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애써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당장 떠나야 한다. 너까지 끌어들일 수 없다.”택란이 그의 어깨를 누르며 반문했다. “지금은 어디도 갈 수 없습니다. 오라버니 황숙의 부하들이 오라버니를 찾고 있습니다. 나가면 바로 죽을 것이니,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여기서 지내십시오.”소년은 그제야 복부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통증이 심하지 않아 그는 상처를 확인하려 했다. 그때, 택란이 말했다.“움직이지 마시고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십시오. 3일만 몸조리 잘 하시면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소년은 결국 힘없이 다시 누웠다. 그의 몸은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사실 그는 걸어 나갈 힘조차 없었지만, 택란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되었다.“그는... 나를 찾아낼 것이다. 난 이젠 도망칠 수 없다. 너까지 괜히 화를 입으면 안 된다!”“괜찮습니다. 이곳에서 3일만 지내면서 상처를 치료하십시오.”“소용없다.”소년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는데, 그의 옅고 푸른 눈은 이미 희망의 빛을 잃은 뒤였다.“내 심복들은 모두 죽었고, 그도 내가 했다는 걸 알고 있다. 내 흉터를 보면, 그는 나를 죽일 수 있다.”“상처가 나으면, 흉터도 사라질 것입니다.”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년은 그녀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래, 아이가 뭘 알겠어?상처가 아무리 나아도 흉터는 남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곳에서 3일이라도 지낼 수 있다면, 그의 감시를 받지 않는 며칠만 보낼 수 있다면 말이다. 소년은 그렇게 다시 천천히 잠에 들었다.잠시 후 그가 깨어났을 때,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고, 방 안에는 희미한 등불만이 켜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고기죽이 올려져 있어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택란은 그가 깨어난 것을 보고 죽을 가져와 한 입 한 입 먹여주었다.“제가 죽을 먹고 싶다고 말했더니, 가져다줬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솥이나 있으니깐요.”아주 배고팠던 터라 그는 택란이 떠먹여 주는 대로 급하게 먹었다. 그는 죽이 조금
다음 날 밤, 소년은 드디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는데, 낮에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저녁이 되어야지 몰래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몰래 밖으로 나가 용변을 보고 돌아왔다.방으로 돌아온 뒤, 그는 자기 복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흉터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분명 상처가 있고, 지금도 여전히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깜짝 놀라 택란을 바라보자 택란이 설명했다.“눈속임 입니다. 빛이 조금만 더 밝으면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정말이냐?”“예. 햇빛 아래에서는 볼 수 있습니다.”“그럼, 방안에서 누군가 내 복부를 본다 해도 상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냐?”소년의 눈이 반짝였고, 얼굴 전체가 빛나는 듯했다.“예!”택란이 답했다.“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소년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엔 희망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상처만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이 자객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너는 왜 여기 있는 것이냐? 너는 그와 어떤 관계냐?”“저는 납치당했습니다.”택란이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납치당했다고? 그가 대체 뭘 하려는 것이냐?”택란이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모르시는 것입니까?”소년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모든 일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택란이 말했다.“제 아버지께서 돈이 많으니, 저를 납치해 돈을 뜯어내려는 것입니다.”이 말을 하며 택란은 조금 얼굴을 붉혔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돈이 없었고, 가난했다.소년이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안전해지면, 꼭 너를 구할 것이다.”택란이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소년은 이내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지 걱정에 휩싸였다.밖에서 놀다 돌아온 것처럼 꾸며야만 설명이 된다.택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금나라의 황제가 누구인지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진국왕이 황제가 되어선 절대 안 된다. 그는 야심이 넘치는 사람이라 약도성을 약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약도성을 얻고 나면 다른 성들까지도 차
약도성에 돌아오니 호명과 양두도 함께 돌아와 있었다.호명이 양두와 무엇을 얘기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돈이 부적절한 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양두는 결국 그 돈을 내놓았고, 호명은 여동생의 병을 치료하라고 천 냥을 주었다.양두는 이 돈이 공으로 얻은 돈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애초부터 진국왕에게서 돈을 얻으려고 했고, 그가 없었어도 분명 10만 냥 정도는 쉽게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호명이 또 어떻게 꼬드겼는지, 양두를 약도성에 남아 일을 돕게 했다.양두를 얻자, 주 아가씨는 약도성에 힘이 생겼다고 기뻐했다.게다가 돈도 생겼으니, 바로 돈을 들여 저택을 개조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택란에게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묻자 택란이 답했다.“특별한 요구는 없소. 하지만 하나만 강조하자면, 문패를 새로 만드셨음 좋겠소. 저 틀린 글을 고치시오.”주 아가씨가 멍하니 물었다.“틀린 글이요? 어디에 틀린 글자가 있다는 것이지요?”“있소.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오.”택란이 말했다.주 아가씨는 나가서 한참을 살펴봤다. 좌우 구조, 상하 구조, 획순까지 다 확인했지만, 틀린 곳은 보이지 않았다.하긴 아직 어린 상전이니, 글자를 몇 개나 알까? 하지만 상전의 명이니,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문패를 새로 만들어 걸었더니, 기세가 더욱 강해 보였다. 호명은 금나라의 소식을 탐문했다. 그리고 진국왕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보고했다. 얼음에 맞아 다쳤으며, 부상 정도가 꽤 심각하다고 했다.금나라는 계속해서 수도를 건설 중이었지만, 진국왕 부상의 여파로 수도 이전 계획은 다소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진국왕은 부상이 심각하여 이미 수도로 돌아갔다고 한다.택란은 이 소식을 듣고 소년 황제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가 무사히 권력을 되찾길 바랐다.그는 그녀에게 혼담까지 꺼냈던 사람이다. 겨우 첫 만남에 그런 말을 꺼내다니, 이상할 따름이다. 세상의 따스함을 얼마나 겪어본 적 없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호명이 씁쓸하게 웃었다.“예. 겁나서 말 못 합니다.”같은 처지인데 어찌 고발할 수 있을까? 그러자 호 대장군이 또 담배를 뻑뻑 피우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들이 이곳에 온 지 겨우 석 달인데, 내 머리카락마저 벌써 하얗게 됐구나.”그들이 갑자기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냥 구경 온 것이라면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도 괜찮지만, 그들은 갑자기 도성을 도맡겠다고 했다.어차피 도성의 주인이니, 도성을 도맡는 것도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도성을 맡자마자 발전에 힘을 쏟겠다고 하니…아직 백성들의 마음도 안정되지 않았는데, 어찌 발전할 수 있겠는가?그러자 경단 황자가 반문했다. 돈도 먹을 밥도 없으면 백성들의 마음은 절대로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그들에게 조정의 관리를 통해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며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호 대장군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일을 도맡아보니, 무력으로 억누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유도 없이 백성들에게 새끼 돼지와 양, 그리고 병아리에 씨앗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나중에 기르고, 재배하면 누군가 와서 거둔다고 했지만, 그는 미래가 걱정되었다.아무도 사러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과일나무가 산 가득 심겨 있었다.호 대장군은 차라리 강남 지방처럼 천을 짜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을 팔면 그래도 은 정도는 벌 수 있었다.그는 이에 관해 제안도 해봤지만, 경단 황자가 말했다. 천을 짜는 곳은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농사와 양식을 이곳에서 해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다른 지역에는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수많은 고난에 호 대장군은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북당 소월궁.우문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멍한 표정으로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무슨 일이오?”원경릉이 뒤에서 그를 다정하게 안으며 말했다.“아침부터 왜 멍하니 있는 것이오?
두 마리의 늑대와 두 마리의 호랑이, 그리고 한 마리 봉황이 짐을 짊어지고 다시 현대에 나타났다. 그들은 추석을 보내러 왔다며 듣기 좋은 핑계로 둘러댔다.그들은 몰래 할머니와 외삼촌에게 제발 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흘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할머니와 원 교수는 그들이 북당에 돌아간 줄 알았다. 몰래 부모님을 속이고 낯선 도성에 갔다는 사실을 듣고 두 사람은 심장병이라도 걸릴 뻔했다.기화는 어차피 택란을 자유롭게 가르치고 있었다. 택란이 어디에 있든 그가 보고 싶으면 바로 볼 수 있었다.그녀는 저녁에 스승에게 약도성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금나라의 어린 황제에 대해서도 말했다.기화의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납치했다니? 어찌 금나라를 불태워버리지 않은 것이냐?""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택란이 물었다."이번 일은 함부로 죽인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살인인데, 어찌 감히 널 잡아간다는 것이냐?"택란을 아끼는 부인의 마음은 원 선생과 다섯째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몇 년 동안 함께 있었으니, 사실 그녀가 직접 키운 아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럼, 앞으로 누가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어린 황제가 대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택란은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 어린 황제가 생각났다.부인이 택란을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어찌 그 아이 생각을 하는 것이냐?""그가 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했습니다."택란은 턱을 괴고 어린 황제의 진지한 눈빛을 떠올리며, 그가 잘 지내길 바랐다.부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계란아, 이제 몇 살인데 결혼 생각을 하는 것이냐? 여인은 너무 일찍 결혼하면 안 된다. 적어도 2, 3천 년 후나 결혼에 대해 생각해야지. 2, 3천 년 후에도 그 애가 살아 있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꾸나."택란이 혀를 차며 웃었다."하. 2, 3천 년이라니요. 그는 스승님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스승이 그녀를 아끼는 마음을 품고 택란을 안았다."계란아, 난 네가 시
만두를 제외한 다섯 아이는 얌전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는 원경릉의 꾸중을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은 아이들의 얌전한 모습을 보자,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됐다. 꾸중하지 않을 테니 말해보거라. 무슨 일을 한 것이냐?”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어머니 곁에 붙어서 각자의 봉토에서 한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원경릉은 그 말을 듣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그녀의 아이들은 모두 능력이 뛰어났기에 비록 완전히 마음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은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기회가 있을 때, 그녀는 다섯째를 속여서 호랑이와 늑대를 아이들 곁에 보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호랑이와 늑대를 무턱대고 보내면, 다섯째는 분명 의심할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원경릉은 따로 택란을 불러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모녀 사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밀하기 나름이다. 택란은 엄마의 품에 누워서, 약도성과 금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금나라 꼬마 황제에 주의를 기울였다.“어떻게 능력을 배우게 됐는지 알고 있느냐?”원경릉이 묻자 택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르겠습니다.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술법은 사실 큰 어려움이 없고, 저도 물을 다룰 수 있습니다.”염력으로 제어하는 것 아닌가?원경릉이 의구심이 들어 말했다. “너랑은 다르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배운 것이라면, 그의 지혜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물을 다루는 법은, 새와 짐승을 다루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나요?”그러자 원경릉이 고개를 저었다.“다르다. 새와 짐승은 물과 달리 생명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일정한 훈련을 거치면 사람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물은 아니다. 물을 다루려면, 마음을 통해 제어해야 하고, 집중력까지 높아야 한다. 뇌가 어느 정도 개
아버지가 돌아간 후, 다섯 아이도 짐을 싸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만두는 맏이로서 위엄을 갖추어 떠나기 전 동생들에게 당부했다."너희들,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형의 권한을 행사해서 너희들을 혼낼 것이다!"물론, 이 말은 네 명의 동생들을 향한 것이었고, 여동생에게는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 번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그리고 일이 끝난 후, 바로 그녀가 있는 약도성으로 가서 그녀를 돕겠다고 약속했다.택란이 귀엽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오라버니, 빨리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그러자 만두가 여동생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그래. 약속하마. 곧 너를 도우러 가마."택란은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남은 채로 꼬마 봉황을 데리고 떠났다. 그리고 네 명의 오라버니도 위풍당당하게 떠났다.다섯째와 원경릉은 궁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조금 걱정되는 일이 생겼다.여섯째가 바람이 났다.물론, 미색의 말은 달랐다. 미색은 그가 밖에 있는 여우에게 마음을 뺏겼고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었다고 했다.원용의가 궁으로 들어왔을 때, 미색이 이미 초왕부로 이사 갔고, 아이들까지 두고 떠났다고 했다.일이 심각해졌지만 원경릉은 여섯째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돌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색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니 말이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아보기도 전에, 노태비가 궁에 찾아왔다.노태비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끌고 화를 내며 말했다."당장 다섯째에게 여섯째를 혼내라고 하거라. 정말 양심도 없지. 미색이 혼수까지 들고 와서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찌 그 여자한테 이렇게 미쳐있다는 말이냐? 그 여인과 밤을 보내다가 미색에게 바로 들켜 버렸다."원경릉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예? 침대에서 잡은 것입니까?"태비는 화가 나서 대답했다."그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 다정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붙어있었다고 하더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참 속상하구나."원경릉은 방금까지도
백옥 바닥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한 우문호의 모습이 보였다.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눈을 뜨기도 전에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왔소?"오랫동안 함께 지내니, 발소리만으로 부인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원경릉이 그의 관자놀이를 천천히 만져주며 물었다."피곤하오?"우문호는 부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압력을 즐기며 답했다."피곤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복잡하오.""무슨 일이오?"원경릉이 물었다. 만약 나라의 일로 걱정이 된다면, 회왕의 일은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걱정거리를 늘이고 싶지 않았다.우문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설 소금이 넘쳐나고 품질도 고르지 않아서, 몇몇 지역의 백성들이 병에 걸리고 있소. 게다가 조사 결과, 염철사와 장옥금이 사설 소금 밀매상들과 결탁해서, 세를 피하려고 몰래 소금을 팔았다는 의혹도 있소."원경릉은 소금세가 국가 세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북당의 소금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았고, 게다가 세수는 몇십 년 전보다 많이 낮아졌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설 소금이 넘쳐나면 나라의 소금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게다가 나라의 염철사와 사설 소금 밀매상이 결탁했다면, 숨겨진 문제가 얼마나 많겠는가."확실하게 결탁한 것이오?"원경릉이 물었다."아직 조사 중이오. 최근에 장옥강의 의녀가 경에 왔소. 그녀는 도강부에서 염차사를 맡고 있는 손기의 장녀요. 이전에 일곱째가 손기와 사설 소금 밀매상들의 사이가 깊다는 제보를 받았소. 하지만 아직 그들이 결탁했다는 증거는 없소."원경릉은 사설 소금의 해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사설 소금의 대부분은 광산에서 채굴한 소금으로, 유해한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다. 이런 광산 소금을 장기간 섭취하면 각종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사설 소금의 만연은 나라 소금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틀림없었기에 다섯째가 이렇게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우문호가 잠시 멈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