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본관에 도착하자마자 우문호가 물었다.“짐과 함께 처음으로 출정을 나갔을 때, 넷째 형님이 무장 한 명에게 쓸모없는 겁쟁이라고 꾸짖었던 일이 생각이 나느냐?”서일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그 무장이 어떤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와 북막병의 군사력 차이가 매우 크니,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면.....뭐 대략 이런 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당시 그 무장이 첫날밤부터 술에 취해, 출발 직전에 이런 말을 하여 사기를 떨어뜨리니, 안 왕이 크게 노하여 그 자리에서 그에게 군용 곤장 서른 대와 추방 명령을 내렸습니다.”우문호도 대충 생각났다.“그래,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구나. 그때 넷째 형님은 이미 전쟁터에 몇 번 나갔고, 몇 차례 군공을 세워서 보주를 하사받고, 보주 친왕의 존호를 받았으니. 젊고 기세도 왕성한 데다 군공까지 세웠으니, 군의 원수 허락 없이 스스로 그 무장을 처리했어.”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나리, 그런데 왜 갑자기 몇 년 전의 일을 물어보시는 것입니까?”“그 무장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우문호가 물었다.서일은 고개를 저었다.“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들과 접촉한 적이 없어서요. 아니면 전진 장군에게 물어보십시오. 전진 장군은 기억하고 있을 수도요.”“네가 가서 모셔 오너라.”우문호가 말했다.“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모시는 게 어떨까요?”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아니다. 지금 당장 모셔 오너라.”서일은 분명 급한 있다고 생각하고, 바로 몸을 돌려 전진 장군을 모시러 갔다.우문호는 소월각으로 돌아가서 원경릉에게 알렸다. 그녀도 안왕이 온 걸 알고 있으니 분명히 자지 못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원경릉은 일어나 등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우문호가 들어온 걸 보고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무슨 일로 오셨어요? 왜 아직 안 가신 거예요?”그녀의 우문호가 대답했다.“나한테 모진 말을 퍼붓고 갔어. 나에게 전하
조사서일은 밤을 새워 전진 장군을 모셔 왔다. 전진 장군이 아직 군대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서두른다 해도 전진 장군이 왕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우문호가 처음 전쟁에 나갔을 때 전진 장군이 옆에 동행했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을 그도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무장은 그가 책임지고 추방했기 때문이다.“그 무장은 조홍방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전선에서 병사 소집을 하는데, 그는 전날 밤 술에 취해 다음 날 소집할 때까지 술을 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얘기로 사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곤장 서른 대를 맞은 후 소인이 그를 압송했습니다. 그리고 안왕께서 그를 내보낸 후 먼저 경조부에 감금하고, 전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패배하면 그를 죽이고, 승리한다면 그를 풀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그래서 그는 나중에는 어디로 갔느냐?”우문호가 물었다.“전투에서 승리하여 조정에 돌아간 다음 안 왕께서 감옥에 가서 한바탕 그를 꾸짖은 후에야 풀어주었는데, 후에 어디로 갔는지는 소인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기를 어기고 안 왕의 미움을 산 자를 누가 보병으로 삼으려 하겠습니까?”우문호는 이 사람이 군대의 장군이었고 북당군의 훈련과 배열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려울 때 누군가 그를 도와줬다면 독고의 밀정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가 안 왕비와 안지를 납치한 것일까?그는 눈동자를 번쩍이며 말했다.“전진 장군, 경조부에 가서 제나라 왕을 찾아, 이 조홍방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호적을 조사해 보아라. 비록 그가 살던 곳에 살고 있을 거란 보장은 없겠지만 우선 거기부터 조사해 보아라. 네가 짐을 대신해 방문하는 것이니 몰래 행해야 한다. 기억하거라. 절대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네, 알겠습니다.”전진 장군이 대답했다.“서일아,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니, 짐은 궁의 의정에 참여해야 하니, 너는 먼저 가서 좀 자라, 끝나고 짐이 궁 밖으로 나오면 짐과 함께 안왕부에 다녀와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
우문호와 안왕의 결투우문호는 그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두렵다고요? 지난날에는 조금 두려웠었죠. 하지만 문무가 가득한 이곳에서 누가 형님을 지지한단 말입니까? 형님은 정말 약을 나눠 주고 명성을 얻어서 저에게 맞서겠다는 허황한 꿈을 꾸고 계신 겁니까?”“그럼 닥치고 지켜 보아라.”안왕의 위풍은 어젯밤보다 훨씬 못했다. 약간 풀이 죽은 듯했다.우문호는 코웃음을 치더니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형님이 전에 몇 번이고 저를 해쳤지만, 전 그거에 개의치도 않아 했습니다. 안 왕비가 일이 생겼을 때 원 선생도 여러 번 도와줬고요. 안 왕비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원 선생에게 떳떳한지.”그는 말하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이리 오너라. 안 왕비를 모셔 오거라.”“지금 여기에 없다.”안왕이 차갑게 말했다.“안 계신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직접 찾아보죠.”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자안왕은 그에게 소리 질렀다.“거기 서!”순순히 말을 들을 우문호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발걸음이 더 빨라지자 안왕은 재빨리 일어나 뒤쫓아 나갔다. 경공 몇 번으로 우문호 앞을 막아섰고, 그의 곁에 있던 사람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서 우문호의 뒤를 막았다.우문호는 안 왕을 걷어차면서 입으로 소리 지르며 말했다.“이 배은망덕한 놈, 짐이 애초에 너를 위해 사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부황에게 말해서 너를 강북부에 보내 평생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네가 몇 번이나 나를 해쳐도, 늘 형제간의 정을 생각하여 너를 봐주었다. 그런데 너는 내가 나랏일에 바쁠 때, 일부러 약초를 쌓아놓고 내가 백성들의 비난을 받게 했지.”안왕도 분노가 극에 달해 우문호가 발로 차자 그도 바로 반격했고, 두 사람은 마당으로 뛰어들어 서로 얽혀 치열하게 싸웠다.두 형제의 원한은 이미 너무 깊었다. 그동안은 신분 때문에 서로에게 잔인하게 하지 못했지만, 오늘 싸움은 매우 잔인했다. 단 50수 만에 안왕은 피를 토할 때까지 걷어차이고, 우문호
아공과 안왕안왕은 몸부림을 쳐도 소용없자 우문호에게 박치기했다. 우문호가 열 받아서 안왕의 멱살을 잡고 힘껏 누르며 말했다. “내가 쓰레기고 병신이라고 했지, 오늘 똑똑히 보여주지. 누가 쓰레기인지.”결국 우문호가 안왕을 끌어안고 구르며 주먹을 휘두르는데 어찌나 힘껏 주먹질을 해대는지 보고 있기가 처참할 정도다.안왕은 완전히 뻗어버려서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미친 개새끼, 꺼져, 당장 꺼지라고!”안왕은 힘겹게 고개를 들고 종자와 시위대장에게 소리 지르며 말했다. “너희들 다 뒤졌어? 내가 거의 죽어가는 거 안 보여? 아직도 안 돕고 뭐 해?”종자가 바람처럼 날아왔다. 이번엔 귀영위가 막지 않은 게 우문호가 이미 일어섰기 때문이다.종자가 안왕을 일으키자 안왕이 종자의 얼굴에 따귀를 날리며 무섭게 노려보더니 말했다.“내가 다 죽어가는 거 보면서 와서 돕지도 않아? 진짜 내가 죽는 게 보고 싶어?”종자는 눈에 한 줄기 분노가 번뜩했으나 곧 자제하고 고개 숙여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우문호가 미친듯이 웃으며 말했다. “네 주변 인간들이 얼마나 식충이에 밥통 같은지 보라고, 나를 상대할 생각조차 못 하는 거 봐, 꿈 깨!”우문호는 계속 미친듯이 웃어 제치며 긴 여운을 남겼다.안왕이 열 받아서 옆에 나무를 발로 찼는데 나뭇잎만 몇 개 떨어지자 이를 갈며 말했다. “우문호, 너 용서 못 해, 두고 봐,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널 끌고 같이 죽을 테니까!”종자가 안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왕야, 태자 전하와 싸움을 일으키시면 안 됩니다.”안왕은 분이 가시지 않아 말했다. “내가 도발했어? 우문호가 왕비를 보러 간다니까 그러지, 왕비가 집에 없다는 걸 알려야겠어?”종자도 여전히 꾸짖듯 말했다. “원래 왕야께서 어젯밤 태자 전하를 찾아가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자기 일만 신경 써서 잘하시면 되니까요.”안왕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차갑게 말했다. “경솔하게 말하는구나. 전에 우문호에게 경성을 떠날 거라고 얘기
안왕비와 안지가 눈늑대봉?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리 나리는 이전의 나태함을 떨쳐버리고 예리한 눈빛으로 우문호의 말을 듣고 말했다. “전하 말씀은 안왕비 마마께서 아라의 오빠가 시킨 사람들에게 잡혀갔다? 아라라 함은 안왕 전하의 예전 후궁을 말하는 거지요? 오빠는 아공이라 하고? 그 이름은……”이리 나리가 생각해 보는데 어딘가 낯익은 이름이다.우문호가 말했다. “사식이가 듣기로 아공이 그들을 눈늑대봉으로 보내 일을 처리하라고 했다는데 인질을 눈늑대봉에 감금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눈늑대봉이란 말을 듣고 이리 나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눈늑대봉? 눈늑대봉에 모신 거라면 찾기 편한 게 사람을 숨길 만한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습니다. 바로 눈늑대봉 정상에 있는 자운사(慈雲寺)죠. 하지만 극한의 추위가 몰아치고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아예 있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인데, 안 왕비 마마와 어린 군주가 거기 계신다면 정말 위험합니다. 만약 그들이 안왕 전하를 통제할 목적이라면 인질을 산꼭대기에 둘 리가 없어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안왕 전하께서 그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시지 않겠습니까?”“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누군가 가서 우선 자운사는 제외하고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리 나리 수하에 경공 고수들이 있다고 들었으니 그들이 가서 찾아보면 적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겁니다.”이리 나리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니요, 아무리 경공에 능한 자도 그들이 산꼭대기를 점령하고 있으면 누군가 파수를 볼 것이고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반드시 발견할 겁니다. 눈늑대봉 전체가 흰색 일색이기 때문에 설사 흰옷을 입는다고 해도 주의를 끌 수밖에 없습니다.”“밤은 어떻습니까?” 이리 나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녁이라면 경공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길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불을 밝혀야 하는데 횃불을 드는 순간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문호는 원 선생과 만두 늑대의 대화를 기억해 내고 순간 기뻐서 말했다. “문득 돈오했습니다. 제
엄살쟁이 우문호만두 늑대는 단번에 원경릉의 말뜻을 알아듣고 ‘우우’하고 울며 바로 갈 수 있다고 했다.원경릉이 염탐만 하고 절대로 손을 쓰면 안 된다고 거듭 신신당부했다. 눈 늑대는 안 왕비 모녀를 데리고 하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눈 늑대는 자리에서 뱅뱅 돌며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원경릉은 눈 늑대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본 적이 없어 깜짝 놀랐다.그리고 만두 늑대만 가는 게 아니라 경단이 늑대와 찰떡이 늑대도 같이 따라가는데, 휙 하고 달려나가는 소리만 들리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게 원경릉은 쟤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놀라우면서도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됐다.비록 걔들이 원경릉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도 결국 이성이 통하지 않는다.원경릉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우문호의 상처를 치료하러 들어가서 말했다.“눈 늑대가 엄청 흥분했던데 왜 그런 거야?”우문호가 징징거리며 말했다.“아파, 살살해.”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좀 참아, 이마 여기 살갗이 벗겨져서 소독해야 해. 전에는 더 아파도 잘 참더니 어째 이제 피부만 까져도 아프다고 해?”“아프다고 엄살 안 부리면 당신 가슴 아파 안 할 거면서.”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키스하며 눈웃음을 지었다.“마음 아파.” 원경릉이 우문호를 바라보며 알코올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앞으로 조심해서 얼굴은 맞지 마, 잘 생긴 얼굴이 이게 뭐야?”“그럼 다음부턴 상대에게 미리 경고부터 해야겠네, 다른데 때리는 건 괜찮은데 얼굴은 안된다고.” 우문호가 광대뼈를 눌러보며 말했다.“여기 부러진 거 아니야?”“안 부러졌어.” 원경릉이 살살 우문호의 손을 떼고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며, “아파?”“엄청 아파!” 우문호가 눈썹을 찡그렸다.“뼈에 금이 간 건 아니겠지?”“그거 진짜 재수 없는 경운데.” 우문호는 자신이 넷째를 위해 잘생긴 얼굴을 희생하는 날이 올 줄 생각도 못했다.원경릉이 조심조심 약을 발라주고 차가운 습포를 얼굴에 대주자 한결 편안해졌는지 방금 눈 늑대 얘기에
별궁우문호는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이 일은 여기까지 알아보면 됐어. 넌 우선 군으로 돌아가 봐. 이 일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고.”“그러죠.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명령만 하세요.” 전진 장군이 인사하고 나갔다.우문호는 사람을 보내 조굉방을 감시하게 했다. 한편 이때 눈 늑대도 탐색을 마치고 돌아와 원경릉과 ‘우우’하고 한참을 울었다. 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눈늑대봉에 없데.”우문호는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이 눈늑대봉에 있으면 구해내기 쉽지 않을뿐더러 기후가 너무 열악해 아가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다시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생활이 시작됐고 원경릉에게 외부 일을 거의 말 할 기회가 없었다.며칠이 지나고 궁에서 성지가 내려왔는데, 원경릉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별궁에서 한동안 태상황 폐하를 모시라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성지에 원경릉은 우문호가 돌아오길 기다려 물어봤더니 말했다. “그저께 태상황 폐하 옥체가 불민하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쩌면 별궁에서 요양을 하시려는 걸지도, 당신도 알지만 태상황 폐하는 외로운 걸 싫어하시잖아.”“하지만 지금 외롭지 않으실걸, 평남왕 전하께서 궁에 계시잖아?”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들 몇 명이 같이 있어도 고작해야 그 시절 얘기지,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더 할 말도 없으실걸? 며칠같이 있어, 어쨌든 지금 집에 일도 없고.”“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나한테 얘기해.”우문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일은 무슨 일? 독고도 아직 경성에 안 온 지금이 얼마나 귀한 여유인데, 가봐.”“여유라고 하기엔 자기 최근에 엄청 바쁘던데.” 원경릉은 아무래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 같지 않은 것이 태상황이 이렇게 중차대한 시점에 원경릉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자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다.“조정에 일을 정리하고 나면 독고가 바로 경성으로 올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마. 만약 정말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먼저 당신한테 얘기할 거야, 당신이
별궁에 온 원경릉원경릉은 아니나다를까 잔소리를 해대고 태상황은 가만히 듣고 마음대로 잔소리하게 놔뒀다.원경릉이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가 태상황이 원경릉을 앉으라고 하고 말했다. “억지로 있는 거 봐, 와서 과인 곁에 있는 게 싫은 거 아니야?”“그럴 리가 있어요? 곁에 있고 싶어도 못 있는데. 귀찮은 일은 그만 좀 참견하세요.”“정말 곁에 있고 싶었단 말이야?”“당연하죠!” 원경릉이 약 상자를 정리하고 태상황에게 말했다. “정말 별궁에서 몸조리 하시는 거뿐인가요?”“아니면 또 뭐가 있어?” 태상황이 원경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안 돼, 너무 총명하면 손해거든. 그리고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걱정할 필요 없어, 누군가 네 앞을 막아줄 테니까, 넌 행복해야 마땅하지 암.”원경릉은 결국 반박하지 못한 채 약상자를 들고 말했다.“그럼 좋아요. 전 행복을 만끽하러 방으로 돌아갑니다.”우문호는 밖에서 평남왕 등과 대화하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말했다. “황조부께서는 괜찮으셔?”“괜찮아, 약 드시고 쉬시면 돼.” “다행이다. 여기 머물면서 며칠 함께 해 드려.” 우문호가 다가와 약상자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위해 호숫가 방을 골랐어, 분명 좋아할 거야. 보러 가자.”원경릉이 평남왕과 양대 거두에게 인사를 드리고 우문호와 같이 나왔다.우문호가 고른 호숫가 명지원(明芷院)은 복숭아나무가 잔뜩 심겨 있었다. 가지엔 복숭아가 가득 달려 분홍빛이 도는 초록빛으로 며칠 지나면 먹을 수 있어 보인다.별궁 대부분은 2층 건축 양식으로 1층은 본관과 사랑채, 부엌에 하인들이 사는 방이 2칸 있고, 2층은 주인의 침실과 곁채, 전부 5칸으로 원경릉 등이 살기엔 충분했다.원경릉이 들어가서 보니 물건이 전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이불은 새것으로 원경릉은 속으로 짚이는 게 있는 것이, 이건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미리 준비해 놓은 게 틀림없다.아마도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 확실하다.우문호가 원경릉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