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카드에 200억이 들어있다는 소리를 들은 나봉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200억은 박 씨 집안에게 있어서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 돈을 가질 수 있다면 그들은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박 씨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나봉희의 반응을 본 성경일과 한지운이 속으로 기뻐했다.두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계획했다. 첫 번째 계획은 바로 저번에 찍은 사진을 나봉희에게 보여줘 도범이 다른 여자의 돈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이렇게 되면 그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도범을 쫓아낼 수 있었다.만약 박시율이 주동적으로 이혼을 제기한다면 도범도 뻔뻔하게 나올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은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직 보름이 넘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봉희의 이런 말까지 들으니 도범이 어쩌면 정말 80억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랬기에 그들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했다.그들은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계획은 바로 나봉희가 돈을 좋아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두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도범에게 독약을 먹일 수 있다면 도범이 그 독약을 먹고 죽기만 해도 그들은 이미 절반이나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혹시나 나봉희가 돈이 적다고 할까 봐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각자 100억을 꺼내 이 200억을 만들어냈다.“어때요? 200억이에요, 어머님. 어머님의 행복을 위하고 시율이가 앞으로 좋은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이걸 도범에게 먹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200억은 어머님의 것이 되는 겁니다.”성경일이 나서서 옆에서 말했다.“맞아요, 그럼 이 낡은 집을 바꾸거나 뜯어버릴 수도 있어요, 여기에 멋진 별장을 짓는 겁니다. 어머님 아들도 돈이 생긴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시율이는 저나 성 도련님에게 시집을 가도 좋고요, 그래도 금방 퇴역한
문 앞에서 그 말을 들은 도범의 마음은 그나마 편안해졌다.200억은 확실히 적은 돈이 아니었디. 그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봉희가 돈을 이렇게 좋아하니 허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나봉희가 관건적인 시각에 유혹을 견뎌내고 두 사람을 거절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도범은 그제야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문을 두드렸다.“누구시죠?”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이 놀라서 허둥댔다, 한지운과 성경일은 다급하게 독약과 은행 카드를 거두었다.“장모님, 저예요, 시율이는 퇴근했어요?”도범이 방 안에 대고 말했다.“아직이다, 이제 곧 퇴근할 것 같으니 네가 가서 좀 데리고 와.”나봉희도 찔려서 얼른 도범을 집에서 내보내려고 했다.“네, 그럼 제가 시율이 데리고 올게요.”머지않아 도범은 집을 떠났다.도범이 간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봉희는 한시름 놓았다.“세상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도범이 두 분을 봤다면 또 손찌검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성격이 불같고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다른 사람 말도 잘 안 듣는다니까요.”“어머님, 잘 생각해 보세요, 200억이라고요.”성경일은 여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저희는 먼저 가볼 테니 생각해 보시고 다시 전화 주세요. 사실 간단해요, 이 약은 찾기도 힘들고 색깔도 냄새도 없다고요, 효과도 빠르지 않아요, 그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에 힘을 못 쓰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한 달이나 지나야 죽는다고요.”“가세요, 다음에 봐요.”나봉희는 갑자기 돌아온 도범 덕분에 놀라 얼른 두 사람을 보내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 시율이를 얻기 위해서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쓰려고 하다니. 저런 사람이랑은 어울리지 말아야 해.”두 사람을 보낸 뒤에야 나봉희가 두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저렇게 교활한 사람한테 시율을 줬다가는 두 사람이 마음이 안 맞기라도 하면 시율이에게도 이런 약을 먹이는 거 아니야? 아니면 나한테 약을 먹일 수도 있는 거고. 도범이 돈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인 건 맞아
“헤어지자고? 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우리 좋았잖아, 결혼까지 약속했잖아.”박해일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냐고? 돈 때문 아니겠어? 누가 그렇게 가난하래?”장소연은 오늘 오후에 하마터면 도범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박해일은 오늘 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돈?”그 말을 들은 나봉희가 멈칫하더니 장소연에게 애걸하기 시작했다.“소연아, 걱정하지 마, 나 이제 곧 돈 생길 거야. 너 돈 필요해? 우리 엄마한테 돈 많잖아, 돈 필요하면 내가 엄마한테 물어볼게.”그 말을 들은 장소연은 혹했다. 박해일은 자신을 무척이나 믿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박해일의 누나는 물론 도범의 월급도 억 소리가 날 만큼 높았다.그리고 장소연은 지금 갈 곳도 없었다, 전에 많은 돈을 손에 넣었지만 이미 대부분을 쓴 덕분에 얼마 남지 않았다.만약 지금 도범과 헤어진다면 돈 많은 사람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있겠는가?어쩌면 일단 박해일과 만나면서 기회를 찾아 다른 돈 많은 이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도범이 박해일의 형부였으니 박해일의 앞에서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범은 지금 용 씨 집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 집안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이 용 씨 집안의 큰 도련님을 만날 기회가 생겨 도련님과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소연은 다시 생각을 바꿨다. 그리곤 입술을 깨물곤 불쌍한 얼굴로 말했다.“해일아, 나도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내가 너희 가족한테 미안한 일을 했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박해일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소연아, 너만 내 곁에 남겠다고 한다면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다 용서할 수 있어, 나를 믿어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해일아, 역시 너밖에 없어.”장소연은 조금 감동해서 박해일의 품
지유는 남자가 어린아이에게까지 손을 댈 줄 몰랐다. 얼른 일어난 그녀는 수아에게 달려가 넘어지려던 수아를 안았다.“들었지? 아이는 어른들의 일에 끼어들면 안 되는 거야.”두 남자의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봤지, 우리 집 애도 알고 있는 도리라고.”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단추가 떨어진 지유의 하얀 와이셔츠를 보며 침을 삼켰다.“말해, 어떻게 갚을 거야? 50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갈 생각하지 마!”“50만 원?”지유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수아를 안고 일어섰다.“너무한 거 아니에요? 저랑 수아가 금방 차에 올라타서 가지도 않았는데 혼자 후진하다가 저희를 넘어뜨린 거잖아요, 그런데 돈을 내놓으라고요?”“그러니까요, 나쁜 사람들, 우리를 다치게 해놓고 사과도 안 하고 돈을 배상하라고 하다니, 다 나쁜 사람들이야! 수아 아빠가 알면 나쁜 사람들 다 끝났어, 우리 아빠 영웅이야, 나쁜 사람들만 골라서 혼내준다고!”자그마한 수아는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씩씩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다른 아이였다면 진작에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하지만 수아도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 불쌍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영웅? 나쁜 사람들만 골라서 혼내준다고?”수아의 말을 들은 남자가 비웃기 시작했다.“그럼 무슨 소용이 있는데? 돈 있어? 우리 아들을 봐, BMW를 타고 학교를 다니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이렇게 더운 날에 전기스쿠터를 탈 수밖에 없잖아. 돈도 없으면서 여기에 와서 공부할 생각을 하다니, 학비도 다른 사람한테 빌린 거지?”“형님, 형수님께서 집에서 형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돈이나 받고 가죠.”또 다른 남자의 팔뚝에는 문신까지 있어 보기에 무서웠다. “저, 저는 돈 없어요! 가정부일 뿐이라고요, 대신 아이를 데리러 온 것뿐이에요.”지유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상대방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우리 아빠도 차 있어요, 이것보다 훨씬 멋있어요.”박수아가 씩씩거리며 말했
보기에 삐쩍 마른 남자가 당황해서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동생을 보며 말했다.“어떡하냐? 저놈 포르쉐 911 끌고 왔는데, 이번에 왠지 사고 친 것 같아. 저 차 가격이 어마어마하다고.”하지만 그의 동생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었다.“형, 담이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뭐 무서울 게 있다고 그래. 저쪽에서 형을 놀라게 하려고 그런 거야, 저거 다 가짜라고!”“그게 무슨 말이야?”삐쩍 마른 남자가 의아하게 물었다.“저 남자 옷차림새를 봐, 평범하잖아, 저런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문신남이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그냥 다른 사람 기사로 일하는 놈인 거야. 저 여자도 가정부가 아니라 저놈 마누라인 거지.”“아, 그런 거였어.”삐쩍 마른 남자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 70만 원 없이는 못 가!”그리고 옆에 세워진 포르쉐 911을 가리키며 말했다.“네가 기사 노릇 하는 사람이라는 거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다른 사람 대신 차를 운전한다고 그 차가 네 것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기사 따위를 내가 왜 무서워하겠어?”“당신이 후진하다가 우리 집 가정부랑 딸을 다치게 해놓고 돈을 달라고? 배상금은 내가 달라고 해야지.”말을 마친 도범이 전기스쿠터 앞으로 가 한 손으로 전기스쿠터를 들곤 BMW 쪽으로 던졌다.“퍽!”BMW는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앞 유리와 엔진이 있는 보닛까지 전부 일그러졌다.“이 자식이 감히 내 차를 부셔?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상대방이 화가 나서 도범에게 달려들으려고 했다.하지만 도범은 손쉽게 한쪽 손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상대방이 고통에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여기 애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 죽여버렸을 거야!”“젠장!”문신남은 자신의 형이 맞은 모습을 보곤 도범에게 달려들었다.“퍽!”하지만 도범은 발길질 한 번 만에 문신남을 차가 있는 곳까지 날아가게 했다. 결국 문신남은 피를 토했다.“잘못했습
도범이 생각해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이 물으면 남자친구가 사줬다고 해, 내가 사줬다고 하지 말고, 알겠지?”“그런데 이렇게 비싼 차를 저한테 주는데 아가씨랑 얘기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지유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아우디 A6도 가격이 싼 차는 아니었는데 도범이 그녀에게 그런 차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한낱 가정부인 그녀가 이런 차를 타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말할 필요 없어, 비싼 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이 일 시율이한테도 알려주지 마, 알겠지?”도범이 웃으며 당부했다.“네, 알겠습니다.”지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도범의 신분을 도저히 추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적어도 도범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돈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퇴역을 할 때 몇 억 원의 상여금을 받았으리라고 지유는 생각했다.“우리 수아 안 아파?”도범이 수아를 안아 들더니 종아리의 상처를 살펴보며 물었다.“안 아파, 아빠가 나쁜 사람들 혼내줘서 수아 너무 기뻐, 앞으로 나도 나쁜 사람들 혼내줄 거야.”수아의 얼굴에 드디어 천진난만한 웃음이 걸렸다, 아이의 눈에 도범은 산처럼 위대했다.아빠만 나타나면 모든 나쁜 이들은 그의 앞에서 잘못했다고 구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자, 사탕 하나 먹어, 이거 먹고 나면 수아 다리 얼른 나을 수 있을 거야.”도범이 웃으며 까만색의 약을 수아에게 먹였다.“한입에 꿀꺽 삼켜야 돼!”“응.”수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말 한입에 꿀꺽 약을 삼켰다.하지만 아이는 금방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수아는 도범에게 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빠, 이거 왜 이렇게 써!”“세상에 안 쓴 약이 어디 있어.”도범이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포동포동한 얼굴에 입을 맞췄다.“지유야, 단추 빠진 것 같네.”그제야 단추가 빠진 지유의 와이셔츠를 발견한 도범이 어색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지유가 고개를 숙
잠시 후 지유는 갓 뽑은 아우디를 몰고 수아와 함께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도범은 박시율을 기다려서 함께 돌아가려고 그녀의 회사 앞까지 운전해 도착했다.박시율이 퇴근한 후 두 사람은 그제야 앞뒤로 나란히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우와 이거 새 차잖아? 멋지네!”정원에 들어서던 박시율은 문밖에 세워진 차를 보고 말했다.“저거 누구 거예요? 설마 어머니가 해일이한테 사준 차는 아니죠?”“아니야. 내가 언제 시간이 나서 네 동생한테 차를 사주러 갔겠니? 네 동생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어!”“그리고 도범이가 예전에 네 동생과 약속했었잖아. 나중에 월급을 타면 2억이 넘지 않는 선에서 차를 뽑아주겠다고. 사주겠다고 한 사람이 멀쩡히 있는데 왜 내가 그 돈을 쓰겠니?”나봉희가 곧바로 대답하더니 도범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길에서 하루빨리 도범이 아들한테 차를 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 선명했다.“아가씨, 그 차 제거예요!”지유가 달려오더니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네 거야? 멋지다 지유야. 너 언제 이렇게 부자가 된 거야?”박시율은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지유의 집은 가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녀의 월급도 높지 않았다.“이, 이건 제 남자친구가 제게 선물해 준 거예요!”지유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네 남자친구 집안도 그렇게 부유한 편은 아니지 않았나? 이 정도 차는 1억에서 1억 2천만 정도 하잖아? 안 그래도 우리가 월급을 타게 되면 너한테 차를 사줄 생각이었어. 네가 수아를 데려가고 데려오잖아! 그런데 네 남자친구 너한테 엄청 잘해주네. 너한테 이렇게 좋은 차도 다 사주고 말이야!”박시율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사람한테 이런 차는 확실히 쉽게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괜찮아요 아가씨, 앞으로 제가 이 차로 수아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면 돼요!”지유가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그래! 그러면 내가 도범 씨한테 네 월급을 올려줘라고 할게. 매달 드는 기름값 같은 것도 당연히 우리가 다 내야지!”박시율이 미소 지
“수아의 다리가!”수아를 돌아 보던 지유가 순간 너무 놀라 굳어버렸다. 수아는 아까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었다. 그리고 심지어 피까지 났었다.그런데 지금 아이의 다리는 언제 넘어졌냐는 듯이 아무런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다리가 왜?”박시율이 고개를 돌려 돌아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 별일 아니에요. 아까 수아가 넘어졌었거든요!”도범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들어갑시다. 다들 들어가서 식사해야죠.”“지유야, 이리 와. 너도 우리와 함께 밥 먹고 돌아가!”박시율이 지유의 팔을 잡아끌며 함께 식사하러 들어갔다.“참 도범 씨, 오늘 그놈들을 따라갔던 건 어떻게 되었어? 어머니가 잃어버렸던 돈 다 되찾아 왔어?”“정말 장소연이 그런 거야? 거기서 그녀를 직접 봤어?”오전에 박시율은 부모님들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 후 바로 출근했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회사 일로 바쁘다 보니 밖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응 그녀와 폭주족들이 함께 있었어. 돈은 내가 다시 찾아왔어!”도범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폭주족들의 보스가 신용당 당주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찾아왔으니 다행이야. 너무 다행이지!”곁에 있던 서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 돈을 되찾아오지 못했다면 아마 나봉희가 정말로 도범이한테 배상하라고 했을 것이다.나봉희가 어떤 성질을 지닌 사람인지는 서정도 지난 5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잘 알게 되었다.“어머니 제가 그랬죠? 그 장소연이라는 애 절대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내 말을 믿지 않더니, 보세요! 이제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죠?”박시율은 드디어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보이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이번에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든지 절대 다시는 해일이와 만나지 못하게 할 거예요.”“참, 정말이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나봉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난 그 여자애가 집안도 가난하다고 해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생을 겪은 참하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