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우문호가 처음으로 아버님이라고 불렀는데 원래는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왔다.원교수가 오히려 놀라더니 눈가가 살짝 붉어지며, “그래, 그러지. 맥주 마시나? 맥주 한 캔 가져다 줄 테니 남자들끼리 얘기 좀 하지.”우문호는 술이란 말을 듣고 한 모금 하고 싶은 게 아직 낯설기만한 사람과 한 방에서 자야 하는데 술기운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맥주 두 캔을 냉장고에서 꺼냈는데 살얼음이 살짝 얼었다. 우문호는 이런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장인 어른이 대신 따주자 한 모금하니 이게 또 마음이 상쾌해 지는 것이 괜찮다.“이런 술은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 쪽은 전부 독한 술을 마시거든요.” 우문호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원교수를 보고 말을 시작했다.“북당 얘기를 좀 더 들려 줘, 듣고 싶네.” 원교수는 이제 북당이란 두 글자가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딸이 지금 북당 사람이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장인과의 얘기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장인 어른은 견문이 넓고 조정 정세도 같이 분석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남강 남북의 일은 물론 그쪽의 여러 나라들 정세도 종합적으로 대비하고 분석해 주셔서 우문호의 시야가 확 트였다.두 사람은 거의 밤을 꼴딱 새며 얘기했다.한편 모녀도 거진 밤새 얘기하며 엄마는 계속 딸의 손을 꼭 쥐었다. 딸은 잠이 들었는데 엄마는 모든 게 꿈만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딸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전에 자신 곁에 있던 때가 생각나서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자식을 100년 키우면 99년은 근심걱정이라 는데 더군다나 딸이 앞으로 자기 곁에 없을 걸 알면서 근심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이번에 딱 사흘의 시간만 주어졌다는 생각에 잠드는 것도 아까웠다. 딸이 간 뒤에 한번이라도 더 봐 둘 걸 후회하지 않게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다. 다음날 원경릉은 연구소에 가기로 무진과 약속했다. 우문호는 당연히 연구소에 갈 수 없어서 팀을 셋으로 나눴다. 우문호는
주진과 원경릉의 담판아카이브 데이터를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고 주진은 전혀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원경릉은 데이터에 거침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주진은 원경릉의 연구에 수많은 주진 스스로의 생각과 데이터를 섞어버렸다. 비록 두번째 시도는 완전히 원경릉의 데이터 대로 했다고 하지만 그 데이터조차 이미 용태후가 사람을 시켜 해킹한 것으로 무진은 지금까지 완전한 데이터를 입수한 적이 없다.주진은 원경릉을 안심시키기 위해, “개발한 약품을 홍엽공자에게 줄지 여부는 먼저 선배에게 물어볼 거예요. 선배 줘도 된다고 하면 줄 게요.”“후배와 홍엽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 거야?” 원경릉은 데이터를 고치고 한시름 놓더니 물었다.주진의 말에 따르면 주진이 주지스님일 때 홍엽과 왕래하는 건 불가능했는데 어떻게 홍엽을 위해 약품을 연구할 수 있었던 거지?“선배 절 믿어주세요. 홍엽공자는 별로 큰 야심이 없어요. 비록 약을 사용하는 진짜 용도가 뭔 지는 모르지만 저한테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고.”“그럼 그 일의 자초지종을 나에게 얘기해 줘.” 원경릉은 지금 주진을 별로 믿지 못하는 게 처음부터 자신을 속였고 지금도 아까는 모른다더니 또 이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본인과 홍엽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주진이 “타인의 개인 정보라 대세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알려줄 수 없어요.”원경릉이 주진을 보고 한숨을 쉬며, “주진, 북당에 있을 때는 귀엽기라도 했지, 지금은 널 모르겠어. 됐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을 게. 홍엽이 그다지 큰 악의를 품고 있는 건 아니라는 네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나도 네가 체면을 깎아 먹는 걸 바라지 않고.”주진이 잠시 말이 없다가, “제가 숨기려는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여러가지 일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길어요. 하지만 한마디는 개발하겠어요. 이 약은 반드시 연구해 내고 말 거예요, 선배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전부 이로운 일이예요.”“주진, 왜 연구하지
번지점프를 하다“선배는 줄곧 나를 믿지 않았으니 전 누구의 마음도 다치게 한 적 없어요.”“이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야. 주진. 아직도 모르겠어? 약품을 투여한 뒤에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 졌어?” 원경릉은 갑자기 뭔가 떠오르며 순간 깨닫고, “넌 연구에 성공한 적이 없어. 네가 주사한 약물은 네 자신이 연구 개발한 게 아니야. 아니면 네가 이렇게 절박하게 내 데이터를 원할 이유가 없지.”주진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하고 싶지 않은 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제 대답은 같아요, 전 포기 안 해요.”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 둘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거겠네. 주진, 잘 생각하길 바랄 게.”원경릉은 말을 마치고 갔다.연구소를 떠나는 원경릉의 마음은 어둡고 무거웠다. 비록 주진과 홍엽의 관계를 추측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이 일은 내내 목에 걸린 가시 같다.원경릉은 차를 타고 생각을 정리한 뒤 오빠에게 전화했다.“어디야? 오빠 쪽으로 가고 싶은데.”“우리 번지점프 하고 있어!” 오빠는 그쪽에서 흥분해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얼른 와, 네 남편 완전 용감한데 우리 조금 있다가 스카이다이빙 갈 거야.”원경릉이 전화통화로 마음이 훨씬 좋아져서 차를 몰고 오빠와 남편을 만나러 갔다.번지점프는 우문호에게 있어서 솔직히 험난한 도전은 못 됐다. 로프로 묶고 아래로 뛰어 내리는 게 뭐가 어렵다는 거야? 우문호는 물론 경공을 할 줄 알지만 이 높이는 경공으로 내려가도 죽는다. 그러나 밧줄이 있다고. 이 밧줄은 칼자국 밧줄보다 훨씬 대단해 보였다.우문호는 두 번 뛰어내렸는데 조금도 무섭지 않고 심지어 약간 별거 아니어 보이는 게 원경릉이 오는 걸 보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산바람을 맞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저 사람들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그냥 뛰어내리잖아? 진짜 상쾌해, 원선생도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자극 정도가 당신한테 맞아.”우문호는 오늘 머리를 하나로 묶어서 예술가 같은 귀티가 난다. 원경릉이 손을 내젓더니 미소를 지었다, “난 안 해
오누이의 대화우문호가 아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원경릉도 기뻐서 오빠와 뒤에서 우문호를 보는데 줄 서있으면서 걸핏하면 돌아보고 눈이 안보이게 웃었다.오빠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지, “매부는 뭐든 좋아해. 너희들이 더 있을 수 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잊을 만큼 신나게 해 줄 수 있는데 말이야.”“지금 저 사람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 벌써 잊었는데 뭐.”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오빠가 원경릉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럼……기왕 이렇게 즐거운데 며칠 더 있는 거에 찬성하지 않을까?”원경릉은 오빠의 몸에 기대서 아련하게, “저 사람 뜻이 아닌 걸, 용태후가 우리를 돌아오게 보내준 거라 딱 사흘 기한을 줬어.”“그런 거구나……” 오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우문호가 남기로 결정할 수 있게 오늘 최대한 비위를 맞추는 게 능사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용태후는 앞으로 또 너희들 돌려보낼 수는 없는 거야?”“나도 몰라, 하지만 내가 노력할 거야. 돌아올 수 있으면 반드시 돌아올 거야.” 원경릉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돌아온 지 이틀째, 헤어질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오빠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사랑을 가득 담아, “눈 깜짝할 사이에 결혼했네. 우린 네 결혼식에 참석도 못했는데.”원경릉은 본인도 참석 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충분하고, 결혼식에 참석도 안 했으면서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다. “만약 다음에 또 돌아올 수 있으면 네 결혼식 하자. 지금은 너무 촉박해서 할 수가 없어. 오빠는 네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보고 싶어.” 오빠의 마음 속에 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웨딩드레스에 대한 환상이 없는 여자 애가 어디 있어? 원경릉도 있었다. 젊고 어릴 때 그때는 비록 학업으로 바빴지만 원경릉도 청춘이 꿈틀대던 시기가 있었다.원경릉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우문호가 연미복을 입으면 어떤 모습일까? 몸매가 모델 같으니 엄청 멋지겠지?’이런 생각을 하며 줄 서있는 우문호를 보는데 북당의 태자는 아이처럼 놀이기구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스카이다이빙“저 사람이 이렇게 즐거운 걸 본 적이 없어.” 원경릉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매부는 동심이 있다니까!” 오빠가 칭찬했다.줄을 잘 묶고 두 손을 펴고 몸을 뒤로 돌려 붕새(鵬鳥, 도덕경에 나오는 거대한 새)가 날아오르는 것 같더니 급속도록 낙하하는데 그 시원한 느낌이란. 온 세상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리 내려가자!” 오빠가 웃으며 손목시계를 보니, “지금 가면 딱 이네. 1시반 예약했거든.”차에서 우문호는 엄청 흥분해서 원경릉이 같이 뛰어내리지 못한 게 아주 안타까운지 처남에게, “있다가 스카이다이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거죠?”“스카이다이빙은 일단 우리가 헬리콥터를 타고 5000m 상공까지 올라가서, 5000m는…… 거기는 장으로 얘기하죠? 그럼 대략 1500장 높이겠네요. 거기서 등에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거예요. 일정한 고도가 되면 낙하산을 편 뒤 천천히 착륙하는 거죠.”우문호는 듣고 약간 놀라며, “1500장이요? 너무 높은데요. 밧줄이 그렇게 긴 가요?”“밧줄은 없고, 낙하산이 있어요.”“밧줄이 없다고요?” 우문호는 말꼬리를 길게 늘이더니 불안한 말투로, “그럼 안전한 가요? 떨어져 죽지 않나요? 그 낙하산이란 건 뭔 가요?”“일종의 우산 같은 거예요.”우문호는 좀 당황스러운지, “형님 말씀은 우리가 1500장 높이에서 뛰어내리는데 고작 우산 하나를 들고 있다?”오빠가 심사숙고하더니, “맞아요, 그런 셈이죠.”“맙소사! 그럼 떨어져 죽어요!” 우문호가 얼른 손을 흔들며, “안돼요, 안돼. 전 역시 안 갈래요. 제가 떨어져서 죽으면 남은 고아와 과부는 홍엽만 좋은 일 시키는 거라고요.”원경릉이 어이가 없는지, “자기는 어떻게 이 상황에 홍엽을 끌어들여?”“지금 그 놈이 당신을 그리워하는데 그 자식을 안 들먹거리면 누굴 들먹거려?” 우문호는 스카이다이빙을 결사 반대했다. ‘어쩐지 이름이 이상하다 했는데 정말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뛰어내리는 거라니.’오빠가, “괜찮아요. 우리 가서 다른 사람들 하는 거
헬리콥터도 첫 경험헬리콥터를 타자 우문호가 눈에 띄게 긴장하더니, “이게 헬리콥터? 날 수 있나? 어떻게 날지?”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웃으며, “이건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 위험해 보여도 사실 안전성은 상당히 높아, 걱정하지 마.”“당신 뛰어내리면 안돼!” 우문호가 엄숙하게 경고했다. “상황 봐서, 사실 나도 무서워. 난 번지점프도 못 한다고.” 원경릉은 정말 무섭다. 아이큐는 높지만 팔다리는 마음 같지 않아서 누군가 같이 뛰면 놀라서 죽을지도 모른다.“안 뛰어내리면 헬리콥터타고 돌아오면 돼. 강요 안 하지만 해보면 인생의 다른 도전이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 걸, 매부는 좋아할 거야, 이렇게 비상하는 느낌은 한 번 맛보면 못 잊지.”우문호는 가슴이 설렜다. 비상하는 감각은 경공을 시전할 때 보다 짜릿할 거란 느낌이 확 온다.헬리콥터가 이륙하는데 헬리콥터 꼭대기에서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우문호는 한 손으로 원경릉을 안고 긴장하며, “움직인다.”원경릉은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문호를 본 적이 없어서 속으로 웃겨 죽겠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떠들던 남자도 두려울 때가 있구나헬리콥터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우문호는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젠장 진짜 하늘로 올라갔어. 지금이라면 아직 뛰어내릴 수 있지만 높이 날 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무서워하지 말고 밖을 봐. 얼마나 재밌는데.” 원경릉이 웃으며 달랬다.우문호가 눈을 뜨자 헬리콥터에 탄 다른 조교들이 전부 우문호를 쳐다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오빠에게, “저 사람은 비행기 안 타봤어요?”오빠가 미소 지으며, “전에는 쭉 고소공포증이라 탄 적이 없죠.”“고소공포증이요?” 조교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소공포증이면 안 될 거 같은데요.”“괜찮아요, 지금은 극복했거든요.” 오빠가 조교의 어깨를 두드리며, “걱정 마세요. 군인 출신이라 이정도 고난은 극복할 수 있어요.”조교가 웃으며, “군인 출신이요? 그럼 극복할 수 있어요, 별
절체절명의 위기‘이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니 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시도인가? 돌아가면 자랑해야지.’“원 선생, 있다가 내 사진 좀 찍어줘, 노인네에게 보여줘야지.”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큰소리로 고함쳤다.“걱정 마, 사진 전문으로 찍는 분이 계셔.” 원경릉이 밖을 한 번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정말 못 뛰어내리겠어.’복장과 장비는 오기 전에 이미 다 멨고 같이 뛰어내릴 조교와 함께 안전벨트 매듭을 검사하고 안전을 확실하게 확인한 뒤에 조교가, “누가 제일 먼저 갈까요?”오빠가 이미 오래 기다려서 처음으로 손을 들더니, “저요!”오빠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조교와 같이 기체 문까지 나가 바람을 맞으며 크게 V자를 그리더니 조교와 함께 뛰어내렸다.우문호가 보고 흥분하더니 원경릉에게, “당신 있다가 이거 타고 돌아가. 뛰어내리면 안돼, 절대 안돼. 알았지?”“나 용기를 북돋워주는 거 아니고?” 원경릉은 무서웠지만 오빠가 뛰어내린 뒤 오히려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안돼, 뛰어내리면 안돼.” 우문호의 목소리가 바람소리에 묻혔다. 같이 뛰어내릴 조교가 기체 문 앞으로 우문호를 데리고 갔다. 거기 앉아 두 다리를 공중에 늘어뜨리고 바람이 불어 닥치는 걸 느끼자 갑자기 무서워서 뒤를 돌아 뭐 라도 잡고 싶은 찰나 조교가 우문호를 밖으로 힘껏 밀었다. 몸이 공중을 날며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데 바람이 입으로 들어와 조교를 향한 쌍욕이 쏙 들어가고 얼굴이 막 이상하게 일그러지며 눈 밑에 서북풍이 불어닥쳐 눈물이 고글에서 튀어나올 뻔 했다.원경릉은 간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문호가 준비도 없이 갑자기 떠밀어 버리다니, 놀라서 죽일 셈이야.“사람을 그렇게 밀면 어떡해요? 앉아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죠!” 원경릉이 자신과 뛰어내릴 조교에게 소리를 질렀다.“아가씨, 마음의 준비를 너무 하면 오히려 망설이다 결정을 못 내려요. 걱정 마세요. 잘 됐을 겁니다. 타고난 모험가 스타일이던 데요, 아가씨는 준
추락사우문호는 놀라서 심장박동이 거의 멎었다. 죽을 힘을 다해 낙하산 매듭을 풀어버리고 경공을 시전해 원경릉을 잡아 끌고 싶은데 조교가 붙잡고 팔꿈치로 찍어 누르자 우문호는 눈가가 빨개지며 있는 힘을 다해 큰 소리로, “원 선생, 원 선생!”원경릉 본인도 놀라서 죽기 일보직전으로 이런 속도로 떨어지면 피떡 확정이다. 원경릉은 우문호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급속도로 떨어지는 중에는 바람 소리가 모든 것을 덮기 때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이상하게 원경릉에게는 우문호의 목소리가 들렸다.공포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아이들, 우문호, 부모님, 눈앞에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원경릉은 가슴이 와들와들 떨리며 후회 막급이다. ‘왜 스카이다이빙을 했어?’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이 죽는다고 여긴 순간 속도가 갑자기 완만해진 것이 낙하산이 갑자기 펴진 것처럼 위로 들려졌다. 원경릉이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보니 낙하산은 펴져 있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원경릉은 상당히 놀라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조교도 놀라서 얼이 빠진 채로 다시 한 번 힘껏 당기자 낙하산이 펴졌다. 하지만 낙하속도가 같은 것이 방금 그때 낙하산이 이미 펴진 것 같다.그들은 일단 우문호가 떨어진 해변에서 낙하산을 풀었다. 조교는 놀라서 얼굴이 흙빛이 된 상황에도 원경릉에게 어떤 지 물어보는 건 잊지 않았다. 원경릉은 놀라서 울음이 터졌고, 조교도 너무 놀랐기 때문에 원망할 수도 없으니 떨리는 목소리로, “낙하산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조교가 바로 검사해 보는데 저쪽에서 우문호도 내려와서 미친듯이 원경릉에게 달려와 원경릉을 끌어 안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오빠도 뛰어왔는데 얼굴이 창백하기 이를 데가 없다. 먼저 뛰어내려서 조교가 그 고도에서 낙하산이 안 펴지면 위험하다는 말에 오빠도 완전 겁에 질렸었다.“괜찮아, 괜찮아.” 원경릉이 얼굴을 가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두려움의 후폭풍 밀려왔다.오빠는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직원을 찾아가 질문을 퍼붓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