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궁우문호는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이 일은 여기까지 알아보면 됐어. 넌 우선 군으로 돌아가 봐. 이 일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고.”“그러죠.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명령만 하세요.” 전진 장군이 인사하고 나갔다.우문호는 사람을 보내 조굉방을 감시하게 했다. 한편 이때 눈 늑대도 탐색을 마치고 돌아와 원경릉과 ‘우우’하고 한참을 울었다. 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눈늑대봉에 없데.”우문호는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이 눈늑대봉에 있으면 구해내기 쉽지 않을뿐더러 기후가 너무 열악해 아가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우문호는 다시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생활이 시작됐고 원경릉에게 외부 일을 거의 말 할 기회가 없었다.며칠이 지나고 궁에서 성지가 내려왔는데, 원경릉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별궁에서 한동안 태상황 폐하를 모시라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성지에 원경릉은 우문호가 돌아오길 기다려 물어봤더니 말했다. “그저께 태상황 폐하 옥체가 불민하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쩌면 별궁에서 요양을 하시려는 걸지도, 당신도 알지만 태상황 폐하는 외로운 걸 싫어하시잖아.”“하지만 지금 외롭지 않으실걸, 평남왕 전하께서 궁에 계시잖아?”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들 몇 명이 같이 있어도 고작해야 그 시절 얘기지,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더 할 말도 없으실걸? 며칠같이 있어, 어쨌든 지금 집에 일도 없고.”“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나한테 얘기해.”우문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일은 무슨 일? 독고도 아직 경성에 안 온 지금이 얼마나 귀한 여유인데, 가봐.”“여유라고 하기엔 자기 최근에 엄청 바쁘던데.” 원경릉은 아무래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 같지 않은 것이 태상황이 이렇게 중차대한 시점에 원경릉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가자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다.“조정에 일을 정리하고 나면 독고가 바로 경성으로 올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마. 만약 정말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먼저 당신한테 얘기할 거야, 당신이
별궁에 온 원경릉원경릉은 아니나다를까 잔소리를 해대고 태상황은 가만히 듣고 마음대로 잔소리하게 놔뒀다.원경릉이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가 태상황이 원경릉을 앉으라고 하고 말했다. “억지로 있는 거 봐, 와서 과인 곁에 있는 게 싫은 거 아니야?”“그럴 리가 있어요? 곁에 있고 싶어도 못 있는데. 귀찮은 일은 그만 좀 참견하세요.”“정말 곁에 있고 싶었단 말이야?”“당연하죠!” 원경릉이 약 상자를 정리하고 태상황에게 말했다. “정말 별궁에서 몸조리 하시는 거뿐인가요?”“아니면 또 뭐가 있어?” 태상황이 원경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안 돼, 너무 총명하면 손해거든. 그리고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걱정할 필요 없어, 누군가 네 앞을 막아줄 테니까, 넌 행복해야 마땅하지 암.”원경릉은 결국 반박하지 못한 채 약상자를 들고 말했다.“그럼 좋아요. 전 행복을 만끽하러 방으로 돌아갑니다.”우문호는 밖에서 평남왕 등과 대화하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말했다. “황조부께서는 괜찮으셔?”“괜찮아, 약 드시고 쉬시면 돼.” “다행이다. 여기 머물면서 며칠 함께 해 드려.” 우문호가 다가와 약상자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위해 호숫가 방을 골랐어, 분명 좋아할 거야. 보러 가자.”원경릉이 평남왕과 양대 거두에게 인사를 드리고 우문호와 같이 나왔다.우문호가 고른 호숫가 명지원(明芷院)은 복숭아나무가 잔뜩 심겨 있었다. 가지엔 복숭아가 가득 달려 분홍빛이 도는 초록빛으로 며칠 지나면 먹을 수 있어 보인다.별궁 대부분은 2층 건축 양식으로 1층은 본관과 사랑채, 부엌에 하인들이 사는 방이 2칸 있고, 2층은 주인의 침실과 곁채, 전부 5칸으로 원경릉 등이 살기엔 충분했다.원경릉이 들어가서 보니 물건이 전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이불은 새것으로 원경릉은 속으로 짚이는 게 있는 것이, 이건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미리 준비해 놓은 게 틀림없다.아마도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 확실하다.우문호가 원경릉
별궁에서의 이별“별궁에서 나가면 우리 다시 혼례 올리자.” “여기서? 난 당신이 장인 어른 계신 거기 돌아가서 하길 원하는 줄 알았지. 당신 데리고 경호 갔다가 돌아온 뒤는 어때?”“아니, 난 여기서도 혼례를 하고 싶어.” 원경릉이 고집을 부렸다.원경릉은 정말 혼례가 치르고 싶은 건 아니고 단지 지금 마음이 너무 황망해서 우문호에게 뭔가 약속을 받아내고 싶을 뿐이다. 현대로 돌아가서 결혼식을 올리는 건 여러 번 얘기했고 둘 다 너무나 요원한 희망인 걸 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다시 한번 혼례를 올리자, 떳떳하게 당신을 아내로 맞아야지.”원경릉이 목이 메어 말했다. “자기야, 약속해 줘, 잘 지내겠다고, 꼭 잘 있을 거라고.”우문호가 원경릉의 열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부드러우면서 확실하게 말했다. “반드시 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절대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나가면 안 돼. 내가 정신이 분산되지 않도록.”원경릉은 심장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말했다.“알았어.”두 사람은 오랫동안 말없이 안고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원경릉은 이윽고 잠이 들었고 우문호는 원경릉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원경릉을 내려놓고 일어나 미련을 남긴 채 떠났다.우문호가 막 나가고 원경릉이 눈을 떠 창 밖에 우문호의 그림자를 봤다. 미련을 안고 뒤를 돌아보며 우문호가 나간 뒤 원경릉은 창문 뒤에 숨어 우문호가 성큼성큼 가는 뒷모습을 봤다.원경릉은 전신에서 힘이 빠지고 우문호가 보이지 않자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데 이불에서는 아직 우문호 냄새가 났다.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체취에 원경릉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밤이 되자 음식이 방으로 보내졌는데 사식이가 흥분해서 말했다. “원 언니, 누가 왔는지 알아요?”원경릉은 입맛이 없어서 두 숟가락 뜨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식이가 우걱우걱 먹으며 흥분한 얼굴로 얘기하는 걸 듣고 말했다. “누가 왔어?”사식이가 밥을 꿀꺽 삼키
긴급 조치사식이가 말할 듯 말 듯한 태도를 보이자 원경릉은 애간장이 타서 말했다. “빨리 말해봐, 내가 봉사도 아니고 정상이 아닌 걸 봤잖아. 태자 전하께서 일부러 날 별궁으로 보내고, 태상황 폐하도 이리로 옮겨 오셨고 안풍친왕 부부까지 와서 지키게 하다니 분명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에휴, 눈치 다 챘네요. 그럼 제가 얘기해도 입 싸다는 말은 안 듣겠죠. 서일이 말해줬는데 조사결과 독고가 평남왕 세자로 변장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데요. 그리고 북군영 쪽에도 반란이 일어나서 일부 장수들은 몰래 안왕 전하께 투항했으며, 서일 말이 독고 사람이 안 왕비 마마와 아가 군주를 납치해 간 건 안왕 전하께서 모반을 일으키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래요.”원경릉이 기겁해서 말했다. “평남왕 세자께서 독고라고? 누가 그래? 증거는? 태자 전하께서 독고는 아직 경성으로 오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어?”사식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리 나리 사람이 살펴보고 와서 상경하는 그자는 확실히 독고와 닮았지만 독고가 아니고, 동작이나 거동에서부터 기질까지 전부 독고와 달랐다고 해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가짜인 거죠. 사실 독고는 이미 평남왕 전하와 함께 경성에 들어왔고, 주씨 가문에 머물 때 각 대신들과 황실 친척들과 사적으로 결탁한 거죠. 서일 말이 당시 태자 전하는 그저 의심하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 홍엽공자가 몰래 가서 관찰하더니 평남왕 세자는 사람 가죽을 뒤집어썼을 가능성이 있고 행동거지를 보면 독고와 매우 닮았다고 했어요. 홍엽공자는 독고의 친아들이니 홍엽 공자의 말은 신빙성이 어느 정도 있거든요.”원경릉이 자세히 생각해 보니 임소가 평남왕부에 나타나고 다음에 평남왕이 경성으로 올라가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사실이 평남왕 세자가 독고와 결탁했다고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평남왕 세자는 과연 독고일까? 그렇다는 건 원래 평남왕 세자는?독고가 가볍게 내민 한 수가 먼저는 안왕에 대한 여론몰이였으며 다음이 안 왕비를 가지고 안왕이 역모를 일으키도록 압박
태자의 조치와 돌아온 위왕마지막으로 우문호가 모아둔 명단에 따라 각 부서와 관아의 관리를 대대적으로 교체했는데 명단에 있는 자는 일률적으로 직무를 정지하고 그들의 직무는 신속하게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은 우문호가 미리 다 뽑아 놓은 자들로 그동안 이날을 기다려 대대적으로 칼을 댔다.사전에 내각과 상의할 필요없이 직접 감국태자(監國太子)의 신분으로 명령을 내렸으며, 이부 쪽 사람도 바꾸는 대신 이부 상서의 직책은 그대로 보류해 두었다.우문호의 이번 조치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태자는 벼랑 끝까지 몰렸음이 분명했다. 백성들은 더 이상 소망을 품지 않고 북당 여기저기서 태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태자가 명성이 땅에 처박힌 순간, 가장 보수적으로 일해야 하는 그때에 태자가 오히려 관리들을 대거 교체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문호가 이 시간동안 참고 견딘 건 모두 이 가장 최적의 순간을 기다렸다가 심각하게 반격하기 위함 임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참으로 배수의 진을 친 일격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이 일격은 백성들의 반발과 각종 의혹을 일으켜 아무도 안왕이 약을 보낸 일을 다시 거론하지 않고 다들 태자가 도대체 어떻게 할지 두고 보는 중이다. 왜냐면 이렇게 대대적으로 관리가 교체된 것은 전대미문의 일로 반드시 뭔가 일어날 거라 예상했다.이때 위왕과 정화 군주가 경성에 도착했다.위왕부는 계속 위왕을 위해 남겨져 있었으나 정화 군주는 위왕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친정에도 가지 않고 손왕부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많은 동서 중에 손 왕비와 정화군주는 가장 사이가 좋아서 당연히 제일 가슴 아파하는 것도 손 왕비라 정화 군주가 잠시 손왕부에 머문다고 하니 손 왕비는 물론 대환영이었다.두 사람은 바로 입궁해서 정비 마마를 뵀다. 예전에 위왕의 생모가 별세한 뒤 위왕은 줄곧 정비 곁에서 자라 정화 군주도 당연히 정비 마마를 시어머니로 알고 효를 다했다. 정화 군주와 위왕이 이혼할 때 정비 마마는 심하게
정화의 마음정비 마마께서 정화에게 묻고 싶은 말을 빼놓지 않고 말했다.“너 걔랑…… 다시 합칠 가능성은 없는 게냐?”정화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지금 저와 그분은 친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굉장히 좋아요.”다들 듣고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고 손 왕비도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화가 셋째를 증오하는 건 당연하니 시간이 지난 뒤엔 언젠가 위왕이 가여울 거라고 지금은 정화 말에 무조건 지지하며 말했다. “그때 셋째가 진짜 너무했지.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가 있어? 다시 잘 시험해 보고 그 뒤에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해도 늦지 않아.”정화 군주가 웃으며 말했다.“이제까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같이 있고 안 있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각자 자유롭고 편안하면 되는 거죠.”정화가 화제를 바꿔 말했다. “태상황 폐하의 옥체는 좀 어떠세요?”“태상황 폐하께선 별궁으로 쉬러 가셨네.” 황귀비가 말했다.정화가 엷게 웃음을 띠고 말했다. “태자비가 있으니 확실히 괜찮겠네요.”“태자비가 그리우면 내일 내가 미색이랑 요 부인을 초대해 같이 별궁에 갈 약속을 잡지 뭐, 우리 한 번 모이자.” 손 왕비가 말했다.정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좋네요, 역시 얼굴을 보고 태자비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죠.”여자들은 한참을 얘기하고 황귀비는 명원제 쪽에 사람을 보내 정화가 돌아왔으니 알현하시고 싶은지 여부를 묻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목여 태감이 직접 와서 폐하께서 정화 군주를 보고 싶어하신다고 모셔갔다.손 왕비는 정화와 같이 가서 명원제에게 문안을 드리고 명원제는 아직 조정 일을 보지 않지만 요양하는 동안 살이 좀 찌고 얼굴도 좋아졌다. 호비 마마께서 곁에 있으며 세심하게 돌봐 주니 황제와 왕비의 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사이가 좋았다.명원제가 정화에게 근황을 묻는데 정화 앞에서는 위왕을 언급하지 않고 몇 마디 당부의 말을 했다. 태도가 마치 이전 같아서 그녀를 외인으로 취급하지 않아 정화는 눈가가 계
위왕의 입궁손 왕비가 정화의 손을 잡고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어떻게 하든 난 네 편이야. 너희가 같이 있으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고, 진짜 인과응보다.”정화는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며 슬픔이 끊임없이 차올라 말했다. “그동안 바깥을 떠돌 때도 밤에 꿈을 꾸면 언제나 그 아이가 저를 보고 우는 소리가 들려요, 지금도 그래요.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가 그이 곁으로 돌아가기 원하는지, 그이와 다시 예전처럼 좋아지길, 지난날처럼 아무 일도 없었듯이 지내기를 바라는지 알아요, 하지만 정말 너무 어려워요.”“생각하지 마, 다 지난 일이야. 네가 셋째와 같이 있지 않아도 너한테 뭐라고 할 사람 없어. 누가 네 미어지는 가슴을 아는데? 견디기 힘든 골인 거 맞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살지 마. 정말 널 아끼는 사람은 너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 너한테 모진 말 할 리는 더더욱 없고.”“이번에 그이를 따라 경성에 온 건 중간에 태자 전하의 서신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경성에 변고가 있을 거라 저에게 제발 그이와 같이 돌아오라고 해서. 만약 그이가 죽으면 제가 그이를 위해 시신을 거둬 주길 바란다고. 저도 위험한 건 알지만 그이를 따라 돌아왔어요. 그 서신이 아니었으면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지나가는 말처럼 했지만 목소리에서 배어 나온 아픔을 무딘 손 왕비조차 알아챌 수 있었다.손 왕비는 눈을 곧추세웠는데 이런 얘기는 아무래도 불길하다고 미신을 믿었다. 손 왕비는 더 듣고 싶지 않아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 내일 태상황 폐하 뵈러 가는 김에 태자비 마마도 좀 만나자. 태자비 마마께서 또 아이 낳았는데 너 알아?”“알아요, 남강 북쪽에 있을 때 태자비 마마를 만났었는데 그때 얘기해 줬어요. 사실 제가 계속 경성의 일에 마음이 갔거든요, 북당에서 태자비 마마께서 쌍둥이를 낳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쌍둥이를 낳는 복은 정말 엄청난 거잖아요.”“너도 큰엄마가 됐는데
형제 간의 술자리위왕이 궁을 나선 뒤 초왕부로 다섯째를 찾아갔다. 다섯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초왕부 사람이 병부로 우문호를 찾아가 위왕이 돌아왔다 소식을 알렸다. 우문호는 회왕, 손왕과 제왕을 집으로 오라고 초대하고 오늘 저녁 형제들이 거나하게 한 잔 하기로 했다.또 이리 나리를 청했는데 이리 나리는 매부로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리 나리 성격이 차가워서 꼭 온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몇 명이 모이자 술자리가 시작됐다.회왕은 최근 한약을 먹으며 보양하는 중인데 미색에게는 늘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하지만 미색이 포기하지 않고 본인도 한약을 먹으면서 회왕을 원경릉 할머니께 끌고 가서 진맥을 하고 처방대로 반드시 먹으라고 시켰다.회왕은 미색의 살벌함에 꼼짝 못하기 때문에 한약을 먹으면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미색이 딸려 보낸 심복이 회왕이 술을 마시나 지켜보고 있었다.형제들이 이런 회왕의 모습을 보고 놀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 회왕은 오히려 덤덤하게 말했다. “공처가가 뭐 대수라는 겁니까, 다들 공처가잖아요?”이 설렁설렁한 한 마디에 위왕이 쓴웃음을 지은 것을 제외하고 우문호와 제왕은 괜히 딴 데를 바라봤다.하지만 곧 뭐 그럴 필요 있나 공처가가 뭐 대수라고.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있는데 무서워하든 공경하든 뭐 어때서?회왕은 술을 마시지 않고 다른 세 왕야는 거나하게 취했다. 오늘 밤은 구사와 냉정언은 부르지 않은 것이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누군가는 역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 밤은 집안의 일상사를 얘기하고 형제 사이의 대화를 주고받았다.물론 큰형 우문군에 대한 얘기도 언급했다.우문군이란 이름을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모두 싫어했지만 죽고 나니 그가 한 나쁜 일은 선택적 기억처럼 기억나지 않았다.위왕은 돌아오는 길에 부고를 들어서 큰형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 역시나 상당히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태자 자리를 다투는 과정전체에서 큰형은 비록 위왕을 아예 제꼈지만 실질적인 피해로 따지면 넷째가 한 짓만 못하기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
목여 태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문호에게 말했다.“폐하, 공주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공주께서는 단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 것 뿐입니다.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왕과 위왕도 그곳에 있었고,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잖습니까?”우문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택란이 자네에게는 과자 한 조각을 주었지만, 나한테는 안 주더군.”택란은 그 말을 듣고 재빨리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환심을 사려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드셔 보세요. 이건 그렇게 달지 않은 생강 과자인데, 정말 맛있습니다!”생강 과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딸의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을 보니 어떻게 밀쳐낼 수 있겠는가? 화가 난 상태였지만 결국 한입 물었고 생강과 설탕의 맛이 입안에 퍼졌고, 딸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니 얼굴에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나도 먹고 싶은데.”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옆에 앉아 턱을 괴고 물었다.“다섯째야, 맛있느냐?”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무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겼으니, 좋은 표정을 지을 마음이 없었다.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택란아, 나한테도 한 조각 줘 보거라!”택란은 다시 과자 한 조각을 가져와 엄마의 입가에 가져다주며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의 엄마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원경릉은 과자를 먹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구나. 다 먹었으니 나가서 좀 자거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못 잤으니.”“예!”택란은 얌전히 대답하고 나머지 과자를 빨리 먹어 치운 뒤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를 한 번 안아주었다.“아바마마, 저 먼저 자러 가겠습니다. 깨고 나면 다리 주물러 드릴게요!”우문호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어서 가거라.”택란은 목여 태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한 번 돌아보며 아버지가 너무 오래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랐다.원경릉은 문을 닫고 탁자 옆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