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바마마께서 당시 민간 명의를 처형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단신의가 궁으로 들어와 치료하기를 꺼리는 것이 분명했다.그는 단신의를 궁으로 불러오기 위해 사람을 보낼까 생각했다.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은 없는 법이기에 그가 어디 있든지 간에 반드시 그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데려온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숙청제는 단신의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송석석이었다.그러나 그의 병세는 계속 비밀에 부쳐져 있었고, 그는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이를 너무 일찍 알아차리지 않기를 원했다. 특히, 사여묵에게는 더욱 알리고 싶지 않았다.사여묵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뒤 막 돌아온 덕분에 민심이 하늘을 치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병세를 미리 알고 준비하여 계획을 세운다면, 성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사람은 결국 육신을 지닌 존재일 뿐, 병의 고통에 시달리며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이성적일 수 없게 되었다.그는 그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고통을 완화하고 싶을 뿐이었다.단신의는 그런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궁에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황제를 다시 보게 된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그는 몹시 말라 뺨이 움푹 들어갈 정도였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누렇게 질려 있었다. 삼월의 추운 날씨임에도 그의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옆에는 방금 갈아입은 옷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도 젖어 있었다.궁 안은 태의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 또한 매우 지쳐 보였다. 아마도 근래 줄곧 황제 곁을 지킨 듯했다.숙청제는 침상에 기대어 앉아 허리 뒤에 부드러운 방석을 받치고 있었다. 목이 머리를 잘 지탱하지 못해 흔들렸
송석석은 부친을 끌어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황제가 무엇을 말하든 부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에 부친의 충군애국을 계속 강조하며 답해야 할 질문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황제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고통으로 인해 숙청제는 예전처럼 우회적으로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는 사여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테지. 만약 짐이 죽으면 그가 섭정왕이 되어 어린 황제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송석석의 마음은 세차게 가라앉았고, 분노가 눈에 가득 차올랐다. 남강에서 막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그가 이렇게 노골적인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사여묵을 대신해 억울함을 느끼며 차갑고 빠른 말투로 말했다. "폐하, 저는 그와 부부가 된지 겨우 삼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의 형님이신 폐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가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화낼 필요 없다. 짐은 상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너는 신하로서 네 부친과 마찬가지로…...""폐하!" 송석석은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든 아니든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제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저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지, 제 부친과는 관계없습니다. 부친은 이미 남강 전장에서 전사하셨고, 그의 공로는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입니다."숙청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송석석,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너와 네 부친이 한 일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려는 것이냐?"오 대반이 깜짝 놀라 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하, 진정하십시오.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송석석이 벌떡 일어나 단호히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송석석이 무릎을 꿇고 있던 순간이 비록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치 한 세기가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숙청제의 미묘한 한숨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아, 어쩌다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거냐?"숙청제의 말에 송석석의 마음이 조금 놓였다.처음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말을 쏟아낸 것이었고, 그 뒤의 말들은 약간의 도박과도 같았다.그녀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생명이 거의 다한 황제가 잔혹해지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그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증명해 보이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직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것만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한 것이었다."일어나라." 숙청제의 목소리는 이미 훨씬 부드러워졌고, 앙상하고 누런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여전히 어릴 적 그대로 입에 발린 말을 절대 못 참는구나. 그냥 한마디 물어봤을 뿐인데 하늘을 뒤엎을 듯이 짐을 꾸짖어 대는 거 하고는. 정말 네게는 당해낼 수가 없구나."송석석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너 말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언쟁하여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 하늘에 올라가 네 둘째 오라버니에게 네가 짐을 괴롭혔다고 말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느냐? 어렸을 때 너 또한 짐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지금도 짐은 네 형님이다."송석석은 고개를 돌렸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이제 와서 형님이라 하다니……"왕비님, 일어나십시오." 오 대반이 곁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자, 송석석이 일어나고는 몸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반면, 숙청제는 여전히 고통을 참지 못해, 손을 들어 그녀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한 뒤, 우원정을 불러들였다.잠시 후 들려오는 고통의 신음소리에 송석석은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그녀는 황제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다. 때로는 군주이자 형님 같았고, 때로는 그렇게
송석석이 태후에게 말했다. "단신의께서 궁에 들어오신다면 분명 최선을 다해 치료하실 겁니다."넋이 나간 채 있던 태후의 눈에서 이내 눈물이 쏟아졌다. "최선을 다해도 생명을 구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 그저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주어 국본의 큰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태후의 눈물을 보자 송석석도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 모친께 듣기로, 태후는 강인한 성품을 가진 여성이라 큰 일에도 눈물 한 방울 쉽게 흘리지 않으신다고 하였다.송석석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하지만 이내 지금 태후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같은 시간, 사여묵은 약왕당에 가서 단신의를 만났다.오늘 궁에 호출된 후, 염선생이 약왕당에 가서 단신의에게 이 일을 바로 알렸기에 단신의는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는 이번에 제자를 데려오지 않고 혼자서 사여묵을 따라나섰다.청작과 홍작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단신의는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며 돌려보냈다.마차 안에서 사여묵은 단신의에게 안전하게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단신의는 약상자를 열어 이것저것 살펴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진짜 머리가 잘리게 된다면 그것 또한 제 선택입니다.""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모시고 온 것이니, 가실 때 또한 반드시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단신의는 약상자를 잠근 후, 마차의 부드러운 방석에 기대어 앉았는데, 그의 눈빛은 어두웠으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보이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단신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이름은 운지입니다. 세 살에 약방를 외우고 다섯 살에 모든 약초를 다 알았으며, 열여섯에 출사하여 스물다섯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자야 말로 진정한 신의였지요."사여묵은 등을 곧게 펴고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의관은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하며, 병을 치료할 때 신분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눈에는 장사꾼
건양궁에서 우원정과 임 태의가 한쪽에 서 있고, 사여묵과 오 대반도 침상 옆에서 조용히 단신의가 진맥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단신의는 진맥을 마친 후, 이전의 진단 기록과 약 처방에 대해 묻자, 임 태의가 바로 그것을 가져다주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천천히 보십시오, 단의관.”이 궁 안에서는 더 이상 누구도 감히 그를 신의라고 부를 수 없었다. 태의원이 한 차례 피바람을 겪었었기 때문이다.단신의는 그것을 받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고, 전각에는 그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만약 단신의가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정말로 그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숙청제는 긴장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동공은 살짝 줄어들었고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그는 마지막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단신의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어본 후, 고개를 들고 물었다. “진단 기록에 따르면 통증이 한 달 이상 지속되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이는 숙청제의 진술이었지만 진단 기록에도 쓰여 있었으므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는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에게 방법이 있다는 말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그러나 단신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다시 약 처방 기록을 처음부터 살펴보았다.특히나 우원정과 임 태의가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에게 내렸던 처방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들이 시도했던 몇 가지 치료 방안은 모두 일반적인 처방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었다.“단 백부, 어떻습니까?” 사여묵도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침상 옆에 앉아 마치 자신의 넓은 몸으로 숙청제를 무엇인가로부터 보호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이것은 본능적인 행동이었기에, 예의에 어긋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