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날 전에 해결했어야 했는데 제게 일이 있었어요. 제가 갑자기 회성을 떠나야 하는 바람에 어제로 미뤘었는데 어제 제가 경찰서로 왔을 땐 아무도 없더라고요.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오늘 아침까지 연락 한 통 없으셨잖아요.”“진심으로 이 일을 처리하고 싶다면 제게 전화라도 한 통 해서 상황을 설명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잖아요. 주혜민 씨는 이 일을 처리할 맘이 없는 거죠?”차우미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직설적으로 내뱉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평온했으며 분노나 불쾌감은 담겨있지 않았다.“주혜민의 태도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그리고 그녀의 뜻도 잘 알고 있고요. 주혜민의 성격으로 봤을 때 절대로 사과할 일이 없어요. 사과문도 작성했을 리 없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부 변호사님 이거 주혜민의 뜻 아니죠?”차우미는 확고한 눈빛으로 확신하며 말했다.부민준도 그런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 의뢰인은 사과하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어제 차우미 씨가 돌아온 뒤 제가 의뢰인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제 의뢰인은 이 일을 이렇게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차우미 씨께서 일부러 일 처리를 미룬 거라 생각하시거든요. 이 부분은 제 의뢰인이 확실히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차우미 씨에게 사실대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차우미 씨께서 너무 기분 나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주혜민 씨가 저를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해도 합니다. 그러면 오늘 사과문은?”부민준이 대답했다.“제 의뢰인이 아닌 주영 그룹에서 보낸 사과문입니다. 저는 주영 그룹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변호사 중 한 명입니다. 제 의뢰인이 차우미 씨 사건에 대해 말했을 때 저는 바로 달려와서 처리하고 싶었지만 제 의뢰인과 차우미 씨가 오해가 있어서 처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상사한테 어제 상세하게 보고를 했더니 상사가 주영 그룹 임원에게 보고했
차우미는 대기업에서 출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대기업 형세를 잘 모르고 있었다. 주영 그룹 상황도 잘 알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네, 사과받을게요. 하지만 2천만 원은 받지 않겠습니다.”주영 그룹이 주혜민을 대표하여 성의껏 사과를 표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다만 그녀는 진심 이외의 것은 원하지 않았다.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했으니 차우미는 그들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사과를 받아줬다.“이 이천만 원은 그날 밤 주혜민 씨가 차우미 씨에게 입힌 정신적 손해 보상금입니다. 우리 주영 그룹에서 차우미 씨에게 주는 보상금이니까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세요.”부민준이 예상했던 것처럼 차우미는 거절했다. 부민준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차우미는 사리에 밝고 도리를 따지는 사람이었다.차우미가 거절을 한다고 해도 2천만 원은 차우미에게 줘야 했다.차우미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주혜민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지만 주혜민을 대신해서 보낸 주영 그룹 사과는 받을게요. 하지만 2천만 원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죠.”말을 마친 차우미는 이영진을 바라봤다.사과문을 다 보고 난 이영진도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이 일을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이영진은 차우미를 바라본 뒤 부민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부 변호사님,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2천만 원은 받지 않겠습니다. 제 의뢰인께서 사과를 받아 들인 하고 하니 이 일은 이쯤에서 아름답게 마무리 짓죠.”이영진을 바라보고 있던 부민준의 시선이 차우미에게로 향했다.“차우미 씨, 상사분께서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무조건 드리라고 하셔서 제가 제 상사랑 잠시 통화를 해도 괜찮을까요?”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부민준은 핸드폰을 들고 걸어 나갔다. 부민준이 걸어 나가는 것을 본 이영진이 차우미에게 말했다.“사과문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위에 주영 그룹 주 회장님의 도장도 찍혀있고요. 주영 그룹
경찰서를 빠져나온 차우미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차우미가 떠나자 어쩔 방법이 없어진 부민준은 다시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한 뒤 이영진 변호사와 함께 뒤 일을 마무리 지었다.반 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둘은 차우미의 말대로 일 처리를 끝마쳤다. 양쪽 모두 만족해했다.이영진 변호사와 부민준 변호사는 악수한 뒤 헤어졌다.부민준이 차에 올라탄 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이 울렸다.꺼내 보니 주혜민이었다.주혜민이라고 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을 본 부민준은 몇 초 지나서 전화를 받았다.“네, 주혜민 씨.”“너 지금 어디야?”“저 지금 경찰서에서 나와 금방 차에 올라탔습니다.”“지금 당장 차에서 내려!”명령조로 말하는 주혜민의 말투에 부민준이 일 초 정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네.”부민준이 차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승용차 한 대가 부민준 앞에 멈춰 섰고 킬힐을 신은 주혜민이 차에서 내려 그를 향해 걸어갔다.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징조였다.부민준은 씩씩거리며 걸어보는 주혜민을 향해 걸어갔다. 주혜민 앞에 다다르자 주혜민이 손을 휘둘렀다.“짝!” 하는 소리와 함께 주혜민의 손이 부민준의 얼굴에 떨어졌고 부민준의 고개가 돌아갔다.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주혜민은 아주 세게 그의 뺨을 때렸다.“누가 너보고 이렇게 하라고 했어? 내가 미루라고 말했지? 왜 내 말대로 하지 않았냐고! 너 귀먹었어? 네 월급 누가 주는데? 너 이 사건 당장 다시 처리해! 차우미가 신고할 수 있으면 날 신고하라고 해.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고!”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부민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부민준은 고개를 돌려 주혜민을 바라봤다. 예쁘장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져있었다.부민준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주혜민 씨, 저는 주 회장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제 일 처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주 회장님께 전화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 회장님께서 다시 처리하라고 하시면 다시 처리하겠습니다.”“너!”주혜민의 눈이 분노로 새빨개졌
“주혜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고대의 군주야? 아님 왕실 귀족이야?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어.”진현의 날카로운 말을 들은 주혜민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무섭게 변했다.그녀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술도 파르르 떨었다.주혜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진현의 따귀를 때렸다.“짝!”진현은 움직이지 않았고 주혜민은 다시 손을 들어 그를 때렸다.“짝!”진현은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분노가 풀리지 않은 주혜민은 미친 듯이 진현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진현, 네가 뭔데? 너 따위가 뭔데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어?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넌 신경 쓰지 마. 네가 신경 쓸 일도 아니잖아! 미워, 너 미워!”“...”주혜민이 자신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을 진현은 막지 않았다. 바보...그는 바보였다.바보 같은 그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주혜민과 한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다....이영진은 차에 오른 뒤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어 잘 처리됐다고 말해줬다. 그는 통화를 끝낸 뒤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 그는 백미러를 통해 의외의 장면을 보게 됐다.부민준 변호사가 뺨을 맞고 있었다.이 장면을 본 이영진은 깜짝 놀랐다.부민준을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 그는 그제야 의아함이 조금씩 사라졌다.부민준을 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주혜민이었다.만약 이번에 주영 그룹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일 처리를 하지 못했을 거다.백미러로 화를 내고 있는 주혜민을 보며 이영진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두고 차를 몰고 떠났다.주혜민이 일 처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바꾸는 걸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이 되었다.주혜민이 계속 고집을 피운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이영진의 차는 경찰서를 벗어나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호텔로 돌아가는 길.차우미가 탄 택시는 도로에서 안전운행 중이었다. 창밖의 풍경들이 빠
차우미는 회성의 특산물을 사서 선배네 가족들에게 보내주려 했지만 오늘은 시간이 안 될 것 같았다. 오늘 오전에 업무를 보지 않아 오후에 업무를 봐야 했다. 그녀는 저녁에 노트에 잘 정리해 놓은 뒤 내일 일이 끝나는 대로 내일 저녁 늦게 사러 가려 했다.저녁에는 시간이 많으니까 말이다.김온과 김온이 했던 말이 떠오른 차우미는 핸드폰을 들어 일이 잘 처리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문자를 보내고 난 뒤 차우미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앞에 있는 건물들을 바라봤다. 십여 분 정도 지나서 도착할 것 같았다.영소시.김온은 외할머니댁으로 돌아가서 짐들을 챙겼다. 진문숙은 영소 특산물을 사서 바로 안성으로 보냈다.김온도 자기 엄마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막지 않고 진문숙과 함께 짐들을 챙겼다.짐 정리를 마친 뒤 진문숙은 김온을 방에 들여보냈다. 밥이 다 되면 부르겠다며 한숨 자두라며 말이다.김온은 졸리지 않았다. 그는 차우미가 생각났다. 그는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어 일은 잘 처리되었는지 물어보려 했다.진문숙은 김온을 방에 들여 보낸 뒤 재빨리 문을 닫았다.김온은 멀어져가는 진문숙의 발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한 뒤 연락처 목록을 열고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 “띠링.” 하는 핸드폰 소리와 함께 문자 한 통이 날라왔다.그는 멈칫하며 문자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차우미가 보내온 문자였다.[선배, 일은 잘 해결됐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짧은 문자에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차우미는 김온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김온의 눈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는 바로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차우미가 업무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주춤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김온이였다.차우미의 눈썹이 휘어졌다.“선배.”“일은 잘 처리됐어? 주혜민이 난처하게 굴지는 않았어?”“응. 잘 처리됐어.”차우미가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이 변호
두 사람 모두 웃음을 지었다.“참, 난 오늘 안평으로 돌아가. 넌 언제쯤 오는데? 언제쯤 오는지 미리 말해주면 네가 밥 사주는 시간에 맞춰 시간 빼놓을게.”그녀를 데리러 가겠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도 거절했을 거기에 그는 이렇게 돌려 말했다.차우미가 입을 열었다.“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아마 요 며칠 사이에 돌아갈 거야. 안평에 도착하면 그때 말할게.”“알았어.”눈앞에 호텔을 보고 차우미가 말했다.“선배, 나 호텔에 거의 다 왔어. 시간 있으면 또 통화하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문자 보내도 되고. 내가 바쁘면 바로 대답을 못 하겠지만 문자 보는 대로 꼭 대답할게.”김온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래, 알았어. 연락할게.”그의 말을 들은 차우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응, 알았어.”통화를 마친 차우미는 평온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차우미는 안평으로 돌아가는 날 김온에게 연락하면 김온이 마중 나올 게 뻔했기에 말하지 않고 안평에 돌아간 뒤 김온에게 전화해 약속을 잡을 생각이었다.그녀는 김온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김온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는 호텔 앞에 도착했다. 차우미는 돈을 지급하고 택시에서 내린 뒤 바로 호텔로 들어갔다.차우미와 통화를 마친 김온은 핸드폰을 치웠다. 그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그는 차우미와의 거리가 좁혀진걸 느낄 수 있었다.이건 좋은 일이었다.김온은 마음속으로 차우미가 빨리 자신을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래도 차우미가 원하는 대로 그녀에게 천천히 맞춰주며 다가갔다.그는 그녀를 존중해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줄 생각이었다.핸드폰을 들고 어두워져 가는 화면을 바라보는 김온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그가 원하는 건 많지 않았다. 소소한 거라도 좋았다.문득 차우미의 말이 생각 난 김온은 웃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고 이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떻게 처리됐는지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다.이 일이 보기보다 간
누가 정리라도 해 놓은 것처럼 드레스룸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차우미는 어젯밤 캐리어를 보았던 곳을 바라보았다.그 자리에 있었던 나상준의 캐리어가 보이지 않았다.나상준이 가져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잘못 봤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캐리어가 없는 것을 보고는 한시름 놨다.삐었던 발도 나아졌고 감기도 나아졌기에 나상준이 더는 이곳에 머무른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차우미는 한 시름 놓으며 드레스룸을 빠져나갔다.드레스룸을 빠져나간 그녀는 건드린 흔적이 없는 상위의 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나상준이 약을 먹지 않은 것을 본 차우미는 한참 생각하다 방을 나섰다.그가 바빠서 약을 먹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아픈 걸 몰라서 먹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차우미는 그가 왜 약을 먹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차우미는 조금 뒤 회의를 할 때 나상준이 회의에 참여한다면 나상준을 한번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만약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저녁을 함께 먹게 될 수도 있었기에 그때 봐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렇지만 만약 오늘 볼 수 없다면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그도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었기에 자신의 몸은 스스로 보살필 수 있었다.지금 차우미와 나상준의 관계로 봤을 때 차우미가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았다.차우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회의실로 향했다.회의실에서 모두가 회의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진정국이 입을 열었다.“차우미가 왔나 보구나.”어젯밤 차우미는 나상준에 의해 병원에 입원했다. 나상준은 아침 일찍 하성우에게 전화를 걸어 차우미의 휴가를 신청한 후 하성우 집 도우미들에게 말해 담백한 아침을 준비하여 병원에 보내라고 했다.그래서 다들 차우미가 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에 모두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자리에서 하 교수가 차우미에게서 전화는 없었는지 몸은 어떤지 진정국에게 물었다.마침 하 교수가 묻기 전에 차우미가 진정국에 전화를 했었다. 그래서 진정국은 하 교수에게 차우미
회의는 계속됐다.차우미는 다이어리를 펼치고 볼펜을 든 채 사람들의 말을 열심히 적어 내려갔다.차우미는 맞은 편을 바라봤다. 빈자리는 없었지만 하성우와 나상준은 보이지 않았다.바쁜 일을 처리하러 간 듯했다.차우미는 놀랍지도 않았고 의아하지도 않았다.그녀는 매일 매일 그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비가서 시간을 일깨워주자 하 교수가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내일 다시 이어서 토론하자고.”요 두 날째 모두 한편으로 토론을 하며 한편으론 자료를 찾았다. 하 교수는 자신이 찾은 자료를 사람들에게 보내 준 뒤 찾은 자료에 상응하는 이야기와 전설 및 기록을 찾으라고 했다. 진도가 느렸기에 짧은 시간 내에 확정할 수 없었다.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을 정리한 뒤 하 교수의 뒤를 따라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차우미가 여전히 걱정되었던 하 교수는 회의가 끝난 후 차우미에게 물었다.“우미야,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있으면 나한테 말해. 혼자 끙끙대지 말고.”하 교수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차우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저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차우미는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하 교수를 속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하 교수는 혈색이 어제와 똑같은 차우미의 볼그레한 볼을 보고는 안심하며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그래, 그럼 시름 놓으마.”“그런데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야 한다. 어디 불편한 곳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얘기해.”“네가 회성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병원에도 여러 번 갔잖아. 내가 너의 가족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하 교수는 차우미를 오라고 한 것을 자책했다.차우미가 회성에 온 뒤로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불편했다.차우미는 하 교수의 자책하는 말을 듣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교수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예요. 제가 건강하지 못해서 그래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세요.”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