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지 5개월째, 함께 산전검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남편 한지용은 전화를 받더니 나를 버리고 임신한 지 8개월째에 이혼 준비 중인 그의 첫사랑을 만나러 갔다.의사는 어안이 벙벙하여 지용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나를 떠보았다. 그리고 난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전 혼자서도 됩니다.” 지용이 무엇을 하고 있던 시우의 연락이면 그는 항상 달려가곤 했다. 어차피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시우는 지용이 나를 위해 특별히 골라주었던 쿠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남편 지용은 시우에게 사과를 먹여주고 있었다.내가 돌아온 것을 발견한 지용은 마치 무엇에 데인 것처럼 바로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얼른 마중 나와 내 허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왜 벌써 돌아온 거야? 의사가 진찰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난 지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진찰 끝났어. 전화 걸었는데 당신이 한 통도 안 받은 거야.” 순간 지용은 잠시 멈칫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시우가 핸드폰이 시끄럽다고 해서 무음으로 설정해 뒀어.” 난 눈을 떨구고 알겠다고 했다. 혼자 시내에서 돌아오니 너무 피곤했던 난 지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우가 갑자기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위선적으로 물었다. “다은 씨, 혹시 화난 거예요?” 난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왜 화가 나죠? 설마 당신이 저에게 미안할 짓이라도 한 건가요?” 이에 시우가 대답할 틈도 없이 지용이 끼어들어 호통을 치며 내 말을 끊었다. “닥쳐! 너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편 시우는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아마 임신 중이라 화가 많아진 것일 거야. 난 곧 출산 임박이라 이해할 수 있어.” 시우는 매우 억울해 보였다. 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자 지용이 위로했다. “내가 있으니
지용은 다시 시우를 데려왔고 그녀를 곧 태어날 내 아이의 방에 안배했다. 난 지용이 바쁘게 돌아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또다시 메스꺼워졌다. 밤이 되어 지용이 마침내 돌아왔다. 지용은 부드럽게 뒤에서 나를 껴안았고 말투에는 다소 미안함이 묻어났다. “오전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응? 아이한테 안 좋아.” 난 미간을 찌푸리고 토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아마 내가 계속 말이 없자 지용이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하다. 지용은 얼른 나를 돌려세웠는데 창백한 내 얼굴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은아?!” 지용을 바라보니 난 더 이상 헛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지용은 끊임없이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 아파했다. “줄곧 입덧이 없더니 왜 갑자기?” 지용은 나를 어루만졌고 눈에 서렸던 긴장은 곧 진짜로 변했다. 그랬다, 전에 나는 입덧을 크게 하지 않았다. 난 마치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고 오히려 지용이 항상 몸이 불편하고 헛구역질까지 했으며 한 번 토하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지용에게 무슨 병이라도 난 걸까 두려워 억지로 그를 병원에 끌고 갔지만 의사는 웃으며 지용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해줬다. 이에 나와 지용 모두 멍해졌다.의사가 말했다. “이건 쿠바드 증후군이라는 건데 남편이 아내를 너무 사랑하면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옮겨 아내 대신 남편이 임신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데 남편이 아내를 아주 사랑할 때만 발생하는 겁니다.” 이에 지용은 내 손을 꼭 감싸고 다행이라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 대신 고생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용 덕분에 난 임신 초기에 거의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그때 난 정말 이 사랑을 제대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 지용이지만 현재 그의 사랑을 받는 이는 나라고 자만했다. 하지만 내가 그 추억 속에서 아직 헤어나오기 전에 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용, 나 방금 입덧을 했
지용 얼굴의 죄책감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지용은 갑자기 다가와 나를 옆으로 밀쳤다. “시우가 몸 조심해야 한다는 걸 분명 알면서 밀어?” 나는 똑바로 서지 못하고 벽에 부딪혔고 손에 들고 있던 진단서는 바닥에 흩어졌으며 너무 아픈 나머지 허리를 굽혔다. 마음은 매우 씁쓸했다. ‘네 마음속엔 시우밖에 없지?’ ‘하지만 나도 임신중인데, 심지어 내 뱃속 아이는 네 아이인데.’ 시우는 눈물을 흘리며 황급히 말했다.“나 때문에 그러지 마. 미안해, 지용아. 다은 씨 잘 보살펴 줘. 난 혼자서도 괜찮아.” 시우가 그렇게 말할 수록 지용이 나를 보는 눈빛은 점점 분노로 가득 찼고 냉담했으며 혐오하는 것 같았다. “너 어떻게 이렇게 변한 거야? 정말 너무 실망이야!” 말이 끝나자 지용은 시우를 감싸고 몸을 돌려 떠나 버렸다.나는 당황스러웠고 이 상황을 설명하려 고통을 참으며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 쫓아갔지만 눈앞에서 포르쉐가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건 내가 지용과 함께 돈 모아 산 첫 번째 차량이었다. 시우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찌푸려진 내 미간을 보며 도발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침을 두 번 했는데 손을 펼쳐보니 놀랍게도 핏줄기가 몇 가닥 섞여 있었다. 그 후 지용은 며칠 동안 싸늘하게 나를 대했고 나도 화를 참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혼자 낙태 방지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한 꽃향기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살펴보니 온 집안에 백합이 잔뜩 피어 있었다. 난 급하게 코를 막고 들어갔고 지용과 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지용이 애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매일 우울한 것 같아 보였거든. 이제 기쁘지?” 시우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뻐. 너희 집에서 지내는 게 다은 씨에게 미안했는데 그래도 네 마음에 아직 내가 있어서 다행이야.” 지용은 잠시 멈칫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마음속엔 영원히 네 자리가 있어.” 나는 멍해졌다.‘영원히라
전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너무 급한 나머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전화를 받을 힘이 없었다. 아이가 떠난 것으로 난 이미 절반의 힘이 소모되었고 나머지도 알레르기 쇼크로 인해 거의 소모되어 버린 것이다. 곧 죽을 것 같았다.‘죽는 게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에서 자물쇠를 여는 소리와 당황한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보니 지용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지용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로 빨갛게 물든 바닥과 온몸이 발진한 채 쇼크 상태인 나였다. 나를 보는 순간 지용의 동공은 갑자기 움츠러들었고 휘청거리더니 나를 향해 달려들어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은아!”지용은 조심스럽게 나를 품에 안았고 내 몸은 차기 그지없었다.지용은 내 얼굴에 피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가 병원에 데려다 줄게. 우리 바로 가자. 두려워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난 천장을 바라보며 지용의 팔을 잡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아기는 이미 없어, 나도 곧 죽을 거야.” 지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내 복부에 대보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지용은 고통스러운 듯 끊임없이 중얼거렸다.“아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당장 사람 찾아서 구해줄게!!” ‘내가 죽을까 봐 두려운 건가?’ ‘그런데 분명 방금까지도 날 신경 쓰지 않았잖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들것에 실려갔고 구급차에 오를 때까지 지용은 계속 따라왔다. 난 눈을 감았고 몸이 피곤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의 억울함과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니 난 정말 한숨 자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포기한다는 걸 느낀 건지 지용이 내 손을 잡더니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잠 들면 안 돼, 잠 들면 안 돼! 다은아, 잠 들지 마! 제발 나 혼자 남겨두지 마!”
우리가 만나게 된 이후로 둘의 감정은 매우 좋았지만 시우는 항상 지용의 금기였다.이 때문에 나는 줄곧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뒤 지용은 시우의 이름을 대범하게 꺼낼 수 있었다.때문에 난 이제 지용이 모두 내려놓은 줄만 알았다. 이에 난 지용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사랑을 얻었으니 내 아이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그런데 시우가 돌아올 줄을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시우가 돌아와 지용과 연락을 한 그날부터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 눈물이 눈가를 따라 흘러내리다 난 갑자기 눈을 떴는데 지용이 내 침대 곁에 엎드려 있었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나는 내 아이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내 아이는 작은 고양이였는데 꼬리로 내 종아리를 에워싸고 이리저리 끊임없이 저으며 간지럽혔다. 그리고 입을 열어 고양이의 목소리로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난 그 고양이를 쫓아가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난 숨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울었고 심장이 마치 돌에 눌린 것처럼 괴로웠다. 내가 깨어나자 지용도 곧 눈을 떴는데 나를 보고는 눈시울이 단번에 빨개졌다. 지용은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손에 링거를 맞고 있었기에 그는 자기 손을 내 손바닥과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쁨 속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은아, 깨어났구나. 나 정말 두려워서 죽는 줄 알았어. 다행이야.” 하지만 난 손가락을 웅크리고는 손을 뗐다. “뭐가 두려워? 내가 죽지 않아서 시우에게 자리를 내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던 거야?” 이 말에 지용은 당황한 듯 고개를 저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야, 절대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하지만 난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래?” 지용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후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났는지 또 눈
지용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머리 위에 익숙한 촉감이 전해지지 않았다. 지용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나의 냉담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보았고 순간 멈칫하더니 표정은 이미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지용은 마침내 내가 정말 그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용은 당황하여 눈시울을 붉히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난 시우를 좋아한 게 아니야. 단지...” “시우가 나보다 중요했고 그녀와 다른 사람의 아기가 우리 아기보다 더 중요했던 거겠지, 아니야?” 난 지용이 내 마음에 꽂았던 칼들을 뽑아 한 번 또 한 번 지용을 찔렀다. 지용의 떨리는 눈빛에는 고초가 가득했고 목소리도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구조 요청하는 전화를 끊을 수 있었던 거고 내가 쇼를 하고 질투를 한다고 말한 거잖아.” 사실을 하나씩 내세우니 지용은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난 몰랐어. 네가 나에게 보낸 사진을 본 뒤에는 난 바로 달려왔어. 시우가 줄곧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다 거절하고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온 거야.” “못 믿겠으면 교통법 위반 정보를 가서 찾아봐도 돼. 난 신호등을 6개나 건너뛰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난 단지 네가 달수도 적고 줄곧 멀쩡해서...” “멀쩡했다고?” 난 비웃었다. “네가 시우와 병원에 검사하러 온 날 내가 거기 왜 있었는지 알기나 해?” “네가 내 임신 동안 빈번하게 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 탓에 마음이 우울해 계속 입덧을 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 “난 그날 낙태 방지 주사를 맞고 약 처방을 받으러 간 거야.” 순간 지용은 멍해졌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시우가 그러는데 임신 중기가 되면 이제 안전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안심하고 시우와 함께 간 건데.” 시우가 뭐라고 하면 지용은 그대로 믿었다. 난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난 10년 동안 지용만 바라보던 눈을 돌렸다. “
시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지용은 나에게 사과를 깎아주고 있었다. 이를 본 시우는 분명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다은 씨, 몸이 안 좋다는 거 알아요. 그렇지만 지용을 혼자만 독차지하고 저를 보러 오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하잖아요? 다은 씨가 저 싫어한다는 거...” 난 들으면서 계속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시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용이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내가 원한 거야.” 지용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시우와 눈을 맞추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내 아내를 간호한다는데 뭐가 독차지야?” “지용아? 다은 씨가 너 협박한 거야? 너...” 지용은 몸을 일으키더니 직설적으로 말했다. “난 단지 모든 게 명확해진 것뿐이야.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거면 네 남편 찾아가.” “난 그와 이혼할 거야!” “그래도 애는 그 사람 건데 왜 나를 찾아?” 시우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우는 이를 갈며 나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문이 닫히자 시우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웃었다. “지용이 사랑하는 건 나라는 거 몰라?” 난 바로 대답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없어? 그런데 지용이 왜 날 보러 오지 않는 건데?” “넌 세컨드고 내 대역일 뿐이야! 네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 안 해봤어?”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헛소리, 난 전혀 시우와 닮지 않았다.정말 날 자극하려고 무슨 말이든지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에 반박을 하기도 전에 지용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시우를 밀치며 정색했다. “너 닥쳐! 다은이는 네 대역이 아니야! 당시 네가 바람났을 때 다은이가 날 떠나지 않고 보살펴줬어! 네가 무슨 낯짝으로 다시 날 찾아와?” 시우는 배를 움켜쥐었고 책 펼치기보다 더 빨리 변하는 지용의 태도에 놀란 듯했다. 시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럼
내 말이 끝나자 지용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고통스럽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한참 후, 지용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다 내 잘못이야.” 지용은 무릎을 꿇은 채 나에게 다가왔다.“내가 너무 자만했어, 귀신에게 홀렸나 봐. 내가 과거에 너무 집착했어. 난 단지 시우에게 지금의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보여주고 그녀가 후회하길 바랐어.”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하는 것만은 가짜가 아니야. 난 절대 널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자만했어. 내가 염치가 없는 거야.” “다은아, 우리 함께 한 지 6년이나 됐고 감정도 이미 이렇게 깊은데 제발 나 버리지 말아줘. 네가 없으면 난 정말 갈 곳이 없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한 마디 한 마디 뱉은 지용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스스로를 헤집고 있었고 기회를 갈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나 자신에게 기회를 줄 필요는 있었다. 난 더 이상 자신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시우는 이미 아이를 출산했고 남편이 그녀를 데려갔다.들리는 바로는 시우는 울면서 끌려갔는데 가면서도 계속 지용을 불렀다고 한다. 지용은 시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나를 차에 태웠다. 지용이 원래는 나를 조수석에 앉히려 했지만 내가 말했다. “잠깐만, 나 뒤에 앉고 싶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지용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건 특별히 너를 위해 준비한 자리야.” 하지만 나는 아무런 감정의 파동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아니, 여긴 연시우가 앉았던 자리잖아. 더러워서 싫어.” 자리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말이다. 가는 길 내내 지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만 운전했다. 집에 도착한 뒤 지용은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특히 아기 방은 더욱 말이다. “아기 방은 안 치워도 돼.” 난 숨을 들이마시고 지용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아이도 없잖아.” 사실 시우가 임시로 내 아기 방에 들어간 날부터 난 사고가 날 것 같다고 은근히 느꼈다.
지용은 내가 그의 눈앞에서 그 자물쇠를 잘라낼 줄은 몰랐을 것이다.그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나를 쳐다봤다.자물쇠가 끊어지는 순간, 지용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그는 잘린 자물쇠 조각을 움켜쥐고 끝내 손을 놓지 않았다.하지만 지용은 나를 막을 수 없었다.이번에 내가 동산타워에 온 것은 모든 것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함이었다.나는 손가락에서 결혼반지를 빼내어 지용에게 보여주며 단호하게 말했다.“오늘로 우린 깨끗이 끝내.”말을 마친 나는 반지를 동산 아래로 던져버리고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뒤에서 들려오는 지용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안 돼!!!”동산에서 내려오던 중, 행인들의 웅성거림이 귀에 들어왔다. “산에서 누가 미쳤는지 반지를 찾아달라고 사람들한테 소란을 피우고 있대.”...지용은 꼬박 3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그가 돌아오는 날 밤, 난 모든 짐을 싸서 택배로 보냈다.그리고 지용이 돌아왔을 때 난 소파에 앉아 그가 이혼 협의서에 서명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난 못 찾았어.” 지용은 나에게 이 말만 남긴 후 산송장처럼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순간, 난 비로소 진정으로 홀가분함을 느꼈다. 나는 새로운 아파트를 구했고 지용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했는데 더 없이 평온하고 안정되었다. 나는 떠난 뒤로 더는 아기의 꿈을 꾸지 않았다. 아마 아기도 내가 고생에서 벗어났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반년 뒤, 지용은 이혼 후 나에게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건 집 사진이었다.집은 집답지 않게 썰렁했다. [난 아직도 널 사랑해,] 그 메시지를 본 나는 바로 그 화면을 꺼버렸다. 그 뒤로도 지용은 자주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지만 모두 영양가 없는 화제에 불과했다. 하나만 빼고 말이다. 시우는 임신 중에 술을 마셨는데 그로 인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안 좋았고 반년도 안 되어 요절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우는 자신이 원하
내 말이 끝나자 지용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고통스럽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한참 후, 지용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다 내 잘못이야.” 지용은 무릎을 꿇은 채 나에게 다가왔다.“내가 너무 자만했어, 귀신에게 홀렸나 봐. 내가 과거에 너무 집착했어. 난 단지 시우에게 지금의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보여주고 그녀가 후회하길 바랐어.”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하는 것만은 가짜가 아니야. 난 절대 널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자만했어. 내가 염치가 없는 거야.” “다은아, 우리 함께 한 지 6년이나 됐고 감정도 이미 이렇게 깊은데 제발 나 버리지 말아줘. 네가 없으면 난 정말 갈 곳이 없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한 마디 한 마디 뱉은 지용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스스로를 헤집고 있었고 기회를 갈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나 자신에게 기회를 줄 필요는 있었다. 난 더 이상 자신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시우는 이미 아이를 출산했고 남편이 그녀를 데려갔다.들리는 바로는 시우는 울면서 끌려갔는데 가면서도 계속 지용을 불렀다고 한다. 지용은 시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나를 차에 태웠다. 지용이 원래는 나를 조수석에 앉히려 했지만 내가 말했다. “잠깐만, 나 뒤에 앉고 싶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지용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건 특별히 너를 위해 준비한 자리야.” 하지만 나는 아무런 감정의 파동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아니, 여긴 연시우가 앉았던 자리잖아. 더러워서 싫어.” 자리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말이다. 가는 길 내내 지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만 운전했다. 집에 도착한 뒤 지용은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집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특히 아기 방은 더욱 말이다. “아기 방은 안 치워도 돼.” 난 숨을 들이마시고 지용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아이도 없잖아.” 사실 시우가 임시로 내 아기 방에 들어간 날부터 난 사고가 날 것 같다고 은근히 느꼈다.
시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지용은 나에게 사과를 깎아주고 있었다. 이를 본 시우는 분명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다은 씨, 몸이 안 좋다는 거 알아요. 그렇지만 지용을 혼자만 독차지하고 저를 보러 오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하잖아요? 다은 씨가 저 싫어한다는 거...” 난 들으면서 계속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시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용이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내가 원한 거야.” 지용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시우와 눈을 맞추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내 아내를 간호한다는데 뭐가 독차지야?” “지용아? 다은 씨가 너 협박한 거야? 너...” 지용은 몸을 일으키더니 직설적으로 말했다. “난 단지 모든 게 명확해진 것뿐이야.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거면 네 남편 찾아가.” “난 그와 이혼할 거야!” “그래도 애는 그 사람 건데 왜 나를 찾아?” 시우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우는 이를 갈며 나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문이 닫히자 시우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웃었다. “지용이 사랑하는 건 나라는 거 몰라?” 난 바로 대답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상관이 없어? 그런데 지용이 왜 날 보러 오지 않는 건데?” “넌 세컨드고 내 대역일 뿐이야! 네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 안 해봤어?”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헛소리, 난 전혀 시우와 닮지 않았다.정말 날 자극하려고 무슨 말이든지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에 반박을 하기도 전에 지용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시우를 밀치며 정색했다. “너 닥쳐! 다은이는 네 대역이 아니야! 당시 네가 바람났을 때 다은이가 날 떠나지 않고 보살펴줬어! 네가 무슨 낯짝으로 다시 날 찾아와?” 시우는 배를 움켜쥐었고 책 펼치기보다 더 빨리 변하는 지용의 태도에 놀란 듯했다. 시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럼
지용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머리 위에 익숙한 촉감이 전해지지 않았다. 지용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나의 냉담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보았고 순간 멈칫하더니 표정은 이미 당황스러움으로 변했다. 지용은 마침내 내가 정말 그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지용은 당황하여 눈시울을 붉히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난 시우를 좋아한 게 아니야. 단지...” “시우가 나보다 중요했고 그녀와 다른 사람의 아기가 우리 아기보다 더 중요했던 거겠지, 아니야?” 난 지용이 내 마음에 꽂았던 칼들을 뽑아 한 번 또 한 번 지용을 찔렀다. 지용의 떨리는 눈빛에는 고초가 가득했고 목소리도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구조 요청하는 전화를 끊을 수 있었던 거고 내가 쇼를 하고 질투를 한다고 말한 거잖아.” 사실을 하나씩 내세우니 지용은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난 몰랐어. 네가 나에게 보낸 사진을 본 뒤에는 난 바로 달려왔어. 시우가 줄곧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다 거절하고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온 거야.” “못 믿겠으면 교통법 위반 정보를 가서 찾아봐도 돼. 난 신호등을 6개나 건너뛰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난 단지 네가 달수도 적고 줄곧 멀쩡해서...” “멀쩡했다고?” 난 비웃었다. “네가 시우와 병원에 검사하러 온 날 내가 거기 왜 있었는지 알기나 해?” “네가 내 임신 동안 빈번하게 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 탓에 마음이 우울해 계속 입덧을 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 “난 그날 낙태 방지 주사를 맞고 약 처방을 받으러 간 거야.” 순간 지용은 멍해졌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시우가 그러는데 임신 중기가 되면 이제 안전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안심하고 시우와 함께 간 건데.” 시우가 뭐라고 하면 지용은 그대로 믿었다. 난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난 10년 동안 지용만 바라보던 눈을 돌렸다. “
우리가 만나게 된 이후로 둘의 감정은 매우 좋았지만 시우는 항상 지용의 금기였다.이 때문에 나는 줄곧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뒤 지용은 시우의 이름을 대범하게 꺼낼 수 있었다.때문에 난 이제 지용이 모두 내려놓은 줄만 알았다. 이에 난 지용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사랑을 얻었으니 내 아이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그런데 시우가 돌아올 줄을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시우가 돌아와 지용과 연락을 한 그날부터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 눈물이 눈가를 따라 흘러내리다 난 갑자기 눈을 떴는데 지용이 내 침대 곁에 엎드려 있었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나는 내 아이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내 아이는 작은 고양이였는데 꼬리로 내 종아리를 에워싸고 이리저리 끊임없이 저으며 간지럽혔다. 그리고 입을 열어 고양이의 목소리로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난 그 고양이를 쫓아가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난 숨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울었고 심장이 마치 돌에 눌린 것처럼 괴로웠다. 내가 깨어나자 지용도 곧 눈을 떴는데 나를 보고는 눈시울이 단번에 빨개졌다. 지용은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손에 링거를 맞고 있었기에 그는 자기 손을 내 손바닥과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쁨 속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은아, 깨어났구나. 나 정말 두려워서 죽는 줄 알았어. 다행이야.” 하지만 난 손가락을 웅크리고는 손을 뗐다. “뭐가 두려워? 내가 죽지 않아서 시우에게 자리를 내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던 거야?” 이 말에 지용은 당황한 듯 고개를 저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야, 절대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하지만 난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래?” 지용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후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났는지 또 눈
전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너무 급한 나머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전화를 받을 힘이 없었다. 아이가 떠난 것으로 난 이미 절반의 힘이 소모되었고 나머지도 알레르기 쇼크로 인해 거의 소모되어 버린 것이다. 곧 죽을 것 같았다.‘죽는 게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에서 자물쇠를 여는 소리와 당황한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보니 지용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지용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피로 빨갛게 물든 바닥과 온몸이 발진한 채 쇼크 상태인 나였다. 나를 보는 순간 지용의 동공은 갑자기 움츠러들었고 휘청거리더니 나를 향해 달려들어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은아!”지용은 조심스럽게 나를 품에 안았고 내 몸은 차기 그지없었다.지용은 내 얼굴에 피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가 병원에 데려다 줄게. 우리 바로 가자. 두려워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난 천장을 바라보며 지용의 팔을 잡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아기는 이미 없어, 나도 곧 죽을 거야.” 지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내 복부에 대보았지만 그곳에 더 이상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지용은 고통스러운 듯 끊임없이 중얼거렸다.“아니,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당장 사람 찾아서 구해줄게!!” ‘내가 죽을까 봐 두려운 건가?’ ‘그런데 분명 방금까지도 날 신경 쓰지 않았잖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들것에 실려갔고 구급차에 오를 때까지 지용은 계속 따라왔다. 난 눈을 감았고 몸이 피곤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의 억울함과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니 난 정말 한숨 자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포기한다는 걸 느낀 건지 지용이 내 손을 잡더니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잠 들면 안 돼, 잠 들면 안 돼! 다은아, 잠 들지 마! 제발 나 혼자 남겨두지 마!”
지용 얼굴의 죄책감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지용은 갑자기 다가와 나를 옆으로 밀쳤다. “시우가 몸 조심해야 한다는 걸 분명 알면서 밀어?” 나는 똑바로 서지 못하고 벽에 부딪혔고 손에 들고 있던 진단서는 바닥에 흩어졌으며 너무 아픈 나머지 허리를 굽혔다. 마음은 매우 씁쓸했다. ‘네 마음속엔 시우밖에 없지?’ ‘하지만 나도 임신중인데, 심지어 내 뱃속 아이는 네 아이인데.’ 시우는 눈물을 흘리며 황급히 말했다.“나 때문에 그러지 마. 미안해, 지용아. 다은 씨 잘 보살펴 줘. 난 혼자서도 괜찮아.” 시우가 그렇게 말할 수록 지용이 나를 보는 눈빛은 점점 분노로 가득 찼고 냉담했으며 혐오하는 것 같았다. “너 어떻게 이렇게 변한 거야? 정말 너무 실망이야!” 말이 끝나자 지용은 시우를 감싸고 몸을 돌려 떠나 버렸다.나는 당황스러웠고 이 상황을 설명하려 고통을 참으며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 쫓아갔지만 눈앞에서 포르쉐가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건 내가 지용과 함께 돈 모아 산 첫 번째 차량이었다. 시우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찌푸려진 내 미간을 보며 도발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침을 두 번 했는데 손을 펼쳐보니 놀랍게도 핏줄기가 몇 가닥 섞여 있었다. 그 후 지용은 며칠 동안 싸늘하게 나를 대했고 나도 화를 참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혼자 낙태 방지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한 꽃향기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살펴보니 온 집안에 백합이 잔뜩 피어 있었다. 난 급하게 코를 막고 들어갔고 지용과 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지용이 애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매일 우울한 것 같아 보였거든. 이제 기쁘지?” 시우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뻐. 너희 집에서 지내는 게 다은 씨에게 미안했는데 그래도 네 마음에 아직 내가 있어서 다행이야.” 지용은 잠시 멈칫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마음속엔 영원히 네 자리가 있어.” 나는 멍해졌다.‘영원히라
지용은 다시 시우를 데려왔고 그녀를 곧 태어날 내 아이의 방에 안배했다. 난 지용이 바쁘게 돌아치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또다시 메스꺼워졌다. 밤이 되어 지용이 마침내 돌아왔다. 지용은 부드럽게 뒤에서 나를 껴안았고 말투에는 다소 미안함이 묻어났다. “오전의 일은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응? 아이한테 안 좋아.” 난 미간을 찌푸리고 토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아마 내가 계속 말이 없자 지용이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하다. 지용은 얼른 나를 돌려세웠는데 창백한 내 얼굴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은아?!” 지용을 바라보니 난 더 이상 헛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지용은 끊임없이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 아파했다. “줄곧 입덧이 없더니 왜 갑자기?” 지용은 나를 어루만졌고 눈에 서렸던 긴장은 곧 진짜로 변했다. 그랬다, 전에 나는 입덧을 크게 하지 않았다. 난 마치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고 오히려 지용이 항상 몸이 불편하고 헛구역질까지 했으며 한 번 토하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지용에게 무슨 병이라도 난 걸까 두려워 억지로 그를 병원에 끌고 갔지만 의사는 웃으며 지용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해줬다. 이에 나와 지용 모두 멍해졌다.의사가 말했다. “이건 쿠바드 증후군이라는 건데 남편이 아내를 너무 사랑하면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옮겨 아내 대신 남편이 임신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데 남편이 아내를 아주 사랑할 때만 발생하는 겁니다.” 이에 지용은 내 손을 꼭 감싸고 다행이라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 대신 고생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용 덕분에 난 임신 초기에 거의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그때 난 정말 이 사랑을 제대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 지용이지만 현재 그의 사랑을 받는 이는 나라고 자만했다. 하지만 내가 그 추억 속에서 아직 헤어나오기 전에 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용, 나 방금 입덧을 했
임신한 지 5개월째, 함께 산전검사를 하러 간 날이었다.남편 한지용은 전화를 받더니 나를 버리고 임신한 지 8개월째에 이혼 준비 중인 그의 첫사랑을 만나러 갔다.의사는 어안이 벙벙하여 지용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나를 떠보았다. 그리고 난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전 혼자서도 됩니다.” 지용이 무엇을 하고 있던 시우의 연락이면 그는 항상 달려가곤 했다. 어차피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시우는 지용이 나를 위해 특별히 골라주었던 쿠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남편 지용은 시우에게 사과를 먹여주고 있었다.내가 돌아온 것을 발견한 지용은 마치 무엇에 데인 것처럼 바로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얼른 마중 나와 내 허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왜 벌써 돌아온 거야? 의사가 진찰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난 지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진찰 끝났어. 전화 걸었는데 당신이 한 통도 안 받은 거야.” 순간 지용은 잠시 멈칫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시우가 핸드폰이 시끄럽다고 해서 무음으로 설정해 뒀어.” 난 눈을 떨구고 알겠다고 했다. 혼자 시내에서 돌아오니 너무 피곤했던 난 지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우가 갑자기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위선적으로 물었다. “다은 씨, 혹시 화난 거예요?” 난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왜 화가 나죠? 설마 당신이 저에게 미안할 짓이라도 한 건가요?” 이에 시우가 대답할 틈도 없이 지용이 끼어들어 호통을 치며 내 말을 끊었다. “닥쳐! 너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편 시우는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아마 임신 중이라 화가 많아진 것일 거야. 난 곧 출산 임박이라 이해할 수 있어.” 시우는 매우 억울해 보였다. 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자 지용이 위로했다. “내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