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차우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지금 예은이는 아직 자고 있지만 집에 사람이 꼭 있어야 해.” “우리 둘 다 집을 비우면 안 되잖아. 게다가 난 택시 타고 가면 돼. 호텔에서 옷 갈아입고 곧 돌아올 테니까 굳이 바래다줄 필요 없어.” 나상준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특히 지금 그녀의 눈 아래에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이 하얀 피부 위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어젯밤 그녀는 늦게 잠들었고, 심한 수면 부족이 그녀의 피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진서원이 집에 있어.” 차우미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은이는 서원 씨를 모를 거야. 혹시 예은이가 깨어났는데 우리가 없고 낯선 사람만 있으면 무서워할 수도 있잖아. 그래도 당신이 집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제안했다. “차라리 호텔에 가지 않고 여기서 아침 식사용 과자와 빵을 준비할게. 그러면 그때쯤 예은이도 깨어날 테니까 두 사람이 먼저 식사해. 그 후에 내가 호텔에 다녀와도 충분해.” 어차피 하룻밤을 참고 버텼으니 몇 시간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상준은 그녀의 계산적인 눈빛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그녀의 생각에는 결국 변함없는 대답 하나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짧게 말했다. “방 카드 줘.” “어?” 차우미는 그의 말을 따라잡지 못했다. 왜 갑자기 방 카드를 달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나니, 분명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우미는 그를 믿고 있었기에 그가 방 카드를 왜 필요로 하는지 모르더라도 잠시 망설인 후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나상준은 방 카드를 건네받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며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컸고 빠르게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의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흘러들어왔다. “진 기사가 데리러 갈 겁
이른 아침의 공기가 만물의 소생과 함께 서서히 서늘함에서 따스함으로 바뀌어 갔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온 청주에 퍼져나갔다.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별장 구역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우미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어낸 빵과 과자를 틀에 맞춰 찜통에 올려놓았다. 창밖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며 뜨거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차우미는 모든 것을 찜으로 요리했기에, 기름에 튀기거나 오븐에 굽는 번거로움이 없어 그나마 손이 한결 가벼웠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시간을 확인하려 했지만 빈손이었다. 휴대폰을 부엌에 들고 오지 않은 것이었다. 생각하던 중 차우미는 손을 간단히 씻고 물기를 닦은 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시간은 이미 6시를 넘고 있었는데 이미 한 시간이 흘렀다. 차우미는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나상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아이의 움직임도 없었다. 별장 안은 고요한 아침의 적막에 잠겨 있었다.나상준은 쉬러 간 걸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 고요함으로 보아, 아마도 나예은은 아직 깨지 않은 듯했다. 어젯밤 늦게 잠들었으니 7시쯤에나 일어날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차우미는 휴대폰을 다시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조심스레 위층으로 향했다. 나예은이 혹시 이불을 차고 자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했다. 차우미는 발소리를 죽이며 아이 방문 앞에 서서 조용히 문손잡이를 돌렸다. 방 안은 아주 고요했다. 나예은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차우미는 아이가 잠든 모습을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스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문이 열리면서 보이는 침대와 그 위에서 이불을 덮고 평온하게 자고 있는 나예은뿐 아니라, 그녀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나상준이었다. 그는 이미 한결 깔끔한 캐주얼 차림으로 갈아입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나상준의 시선이 휴대폰 화면에 떨어졌고 그는 손가락 끝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문서 내용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막 손가락을 내리려던 찰나,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면 상단에 나타난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니 ‘진서원’이었다. 나상준은 메시지를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가져오신 짐과 방 열쇠는 대표님 침실에 두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상준은 짧게 답을 입력했다. [응.]한편, 차우미는 이미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상준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안도감 덕에 마음이 편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아침 식사와 빵을 다 만들고 있을 즈음, 거실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엄마!” 차우미가 막 가스 불을 끄자마자 나예은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차우미가 잠시 멈칫하며 돌아보니, 핑크빛의 작은 아이가 자신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차우미는 재빨리 허리를 숙여 두 팔을 벌려 그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품에 안았다. 나예은은 곧장 차우미의 품에 안겨 깔깔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큰엄마, 고생하셨어요!” 그러고는 차우미의 얼굴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 소리에 차우미의 얼굴이 환하게 웃음꽃을 피웠다. 차우미는 아이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꿀처럼 달콤한 아이의 몸을 감싸안으며 물었다. “깼어?” 차우미는 나예은을 바라보았다. 나예은은 이미 핑크색 퍼프 소매 드레스를 입고 하얀색 스타킹까지 신은 상태였다. 짙은 머리카락은 가지런히 뒤로 묶였고 머리 위에는 예쁜 공주 머리띠가 얹혀 있어 말 그대로 작은 공주 같았다. 차우미는 나예은의 정돈된 모습과 정갈한 머리 모양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큰아빠가 입혀준 거니? 머리도 큰아빠가 묶어줬어?” 나예은은 어린 나이로 스스로 옷을 입기가 쉽지 않았기에, 나상준 외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상준은 아이를 돌봐본 적도, 아이에게 옷을 입혀본 적도 없는데
나예은은 도와주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이때 나상준이 나예은을 번쩍 들어 올려 아기용 식탁 의자에 앉히고는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결국, 나예은은 얌전히 식탁 의자에 앉아 나상준이 차우미에게서 아침 식사를 받아 하나씩 상에 놓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예은은 나상준과 차우미를 번갈아 보면서 그들이 가져오는 음식을 바라보며 긴 속눈썹을 깜빡이고는 작은 입을 벌리며 혼자서 기쁘게 웃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나상준의 도움이 있어 아침 식사는 순식간에 준비되었고, 세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차우미는 원래 나예은에게 직접 음식을 먹여주려 했지만, 나예은은 스스로 식혀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차우미는 의외로 나예은이 생각보다 자립심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나예은이 어리고 모든 걸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나예은이 혼자 옷을 입고 세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차우미는 이제 나예은이 혼자 아침 식사를 하도록 도와주었다.나예은 앞에 빵과 아침 식사를 놓아주며 음식이 너무 뜨거우니 꼭 불어서 먹으라고 당부했다. 나예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숟가락을 잡고는 꼭 불어서 뜨거움이 가신 후에만 입에 넣으며 순진하게 아침을 먹었다. 나예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차우미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함과 편안함이 밀려왔다. 마음 한구석에서 요 며칠 동안 느끼지는 알 수 없는 행복과 충만함이 샘솟았다. 나상준은 맞은편에서 차우미가 나예은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조용히 지켜보고는 삶은 달걀 하나를 껍질을 벗겨 그녀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따뜻하고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 식사가 이어졌고 행복한 기운이 온 식탁을 감쌌다. 식사를 마친 후 나상준이 말했다. “짐은 내 방에 뒀으니까 씻고 나갈 준비해.” 차우미가 식탁을 정리하려던 순간,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나상준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에 순간 멈칫하며 그를
차우미는 멍하니 서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앞서 두 사람이 조용히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예은이 ‘데이트’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만 들었을 뿐, 두 사람이 무슨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니 나상준은 아이를 안고 뒷마당으로 가더니 아이를 내려놓고 둘이 나란히 앉아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특히 나예은이 가끔씩 차우미 쪽을 힐끗힐끗 돌아보며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는 모습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보통 내용은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른과 아이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냥 일상적인 대화일 것이다. 차우미는 나상준이 방금 한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말이 뭘 뜻하는지 그녀는 이해했다. 차우미가 호텔로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짐을 여기로 가져와서 바로 씻고 준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터였다. 아까 나상준이 진 기사가 데리러 갈 거라고 한 전화를 떠올리며, 차우미는 그 전화가 아마 양지숙에게 한 것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짐 속에는 여성용품도 많았으니, 운전기사인 진서원이 직접 짐을 챙기는 것보다는 양지숙이 챙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처럼 세심한 나상준의 배려를 차우미는 최근 며칠 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그 전화는 양지숙에게 걸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차우미는 주 침실로 들어섰다. 어젯밤 잠시 들어왔던 공간이었지만 다시 들어서자 여전히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하지만 잠깐의 흔들림만 있었을 뿐, 금세 마음이 평온해졌다. 차우미는 방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짐가방이 보이지 않자 아마 드레스룸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쪽으로 향했다. 드레스룸에 들어서자 짐가방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변의 모든 장식과 배치가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이었다. 차우미는 원래 옷을 많이 사는 성격이 아니었고 나상준과 결혼한 지난 3년 동안 특별한 자리에서 필요
나예은의 말투엔 행복이 가득했고 그 얼굴엔 환희가 넘쳤다.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확실히 다르다. 이 순간 나예은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속상하다’는 감정을 전혀 모른다. 아이는 오직 기쁨만 알고, 가득 찬 행복 속에 살며 사랑으로 감싸여 있다. 나예은의 마음과 정신세계는 아주 온전해서 결핍이란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나상준은 이 모든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찬 나예은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 큰아빠는 큰엄마를 정말 좋아해.” 차우미는 나상준과 나예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그녀가 단장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나상준과 나예은도 막 뒷마당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나예은은 차우미를 보자마자 ‘큰엄마!’라고 부르며, 나상준의 손을 재빠르게 뿌리치고 쿵쿵 달려와 차우미의 손을 붙잡고 올려다보았다. 차우미는 샤워 후, 깔끔한 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었고 특이한 점이 있다면 긴 머리를 반쯤 말린 채 그대로 뒤로 늘어뜨렸다는 것이다. 나예은은 차우미의 긴 머리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큰엄마, 머리 풀고 있으니까 너무 예뻐요!” 차우미는 내려오자마자 나예은에게 칭찬을 받게 될 줄은 몰랐기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나예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그러고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더운 거 아니야? 머리 묶어줄까? 큰엄마가 예쁘게 묶어줄게.” 나상준이 머리를 묶어줄 리는 없으니 어린 나예은이 스스로 묶기에도 어려울 터였다. 차우미의 말을 듣자마자 나예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묶어줘요. 안 그러면 나중에 더울 것 같아요!” 나예은은 머리숱도 많고 굵은 편이라 묶지 않으면 조금만 지나도 더워할 것이었다. 차우미 역시 조금 지나면 자신의 머리도 묶을 생각이었다. “그럼 큰엄마가 예쁘게 묶어줄게.” “네!” 차우미는 나예은의 손을 잡고 나상준을 향해 말했다.
‘진장혁’보낸 사람의 이름이 차우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살짝 눈을 깜박이며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우미야,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할 수 있을까? 지금 대략 다음 주 토요일로 시간을 맞춰 놨어. 대부분 친구들이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시간 돼? 가능하다면 다른 동창들에게도 다시 확인해서 그날로 확정하려고 해.] 며칠 전 차우미가 회성에서의 일을 마치며 진장혁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녀가 며칠 안에 안평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알린 것이었다. 이미 동창회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던 만큼, 회성에서의 일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지체 없이 자신의 상황을 진장혁에게 알렸다. 진장혁은 당시에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이후에 다른 동창들에게 시간을 맞춰보겠다고 답을 주었다. 가능한 날을 찾는 대로 확정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제 진장혁이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니, 대략적인 일정이 조율된 모양이었다. 차우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반장, 나도 이틀 내로 평성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아직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 평성에 도착해서 일 처리를 끝내고 나면 톡 보낼게.] 평성을 떠나 있은 지 오래였고 돌아가면 그동안의 업무를 다시 인수인계해야 했다. 관 내의 일은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을지, 다른 프로젝트가 있거나 바쁘지는 않을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성에 돌아가야 모든 상황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차우미의 답장이 전송되자, 진장혁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괜찮아. 모두 바쁘니 서두를 필요 없어. 이번 주 토요일에 모일 수 없으면 다시 날짜를 정하면 되니까.] 차우미는 짧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마무리했다. 사실 동창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몇 년 만이었고, 전국에 흩어져 각자의 일과 가정을 꾸리고 있는 상황이라 모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차우미는 평성에 돌아간 후 일이 그리 급하지 않다면 토요일 하루 정도는 휴가를 낼 수 있을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이 순간, 서혜지와 나준우는 작은 배를 타고 호수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혜지는 휴대폰으로 주변 풍경을 찍고, 나준우의 사진도 찍으며 눈에 담긴 아름다운 장면들을 남기고 있었다. 차우미의 메시지가 도착한 건, 마침 서혜지가 나준우를 촬영하던 찰나였다. 화면에 뜬 메시지, 특히 발신인의 이름을 본 서혜지는 곧바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메시지를 열었다. [미려 씨, 오늘 저랑 상준 씨가 예인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가 오후엔 과수원에서 딸기와 과일을 따려고 해요. 저녁엔 영화도 보러 갈 거예요. 두 분은 언제쯤 돌아오실 건가요? 돌아오시기 전에 연락 주시면 시간 맞춰서 준비할게요. 그리고 예은이는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정말 잘 있었어요. 잠도 잘 자고 울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서혜지는 이 긴 메시지를 읽고 마음 깊이 감동했다. 나예은이 자신의 소중한 딸이니만큼 차우미와 나상준을 믿고 맡기긴 했지만, 엄마로서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이미 맡긴 만큼 연락하지 않고 모든 걸 차우미와 나상준을 믿기로 결심했었다. 차우미는 그녀의 이런 마음을 잘 알기에 직접 나예은의 상황을 알려주어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다. 그녀는 차우미의 세심함에 깊이 감동하며 눈물이 맺혔다. “왜 그래?” 나준우는 서혜지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고, 그녀가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보고는 곧장 그녀 곁으로 와서 감싸안았다. 서혜지는 고개를 저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깜빡이며 말했다. “형수님한테서 온 메시지예요. 예은이가...” “예은이가 왜? 혹시 울었어?” 서혜지가 다 말을 마치기 전에 나준우가 불안한 듯 끼어들며 물었다. 서혜지는 차우미의 세심한 메시지에 감동받아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나준우의 질문에 그 감동이 순간 사라지고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준우는 나예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혹시 다치거나 넘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혜지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잠시 멍해졌다가 그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