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 황제와 단둘이 수라를 들다첫 음식은 탕이다.정교한 작은 탕 그릇 두 개에 담아 명원제와 원경릉 앞에 놓는다. 그릇 덮개를 벗겨 가니 냄새가 퍼져 원경릉의 코를 자극한다.아직도 보글보글 끊는 걸 집게 손가락으로 냉큼 먹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게 한이다.원경릉이 생각하는 수라는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황제의 수라는 전부 독이 없는지 확인하고 손 씻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궁녀가 앞으로 나와 원경릉을 위해 탕을 앞 접시에 덜어주고, 은 국자를 놓아준다. 명원제 쪽에는 목여태감이 시중을 들고 있다.원경릉은 감히 꼼짝 못하고, 명원제가 은 국자를 들어 탕을 마시기 시작하자, 겨우 한 숨돌리고 손을 뻗어 국자를 집었다.너무 배고픈데 마침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어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황제가 뭘 묻든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니 두려울 게 뭐가 있냐 싶다.탕을 입에 넣고 아직 넘기지도 않았는데, 밖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와 원경릉은 국자를 내려놓고 밖을 쳐다봤다.목여태감은 조금 화가 난 듯, 빠른 걸음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색이 다소 변한 채 안으로 들어와: “황제 폐하, 황후께서 옥체가 미령 하시어 혼절하셨다 합니다.”명원제는 이마를 찡그리며, 일어서서, “가마를 대령하라!”원경릉은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황제 폐하께서 가셨으니 혼자 마음 편히 먹으면 된다.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얌전히 우아를 떨며 먹을 수가 없었다.명원제는 이런 원경릉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따라 오너라.”원경릉의 아쉬운 눈빛이 탕 그릇에 어른어른 비치며, “예!” 답했다.그녀가 일어서자, 목여태감이 폐하께서 걸칠 윗옷을 가져오고, 명원제는 원경릉을 등지고 상선의 시중을 받아 겉옷을 걸치고 옷에 주름을 바로 잡고 있다.원경릉은 배가 고파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 명원제와 목여태감이 안 보는 틈을 타, 미친듯이 탕 그릇을 입에 가져가 두 모금에 한 그릇을 흡입하니, 팔팔 끓던 탕이 입천장에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위까지 홀랑 데어서 눈
원경릉 황제 폐하와 독대하다식탁엔 정적이 흐르고, 마지막 음식을 먹을 때까지 아무 말이 없는데, 원경릉이 세어보니 탕부터 못 되도 10개는 넘었다. 원래 황제 폐하는 검소하시다고 알고있었는데, 이렇게 사치스럽다니, 두 사람이 요리 9개에 찌개 하나, 밥은 알아서 먹고 싶은 만큼, 대단하네.목여태감이 황제 폐하에게 뜨거운 물수건을 건네자, 입가를 닦는다.남은 음식을 내가고 원경릉은 황후가 편찮으시니 황제 폐하도 별다른 질문 없이 황후에게 가실 거라 생각했다.원경릉이 일어나, 예를 차려 인사하며: “아바마마께서 황후 마마를 찾아 뵙는데 감히 시간을 지체하시게 할 수 없으니, 며느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앉거라!” 명원제가 탁자를 지긋이 누르며, 위엄 있는 눈빛으로 원경릉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손을 흔들며 목여태감과 비룡전에서 시중을 들던 나인들을 내보냈다.명원제와 원경릉은 마주 앉아 서로의 거리는 어깨 하나 정도 폭이라, 비룡전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압박감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그러나 밥을 먹고 나니 원경릉은 상당히 여유가 생겼다.“다섯째 녀석과 잘 지내고 있느냐?”원경릉은 안색을 단정히 했다, 결국 본론이 나왔다.이 문제는 비록 예상 밖이었지만 답은 어렵지 않다. 한 줄이면 된다. ‘욕을 퍼붓고 심하게 때린다.’그녀는 방긋 웃으며, “손님을 대하듯 서로 공경하고 있습니다!”명원제는 그녀를 보고 웃는 듯 마는 듯, “다섯째 성정은 어떠냐?”“왕야는 충직하고 어지신 분입니다!” 원경릉은 양심을 걸리는 것을 꼭꼭 감추고 미소를 띄며 말했다. 황제가 알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니다. 황제는 그들 부부관계가 화목하든지 말든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명원제는 웃기 시작했다.마치 재미난 얘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원경릉은 웃는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혼례를 치른지 일년이 되었지? 태중에 소식이 없으니 손님처럼 대한다는 게 그런 뜻은 아닐 텐데.” 명원제는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직구를 던지는 데도 원경릉은 여전히 맞받아
쓰러진 황후를 찾아간 황제중신궁 안, 주명취는 어의가 오길 기다렸다.어의는 황후의 맥을 짚고, 황후는 울화가 맺혀 있을 뿐 큰 문제는 없다며 약방문을 내린 후 바로 갔다.어의가 가고 나서야 밖에서 누가 고하길: “황제 폐하 납시오!”주명취가 일어섰다. 반 시진 넘게 지나서야 황제 폐하가 오시다니 식사는 이미 다 하셨겠지?명원제는 큰 걸음으로 중신궁에 들어서고, 주명취는 서둘러 예를 취하며,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명원제는 그녀를 흘깃 보고, “제왕비도 있느냐? 효심이 지극하구나.”“마땅히 할 일입니다.” 주명취가 웃으며 말했다.주황후는 몸을 일으켜 병색이 완연하게: “황제 폐하 어찌 오셨습니까? 신첩은 별 일 아닙니다.”명원제는 침대 맡에 앉아 황후의 얼굴을 보고, “사람을 시켜 짐을 오라 하지 않았느냐?”주황후는 곤혹스러워 하며 주명취를 봤다.주명취는 다급히: “아바마마, 제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어마마마께서 혼절하신 것을 보고 순간 너무 황망하고 왕야도 곁에 없어……”명원제가: “너는 평소에 생각이 깊은 듯하더니 어찌 오늘은 생각이 없었느냐?”주명취는 가슴이 덜컥한다. 황제의 이 말은 가시가 돋친 것 같은데?원경릉이 황제 앞에서 주명취의 험담을 한 게 분명하다.주명취는 명원제가 아직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알고 선선하게 답하며: “어마마마가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명원제는 황후를 보며, “어의가 뭐라고 하던가?”황후는 부드럽게: “어의 말이 기혈이 부족한데 울화가 맺혀서 일시적으로 혼절했으나 어느 정도 쉬면 크게 무리 없답니다.”명원제는 황후에게 이불 자락을 끌어 덮어주며, 온화하게: “응, 그럼 잘 쉬도록 하게, 태상황 폐하께는 굳이 들릴 필요 없소.”황후는 놀라, 황급히: “신첩은 괜찮습니다.”“짐이 당신의 효심을 알고 있소.” 명원제는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주명취에게, “제왕비야, 황후를 잘 돌봐 드려라, 태상황 쪽은 초왕비가 병구완을 하면 되니.”주명취의 순간 얼굴이 하얘졌다. 황제 폐하의 이 말은 분
명원제의 반격명원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화한 목소리로, “그럼, 황후 생각엔 초왕비를 어찌 처벌하는 것이 좋겠소?”주황후는 황제가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는 기쁨에, “신첩이 생각하기에 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북당의 국운과 관련이 있는 바, 초왕비가 똑똑함을 자초해 의술이 뛰어나다며 제멋대로 치료해 태상황 폐하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으니 대역무도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불미스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으나, 신첩은 마땅히 궁에서 쫓아 내고 첩으로 강등하여 어명이 없이는 궁에 출입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명원제는 빙긋 웃으며, “황후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죄가 있는데 벌하지 않고, 공로가 있는데 상을 내리지 않으면 분명 천자의 도리가 아니지. 그럼 황후가 말한대로 합시다.” 주황후는 황제가 동의한 것으로 알았다. 물론 처벌이 엄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첩으로 강등하는 것도 단지 명목상에 불과하고 초왕비는 어차피 황실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으니 앞으로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실지로 황후는 초왕비와 어떤 마찰도 빚고 싶지 않지만, 제일 중요한 건 원경릉이 다시 입궁할 수 없게, 다시는 태상황 앞에 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됐다.주명취도 다소 안도하며, 보아하니 저녁 수라 정도로 폐하가 지난 원경릉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하진 못한 것 같다.하지만, 명원제는 말의 칼끝을 황후와 제왕비에게 돌려, “잘못이 있으면 벌을 주지만 공이 있어도 상을 줘야 마땅하겠군, 원경릉이 태상황을 구한 공은 작은 공이 아니니 공이 과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어. 짐이 우선 죄를 주고 다음에 상을 내리는 형태로 강등했다 다시 초왕비로 복귀하게 하고, 연후에 남주(南珠, 류큐에서 나는 귀한 진주) 두 줄을 하사하는 것이 어떠한가?”주명취는 도무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다. 공이 과실을 상쇄하고도 남아 상을 내리겠다고? 폐하는 원경릉을 처벌할 생각이 아예 없으신 거야.“남주 두 줄이요?” 주황후의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으로 얼굴빛이 흐려지며,
원경릉과 우문호가 아이를 가질까?우문호는 아바마마가 무슨 소식을 캐낼 지는 두렵지 않지만, 원경릉이 아무 말이나 지껄여서 아바마마를 노엽게 할까 걱정이 됐다.그 추녀, 임금을 기만한 죄의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지.원경릉이 멀뚱멀뚱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자, 원경릉이 예리하게 발견하고는 잽싸게 가서 한 손으로 누르며, “함부로 움직이면 안돼.”“더러운 앞발 치워라.” 우문호는 자기가 원경릉에게 그 정도나 애정 어린 마음을 가졌었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기분이 상하면서 그녀에게 더 못되게 굴었다.원경릉은 이 사람은 진짜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또 부질없이 우문호에게 관심을 가졌구나 생각했다. “넌 어째 똥 오줌을 구분을 못해? 내가 그쪽에 관심이 있다고.”“누가 관심 가져 달래?” 우문호가 차갑게 말했다.“말을 말자.” 원경릉이 우문호 옆에 엎드려, “안으로 좀더 들어가, 나 좀 자게.”우문호는 안 들어가니 두 사람의 어깨가 맞붙는다. 우문호는 중상을 입어서 움직일 수 없으니 어깨가 좀 닿을 수도 있다고 자신을 설득시켰다. 원경릉의 얼굴이 침대 밖으로 향해 우문호가 보는 건 새카만 뒤통수다.“야, 아바마마께서 너한테 뭐라셔?”“너 상처 좀 어떠냐고 물어보시더라.” 원경릉이 눈을 감자, 눈꺼풀을 들어올려지지 않는다. 식곤증이다.“그리고?”“그리고 우리가 언제 아들 낳을 거냐고 물어보셨어.”우문호는 당황해서,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물어 보셨어?”“물어봤다고 할 순 없고, 우리가 혼례를 치른지 1년인데, 어째서 태기가 없냐고 하시길래, 내가 노력 중입니다. 일년 후에는 태어날 겁니다 했지.” 원경릉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사실 이 자세가 정말 편하다.“애를 낳아준다고? 너 말 똑바로 할 줄 알아 몰라?” 우문호는 기가 막힌다. 아바마마께서 이런 답을 들으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지 않나? “폐하의 손자라고.” 원경릉은 우문호의 이런 날카로운 소리를 참을 수가 없고 화가 나서 얼굴을 돌리고, 우문호도 마침
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무조건 여자들만 고생한다고 그래?”원경릉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혼인은 여자가 전적으로 손해지. 남존여비 사회에서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야 하고, 그나마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은 애 낳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것도 첩들하고 경쟁해야하고! 남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눈곱 만치도 몰라.”우문호는 말문이 막혔다. 이게 무슨 무논리인가? 무엇을 업으로 삼고? 무슨 경쟁? 또 무슨 근거로 남자가 사랑을 모른다고 말하는거지? “본왕이 뭘 모른다는거냐?” 우문호의 눈썹 사이의 흉터가 일그러졌다. “뭘 안다는거죠? 만약에 당신이 주명취랑 결혼했다고 치고 평생 그녀를 위해 첩을 두지 않을 겁니까?”원경릉이 물었다. “본왕이 첩을 두든 말든 너랑은 무슨 상관이고, 왜 갑자기 주명취를 들먹여?”“툭 까놓고 애기해보자구요. 당신은 그 여자를 위해서 평생 첩을 들이지 않을건가요?”“주명취는 너랑 달라. 그녀는 너처럼 논리 없는 사람이 아니다.”“그래, 논리! 논리있는 주명취는 아마 친히 당신에게 첩을 소개해줄 수도 있겠네요. 내가 묻고 싶은건 당신이 한 여자와 평생 살고 싶으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거에요!”원경릉은 남존여비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남자에게 마치 이혼 연애 상담 전문가라도 된 듯 쏘아붙였다. 그녀는 연애 관련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시공간을 초월하기 전 그녀의 조교였던 에이미가 그런 글들을 많이 읽고 그녀 앞에서 사랑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에이미는 뚱뚱한 대학원생으로 아직 키스도 한번 못해 본 모태솔로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도 언젠가는 꼭 반쪽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한참을 쏘아 붙이던 원경릉은 지쳤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잠을 청했다. 우문호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도대에 누가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인가? 본래 첩을 두는 것은 자손 번
원경릉은 밖으로 나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밖에는 야간 수위를 하는 태감이 있었는데, 원경릉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지금 시진은?”“왕비님 돌아가시지오. 자시(밤 11시~오전 1시)가 막 지났습니다.”원경릉이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문 앞에 걸려 있던 풍등의 불빛으로 마당을 어슴푸레했다. 그녀는 몇 걸음 걸어 마당 밖 가까운 목련나무 아래에 앉았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벌레가 내는 소리, 개구리의 울음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원경릉은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즐겼다.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뜬 그녀가 깜짝 놀라 수풀을 보았다. 벌레와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놀랍게도 그녀가 이해할 수 있었다. 푸바오의 말을 알아들는 것 자체도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는데, 지금은 벌레나 개구리와도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설마 내가 죽었다 살았난 걸까? 아니면 혹시 내가 귀신인가? 세상에 귀신이 존재한단 말인가?원경릉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귀신에게 쫓기듯 궁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탕양과 서일은 그녀의 다급한 발걸음에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침상으로 오르더니 다급하게 이불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에서 깬 우문호가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러느냐?”원경릉은 그에게 가깝게 붙었다. “무서워!”“뭐가 무섭느냐?” 그는 원경릉이 덜덜 떨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불 속으로 머리를 파묻고 혼란스러워했다. 이유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휘감았다. 차가운 손이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까칠한 손바닥과 길쭉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을 꽉 잡는 것이 느껴졌다. 원경릉은 그의 손에서 강한 힘을 느꼈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그녀의 마음을 끌어내려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문호가 그녀를 비웃을 줄 알았는데 이런 따뜻한 행동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머리를 천천히 이불 위로 들어올리며 그녀의 눈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연약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우문호
원경릉은 잠에 들었다. 이후에 그녀는 어떻게 우문호 곁에서 울다 잠이 들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우문호의 몸에서 난 소독약 냄새가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게 아닐까 라고 결론을 내렸다.다음날, 그녀는 오랜만에 단잠으로 원기가 회복된 것 같았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자 우문호의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침!”“네가 자는 내내 침을 질질 흘려서 내 소매가 이리 더러워졌다.”“엇! 미안해!” 원경릉은 우문호의 소매가 젖은 것을 보고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우문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원경릉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탕양과 서일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준비해 둔 세숫물로 간단하게 입과 얼굴을 닦고, 머리를 빗은 후,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희상궁과 궁녀가 있었다. 그들은 원경릉을 보고 희상궁이 고개를 숙이며 “왕비님. 태상황님께서 왕비님이 깨시면 병구완을 들러 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왕야의 상처를 먼저 치료하고 가도 될까요?”“어의가 치료할 것 입니다.”“하지만……”희상궁이 미소를 지으며“태상황님 말을 그대로 전하자면. ‘그 자식은 안 죽으니, 어의에게 맡기고 빨리 오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우문호를 보며 말했다. “저는 태상황님 병구완을 하러 가야합니다. 어의가 상처를 치료해줄 때 짜증내지 마시고, 상처에 소독약을 꼭 발라주셔야 합니다.”우문호가 인상을 쓰며 “내가 언제 짜증을 냈다고 그러느냐? 말이 참 많구나! 가보거라!” 라고 소리쳤다. 어휴. 할아버지나 손주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건 마찬가지구나.건곤전에 이르니 제왕과 주명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왕이 그녀에게 우문호의 상태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녀는 제왕에게 대답하며 주명취를 바라보았다. 주명취의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원경릉은 그녀를 무시하고는 희상궁을 따라 건곤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희상궁에게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
이리 나리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말곁으로 걸어가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사람이란 이래야 하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재산은 평생을 써도 남을 만큼 많으니 아끼며 살 필요 없다는 것이다.”그는 말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탄 뒤,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원경릉은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가 앞서 한 말은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뒤이어 한 말은 또 다른 의미로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저렇게 자랑하지 않으면 못 참는 걸까?랑문서가 정식으로 설립된 날, 삼대 거두는 길고 긴 폭죽을 보내왔다. 폭죽 소리는 십 리 밖까지 울려 퍼졌고, 이는 북당이 한 걸음 더 발전했음을 상징했다.수도에서 천 리 떨어진 약도성에서도 이날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도성 중심에 새로 만들어진 상업 거리가 성대하게 시작을 알렸다. 이곳은 택란이 계획한 곳으로, 각종 장사를 한곳에 모아 거래를 규범화하고, 관아에서 관리하여 사기와 도둑질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상업 거리라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는 시작일 뿐,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만들 예정이다.같은 날, 또 다른 기념행사가 열렸다. 바로 도로 건설의 시작이었다. 간소한 의식을 치른 뒤, 도로 공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다른 성들과 비교하면 약도성은 광산 자원을 개발하지 않으면 발전을 이루기 어려웠다.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금나라와의 합의만 아니라, 산을 개척하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기초 공사도 필요했다.조정에서 약도성에 특별히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작업은 성에서 스스로 해내야 했다. 다행히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확보했기에, 이를 공사에 사용할 수 있었다.한편, 택란은 계속 금나라의 상황을 꼬마 봉황을 통해 접하고 있었다.진국왕은 얼음에 맞은 후 죽지는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지위를
주 어르신은 원경릉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세상 만물은 도법을 떠날 수 없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주 어르신은 정말 학식이 깊으십니다!”“대충 추측한 것이다!”소요공이 손으로 부채질하며 원경릉에게 물었다.“또 진맥하러 온 것이냐? 어제 네 할머님도 다녀갔다.”“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 손가락을 찌를 것입니다!”원경릉이 말했다.무상황은 손가락 찌른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안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는 얼마 전 혈당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고, 며칠에 한 번씩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했다.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가?원경릉은 그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분히 약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어르신은 모범을 보이듯 먼저 혈압을 쟀고, 소요공도 뒤따라 검사했다.검사를 마친 두 사람은 무상황을 붙잡아 의자에 앉히고, 손가락을 원경릉 앞으로 내밀었다. 소요공이 말했다.“세게 찌르거라!”원경릉은 물론 세게 찌를 리 없다. 그녀가 부드럽게 처리했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소요공을 노려보았다.혈압과 혈당이 조금 높긴 했지만, 심각한 편은 아니라서 약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모든 검사를 마친 후, 원경릉은 랑문서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주 어르신은 중요한 일이니 곧바로 동의했고, 바로 이리 나리를 불러왔다.이리 나리는 이미 이런 노골적인 요구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는 과거 늑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평생에서 얻은 것이 많지만, 그 어떤 것도 공주보다 귀하지 않다. 만약 내 모든 것을 공주와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다. 늑대파도 포함해서 말이다.”이 말에 늑대파 사람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를 둘러싼 채 한바탕 두들겨 팼다. 이리 나리는 가까스로 틈에서 빠져나와 힘겹게 말했었다.“하지만 설랑은 제외다!”그는 결국 더 심하게 두들겨 맞았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그
사건의 진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우문호는 종권을 보며 늑대파가 지금의 임무 외에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예를 들어, 랑문서라는 기관을 설립해 각 주부의 큰 사건들을 전담 조사하도록 하는 것이다.특히 지역과 주부를 넘어서는 큰 사건들은 지역적 한계로 인해 조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랑문서에 권한을 부여하여 형부나 대리사의 통제를 받지 않게 한다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지고 효율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우문호는 곧바로 논의를 시작했다. 물론 이일은 이리 나리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늑대파가 비록 그동안 조정의 일을 도맡아왔고 사실상 조정에 소속된 상태였지만, 공식적으로 관청을 설립하는 것은 늑대파가 이리 나리의 관할에서 완전히 벗어나 나라의 소속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논의 후 내각 대신들이 모두 찬성했지만, 우문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동안 이리 나리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 왠지 부끄럽구나.”냉정언이 대꾸했다.“그렇다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시지요.”우문호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건 안 된다. 부끄럽긴 하지만, 일은 해야 한다.”그는 냉정언을 보며 말했다.“다만, 내가 직접 나서긴 좀 그러니, 네가 이리 나리를 설득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냉정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도 체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황후께 부탁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사제 관계였으니 얘기가 통할 것입니다.”“원 선생은 체면이 없는 줄 알아? 안 된다. 원 선생도 이미 이리 나리에게 너무 많은 부탁을 했다. 네가 수보니, 네가 가야지.”냉정언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더 권위가 있는 수보를 찾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 어르신은 어떤가요?”“좋다!”우문호가 바로 동의했다.냉정언이 말을 이었다.“그럼 황후께서 맥을 보러 가실 때, 주 어르신께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는 이 말을 남기고 다급히 자리를 떠났다.우문호는 멍하니 있다가 바로 깨달았다.‘결국 또 원 선생이 나서게
사실 소금 사건은 겉보기엔 제왕 일행이 조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색과 늑대파가 조사하고 있었다.미색은 이미 성공적으로 손영영과 접촉했다. 사실 손영영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회왕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미색에게 해명하려 했지만, 미색은 아예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회왕은 답답함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원경릉은 이를 보고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며 생각했다.‘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했겠지? 고생 좀 해봐야지.’그녀는 이 일을 다섯째에게 알렸고 다섯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여섯째는 호부를 관리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데는 일등이오. 지금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거나 연기, 책략을 필요한 일에는 서일 만도 못 하오. 그런 주제에 미남 계를 쓰고, 셜록 홈즈를 흉내 내다니. 그냥 고생 좀 하게 두시오. 우리가 나설 필요 없소.”원경릉이 웃음을 터트렸다.“셜록 홈즈까지 알고 있다니, 대단하오!”“뭐가 대단하오? 그곳에 몇 번이나 갔는데, 이런 새로운 이야기도 내가 모를 것 같소?”“셜록 홈즈는 새로운 이야기에 속하지 않소.”“나를 비웃으려는 것이오?”우문호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알았소. 웃지 않겠네. 그나저나, 호랑이와 늑대도 출발했고, 사식이도 며칠 뒤에 궁으로 들어올 것이오.”“좋구먼. 이제 궁에 아이들이 있게 됐소. 사식이의 아이는 이제 몇 달이 되었네. 볼이 얼마나 말랑하고 귀여운지 아시오?”다섯째는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오? 그래서 서일에게 거처를 제공하려 한 것이오?”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당연히 아이 때문이지. 서일한테서 뭘 바랄 수 있겠소? 서일은 도통 쓸모가 없소.”“그만하시오! 말을 좀 이쁘게 하시오. 서일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네.”“서일을 하루라도 놀리지 않으면 입이 근질근질하오!”“독설가가 따로 없소!”원경릉은 비록 그를 타박했지만, 사실 그녀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