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어서야 황귀비는 명원제에게 와 수녀를 뽑는 것을 이야기했다.명원제는 듣자마자 화를 냈다."소란이오! 안 뽑은지 오래되었는데 뽑아서 무엇을 한단 말이오?"황귀비가 말했다."전하께서는 호비가 화를 낼까 두려워하시는 것이옵니까?"명원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오?""전하께서 반대를 하신다면 신첩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호비만 총애하고 계신다고 전조와 후궁에서 모두들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진비가 제의를 했을 때 신첩이 특별히 사람을 보내 물어보았고 그제야 위태부와 다른 신하들이 일찍이 수녀를 뽑아야 한다 상소를 한 것을 알았습니다. 전하께서 줄곧 이 일을 누르고 계셨사옵니다."명원제는 불쾌하게 목여 태감을 힐긋 보았는데, 목여 태감은 옆에 서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황귀비가 회임을 한 상태니 조용히 몸조리를 하는 것이 좋겠소. 그리 힘들게 할 필요는 없소. 올해에는 수녀를 뽑지 않을 것이오, 몇 년 지난 후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소."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하자 황귀비는 한숨을 내쉬었다."전하, 바깥사람들은 전하께서 일편단심이라 하시겠지만 호비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하겠습니까? 호비의 입지를 어디에 두시려는 것이옵입니까?"명원제가 화를 내며 말했다."호비와는 상관이 없소. 짐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호비가 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짐은 이미 더 이상 수녀를 뽑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소."황귀비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전하, 신첩이 전하를 여러 해 동안 모셔오셨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호비가 궁으로 들어오기 전 전하께서는 신첩에게도 잘해 주셨습니다. 신첩을 핑계로 삼아 수녀를 뽑지 않았고 다행히 신첩은 아이가 없어 질투와 원한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호비는 다르옵니다. 호비는 이미 황자를 낳았고 지금 또 회임을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정녕 그녀를 아껴주신다면 이렇게 많은 욕을 떠안겨서는
명원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목여 태감을 힐긋 보며 물었다. "자네가 황귀비 앞에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건가?""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전하!"목여 태감이 바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소인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마께서 얼마나 영명하시옵니까? 두세 마디 말로 소인의 말을 꿰었습니다."명원제는 콧방귀를 뀌었다."자네의 수단으로, 황귀비가 자네의 적수가 될 수 있겠나? 분명 자네가 의도적으로 알린 것이지."목여 태감이 겸연쩍게 말했다."전하께서 소인을 추켜올리셨습니다, 단지 소인은 조정의 일부 대신들이 확실히 전하께서 호비마마를 총애한다 생각하옵니다. 지금 대장군께서 밖에서 전투를 하고 계시니 외가 친척이 장대해져 태자를 위협할까..."그는 몰래 명원제를 한 번 보았고 명원제의 눈동자가 싸늘해진 것을 보고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명원제는 극히 노여워했다."그 자들이 멍청하니 자네도 덩달아 멍청해진 건가? 다섯째도 이 점을 의심한 적 없고 짐도 설마 누가 이 천하를 다스릴지 분간을 못한단 말인가? 열째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누구를 위협한단 말인가?"목여 태감이 대담하게 말했다."전하, 신들도 10황자가 어리다고 생각하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도 젊으십니다. 소인은 당연히 함부로 추측을 할 수 없지만 대신들이 이런 걱정이 있으니 호비 마마에게 영향을 미칠까 걱정돼옵니다. 지금 물론 전조와 후궁을 나누고 있지만 어찌 경위가 분명하게 나뉠 수가 있겠습니까? 모두 관련이 되어있지 않습니까? 바깥에서 조금의 풍랑이 일면 궁중에는 큰 폭풍이 일어나오니 심사숙고 하시옵소서 전하.""짐이 수녀를 뽑으려 하지 않는 것은 단지 호비 때문이 아닐세!"명원제는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됐네, 자네랑 더는 말해도 이해를 못 할 터이니. 이만 건곤전으로 가세!"그는 이미 태상황에게 물어보겠다 말을 했으니 어쨌든 물어보러 가야 한다. 비록 이 일을 태상황에게 물어보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지만.아니나 다를까 태상황은 그의 질문을 들은 후
태상황은 명원제가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는 말했다."잠재적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하거라. 열째는 호비의 곁에 두지 말고 밖으로 내보내서 키우거라."명원제는 그의 말에 크게 놀랐다."아바마마, 이것은 절대로 안돼옵니다!""왜 안 되는 것이냐? 황자가 어려서 어머니를 떠나면 후궁과 외가의 친척들에게 쉬이 선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비도 전심전력으로 너를 모실 수 있을 것이다."태상황은 곰곰이 생각하다 이 방법이 절묘하다 생각하는 모습이었다."이렇게 결정하려무나. 왕으로 봉하고 저택을 하사하라!"명원제는 초조하기 그지 없었다."그것은 단지 노신들의 헛된 추측일 뿐이옵니다. 열째는 아직 어린데 어찌 궁 밖으로 보낼 수 있사옵니까?"태상황이 담담하게 말했다."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나가서 시중을 들라 하면 되지 않겠느냐?""어느 누가 시중을 들어도 어미가 보살피는 것만 하겠습니까? 아바마마, 열째는 호비가 열 달을 고생해 낳은 아이옵니다. 모자가 떨어지는 것은 처참한 일이니 소자는 그렇게 할 수 없사옵니다."명원제는 결연히 반대했고, 태상황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것도 원하지 않고 저것도 원하지 않으면 어쩌려는 것이냐?"명원제는 그를 보며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짐은 수녀를 뽑기로 결정하였습니다!""이미 결정을 하였으면 무엇 하러 과인에게 물으러 온 것이냐? 가거라, 가거라. 과인은 후궁의 일을 더는 상관하지 않는데, 과인의 위풍을 꺾어 과인을 아낙네처럼 만들었구나."태상황은 빈랑을 토해냈다. 이가 없으니 씹기 어려워 소요공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 늙은이는 빈랑이 담뱃대와 같다고 하였는데 어디를 봐서 같단 말인가.담뱃대는 이로 물지 않아도 된다.명원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물러갔다.명원제가 나간 후 소요공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전하께서는 여전히 그다지 원하지 않나 봅니다. 태상황의 고심을 모르십니다."태상황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먼저 황제가 되는 것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태상황의 표정은 완화되었다."태자는 수녀를 뽑지 않아도 되네. 전조에도 후궁을 폐하고 일부일처만 지키는 황제가 있지 않았나.""너무 편파적인 것 아닌가?" 소요공은 멈칫했다.태상황은 그를 흘겨보고 말했다."이것이 어찌 편파적이라 할 수 있는가? 과인이 묻지, 후궁 빈비들이 입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자연히 후손을 낳아 자손이 번성하게 하는 것이지.""태자비는 지금 이미 아들을 다섯이나 낳았으니 자손이 번창하지 않았나?""음... 따지자 보면 그렇군!"소요공은 또 웃었다."황제도 지금 아들이 많지만 쟁탈을 시작하는 않았는가? 그리고 황제에게 수녀를 뽑으라 하는 것이 태자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게 하려는 것 아닌가?""황제의 아들은 동일한 빈비가 낳은 것이 아니네. 하지만 태자비는 다섯이나 낳았고 어미가 같으니 마음이 통하여 싸움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과인은 왜 태자를 세우고 바로 태손을 세웠겠나, 어려서부터 앞으로 만두가 황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이 인식은 나이를 먹으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릴 것이야. 만두는 장남이니 명분도 바른데, 다른 뜻이 있다고 한들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나? 큰일을 성사하려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겠나?""맞는 말이군!"소용공은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가며 물었다. "그럼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네는 태자비를 두둔하는 것 아닌가?"태상황은 그를 할 번 힐끗 보았다."맞네!"소요공은 입을 헤벌리고 웃었다."그냥 이 말만 하면 되지 않느냐? 가식적으로 많은 것을 분석하고 있군."태상황은 승복하지 않으며 말했다."과인도 이유 없이 두둔하는 것이 아니네. 태자비의 친청을 말하자면 정후가 무슨 큰일을 낼 수 있겠나? 태자가 나중에 황제가 되어 빈비를 간택하는 것이 골칫거리의 시작일세."소요공이 말했다."다만 후궁은 전조를 회유하는 수단이었는데, 후궁을 폐한다면 아깝지 않은가?""태자는 아직 젊은데도 불과하고 재능을 보이고 있네. 한 무리의 젊은 관원들을
소요공은 어쩔 수 없이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그것은 태자가 건의한 것이네.""많은 시정 조치는 모두 대신이 건의한 것이지만 군주가 패기를 가지고 추진하는지에 달렸네!" 태상황이 말하자 소요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을 내다보았고 만두가 책 한 권을 들고 대화에 깊이 빠져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금치 못했다."태손, 어찌하여 말을 하지 않는가?"만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책을 안고 들어와 먼저 태상황에게 문안을 드리고 다시 소요공에게 인사를 올렸다."왜 이 시간에 돌아온 것이냐? 수보는 어디있고?"태상황의 눈동자는 단번에 자애로워졌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문질렀다.만두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수보께서는 배가 아프십니다. 동생은 놀러 갔고 저는 책을 외우려 돌아왔습니다. 수보께서 늦게 검사를 하겠다 하셨습니다.""그래, 만두 참 착하구나. 떡 먹을 테냐?"태상황은 바삐 손을 흔들어 사람을 명해 과자를 장만하라 했다.만두는 얌전히 말했다. "예!"그는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태사의에 올라가 앉아 새까만 두 눈동자에 빛을 발하며 고개를 들어 태상황을 바라보았다."태조부, 방금 황조부의 말씀을 하신 것 중 옳지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옵니다.""무엇이 옳지 않더냐?"태상황은 멈칫하다 이상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만두가 말했다."황조부께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다만 현재 북당 내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하옵니다. 예를 들어 매년의 수해와 북방의 가뭄, 그리고 많은 빈곤 지역에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밥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옷으로 몸을 가리지 못합니다. 황조부께서는 내부를 안정하게 하고 밖을 정하려 하지요, 물론 말하자면 그것도 맞습니다만 황조부께서 한 가지 소홀히 하신 점이 있사옵니다. 만약 외적이 오랫동안 호시탐탐한다면 시일이 오래 지나면 큰 우환이 될 뿐만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조정이 연약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옵니다. 조정이 강경하지 않으면 백성들도 연약해지는데 어찌 태평성대
호비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곁에 기대었다."전하께서 제가 기쁜지 아닌지, 신경을 쓰는지 아닌지를 관심해 주시는 것 만으로도 소첩은 충분히 만족하옵니다. 후궁의 많은 언니들도 소첩이 몇 년 동안 총애를 받는 것을 보고 소첩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들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소첩이라고 그러한 아량이 없겠사옵니까? 소첩은 무슨 일을 신경 써야 하고 무슨 일을 개의치 말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소첩을 오랫동안 아껴주셔서 조중 신하들의 이의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도 사실 어떤 사람들이 이유 없이 원한을 맺고 이유 없이 아첨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첩은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 특히 소첩에게는 지금 열째가 있고 임신까지 하고 있으니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하옵니다."명원제는 듣고 속으로 아주 감동했다. 그녀는 비록 때때로 경솔했지만 이 2년 동안 성격이 갈수록 차분해졌고 사리를 잘 알고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걱정 말거라. 아무리 빈비를 뽑는다 하여도 짐의 마음에는 오직 너 하나뿐이다."명원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호비는 가볍게 대답을 하고는 손을 뻗어 그를 안았다."전하, 소첩과 함께 나가 보시지요."그녀는 태자비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 비록 수녀를 뽑는 일이 그녀를 슬프게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고 그녀는 선택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일찍이 마음의 준비를 했다.그녀는 황귀비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그녀는 사람의 염원이 계속 실현되면 기어오르기 십상이니 초심을 견지해야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황귀비가 말할 때 그녀는 정확하고 투철한 견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황귀비가 정말 세상사에 밝다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명원제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니 그녀가 바라는 일을 반드시 승낙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도 나가서 좀 돌아보고 싶었다. 그는 등극한 몇 년 동안 거의 궁을 떠나지 않았고, 나간다 하더라
이튿날, 명원제는 목여 태감과 호비와 함께 평상복 차림으로 민정을 살피러 가려 했다.출발하기 전 호비는 이미 아랫사람들에게 조수라를 준비하라 명하였는데, 아주 풍성했다. 그녀는 일반 백성들의 옷으로 갈아입었고 배가 아직 불러오지 않아 약간 어수룩한 기색을 보였기에 마치 금방 궁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과도 같았다.명원제는 그녀의 미간에 나타난 환희를 보고 웃었다. 그가 오늘 입은 옷은 목여 태감이 준비한 것으로 일반 백성들이 자주 입는 솜옷이었다. 날이 춥다 보니 특별히 그에게 검은 태사혜 한 켤레를 준비해 주었는데, 군왕의 기세를 거두니 평범한 남정네와 다른 바가 없었다.명원제는 자신의 이 차림새를 좋아하진 않지만 재미를 느껴 식사를 한 후 청동거울 앞에서 몇 바퀴를 돌았다. 두 손을 소매 주머니에 넣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중년 상인처럼 보였다.목여 태감은 거친 천 옷을 입고 발에는 낡은 짚신을 신어 안에 있는 버선을 드러냈다.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바지에 진흙을 조금 묻혀 밭에서 돌아온 모습이었다.평상복 차림으로 민정을 살피는 것이니 자연히 의장대가 따르지 않고 금군도 함께 하지 않았다. 목여 태감의 무공은 아주 높아 돌발적인 상황만 없다면 모두 대처할 수 있다.하지만 이 일을 구사가 알고 있다 보니 구사는 몇 사람을 배치하여 차림새를 바꾸고 뒤따라 가 의외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쪽 옆문을 따라 궁을 떠났고 청란 대가에 도착하자 명원제는 깊이 숨을 쉬며 속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 그는 호비에게 말했다."짐은 오랫동안 지금처럼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호비가 웃으며 말했다."남편, 더 이상은 그 자칭을 쓰시면 안 돼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상복 차림으로 민정을 살피는 것은 의미가 없사옵니다."명원제가 말했다."익숙해져서 한동안 고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무엇이라 자칭하는 것이 좋을까?""늙은이? 노인네?" 목여 태감이 옆에서 농담을 하였다. 태감도 기분이 좋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건넸다.명
"저희 나리께서 갑자기 복통을 앓으셨습니다. 여기 의원이 계신가요?"목여 태감이 묻자 의원은 대청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이리 오시게!"호비가 가서 물었다."의원 선생, 이곳에 복통을 멎게 하는 약이 있는가?""있습니다."의원은 약동을 부르며 그들을 한 번 훑어보고 말했다."이들에게 곽향환 한 병을 가져다 주거라."약동은 대답을 하고는 오층 탁자에서 작은 자기병 하나를 꺼내 목여 태감에게 건네주었다."50문!"호비는 멍해졌다. "50문? 내가 잘못 들은 겐가?"약동은 그녀를 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줄곧 50문이었습니다, 사본 적 없는 것입니까?""산 적 있네만 그저 15문에 팔았네. 왜 이리도 비싸단 말인가?" 호비가 눈살을 찌푸렸다.대청에 앉아 있던 의원이 차갑게 말했다."곽향환은 15문에 팔아본 적이 없네. 살 수 없으면 가게나 여기서 흥정하지 말고."목여 태감이 화가 나서 말했다."말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물어봐도 안 되는 것입니까? 이 곽향환은 원가가 저렴한데 50문에 팔다니 정말 너무하십니다."명원제는 복통이 심해 손을 저었다. "됐네, 됐어. 그냥 주거라."호비는 목여 태감을 보며 말했다."은을 주시게나."목여 태감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저는... 저는 은을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명원제는 화로 인해 복통이 더욱 심해졌다."어떻게 된 일인가? 외출을 하는데 은을 챙기지 않다니?"목여 태감은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하도 오랫동안 집을 나서지 않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의원은 이들의 궁상맞은 꼴을 보고는 눈을 흘기며 약동에게 말했다."쫓아내거라!"목여 태감은 앞으로 나아가 의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의원 선생, 약은 저희가 먼저 가지고 나중에 바로 두 배의 은을 보내드리는 것은 어떻습니까?"의원은 냉소를 지었다."온 거리를 수소문해 보시게, 어디 이런 규칙이 있는지."목여 태감이 애원했다."그럼 먼저 저희 나리를 치료해 주십시오. 제가 바로 돌아가 은을 갖고 오겠습니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