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의 대답저녁이 되자 모두 같이 횟불 앞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장에서 일어난 여러 일을 얘기하자 처음에는 다들 흥겨워했으나 이번 전쟁의 승리의 댓가로 희생된 전우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침묵에 빠졌다. 결과적으로는 이겼지만 원래 그들은 원래 싸울 필요가 없었다. 북막 사람의 야심이 얼마나 많은 전우와 백성의 목숨을 앗아갔단 말인가?평화 교섭이란, 기본적으로 일진일퇴 시소게임이지만 패전국과 승전국의 교섭은 아주 간단했다. 패전국은 거의 아무 조건도 제시할 수 없었기에 북당이 조건을 제시하면 북막은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했다.이번 협상은 안풍친왕이 삼대 거두를 데리고 일선에 나섰는데 그들이 남을 지나치게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아니였지만 북막이 이번에 병사를 일으켜 도발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임이 틀림 없었다. 그래야만 그들이 두려움을 품고 다시는 야심을 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북막 사람은 영원히 침략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5개 도시를 배상으로 할양했지만 북당에 조공하는 것은 거절했다. 안풍친왕은 더욱 강력히 조공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를 빼앗고 정전협의서에 서명해 변경에서 50년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이미 죽은 장수와 병사들에게 최고의 대우라고 생각했다.협상이 끝나자 우문호의 상처도 상당히 좋아져서 조정으로 돌아가는 귀로에 올랐다.북당의 대승으로 명원제는 천하에 대사면을 실시하고 성지를 내려 대군이 조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경축 행사를 거행하고는 온 나라가 함께 경축하도록 했다.우문호 등 사람들이 경성으로 돌아가자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백성들은 소리 높여 ‘태자전하 천세천세 천천세’를 외치며 극도로 열광했다.원경주는 이 상황을 보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현대인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는 이제 매부를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는데 그것도 아주 만족스러워져서 매부에 대한 태도가 점점 좋아졌다. 주진은
해동 문제주진은 원경릉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제 말을 안 믿으시나요? 선배는 줄곧 신학이 허황된 거라고 생각하세요?”그러자 원경릉이 고개를 젓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나 많은 일을 겪고, 용태후도 알게 됐는데 어떻게 내 관점을 고집할 수가 있겠어? 우리 인류는 세상이 크다는 걸 알아.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고 우기는 거야. 말로 지식을 답보 하게 만들 뿐이라고”“그렇게 생각하시다니 멋져요!” 주진이 원경릉을 주시했다. 원경릉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마치 뭔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한테 또 뭐 묻고 싶은 거 있어?”곧이어 경릉이 주진에게 차분히 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얘기 했는데, 애들에게 자가치유 능력이 있어. 신체의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쟤들이 그렇다는 건 장생불사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럼 적어도 질병으로 죽을 리는 없고 외상도 급속하게 치유되니까 만약 나라면…… 그리고 네가 전에 얘기한 대로면 내가 해동됐을 때도 아이들처럼 불로불사 한다는 거 아냐?”주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좋은 일 아닌가요? 불사신이 되는 거잖아요!”원경릉이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우문호는 반드시 죽는다고.”주진이 원경릉을 보고 반쯤 농담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게 어때요? 선배도 알잖아요, 지금의 뇌로 현대로 돌아가서 계속 연구할 경우엔 성과가 클 거라는 걸, 선배는 상상도 못 할 걸요.”원경릉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농담하지 마. 내가 끝이라면 끝이야.”주진이 웃으며 다시 설명했다. “네, 선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알겠어요. 강요 안 해요. 하지만 선배가 걱정하는 게 확실히 존재하기도 해요. 단지 선배가 당장 그걸 걱정하는 건 좀 이른 감이 드는게, 지금 걱정할 건 해동한 뒤 마주해야 할 선택보다……”주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진짜 걱정해야 할 건 해동자체의 성공 여부예요. 어쨌든 지
원경릉과 우문호의 결혼식“스카이 다이빙을 또 한다고? 나 안 해.” 원경릉이 손을 내저었다. 아직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쿵쾅거렸고 우문호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니 좀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자기 지금, 경성에 돌아가서 혼례를 치르겠다고 한 거야?”우문호가 원경릉의 어깨를 주무르며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쌍꺼풀 없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신비하고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경성에 돌아간 후에 부모님께 말씀드려 우리 혼례를 치를 거야.”원경릉이 다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작게 내뱉었다. “왜..?”우문호가 안으로 들어가 원경릉의 어깨를 감싸고 진지하게 말했다.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아니고 이전부터 마음 먹었던 거야. 전에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우리 아직 혼례를 치르지 않았잖아.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 당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해. 물론 우린 이미 행복하지만 행복은 다다익선 아니겠어? 정정당당하게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원경릉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했다. 확실히 전에 결혼식 얘기를 하긴 했지만 너무 황당했었다. 둘은 이미 결혼한 사이로 그녀가 원래 몸 주인인 원경릉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한번 결혼한 사람이 또 결혼하는 게 어디 있을까? 그리고 원래 얘기한 바로는 우문호가 보위에 오른 뒤 황후를 책봉하는 대례가 있고, 그것도 일종의 정통 혼례이므로 원경릉은 줄곧 그걸 얘기하는 줄만 알았다.그래서 그때도 그냥 웃어넘겼다. 우문호가 보위에 오르는 게 몇 십년 뒤 일수도 있기 때문에 그땐 둘 다 호호백발인데 결혼식은 무슨 결혼식이냐며 백발이 성성해서 혼례복을 입다니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할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원경릉은 그 뒤로 자신을 타일렀다. 결혼식 같은 건 그저 의식일 뿐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자기들은 충분히 행복하고 결혼식은 옵션일 뿐 굳이 필요 없다고 말이다.하지만 행복한 일이 더 생긴다고 나쁜 사람 누가 있을까? 결혼식은 자신이 우문호에게 정식으로 시집가는 절차
아이들을 현대로?우문호는 혼례식에 처남이 있다는 사실이 원 선생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천재일우의 기회인 것도 맞는 게 혼례를 치르고자 마음 먹었을 때 마침 원경주가 왔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그와 얘기를 나눌때 시기 문제는 아예 언급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혼례 때 어떤 신분으로 나서는 게 좋을 지부터 상의했다. 아마 원경주도 혼례가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문호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경성에 돌아간 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 이번에 북막과의 전쟁에서 완승을 거뒀으니 나라에서 경축행사가 있을 게 분명했다. 예부에서 경축행사 하나 준비하는 대도 시간이 촉박한데 동시에 원경릉과 혼례까지 겸한다면 제대로 해낼 수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급격히 슬퍼졌다.저녁 수라를 마치고 원경릉이 주진을 찾아간 틈에 우문호는 탕양을 불러 묘안이 없는 지 찾아보라고 명했다.하지만 탕양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는 엄숙한 목소리로 충언을 올렸다. “전하, 소인은 전하와 태자비 마마께서 다시 혼인을 하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옵니다.”탕양은 분명 자기 편을 들어 찬성할 줄 알았는데 우문호는 의아했다. “왜 그러냐?”탕양이 자세를 고쳐 앉아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전하와 태자비 마마께서는 혼례를 이미 치르신 적이 있기에 이번 혼례를 보충 형식이라 치부할 수 없을 뿐더러 전하께서는 다음 보위를 이으실 적통 태자시옵니다. 태자는 등극하실 때만 혼례의식을 치를 수 있으므로 전하께서 혼례를 치르신다고 하면 큰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 될 뿐더러……”탕양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황제 폐하를 저주하고 폐하의 퇴위를 강요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사옵니다. 전하, 전쟁에서 이겨 개선하는 마당에 전하를 드러내는 것은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옵니다.”우문호는 이번에 구사일생으로 죽다가 살아났고 더불어 전장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고의 중심이 자연히 전쟁에 있었던 지라, 황실 권력 구도
여전히 타오르는 사랑주진은 원경릉의 제안에 당연히 찬성했다. 경호에 일단 길만 뚫리면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기에 경호를 통해 여기저기 다니고 싶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주진과 얘기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우문호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왜 그래?”우문호가 원경릉을 끌어 자기 앞에 앉히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탕양이 우리 혼례를 당분간 하지 않는 게 좋겠대..”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러지 뭐!”원경릉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탕양이 그랬다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우문호는 원경릉의 따스한 눈매를 보자 한층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원경릉에게 멋진 혼례식을 치러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그것마저 해내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문호는 문득 깨달았다. 원 선생이 바란 것을 하나도 지금까지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울적한 것을 보고는 그의 짙은 눈썹을 손으로 쓸어주며 다독였다. “사실 혼례는 하던 안 하던 상관없어. 오빠랑 주진이 오래 머무를 수 없어서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어차피 완벽한 결혼식이 아닌 걸? 경호의 비밀을 푼 뒤 친정에 갔을 때 거기서 결혼식 올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우문호가 원경릉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형언할 수 없는 행운을 거머쥐었다는 기쁨과 행복감이 벅차 올라, “당신 내 마음속에 다녀간 거야? 원 선생은 정말 최고야.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당신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겠어?”원경릉이 달달한 미소를 지었다. “어,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네.”두 부부는 활짝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았다.우문호는 고개를 숙여 원경릉과 입을 맞추며 손으로 원경릉의 배를 더듬었는데 뱃속에서 아이가 기지개를 피는 듯한 소리에 후끈 달아오르다가 말았다.“원 선생.” 우문호는 천천히 원경릉을 품에서 내려놓고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원경릉과 키스만 하면 그녀를 품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
태자 일행의 귀환원경릉 오빠 원경주는 당분간 혼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소식을 듣고 다소 실망했으나 결혼식이라는 게 며칠 만에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에 정작 참석 못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는데 마침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경주가 오히려 우문호를 위로하며 말했다. “괜찮네. 뭐, 둘이 우리 쪽으로 돌아갈 때 다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면 되니까.”이제 전란도 끝났기에 우문호가 간절히 바라는 유일한 일은 혼례를 치르는 것 뿐이다.잠시 후 일행이 경성으로 돌아오자 성문 입구에 만조백관들이 마중으로 나온 데다가 백성들도 태자가 개선하는 모습을 서로 먼저 보겠다고 앞 다투어 싸우는 바람에 성문은 입추의 여지 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백성들의 격앙된 환호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차 안에 사람들은 가리개를 젖히고 미소로 답례를 하느라 얼굴 근육이 다 마비될 지경이었다. 미색은 귀를 막고 옆에 앉은 회왕에게 소리쳤다. “귀가 다 먹을 지경이야!”회왕은 눈을 비비고 다시 밖을 내다봤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기뻐서 환호하는 걸 보는건 처음이었다. 자신이 주된 공신은 아니지만 이번 전쟁에 참여한 덕에 같이 영광을 누리게 된 것에 기뻤다. 원경주도 기뻐서 주진에게 말했다. “우문호는 정말 영웅이야, 동생이 당신과 결혼한 건 정말 큰 행운이네.”“서로한테 그렇죠. 태자에게 오늘이 있는 건 원 박사의 공이 크니까요.” 원경주는 동생과 우문호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왔는지 잘 모르지만 주진을 통해 들은 한두 사건만 해도 동생 부부의 인생 역정이 진짜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 감이 왔다.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에 둘러 쌓여 성으로 들어가며 원경주는 감격스럽고 또 감격스러웠다. 곧 할머니를 만날 생각 때문이였다. 사식이와 녹주, 그리고 기라가 사람들의 틈에서 겨우 빠져나와 있는 힘을 다해 마차에 대고 소리쳤다. 서일이 사식이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다가 사람들 틈에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아내를
재회원경주는 엉덩방아 찧은 걸 아파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들자마자 할머니께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코끝이 찡해지며 얼른 일어나 할머니에게 갔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헤어졌던 손자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주르륵 흘렸고, 원경주도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고 울먹였다. “할머니, 드디어 할머니를 뵙네요. 잘 지내셨죠? 몸은 어떠세요? 기분은 괜찮으시고요? 이곳이 낯설 지는 않으세요?”손자의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할머니는 기쁘기도 하고 찡하기도 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손자 손녀도 그녀에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으로 와서 손녀는 만날 수 있었지만 손자는 두고 와야 했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둘은 서로를 오래오래 품에 안고 있다가 할머니가 원경주의 얼굴을 만지며 뒤늦게 질문에 답했다. “할미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댄다. 다 익숙해졌고 몸도 건강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너희 엄마 아빠한테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렴. 엄마 아빠는? 잘 지내니? 엄마는 좀 어때? 병이 재발하지는 않았고?”할머니는 떡들을 통해 원경릉 부모의 상황을 대략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자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원경주는 눈가가 발개지며 더욱 목이 메어왔다. “다들 잘 지내세요. 엄마 병은 재발 안 한지 오래됐고, 지금 매일 즐겁게 지내시고 계세요. 늘 할머니와 이쪽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요..”할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멀쩡히 잘 살던 일가족이 두 시공으로 나눠지게 될 줄이야.그나마 감사한 건 다들 잘 살고 있다는 점이였다.할머니와 자신의 손자를 물끄러미 바라만 봐도 다 알 수 있었다.오히려 떡들과 쌍둥이가 난리법석을 떨며 ‘아빠는 왜 안 오셨냐’고 물어 대자 원경릉이 열심히 설명해주었는데 이번엔 또 ‘할아버지는 왜 안 오셨냐’고 묻더니 또 희상궁을 오라고 붙잡더니 희상궁 대신 재상의 상황을 물어댔다.그 중 경단이는 역시 상황 판단이 빨랐다. “희상궁이 얼마나 재상을 그리워했는데요, 눈물로 밤을 지새며 꿈속에서도 재상 나으리 하고 불렀다고
아버지와 아들, 황제와 태자우문호는 아바마마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센 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시큰 거렸다. 아바마마께서 직접 친정을 나선 것은 아니나 이번 전쟁이 그에게 주는 압박감은 전장에 있던 우문호보다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며, 아니 오히려 더 무거웠을 것이다.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달의 시간동안 명원제의 귀밑머리가 부쩍 센 것이 한달 전보다 서너 살은 더 들어 보였다.부자가 자리에 앉아 서로의 소식을 묻고 이번 전쟁의 무시무시함에 명원제는 더욱 진중한 표정이 되었다.명원제는 또 우문호의 상처가 어떤 지 물었는데 상의를 벗고 상처를 직접 보여달라고까지 했다.우문호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꼭 보겠다하니 옷을 벗고 상처와 흉터로 얼룩진 몸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 상처들을 보자 명원제는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복잡하고 괴로웠다. 상처 대부분은 전장에서 생긴 것이지만 암살하려는 자에게서 입은 자상도 있었으며, 가장 가슴이 미어지는 건 다름 아닌 가슴에 새로 난 상처였다. 이 상처는 아직 아물지도 않아서 봉합한 흔적이 지네처럼 꿈틀거리는듯 해 보엿다. 물론 전에 몇 군데 상처에도 이런 봉합 흔적이 있었지만 오래 돼서 이렇게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는 아니었다.명원제는 태상황이 병환 중이던 해에 우문호가 자객에게 당했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 자객이 자백하기로 우문호 본인이 첫째를 모함하기 위해 자객을 고용해 일부러 연극을 벌인 것이라고 했다. 당시 명원제는 의심하지 않고 바로 그 말을 믿었으나 지금 돌아보니 가슴을 칠 일이었다. 자기 아들이 어릴 때부터 어떤 성격인지 아비라는 작자가 제일 잘 알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이번 전쟁을 치르며 명원제는 마음 속으로 다섯째의 능력을 한 단계 더 인정하며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명원제는 수라를 들이라 하고 태자와 같이 밥을 먹었다.우문호는 아바마마께서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드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건 절대적인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