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침대에 눕혀진 장소연은 신혼여행이라는 말에 문뜩 무언가 떠올랐다.그녀가 급히 말했다.“참 이성 씨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말로 당신한테 말해줘야 할 일이 있긴 있었어요!”“무슨 일인데?”박이성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설마 도범 그 자식에 관한 일이야?”“맞아요. 그놈이 박시율의 생일날에 서프라이즈를 해줄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중주시를 떠들썩하게 만들 생일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어요!”장소연이 이어서 말했다.“이런 일도 당신한테 말해야 하는 거죠?”“그래. 박시율의 생일이라면 아직 한 달 정도 남았네.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까먹을 뻔했어!”박이성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도범이 그 새끼는 진짜 큰소리치기 좋아한단 말이야. 뭐? 중주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어? 하하 중주시가 얼마나 큰데. 박시율을 위한 생일 파티가 중주시를 뒤흔들어? 웃기고 있네. 중주시를 뒤흔들려면 적어도 몇백억은 써야 한다고!”“후후 분명 과장한 걸 거예요!”장소연이 미소를 지었다.“차라리 잘 됐어. 너 내일이나 모레쯤 기회를 봐서 그 약 도범이한테 먹여. 어쩌면 박시율의 생일이 도범이 그놈의 제삿날이 될 수도 있겠어. 하하 기대되네!”박이성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장소연을 침대에 눕히고 몸을 겹쳤다.“동생아, 최근 네 여자친구한테서 뭐 이상한 점 같은 거 못 느꼈어?”박해일은 홀로 정원에 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박시율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다가가 물었다.“이상한 점이라니? 예전과 똑같은데?”박해일은 게임을 하며 무심하게 답했다.“너 정말 왜 이렇게 멍청해? 너 그 애랑 사귄 지도 꽤 오래되었잖아. 관계를 가져 본 적은?”박시율이 자신의 동생을 흘겨보며 물었다.박해일은 그제야 휴대폰을 내려놓고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누난 왜 그런 걸 물어? 소연이가 비록 옷을 좀 섹시하게 입고 노는 애들처럼 다니긴 하지만 속은 보수적인 여자아이라고. 누나가 소연이
“그럴 리 없어!”박해일이 인상을 팍 쓰더니 고개를 저었다.“누나!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소연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 만약 진짜 끌어안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그냥 장난이었을 거야. 그건 끌어안은 게 아니라 그냥 장난치며 티격태격한 거라고!”박시율은 너무나 기가 막혔다.“박해일, 넌 네 누나가 바본 줄 알아?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과 장난치는 걸 구분 못할 것 같아?”“증거 있어? 사진은? 없지?”그녀의 말에 오히려 박해일이 더욱 흥분하며 몰아붙였다.“증거도 없으면서 소연이한테 나쁜 말 하지 마. 나랑 소연이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내가 걔를 모르겠어? 누나가 나보다 소연이를 더 잘 알아? 내가 봤을 때 누나랑 도범은 똑같아. 그냥 소연이가 싫어서 일부러 걔한테 상처를 주는 거야. 그리고 방금 누나가 그랬잖아. 폭주족 일당들은 이미 죽었다고. 그러니까 나도 소연이의 과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박시율은 너무 화가 나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박해일. 넌 정말 멍청한 놈이야. 진짜 답도 없어!”“내가 왜 멍청한데? 누나가 증거도 없으면서 함부로 말한 거잖아!”화가 난 박해일이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내 휴대폰 내놔. 게임 계속해야 돼. 팀원들이 기다려!”“악!”마찬가지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박시율은 박해일의 휴대폰을 들더니 옆에 있는 바위 위로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지, 지금 내 휴대폰 박살 낸 거야? 그거 사과 폰이라고!”순간 욱한 박해일이 성큼성큼 다가가 한 손으로는 박시율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쳐봐.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쳐보라고!”박시율은 빨개진 눈으로 자신의 동생을 힘껏 노려보았다. 그녀는 동생이 장소연 그 여자한테 놀아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박해일 네가 만약 진짜 네 누나를 때리면 내가 남은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멀리서 그들을 본 도범이 싸늘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가 성큼성큼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남자로 태
“동생아 한 번 잘 생각해 봐. 최근 들어 그 애가 어디 달라진 점이 있었는지. 어제 전화가 두 번이나 걸려왔었는데 다 받지 않았어. 넌 그 전화가 정말로 부동산에서 걸려왔을 것 같아? 난 엄청 수상하다고 생각해!”“그리고 최근 들어 명품 가방을 자주 사는 것 같던데. 하나에 몇백만 씩 하는 것들도 보였어. 비싼 옷도 많이 사는 것 같더라.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박시율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박해일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너는 걔랑 결혼까지 하고 싶잖아. 너는 이렇게 진지한데 그 애를 생각해 봐. 어젯밤만 해도 얼른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우물쭈물하면서 속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았잖아. 나는 걔가 밖에 다른 남자를 두고 있다고 확신해!”“몰라. 난 증거만 믿을 거야. 증거도 없이 말하는 건 다 모함이야!”박해일이 씩씩거리더니 땅에 내팽개쳐진 자신의 휴대폰을 주었다.“내 휴대폰, 산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몇십만 원이나 주고 산 거라고!”“여기 150만 정도 될 거야. 이걸로 가서 휴대폰 사! 우리가 그 애를 의심하고 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 알았어? 그리고 너의 협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꼭 잘 협력해 줘! 그래야만이 증거를 잡을 수 있어!”도범이 잠깐 뭔가 생각하더니 지갑에서 현금을 한 움큼 꺼내서 박해일한테 건넸다“걱정 마세요. 그런 증거는 절대 찾지 못할 테니까!”박해일이 싸늘하게 웃더니 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휴 보아하니 당신 동생 그 여자한테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 같은데!”도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박해일이 장소연 때문에 박시율을 때리려고 할 줄은 몰랐다. 무려 자신의 친누나를 말이다.“난 예전부터 그 여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단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지 동생한테 엄청 티를 냈거든. 쟤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박시율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야말로 장소연의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실히 밝혀내야겠어. 그럼 내 동생도 포기하겠지. 해일이는 나름 생긴
그 시각 도범은 막 용 씨 가문에 도착했다.거실로 들어서자 뜻밖의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제갈소진이 용신애, 용일비와 함께 있는 것이다.“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도범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후후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난 여기 둘째 아가씨를 만나러 왔다고요. 우리 세 사람은 이제 친구가 되었는걸요.”제갈소진이 배실배실 웃으며 말했다.“한참 기다렸어요. 마침 우리 셋이 쇼핑하러 가려고 했거든요. 함께 가요. 도범 씨가 있으면 보디가드도 더 많이 필요 없잖아요. 도범 씨 혼자서 충분하니까!”용신애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내 생각에는 그래도 몇 명 더 데려가는 게 좋겠어요. 몇 명만 더 데려가죠. 우리 세 사람이 쇼핑을 하면 도범 씨 혼자서는 그 많은 쇼핑백을 다 들지 못할 테니까요.”“어머 신애야 너 혹시 도범 씨가 힘들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래서 짐을 들 사람을 몇 명 더 데려가자고 그러는 거지?”제갈소진이 꺄르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도범 씨는 내가 찜한 남자라고. 뺏지 마. 그래도 뺏고 싶으면 순서 지켜. 내가 두 번째고 너는 세 번째야!”그러더니 곁에 있는 용일비를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일비 너도 나랑 경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너는 네 번째야 알았지?”“누가 너랑 경쟁하겠대? 헛소리하지 마!”용신애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그러게 말이야. 허튼소리 하지 마. 난 절대 저 변태를 좋아하게 될 일이 없을 테니까!”용일비 역시 새빨개진 얼굴로 받아쳤다. 그녀는 왠지 엄청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걱정 마세요. 제가 여기 아가씨 세분을 마음에 품을 일은 결코 없으니까요!”도범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쇼핑할 생각이면 지금 나가죠!”“당신……”세 미녀는 열불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들은 수많은 남자들이 꿈에 그리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보디가드 놈은 그런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화가 치밀었다.“가요.
“저 사람은 누구예요? 엄청 강해 보이는데. 포스가 장난 아니네요!”돌아선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용일비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자는 그녀에게 무척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누가 되었든 저 사람은 지금 나한테 선전 포고를 한 겁니다. 사내대장부 답네요.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내일 그 장소로 갈 수밖에 없네요!”도범이 여유롭게 웃었다.“가보면 저자가 왜 내 목숨을 노리는지 알게 되겠죠!”“왜 그렇게 여유로워요? 상대가 엄청 강하면 어쩌려고요?”용신애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아니면 제가 서하와 주원이한테 말해 둘 테니까 여럿이 모여 함께 가요. 보험을 들어두는 거죠.”하지만 도범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답했다.“만약 나조차 저 사람 상대가 안 된다면 용 씨 가문 전체 보디가드들이 함께 간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가봤자 개죽음밖에 안 돼요.”확실히 도범은 화하에 속한 부대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였다. 이런 그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면 서하 같은 일반인이 가봤자 개죽음밖에 되지 못했다.용신애는 그제야 지난번 늦은 밤에 보았던 그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떠올랐다. 도범은 혈혈단신으로 이화당의 삼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전멸시켰었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가 해결할 수 없다면 서하나 다른 사람이 가도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그래도 조심해요. 혹시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상대면 도망쳐요. 죽는 것보다 그게 나아요!”제갈소진 역시 걱정하며 말했다.“도망?”도범이 순간 멈칫거리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생각이 지나치셨습니다. 갑시다. 가서 쇼핑마저 하죠. 저쪽에서 죽고 싶어서 안달 난 거라면 그렇게 해주면 됩니다!”“당신 참,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에요?”곁에 있던 용일비가 쓴웃음을 지었다.“아가씨한테 충분한 실력이 있게 될 때. 그때면 아가씨도 이 정도의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도범이 담배를 꺼내 천천히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는 미녀들을 데리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마저
“안 와?”정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꼭 올 거야. 안 오면 그놈 와이프나 딸, 그리고 그 가족들이 화를 입게 될 거라고 했거든. 하지만 그건 그냥 겁만 줄 생각으로 한 말이고. 진짜 가족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어. 난 스승님의 복수로 그놈 모가지만 따면 돼!”“정말 너무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만약 그놈이 겁을 먹고 당장 가족들을 데리고 몰래 중주시를 떠나면 어쩝니까? 만약 중주시를 벗어나면 그땐 찾으려고 해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화가 난 하재열이 방안을 서성거렸다.“제가 그전에 말했었잖습니까. 기회를 봐서 암살 하라고요. 중장인 당신이 암살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성공할 건데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그놈을 죽여버리는 것만큼 편한 일이 어디 있다고요?”정진이 오히려 싸늘하게 웃더니 하찮은 표정으로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하재열 도련님, 그건 도련님 의견이었고 받아들일지 말지는 내 마음이야. 중장인 내가 대대장 하나 죽이는데 암살을 하라고? 그게 사내대장부로서 할 짓이야? 난 남자끼리의 싸움은 정정당당하게 하는 걸 즐기는 편이야!”“그건……”하재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그래도 하루 전에 통보하는 건 아니죠. 그놈한테 도망갈 기회를 준 거잖습니까?”“하하 걱정 마. 그럴 놈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 분명 그놈도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을 거야. 내가 선전 포고를 할 때 그자는 일말의 당황함도 보이지 않았거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정진이 피식 웃었다.“그리고 그놈은 자기 가족을 아주 사랑해. 당연히 자기 가족들한테 도망만 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을 거야. 게다가 중장은 꽤나 큰 힘을 갖고 있어. 자기 가족들까지 함께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겠어? 하루하루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내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거기까지 말하던 정진이 잠시 침묵하다가 자신 있게 마저 말했다.“때문에 그놈은 내일 꼭 올 거야!”정진의 말에 하재열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알겠어요
“맞아요 오빠들. 저를 그냥 보내주세요. 저는 생긴 것도 엄청 평범하잖아요. 제가 200만 원을 더 드릴게요. 먼저 200만원으로는 도련님한테 다른 여성분을 찾아주시고 제가 준 200만으로는 여기 오빠들이 가서 술이라도 마시는 게 어떠세요?”멀대 같은 장정들 앞에서 잔뜩 겁에 질린 장소연은 당장이라도 돈을 꺼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하 돈? 우린 오늘 돈을 목적으로 온 게 아니라서 말이야!”보디가드 중 한 명이 낄낄거리며 말했다.“둘 다 데려가!”“잠깐만 기다려 봐!”전에 나서던 보디가드가 갑자기 그를 말리며 말을 꺼냈다.“거기 두 사람 지금 현금을 얼마나 갖고 있지? 내놔 봐!”“장필 형님 이건…… 설마 지금 도련님 명령을 거역하는 겁니까?”곁에 있던 남자가 그를 보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그러나 장필이라고 불린 남자는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봉희와 장소연을 향해 말했다.“꾸물꾸물 대지 말고 빨리!”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서둘러 돈을 꺼내서 상대에게 건넸다.“하하 두둑하네. 이거 다 합하면 1500만 정도는 되겠는데. 현금을 꽤나 많이 갖고 다니나 봐!”돈을 건네받은 장필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그, 그럼 이제 저희는 가도 되겠죠? 고맙습니다. 저희들을 살려줘서 고마워요!”나봉희가 곧바로 상대를 향해 미소를 짓고 서둘러 장소연을 잡아끌며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잠깐!”하지만 장필은 여전히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나는 너희들을 그냥 놓아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너희들이 돈을 주겠다고 해서 받았을 뿐이잖아? 하하!”“그러네. 어차피 납치해 갈 사람들인데 돈을 마다할 필요는 없었잖아?”장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던 보디가드들도 그제야 하나둘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간 장필이 너무 똑똑해 보였다.“당신, 당신들 정말 파렴치한 사람들이군요. 어떻게 저희를 속일 수 있어요!”장소연이 악을 써댔다. 돈까지 줬는데 상대는 전혀 그들을 놓아줄 마음이
“맞아 빨리빨리 내놓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내가 이걸로 당신들 얼굴을 그어버릴 수도 있으니까!”다른 남자가 작은 비수를 꺼내 보이며 씩 웃었다.“우, 우리가 이걸 다 주면 그냥 보내 줄 거예요?”나봉희는 상대가 비수까지 꺼내든 걸 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단 목숨을 부지하는 게 중요했다. 여기서 상대가 자신더러 은행에 가서 돈을 꺼내오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가능할 것 같아? 하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우리 도련님께서 그랬어. 여기 이 여자애뿐만 아니라 당신 딸 박시율까지 데려오라고. 지금쯤 우리 쪽 사람들이 이미 그 여자를 잡으러 따라갔을 거야. 하하 아마 회사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붙잡히겠지.”장필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우리 도련님께서 두 미녀의 몸매에 꽂히셨거든. 이번 기회에 데려가서 잘 데리고 놀겠다고 했지.”“어머니 이게 다 도범이 그 자식 때문이에요. 어디서 또 어느 도련님을 건드린 건지. 이제 저희는 끝났어요!”장소연은 너무나 화가 났다. 그녀는 도범이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분명 성경일 도련님이 부른 사람들일 거야. 도범이 그놈한테 평소에 겸손하게 다니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결국 이런 사달이 났구나. 그놈 때문에 이렇게 우리들까지 피해를 보고!”나봉희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장신구들을 상대에게 건넸다. 그때 그녀는 순간 아까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장필에게 말했다.“거기 형님분, 당신들 도련님이 당신들한테 내 딸과 여기 장소연 두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다고요? 그러면 저는 데려오라고 한 적이 없잖아요. 저는 억울해요. 이것 보세요. 제가 이렇게 돈과 귀중품까지 다 드린 걸 봐서라도 저는 그냥 보내주면 안 될까요?”“당신 말은 그쪽만 놓아달라? 여기 이 여자는 데려가고?”장필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맞아요. 이런 늙은이까지 데려갈 필요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나봉희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머니…… 어머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