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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황제와 수라를 들게 된 원경릉

황후의 중신궁(中珅宮)

제왕과 주명취가 입궁해 평소처럼 우선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주명취가 궁에 들어서는데 황후는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고, 답답한 듯 가슴을 만지며 앉아 있다.

주명취가 황후 앞에서 착한 척을 하고 인사를 드려도, 황후는 답답하고 울적한 기색이다.

주명취는 황후 마음에 근심이 있는 줄 알았지만, 웃음을 머금고 제왕에게: “왕야께서 녹왕에게 들려주시려고 시를 하나 지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서 가보세요.”

제왕은 시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녹왕이 좋아한다. 제왕과 녹왕은 모두 황후의 소생으로 엄마가 같다. 이토록 박복한 동생이 좋아한 다니, 동생이 마음의 안식이라도 얻으라고 제왕이 시 짓는 걸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늘 부를 한 수 지어왔는데 녹왕 앞에서 자랑하길 바라니 주명취의 말대로 제왕은 웃으며 녹왕에게 갔다.

제왕이 나가자, 주명취는 궁 안에 시중드는 사람을 내보내고 황후 옆에 앉아 물었다: “고모, 무슨 일이 에요?”

황후는 아들이 나가자 그제서야 분통을 터트리며, “이 몸이 황제 폐하와 결혼해서 20년이 넘었는데, 결혼식 이후로 나와 단둘이 수라를 든 적이 없거늘, 오늘밤, 원경릉과 단둘이 수라를 드시겠다는 전교를 내리셨지 뭐냐.”

주명취는 대경실색해, “원경릉이요? 궁에 압송되어 심문 당하지 않았나요? 어째서 갇혀 있지 않죠?”

주명취는 입궁하면서 묻지 않았던 건, 원경릉은 죄가 무거우니 감옥에 갇혔거나, 일단 창 없는 방에 갇혀 있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조사한 끝에 초왕비의 지위를 박탈 당하고, 남은 죄에 대한 처벌로 서민의 신분에 처해질 줄 알았는데.

주황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갇혀? 원경릉이 황제 폐하와 수라를 들면, 단둘 뿐인데, 황제폐하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뭐냐.”

주명취는 속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원경릉이 최근 상당히 똑똑해 진 것 같고, 주명취에 대한 의심을 황제 폐하 앞에서 조금이라도 언급한다면, 뒷일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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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릉, 황제와 단둘이 수라를 들다첫 음식은 탕이다.정교한 작은 탕 그릇 두 개에 담아 명원제와 원경릉 앞에 놓는다. 그릇 덮개를 벗겨 가니 냄새가 퍼져 원경릉의 코를 자극한다.아직도 보글보글 끊는 걸 집게 손가락으로 냉큼 먹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게 한이다.원경릉이 생각하는 수라는 이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황제의 수라는 전부 독이 없는지 확인하고 손 씻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궁녀가 앞으로 나와 원경릉을 위해 탕을 앞 접시에 덜어주고, 은 국자를 놓아준다. 명원제 쪽에는 목여태감이 시중을 들고 있다.원경릉은 감히 꼼짝 못하고, 명원제가 은 국자를 들어 탕을 마시기 시작하자, 겨우 한 숨돌리고 손을 뻗어 국자를 집었다.너무 배고픈데 마침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어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황제가 뭘 묻든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니 두려울 게 뭐가 있냐 싶다.탕을 입에 넣고 아직 넘기지도 않았는데, 밖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와 원경릉은 국자를 내려놓고 밖을 쳐다봤다.목여태감은 조금 화가 난 듯, 빠른 걸음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색이 다소 변한 채 안으로 들어와: “황제 폐하, 황후께서 옥체가 미령 하시어 혼절하셨다 합니다.”명원제는 이마를 찡그리며, 일어서서, “가마를 대령하라!”원경릉은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황제 폐하께서 가셨으니 혼자 마음 편히 먹으면 된다.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얌전히 우아를 떨며 먹을 수가 없었다.명원제는 이런 원경릉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따라 오너라.”원경릉의 아쉬운 눈빛이 탕 그릇에 어른어른 비치며, “예!” 답했다.그녀가 일어서자, 목여태감이 폐하께서 걸칠 윗옷을 가져오고, 명원제는 원경릉을 등지고 상선의 시중을 받아 겉옷을 걸치고 옷에 주름을 바로 잡고 있다.원경릉은 배가 고파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 명원제와 목여태감이 안 보는 틈을 타, 미친듯이 탕 그릇을 입에 가져가 두 모금에 한 그릇을 흡입하니, 팔팔 끓던 탕이 입천장에서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위까지 홀랑 데어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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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릉 황제 폐하와 독대하다식탁엔 정적이 흐르고, 마지막 음식을 먹을 때까지 아무 말이 없는데, 원경릉이 세어보니 탕부터 못 되도 10개는 넘었다. 원래 황제 폐하는 검소하시다고 알고있었는데, 이렇게 사치스럽다니, 두 사람이 요리 9개에 찌개 하나, 밥은 알아서 먹고 싶은 만큼, 대단하네.목여태감이 황제 폐하에게 뜨거운 물수건을 건네자, 입가를 닦는다.남은 음식을 내가고 원경릉은 황후가 편찮으시니 황제 폐하도 별다른 질문 없이 황후에게 가실 거라 생각했다.원경릉이 일어나, 예를 차려 인사하며: “아바마마께서 황후 마마를 찾아 뵙는데 감히 시간을 지체하시게 할 수 없으니, 며느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앉거라!” 명원제가 탁자를 지긋이 누르며, 위엄 있는 눈빛으로 원경릉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손을 흔들며 목여태감과 비룡전에서 시중을 들던 나인들을 내보냈다.명원제와 원경릉은 마주 앉아 서로의 거리는 어깨 하나 정도 폭이라, 비룡전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압박감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그러나 밥을 먹고 나니 원경릉은 상당히 여유가 생겼다.“다섯째 녀석과 잘 지내고 있느냐?”원경릉은 안색을 단정히 했다, 결국 본론이 나왔다.이 문제는 비록 예상 밖이었지만 답은 어렵지 않다. 한 줄이면 된다. ‘욕을 퍼붓고 심하게 때린다.’그녀는 방긋 웃으며, “손님을 대하듯 서로 공경하고 있습니다!”명원제는 그녀를 보고 웃는 듯 마는 듯, “다섯째 성정은 어떠냐?”“왕야는 충직하고 어지신 분입니다!” 원경릉은 양심을 걸리는 것을 꼭꼭 감추고 미소를 띄며 말했다. 황제가 알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니다. 황제는 그들 부부관계가 화목하든지 말든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명원제는 웃기 시작했다.마치 재미난 얘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원경릉은 웃는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혼례를 치른지 일년이 되었지? 태중에 소식이 없으니 손님처럼 대한다는 게 그런 뜻은 아닐 텐데.” 명원제는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직구를 던지는 데도 원경릉은 여전히 맞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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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진 황후를 찾아간 황제중신궁 안, 주명취는 어의가 오길 기다렸다.어의는 황후의 맥을 짚고, 황후는 울화가 맺혀 있을 뿐 큰 문제는 없다며 약방문을 내린 후 바로 갔다.어의가 가고 나서야 밖에서 누가 고하길: “황제 폐하 납시오!”주명취가 일어섰다. 반 시진 넘게 지나서야 황제 폐하가 오시다니 식사는 이미 다 하셨겠지?명원제는 큰 걸음으로 중신궁에 들어서고, 주명취는 서둘러 예를 취하며,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명원제는 그녀를 흘깃 보고, “제왕비도 있느냐? 효심이 지극하구나.”“마땅히 할 일입니다.” 주명취가 웃으며 말했다.주황후는 몸을 일으켜 병색이 완연하게: “황제 폐하 어찌 오셨습니까? 신첩은 별 일 아닙니다.”명원제는 침대 맡에 앉아 황후의 얼굴을 보고, “사람을 시켜 짐을 오라 하지 않았느냐?”주황후는 곤혹스러워 하며 주명취를 봤다.주명취는 다급히: “아바마마, 제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어마마마께서 혼절하신 것을 보고 순간 너무 황망하고 왕야도 곁에 없어……”명원제가: “너는 평소에 생각이 깊은 듯하더니 어찌 오늘은 생각이 없었느냐?”주명취는 가슴이 덜컥한다. 황제의 이 말은 가시가 돋친 것 같은데?원경릉이 황제 앞에서 주명취의 험담을 한 게 분명하다.주명취는 명원제가 아직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알고 선선하게 답하며: “어마마마가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명원제는 황후를 보며, “어의가 뭐라고 하던가?”황후는 부드럽게: “어의 말이 기혈이 부족한데 울화가 맺혀서 일시적으로 혼절했으나 어느 정도 쉬면 크게 무리 없답니다.”명원제는 황후에게 이불 자락을 끌어 덮어주며, 온화하게: “응, 그럼 잘 쉬도록 하게, 태상황 폐하께는 굳이 들릴 필요 없소.”황후는 놀라, 황급히: “신첩은 괜찮습니다.”“짐이 당신의 효심을 알고 있소.” 명원제는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주명취에게, “제왕비야, 황후를 잘 돌봐 드려라, 태상황 쪽은 초왕비가 병구완을 하면 되니.”주명취의 순간 얼굴이 하얘졌다. 황제 폐하의 이 말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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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원제의 반격명원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화한 목소리로, “그럼, 황후 생각엔 초왕비를 어찌 처벌하는 것이 좋겠소?”주황후는 황제가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는 기쁨에, “신첩이 생각하기에 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북당의 국운과 관련이 있는 바, 초왕비가 똑똑함을 자초해 의술이 뛰어나다며 제멋대로 치료해 태상황 폐하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으니 대역무도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불미스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으나, 신첩은 마땅히 궁에서 쫓아 내고 첩으로 강등하여 어명이 없이는 궁에 출입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명원제는 빙긋 웃으며, “황후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죄가 있는데 벌하지 않고, 공로가 있는데 상을 내리지 않으면 분명 천자의 도리가 아니지. 그럼 황후가 말한대로 합시다.” 주황후는 황제가 동의한 것으로 알았다. 물론 처벌이 엄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첩으로 강등하는 것도 단지 명목상에 불과하고 초왕비는 어차피 황실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으니 앞으로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실지로 황후는 초왕비와 어떤 마찰도 빚고 싶지 않지만, 제일 중요한 건 원경릉이 다시 입궁할 수 없게, 다시는 태상황 앞에 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됐다.주명취도 다소 안도하며, 보아하니 저녁 수라 정도로 폐하가 지난 원경릉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하진 못한 것 같다.하지만, 명원제는 말의 칼끝을 황후와 제왕비에게 돌려, “잘못이 있으면 벌을 주지만 공이 있어도 상을 줘야 마땅하겠군, 원경릉이 태상황을 구한 공은 작은 공이 아니니 공이 과실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어. 짐이 우선 죄를 주고 다음에 상을 내리는 형태로 강등했다 다시 초왕비로 복귀하게 하고, 연후에 남주(南珠, 류큐에서 나는 귀한 진주) 두 줄을 하사하는 것이 어떠한가?”주명취는 도무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다. 공이 과실을 상쇄하고도 남아 상을 내리겠다고? 폐하는 원경릉을 처벌할 생각이 아예 없으신 거야.“남주 두 줄이요?” 주황후의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으로 얼굴빛이 흐려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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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무조건 여자들만 고생한다고 그래?”원경릉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혼인은 여자가 전적으로 손해지. 남존여비 사회에서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야 하고, 그나마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은 애 낳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것도 첩들하고 경쟁해야하고! 남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눈곱 만치도 몰라.”우문호는 말문이 막혔다. 이게 무슨 무논리인가? 무엇을 업으로 삼고? 무슨 경쟁? 또 무슨 근거로 남자가 사랑을 모른다고 말하는거지? “본왕이 뭘 모른다는거냐?” 우문호의 눈썹 사이의 흉터가 일그러졌다. “뭘 안다는거죠? 만약에 당신이 주명취랑 결혼했다고 치고 평생 그녀를 위해 첩을 두지 않을 겁니까?”원경릉이 물었다. “본왕이 첩을 두든 말든 너랑은 무슨 상관이고, 왜 갑자기 주명취를 들먹여?”“툭 까놓고 애기해보자구요. 당신은 그 여자를 위해서 평생 첩을 들이지 않을건가요?”“주명취는 너랑 달라. 그녀는 너처럼 논리 없는 사람이 아니다.”“그래, 논리! 논리있는 주명취는 아마 친히 당신에게 첩을 소개해줄 수도 있겠네요. 내가 묻고 싶은건 당신이 한 여자와 평생 살고 싶으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거에요!”원경릉은 남존여비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남자에게 마치 이혼 연애 상담 전문가라도 된 듯 쏘아붙였다. 그녀는 연애 관련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시공간을 초월하기 전 그녀의 조교였던 에이미가 그런 글들을 많이 읽고 그녀 앞에서 사랑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에이미는 뚱뚱한 대학원생으로 아직 키스도 한번 못해 본 모태솔로이다. 하지만 에이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도 언젠가는 꼭 반쪽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한참을 쏘아 붙이던 원경릉은 지쳤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잠을 청했다. 우문호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도대에 누가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인가? 본래 첩을 두는 것은 자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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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 명의 왕비   제 3032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 명의 왕비   제 3031화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 명의 왕비   제 3030화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 명의 왕비   제 3029화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 명의 왕비   제 3028화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 명의 왕비   제 3027화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 명의 왕비   제 3026화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

  • 명의 왕비   제 3025화

    안지여의 생일잔치에 상인, 인근 주와 현의 관리, 무림 사람들, 강호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안지여는 그동안 사교의 폭이 넓고, 각계각층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있어 이번에 생일잔치란 이름을 빌려 그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대사를 논의하고자 했다.안지여는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전에 시기를 놓치고 이제 우문호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이때가 대사를 치를 적기였다.우문호가 몇 년 더 북당을 다스리고 나면 그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몰랐다.그래서 조정이 사람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그는 기뻤다. 이를 빌미로 조정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천문 세가의 무덤도 생일잔치 후 태워버릴 계획으로, 물론 완벽한 구실을 붙여 백성들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 안지여에게 아주 완벽한 빌미를 제공해 주는 셈이었다. 모든 것을 이리 부마 탓으로 돌리고 백성들에게 조정이 저지른 일이라고 알리면 천문 세가를 그토록 떠받들던 풍도성 백성들은 조정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안지여는 부마 이리율을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그의 내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거부이자 늑대파 문주라고 했으나 그건 전부 민간에 있을 때 신분에 불과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는 길을 택한 이 사람은 극도로 지위와 재산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이런 사람을 다루기 어렵지 않은 건, 안지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부마 이리율의 마음 저 밑엔 상인이란 출신을 벗어던지고 상류 계층에 들어 후작 세가가 된 후 2~3세대가 지나면 철저하게 이전 상인의 신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목표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생일까지 아직 이틀 남았다.안지여는 두번 다시 소여쌍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은 가야 했다. 그의 생일잔치에 소여쌍이란 성주 부인이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성주 부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허상을 심어주려는 것뿐이었다.소여쌍은 풍도성 동쪽 무쌍거에 살고 있었다. 혼인하던 그해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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