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꼬마인 예은이에게는 자유롭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스마트워치가 있었다. 아이는 가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스마트 워치로 전화를 걸고는 했다.차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그래, 예은아.”“큰엄마!”앳된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우미는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예은이 밥 먹었어?”4월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점차 따뜻해졌다. 이곳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봄의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라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예은이는 서혜지, 이혜정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나상준과 나준우도 있었다.그들은 앞에서 걷고 서혜지와 예은이는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지자 서혜지는 저도 모르게 시할머니의 옆에 있는 나상준에게 시선이 갔다.4월의 가족모임에 차우미는 오지 않았다.결혼하고 지금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던 그녀였다.그런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나상준은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가족이지만 각자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도 있을 수 있는 법이기에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이혜정 여사도 답답했지만 마찬가지였다.어린 예은이는 차우미가 보이지 않자 나상준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물었다. 나상준은 그저 일이 있어서 못 온 거라고 대답했다.하지만 어른들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어린 예은이는 속아넘어갔지만 그들은 아니었다.예은이는 차우미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다행히 시할머니도, 나상준 본인도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기에 서혜지는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서혜지는 차우미가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어린 예은이는 그냥 목소리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뻐서 방방 뛰었다.“큰엄마, 너무 보고
나상준이 걸음을 멈추었다.그와 차우미는 거의 통화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가 바쁘다는 걸 알기에 무슨 일이 생겨도 그녀는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었다.그 역시 용건 없이는 그녀를 찾지 않았고 출장이 잦았기에 그들 사이에는 최소한의 소통도 별로 없었다.같이 3년을 살았지만 그는 차우미에게 별다른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그날 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부드러웠다는 것도 그때 처음 느꼈다.그녀는 그가 아는 다른 여자들과 조금 달랐다.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그녀의 목소리는 그와 평소에 대화하던 톤과 많이 달랐다.어딘가 생기가 넘치면서도 달콤한 목소리였다.마지막 날 차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한창 집중하고 있던 찰나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전해졌다.그 목소리에서 그녀를 향한 걱정과 애정이 느껴졌다.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그런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예은의 손에 있는 스마트워치를 노려보았다. 꽃이 만개하던 날 출장 갔다온 자신을 기다리던 그날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창가에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저도 모르게 가슴이 욱신거렸다.그날도 그랬었다.주변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예은이마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독 이혜정 여사만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계속해서 걸었다.예은이는 큰 눈을 깜빡이며 큰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다가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큰엄마, 지금 누구랑 있어요? 어떤 아저씨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누구예요?”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귀에 전해지자 가족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온이샘의 품에 안긴 차우미도 인상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의 가슴에 코를 부딪히면서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다.온이샘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
집으로 돌아온 예은이는 어른들과 인형놀이를 시작했다. 서혜지는 그 틈을 타서 나준우를 끌고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이게 무슨 상황이죠? 당신 다 들었죠? 아주버님 긴장 좀 하셔야겠는데요?”서혜지는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나준우는 아내의 생각을 눈치채고 인상을 찌푸렸다.“당신 상준이 형이랑 형수님 일에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아?”“내가… 그랬나요?”서혜지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과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냥 아주버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사람 좋고 성격이 좀 까칠하지만 그래도 딴짓하는 게 아니라 일에 몰두하는 느낌이고. 아내로서는 참 걱정할 게 없고 든든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하지만 형님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형님은 아주버님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아주버님은 너무 싸늘하시잖아요. 형님이 많이 서운했을 것 같아요.”“예전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사실 모든 부부가 우리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아까 남자 목소리를 듣고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상대가 형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꼈거든요.”“그래서 상준 아주버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아내인데 누군가가 그런 아내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느낌일지.”“어쨌든 아주버님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여자 때문에 흔들리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야 하나?”뒤로 가면서 점점 주제 넘은 그녀의 발언에 나준우는 살짝 언짢았다.그는 아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게 안 느껴지나?부부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었다는 건 두 사람의 신뢰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는 걱정됐다.부부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차우미와 나상준을 걱정했다.그 시각, 서재.원목 자재의 책장이 줄 지어선 서재는 호화로우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박물관 동료들과 사이가 아주 좋았기에 차우미는 쉽게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들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작업실 동료들은 거의 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라 차우미를 딸처럼 각별히 아꼈다.게다가 평소에 그들이 일이 있다고 했을 때 차우미도 흔쾌히 당직을 서주었기에 그들도 그녀 대신 당직을 서는 일이 당연하다고 말했다.온이샘은 다음 주 주말에 보자고 연락이 왔다.차우미도 동료들과 합의를 마쳤고 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 주 토요일에 근교에 있는 구현으로 가보기로 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금요일이 되었다.차우미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고 아버지도 일찍 퇴근했다.공방은 열 시까지 운영하지만 따로 파트타임 직원을 썼기에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부지런한 아버지는 밥만 드시고 공방으로 돌아가고는 했다.그녀의 아버지 차동수는 이 일을 무척 사랑했다. 몇십 년을 공방에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게 일상이지만 전혀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차우미는 그의 그런 우직한 성격을 닮았다.“어쩜 부녀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시간에 들어오니? 내가 저녁을 조금 늦게 준비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하선주가 반찬을 테이블에 올리며 말했다. 차동수와 차우미는 손만 씻고 주방으로 가서 그녀를 거들었다.잠시 후, 가족들은 오붓하게 식탁에 모여앉았다.“우미야, 내일 친구랑 몇 시에 나갈 거야? 엄마가 아침 준비할 테니까 그 친구한테 와서 아침 먹고 출발하라고 해.”차우미는 부모님에게 주말에 온이샘을 도와 근교에 다녀오겠다고 이미 얘기한 바 있었다.부모는 그 말을 듣고 흔쾌히 찬성했다. 어차피 딸만 원한다면 그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그들은 딸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내릴 거라고 믿었다.차우미는 생각없이 일 저지르는 타입은 아니었다.그녀는 된장찌개를 한술 뜨며 대답했다.“아침 일곱 시에 출발하기로 했어. 차 막히기 전에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안평은 꽤 큰 도시였지만 많은
그런데 갑자기 이런 친구가 나타나 주니 두 사람은 딸을 밀어주고 싶었다.그리고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고 판단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차동수가 말했다.“엄마 말이 맞아. 여기까지 왔는데 아침도 안 먹이고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차우미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이따가 문자해서 물어볼게.”그녀는 부모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미 돕기로 했으면 사소한 부분에도 신경 쓰는 게 당연했다.그녀의 말을 듣고 하선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참 속이기 쉬운 단순한 아이였다.식사가 끝난 뒤, 차우미가 설거지를 돕겠다고 했지만 하선주는 빨리 친구한테 문자나 해보라며 그녀를 주방에서 밀어냈다.차동수도 맞장구를 치며 주방 일은 자기가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차우미는 두 분의 정성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가서 온이샘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녀는 교수인 온이샘이 언제 바쁘고 언제 한가한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문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상준과 살 때도 통화보다는 문자를 선호하기도 했다.그녀는 문자를 보낸 뒤, 방으로 가서 내일 입고 갈 옷을 정리했다.그 시각 온이샘은 강의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하루 종일 논문을 수정하고 강의를 하느라 아직 저녁도 먹기 전이었다.진동음이 울리자 그는 곧바로 걸음을 멈추었다.[선배, 지금 바빠?]그의 입가에 저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그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그 시각 차우미는 온이샘이 바쁠 거라 생각하고 침실에서 옷장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는 한참 정리가 끝난 뒤에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온이샘에게서 문자가 두 개나 도착해 있었다.[안 바빠.][통화 괜찮아?]두 문자 사이에 시간 간격이 조금 있었던 거로 보아 그녀의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차우미는 30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을 확인하고 미안한 마음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미안해, 선배. 옷장 좀 정리하느라 문자 못 봤어. 지금 시간 괜찮아? 내가 전화 걸게.]
온이샘은 혹시라도 운전 중에 그녀에게서 답장이 올까 봐 줄곧 차에서 기다렸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차우미에게서 답장이 오자 그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나긋나긋하고 진지한 물음에 그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집으로 오라고?’누군가를 좋아하면 당연히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법이다.당연히 그도 조만간 그녀의 가족을 만나야 한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그녀의 가족을 만나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는 잠시...... 어쩔 바를 몰랐다.온이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이런 고요함은 차우미에게 한 가지 문제를 깨닫게 했다. 이렇게 갑자기 친구를 집에 부르면 친구는 반드시 불편해할 것이라는 걸.누구나 다 여가현처럼 친구의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선배, 미안해. 내가 너무 갑작스러웠지? 마음에 두지 마.”“아니, 그게 아니라. 아침 식사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자.”온이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그제야 차우미는 한시름 놓았다.“그래, 그럼 일 봐. 내일 아침 거의 도착한다 싶으면 문자줘. 내가 내려갈게.”“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차우미는 내일 아침 시간을 대략 계산하더니 부모님께 온이샘이 내일 아침 식사하러 올 거라고 말씀 드렸다.그 말에 부모님은 너무 기뻐 내일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온이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하지만 차우미는 온이샘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지 못했다. 하여 그녀는 다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가리는 건 없는지.같은 시각, 차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하던 온이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그녀의 집으로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하지만 무엇을 사야 할지, 어떻게 사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직면한 적 없었기 때문이다.곰곰이
차우미가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7시가 훌쩍 넘었다.여가현이 가장 바쁜 시간이다.그녀는 자주 야근을 했으며 밤을 새우는 것이 다반사인데 모처럼 이 시간에 그녀에게 영상 통화를 보냈다.영상 통화를 받자마자 머리를 박고 컵라면을 먹고 있는 여가현의 모습이 보였다.차우미는 관심조로 말했다.“너 또 컵라면이야? 몸에 안 좋다니까. 너 밥 해먹을 시간 없으면 차라리 밀키트라도 사 둬. 데우면 먹을 수 있을 거 아니야.”여가현에게 돈은 생명이다.목숨과 돈 중에, 그녀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돈을 선택할 것이다.여가현은 컵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대꾸했다.“내 걱정은 하지 마! 지금 네가 제일 중요해. 너 어때? 선은 봤어? 두 번째 봄은 언제 오는 거야? 너 상준 씨랑 이혼한지 한 달 넘었지? 이젠 두 번째 봄이 슬슬 와야 해.”“나 있잖아, 반드시 그 사람보다 더 좋은 남자 만나서 아주 본때를 보여줄 거야! 소중함도 모르는 멍청한 자식!”차우미가 이혼하고 여가현은 늘 그녀에게 선을 보고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하라고 다그쳤고 매번 두 사람의 대화에는 이 화제가 떠나지 않을 정도이다.심지어 그녀에게 이혼서류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고 두 번째 봄을 맞으면 다시 다른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라고 했다.차우미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 또한 그녀의 관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가현은 그녀가 실패한 결혼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여가현은 목소리가 아주 높다. 차우미는 혹시라도 부모님이 그들의 통화를 들을까 봐 이어폰을 귀에 끼고 말했다.“너 안 바빠? 이 시간에 어떻게 내 생각이 났대?”여가현에게는 화제를 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하! 내가 안 바쁠 리가 있겠어?”여가현은 책상에서 서류 뭉치를 들어 카메라 앞으로 가져다 댔다. 서류 뭉치를 본 차우미는 걱정되는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너 또 밤 새우려고?”“당연하지! 난 부자가 될 거야!”여가현은 하루 빨리 많은 돈을 모아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꿈
“선배 이게 다 뭐야?”한가득 꺼내는 선물 꾸러미를 보고 차우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침을 먹으라고 했을 뿐인데 온이샘은 이렇게 많은 선물을 가져왔다. 비록 차우미도 온이샘의 예의를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온이샘의 양손 가득 들린 선물은 아무리 봐도 단순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차우미와 눈이 마주친 온이샘은 그제야 자기의 목적성이 너무 강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급히 말했다.“아저씨, 아주머니가 뭐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여러 가지 사봤어. 좋아하실지 모르겠다.”차우미는 온이샘처럼 고작 아침 식사 한 끼에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은 처음 봤다. 뭐라고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선배 왜 이렇게 많이 사 왔어.”“하하, 아니야. 무엇보다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한데 미안해서 그러지.”차우미도 온이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더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그만 올라가자.”“그럴까.”두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갔다.위층 베란다. 하선주와 차동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특히 하선주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역시.”차동수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는 애써 웃음을 절제하며 말했다.“애들 올라오니까 빨리 준비하자고.”“그래.”차우미는 온이샘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고, 인기척에 차동수와 하선주는 주방에서 즉시 나왔다.온이샘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고 차우미는 부모님에게 온이샘을 소개해 주었다. 이내 집안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 퍼졌다.“이샘 씨, 왜 이렇게 많이 사 들고 왔어? 미안하게.”“당연히 그래야죠.”“그건 아니지. 이샘 씨는 우리 우미 친구니까 내 집처럼 생각해도 좋아. 다음에는 이런 거 사 들고 오지 마.”“하하, 아니에요. 작은 성의예요. 두 분이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그럼, 좋아하고 말고. 젊은 사람들은 안목이 뛰어나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차우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알았어요.”가정부는 거실의 유선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주혜민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주 사장님, 사모님은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에 돌아올 수 없다고 해요.”주혜민은 눈 밑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많이 바쁘시군요. 오늘은 제가 사전에 약속하지 않고 왔으니 방법이 없죠. 다음에는 사전에 약속을 잡고 다시 올게요.”말하면서 주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가정부가 고개를 끄덕였다.주혜민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가방을 들고 가정부에게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별정을 빠져나가 가정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정부는 계단에 서 있다가 차가 보이지 않자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다시 거실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문지영의 담담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리자, 가정부가 말했다.“사모님, 주 사장은 갔어요.”“알았어. 다음에 또 오면 나한테 전화할 필요 없이 그냥 내가 없다고 해.”“네, 알겠습니다.”문지영은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서혜란은 문지영이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누구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거야?”서혜란은 최근에 늘 문지영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가끔은 그럼 전시회로 가고 또 가끔은 연극, 뮤지컬을 보고 또 SPA 하러도 다녔다.그야말로 엄청나게 가깝게 지냈다.오늘 문지영과 서혜란은 어느 브랜드사의 요청을 받고 자선 만찬에 참석했는데 오늘 밤 경매의 수익금은 모두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 교육을 위해 기부될 거라고 한다.기부에 참여하기 위해 문지영과 서혜란은 각각 물품 두 개씩 샀다.이제 경매가 끝나 두 사람은 연회장의 소파에 앉아서 디저트를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이 전화 받을 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문지영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
나예은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두 눈도 깜빡거렸다.“말하지 말라고? 왜? 그런데 예은이는 분명 큰아빠가 큰엄마를 무릎에 앉힌 걸 봤어. 그리고 큰엄마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어.”나예은은 손으로 흉내까지 내면서 서혜지에게 그때 상황을 재연하려고 했다.“...”서혜지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나예은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서혜지는 자기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부끄러워하는 것도 아나 싶었다.나예은은 서혜지가 자기를 믿지 않으니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심지어 나상준이 차우미를 보며 했던 행동과 말까지 모두 표현했다.서혜지는 나예은의 다채로운 연기를 듣고 지켜보며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는 모습에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서혜지는 분명 자신의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나예은이 어린 나이에 알면 안 되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반성했다.하지만 나예은이 이틀 동안 나상준과 차우미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듣고는 100% 나상준이 차우미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다고 확신했다.그렇다, 지금 나상준은 자신의 사업을 대하듯 진지했는데 심지어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그녀는 나상준이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 확실하고 신속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의 행동이 또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나상준은 차우미를 원하고 있고 차우미는 절대로 나상준의 공세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이제 남은 건 시간뿐이다.서혜지는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나예은의 눈을 보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예은아, 오늘 엄마한테 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그리고 큰아빠와 큰엄마 함께 놀았다는 것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이건 예은이와 엄마, 아빠, 그리고 큰아빠, 큰엄마와의 비밀이야. 알겠지?”“왜? 왜 그래야 하는데?”나예은은 왜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왜냐하면...”서혜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
비행기는 정확하게 6시 5분에 출발했다.휴대폰을 끄기 전에 차우미는 하선주에게 비행기가 곧 이륙할 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비행기가 이륙해서 하늘에 높이 솟아오르자, 밤을 맞은 청주시는 아주 작게 변했고 차우미는 눈을 감았다.한잠을 자고 나면 집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나상준은 옆에 앉아서 창문 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고요히 잠이 든 차우미를 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본인도 눈을 감았다.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비행기 내에도 밤을 맞이했다....유엔 빌리지.청주시는 밤을 맞이하여 불빛들이 밝아졌다.서혜지와 나예은은 저녁 식사 후 산책하러 나갔다.나준우가 오늘은 너무 바빠서 저녁식사를 함께 못해서 서혜지는 송 할머니더러 나준우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워낙 서혜지가 직접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나예은과 놀고 싶고 또 나상준과 차우미의 상황을 알아볼 생각이었다.때문에 예전처럼 나예은과 같이 직접 나준우에게 저녁밥을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 나예은과 둘이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러 나왔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예은아, 지난 주말에 큰아빠, 큰엄마와 같이 놀 때 큰아빠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어?”사실 진작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젯밤에 나예은을 데리러 갔을 때 이미 곤히 자고 있어서 하지 못했다.그리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야 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서 하교하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또 나상준과 차우미와 전화를 한 내용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느라 이제야 주말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게 되었다.나예은은 나상준이 나중에 또 같이 놀아준다는 얘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퐁퐁 뛰면서 노래도 부르고 나비처럼 춤도 췄다.서혜지의 질문을 듣고 나예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있어. 큰아빠는 예은이와 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어.”서혜지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다고? 예은아, 큰아빠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야.”나상준은 나씨 가문 사람 중에서 이혜정보다도 말이 더 없었다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
“예은이가 안평에 가본 적이 없어서 여름 방학이 되면 안평으로 놀러 갈 생각이야. 그런데 안평은 나도 잘 몰라.”나상준이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차우미는 나예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조금 전에 그녀는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나상준의 말에 차우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나상준은 안평 사람이 아닌 청주 사람이고 또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에 안평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는 청주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 오래 있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나예은과 같이 놀려면 어느 도시든 모두 가능한데 왜 하필 안평으로 가려고 하고 또 차우미까지 함께 하자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사실 차우미는 그들과 놀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다.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차우미는 워낙 회성에서 일을 끝내고 또 나예은과의 약속을 이행한 다음에는 나상준과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언제면 가능할지 막막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나상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지켜보다가 말했다.“지금부터 서두를 거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여유를 주자, 차우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우미를 보고 있던 시선도 거두고는 휴대폰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직 예은이의 여름 방학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고는 하지만 나 이번에 회성에서의 일이 금방 끝났고 또 휴가까지 썼기에 앞으로는 매우 바쁠 거여서 그때는 시간이 안 돼. 정말로 예은이와 같이 안평으로 가게 되면 내가 전문 투어 가이드를 소개해 줄 거니까 예은이와 같이 놀러 다녀.”비록 나상준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차우미는 아예 지금 미
차우미는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나상준이 통화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거두고 원래 앉았던 1인 소파에 앉았다.나상준은 시종일관 차분한 차우미의 표정을 보다가 별다른 생각없이 말했다.“그래, 큰아빠 시간이 될 때 전화할게.”“네, 알겠어요. 큰아빠 전화 기다릴게요.”나예은은 나상준과 차우미와 함께 놀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기에 나상준의 말을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지만 업무상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나예은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다가 나상준의 입에서 큰아빠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큰엄마도 같이 있는데 얘기할래?”나예은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큰엄마와 같이 계세요?”사실 예전에 나예은은 나상준이 아닌 차우미에게만 계속 전화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같이 지낸 보람으로 처음 차우미가 아닌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다.때마침 나상준이 차우미와 함께 있다고 하니 나예은 순식간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옆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예상치 못한 일에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나상준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격동의 앳된 목소리를 듣고 차우미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말했다.“응, 같이 있어. 전화 바꿔줄게.”“네.”나상준이 휴대폰을 차우미에게 건넸는데, 그녀가 아직 놀라 있을 때 휴대폰이 눈앞에 왔다.차우미는 잠깐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휴대폰은 나상준의 체온이 담겨 있는 듯 따뜻했다.“예은아.”“큰엄마, 깜짝 놀랐죠. 예은이 이번에는 큰아빠에게 전화했어요. 하하하...”차우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예은은 어찌나 기뻤는지 호탕하게 웃었다.나예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예은도 같이 웃었다.“그래, 큰엄마도 깜짝 놀랐어.”나예은과의 약속한 일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차우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
차우미는 잠깐 멈칫하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했다.휴대폰 화면에 신규 메시지가 뜨자 차우미는 하선주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는 온이샘이었다.그녀는 메시지를 클릭했다.[우미야, 탑승하면 나에게 메시지 보내줄 수 있어?]차우미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알았어.]그러자 온이샘으로부터 또 잽싸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이 왔다.차우미는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대기실에서 온이샘이 휴대폰으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달력을 한참 동안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어떤 일은 애매모호하면 안 되고 정확해야 했기에 안평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시간을 내서 온이샘과 만나 확실하게 얘기할 생각이었다.라운지 휴식 구에서 나상준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줄곧 라운지 밖의 복도를 바라보며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했다.“아주버님, 지금 바빠요?”서혜지의 목소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조금은 긴장하고 조심스러웠다.나상준이 말했다.“무슨 일이에요?”그는 바쁜가 하는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부터 물었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서 다를 모양이다.그러자 서혜지가 서둘러 말했다.“다른 건 아니고요. 지금 예은이를 픽업했는데 예은이가 아주버님과 할 얘기가 있대요. 혹시 바쁘신데 폐를 끼치는 거 아닐까 해서 문의드리는 거예요.”나상준이 말했다.“안 바빠요.”서혜지는 예상했던 대답인 듯 즉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예은이 바꿀게요.”“그래요.”나예은은 아주 조용하게 베이비시트에 앉아 있었는데 커다란 두 눈을 굴리면서 서혜지를 바라보며 나상준과 통화시켜 주기를 기다렸다.나예은은 나상준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서혜지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서혜지가 자기를 바꿔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예은은 기쁜 나머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서혜지 쪽으로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받으려고 했다.서혜지는 조급해하는 나예은의 표정에 미소를 지
하선주는 이제 차우미 옆자리에는 온이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온이샘은 하선주에게 특히 좋은 인상을 남겨서 온이샘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좋아했다.차우미는 워낙 하선주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하선주가 눈치채자,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하려고 했다.그런데 하선주가 갑자기 온이샘을 얘기할 줄은 몰랐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배가 아니라 상준 씨랑 같이 가.”“나상준?”하선주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맑은 하늘에 먹장구름이 낀 것 같았다.“나상준은 왜 너와 같이 있어? 둘이 뭘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안평으로 오는 거야? 나씨 가문에 무슨 일 있어?”하선주의 불만이 섞인 말투와 함께 질문들이 쏟아졌다.나상준과 온이샘에 대한 하선주의 태도는 하늘과 땅이었다.이런 하선주의 반응을 차우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뵈러 오는 거야.”“...”표정이 굳어진 하선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우미의 말 한 마디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분명 나씨 가문의 이혜정이 나상준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나씨 가문 이혜정의 일 처리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비교할 수도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선주는 마음이 불쾌했다.차우미는 하선주가 비록 말하지 않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이라도 상준 씨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오는 건 정상적인 일이야. 그러니 화내지 마.”“내가 왜 화를 내? 그리고 화를 낼 필요도 없어. 그냥 안 보면 되지.”하선주가 불쾌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걸 듣고 차우미는 웃었다.“엄마,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우리 이혼한 지도 벌써 몇 달 지났잖아. 상준 씨도 나도 이제 모두 각자의 삶이 있으니 두 가문은 예전대로 서로 왕래하면서 지내면 돼.”차우미의 아무렇지 않아하는 말을 듣고 있던 하선주는 순간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어렸을 때부터 말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