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안평시. 공항에서 비행기가 우르르 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벗어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내 구름 속으로 빠르게 들어가자 도시는 점차 작아지고 불빛은 한 점 한 점 축소되어 가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온이샘은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온이샘은 모든 업무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중요한 서류와 휴대폰만 챙겨 바로 공항으로 달려왔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청주에 가서 차우미를 만나고 싶었다.비행기가 비행 고도를 높이며 도시의 불빛이 마치 별빛처럼 흩어지는 광경을 뒤로하고 온이샘은 시선을 돌려 꺼진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온이샘은 일에 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사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문제였다.일을 정리하니 어느덧 시간이 7시를 넘었다. 온이샘이 예약한 비행기는 10시 15분 출발이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탔을 때는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이면 차우미는 아직 잠들지 않았을 테니 메시지를 보냈다.차우미와 이야기하고 싶었고 빨리 차우미를 만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온이샘은 그 순간 아무것도 제어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휴대폰은 곧 꺼지고 말았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자동으로 꺼진 휴대폰을 보며 배터리가 없음을 알았다.꺼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차우미가 너무 보고 싶었던 나머지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차우미가 청주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조급해졌고 마치 자신의 마음이 먼저 청주로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기 몸은 그저 빈 껍데기였고 차우미에게 다가가기 위한 기계적인 행동만을 이어가고 있었다.그렇지만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꺼진 휴대폰을 보
주혜민은 나상준의 별장 안의 불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지 않고, 멀지 않은 강가에 있는 정자로 가서 별장 쪽을 바라보았다.특별히 나상준의 별장을 똑똑히 볼 수 있는 자리를 잡아 집 앞에 오가는 차량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나상준의 차가 멀리서 달려오는 걸 보자 주혜민은 눈을 번쩍 뜨였다.그의 차를 알아봤기 때문이다.나상준은 고상 떠는 사람과 정반대인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그 차는 사람들이 탐 나는 롤스로이스도 아니고 눈부신 페라리, 포르쉐, 마이바흐도 아니었다.다름 아닌 바로 벤츠였다.그러나 벤츠도 수천만 원의 고급 차가 아니지만 몇백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나상준이 소유 중인 이 벤츠는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소수이며 외부에는 판매하지 않는다.겉모습만 보면 일반 차량보다 다를 게 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내부 장비들은 천만 원대의 고급 차보다 뒤떨어지지 않고 심지어 더 좋다.주혜민은 3년 전부터 이 차를 본 적이 있다. 청주에 있으면 나상준은 거의 이 차만 몰고 다닌다.주혜민은 오늘 별장을 떠나서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 거의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나상준의 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주혜민은 지푸라기도 잡은 듯 바로 강아지를 데리고 다가갔다.드디어 어두컴컴한 대문 밖에 다시 밝아졌다.주혜민은 나상준을 봤다.달빛에 그의 꼿꼿한 자태와 용안이 더욱 차갑고 조각 졌다.지금, 이 순간, 주혜민은 손에 있는 목줄을 꽉 쥐고 계단에 발을 디디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눈에 빛이 반짝였다.기쁨과 즐거움이 주혜민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드디어 나상준을 만나게 된다. 주혜민이 그를 만나려고 온갖 수를 다 썼다.문밖에 서 있는 주혜민의 뜨거운 시선과 감정을 바라보는 나상준의 안색은 담담하고 차가웠다.나상준은 시선을 돌려 계단을 계속 올라가 거실로 들어갔다.주혜민은 거기 서서 그냥 그렇게 떠나는 나상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그의 차가운 모습에 주혜민의 안색도 따라 변했다.
아주 고요한 밤이었다.몇백 평짜리 별장 안은 안주인도 아이도 없이 오직 나상준뿐이었다. 별장 안은 고요함이 맴돌아 사람이 살고 있어도 소리도 온기도 전혀 없었다.차우미가 떠나면서 이 별장은 더는 집 같지가 않고 겉모습만 화려할 뿐이다.나상준은 서재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 화면에 CCTV 장면이 선명히 나타났다.다른 곳의 CCTV 장면이 아니라 바로 나상준의 집 앞 화면이었다.나상준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주혜민이 집 밖에서 둘러보는 화면이었다.나상준은 주혜민이 대문 밖에 나타난 화면을 찾아서 멈춰 섰다.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CCTV에 있는 주혜민이 별장을 바라보는 모습과 눈빛을 보고 있었다.“집 안 청소는 다 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무슨 일입니까?”“사모님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여자가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며 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뭔가 이상해서 직접 연락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괜찮다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강아지를 데리고 갔습니다.”나상준은 자신이 돌아왔을 때 받은 전화가 생각나면서 양지숙의 말을 듣고 모니터에 양지숙의 모습이 나타났다.곧 대화하는 소리가 컴퓨터에서 흘러나왔다.나상준은 CCTV에 찍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네, 감사합니다.”주혜민의 마지막 말이 전해 들려오면서 양지숙도 떠났다. 따라서 주혜민의 안색 변화도 변했다.그녀의 가식적인 가면을 벗기고 오만하고 자신만만하며 경멸하는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오만한 태도가 낱낱이 드러냈다.나상준은 모니터에 주혜민의 안색 변화를 바라보며 생각이 점점 더 깊어졌다....새벽 1시, 청주 공항.온이샘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서 떠났다.새벽이다 보니 공항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여전히 공항 직원들이 눈에 보였고 그와 같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청주는 온이샘의 고향이자 그가 20여 년을 살았던 곳으로 청주의 모든 것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출국한 지 몇 년 만에 돌아올 때 비로소 처음으로 고향의 변화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을 봐서 가슴에서 우러나온 감회이지 않나 싶다.지금, 이 순간, 차우미가 온이샘이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에 있고,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온이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었다.분명 새벽 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간인데 온이샘은 피곤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그저 흥분과 깊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온이샘은 내일 차우미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그가 청주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했다.이러한 생각을 하며 온이샘의 입가는 억누를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입꼬리가 끝도 없이 계속 올라갔다.그는 차우미가 자신이 청주에 있다는 것을 알면 놀라고 어리둥절할 거로 생각했다.택시는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앞으로 달려가고 있고 한 시간쯤 지나 스카이 빌리지에 도착했다.온이샘은 돈을 주고 차에서 내려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시간은 벌써 2시가 넘었고, 단지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온이샘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집에 도착했다.집은 매우 넓고 깨끗했다.집 열쇠를 어머니께 드렸더니 어머니가 가끔 오시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환기하러 온 사람도 있다.그래서 오랜만에 돌아와도 집안은 깨끗하고 꿉꿉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휴대전화가 꺼진 것을 기억하는 온이샘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충전시켜 전원을 켰다.차우미가 그 시간대에 보통 잠을 안 자기 때문에 답장할 거라고 알아서 메시지를 보냈다.온이샘은 차우미가 답장할 거라고 짐작했다.그녀가 무슨 말을 보냈는지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온이샘은 서둘러 씻지 않고 흥분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졸리거나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휴대전화가 충전되면서 화면도 점점 밝아졌다.온이샘은 휴대전화가 켠 것을
그냥 두 개의 메시지일 뿐인데 아주 소중했다. 온이샘은 앉아서 그 두 개의 메시지만 계속 보고 눈에 애정이 가득했다.한참 동안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그는 예전엔 메시지 하나 때문에 이렇게 흥분하고 주체하지 못하진 않았고, 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도 않았었다.예전에도 차우미를 좋아했지만, 그때는 자제할 수 있었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누를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차우미에게 다가가고 싶고 가지고 싶다. 온이샘의 욕심은 점점 확대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온이샘은 소파에 기대어 소리 없이 웃으며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감정 기복의 크기가 온이샘 같지 않았다.새벽 2시가 넘은 밤은 마치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진 듯 유난히 정적에 잠겼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온이샘은 소파에 한참 기대어 있다가 일어나 다시 메시지를 보았다.차우미는 지금 분명 자고 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절대 이 시간에 그녀에게 답장하지 않았을 거지만 차우미가 내일 깨어나서 답장을 보지 못하면 걱정할 것 같아서 메시지를 작성해 답장을 보냈다.지금쯤 차우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거고 메시지 하나로 깨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메시지를 보내고 온이샘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씻으러 갔다.이미 늦은 시간이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내일 일찍 일어나서 좋은 모습으로 차우미를 만나러 가야 했다.온이샘은 더는 머물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물소리가 들려왔다.같은 시각, 금난 호텔.방안은 고요하고 창밖의 불빛이 비쳐 들어와 안의 모든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차우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가벼운 숨소리가 들렸다.갑자기 휴대전화가 ‘땡’하고 울리더니 화면이 밝아지면서 방안도 약간 환해졌다.차우미는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뒤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우미는 몸을 움직이고는 몸을 창문을 향해 돌아섰고, 얼떨결에 휴대전화를 만지러 손을 뻗었다.메시지가
온이샘은 화면에 나타난 메시지와 수신자를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답장이 온 걸 보니 계속 안 자고 있었던 걸까?갑자기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하더니, 온이샘은 다른 생각을 접어두고 메시지를 확인했다.[정말 별일 없어? 선배,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괜찮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울게.]온이샘은 차우미의 메시지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메시지를 보낸 시간을 확인하는데 자신이 메시지를 보낸 지 불과 몇 분 만에 답장이 왔었다.계속 안 자고 있던 걸까? 아니면 휴대전화 소리에 깬 걸까?왠지 모르게 지금 온이샘은 당장 차우미에게 아무 일 없다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메시지 말고 전화를 걸고 싶었다.그것도 아주 간절했다.그러더니 무의식적으로 연락처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온이샘은 지금 통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차우미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졸음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데, 손에 있던 휴대전화도 힘이 풀리면서 침대에 떨어졌다.징징...울리는 진동 소리에 차우미는 깨어나 눈을 떴다.벨 소리가 안방까지 울려 방안의 정적을 깨뜨렸다.차우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누가 이 밤중에 전화를 걸어온 것인지 확인했다.온이샘 선배였다.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선배.”졸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고요한 밤하늘 아래 부드럽게 온이샘 휴대전화로 또렷이 들려왔다. 이 순간 온이샘의 심장 박동이 잠시 멈추고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정말 온이샘 때문에 차우미가 잠에서 깨어났다면 무슨 일인지 말하고 사과해야 한다.그러나 차우미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온이샘은 왠지 모르게 마치 벙어리가 된 것 같았다.해야 할 말들이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차우미는 말을 마치고 온이샘이 말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주 조용했다.전화 너머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는데 끊지 않았고 통화 중이었다.“선배, 듣고 있어?”“내 말 들려?”차우미는 온이
“자야 하는 시간인데, 말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온이샘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다른 마음을 담고 있는데 차우미가 듣기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다.하지만, 온이샘은 차우미의 다름 아닌 자신과 대화해주는 도움이 필요했다.차우미는 그제야 이해했다.생각하며 시간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선배, 여태까지 안 잤어?”온이샘은 자신이 방금 한두 마디가 부적절하다고 알고 차우미를 놀라게 하고 그를 피할 수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비록 말을 마치고 심장 박동이 전보다 더 빨랐고, 긴장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그러나 온이샘은 차우미가 놀라지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녀의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차우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마음도 단순해서 온이샘을 걱정하고 있다.친구로서 걱정하고 있다.오히려 온이샘이 생각이 많아서 입을 열지 못하고 마음이 혼란스럽기만 했다.차우미의 말이 귀에 들어오면서 웬일인지 온이샘은 웃음을 터뜨렸고, 불안한 마음이 점차 평온해지고 휴대전화를 움켜쥔 다섯 손가락도 긴장을 풀었다.“응.”온이샘은 계속 쉬지 못했다.가능하다면 온이샘은 당장 차우미를 만나고 싶었다.차우미는 그의 대답을 듣고 입술이 약간 떨더니 입을 열었다.“바쁘지?”차우미는 온이샘이 일과 휴식시간을 잘 분배하고 너무 힘들지 말고 지금처럼 밤을 새우지 않기를 바랬다.이렇게 하면 몸에 안 좋다.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온이샘이 지금까지 쉬지 않았는데 분명 매우 바쁠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차우미는 무슨 일이 있든 온이샘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랬다. 전에 그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고 지금 온이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이다.단지 온이샘이 말을 안 할까 봐 걱정이다.온이샘은 휴대전화 너머로 차우미의 평온한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한 그녀의 관심이 담겨 있는 걸 느꼈다. 그의 마음속의 불안함과 긴장함이 모두 진정되었다.조금의 조급함도 없었다.“응
차우미는 스카이 빌리지를 알고 있다. 청주의 유명한 주택단지이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지 않은 신분을 가지고 있다.온이샘이 말하자 차우미는 바로 어디인지 알았다.“금난 호텔에 있어.”온이샘도 차우미가 청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숨길 필요가 없었다.금난 호텔...온이샘은 눈동자를 약간 움직이며 말했다.“알았어. 일 금방 처리할 수 있는데 너는? 언제쯤 끝나? 내가 도와줄 건 없고?”차우미는 자신이 온이샘을 도울 생각이었는데 되려 도움을 주려고 했다.그녀는 웃음이 터졌다.“아니. 빠르면 내일이면 끝날 것 같은데...”“아...아니다. 오늘이면 끝날 수 있어.”아무 생각 없이 내일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미 새로운 날이 밝았다.온이샘은 차우미의 말을 듣고 아무 일 없고 순조롭다고 느꼈다.그는 따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처리하기 어렵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나 지금 청주에 있으니까 너랑 가까워.”차우미는 웃었다.“그럴게.”두 사람은 예전과 같은 텐션으로 돌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온이샘이 회복됐다.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 공기가 얼었다.이내 온이샘이 얼음을 깼다.“그... 그럼 내일 처리하고 연락할까?”차우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어 말했다.“내가 귀국하고 나서 네가 처음으로 청주에 왔는데, 마침 나도 여기 있으니 시간 되면 밥이라도 사주고 싶어서.”차우미는 청주에서 3년이나 살았는데 낯설지 않을 것이다.어디로 놀러 갈지 온이샘의 안내도 필요 없고, 또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친구로서 현지인으로서 밥을 사주겠다는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말을 듣고 말했다.“오늘 일이 끝나는 대로 안평시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선배도 지금 청주에 있으니 같이 밥 한 끼 먹어요.”차우미가 온이샘의 초대를 거절할 리 없다. 차우미가 안평시에 돌아가서 똑같이 온이샘에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면 온이샘 역시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친구이지만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