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강연과 황제의 만남호강연은 대략 향 하나가 탈 정도 시간을 마음을 다잡는데 보내고 겨우 마차에 올랐다.입궁하는 길 따그닥따그닥 말굽소리보다 쿵쿵거리는 그녀의 심장 뛰는 소리가 더 컸다.호강연은 손수건을 꼭 쥐고 최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며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싶었지만 머리 속에 뭐가 생각 날 리가 있나? 온통 잘생기고 위엄 넘치는 그 얼굴로 가득하다.호강연은 상궁의 믿음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한숨을 내쉬며: “상궁,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야, 내 나약함으로 망쳐버릴 수는 없어.”상궁이 가볍게 호강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렇다면 아가씨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세요. 폐하께 아가씨 마음속의 얘기를 하게요.”호강연은 자신의 손가락을 꽉 쥐고, 더 꽉 쥐었다. 그렇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쟁취하는 것이다.두툼한 노란 벽돌담에 금빛 찬란한 유리 기와, 부귀와 권위가 흘러 넘치는 짙은 붉은색 궁문, 돌계단을 밟을 때 호강연은 자신의 어릴 때 꾸었던 꿈에 한발짝 다가서고 있음을 느꼈다.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굳건해 지기 시작했다.호강연은 어서방 문 앞에 다다르자 다시 한번 깊이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들고 목여태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호강연이 사뿐사뿐 반짝거리는 하얀 돌판을 걸어가는데, 신발코에 진주가 치마 끝에 가려 보였다 가려졌다 하며 한걸음 한걸음 9년간 사모하던 사람에게로 다가갔다.걸음을 멈추고 꿇어 앉아, “호강연 폐하를 뵙습니다.”명원제는 낮게 꿇은 자세를 보고 마음이 안돼서 흘끔 보고: “됐다. 일어나거라.”“감사합니다. 폐하!” 호강연이 손수건을 쥐고 일어나 손을 가지런히 했지만 황제를 보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명원제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 꼬맹이와 얘기하는 게 태상황과 얘기하는 것보다 스트레스가 크다고 생각하며, “네 아버지가 네 결혼 문제로 오늘 입궁했었다. 짐이 생각하기에 네 아버지가 노고가 크고, 너도 어릴 때부터 자라는 것을 봐온 지……”호강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부리부리
명원제와 호강연의 대결호강연이 어디 가라고 한다고 갈 사람이야? OK를 못 받으면 갈 리가 없는 게, 호강연은 두 번 다시 속마음을 그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나가 명원제에게, “천하의 남자 중에 당신을 제외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저를 위해 남편감을 고르느라 애쓸 필요 없으세요. 만약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전 오늘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제 인생을 당신들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며 입궁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만약 제가 일생 좋아할 리 없는 사람과 결혼시키시는 것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인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은 그 길은 당신들이 선택하신 길로 전 당신들을 원망하겠지요 제가 죽을 때 까지요.”명원제가 낭패라는 눈빛으로 살짝 언성을 높이며: “평생 좋아할 리가 없다니 무슨 소리냐? 시집을 가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법으로 천하의 여자들이 다 이러한데, 그들은 그러면 결혼전부터 좋아했다는 말이냐?”호강연이 갑자기: “다른 여자들은 시집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남편과 시간을 보낼 수록 정이 싹트겠지요, 설사 정이 없어도 이미 하나로 묶였으니 어쩔 수 없죠. 그걸 그럭저럭 버틴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버틸 수 없어요. 왜냐면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15살 시집갈 나이가 되자 진북에선 끊임없이 혼담이 있었지만 전 다 싫다고 했습니다. 진북에 좋은 남자가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제가 마음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엔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폐하 아시겠어요?”명원제가 화를 내며: “너랑 얘기하는 건 쇠 귀에 경읽기야. 말이 안 통해. 너랑은 됐으니 짐이 네 아버지를 불러 얘기하마, 너의 인륜지 대사는 네 아버지가 주도하는 게 맞지.”호강연이 단호하게: “제 결혼은 제가 주도적으로 합니다. 제 인생이니까요
호강연의 결혼을 앞둔 진북후천벌을 받을 지고!진북후는 딸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는 팔짝팔짝 뛰어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슬픔으로 가슴이 메였다.진북후는 산을 내려온 맹호같이 기세가 등등하고 위엄이 넘쳤는데 어쩌다가 발이 걸려 제대로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체면이 땅에 떨어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온 힘을 다해 만들어낸 위세가 헛것이 되었다.명원제의 어명이 늦게 도착해 다음날에야 진북후 저택에 도달했다.비에 봉했으나 봉호도 만들기 귀찮았는지 호비(扈妃)라고 한 게 아무리 봐도 대충한 것 같다.하지만 호강연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호비가 제일 듣기 좋다고 했다.진북후는 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불쾌한 마음을 다스리며 중얼거리길: “황후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좋아?”호강연이: “그대는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리요?”진북후가 한숨을 쉬며, “그대는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찌 물고기의 고통을 알겠느냐? 앞으로 알게 될 게다. 후궁 마마들이 널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게 분명하고, 네가 황제에게서 멀리 있어야 비로소 삶이 편할 거다.”“아버지, 설마 폐하에게 황후를 폐위하라고 압력을 넣으실 건 아니죠? 당초에 제가 초왕에게 시집을 가게 됐어도 초왕비에게 양보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진북후가 썩은 낯빛으로, “애비가 덤벙거리긴 해도 바보는 아니다. 초왕비와 황후가 어떻게 같아? 주씨 집안과 정후부가 같으냐? 정후에겐 미운 털이 박힐 수 있지만, 감히 주재상에겐 밉보일 수 없어.”호강연이 웃으며: ‘아버지도 겁나는 사람이 있으세요? 황제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진북후가 느릿느릿 걸어가 앉으며, “웃는 호랑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평소엔 잘 참고 받아주지, 네가 어쩌다가 그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어도 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심지어 어쩌다가 네가 농담삼아 빈정거려도 말이지. 하지만 분수를 알아야 해. 능력만큼 방귀도 뀌는 거지. 내가 초왕비 자리를 요구한다면, 좋다! 하지만 황후의 자리를 요구한다면
호비의 입궁을 대하는 비빈의 태도“넌 체면도 없냐!” 진북후는 즉시 얼굴이 굳어지며 호통을 쳤다.호강연이 웃으며 도망쳤다.비로 봉한다는 교지가 내린 뒤라 후궁에선 분명 다 알고 있을 것이다.황후가 제일 먼저 어안이 벙벙했다.이 일은 황제가 언급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던 일로 비를 책봉하는 것과 같이 중대한 사안을 황제가 황후인 자신과 일언반구조차 않은 것이다.황후는 분통이 터져서 죽을 지경이다.하지만 열 받은 건 자기 뿐이고, 후궁들은 전부 와서 어떻게 된 건지 묻는 행간에, 황후가 지나치게 은밀하게 일을 꾸민다는 말투다. 하긴 후궁들에게 먼저 소식을 알리지 않았으니 할 말은 없다.황후는 단정한 얼굴빛을 꾸미고 듣기 좋은 말로 후궁에 5년간이나 비를 뽑지 않았고, 5년전에 뽑은 3명이 입궁한 뒤 소빈이 죽었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후궁에 오랫동안 새사람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 아니냐. 새로운 피로 수혈할 필요가 어쩌고. 후궁들은 상당히 언짢아서 누가 새사람이 필요한데? 당신이나 새 피로 수혈하시지, 후궁들은 긴 세월에 걸쳐, 모두의 얼굴에 주름이 지고서야 비로소 공평해졌나 싶은데 뜬금없이 팽팽하고 윤기나는 소녀가 나타난다는데 늙은 사람들이 어디 상대가 되겠어?황후는 속에 천불이 나지만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입궁한 뒤엔 다 자매가 되니 앞으로 같이 화목하게 지내며 폐하를 잘 모십시다. 자아, 가보세요.”황후가 이렇게 말하니 마마들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자리를 떴다.황후가 마지막 한줄기까지 미소를 유지하다가, 마마들이 모두 문을 나가자 폭발하며 험한 말이 쏟아지는데, “폐하께서 이번엔 단단히 잘못 하셨어, 어찌 나에게 먼저 귀띔조차 안 할 수가 있어.”궁인들은 위로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진북후에서 진북군까지 얘기가 이어지고 다시 황제가 어쩔 수 없었음을 언급하니 황후의 분노도 어느 정도 잠재워 졌다.황후도 사실 감히 황제를 찾아갈 엄두를 낼 수 없는 게 나귀빈 사건 판결이 뒤집어진 이후 황후의 마음이 계속 허했다.당초에
안왕과 귀비의 계략아니다 됐다. 궁에서 보낸 세월이 얼만데 새 사람이 들어오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현비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호강연은 훌륭한 며느리감으로 만약 다섯째와 결혼했으면 그의 앞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결국 황제 손에 거둬졌으나, 황제에게 아무 소용없잖아? 진짜 열 받아 죽겠네.그리고 다섯째도 뺐어 올 생각은 없고 내내 원씨만 싸고 돈다.원씨 배속의 아이가 남자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군주면 다섯째를 어쩌면 좋아.궁중에서 가장 냉정한 건 귀비임에 틀림없다.안왕은 오늘도 아침 일찍 입궁해 귀비에게 문안하고 모자는 궁에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귀비가 벙글벙글 웃으며 아들에게: “이제 걱정 없지? 당초에 다섯째가 호강연과 혼인하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걔가 황제의 후궁이 될 마음을 먹었을 줄 누가 알았어. 비빈마마가 된다고 하니 현비의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서 열 꽤나 받았겠지, 호강연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불러들여 담소를 나누더라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안왕이 확실히 안심하며: “진북후가 예전부터 다섯째를 잘 봤고, 만약 다섯째가 호강연과 혼인하면 우리에겐 불리하지만 지금도 방심할 순 없습니다. 진북후 쪽이 움직이는 걸 먼저 확인해 봐야 해요. 그가 저를 밀던 그렇지 않던 다섯째 쪽으로만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됩니다.”귀비가 장의자 등받이에 반쯤 기대서, “진북후는 무장에 불과해서 머리가 단순하고, 원래 출신이 높지 않은데 지금 공을 세워 금의환향했으니 명문세가가 되려고 발버둥칠 게 분명해. 네 외할아버지께 진북후와 연락을 좀 취하라고 하려 무나. 좀더 공을 들여야 해, 그는 아직 우리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안왕이 놀라는 기색으로, “어마마마는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군요.”귀비가 코웃음을 치며, “네 속마음을 내게 감출 수 있을 것 같으냐? 전에 내가 아팠을 때는 코빼기도 안 뵈더니 오늘 네 아바마마가 고 계집애를 비로 책봉했다고 하니 바로 오늘 걸 보고도 눈치 못 챌
우문호의 설레발“알겠습니다.” 안왕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나씨 집안 쪽 판결을 이번에 뒤집는 바람에, 다시 귀영위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외할아버지가 귀영위에서 지위에 영향을 받으시는 건 아니겠죠?”귀비가: “일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서 넌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외할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게.”“알겠어요.” 안왕이 말을 마치고 일어나 물러갔다.초왕부 쪽에서도 호비의 일을 알게 되어 모두 상당히 경악했다.비록 원경릉이 그런 추측을 하긴 했지만 정말 사실이 되니 기가 막히는 것이다.우문호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호비의 소식을 듣고 미친듯이 웃어 제쳤는데 얼마나 심하게 웃었는지 한동안 아물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통증으로 눈물까지 났다.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고 웃긴 건 어쩔 수 없다.“아바마마께서 이번에 난제를 나한테 떠넘기려고 하셨는데, 자기 무덤을 팠…..풉, 진심 통쾌해!”원경릉이 우문호의 상처를 봐주며: “종일 웃네 진짜, 고만 웃어,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거야? 넌 슬퍼야 마땅하지.”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왜 슬퍼야 하는데? 얼마나 기쁜 일이야.”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기며, “아바마마께서 원래 네 후궁으로 삼으려고 하셨는데, 이젠 아바마마 후궁이 됐으니 마음이 불편하실 게 틀림없어, 마음이 불편하면 누구한테 화를 낼까? 무릎이 닳도록 꿇어본 사람이 잘 생각해 보시지.”우문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원경릉이 거즈를 덮어주고, “상처는 많이 좋아졌어, 슬슬 딱지가 앉기 시작한 게 앞으로 새피부가 나오니까 또 맞으면 아주 그냥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게 아플 거야.”우문호가 설레발치다가 망했다.“그럼 난 숨어서 이 시기를 지난 뒤에 입궁하겠어.” 우문호가 머리를 쥐어짜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나 아프게 해줘, 그럼 분명 꼰대도 마음 아파서 날 못 때릴 걸.”“바보야!” 원경릉이 웃으며, “25대를 맞았으니 당분간 넌 안 건드리시지. 계속 너만 드러내 놓고 팰 수도 없고.
위왕의 방문3일후 위왕이 원경릉을 찾아왔다.원경릉이 서일 얘기를 듣고 처음 반응은 위왕이 왜 아직 경성에서 꺼져버리지 않았나 였다.미친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지만 안 할 수도 없다.그래서 서일을 시켜 위왕을 접객실로 안내하라고 했다.원경릉이 나와서 처음 위왕을 보고 거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위왕은 아주 소박하고 얇은 회색 옷을 입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덜덜 떨고 있었다.상당히 말랐고 얼굴이 전반적으로 해쓱한 데다 눈두덩이가 푹 꺼지고 눈엔 실핏줄이 가득하다. 수염도 깍지 않고 아무렇 게나 자라서 목이 드러나며 핏줄이 튀어나온 게 보였다.위왕의 얼굴이 꾀죄죄한 것이 마치 흙바닥에 비벼 놓은 것 같다.두 손을 소매 안아 넣고 앉은 위왕의 자세가 구부정하니 없어 보인다.원경릉이 천천히 들어가 한동안 이 사람이 맞는지 살펴보다가 얼굴 윤곽을 보고서야 비로소 ‘위왕이 맞구나’ 알았다. 며칠 사이에 한참 말랐다.원경릉이 앉아서 위왕을 보니, 위왕도 고개를 들었는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초점이 없다.위왕은 입술을 뜯으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하는 모습이 원경릉이 보기엔 울상을 짓는 것 같았다.위왕의 이런 몰골을 보기 전까지 원경릉은 위왕을 동정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지금도 동정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니, 인간의 눈이란 참 제멋대로다.한참 뒤 위왕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는데 가느다란 쉰 목소리로, “그녀는 잘 있습니까?”위왕이 입을 열자 원경릉이 그때까지 그에게 품었던 측은지심이 와르르 무너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당신이 완전히 숨통을 끊어 놓지 않아서 다행히 아직 살아있습니다.”위왕이 또 입술을 뜯으며 두 손을 소매에서 꺼내더니 무릎을 비비고 중얼거리듯: “아직 살아있어.”원경릉이: “저를 왜 찾아 오셨죠?”위왕이 원경릉을 흘끔 보니 원경릉의 얼굴빛이 냉랭하자 얼른 비켜서서 이리저리 숨다가 마지막엔 바닥으로 보며, “날 미워하죠? 그렇죠?” 원경릉이 차갑게 웃으며, “전 몰라요, 전
원경릉을 찾아온 위왕위왕의 얼굴이 더욱 잿빛으로 변하더니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무릎을 비볐다. 원경릉은 위왕의 손이 각종 상처로 가득한 것을 봤고, 몇몇 마디에 피부가 벗겨져 있는 것이 주먹으로 뭔가를 내리친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렇게 멀리서 대충 봐도 피범벅인 느낌이다.“아직 왜 절 찾아오셨는지 얘기 안 하셨어요.” 위왕이 이런 모습이라 쓸데없는 동정심이 생기지 않게 원경릉이 얼른 시선을 거뒀다.위왕이 작은 소리로: “전 내일 북군 군영에 가야해요. 가기 전에 그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그녀를 찾아가지 마세요.” 원경릉이 위왕의 말을 듣고 얼른 경고하며 말했다.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찾아가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얘기하려고 왔어요. 당신이 적당한 때에 그녀에게 전해주세요.” 원경릉이 위왕을 한동안 쳐다보고 비로소: “말씀하세요.”원경릉은 정말 위왕의 진심을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말이다.너무 잔인했다. 살인은 그저 목이 땅에 떨어질 뿐.위왕의 입술이 꿈틀거리며, “물 한 잔만 주실 수 있으세요?”원경릉이 만아에게 고갯짓으로 찻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만아가 나가고, 잠시 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가져와 올리며, “왕야 드세요!”말을 마치고 만아가 방금 서있던 자리로 가서 원경릉을 지켰다.물이 뜨거워서 한 모금 씩 마시는 위왕의 모습을 보고 마치 한동안 물을 마셔본 적이 없는 듯, 극도의 갈증상태처럼 보였다.물을 다 마시길 기다려 원경릉이: “말씀하셔도 돼요.”위왕의 입가에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는데 아무렇게 손으로 쓱 닦는 모습이 털끝만치도 친왕이란 사실을 개의치 않는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한참 뒤에 위왕이 비로소 작은 목소리로: “당신들은 믿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전 정말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살구 빛이 도는 노란 비단 옷을 입고 목에는 전기석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꽃신이 더러워져서 그녀가 고개를 숙여 손수건으로 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