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언이 조회를 마치고 나와 어서방으로 갔는데, 명원제는 내각 학사들과 회의 중이었다.이번 왕조 최연소 재상인 냉정언은 이름을 드러나게 날린 적이 없었다. 줄곧 이전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천천히 재상의 태사의에 앉았는데 냉정언의 입술에 보일 듯 말듯한 미소가 걸렸다.햇살이 궁에서 나서는 길을 비추고 궁 양쪽 담장을 뒤덮은 무성한 나뭇잎이 냉정언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뒤로 멀어졌다. 출궁하는 길에 보이는 금군 시위들 무도가 순찰을 돌다가 “냉재상!”하고 냉정언에게 깍듯이 예를 취했다.냉정언은 입술을 쭉 내밀며 미소를 짓더니 더욱 천천히 걸어 나갔다.막 궁문을 나와 머뭇거리던 냉정언의 낫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빠르게 나타난 그림자는 악의가 가득해 순식간에 살기를 충천하며 흉악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턱 내!”냉정언은 손가락 끝으로 관복 가슴팍에 톡톡 두드리며 눈을 살짝 치켜떴다. 눈꼬리는 여전히 예리함이 번득였다. “현 재상에게 돈을 강탈하고자 협박하는 게 어떤 죄목에 해당하는지 알고 있겠지?”우문호는 냉정언 목을 겨누었던 손을 풀고 바로 냉정언의 어깨를 시원하게 안마하며 물었다. “아직도 태자 앞에서 재상입네 하는 것 좀 봐. 아이고, 대단하셔라. 다시 묻자, 낼 거야 안 낼 거야? 안 내면 우리 형제들이 가만있지 않을걸!”우문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오문(午門:궁의 정문) 쪽에서 몇 사람이 나란히 걸어오는데 제왕, 손왕, 회왕을 필두로 구사, 전진 장군, 사촌 소형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 성큼성큼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활보하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위풍당당하고 호탕했다.냉정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눈에 맑은 빛이 반짝였다. “현 태자 전하에 현 황제 폐하의 친왕 전하는 물론이고 이렇게 많은 분이 오셨는데, 목숨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한 턱 내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요.”우문호가 휘파람을 불며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구사에게 소리쳤다. “동서, 가서 홍엽이랑 박씨 부부 불러서 초왕부에서 모이자고
훼천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며 날카로운 말투로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고상을 떨어? 늑대골에서는 화장한 뼈 담은 항아리도 썼던 주제에.”그러자 모두가 껄껄 웃었고, 냉정언도 눈웃음을 지었다.사발이 다시 홍엽 앞에 놓이자, 이번엔 홍엽이 받을 수밖에 없어 머지않아 고개를 들고 한 잔을 다 비워냈다. 그러자 구사가 바로 또 가득 따랐다. “계속 마셔!”홍엽이 또 다 비웠는데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계속 기침을 하는데 홍엽이 죽든 말든 구사는 또 사발에 가득 따르며 외쳤다. “마지막 한 잔!”그러자 홍엽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어질어질한 상태였지만, 손을 뻗어 사발을 잡으려는 순간 냉정언이 가로채 손을 뻗었다. “내가 대신 한 사발 하지!”“됐어!” 홍엽은 ‘고작 세 사발이 뭐 대단하다고?’ 다시 사발을 가져오려 했다.냉정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손대지 마!”냉정언은 곧바로 술잔을 들고 고개를 살짝 젖힌 뒤 술 한잔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세 모금에 한 사발을 다 마셨다. 냉정언은 원래가 우아한 사람으로 사발에 술을 마셔도 군자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나 이렇게 소탈하게 마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홍엽의 눈빛은 자기도 모르게 따듯해져 있었다. ‘냉정언이 알고 보니 의리의 사나이였군.’재상이 술을 대신 마셨지만 아무도 감히 트집 잡을 생각을 못 하는데 우문호만 냉정언을 쓱 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냉대인이 술이 고팠나 보네. 냉대인에게 건배!”사람들이 우르르 건배하러 냉정언에게 몰려가 너도나도 신임 재상에게 건배를 청했다.냉정언이 사발을 들고 일어나 우문호를 째려보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입을 뗐다. “빌어먹을 태자야!”우문호가 아니라며 손을 내저으며 태자로서 한껏 거드름을 피워댔다. “말하는 것 좀 보게!”접객실에서는 황실의 며느리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 중이었다.그동안 남편들이 어디 낮술 마실 짬이 있기나 했나? 낮술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로, 그동안 뼈가 부서지도록 고생했으니 오늘은 마시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마시고 즐거워서 다행
미색이 턱을 괴며 물었다. “둘째 형님, 남의 인륜지대사에 뭘 그렇게 신경 쓰시나요?”그러자 손 왕비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쨌든 냉 대인이 지금 재상인데 혼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작은 일도 신경 써야 할 건 신경 써야 하는 것이야.”요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한테 신경 꺼. 한가해서 그러는 거니까.”손 왕비가 한가한 게 당연한 거 아냐? 지금 희동이도 커서 곁에 붙어있으려 하지 않고 집안일은 별것 없는 데다 싸울 첩도 없다. 손왕은 또 출장을 가서 나름 일을 잘하고 있다니 손 왕비가 매일 고민하는 게 고작 오늘 하루를 또 뭐하면서 보내나였다.손 왕비가 개탄하며, “심심해도 너무 심심해. 뭐라도 할 일이 좀 있나 찾고 있다니까.”“정말 그렇게 심심하면 정화를 좀 도와줘. 거긴 하루하루가 전쟁이던데.” 요 부인이 말했다. 요 부인은 요즘 내내 거기서 돕고 있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모두와 만나고는 싶지만 애들을 내려놓지 못해 안 오려는 정화를 억지로 끌고 와야만 했다.“그래, 둘째 형님. 할 일 없으면 와서 우리 애들이나 좀 데리고 있어.” 정화가 웃으며 말하는데 아이들이 생긴 뒤로 의지할 곳이 있자 사람이 아주 생기로 충만했다. 안색은 아직 좀 안 좋은 게 잠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갓난아이 엄마가 세상에서 잠이 제일 부족하기 마련이다.손 왕비가 말했다. “그래, 내일 갈게.”그러나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 않는 것은 손 왕비가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닌, 정화의 아이이기에한참을 아이들에게 정을 붙였는데 자기 아이가 아닌 걸 알면 정을 떼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었다.손 왕비가 안 왕비에게 물었다. “언제 강북부로 돌아갈 생각이야?”안 왕비가 입을 열었다. “며칠 있다가요. 왕야의 상처가 거의 나아서 오늘 제가 온 것도 겸사겸사 여러분께 작별 인사도 드리고요!”손 왕비가 어머 하고 놀라했다. “이렇게나 빨리 간다고? 좀 더 있지? 지금 넷째가 다쳐서 아바마마께서도 쫓아내실 리가
“주 어르신은 좀 어떠세요?” 미색이 원경릉에게 물었다.“눈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다른 후유증이 있을지는 아직 잘 몰라. 없기를 바라고 있고.” 원경릉이 탄식했다.원용의가 말했다. “일곱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어르신이 주씨 집안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서 조정 관리가 되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과거도 보지 말라고. 예전에 소국공 소창 나리 느낌이에요!”“아마 뒷일을 걱정하셔서 그러실 거야. 주씨 집안의 일부는 아주 뼛속까지 나빠 처먹었거든.” 미색이 콧방귀를 뀌었다.주씨 집안은 주 재상 전에 사실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함부로 날뛰는 것으로 유명했고 애초에 주 재상의 아버지는 황위를 넘본 적도 있었으나 말로는 비참했다.이렇게 뼛속 깊이 뿌리박은 야심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게 아닐지 걱정해서 주 재상이 그런 엄명을 내린 것으로 야심을 품지 못하게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원용의가 문가를 보더니 물었다. “사식이는요? 오늘 왜 사식이가 안 보이죠?”“기 상궁이랑 구경하러 갔어. 좋은 비단을 몇 필 사고 싶다던데. 애 낳고 입을 수 있게 옷을 만들겠다며.” 원경릉이 대답했다.사식이가 임신한 뒤로 배가 엄청 불렀는데 아이를 낳고 나면 분명 지금 이 옷은 못 입게 되므로 다시 급하게 새 옷을 지어야 할 것이다.“굳이 당신까지 갈 필요까지 있어요?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되지. 무턱대고 부딪히고 본다니까요. 자기가 임신한 몸인 걸 신경 안 쓰나 봐요.” 원용의는 사식이가 불안하고 걱정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식이는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물불을 안 가리는 무모한 동생이었다.“조심할 거야, 전에 착상을 위해 꼼짝도 못 해서 답답해 죽을 뻔했거든.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고 해. 사식이가 이제 많이 철이 들었어.”원경릉이 이 말을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사식이 뿐 아니라 모두가 철이 들어버렸다. 미색마저 처음의 예리함은 없고, 원용의는 어머니가 된 뒤로 상당히 우아하고 차분해지며 점점 일국 친왕비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었다.모두가 성장했고 모두가
원경릉의 이런 얘기를 원용의도 미색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미래는 아주 멀리 있으니 눈앞에 있는 것만이 가장 실제적이란 말로 해석했다.우문호는 만취해서 소월각으로 옮겨졌다. 원경릉도 말없이 우문호를 챙기러 돌아갔다.우문호는 침대 끝에 반쯤 엎드려 있고 탕양이 하는 수 없었다는 듯 말했다. “침대에 똑바로 올려드렸는데 이렇게 또 엎드려서 주무시네요.”“이 자세 어디서 많이 보던 자세 같지 않아요?”우문호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침대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본 탕양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곤장을 맞았던 초왕 전하와 완전 똑같네요!”“누가 감히 나한테 곤장을 때려?”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막 손을 휘휘 젓더니 베개 하나를 끌어와서 턱 밑에 괴더니 웅얼웅얼 뭐라고 하다가 그대로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원경릉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내가 챙길 게. 탕양도 적지 않게 마셨으니 가서 좀 쉬어!”탕양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탕양이 가고 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두드리며, “똑바로 누워 발로 내 배 차겠어.”우문호는 쿨쿨 잠에 빠졌다가 이 말을 듣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침대 한쪽으로 웅크리며 조심조심 돌아눕더니 미안한 얼굴을 보였다. “차?”원경릉이 침대 곁에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안 차. 그런데 어쩌자고 그렇게나 많이 마셨어? 완전 떡이 됐네!”우문호가 히히 웃으며 원경릉에게 외쳤다. “좋아서!”우문호가 자기 가슴을 쾅쾅 치며 술기운을 토해냈다. “좋아서, 오늘 이분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아주 끝장 보게 마셨지.”우문호가 원경릉의 손목을 잡아끄는데 눈가는 술에 취해 벌겋고 눈은 흐리멍텅했다. “원 선생,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알아? 진짜 너무 좋다고!”“냉대인이 재상이 돼서?”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그렇지, 수리시설이 엄청 열악했거든. 길을 닦는 것도 열악하고. 전에는 답답해도 참아야 했으니 큰 뜻을 품어도 유명무실했지. 뭐든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우
술을 깨자마자 술이란 말을 들으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녹주야, 태자 전하께 죽 올려드려!” 원경릉이 일어나 밖에 대고 소리치자 밖에서 녹주의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예!”우문호가 침대에서 내려와 원경릉을 껴안았다. “역시 우리 마누라밖에 없다니까. 내가 배고픈 거 바로 알고 죽도 준비해 주고.”“앞으로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요. 몸 상해!” 원경릉은 뒤에서 자신을 감싼 우문호의 손을 꽉 쥐고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팍에 기댔다. “애들이 봐, 애들은 본 대로 배운다고.”“알아!” 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원경릉 앞으로 돌아와서 원경릉이 방금 쓴 걸 보고는 물었다. “이건 뭐야?”“자기가 술 마시고 한 얘기를 다 적을려고!” 원경릉이 방긋 웃었다. “관계 수리 시설이랑 길을 닦는 거랑. 북당의 미래 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했어. 아마 자기가 하려는 건 이 두 가지 일이겠지.”“쓸 필요 없어. 내가 다 기억하는 걸!” 우문호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원경릉에게 미소를 띠었다.“자기한테 보여줄 거 아니야. 황조부랑 주 재상이 나더러 정기적으로 보고하라고 시키신 일이야!”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도 따라 웃었다. “어째서? 별장까지 가셔서도 정사를 내려놓지 못하시는 거야?”“평생 신경 써 오시던 건데 내려놓는다고 순간 놓아지겠어? 오해하지 마. 저분들이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 감독하시려는 거 아니니까. 그저 알고 싶으실 뿐이야.”우문호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오해할 게 뭐가 있어? 언제든 당신한테 보고하라고 하시는 건 저분들이 궁중과 조정에 밀정을 남겨두지 않았다는 뜻으로, 오히려 저분들이 정사에 손을 놓으셨다는 말이지.”원경릉이 말했다. “사람을 통해 서신을 보냈어, 이틀 뒤에 나랑 할머니가 같이 별장에 다녀오기로. 주 재상 처방을 조절해야지.”녹주가 죽을 가져와서 우문호가 먹으며 물었다. “주 재상의 눈은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아직도 그 얘기, 추적을 관찰해야 한다니까!” 원경릉이 한
경단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빠, 화본에서 그거 유행 지난 지 꽤 오래 됐어요.”우문호가 놀라며 물었다. “유행이 이미 지났어? 그럼 지금 뭐가 유행인데?”경단이가 우문호를 자리에 앉히고 정색하며 말했다. “말씀드릴게요. 그건 아주 오래된 공식으로, 지금은 안 써요. 이 화본의 서생은 경성에 과거를 보러 갔다가 장원급제를 해서 관아에 들어갔죠. 하지만 출신이 가난하고 비천한 관계로 배경이 없어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었어요. 사람들의 속임수에 당하고 이용당하다가 배척당하기까지 해요. 나중에 여자가 그 사실을 알고 가산을 모두 팔아 경성으로 들어오죠. 물론 경성으로 오는 도중에 반드시 기연을 만나 특별한 능력을 배우게 되고요. 예를 들면 절세의 무공 같은거죠. 나중에 이 여자가 경성에 들어와 장원 급제를 도와 맞닥뜨리는 모든 적을 하나씩 다 죽이고 결국 두 사람을 해코지 한 모든 사람들은 다 진멸하겠죠. 그리고 대단원은 둘이 혼인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막 그들이 혼인하는 부분을 보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세요.”우문호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듯 원경릉을 바라봤다. “그...... 여자가 상경하는 도중에도 배울 수 있었던 절세무공을 당신은 이리 나리께 그렇게 오랜 시간 배웠잖아. 어디까지 배웠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목에 손 날을 새우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기에겐 이걸로 충분해!”우문호가 “아야!”하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 쓰러진 척을 하며 칠성이 다리 위에 누웠다. 칠성이는 포동포동한 손가락으로 우문호의 얼굴을 만지며 장난쳤다. “아빠는 아직도 엄마 못 이기네?”“못 이겨, 아빠는 평생 엄마의 적수가 못 돼!” 우문호가 일어나서 한 손으로 칠성이를 품에 안고, “물론 아빠가 다 양보해서 그런 거지. 진짜 능력은 아빠 손가락 하나로도 엄마를 납작 쿵으로 만들 수 있어.”칠성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도 손가락 하나로 아빠를 납작 쿵으로 만들 수 있어요. 아빠.”우문호가 칠성이를 내려놓고 무표정하게 말했
우문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원경릉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원 선생, 나 내일부터 매일 태부 집에 가서 한 시간씩 있다가 올게.”“태부 집에 가서 뭐 하게?”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살짝 의기소침해져 말했다. “역시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앞으로 애들이 뭐라고 했는데 또 못 알아들으면 안 되잖아. 이번엔 이매망량이었지만 다음은 무슨 알아듣기 어려운 걸 꺼낼지 모르니까.”원경릉은 그 말에 조금 감동했다. 우문호가 이렇게 자식들을 위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공부하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사실 부모가 아무리 따라잡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날이 오고야 만다.원경릉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빠서 다닐 수 있겠어? 매일 한 시진씩 내는 건데. 태부가 알겠다고 한 뒤에는 빠질 수 없어. 어르신이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알잖아.”“괜찮아. 아무리 바빠도 애들이 더 중요하니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갈길을 따라 걸으며 말을 이었다. “난 이제 한가해져서 걔들과 같이 있고 싶은데, 걔들이 우리랑 있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는 게 걱정이야.”“알았어, 난 당신 항상 응원해!” 원경릉이 온화하게 웃었다.우문호는 한 번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으로, 매일 태부를 찾아가 한 시간씩 공부하는 것 외에도 화본을 읽기 시작했다.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 머리가 띵하고 혼미해졌지만 계속 읽어 나가다 보니 결국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2~3권정도 다 본 뒤 경단이와 서로 줄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세우며 토론했다. 그 둘은 줄거리를 가지고 얼굴이 다 시뻘게지도록 싸워댔지만 금방 의견이 통일되며 토론하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나중에는 다른 아이들도 토론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해서 쌍둥이도 곁에 앉아 들으며 재밌어 하는 게 부자가 정말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원경릉은 이 모습에 기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문호가 이번에 아바마마의 중년 ‘모반’에 무엇인가를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