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는 차에 오르자마자 나를 보며 물었다.“아직도 불편해요?”형수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할 리 없었다.야심한 시각, 차에는 나와 형수 둘뿐이었다.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부둥켜안고 입술을 비볐다.한참 동안 입을 맞춘 뒤 형수는 나를 놓아주었다.“여긴 위험해요. 우리 안전한 곳을 찾아요.”“밖에서요?”“우리 집에 갈래요? 그럴 배짱 있어요?”이건 내가 배짱이 있고 없고를 떠나, 동성 형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형수는 내 목을 끌어안고 말했다.“수호 씨한테 성에 대해 처음 알려줄 때 우리 집에서 했잖아요. 그때 그 경험 다시 해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는데 진동성 그 인간한테서 전화 한 통 안 오는 걸 보면 아마 집에 안 왔을 거예요. 난 수호 씨랑 집에서 하고 싶어요. 그래야 나도 소속감이 들어요.”형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하면 형수가 슬퍼할 것 아닌가?“좋아요. 형수네 집에 가요.”나는 차를 운전해 형수네 동네로 향했다.우리는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섰다. 그랬더니 동성 형은 역시나 집에 없었다.집안이 캄캄해 불을 켜려고 하던 찰나, 형수가 나를 막아섰다.“불 켜지 마요. 난 어두운 게 좋아요. 그래야 마음 놓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나는 형수의 말대로 불을 켜지 않았다.우리는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형수를 오랜만에 안는 거라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형수 역시 그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 몸은 이미 민감할 대로 민감해져 있었다.형수와 하는 동안, 형수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40분 뒤, 형수는 내 품에 나른하게 기대 누웠다.“역시 수호 씨랑 하면 항상 만족스러워요.”나는 형수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형수, 고생했어요.”“내가 고생할 게 뭐 있어요?”형수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그동안 참고 다른 남자 만나지 않아서 고생했다는 거예요. 나 때문이에요?”“몰라요. 아마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왜 몰라요?”나는 의아했다.“나도 다른 남자 만나볼까 생각해
물론 그렇다지만 나는 역시나 자리를 피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만약 나와 형수가 뒹군 걸 본다면, 동성 형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저 베란다로 애교 누나 집에 넘어갈게요.”나는 신속하게 옷을 주워 입고 말했다.형수도 내 뜻을 알아차리고 안쓰러운 듯 나에게 쪽 입 맞췄다.“그러면 조심해요.”“이따가 전 바로 갈게요. 형수도 피곤할 텐데 이만 쉬어요.”나 역시 형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형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배웅했다.나는 옷을 입은 뒤 곧장 베란다를 넘어 애교 누나 집에 들어갔다.두 곳은 나한테 모두 익숙했기에 베란다를 넘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동안 애교 누나 집에 아무도 살지 않은 터라 먼지가 조금 쌓였다.익숙한 집안을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옛날 생각이 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그때가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좋았고 충분히 만족됐다.나는 몰래 애교 누나 집을 떠나 사모님 집으로 향했다.그동안 체력이 늘었는지 나는 기운이 넘쳐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나는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구매했다. 내일 아침에는 내가 식사 준비를 할 생각으로.집에 도착했더니 사장님과 사모님은 모두 잠이 들어 집안이 무척 조용했다.나는 발꿈치를 들고 주방에 들어가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하지만 그때 옆 방문 앞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흰 슬립을 입고 있는 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랐다. 하마터면 처녀 귀신이 기어 나왔다고 착각할 뻔했다.“윤 사장님, 한밤중에 자지 않고 뭐 하세요?”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었다.야밤에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를 보면 그게 누구라도 무서워할 거다.윤미화는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그건 내가 물을 말이지. 한밤중에 어디 갔다 왔어?”나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오늘 오후에 형수와 애교 누나가 사장님 뵈러 왔었거든요. 늦게까지 있다가 가서 집에 바래다
사모님은 싱긋 웃었다.“미안할 거 없어요. 도움을 청하는 마당에 집안일까지 시킬 수는 없잖아요.”사모님은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다시 원래의 우아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그 모습을 보니 나는 무척 기뻤다. 사모님이 나한테 잘해주는 건 바라지 않지만 전처럼 쌀쌀맞게 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윤미화는 오늘 아침 일찍 떠나지 않고 식탁 앞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손가락으로 노트북을 탁탁 두드리며 타자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무심코 일화용 팬티를 발견했다.‘이건 내가 지난번에 사모님한테 사드린 팬티잖아? 그런데 사모님은 왜 일회용 팬티를 입지?’일회용 팬티는 계속 갈아입을 필요가 없는 한 입을 일이 없을 텐데.하지만 만약 계속 갈아입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분비물이 많아 일회용이 더 편해서일 거다.그렇다는 건 사모님한테 약간 염증이 있다는 뜻이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나는 슬쩍 밖을 내다보고는 화장실 문을 닫고 일회용 팬티를 들어 확인했다.아니나 다를까, 위에는 분비물이 많이 묻어 있는 데다 색깔도 이상했다.사모님도 몸이 안 좋으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매일 사장님을 돌보느라 자기 몸은 정작 돌보지 못하고 있다.‘나중에 사모님이 드실 약도 처방해 드려야겠어.’나는 조용히 팬티를 다시 쓰레기통에 버린 뒤 세수하고 이를 닦고 아무 일 없는 듯 밖으로 걸어 나왔다.사모님은 이미 아침상을 차려 놓고 나와 윤미화더러 먼저 먹으라고 당부하고는 일인 분을 따로 챙겨 사장님 방으로 들어갔다.사모님은 역시나 조강지처가 틀림없었다.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것도 사장님 복이었다.나는 생각을 뒤로 하고 식탁 앞에 다가가 윤미화 앞에 앉았다.윤미화는 여전히 업무를 보면서 아침을 먹었다.그러던 그때, 내가 실수로 윤미화 다리를 건드리자, 그녀는 바로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봤다.“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나 꼬시는 거야?”“헐, 사장님. 저 그런 뜻 절대 아니에요. 실수한 거예요.”“귀
그 한 방이 비록 아프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간질거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윤미화를 멀리해야 했다.“제 사장님인 거 본인도 아네요. 그런데 공공연히 남의 사생활을 캐묻는 건 사장님답지 않은 행동 아닌가요?”내 반박에 윤미화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아하니 내가 이렇게 반박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렇게 무섭게 굴고 그래?”‘이게 뭔 상황이지?’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저 요염한 눈빛은 뭔데? 설마 나를 유혹하는 건가?’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 눈에서 멀리하면 심란함도 줄어드는 법.윤미화는 젓가락으로 내 팔을 쿡쿡 찔렀다. 고개를 들어 다시 확인했더니, 가련한 모습은 나조차도 넋을 잃게 만들었다.‘윤미화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팔색조라도 되나?’때로는 여성스럽고 요염했다,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고 난폭했다 또 때로는 가련하고 청순했다.여자란 생물은 참 신기하다.무엇보다 난 항상 여자의 이런 모습에 쩔쩔맨다는 거다. 나는 마지못해 다시 강조했다.“정말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헛된 생각 하지 마요. 사장님이 저런데 사모님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윤미화는 턱을 괸 채 뭔가를 생각했다.그 사이,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빠른 속도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나는 얼른 사모님과 작별하고 출근할 준비를 했다.그때.“잠깐, 같이 가.”윤미화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윤 사장님도 차 있잖아요.”“정비 맡겼어. 나 좀 태워주면 안 돼?”솔직히 말하면 싫었지만 상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평소 같았으면 문제없었을 테지만, 요즘 윤미화는 왠지 이상했다. 이러다가 윤미화가 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어려운 질문을 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모든 걸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윤미화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제야 소여정이 강북에 온 게 임천호와 아이를 갖기 위해 몸조리를 하기 위해서라는 게 떠올랐다. 하지만 사장님 일로 그동안 바삐 보내다 보니 그녀의 일을 잠시 잊고 있었다.“저 지금 가게로 나갈 건데 이쪽으로 와요. 이따가 가게에서 봐 드릴게요.”내 말에 소여정은 알겠다고 대답했다.[그럼 이따 봐.]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리고 약 20분 뒤, 화인당에 도착했다.얼마 뒤, 소여정과 정태곤이 화인당에 나타났다.정태곤은 여전히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을 노려봤다. 마치 눈에 칼이 들어있는 것처럼.나는 놈을 한번 보고는 더 이상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소여정이 정태곤더러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자 놈은 싫어하는 눈치였다.“아가씨, 임 회장님이 저더러 항상 아가씨 곁에 있으라고 하셨습니다.”“내 옆에 붙어 있어서 뭐 해? 내가 임 회장님한테 미안한 짓할까 봐 감시하려고? 여기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얼마나 방탕하면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하겠어?”정태곤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아닙니다.”“그럼 더 이상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밖에서 기다려.”소여정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호통쳤다.소여정 앞에서 정태곤은 순한 양이 되었다. 내가 비록 정태곤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 자식을 혼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통쾌했다.그동안 몸조리를 한 덕에 내 팔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이제 더 이상 깁스도 할 필요가 없었다.나는 소여정을 데리고 마사지룸으로 향했다.“앉아요. 이따가 봐줄게요.”말을 마친 나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소여정이 내 뒤에 서 있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그 때문에 갑자기 돌아선 순간 하마터면 소여정과 마주칠 뻔했다.매혹적인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내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왜, 왜 남의 뒤에 서 있어요?”나는 속이 벌렁거려 소여정을 흘긋거렸다. 그러다가 시선이 소여정의 얼굴에 닿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이건 어쩔 수 없었다. 소여정이 너무 예뻤으니까. 붉은
나는 소여정한테 약점이 잡힌 기억이 없었기에 그녀의 협박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하지만 고개를 들어 확인하는 순간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소여정 손에는 나와 윤지은이 용천 호텔에 함께 있던 영상이 있었다.그 영상을 본 순간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어떻게 이 영상이 있어요?”머리를 굴려 봤더니 백연우가 영상을 공유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백연우가 내 방에 몰래 소형 카메라를 설치했었으니까.나는 순간 백연우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몰래 남을 훔쳐본 것도 모자라 그 영상을 소여정한테 공유하기까지 했다니.‘나를 진짜 나를 죽일 작정인가?’나는 소여정의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다.“영상 지워요.”하지만 소요정은 매우 민첩하게 몸을 피했다.“지우라고 한다고 내가 지워야 해?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절대 안 지워.”“지은 씨가 알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지은? 평소에 그렇게 불러? 둘이 그날 깊은 대화를 한 게 끝이 아닌 가 보네. 뭔가 더 있네, 더 있어.”예전에 백연우가 영상으로 협박하는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윤지은과의 사이를 실토한 적이 있다.하지만 소여정의 반응을 보니 백연우가 그것까지 말한 건 아닌 듯했다.그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그렇지 않으면 윤지은이 발견하는 순간 내가 죽을지도 모르니까.“다시 한번 말할게요. 지워요.”나는 더 이상 소여정을 쫓아가지 않고 명령조로 말했다.그러자 소여정은 일부러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싫은데. 내가 안 지우면 어쩔 건데?”나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소여정을 향해 달려갔다.소여정은 내가 핸드폰을 빼앗으려는 줄 알고 얼른 제 품속에 숨겼다. 하지만 소여정이 피할 줄 알고 나는 다른 걸 노렸다. 겉으로는 핸드폰을 노리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소여정을 와락 끌어안아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소여정도 결국엔 여자였기에 힘으로 나를 이길 수는 없었다.“정수호,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감히 나를 안아?”소여정은 내가 핸드폰을 빼앗을까
소여정이 너무 가볍게 말해 도저히 어떤 말이 진짜고 어떤 말이 가짜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내가 죽으면 소여정 씨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요? 왜 자꾸 제가 죽기를 바라요?”소여정은 아무리 봐도 나랑 상극이 틀림없다. 소여정이 나타날 때마다 나한테 재난이 닥치는 걸 보면.전에 그나마 생겼던 호감도 이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이득은 없지. 그렇다고 나쁜 점도 없잖아?”‘그래.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얘기 안 하면 그만이야.’소여정은 이미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도로 넣었다. 이대로 소여정한테 꼬투리가 잡혀 나는 앞으로 또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소여정은 내 약점을 잡고 일부러 놀려댔다.“우선 내 발부터 좀 주물러 봐.”소여정은 말하면서 하이힐을 벗어 백옥 같은 발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이 상황에 뭘 어쩌겠나? 나한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나는 머리가 복잡했다.모든 게 다시 소여정한테 휘어잡혀 쩔쩔매던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하지만 소여정은 정말 안 예쁜 곳이 없었다. 심지어 발마저 백옥처럼 하얗고 좋은 냄새가 났으니. 게다가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탓에 워낙 뽀얀 발이 더 예뻐 보였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여정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발을 마사지했다.그때 소여정이 발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말 좀 해. 목석도 아니고. 너무 재미없잖아.”“뭘 말해요? 내가 언제 죽나 예기할까요?”나는 저도 모르게 토라진 여인처럼 불만을 토로했다.그러자 소여정이 또 발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내가 언제 수호 씨가 죽는 걸 바랐다고 그래? 내가 정말 그런 마음이었으면 그 영상을 지은이 아빠한테 보냈어.”하긴, 맞는 말이었다.하지만 소여정한테 약점을 잡혔다는 자체가 너무 짜증 났다.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됐어. 농담이야. 그 영상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감상할게.”“미쳤어요? 그렇게 보고 싶으면 인터넷에 그런 영상 널렸어요. 왜 꼭 자기 친구 걸 봐요?”나
그게 아니라면 놈이 질투하는 눈빛을 할 리가 없다.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질투가 너무 짙어 못 본 척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나는 얼른 손을 떼려다가 그렇게 하면 오히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의사인 내가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었다.“뭘 봐요? 의사가 환자 치료하는 게 뭐 문제 있어요?”나는 정태곤을 바라보며 쌀쌀맞게 말했다.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할수록 정태곤이 경계를 풀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정태곤은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더 원망스럽게 쏘아보더니 터벅터벅 다가왔다.“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뭐야? 내가 뭐 잘못 말했나?’나는 질투에 눈먼 사람의 눈에 그 어떤 해명도 소용없다는 걸 모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더군다나 자기한테 이런 말 할 자격도 없는 내가 이런 태도로 말했으니, 정태곤이 나를 보는 눈빛은 더욱 원망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태곤은 정말 소여정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는 소여정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데, 나는 그녀의 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니, 정태곤의 눈은 질투로 번뜩였다. 마치 나를 당장 찢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정태곤, 뭐 하자는 거야? 정 선생이 내 병 치료하는 걸 방해하려는 거야? 내 몸조리 방해할 생각이야? 나랑 임 회장님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소여정이 제때에 나를 구해 주었다.그러자 정태곤은 황급히 걸음을 멈추고 표정을 풀었다.“그런 뜻 아닙니다.”“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누구 마음대로 들어오래?”소여정이 또다시 호통쳤다.그러자 정태곤은 얼른 허리를 굽신거렸다.“한참 지났는데 나오지 않으셔서 걱정되어 들어와 봤습니다.”“걱정한 거야? 시름이 안 놓인 거야? 그것도 아니면 나를 의심한 거야?”소여정은 정태곤을 빤히 바라봤다. 정태곤은 그 눈빛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
애교 누나는 그중 하나를 꺼내 바늘로 구멍을 뚫었다.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콘돔 한 박스를 사서 다시 올라왔다.내가 돌아오자 애교 누나가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아까 서랍을 찾아봤는데 한 박스 있더라고요. 우리 이거 써요.”“다 돼요.”나는 두말없이 애교 누나를 덮쳤다. 그러고는 관계가 끝난 뒤 깊이 잠들었다.그때 애교 누나는 내 등 뒤에 누워 내 얼굴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수호 씨, 미안해요. 이런다고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하늘의 뜻에 맡길래요.”애교 누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나와 결혼해 우리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아이를 갖자고 하면 내가 당연히 거절할 걸 알았기에 이런 방법을 사용했던 거다.애교 누나는 아이만 있으면 나와 순조롭게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딸이 미혼모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애교 누나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요즘 들어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다. 누나는 나와 결혼하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함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전에 누나가 먼저 나더러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한 건 내가 일찍 결혼하면 결혼을 족쇄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자기한테 흥미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이렇게 노심초사하는 게 애교 누나는 매우 괴로웠다. 더군다나 오늘 밤 왕정민이 보낸 택배를 받은 탓에 애교 누나는 더욱 자극받았다.애교 누나는 내가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미안해요. 그러니까 나를 탓하지 마요.”애교 누나는 내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나는 잠결에 애교 누나가 내 품을 그리워하는 줄 알고 누나를 품으로 끌어들여 꼭 안았다.드디어 천수당 개업식날이 되었다.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7시쯤 천수당으로 향했다.7시 30분쯤 민우와 현성도 잇따라 도착해 우리는 함께 가게를 꾸몄다.그러다가 8시쯤 고수연이 아침을 사 들고 가게에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고수연을 우리 가게 회계사로
“잠깐만요. 여기에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어요.”그 쪽지를 꺼내 내용을 본 순간 내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워졌다.이 안에 든 물건은 왕정민이 보낸 것이었다. 게다가 이 물건은 애교 누나에게 보낸 게 아니라 나한테 보낸 거였다.왕정민은 쪽지에 모욕적인 욕설을 가득 적었다. 심지어 애교 누나가 중고라면서 나와 천생연분이라고 욕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가만두지 않겠으니 딱 기다리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나는 곧장 그 쪽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왕정민 그 개자식이에요.”애교 누나는 여전히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왕정민이 왜 이런 짓을 해요? 이미 떠났으면서 아직도 날 놔주지 않겠다는 거예요?”“아마도 우리는 점점 잘 사는데 본인은 하루하루 지옥에서 보내고 있으니 불만이 생긴 모양이에요.”왕정민은 전승빈을 해치려던 일이 실패한 뒤 어쩔 수 없이 강북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의 사업은 모두 강북에 있었기에 그가 그렇게 떠나고 나니 회사는 하루아침에 몰락했다.그러니 원망하지 않을 리가 있을까?“제가 이거 버리고 올게요.”고작 이런 방식으로 겁을 주려 하다니 왕정민이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건을 버리고 돌아왔다. 하지만 애교 누나는 너무 충격이 컸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나는 누나가 너무 안쓰러워 품에 꼭 안았다.“됐어요. 이제 괜찮아요. 왕정민은 강북에 없으니 그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겁주려는 것뿐이에요. 앞으로 또 이런 택배가 오면 아예 받지 말고 거절해요.”애교 누나는 내 품에 꼭 기댔다.“수호 씨, 왕정민이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난 그 인간이 강북에 다시 돌아와 두 배로 복수할까 봐 두려워요.”“두려울 거 뭐 있어요? 저 이제 많이 변했어요. 덤빌 테면 덤벼 보라죠.”내 말은 사실이다.지금의 나는 싸움 실력이든 개인 능력이든 모두 크게 향상했다. 오히려 왕정민은 집 잃은 개 신세가 되어버렸다.역시 사람 일
“너무 잘됐네요. 이러면 나도 취업 문제를 해결했고 수호 씨도 가게 문제를 해결한 셈이네요.”고수연은 어찌나 기뻤는지 특별히 반찬 몇 가지를 더 준비했다.물론 나는 그저 한번 시도해 보라고 했지 남을 수 있을지 말지는 고수연의 능력에 달렸다.우리 가게 장부는 반드시 세심히 정리해야 하기에 조금의 착오도 용납할 수 없다.그런데 몇 년 동안 일을 쉰 고수연이 단번에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하지만 어찌 됐든 발등에 떨어진 문제는 이미 해결한 셈이다.“그럼 하던 일 마저 해요. 저는 형수 잠깐 보고 올게요.”나는 침실에 들어가 형수의 상태를 살폈다.형수는 집에 돌아온 이후로 아무런 반응도 한 적 없다.그 사실만 떠올리면 나는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했다.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매일 있었던 일을 형수한테 들려주어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주는 것이었다.“형수, 얼른 일어나요. 저 가게 오픈했어요. 진동성도 더 이상 강북에 없고요. 앞으로 형수 괴롭힐 사람 없어요.”나는 형수의 손등을 살살 닦아냈다.그 시각 형수는 속으로 소리 지르고 있었다.‘수호 씨, 나도 일어나고 싶어요. 그런데 눈꺼풀이 봉인된 것처럼 떠지지 않아요.’형수는 사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완전히 정신을 차릴 수는 없었다.매일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형수는 다 알고 있었다. 형수도 무척 깨어나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일어날 수 없었다.나는 형수를 잠시 돌보다가 애교 누나가 보낸 문자를 받고 누나 집으로 향했다.“누나, 무슨 일로 저를 찾았어요?”애교 누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저녁 준비했는데 수호 씨랑 같이 먹고 싶어서 불렀어요.”사실 나는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애교 누나의 호의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그러자 애교 누나는 닭 다리 하나를 짚어주었다.“수호 씨, 많이 먹어요. 그동안 가게 일 때문에 힘들었죠?”“아니에요. 매일 바쁘긴 했지만 그만큼 알찼어요.”“그
주해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난 괜찮아. 돈만 벌면 되니까. 네가 직접 봐 봐.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왔잖아.”“게다가 대부분 정 사장 소개로 온 사람들이야. 이것만 해도 넌 정수호 따라가려면 멀었어. 이런데도 승복하지 못하겠어?”김진호는 가게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주해진이 웃으며 김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네가 남보다 못하다는 거 인정하는 거 어렵지 않아. 다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이잖아. 돈만 벌면 되지. 게다가 넌 신경도 쓸 필요 없이 연말마다 배당을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좋은 일을 어디서 찾아?”“저 자식들이 가게 일에 신경 쓰고 싶다고 하면 신경 쓰라고 해. 나를 좀 따라 배워. 사람은 마음을 비워야 해.”주해진은 말을 마친 뒤 허허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김진호의 마음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매일 할 일도 없이 술집 일만 돕다 보니 김진호는 자기가 참 쓸모없게 느껴졌다. 전에 주해진은 분명 천수당이 잘 자리 잡으면 방법을 대서 그를 꽂아주겠다고 했는데 지금 보아하니 주해진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그 때문에 김진호는 자기가 주해진한테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사촌형이 남을 편드는 것도 서러운데, 그 남이 하필 그의 철천지원수라니.김진호는 이 분노를 도저히 삼킬 수 없었다....“수호야, 모든 준비가 다 끝났어. 내일 개업하면 돼.”민우와 현성도 하루 종일 바삐 일했다.나는 모두를 휴식하게 하고 내일 개업하는 시간을 정했다.“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면 돼. 이제 다들 가서 휴식해. 내일 개업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면 돼.”주해진은 허허 웃으며 다가왔다.“대단한걸. 아직 정식으로 오픈한 것도 아닌데 벌써 수입도 생겼네.”나도 웃으며 대답했다.“오늘은 지인 소개로 온 손님들이야. 이런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면 우리 가게 평판이 좋아야 해. 그러니 가게에서 사용하는 약재도 좋은 걸 사용해야 해. 예전의 공급업체와는 더 이상 손잡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애교 누나에게 이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지금껏 애교 누나와 알게 된 이래 우리는 로맨틱한 기억이 없었다. 내가 한 번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기에 그런 기억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내 유일한 추억이라고는 그저 애교 누나의 훌륭한 몸매와 다정한 모습뿐이다.이 모든 게 그저 욕망 때문이라면 내가 너무 나밖에 모르는 쓰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문자를 보낸 뒤 나는 곧장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애교 누나가 보낸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좋은 아침이에요.]짤막한 한마디였지만 그걸 본 순간 내 기분은 유난히 좋았다.이게 바로 연애의 맛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 나왔던 것처럼 단순한 연애의 맛.나는 침대에 누워 애교 누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다.그때 민우가 들어와서 아침에 뭘 먹을 건지 물었고 나는 ‘아무거나’라고 대충 대답을 흐렸다.그러자 민우는 아예 내 쪽으로 다가와 침대에 털썩 앉았다. 나도 민우를 피하지 않았기에 그는 나와 애교 누나의 대화 내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아침부터 연애질이야?”민우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부러워했다.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네가 나더러 좀 배우라며? 그래서 실천 중이잖아. 그런데 기분은 진짜 좋네.”“수호야, 뭐 하나만 물어보자.”“뭔데?”“너 정말 애교 누나랑 결혼할 거야?”나는 되려 반문했다.“난 애교 누나랑 결혼하면 안 돼?”“어. 난 네가 그냥 누나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 줄 알았지.”“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나는 민우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지금껏 나는 내 감정에만 신경 쓰면서 다른 사람의 견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알아내면 나도 이태웅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그때 민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너 여자 친구 많잖아. 그 누나들과 모두 결혼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아? 그래서 네가 결혼하겠다고 한 건 그냥 여자 달래는 수법인 줄 알았지.”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보아하니 다른 사
나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건 왜요?][내가 남자의 다릿심에 관한 특집 하나 만들 거거든.]‘그런 거였구나. 난 또 나랑 뭘 해보자는 줄 알았네.’나는 두말없이 영상을 찍어 전송했다.[됐어. 나 이제 영상 편집해야 해서 얘기는 나중에 해.]어렵게 대화할 상대를 찾았나 싶었는데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하고 또 가버렸다.‘됐어. 그냥 영상이나 찾아보자.’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영상을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그러다 비몽사몽 중에 누군가 내 방으로 들어와 내 몸을 더듬는 걸 발견했다.그 순간 나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누구야?”“수호야. 나야.”그건 다름 아닌 민우의 목소리였다.“젠장. 깜짝 놀랐잖아. 걷는데 왜 소리도 없어? 내 몸은 왜 더듬는 건데?”나는 말하면서 침실의 불을 켰다.그러자 민우가 헤실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난 현성인 줄 알았잖아. 너인 줄 몰랐어.”“왜? 너 현성이한테 관심 있어?”“아니거든. 전에 형성이 그 자식이 여자애랑 해본 경험이 없다고 기회가 되면 우리끼리 먼저 체험해 보자고 했거든.”그 말에 내 눈은 커다래졌다. “너희 변태야? 남자 둘이 어떻게 해?”“그냥 체험. 진짜로 하는 게 아니라. 수호야, 나 요즘 임설아랑 부쩍 가까워졌어. 이제 꼭 결혼할 거야. 사실 나도 설아랑 진도 더 빼고 싶은데 내가 이런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데, 네가 좀 가르쳐줄래?”‘이 자식 뭐라는 거야? 남자를 상대로 어떻게 가르쳐달라는 거지? 난 남자를 보고 아무 느낌도 없는 건 물론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나는 두말없이 야동 하나를 공유했다.“네가 직접 봐.”“어. 이런 영상은 싫어. 너무 노골적이잖아. 좀 아름다운 영상은 없어?”“나도 섹스를 어떻게 아름답게 해야 하는지 몰라. 너 사람 잘못 찾아왔어.”나는 확실히 그런 방법 따위는 모른다. 나는 항상 하고 싶으면 바로 본론으로 직행하는 스타일이라.민우는 내 말에 투덜거렸다.“나 정말로 설아랑
곧이어 백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호 씨, 좋아요?”“당연하죠. 연우 씨처럼 농염한 여자를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어요?”곧이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그 순간 내 뇌는 새하얗게 질렸고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나는 다급히 그곳을 떠났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고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안 와서 다른 사람을 부른 건가?’‘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즐길 목적으로 만난 건데 진지할 거 뭐 있어?’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좋지 않았다.나는 차에 앉아 담배를 연거푸 몇 대를 태웠다. 하지만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월세방으로 돌아갔다.그동안 조현성과 주현영이 월세방에서 함께 지냈다. 현성은 매일 가게에 나가보는 것 외에 온 신경을 주현영에게 쏟아부었다.그리고 현성의 끊임없는 노력 덕에 주현영은 확실히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내가 돌아왔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본 현성은 실망한 의아한 듯 말했다.“수호야, 네가 왜 왔어?”여긴 분명 내 집인데 현성은 오히려 내가 손님인 것처럼 굴었다.하지만 나는 말하기 귀찮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너무 피곤해 운전하기 싫어서 여기로 왔어.”현성은 곧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럼 너 혼자 여기서 지내. 난 선영이 데리고 영화 보러 갈 거야.”“그러던가.”현성은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다만 이 기회에 주선영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호텔 방 하나 잡아...현성은 생각할수록 기뻤다.원래는 이곳에 돌아와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현성 이 자식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친구를 바로 버렸다.현성이 주현영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집에는 또 나 혼자 남았다. 그 순간 기분 나쁜 일들이 물밀듯 밀려왔다.하지만 내가 질투할 자격이 있을까? 나와 백연우는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백연우가 누구를 만나든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사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우리 화인당과 천수당이 힘을 합쳐 사업을 더 크게 발전시켜 봐요.”“하하. 나도 바라던 바야. 앞으로 화인당에 정형외과 환자가 있으면 천수당을 추천할게. 그쪽에도 마사지를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우리 화인당을 추천해.”마침 정 사장님과 뜻이 맞아 나는 무척 기뻤다.나는 얼른 사장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사장님.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분명 이 업계를 점점 더 잘 발전시킬 수 있을 거예요.”그때 유미 사모님이 옆에서 농담조로 끼어들었다.“두 사람 너무 친한 거 아니야? 보는 내가 다 부럽네.”나는 머쓱해서 사장님 손을 바로 놓아주었다.“사장님, 사모님. 일찍 쉬세요. 전 방해하지 않을게요.”“수호 씨, 내가 앞까지 마중해 줄게요.”사모님은 마치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문을 나서자마자 사모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우리 그이 몸 완전히 회복된 거 맞죠?”사모님이 이 말을 할 때 얼굴부터 귀불까지 발그스름했다.그 순간 나는 사모님의 뜻을 이해했다.유미 사모님은 무척 함축적으로 물어보면서도 부끄러워했다. 사모님은 워낙 내성적이라 백연우처럼 남녀 간의 정사를 함부로 입에 쉽게 담지 못했다.나 역시 사모님이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기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문제없을 거예요. 자제하면서 하면 돼요.”내 말에 유미 사모님의 얼굴은 확 달아올랐다.“내, 내 말은 그게 아니라.”“사모님, 저 다 알아요.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서 사장님 돌봐드려요.”“그래요.”사모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답고 눈부셨다.사실 나는 사모님의 마음을 진작 꿰뚫어 봤다. 오늘 특별히 한껏 치장하고 예쁘게 화장한 것도 모자라 섹시한 옷을 입은 걸 보면 사장님을 꼬시려는 게 분명했다.사모님과 사장님 대신 내가 다 기뻤다. 사장님이 건강을 되찾았으니 사모님도 이제 더 이상 성욕을 참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두 부부의 관계도
윤지은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은 설마 너랑 잔 여자들이 모두 너한테 먼저 들러붙었다는 거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아닌가?애교 누나 외에 내가 먼저 꼬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내가 신들마저 공분하게 할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말 할 자격은 없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왜? 내 말에 자신감을 잃었어? 솔직히 말하면 너 확실히 잘생겼어. 게다가 선천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를 지니고 있어.”“그건 돈 주고 산 남자들한테서 찾을 수 없는 거야. 돈 주고 산 건 재미가 없어. 오히려 너처럼 약간 멍청한 게 사람을 더 끌리게 하지.”나는 윤지은이 오늘 밤 좀 달라 보였다. 왠지 자꾸만 나를 꼬시는 것 같았다. 물론 불장난에 휘말릴까 봐 윤지은의 뜻을 마음대로 추측할 수는 없었다.“뜬금없이 웬 칭찬이에요? 쑥스럽게.”나는 이 기회에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그때 윤지은이 내 어깨를 살짝 꼬집었다.“그러니까 잘생긴 게 다는 아니라고. 그냥 하느님이 너한테 운을 몰아준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마.”윤지은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순간 살기를 내뿜었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그 순간 나는 윤지은이 전에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윤지은은 나더러 자기 친구들을 눈독 들이지 말라고 했다. 가까운 접촉은 더더욱 하지 말고.그렇다면 나와 백연우의 일은 윤지은이 절데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윤지은이 내 가죽을 벗길지도 모르니까.나는 너무 놀라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운전했다.윤지은을 집에 데려다준 뒤 나는 다시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방금 친구 세 명이 모여 대화를 하는 바람에 나는 옆에서 듣기만 하느라 사장님께 한약관 얘기를 하는 걸 깜빡했다.천수당은 모레면 개업식이라 나는 하루빨리 화인당 일을 사장님께 다시 인수해야 했다.그동안 휠체어만 타고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