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랑 여자 친구가 지금은 없으니 우리...”백연우는 말하면서 손을 내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다급히 뿌리쳤다.“그래도 안 돼요. 윤지은 씨가 제 방에 있어요. 언제 깨어날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사모님도 있는데 들킬까 봐 걱정도 안 돼요?”“걱정되긴 무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친구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나올 때 네 사장 사모님한테 말했어. 재미 보러 나간다고. 그러니까 상관 안 할 거야.”백연우는 말하면서 또 나에게 손을 뻗었다.이에 나는 또 그녀를 밀어냈다.“그래도 안 돼요. 저 피곤해요.”나는 정력을 아껴뒀다가 애교 누나거나 형수와 하고 싶었다.하지만 백연우가 나한테 기대어 내 가슴을 살짝 께물었다.간지럽고 짜린한 느낌에 나는 순간 피가 들끓었다.“이래도 안 된다는 거야?”백연우는 고개를 쳐들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유혹했다.나는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성의 끈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백 쌤, 진짜 안 돼요. 저 진짜 죽어요.”백연우는 피식 웃었다.“어디서 거짓말이야? 네 나이대 남자애들이 얼마나 혈기왕성한데, 하룻밤에 7,8 번도 문제없다고. 내가 언제 7.8번 하자고 했어? 한 번만 하면 돼.”백연우는 딱 봐도 경험이 많아 보였다. 때문에 나 하나 휘두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그, 그럼 어디 갈 거예요?”나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끝내 타협했다.백연우는 이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밖에. 난 밖을 좋아하거든.”‘헐, 이런 취향이었어?’하지만 밖에서 하는 건 확실히 스릴 넘친다.낮에 형수와 밖에서 할 때도 평소와는 느낌부터 달라 평소보다 지구력도 늘었다.“그래요. 얼른 가서 속전 속결해요.”나는 윤지은이 깨어나거나 형수 혹은 애교 누나가 갑자기 돌아올까 봐 걱정되었다.그때 백연우가 갑자기 내 등에 뛰어올랐다.“나 업어줘.”‘무뚝뚝할 때는 그렇게 무섭더니, 부산스러울 때는 또 아이 같네. 업어 달라니.’나는 거절하지 않았다.백연우가 등에 엎드리자 갑자기 따
다만 백연우는 나를 바로 흥분시켰다.결국 한 번으로 끝내려던 게 두세 번 만에 끝났다.우리는 기진맥진하여 꽃밭에 벌러덩 누웠다.“너무 좋아. 역시 젊은 게 좋긴 좋아. 열정적이고 에너지도 넘치고.”백연우는 숨을 헐떡거렸지만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나는 문뜩 정신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가 벌써 1시간 넘게 밖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나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저 이제 가봐야 해요. 윤지은 씨가 깨어나서 제가 없는 걸 발견하면 또 트집 잡을 거예요.”백연우는 자리에 일어나 앉더니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윤지은이 그렇게 무서워?”“그걸 말이라고 해요? 재벌가 아가씨인데, 당연히 무섭죠. 어쩜 친구 넷 다 그렇게 무서워요? 아니지, 사모님이 제일 좋은 분이에요.”“유미가 좋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확신해? 유미도 우리 과일 수 있어.”옷을 입던 나는 손이 그대로 굳어버려 놀란 얼굴로 백연우를 바라봤다.“설마요. 유미 사모님도 이래요?”“하하, 농담이야. 얼른 돌아가.”백연우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먼저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산책하겠다고 나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나는 별생각 없이 정리하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하지만 급히 서둘렀는데도 내고 돌아왔을 때 윤지은은 이미 깨어 있었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침대에 앉아 차갑게 물었다.“방금 어디 갔어?”“일 있어서 밖에 다녀왔어요.”나는 거짓말했다.윤지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무슨 일이었는데?”“이봐요, 그건 내 사적인ㄴ 일이에요. 나도 내 개인 생활해야지, 뭐든 보고할 필요는 없잖아요?”내 반박에 윤지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그 순간 적당히 해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여기서 더 하면 윤지은의 화만 돋울 테니까.나는 너무 반항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관심을 한 스푼 섞었다.“아까 보니까 상태가 좀 심각해요. 요즘 마사지 계속 받아요.”잔뜩 화나 있던 윤지은은 내 말에 바로 화가 사그라들었다.“그 정도로 심
윤지은은 내가 자기 친구를 잊은 걸 탓하기라도 하는 듯 째려봤다.‘그게 나를 탓할 일인가?’‘하루에도 손님을 얼마나 많이 받는데, 내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냐고?’“그래요, 알았어요.”“태도가 왜 그래?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거야?”윤지은은 뜬금없이 화를 냈다.그런 윤지은의 태도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이봐요, 대체 어쩌라는 거예요?”“다정하게 대해줘.”윤지은은 버럭 소리치며 씩씩거렸다.윤지은은 내 태도가 나쁜 게 싫은 게 아니라, 자기한테 잘해주지 않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윤지은과 더 이상 싸우기 싫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하라는 대로 할게요. 됐죠?”나는 성질을 최대한 죽이고 울분을 참으며 말했다.하지만 윤지은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네가 내 부하야? 왜 그렇게 굽신대는데?”윤지은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짜증 내도 안 된다, 공손하게 대해도 싫다?’“이봐요, 윤지은 씨, 트집 잡으려면 시원하게 말해요. 굳이 핑계까지 댈 필요는 없잖아요?”‘정말 어이없네. 부잣집 아가씨들은 왜 성격이 다 이 모양인 거야?’‘그래도 이런 아가씨들 모시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아무튼 난 싫어.’나도 윤지은한테 화가 나 씩씩거리며 소파에 앉았다.윤지은은 내 태도에 더 화를 냈다.“지금 나한테 얼굴 찡그렸어? 당장 일어나!”윤지은은 나한테 걸어와서 소리쳤다.나도 순간 욱해서 퉁명스럽게 윤지은의 손을 쳐냈다.“싫어요. 안 일어나면 어쩔 건데요?”윤지은은 내 말에 화가 났는지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씩씩거렸다.나는 얼른 윤지은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것 봐요. 또 화내잖아요. 왜 몸에 문제가 많은지 알아요? 이렇게 자꾸 화를 내서 그래요. 자꾸 화내면 몸에 해롭다는 거 몰라요? 계속 이러면 그 병 평생 안 나아요.”나는 계속해서 반박하지 않고 윤지은의 문제점을 콕 집어 말했다. 솔직히 나도 싸우는 건 피하고 싶었다.윤지은은 당장 폭발할 것처럼 거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화병이 날 수 있다.결국 윤지은은 얼굴을 붉힌 채 창가로 다가가 나처럼 크게 웃었다.처음에는 어색하고 가식적으로 웃던 윤지은은 점차 자기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웃고 나니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쾌한 감정들이 싹 날아나 버렸다.그 덕에 기분도 자연히 좋아졌다.모든 걸 털어낸 윤지은은 긴 숨을 내쉬었다.“나 이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기분 안 좋을 때 크게 웃으면 기분 풀리는구나.”“앞으로 또 화내고 싶으면 오늘 일 생각해요.”윤지은은 내가 자기를 놀린다는 걸 알았는지 씩씩거리며 내 가슴을 퍽 내리쳤다.나는 일부러 아픈 척 연기했다.“아, 힘 너무 센 거 아니에요? 내 작고 소중안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윤지은은 웃으며 나를 발로 찼다.“징그러우니까 하지 마. 작고 소중한 심장은 얼어 죽을! 바람기 많은 심장이겠지.”“바람기 없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안 그러면 고대의 제왕은 왜 첩실을 그렇게 많이 들이겠어요? 지금은 법률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못하는 거지, 허락만 하면 남자들은 틀림없이 아내를 서너 명씩 들일 걸요.”“하도 법률이 허락하지 않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남자들이 더 기고만장할 거야.”윤지은은 창가에 엎드려 밤하늘을 보며 감탄했다.나는 옆에서 윤지은을 바라봤다. 이제야 발견한 건데, 이렇게 조용한 윤지은은 꽤 예뻤다.심지어 세속에서 벗어난 아름다움 같았다.나는 윤지은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보느라 넋이 나갔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나 훔쳐봤어?”나는 다급히 해명했다.“일부러 훔쳐본 게 아니라 예뻐서 눈에 들어온 거예요.”윤지은은 내 말에 이내 성질을 죽였다.“말이나 못 하면. 너도 좋은 놈은 아닌 것 같아.”“그건 편견이에요. 사실 나 엄청 진국이에요.”나는 여전히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나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나랑 이러는 거 여자 친구는 알아?”“몰라요.”“역시 쓰레기 맞
“가요, 가요. 운동한다 치면 되죠.”나는 무서운 게 아니라 논쟁하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형수와 애교 누나가 돌아오기 전에 두 사람 모두 처리해야겠어.’‘형수와 누나 귀찮게 하면 안 되니까.’나는 결국 윤지은을 따라 1층 로비로 내려왔다.하정현은 나를 보자마자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말했다.“이봐요, 장님, 요즘 대체 뭐예요? 나랑 약속했잖아요. 매일 마사지해주겠다고 했으면서, 요즘 왜 마사지숍에 안 나갔는데요?”“사장 사모님 기사 노릇 좀 하느라고 출근 안 했어요. 다른 선생님 찾으면 되잖아요. 그리고 장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줄래요? 그 호칭 정말 싫거든요.”“에이, 미안해요. 장님이라고 하면 안 되지, 엄밀히 따지면 사기꾼이 맞지. 맹인인 척 연기하는 거니까.”하정현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들을까 봐 나는 얼른 사정했다.“그래요, 잘못했어요. 우리 우선 방에 가서 예기해요.”“흥, 가방이나 들어요.”하정현은 가방을 나에게 던졌다. 그런데 웬걸? 너무 무거웠다.안데 대체 뭐가 든 건지?하지만 두 사람 뒤에서 걷는 것도 매우 즐거웠다.윤지은은 늘씬하고 하정현은 걸크러시 했다. 특히 오늘 입은 가죽바지와 가죽 재킷은 아주 돋보였다.윤지은은 하정현을 위해 방 하나를 새로 잡았기에, 우리는 새 방으로 향했다.“정현아, 네 방 잡아뒀으니까 오늘 밤은 여기서 자. 정수호, 내 친구 잘 돌봐. 화나게 하면 가만 안 둬.”“네, 알았어요.”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윤지은이 떠난 뒤 나는 하정현에게 말했다.“누워요. 시작할게요.”“시작은 무슨 얼어 죽을!”하정현은 말이 거침없었다.그 순간 나는 어이없이 말도 나오지 않았다.“하정현 씨, 왜 또 그래요?”“가까이 와요.”‘또 뭘 하려는 거지?’나는 하정현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왜 그래요? 설마 나한테 무슨 짓 하려는 건 아니죠?”“무슨 짓은 얼어 죽을! 전에 그랬잖아요. 가슴에 있는 혈 자리를 누르면 2차 발육을 자극할 수 있
나는 하졍현에게 다가가 가슴을 주무르다가 혈 자리를 눌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무 말랐어요. 지방이 안 쌓이는데 어떻게 커지겠어요? 차라리 수술해요.”내 건의에 하정현은 나를 발로 차버렸다.“가슴 수술할 거면 진작 했지, 왜 지금까지 기다렸겠어요? 가짜 가슴은 싫으니까 수술 안 받은 거잖아요. 얼른 알려주기나 해요. 가슴 커지는 다른 방법은 없어요?”나는 고뇌하며 말했다.“이건 타고난 거라 혈 자리를 눌러도 소용없을 것 같아요. 수술도 하기 싫다면 방법 없어요.”“마사지사도 방법이 없으면 어떡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평평하면 앞으로 결혼은 어떻게 하라고요? 아니면 수호 씨가 나랑 결혼해요.”나는 하마터면 침에 사레가 들뻔했다.“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난 마사지사지 성인이 아니에요. 정현 씨가 결혼 못 하면 왜 내가 책임져야 해요?”나는 너무 어이없었다.게다가 이 상황이 기가 막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하정현은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나를 만지고 칭찬해 줬잖아요. 여자는 원래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고, 다 똑같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잖아요.”“나를 칭찬한 사람도 수호 씨뿐이고, 내 아름다움을 알고, 싫어하지 않는 사람도 수호 씨뿐이고, 나를 만진 사람도 수호 씨뿐이라고요. 결혼 안 하겠다는 건 뭐예요? 책임 안 지겠다는 뜻이에요?”나는 얼른 애원했다.“헐, 제발 좀 봐줘요. 정현 씨 친구분 때문에 충분히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정현 씨도 보태지 말아줘요.”내 말에 하정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내 친구가 어떻게 힘들게 하는데요? 설마 옷 벗기고 강제로 했어요?”“미쳤어요?”나는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하지만 하정현은 나를 계속 잡아당기며 솔직하게 말하라고 닦달했다.“알고 싶으면 친구분한테 직접 물어봐요.”“참, 가슴 커지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뭔데요? 얼른 말해요.”“임신이요.”말을 마친 나는 얼른 뒤돌아섰다.솔직히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말
주위를 샅샅이 찾아봤지만 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형수와 애교 누나가 위험에 처했을까 봐 문득 걱정됐다.나는 계속해서 두 사람에게 번갈아 전화했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내가 한창 초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멀리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려았다.“살려주새요. 이봐요...”‘저거 애교 누나 목소리 아닌가?’나는 얼른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그랬더니 애교 누나가 옷이 흐트러진 채 도망치면서 소리치고 있었다.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애교 누나 쪽으로 달려갔다.“누나,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형수는요?”애교 누나는 내 품에 와락 안겨 오더니 흐느끼며 말했다.“아까 태연이랑 둘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계속 찝쩍대서 무시했거든요. 그리고 온천욕을 끝내고 술 마시러 갔는데 그 자식이 술에 약을 타고 나와 태연을 추행하려 했어요.”“그 자식이 나한테 손 대기 전에 깨어나 겨우 도망쳤는데, 태연은... 태연은 아직 안에 있어요...”애교 누나는 한참 동안 말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형수가 위험하다는 말에 나는 걱정되어 얼른 누나가 가리킨 쪽으로 달려갔다.그렇게 그 곳애 쳐들어간 나는 두말없이 그놈의 등을 발로 차버렸다.놈은 평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그 틈에 나는 형수에게로 달려갔다.형수의 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 하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수호 씨...”형수는 흐느껴 울며 내 품에 와락 안겼다.나는 내 옷을 벗어 형수의 몸에 덮어주었다.형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놈을 홱 째려봤다. 놈도 어느새 기어 일어나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또 너야? 감히 내 일을 또 방해해?”상대는 나를 아는 듯했지만, 나는 놈이 누구인지 기억이 없었다.게다가 너무 화가 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나는 두말없이 놈을 향해 돌진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놈은 이미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때문에
나는 눈앞의 남자를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소여정 씨한테 손댔다니? 언제? 어디서? 어떻게?”남자는 내 말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핸드폰을 꺼내 클릭하더니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사진은 바로 이 호텔 온천에서 찍힌 거였다. 소여정은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나는 그런 소여정을 도와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었다.이 사진으로 나는 내 추측을 확신했다.그 순간 머리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이 파렴치한 놈이 뒤에서 고자질한 것 때문에 소여정이 급히 떠난 거였네.’나는 왠지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또다시 놈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고는 그를 테이블에 누른 채로 얼굴을 집중 공격했다.“수호 씨, 그만해요. 그러다 죽겠어요.”형수와 애교 누나는 내가 이성을 잃자 황급히 달려와 말렸다.두 사람이 나를 막지 않았다면 솔직히 한바탕 더 때리고 싶었다.나는 이를 갈며 놈에게 경고했다.“야, 앞으로 눈에 띄지 마라. 안 그러면 볼 때마다 때릴 거니까!”놈은 여기저기 쥐어 터져 얼굴이 울긋불긋하고 부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포기를 안 했는지 발악했다.“감히 나를 때려? 너 딱 기다려. 내가 너 가만 안 둬.”녀석은 내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아는지 입을 나불거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소란을 피우다가 도망쳐 버렸다.마음 같아서는 그놈을 쫓아가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형수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됐어요. 수호 씨가 마침 딱 맞춰 와서 나한테 아무 짓도 못 했으니 그냥 가게 내버려둬요.”위험한 순간이 지나갔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형수, 정말 괜찮아요?”형수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보아하니 형수는 정말 겁을 먹은 것 같았다.아까 하나터면 그 자식에게 당할 뻔했으니까. 방금 전 장면만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수호 씨, 나 어지러워요.”형수는 약효가 아직 남아 있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러다가 힘이 죽 빠져 내 품에 그대로 넘어졌다.나는 얼른 형수를 끌어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
“그럼 왜 진작 데려오지 않았어?”소여정은 나를 나무라는 듯 노려봤다.“저도 어제저녁에 갑자기 생각난 거예요. 외지에서 학교 다니다 보면 고향에 내려갈 일이 적잖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그때 소여정이 크게 하품했다.“하, 피곤해. 난 먼저 휴식하러 테니 여기 지키고 있어.”“네, 먼저 들어가 쉬세요.”소여정은 정말 피곤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사실 소여정도 따지고 보면 참 좋은 사람이다. 친구 남편이 아프다고 이렇게 고생도 마다하고 밤새도록 환자 곁을 지켜줬으니 말이다. 그것도 임천호한테 그렇게나 예쁨 받는 사람이.이렇게 의리 있는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소여정이 가니 정태곤도 따라 나갔다.정태곤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수문장처럼 꿋꿋이 소여정을 지키기만 한다.다행히 요즘 두 번이나 만났는데 정태곤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아, 나도 정태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나는 얼른 병상 앞에 와서 진료 과정을 묵묵히 관찰했다.어르신이 진료할 때 우리 할아버지와 매우 닮았다. 모두 진지하고 엄격해 나는 감히 뭘 물어보지도, 방해하지도 못했다.나도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한의사가 환자의 맥을 짚어보는 과정에 누군가 물어보면 짜증 난다는 걸 잘 안다.얼마 뒤 어르신이 맥을 짚던 손을 내리자 나는 얼른 물었다.“할아버지, 어때요?”어르신은 제 수염을 한번 쓸며 말했다.“상황이 좋지 않아. 만약 계속 서의학 방법으로 치료하면 상태가 더 나빠질 거야.”나도 사실 처음에 똑같은 의견이었다. 다만 이제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한 말에 얼마나 힘이 있을까? 아마 말해도 믿는 사람이 없을 거다.그런데 어르신의 말이 내 추측을 증명한 셈이다.“침술과 한약 치료를 병행하는 게 더 좋은 거죠? 그래야 근본을 다지고 원기를 북돋울 수 있어 간의 손상을 줄일 수 있는 거죠?”나는 내 견해를 말했다. 무엇보다 어르신처럼 의술이 대단한 분이 앞에 계시는데, 이 기회에 잘 배워둘 작정이었다.그때 어르
어르신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너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도 한의학을 배울 좋을 인재라고 하면서 나더러 나중에 많이 도와주라고 한 적도 있어.][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이 이리저리 떠돌며 의학을 배운 사람을 믿지 못하잖니. 대부분 학교에서 정식적인 교육을 받아서. 하지만 나한테 있는 방법이 민간요법이고 이상한데 받아들일 수 있겠어?]“우리 사장님 병만 고칠 수 있다면...”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이 끼어들었다.[고칠 수는 없어. 간병은 억제할 수 있을 뿐이지 완치는 어려워.]내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억제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고통을 줄여 주시면 돼요.”[그래. 날 믿으면 됐어.]나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다급히 말했다.“그럼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어르신은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주소는 유미 사모님 집과 그리 멀지 않았다.나는 이 소식을 서둘러 사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어르신이 정말 사장님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지 아직은 몰랐으니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지금 말해봤자 오히려 실망만 할 거다. 게다가 사모님께 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다.때문에 나는 아침을 사러 가는 척 말하고 차를 몰고 어르신을 모시러 갔다.20분 뒤, 나는 어르신을 만났다.하지만 어르신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90이 넘는 노인이었는데 놀랍도록 정정했다. 이러니까 이 어르신이 선단을 드셨다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 댄 거였다.물론, 나는 사람을 장생불로 하는 선단 같은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르신은 그저 보양할 줄 아는 거다. 게다가 자식들이 모두 효도하니 뭘 해도 기분이 좋을 거고, 그러니 자연스레 고민 없이 사는 거다.“봉섭 할아버지, 저 정수호예요.”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르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위라래로 살펴봤다.“네가 어릴 적에 네 할아버지가 너를 우리 집에 자주 데려왔었는데, 눈 깜짝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용주가 까라면 까야지.”윤미화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한순간 집에는 나와 사모님 둘만 남게 되었다.나는 사모님 방 쪽을 한번 확인했다. 문이 꼭 닫혀 있는 데다 아무 인기척도 안 들리는 걸 봐서는 이미 자는 모양이었다.나는 다시 객실로 가지 않고 아예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소파에 누운 지 얼마되지 않아 사모님 방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얼른 사모님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야심한 밤에 여자 방을 들락거리는 건 좀 아닌 듯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못들은 척하자니 또 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려 순간 모순이 됐다.결국 나는 결심을 내리고 노크했다.“사모님, 괜찮아요?”“괜, 괜찮아요. 상환 말고 얼른 자요.”사모님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울지 마요. 더 울면 몸 상해요. 그러면 사장님은 어떡해요?”내 말에 큰 힘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다.그때 안에서 ‘네’라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내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소파 쪽으로 돌아갔다.이 상황에서 아무리 위로해 봤자 소용이 없다.하지만 그 순간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그분은 나와 한 동네에 살았던 어르신인데, 젊을 적에 내 할아버지와 어울려 지내며 의술을 익혔다.올해로 90살쯤 됐는데 이상하게 그분은 한 번도 앓은 적이 없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그 어르신이 스스로 몸조리해서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그 어르신한테 사장님을 고칠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나 나는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시도해 보는 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다음 날 아침,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해 사장님 상황을 대충 말씀드리고 어머니더러 그 어르신한테 슬쩍 물어보라고 부탁했다.어머니도 우리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침 일찍 식사도 하지 않고 어르신
‘장난하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시 토해내라니. 절대 안 돼.’나는 돈도 없는 주머니를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그건 안 돼요.”“그럼 얌전히 여기 있다가 내가 없을 때 유미 대신 좀 돌봐 줘.”난 여전히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윤 사장님, 제가 싫은 게 아니라, 유미 사모님 평판이 나빠질 거예요.”“수호 씨가 유미를 노리지 않는 이상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잖아. 오래전부터 유미를 노리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나는 얼른 도리질했다.“그런 적 없어요. 전 사모님을 항상 존경해 왔어요.”“그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남아.”윤미화의 태도가 너무 강경한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두 사람은 나에게 객실을 내주었다.유미 사모님의 집은 윤미화 집 못지않게 널찍하고 사치스러웠다. 방 4개에 거실 2개인 데다 인테리어가 화려했다.객실 침대에 누워 보니 평범한 침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아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았다.천수당, 이태웅, 왕정민이 하나하나 내 뇌리를 스치다가 결국에는 동성 형까지 떠올랐다.동성 형을 떠올리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용천 호텔에서 돌아온 뒤로 동성 형과는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형수는 동성 형이 이제는 대놓고 밖으로 나돌고 있다고 했었다.형수도 지금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거다.나는 얼른 문자로 형수 동생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한테서 답장이 왔다.[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이제는 아예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에요.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난 집에 돌아왔고요.][그럼 형은요? 형은 요즘도 집에 안 들어와요?][들어왔어요. 하지만 계속 각방 써요.]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왜요?][왜긴요, 요즘 일이 바쁘다면서 밤 늦게 들어오는데, 나를 방해하기 싫다면서 따로 자요.]그건 다 핑계일뿐이다. 사실 형수는 누구 보다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티를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