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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9화

작가: 유리
주혜민은 별장 대문 앞에 다가가 초인종을 누른 후, 강아지 밧줄을 잡고 서서 안에 있는 커다란 문이 열리는 걸 바라보았다.

대문에 거실의 빛이 쏟아져 나오면서 계단, 정원, 그리고 잔디밭도 따스한 빛이 쏟아졌다. 이곳의 모든 것은 주인이 돌아오면서 더는 차갑지 않고 온기가 느껴졌다.

주혜민은 빛을 보면서 그 안의 온기를 느꼈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보는데 생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상준을 마주한다.

‘나상준, 네가 날 찾아오지 않으면 내가 찾아갈게. 어떻게 해서든 같이 있을 수밖에 없어. 이건 신의 뜻이야.’

양지숙은 돌아와서 바로 식탁을 치운 후, 그릇들을 주방으로 가져가 깨끗이 씻었다.

다 씻고 부엌을 정리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양지숙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깥을 살폈다.

전보다 아주 어두워졌고, 8시가 넘은 청주의 밤은 이미 어두워졌다.

이 시간에 누가 찾아온 걸까?

집에 올 사람이 거의 없다. 예전에 차우미가 막 시집와서 양지숙이 아직 이 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왔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한 명은 차우미의 친구 여가현이고, 다른 한 명은 나상준의 비서 허영우뿐이다.

그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온 적이 없다.

그러고 양지숙이 이 집에서 나가고 다른 집으로 가고 나서는 누가 왔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양지숙이 이 집에 있을 때, 그 두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온 걸 보질 못했다.

‘허영우가 온 건가?’

허영우가 이 집에 가장 많이 온다. 나상준 비서로서 가끔 공적인 일이나 서류 보내러 집에 자주 온다.

양지숙이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허영우가 온 게 가장 마땅하다.

양지숙은 손에 있던 수건을 내려 놓고 손을 닦고 현관에 있는 모니터를 보았다.

한 여자가 떡하니 서 있었다.

허영우가 아니었다.

양지숙은 의아해했다.

‘여자?’

집에 차우미와 여가현 외에 처음 본 제3의 여자였다.

양지숙은 주혜민이 누군지 모른다. 지금 모니터 앞에 보인 이 사람을 보고 약간 놀랐지만, 대문 앞에 나가서 물었다.

“누구 찾으세요?”

양지숙은 대문 밖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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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   제7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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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   제755화

    쇼핑몰에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1층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차우미는 나상준을 데리고 1층 과일 존으로 가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녔다.앞서가던 차우미는 과일 존에 가지런히 진열된 과일을 보며 말했다.“과일 많으니까 먹고 싶은 과일 있는지 봐봐.”나상준은 한 손으로 카트를 끌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꽂았다. 차우미의 곁에서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을지 걱정해서 시선은 줄곧 차우미를 따라갔다.부드러운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나서야 차우미에서 시선을 떼고 각양각색인 과일에 떨어졌다.“아무거나.”아무거나...아무거나가 제일 고르기 힘든 것이다.차우미는 나상준이 과일 고를 줄 모르는 것을 알지만, 예전에 차우미가 집에 과일을 산 적이 있는데 그가 어떤 과일을 먹는지 알고 있다.차우미는 생각하더니 말했다.“멜론, 사과, 딸기, 블루베리 어때?”나상준은 너무 단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음식 본연의 단맛을 즐겨 먹는다. 차우미가 말한 과일 모두 너무 달지 않고 보통 정도의 당도이다. 예전에 사서 서재로 가져다주었을 때도 먹었었다.나상준은 익숙한 말투로 진지하게 묻는 차우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응.”차우미는 웃으며 봉지를 가져다줘서 고르라고 했다.카트는 직원들에게 물어볼 수 있지만, 과일을 고르는 것은 방법이 없다.차우미가 직접 골라서 각각 500그램씩 담고 직원들이 얼마인지 알려줬다.카트에 더는 물건이 못 들어가서 차우미는 손에 쥘 수밖에 없었다.근데 이때, 어느 큰 손이 다가와서는 차우미 손에 있는 과일을 가져갔다.차우미는 잠시 멈칫하다가 나상준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괜찮아. 카트에 못 담아서 들고 있는 거야. 이제 계산하러 가는데 괜찮아.”나상준은 차우미의 말을 듣지 않고 카트 안을 정리한 후 과일을 넣었다.차우미는 이를 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양도 많지 않고 자리도 별로 차지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과일을 다 사고 차우미가 물었다.“아직 살 거 남았어?”“있으면 같이 사고.”나상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

  • 봄날   제756화

    동시에 눈동자가 약간 움츠리면서 차우미랑 부딪친 이 ‘물건’을 쳐다보았다.아이였다.그렇다. 몇 살짜리 여자아이였다.그 아이를 보고 나상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차우미는 갑작스러운 충돌에 멍하니 있다가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익숙한 품에 안겼다.하지만 이번에 차우미는 반응이 빨라서, 바로 서서 뒤에 누가 부딪쳤는지 보았다.뒤돌아보니 귀여운 똥머리를 한 채 머리를 들고 멍하니 나상준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이를 본 차우미는 매우 놀라고 의외였다.아이가 자신을 부딪칠 줄은 몰랐다.아이 엄마도 눈치채고 얼른 아이를 잡고 나상준과 차우미에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아이가 장난이 많아서 아가씨를 부딪쳤네요. 정말 죄송합니다.”여인의 말에 여자아이는 눈만 깜박이다가 차우미와 나상준에게 말을 걸었다.“아저씨, 잘 생겼어요!”“...”“...”“...”순간 조용해져서 다들 반응이 없어졌다.여자아이가 이런 뜻밖의 말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차우미는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올라가고 뜻밖의 칭찬을 받게 된 나상준을 바라보았다.나상준도 아이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갑자기 칭찬할 줄 몰랐다. 나상준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로 안색이 안 좋아졌다.그러고 여자아이는 머리를 돌려 차우미를 보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도 너무 예쁘다!”언니...아저씨...나상준의 눈동자가 차가워졌다.차우미는 몇 살짜리 여자아이한테 칭찬을 받은 나상준을 보고 있는데, 나상준의 얼굴에 나타난 의외의 표정을 보며 생각지도 못했다.이를 본 차우미는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나상준이 잘 생겼다는 것은 사실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앞에서 칭찬하고 심지어 어린애가 칭찬하는 건 처음이다.나상준의 얼굴은 원래 잘생긴 건 맞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보통 아이들이 보면 무서워하는데, 모처럼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니 정말 놀랍고 흥미로웠다.차우미는 이런 생각 하다가 아이의 

  • 봄날   제757화

    어쨌든 차우미는 어른이었다. 눈앞의 아이는 세 살이나 네 살쯤 되어 보였고 차우미는 자신보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차우미의 말을 들은 여자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는 안 아파요. 언니한테서 좋은 향기가 나요. 저는 이 향이 너무 좋아요.”아이가 향기가 난다고 말하자 차우미는 잠시 멍해졌다. 향수를 쓴 적이 없었다. 향수 냄새가 불편하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귀찮기도 해서 아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자신의 몸에서 향기가 날 리 없다고 생각하니, 순간 당황스러웠다.아이의 엄마가 그 말을 듣고 급히 나섰다.“이게 무슨 말이야? 얼른 이모한테 사과해.”아이는 엄마의 단호한 표정을 보더니 금세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제가 언니한테 부딪혔어요. 화내지 마세요.”아이의 사과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차우미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차우미는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앞으로는 조심해야 해. 부딪히면 아프니까.”“네.”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앞사람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상준이 차갑게 말했다. “가자.” 나상준은 유모차를 밀며 앞서 걸어갔고, 아이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차우미는 나상준의 감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듣고 아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나상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아이와 그의 부모는 나상준 바로 뒤에 줄을 서 있었다.엄마는 나상준의 냉랭한 표정을 분명히 봤기에, 아이가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급히 몸을 숙여 손가락을 입에 대며 소리를 막았다.아이는 차우미가 마음에 들어 계속 말을 걸고 싶었지만, 엄마의 단속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비밀스러운 행동이 오히려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듯 아이 역시 손

최신 챕터

  • 봄날   제956화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 봄날   제955화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 봄날   제954화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 봄날   제953화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 봄날   제952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 봄날   제951화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 봄날   제950화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 봄날   제949화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 봄날   제948화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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