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결혼 생활이 파탄나는 게 처음에는 다 호기심에서 비롯돼요. 그러니까 얌전히 잠이나 자요.”나는 두말없이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윤미화는 유미 사모님 사촌 언니기에 나는 감히 윤미화와 그런 식으로 엮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소식이 만약 사모님 귀에 들어가면 나는 끝장이니까.그도 그럴 게, 유미 사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신경 쓰이니까.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워 휴식을 취했다.요즘 형수를 보러 갈 수 없기에 나는 특별히 고수연한테 전화했다. 하지만 고수연이 전화를 받지 않아 고아연에게 전화했다.[둘째 언니가 큰언니 몸 닦아주고 있어. 무슨 일인데 그래? 나한테 말해.]“별거 아니에요. 그냥 형수가 요즘 어떻나 해서요.”“그냥 그렇지 뭐.”고아연은 현수 상황을 간단히 얘기하더니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지금 어디야? 방에 다른 사람 있어?]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아연이 또 나에게 영상을 찍으라고 부탁하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고아연이 찍는 영상은 늘 재미있기에 나도 고아연에게 협조하는 걸 즐긴다.“지금 호텔 방에 혼자 있어요.”[그럼 내가 영상 통화할 테니까 받아 봐.]고아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이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벨이 울리자마자 나는 신이 나서 전화를 받았다.“혹시 오늘도 영상 찍어야 해요?”[응. 오늘 주제는 허리야. 손 제대로 내리고 윗옷 들어 봐. 그리고 아무 음악에 맞춰 허리 흔들어.]나는 자신 있게 티셔츠를 걷어 올렸다.“나 몸매 자신 있어요. 식스팩도 있고 촉감도 좋아요.”[와, 진자 괜찮아 보이네. 그런데 오늘 영상은 가만있으면 안 돼. 움직여야 해. 허리 흔들어 봐.]나는 얼른 핸드폰을 캐비닛 위에 세워 놓고 영상에 내가 나올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티브이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허리를 흔들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리를 흔드는 게 어색했는데 고아연이 업로드한 영상을 본 뒤로 나는 고아연이 찍는 영상을 좋아하게 됐다.하지만 나는
나는 쿠키 영상을 원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아연이 보낸 문자가 너무 유혹적이었다. 더군다나 표지에 고아연 사진이라 더욱 그랬다.나는 속으로 고아연이 은밀한 영상을 찍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씨 가문 세 자매는 서로 다르게 생긴 데다 각자 매력이 있다. 그중 고아연은 나이가 가장 어리고 가장 에너지 넘치는 데다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만약 내가 고아연을 일찍 만났다면 아마 고아연을 쫓아다녔을지도 모른다.때문에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영상을 클릭했다.영상 속 고아연은 섹시한 란제리를 입고 섹시댄스를 추고 있었다. 심지어 이건 단지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얼마 뒤 고아연은 아예 침대에 누워 란제리를 벗어버리고 이불로 가릴 곳을 가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다.[원해?]영상과 함께 들리는 고아연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순간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느낌이었다.때로 매력적인 목소리는 예쁜 얼굴이나 몸매보다 더 매력적일 때가 있다.고아연은 마치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처럼 자꾸만 손가락을 까딱이며 사람을 유혹했다.아마 이런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은 몇 없을 거다.영상은 길지 않았지만 다 보고 나니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그때 마침 고아연이 물었다.[영상 다 봤어? 어때?]나는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그걸 들킬 수 없어 침착한 척 연기했다.“평소에 이런 영상도 찍어요?”[이렇게 좋은 몸매를 영상으로 남기지 않으면 얼마나 아쉬워?]고아연은 자신만만해서 말했다.요즘 여자애들은 무척 개방적이라 심지어 가끔은 아주 은밀한 사진을 찍는 여자애도 있다. 그것도 아주 대담하고 노골적인 사진 말이다.물론 그저 자기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찍는 거라 모두 합법적이다.고아연은 워낙 온라인 미디어에 관한 일을 하고 평소에 남성에 관한 영상을 찍기에 매우 개방적이다.때문에 평소 은밀한 사진을 찍는 것도 이상할 거 없다. 다만 영상 속 고아연은 평소보다 더 고혹적이고 더 매력적이었다.생활 속에서의 고아연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이렇
그 결과 그날 저녁 내 꿈에 고아연이 등장했다.심지어 꿈의 내용은 무척 화끈했다.고아연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내 앞에서 춤을 췄고 그 모습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심지어 나도 그런 고아연과 함께 춤을 췄다.우리는 꿈속에서 알몸으로 서로를 마주 보다가 깊은 교류를 나누었다.그 꿈이 어찌나 진짜 같은지 나는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끼고 말았다.하지만 깨어보니 화끈하게 춤을 추는 고아연은 온데간데없었고 S시 호텔 침대에 누워 있는 나뿐이었다.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티슈로 다급히 침대 시트를 닦았지만 닦을수록 자국은 점점 커져 도저히 계속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결국 나는 목욕 타월을 침대에 펴고 대충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내가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때 문밖에서 ‘띠리릭’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윤미화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그런데 하필 어젯밤 알몸 차림으로 목욕 타월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잠을 잤던 나는 너무 잠꼬대를 심하게 한 바람에 현재 목욕 타월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 화면은 너무 볼썽사나웠다.하지만 나를 본 윤미화는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래졌다.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타월로 몸을 가렸다.“윤 사장님한테 어떻게 내 방 키카드가 있어요?”“아. 그게...”윤미화는 설명을 하면서 눈은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어제 방 잡을 때 만능키 하나 더 달라고 했거든”“윤 사장님, 말할 때 좀 뒤돌아 있으면 안 돼요?”나는 너무 쪽팔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그제야 윤미화는 다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어른 옷 입어.”나는 황급히 침대 위에서 옷을 주워 입었다.그동안 윤미화는 손가락 사이 작은 틈으로 내 모습을 훔쳐봤다. 어쩌겠나? 내 몸이 그만큼 좋은데.심지어 윤미화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걸 나한테 들켜버렸다.“핸드폰은 왜 들고 있어요?”“아. 전화가 와서. 전
“나 눈도 안 보이는데 왜 나한테 못되게 굴어?”윤미화는 애교 부리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안 보이는 건가? 포도알보다 더 크게 떴으면서?’“윤 사장님, 연기 그만해요.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뭐 하긴. 내 눈 좀 불어달라는 거잖아. 나 너무 못된 사람 취급하지 마.”“그래요. 불어줄게요.”나는 이불로 내 몸을 돌돌 감고 윤미화에게 다가갔다.윤미화의 눈은 분명 아무 문제 없었는데 윤미화는 계속 연기했다.나는 결국 윤미화의 눈을 손가락으로 벌린 뒤 후 불었다. 윤미화는 그 틈을 타 내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다음 순간 나는 곧바로 윤미화의 손목을 잡았다.“딱 잡혔어요.”“제대로 서지 못해서 부축하려고 그런 거잖아.”“부착이 필요하면 잡으면 되지 뭐 하러 주물러요?”“손에 땀이 많고 끈적해서 닦은 것뿐이야. 절대 노리고 그런 거 아니야.”‘핑계도 참 많네.’나는 두말없이 윤미화를 밀쳐냈다.“눈에 들어간 먼지 이미 물었으니까 이제 갈 수 있죠?”“깨끗하게 없어지지 않은 것 같아. 아직도 깔깔한데 좀 더 불어줘.”나는 더 이상 윤미화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얼른 바지를 찾아 이불 속에서 입었다.윤미화는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더 이상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나는 나만 여색을 밝히는 줄 알았는데 윤미화도 이토록 남색을 밝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운데 어깨에 잠깐 기대도 될까?”윤미화는 나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대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 때문에 옷을 입으려던 나는 그대로 윤미화에게 깔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나 옷 좀 입으면 안 돼요?”“내가 이렇게까지 불편하다는데 옷이 중요해? 어쩜 여자를 아껴줄 줄도 몰라.”나는 힘껏 윤미화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윤미화는 내 팔을 더 꽉 껴안았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서로 싸우기라도 하는 듯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나는 초라한 행색으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도망치며 소리쳤다.“계속 이러면 저 정말 가만있지 않
‘결혼한 유부녀들은 모두 다 이렇게 대담한가?’“됐어요. 전 씻고 올게요.”나는 곧바로 뒤돌아 화장실로 직행했다.그때 윤미화가 갑자기 내 뒤를 쫓아왔다.“나도 같이 가.”“뭐예요? 화장실 가는 것도 따라오게요? 뭘 같이 하려고요?”“화장실 좀 빌려 쓰는 것도 안 돼? 내 방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사용할 수 없어.”윤미화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윤미화의 핑계일 뿐이다.나는 결국 화장실에서 다시 걸어 나왔다.“그래요. 그럼 윤 사장님이 여기 사용해요. 내가 윤 사장님 방 화장실로 갈 테니까.”나는 윤미화 말대로 화장실 수도꼭지가 정말 고장 났는지 제대로 볼 생각이었다. 윤미화는 이번에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윤미화의 방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확인해 봤더니 고장 났다는 건 역시나 거짓말이었다.“윤 사장님이 안 사용하면 내가 사용해야지...”나는 수도꼭지를 바로 틀었다. 그랬더니 수도꼭지에서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나는 단번에 쫄딱 젖어버렸다.그때 밖에서 윤미화의 웃음소리가 들렸다.“거 봐. 거짓말 아니지? 정말 고장 났다니까.”“헐. 이거 왜 이래? 사람 죽일 일 있나? 당장 호텔 찾아가서 따져야겠어요.”나는 온몸이 젖어 세수할 마음도 사라졌다.그때 윤미화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아까 프런트 데스크에 말해뒀어. 곧 수리공 보낼 거래.”몸이 뜨거운 몰에 축축하게 젖어 너무 불편한 탓에 나는 당장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윤미화가 따라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나는 안에서 문을 잠갔다.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난 뒤 드디어 불편함은 사라졌다.그때 나는 문득 어제 갈아입은 속옷을 아직 씻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하지만 침대에 올라 아무리 찾아도 내 속옷은 보이지 않았다.‘설마 윤 사장님이 가져간 건 아니겠지?’나는 불안한 마음에 침대 위와 침대 아래, 심지어는 쓰레기통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내 속옷은 없었다.그 순간 나는 윤미화가 내 속옷을 가
윤미화는 내 물건을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나를 놀리려던 거였다.하지만 눈을 감은 순간 윤미화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침에 봤던 장면뿐이었다.“수호 씨가 그렇게 대단한 걸 갖고 있었을 줄 몰랐네.”윤미화는 생각할수록 얼굴이 뜨거웠다.얼마 뒤, 나와 윤미화 그리고 류준원은 한 테이블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그때 윤미화는 일부러 내 옆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두말없이 류준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윤미화는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나 사장이야. 왜 나 피해?”“알면서 뭘 물어요?”“몰라. 말해.”류준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봤다.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우리가 의아했던 모양이었다.하지만 류준원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었기에 관여하지 않았다.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파묻은 채 식사에 전념했다. 그러자 윤미화는 이번에 테이블 밑에서 내 다리를 슬쩍 걷어찼다.다음 순간 나는 식판을 들고 그 자리를 떠났다.건드릴 수 없는 상대라면 피하면 그만이었다.나는 호텔로 다시 돌아가는 대신 호텔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서광진한테서 받은 명함을 꺼내 들었다.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명함에 있는 번호로 서은성에게 연락했다.“여보세요? 혹시 서은성 씨 맞나요?”[그런데요. 누구시죠?]전화 건너편에서 명랑하고도 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은성의 발음은 어찌나 또렷한지 아나운서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나는 다급히 자기소개했다.“저는 정수호라고 합니다. 서광진 회장님께서 저더러 서은성 씨를 찾으라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아, 서 회장님께 전해 들었어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요?]“제가 오늘 오후 수표를 현금화해야 하는데, 함께 가주셨으면 해서요.”[출발하기 전에 연락해요. 제가 픽업하러 갈게요.]서은성은 단번에 동의했다.잘 통화는 대화에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현재 오전 9시라 오후 2시까지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너 오늘 장부 확인하러 가야 하는 거 알아. 하지만 오늘 어디 갈 생각 하지 말고 안에 얌전히 있어.”‘고작 이렇게 얇은 문 하나로 나를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나는 손목을 움직이며 덤덤하게 말했다.“경고하는데 당장 문 열어. 안 그러면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 테니까.”“감히 우리를 겁줘?”나는 두말없이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찼다.그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마교준과 진이준은 문에 부딪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성큼성큼 칸막이 화장실에서 걸어 나간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복수하고 싶어도 상대 봐 가면서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날 막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마교준은 이를 악물며 진이준에게 말했다.“저 자식이 이렇게 강할 줄 몰랐네.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우리 같이 덤비자.”“응. 나도 같은 생각이야.”진이준이 맞장구쳤다.둘의 대화를 들으니 순간 헛웃음이 났다.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솔직히 내 상대는 아니다.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지 함께 나에게 달려들었다.나는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마교준의 가슴에 주먹을 꽂았다.주먹을 맞은 마교준은 ‘악’하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순간 홀로 남게 된 진이준은 겁이 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렇다고 나는 진이준을 내버려둘 생강은 없었다. 나는 발로 놈을 걷어찼다. 그러자 진이준은 그대로 바닥에 뻗어버렸다.나는 두 사람의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운이 안 좋네. 내가 한 달 전부터 트레이닝을 좀 받았거든.”“그래, 네가 이겼어. 대단하다는 거 인정할게. 가자.”두 사람은 서로 부축하며 화장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그때 나는 마교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아래로 눌렀다.그러자 흠칫 놀란 마교준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너, 뭐 하려는 건데?”“사과도 안 하고 가려고?”“사과는 무슨. 네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으면서 우리더러 사과하라고?”진이준은 몹시 불만이었다.나는 다
쇼핑몰에서 나와보니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다 되었다. 나는 조금 뒤 Y 머니 캐피탈로 가기 위해 호텔에 돌아가 잠깐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호텔에 도착해 보니 윤미화는 류준원과 함께 쇼핑하러 갔는지 방에 없었다. 그 덕에 나는 한가롭고 고요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방에서 한참 동안 핸드폰을 하다가 1시쯤 되니 나는 Y 머니 캐피탈로 출발했다. 그리고 1시 30분쯤에 Y 머니 캐피탈 건물에 도착했다.전에 서은성의 카톡을 추가한 적 있기에 나는 위치 정보를 서은성에게 보냈다.그로부터 20분 정도 지나자 정장 차림을 한 점잖은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SY그룹 CFO 서은성이었다.서은성을 처음 본 순간, 내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그는 우아하고 온화했으며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력과 스펙이 매우 높았다.내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 서은성은 정중하게 나와 악수했다.이윽고 나는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상대가 무슨 수를 쓸지 몰라요. 저는 이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이따가 잘 좀 봐줘요.”“그러죠.”나는 서은성과 얘기할 때 그의 표정을 조용하게 살폈다. 보아하니 서은성은 Y 머니 캐피탈이 임천호와 관련된 회사라는 건 모르는 듯했다.‘오히려 다행이네. 걱정할 거 없겠어.’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서은성과 함께 Y 머니 캐피탈에 들어섰다.그러자 여전히 어제 있던 놈이 나를 접대했다. 놈은 사장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안내했다.오늘 놈의 태도는 그나마 깍듯했고 심지어 우리에게 차까지 대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용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용길 뒤에서 똘마니 두 명이 따라 들어왔는데, 두 사람은 손에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다.보아하니 가방 안에 돈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황용길은 허허 웃으며 사람 좋은 태도를 보였다.“길이 좀 막혀서 늦었네요.”하지만 아무리 봐도 놈의 웃음이 아주 가식적이고 뭔가를 숨기는 듯했다.나는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
사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로 옆을 지켜드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최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휴식한 적 없어,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다.하지만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꿈속에서 정 사장님은 계속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도 사장님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장님과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다 꿈의 마지막쯤 정 사장님은 가면을 쓴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꿈에서 놀라 깬 나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비록 꿈이었지만 꿈에 나온 장면들이 너무 생동해서 직접 경험한 것 같았다.밖은 어느 때부터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최면 노래처럼 느껴졌다.피곤함에 눈을 비비다가 문득 사모님이 침대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나는 다급히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호텔 안을 마구 달리며 윤지은에게 전화했다.“혹시 유미 사모님 봤어요?”[나 계속 밖에 있어서 유미 본 적 없는데? 네가 유미 호텔에서 돌봐주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윤지은이 반문했다. 이에 나는 얼른 설명했다.“제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 붙였는데 깨어나니 사모님이 사라졌어요.”[넌 대체 뭘 할 수 있어? 사람 하나 돌보는 것도 못해?]윤지은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이리저리 찾으며 물어봤지만 호텔 직원들도 모두 사모님을 본 적 없다고 했다.결국 나는 프런트에 달려가 물었지만 프런트 직원들도 못 보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럼 CCTV 한번 확인할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호텔 규정상 CCTV는 함부로 보여드릴 수 없어요.”나는 다급히 말했다.“제 친구 남편이 이틀 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친구 정서가 엄청 불안해요. 반드시 빨리 찾아야 해요. 지금 우선 CCTV 확인해 줘요. 제가 당장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이렇게 빨리 남편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다.내가 분명 이번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거라고 말했는데 들을 생각도 하지 않다니.나는 슬쩍 찔러보려고 다시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요?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여자는 내 말을 듣더니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나는 뭔가 찔린 듯 불안해하는 여자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뭔가 알고 있는 거죠? 알고 있는 거 다 얘기해요. 그게 이번 사고의 진실을 밝힐 수도 있어요...”“뭐 하는 거예요? 아파요.”여자는 내 손을 뿌리쳤다. 여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자 바로 나를 막아섰다.지금 내 실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일을 크게 만들까 봐 내 팔을 쿡쿡 찔렀다.“됐어. 저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나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너무 수상해 반드시 기회를 잡아 두 사람의 입을 열어야 했다.하지만 점점 모여드는 구경꾼들 때문에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내가 내키는 대로 소란을 피웠을 테지만,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사모님한테 피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떠난 뒤 두 사람을 찾아 결판 낼 생각이었다.오늘 장례식장에 나타난 유가족은 또 있었다. 바로 운전한 오 기사님 가족이었다.오 기사님 가족은 얘기가 잘 통해 화장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들 역시 이번 교통사고가 수상쩍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오 기사님 아들은 심지어 확신했다.“제 아버지 운전 실력은 엄청 좋아요. 사고가 난 곳도 생전에 수백 번도 더 다녔던 곳이라 그 길을 잘 알고 있어요.”“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처음에 믿지 않았어요. 난 이번 일 제대로 조사해서 아버지 결백을 증명할 거예요.”겨우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너무 기뻤다. 결국 조금희의
“들여보내 줘요. 나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 같이 있어 줘야 해요...”장례식장 입구에서 유미 사모님은 몇몇 직원들에게 가로막혀 애타게 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와 윤지은은 급히 달려갔다.“사모님, 여긴 왜 왔어요?”장례식장도 규칙이 있는데 가족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나가기 전 분명 사모님더러 호텔에서 휴식하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한참 애를 먹던 두 직원이 얼른 말했다.“얼른 이분 좀 말려 봐요. 이곳 냉기를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하세요. 그런데 자꾸만 안에 들어가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안 됩니다.”“그리고, 절차는 다 밟았나요? 다 밟았다면 얼른 화장할 수 있게 사인하세요. 시체 안에 계속 두고 있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에요...”나는 손을 저으며 두 직원의 말을 잘랐다.“네, 알겠어요. 먼저 가서 일들 보세요.”나와 윤지은은 유미 사모님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모님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너무 지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지은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유미야, 이러지 마...”윤지은은 흐느끼느라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사모님 역시 슬피 울부짖었다.“왜? 좋은 사람은 복이 온다며? 그런데 왜...”“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인데. 호섭 씨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 왜...”처절한 외침에 듣는 나도 너무 괴롭고 삼장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이 순간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다. 그 어떤 위로도 사모님의 비통한 심정을 달랠 순 없으니까.나는 그저 사모님이 진정할 수 있게 침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나는 조금 안정이 된 사모님을 안아 차에 앉혔다. 창백하고 초췌한 사모님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그때 윤지은이 이를 악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이번 사건 우리가 꼭 밝혀낼게.”그 순간 나도 윤지은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그걸 당장 토
나는 윤지은이 갑자기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해 무척 감격스러웠다.나 혼자 다른 도시에서 도움 없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확실히 힘들다. 하지만 윤지은이 같이 조사하겠다고 하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나는 느릿한 말투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같이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위해 진실을 밝혀요.”그동안 나와 윤지은은 서로 고양이와 개처럼 항상 만나기만 하면 싸웠는데,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함께 정 사장님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우리는 해야 할 일을 확인한 뒤, 강한나를 만나러 갔다. 강한나라면 전문가의 관점에서 우리를 도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최선을 다해 볼게.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내가 방금 사건 기록을 봤는데 현장 사진과 다양한 증거들을 취합해 보면 단순 사고사일 수 있어.”“내가 의심했던 브레이크 흔적 거리인데, 이것도 어찌 보면 사고사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결론적으로 조사하기 매우 어려워.”한참 듣고 있던 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현장 증거로 조사할 수 없으면 다른 쪽으로 출발해야겠네.”한창 낙담하고 있던 나는 윤지은의 말에 다급히 물었다.“혹시 방법이 있는 거예요?”윤지은은 팔짱을 끼면서 냉정하게 분석했다.“내가 알기로 운전한 기사는 호섭 씨랑 오랜 친구였고 운전 실력도 엄청 뛰어나. 이 점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함께 차에 탔던 피해자 가족들도 조사해 볼 수 있어.”나는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 사고 유가족들부터 조사해 봐요.”강한나는 우리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 이 사건이 만약 인위적인 거면 두 사람도 위험해. Y시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달라. 여긴 무법지대인 D국과 엄청 가까워.”윤지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그게 뭐? 의심 가는 구석이 있는데 그냥 덮자고? 그러고도 내가 무슨 친구야? 유미 지금 충격이 너무 커. 호섭 씨는 유미한테 가장 중요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