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일이 정후부까지 연루된다면, 그녀는 원경릉의 가족들이 비난의 대상이 될까봐 두려웠다. 별전에 도착한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구사는 바로 맞은편에 서서 두손을 모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과연 사람을 감시하는데는 일가견이 있군.’그녀는 고개를 들어 구사에게 물었다. “태상황께서 무엇 때문에 중독 증세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없습니까?” 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경릉 역시 그가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을 줄 알았다. 원경릉은 푸바오의 사건을 미루어보아 궁 안에 누군가가 태상황이 죽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다만 건곤전은 외부와 내부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기에 누군가 음식이나 약에 독을 탔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만약 독을 탔다고 해도 모든 음식이나 약이 태상황 입에 들어가기 전, 희상궁이나 상선이 먼저 기미를 하고 태상황이 먹는다. 그렇다면 향로를 이용해 독을 살포 한 것인가……. 그러나 건곤전에는 태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선도 줄곧 곁에 있기에 만약 태상황이 중독이 됐다면, 상선도 중독 증상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늘 태감이 드나들고, 태후와 명원제 그리고 예친왕까지 항상 문안을 가기에 향로에 독을 넣었다면 진작에 발각됐을 것이다.목여태감이 태상황이 혼수상태라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약을 주었다고 말했을까?상선? 하지만 상선은 원경릉과 우문호가 함께 들어갔을 때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약을 주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 일은 우문호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이 일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을 뿐더러, 그는 최근 며칠동안 궁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문호가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까? 우문호가 멍청하다고 해도, 자신이 연루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할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우문호가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모를까. 만약 그가 말한것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추측을 했다는 건데, 도대체 누가 그녀의 행동을 주시했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두명이 스쳤다. 기왕과 주명취.기왕의
“가만히 지켜 본다고 판세가 뒤집히겠느냐?” 탕양의 말에 우문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하지만 적어도 판세를 읽고 대비를 할 수 있겠지요.”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왕야, 지금 이 풍랑을 맞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지금 몸이 안좋으니 굳이 황제께서도 양해 해주실겁니다. 지금 이 모양으로 입궐하신다면 오히려 일부러 왕야가 고육지책을 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서일아, 가마를 마련하거라” 우문호는 직접 서일에게 분부했다. 서일은 난처한 표정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어떻게 궁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왕야, 심사숙고하십시오!”탕양이 말했다. 우문호가 어찌 심사숙고 하지 않았겠는가. 수천번을 생각해도 답은 같았다. 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데려가는 순간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수천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수천번을 생각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자기 혼자 살겠다고 초왕인 자신을 모함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다. 원경릉은 그와 혼인 한 후, 궁 안에서 그녀의 뜻을 한번도 펼치지 못했고, 원경릉과 그의 사이는 늘 안좋았다. 이를 미루어보아 그녀가 그를 배신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우문호가 입궁을 하려고 하는데 문지기가 급하게 달려왔다. “왕야, 경조부 오대감(吴大人)이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탕양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왕야를 해하려고 한 놈을 찾았을지도 몰라!” 서일은 기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우문호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대감은 경조부의 포졸을 데리고 왔다. 여섯명의 포졸들이 문앞에 서자, 오대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탕양은 “오대감님, 왕야를 해하려고 한 자객들은 찾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오대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우문호를 보고 절을 했다. “하관(下官)이 왕야에게 인사드리옵니다.”“예의는 생략하게!” 우문호는 그를 보며 “범인이 자백을 한
소월각은 긴 정적 속에 잠겼다. 우문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탕양에게 말했다. “태상황님이 무슨 독에 중독 된건지. 가서 알아보거라”“왕야,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구사는 알고 있을 것이야!” “지금 구사는 어전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어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방금 구사도 함께 왔다 갔는데 만약 알고 있었다면 알려줬을겁니다.”우문호의 눈에 독기가 가득찼다. “본왕이 죄를 인정한다고 궁에 가서 알리거라.”“왕야!” 서일과 탕양이 동시에 그를 보았다. 왕이 미친 것일까? 죄를 인정한다니!“본왕이 죄를 인정한다. 원경릉이 저지른 일도 다 내가 지시한 일이다.”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문호가 자객을 사주했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서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왕이 왕비에게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게 했다고 해도 그 방식이 옳지 않다.“안됩니다. 왕야. 지금 편치않은 몸을 이끌고 어찌 죄를 인정하시려고 합니까.”서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탕양이 고개를 들었다. “왕야께서는 왕비를 믿으십니까?”“다른 방도가 없다!” 우문호가 쏘아붙였다. “왕야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 왕비님과 한배를 탄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만약 왕비께서 판을 뒤집지 못한다면 왕야의 처지는 더 곤란해지실 겁니다. 이런 결과는 예상하셨습니까?” 탕양은 우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느냐?” 우문호는 격분하여 소리쳤다. 그에 목구멍에서 피가 끓어 올랐다. 그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기왕(纪王)은 비밀이 새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이미 자객도 자결한 마당에 달리 다른 증거도 없을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우문호만 죽어나게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원경릉이 황조부를 잘 치료하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만약 황조부의 병세가 호전된다면 그 공(功)으로 죄를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문호는 부황의 냉철하고 모진 성격인지 알고 있다. 서일은 도대체
가마는 어서방 문 앞에 멈췄다. 예친왕은 탕양에게 “본왕은 황제를 뵈러 갈테니. 너랑 왕야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라고 말했다.예친왕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어서방 안으로 들어갔다. 탕양은 얼굴이 잿빛이 된 정후가 궁 앞에 벌벌 떨고있는 모습을 보았다. 탕양은 그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후작(侯爷)나리?”정후는 누군가 자신을 부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쭉 뻗고 그를 보았다. “탕양!”“후작나리 여기서 무엇하십니까?” 탕양이 물었다. 정후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황제의 부름에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황제께서 사람을 시켜 저를 이리로 오라고 하셨는데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오는 길에 황제께서 보낸 신하가 원경릉에 대해서 몇 마디 물어보고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 목여태감이 나왔다. “초왕은 안으로 들어와 알현하라.”탕양과 서일이 우문호를 부축해 가마 밖으로 나왔다. 정후는 우문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의 모습이 마치 종잇장처럼 닿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황제께서는 초왕만 들라하셨다!” 목여태감이 서일과 탕양을 보며 말했다.서일과 탕양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문호를 힐끗 보았고, 우문호는 천천히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태감님 안내해주시지오.”우문호가 말했다.궁으로 들어가 스무 걸음만 가면 어서방 정전에 이른다. 우문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 피가 흘렀고, 다리의 상처가 모두 터져서 걸음마다 바닥에는 섬뜩하게 피가 묻었다. 목여태감은 이런 우문호를 보고 놀랐다. 눈썹뼈 부근과 귓가에만 상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하게 다친 줄을 몰랐다. 명원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문호가 걸어온 자리에 묻은 피를 보니 마음이 답답했다.다친지 이틀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상처에서 피가 나다니, 우문호가 나를 바보로 아는 것인가?아들 놈이 머리를 꽤나 썼구만. 우문호의 미간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걸어들어오는 길에
예친왕은 피투성이가 된 우문호를 도저히 볼 수 없어 자신의 소매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우문호의 입에 넣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명원제에게 말했다.“황제, 신제(臣弟)는 다섯째가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 상처는 어의들도 치유할 수 없을텐데, 한낱 눈속임이라고 하기엔 상처가 심각합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황제는 우문호가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고? 예친왕의 말이 끝나자 원경릉을 감시하던 구사도 황제에게 사정했다. “폐하. 소인이 보아도 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의도 왕야가 중상을 입었다고 말했으며 후사(后事)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상황께서 왕비를 출궁시켜 왕야를 치료하게 한 것입니다. 소인이 무예를 연마해 본 적이 있어 압니다만, 칼에 베인 상처들은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명원제는 담담한 눈빛으로 “모두 일어나거라.” 라고 말했다. 구사의 눈빛이 어두웠고, 황제는 시종일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어의가 급히 달려왔다. 그는 그간 궁 안에서 태상황의 병을 돌볼 정도로 실력이 있는 어의였다. 그는 급하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다. 위급한 상황이니 어의는 명원제가 일어나라고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어의는 우문호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는 약상자를 꺼냈다. 원경릉은 황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어의가 가져온 약상자를 열고 가위를 꺼내 우문호의 옷을 자른 다음 가제로 우문호의 상처 위쪽을 강하게 감아 지혈했다. 그녀는 빠르게 그의 신발을 벗기고 바지를 잘랐다. 명원제는 우문호의 허벅지 안쪽에 난 상처를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 지혈하지 못한것인가?” 그가 어의에게 물었다. 어의는 재빨리 일어나 원경릉을 거들었다. 예친왕이 자금단을 꺼내 우문호의 입에 넣은 덕에 피는 서서히 멎고 있었지만, 상처와 봉합한 곳을 잘 처리해야만 했다. 명원제는 자리에 앉아 원경릉이 능숙하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
우문호를 다시 살려내다원경릉은 심장 맛사지를 계속 하며, 우문호가 그저 쇼크를 일으킨 것이길 바랬다.명원제는 줄곧 우문호를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전에 가장 아꼈던 아들 우문호가 아닌가. 비록 마지막엔 실망시켰지만 부자의 정이란 것이 그렇게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원제는 우문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예친왕이 즉시 그를 부축했다.“떨어뜨려 놓아라!” 명원제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가운데 피맺힌 목소리를 뱉는다. 이때 “현비(賢妃) 마마가 초왕 전하를 보러 온다 합니다.” 구사는 앞으로 나가 원경릉을 왕야에게서 떼 놓으려 하는데 어의가 옆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왕야께서 숨을 쉬십니다. 왕야께서 숨을 쉬세요.”명원제는 홱 고개를 돌려 초왕의 가슴이 천천히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명원제가 직접 코에 호흡이 있는지 확인했다.원경릉은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낸 뒤라 침대에 쓰러져 후후 숨을 몰아쉬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참았던 슬픔에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사실 원경릉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원경릉도 자신이 예를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쪽으로 무릎을 끓고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아바마마, 소신이 예를 어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울고 싶었어요. 아바마마 잠깐만 우는 것을 허하여 주시옵소서.” 원경릉의 말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우는 모습도 흉해서 눈물 콧물이 엉망진창이지만, 방금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명원제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오히려 전에는 예뻐 보이지 않던 며느리가 귀엽게 느껴졌다.어의는 진맥을 마치고 연신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 정말 신기한 일이야, 하늘이 도우셨어!”예친왕은 어의를 흘겨 보며, “초왕은 살아날 운명이었군.”어의가 황급히 말을 바꾸며, “맞습니다, 초왕 전하께서 살아나실 운명이셨나 봅니다.”“뭐라고?” 명원제가 어의에게 물었다.어의는 손을 모으고: “폐하께 아룁니다, 초왕 전하는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습
태상황에게 독을 쓴 자는 누구인가“이리 돌아봐!” 우문호가 조용히 말했다.원경릉은 턱을 침대에 걸치고 웃으며 눈물을 떨군다. “죽음에서 살아 온 걸 환영한다.”“넌 짐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 아냐?” 우문호는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았다. 이마엔 멍이 들었고, 눈 밑은 울어서 복숭아처럼 퉁퉁 부은 데다, 눈물이 더러웠던 얼굴을 타고 내려 두 줄기 하얀 피부가 드러나 있다. 사실 상상조차 못한 것이, 요 며칠 둘은 물과 불처럼 서로 싸우지 않았던가.“그래, 네가 죽길 간절히 바란 게 사실이야.” 원경릉은 눈물을 훔치며 결국 유치하게, “하지만 내 눈 앞에서 죽는 거 말고, 난 의사이고 환자가 내 앞에서 죽으면, 내 직무상 과실이 되거든.”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슬그머니 웃었다.구사가 옆에서 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웃었다. 웃고 나서 복잡한 심경으로 원경릉을 응시했다.이 왕비는 사실 그렇게 싫지 않다.우문호가 마음을 가라앉히자, 자금단이 몸 속에서 작용하며, 단전의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우문호는 구사를 향해, “태상황 폐하는 무슨 독에 중독 되셨느냐?”구사는 앞으로 한 걸음 나와 말하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밤 태상황 폐하께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혼수상태에 빠지셨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어의는 독에 당하셨다고 진단했습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네가 할바마마께 드린 약이 토혈과 혼수상태를 불러온 것은 아니냐?”원경릉은 “절대 그럴 리 없어.”“그럼 아바마마께서 조사하신 게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하겠구나.” “할바마마를 가서 뵙게 해달라고 아바마마께 말씀드리려고” 원경릉이 말했다.구사는 고개를 흔들며, “왕비 마마, 서두르지 말고 잠시 기다리시지요. 황제 폐하도 손을 쓰셨을 것이고, 분명 예친왕 전하도 말씀하실 겁니다.”밖에 서있던 정후는 마음속으론 딸 원경릉을 수백번도 더 혼을 냈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 딸을 초왕부에 시집을 보냈더니, 좋은 일이 생기긴 커녕 안 좋은 일만 앞다투어 찾아올 줄 누가
정후의 집과 주명취의 집정후는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결국 원경릉 이것이 일을 치고 말았어!집으로 돌아와 충부인(冲夫人, 정후의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며, “딸 자식을 어떻게 가르친 거야, 온 집안의 힘을 기울여 왕비 자리에 앉혀 놨더니, 우리 집안에 보답한 게 뭐가 있어? 오늘 황제 폐하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내가 벌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안 그랬으면 이번 기회에 관직이 떨어질 뻔 했다고.”정후의 부인은 줏대가 없는 사람으로 남편이 딸을 호통치자 자신도 같이 분개하며, “앞으로 걔 혼자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합시다, 우리는 상관하지 말아요.”“상관은 무슨? 앞으로 만약 우리집에 와서 돈 달라고 하거든 일체 줘선 안돼.” 생각해보니 전에 원경릉에게 돈을 주고 병부(兵部)에 뇌물을 주게 한 게 떠올랐으나 그 돈은 이미 떼인 돈이나 다름 없다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정후 부인은 덩달아 “알겠어요.” 대답했다.정후가 차를 한 잔 마시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 원경릉이 초왕의 총애를 얻지 못하면 왕비의 지위도 믿을 게 못되니 다음 수를 잘 두는 수밖에 없다. 정후는 병부 시랑(侍郎)을 몇 년간 역임하며 상서(尚書) 자리가 3명째 바뀌는 것을 봤지만, 그가 승진할 기회는 오지 않고,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주씨 집안 쪽은 조정에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앞자리에 몰려 있다는 소문이 돌고, 제왕이 태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만약 주씨 집안 쪽에 돈을 써서 줄을 대면 어쩌면 일이 성사될 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은자가 얼마나 되는가?” 정후가 부인에게 물었다.“2만 2천냥쯤 됩니다.” 정후 부인이 대답했다.“가서 3천냥만 좀 가져 오구려. 주씨 집에 좀 다녀와야 겠어.”정후 부인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씨 집이요? 거긴 아닌 거 같아요. 주씨 집 큰 딸 주명취가 원래 초왕한테 시집가려던 걸 경릉이 때문에 깨졌잖아요. 주씨 집안이 우리를 원망해도 모자를 판에 우리를 상대나 하겠어요?”정후 부인은 주부인(周夫人, 주명취의 어머니)
원경릉은 돌아와서 서일이 연탑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러자 우문호가 ‘쉬’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측전으로 가시오. 술에 취했으니, 잠깐 자게 두시오.""알겠소."원경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서일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이 나이에... 자면서 침까지 흘리다니.’두 사람이 측전에 도착하자, 궁녀가 재빨리 온돌을 피워 안을 따뜻하게 했다. 그리고 원경릉에게 몸을 녹일 수 있도록 국 한 그릇을 올렸다."검사는 마쳤소? 협조는 잘했고?"우문호가 바삐 묻자,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협조할 리가 있겠소? 안풍 왕비께서 목이 쉬도록 소리까지 지르셨는데 다들 협조하지 않았네. 특히 흑영 대인은 계속 방해만 하셨소. 혈압 한 번 재려는데도 계속 도망갔소. 그러면 고기 못 먹는다고. 하하하.""아이고, 혈압을 재는데도 고기를 못 먹는다고 하시다니, 대인께서도 혈압이 높은 것을 아시나 보오.""모를 리가 있겠소? 전에 한 번 쟀을 때 혈압이 높아서, 고기 줄이고 야채 많이 드시라고 했더니, 그 뒤론 나만 보면 피하시네."원경릉은 웃긴다는 듯이 말했다."그럼, 결국 혈압은 잘 쟀소?""결국 도망가셔서, 아무것도 못 했소. 내일은 꼭 잴 것이오!"원경릉이 답했다."어차피 내일은 할 일도 없으니, 나도 재는 거 도우러 가겠소."이 말엔 사실 그를 혼자 두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숙왕부는 이곳과 달리 시끌벅적하고 활기차기에, 그는 그곳에 함께 가고 싶었다. 아이들도 각 왕부로 놀러 다니고 그를 찾지도 않으니 말이다."오늘 좀 무료하였소?"원경릉은 탕을 마시며 그의 옆에 기댔다. 사람을 너무 많이 잡으러 다녔더니, 손목이 아픈듯 손목을 주무르며 말했다."그렇게 심심하진 않았소. 서일과 술을 마시니, 여유롭고 좋더구먼. 오랜만에 얘기도 좀 했고. 하지만 이것도 하루면 충분하네. 이틀이나 그를 보면 좀… 힘들 것 같소.
그러자 서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사실 소신은 복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만 믿지요. 저도 그동안 많은 걸 보아왔습니다. 아무리 충심 가득한 호위라도 주군을 잘못 만나면 좋은 끝을 맺지 못했지요. 소신은 이전에 그저 초왕부의 하찮은 호위 뿐이였고, 전하 곁에서 심부름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큰 꿈이라 해봐야 돈을 모아 평범한 여인과 혼인해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좀 못난 여인을 만날 수도 있었겠지요.”그 말에 우문호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고, 술을 내뿜을 뻔했다.“왜 못난 부인을 원하는 것이냐?”“못난 여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쁜 여인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소신의 형편을 아시잖습니까? 어찌 사식이같은 여인을 생각이라도 해봤겠습니까?”“자신을 깎아내리지 말거라.”“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 처지를 잘 아는 것이지요. 망상을 버려야 편히 살 수 있으니까요.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서일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는데,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우문호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서일아, 지금은 어떤 포부가 있느냐? 무엇을 더 이루고 싶냐?”서일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제는 큰 뜻도 없고, 더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면 안 되니깐요.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겉으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마음은 편합니다. 끝이 없는 욕망을 바라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우문호는 그 말에 감동한 듯했다. 그는 서일이 이런 철학적인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서일이 누군가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닌, 정말 인생에서 우러난 깨달음 같이 들렸다.서일은 정말 어른이 되어 있었다.“그렇게 피곤하다면서, 아직도 나의 호위까지 겸하고 있느냐?”서일은 웃음을 터뜨렸다.“돈을 더 벌고 싶습니다. 뭐 대단한 포부는 아니고, 그저 자식들이 있으니깐요. 돈이 많아야 마음이 든든하잖습니까? 무엇보다도, 폐하 곁을 이렇게 오래 지키다 보니, 갑자기
설 셋째 날, 아홉째는 다섯째를 찾아가 여덟째를 남강에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다행히 다섯째도 여덟째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보길 바라고 있었던 터라 바로 승낙했다. 그리고 남강이라면 아홉째가 곁에서 잘 돌봐줄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그러자 아홉째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형님, 여덟째 형님께 배필을 찾아주는 건 어떻습니까?”“배필이라…?!”다섯째는 지금껏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덟째는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잘 모르니, 오히려 혼자 지내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예. 만약 형님 곁에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부인이 있다면, 그의 인생도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우문호는 여덟째를 진심으로 아끼는 아홉째의 마음에 가슴이 찡해졌다. 여덟째도 그저 인생을 헛되이 보낼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법도 배워야 한다.“이 일은 네 형수와 상의해 보마.”우문호가 답했다.여덟째의 혼사는 신중히 생각하고,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한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문호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걱정되었다.사람을 겉만 보고는 알 수 없으니,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만나도 진심인지 알기 어려웠다. 게다가 감정 없는 혼사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그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여덟째를 챙기고 있었는데, 막상 놓아주자니 걱정이고, 붙잡자니 인생에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원 선생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그녀 또한 이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좋은 집안의 여인을 알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덟째는 이전에 혼사가 무엇인지조차 몰랐기에, 얘기를 꺼내도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그런데 지금 아홉째까지 이렇게 제안하니,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된 것 같았다. 우문호는 원 선생이 돌아오면 상의해 보기로 했다. 원 선생은 지금 장인 장모님과 함께 숙왕부로 간 상태였다. 마침 명절을 맞아 그녀를 도울 일손이 많으니, 이 기회에 노인분들의 건
술기운이 잔뜩 오르자, 그녀들은 이제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다들 어떻게 힘들게 함께하게 되었는지를 잊은 듯 보였다. 평범했던 그녀들은 지금 이 순간이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그 중 취하지 않은 원경릉은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놀다 지친 택란이 원경릉에게 다가와 기대었다. 원경릉은 아예 그녀를 무릎에 눕혀 베개 삼아 쉬게 해주었다.다들 그 모습에 목소리를 낮추고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계란이를 바라보았다.어릴 적부터 멀리 보내져 부모 곁에서 오래 지내지 못한 계란이는 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행히도 모녀의 정은 여전히 깊었다.아직 어린 탓에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택란은 잠에 들지 않았다. 피곤해서라기보다, 그저 어머니의 곁에 있고 싶을 뿐이었다.잠시 후, 문가에서 냉명여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님, 불꽃놀이 시작했습니다."그 소리에 택란은 벌떡 일어나 냉명여와 함께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다가, 못내 탄식을 내뱉었다.비록 자유로운 시절을 겪긴 했지만, 그들처럼 마음껏 누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한편, 우문호는 사내들과 함께 본청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주량은 부러움을 살 정도로 뛰어났는데, 그중에서도 위왕의 질투가 제일 심했다.주량이 가장 셌었던 그였는데, 다섯째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우문호는 아무리 마셔도 도통 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남자들은 입을 열면 언제나 국사를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우문호와 수보도 역시나 강북부에 관한 일에 관심이 많았다. 북당의 국경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조정의 관심을 독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아홉째는 사내들의 이야기에 끼지 않고, 여덟째와 함께 밖에서 불꽃놀이를 보았다. 그는 아름답지만 금세 사라져버리고, 잡을 수 없는 불꽃놀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덟째가 좋아하기에, 가만히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여덟째가 동생의 어깨에 고개를
다섯째는 오늘 밤 술을 꽤 많이 마셨다.그는 이들 중 가장 기쁜 사람이었다. 다들 밖으로 자유로이 나갈 수 있었지만, 그는 계속 궁에 갇혀 있어야 했고, 가끔 가족을 만나러 가고,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 괴로웠었기 때문이다.이리 나리도 술에 취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잠깐 마주쳤고, 공주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술… 좀 줄이시오!”그 말에 이리 나리는 바로 술잔을 내려놓았다.안왕과 안왕비 또한 오랜만에 만나 더욱 애틋한듯 술을 많이 마셨다. 살짝 그을린 피부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안왕은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우문호에게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폐하, 술 한잔 올립니다!”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안왕이 폐하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존칭을 사용했다는 점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심히 취한 듯, 일어나서 비틀거려 술잔의 술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취기가 오른 눈빛으로 우문호를 바라보았다.단번에 술잔 속 술을 다 마신 후, 술잔을 내려놓고 자기 뺨을 세게 내리쳤다.“예전에 저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대로 살고 싶습니다.”모두가 넋을 잃고 말았다.왜 갑자기 오늘 밤에 이런 말을 하게 된 걸까? 아무도 그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흥겹고 기쁜 날에 과거를 얘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싶었다.우문호도 잠시 멈칫했지만, 곧 조용히 원경릉의 귀에 대고 말했다.“그의 말이 참 운율이 맞네.”원경릉이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운율이라니? 그냥 같은 말일 뿐인데.’“좋습니다. 그럼 나도 한 잔 마시겠습니다!”우문호도 일어나며 말했다. 비록 이미 술을 많이 마시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과 다른 상태라, 아무리 많이 마셔도 끄떡없었다. 다만 너무 급하게 마시면 소화가 잘 안되었다.두 사람은 오랜만에 옛 감정을 버리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원경릉은 그 모습을 보고 내심 감동했다.안왕에게 감동한 것이 아닌, 우문호
요부인과 훼천은 설날 만찬 시간이 되어서야 궁에 도착했다.갓 태어난 아이도 함께 온 덕분에 어른들의 복주머니를 가득 받을 수 있었다.희열과 희성은 뒤늦게 얻은 동생을 아주 아꼈고, 아버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리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래서 동생이 오자, 둘 다 아이를 안고 놀아주기 바빴다.설 식사 시간.이전처럼 자리를 나누지는 않고, 몇 개의 큰 탁자들만 마련하여 열 명씩 앉게 했다. 다들 자리에 앉고 나니, 그제야 정말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정화와 위왕은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위왕은 궁으로 오자마자, 본능적으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찾았기에, 그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정화는 아이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정화의 아이가 워낙 많다 보니, 아이들만 해도 여러 상을 차지할 정도였다.그러고는 아무도 앉지 못하게 옆자리를 비워 두었다. 원래 우문호와 함께 앉아 있었던 위왕은 그녀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자리가 빈 것이오?”위왕이 정화에게 물었다.정화는 옆 아이의 목도리를 묶어주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예. 아무도 없습니다.”“그럼 내가 앉아도 되오?”위왕이 다시 묻자, 정화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위왕은 그녀가 혹시라도 다시 마음을 바꿀까 봐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정화는 아이를 모두 챙긴 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경성으로 돌아오느라 힘들었지요?”위왕은 정화가 먼저 말을 걸어올 줄 몰랐던 터라 잠시 멈칫한 뒤,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소.”정화가 부드럽게 말했다.“눈빛이 어두워 보이십니다. 술을 조금 줄이시지요.”마음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낀 위왕이 큰 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겠네, 금주하겠네!”그 말에 정화는 저도 모르게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강북은 날씨가 춥고 쌀쌀하니, 적당히 술을 마시는 건 괜찮습니다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십시오.”위왕이 그녀를
다들 안풍친왕의 말을 믿었지만 왜 적여우의 황족이 황야에 떠돌며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고 거의 죽어 가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만두는 적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도 황족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택란도 적동이 마음에 들었지만, 적동에게 다가가기만 하면 질투를 느낀 꼬마 봉황이 가로막았다. 봉황은 주인에게 그를 제외한 다른 애완동물이 생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적동에 대해 연구한 후, 우문호는 딸과 대화를 나누었다.그는 딸에게 약도성에 관해 물으며, 호명과 주 아가씨가 혼사를 치른 후 여전히 화목한지도 물었다.택란이 웃으며 말했다."화목하지 않을 리 있습니까? 매일 꼭 붙어 있습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우문호는 초왕부의 옛사람인 호명이 잘되기를 바랐다.원경릉이 다가와 물었다."명여는 너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느냐?""돌아왔습니다. 일단 집으로 갔으니, 설날 때 두 아버지와 함께 궁에 올 것입니다."택란이 말했다.우문호가 물었다."그 아이의 무공은 어떠냐?""좋은 편입니다!"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냉명여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능력이 뛰어나기에, 조금만 크면 홀로 일을 척척 해낼 수 있을 것이다.설날이 되자, 궁은 정말로 시끌벅적해졌다.모두 일찍 궁에 돌아왔고, 정화의 아이들까지 함께 궁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비록 대부분은 다 큰 애이긴 했지만, 그래도 장난기가 많은 터라 함께 어울려서 잘 놀았다. 냉명여도 홍엽과 수보를 따라 궁으로 갔다. 그는 먼저 황후와 황제를 만나 예를 올린 후, 택란의 옆에 얌전히 섰다.열 살 정도의 아이였지만, 택란보다 훨씬 키가 컸다.그리고 항상 굳은 표정으로 칼을 안고 있었는데, 그의 깊은 눈동자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그는 말도 잘 하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으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저 한쪽에 외롭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놀며,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올해는 명원제도 호비와
무상황은 길게 답하지 않고, 단호하게 한 마디만 덧붙였다."그래!"얼어붙은 원경릉이 다시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무상황이 다시 말을 덧붙였다."올해에 가지 않으면, 연을 끊고 앞으로 숙왕부에 오지 말거라."원경릉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숨을 내쉬며 억지로 웃었다."농입니다. 그냥 장난이었습니다."무상황을 설득할 수 없으니, 결국 돌아가야 했다.그럼, 만두가 동물들과의 재회를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만두는 잘 이해해 줬지만, 사실 원경릉과 우문호는 아이가 처음으로 계획한 설날 행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우문호는 갈등했다. 만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당연히 어린 만두가 어른을 배려해야 했다.만두에게 말하자, 만두는 그다지 실망한 티를 내지 않았다."예. 그럼, 그곳으로 가시지요."만두는 돌아서면서 조금 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들이 모두 떠나면, 설에 그들을 홀로 남겨두는 것과 같았다.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애완동물을 위해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않는다.다들 사람의 감정이 동물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만두는 이미 대보에게 동생들도 각자 애완 동물에게 함께 떠들썩한 설을 보낼 수 있다고 약속했었다.미안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전해야 했다.꼬마 봉황은 작은 새로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계란이와 함께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하지만 설랑과 호랑이는 갈 수 없었다.주인들은 각각 동물들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그들은 모두 우울해 보였다.특히 칠성과 환타의 호랑이는 더욱 우울해했다. 주인들이 현대에서 공부하느라 그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설을 앞두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니, 정말 속상했다.소식을 들은 호랑이들은 식사까지 거부하고, 하루 종일 주인의 집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세쌍둥이의 설랑도 형제였지만, 그동안 주인을 따라 떨어져 지냈었다. 다들 설을 손꼽아 기다리며, 함께 놀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이
그가 적동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적동이 이렇게 그를 의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장난꾸러기인 적동을 깊은 산속에 두었지만, 떠나려 하지 않고 그가 떠난 자리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니.“돌아가고 싶으냐? 나랑 같이 돌아가고 싶으냐?”만두는 적동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털 속에 떨어진 풀잎 하나를 떼어냈다.적동은 작은 발톱을 꼭 쥐고 그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적동은 만두에게 떠나지 말라고,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만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가자. 이제 커서, 산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다시 데려다주마.”대보가 앞서가며 힘차게 걸어갔다.군영으로 돌아가자, 적동은 물 한 그릇을 마시고, 고기 한 덩이를 먹고는 만족스럽게 바닥에 누웠다.만두는 적동에게 작은 우리를 가져다주었지만, 적동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만두에게 계속 달라붙을 뿐이었다.만두가 적동이 올라갈 수 없는 침대에 눕자, 적동은 침대 발치에 누워 잠을 잤다.며칠 동안이나, 만두가 어디를 가든 적동은 항상 따라갔다.만두가 아침 훈련을 할 때도 적동은 멀리서 따라 뛰었고, 훈련할 때는 가까운 곳에 누워 만두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연말이 다가오자, 군영도 휴가를 주었고,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만두는 동생들이 집에 돌아오니, 설날 동안 휴가를 신청했다.칠성과 환타는 8일의 짧은 휴가만 주어져, 섣달그믐 무렵에나 돌아올 수 있었다.그래서 그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오직 8일뿐이었다.만두는 8일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부모님에게 알렸다.우문호는 난감했다. 올해 설에는 이미 그곳에 가기로 황조부와 약속했기 때문이다.조정은 섣달그믐부터 업무를 중단하기에, 그들은 짐을 챙겨 그곳으로 갈 시간이 있었다. 그럼, 환타와 칠성이 바삐 움직일 필요 없으니, 그곳에서 함께 할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하지만 철저하게 계획을 짜놓은 만두에게 이곳에서 설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 서운해할 수도 있었다.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