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엽과 독대이번 초청에서 원경릉은 반드시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 우문호가 홍엽에게 타고난 적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화제는 홍엽이 있으면 우문호는 말하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명함첩이 간지 1시진이 지나고 홍엽이 왔다.널찍한 붉은 옷을 입고 머리는 빗어서 옷에 붙이고 시원시원 잘생긴 모습은 여전한데 얼굴에 흉터는 보이지 않고 원래 매끈한 피부로 돌아가 있다. 손목에 불꽃 색 유리 구슬을 끼고 넓은 소맷자락에 감춘 채 예를 갖추자 그제서야 붉은 산호가 불꽃처럼 빨갛게 동글고 윤기가 나는 것이 원경릉이 특별히 보자 그 붉은 빛이 소용돌이치듯 느껴지고 단 번에 잠시 현기증을 느끼게 할 수 있을 정도다. “태자비 마마께서 직접 저를 초대하실 줄 몰랐습니다. 과분한 총애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원경릉도 인사치레 말로, “전에 공자께서 오셨는데 제가 바빠서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해 마음에 걸려서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 공자님을 청하는 것이니 사죄의 의미로 받아주세요.”홍엽이 웃으며, “사죄라니 무슨, 얘기를 나눈 다니 좋군요.”홍엽은 원경릉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원경릉은 오늘 화장도 별로 하지 않고, 집에서 일상복인 흰 옷에 머리도 간단하게 말아 올려 구름 비녀를 꽂았다. 다섯 아이 엄마가 세월아 네월아 머리 빗고 단장할 시간이 없지만 손님을 청한 관계로 금실로 수놓은 비단 겉옷을 걸쳤다.이렇게 꾸민 게 오히려 화목한 가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원경릉이 차와 간식을 준비했는데 전부 희상궁이 직접 만들어서 상당히 정갈했다.홍엽은 사양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입에 대는데 먹는 모습이 아주 우아해서 늑대골같이 지옥 에서 지낸 사람인 줄 모르겠다. 원경릉은 홍엽을 보며 이리 나리와 훼천의 얘기를 떠올리며 눈앞에 이 품위 있고 고상한 미남이 그들이 얘기한 그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사람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접시 하나에 케이크가 8조각이었는데 홍엽 혼자 아주 깨끗이 부스러기 하나 남
소중한 원숭이원경릉이 원숭이에 집착하며 계속, “그래서 그 박사라는 말은 원숭이가 가르쳐 준 말인가요? 당신은 제 신원을 알고 경호 일을 알고, 원숭이가 말한 그 세계를 알아요.”홍엽이 담담한 얼굴로 원경릉을 보고 아무 말이 없다.원경릉도 홍엽을 보고, “하지만 처음에 원숭이 말을 당신은 완전히 믿을 수 없었죠. 그래서 진실을 찾았어요. 아닌 가요?”홍엽이 작은 소리로, “태자비 마마, 전 이 화제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건 그저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건드려서는 안되는 거예요.”“좋아요, 원숭이 일은 얘기하지 않기로 해요. 한 마디만 묻겠는데 제 외모가 당신의 어머니와 매우 닮았나요?”홍엽이 원경릉을 보는 눈빛이 약간 어두워지며, “눈매나 이목구비는 약간 닮았지만 아주 닮았다고 할 수는 없군요.”원경릉은 홍엽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이 지금 이 모습이 아니라 현대의 원경릉 모습이란 걸 말하지 않았다. “원숭이가 당신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였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나도 그래요. 그러니 공자가 얘기하고 싶을 때 언제든 절 찾아 주세요.”홍엽이 찻잔을 보고 은은하게, “원숭이가 저를 구했어요. 원숭이가 아니었으면 전 벌써 늑대골에서 죽었겠죠. 저랑 501일을 같이 지냈어요. 죽기 전에 박사님하고 한 마디 했죠.”원경릉은 홍엽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죽었나요? 정말 죽었나요?”바꿔 말해 만약 현대의 몸이 버티지 못하면 그녀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과 원숭이를 기꺼이 바꿀 겁니다.” 홍엽의 목소리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났다.홍엽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정성스런 대접 감사했습니다. 그럼 물러갑니다!”원경릉이 당황해서 홍엽을 보고 미묘한 감정이 들어, “공자, 알려줄 수 있나요, 북당에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홍엽이 뒤를 돌아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몰라요, 그냥 오고 싶었고, 누굴 좀 만나고 싶어서.”“북당의 강산 때문인 건 아니죠?”“피곤하군요, 그럴 가치가 없어요!” 홍엽
부창부수“그건 모르는 거지, 어쩌면 앞으로 내가 막 나가는 행동을 하면 당신이 그자랑 나를 비교해 보고 그자가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우문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원경릉의 반응에 신경이 쓰였다.“홍엽은 정말 날 좋아하는 게 아니야. 단지 자신에게 남은 온기와 내가 상당히 비슷하니까 나한테 접근하는 것 뿐이야. 어린 자아를 치유하고 있는 거지.”“응?” 우문호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홍엽의 어머니와 내가 닮았고, 난 또 원숭이의 전 주인이었는데. 마침 어머니와 원숭이는 모두 홍엽이 가장 친근하게 여겼던 사이야, 그래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우문호가 생각해보더니, “네 말에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자가 경호에서 나한테 한 말은 2년 뒤에 널 빼앗아 손에 넣겠다는 야심이라고.”“홍엽은 사실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자기에게 그런 얘기를 한 건 어쩌면 자기를 도발하기 위해서 였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러고 싶은 건가 스스로 시험해 보는 거든지, 방금 얘기하다가 홍엽이 지금 마음속으로 방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 원래는 복수란 목적이 있었지. 하지만 복수 뒤에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됐어. 허전하고 허무하고. 왜냐면 복수가 생각처럼 그렇게 기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홍엽은 원숭이가 묘사한 그 세계를 한없이 동경하는 거지. 어쩌면 자신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만약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방향을 바꿔 북당을 노리고 야심을 품을 거야. 홍엽은 일을 해내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해.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어야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우문호가 혀를 내두르며, “당신이 그자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아?”원경릉이 웃으며,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거든, 대화와 표정을 통해 대략적으로 상대방의 심층심리를 짐작할 수 있어.”“그럼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지 말해봐?”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차를 건네 주며, “홍엽을 경성에서 쫓아내고 싶다고 생각해.”우문호가 차를 받아 들고 구시렁거리며, “맞아, 그
갈데까지 간 주명양과 우문군우문호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 둘은…… 진짜 그 나물에 그 밥이야. 둘이 똑같이 썩었어!”“이 일을 제가 반박하면 그 사람들 같은 수준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반박을 안 하면 파리를 삼킨 것처럼 괴롭다고요.” 제왕이 툴툴거렸다.“그 인간들 신경 쓰지 마, 앞으로 찾아오면 문 닫아 걸면 그만이야.” 우문호도 그들 부부는 건드리면 안되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게, 내내 저렇게 황실의 명예를 땅에 처박는다고요.” 제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형, 그 사람들 잠잠하게 할 사람 어디 없어요? 이렇게 작은 일로 주재상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겠죠?”“막 나가는 여자 상대라……” 우문호가 생각하더니, “딱 한 명 적합한 사람이 있긴 한데 말이야.”“누구요?” “네 여섯째 형수!”제왕이 아!하더니, “맞아요, 막 나가기로 치면 형수님 적수가 없죠. 그리고 이 일은 우리가 가서 따지면 제 얼굴에 침뱉기지만 형수님은 그럴 리 없죠.” 이 일은 미색에게 얘기하니 미색이 이를 갈며, “솔직히 얼마나 오래 참아왔나 몰라요. 진작에 따끔하게 혼을 내고 싶었는데 이 일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앞으로 분수에 맞게 살게 하죠.”미색이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욕을 하며 꽝 하고 문을 열어 젖히자, 주명양이 처음엔 거세게 반항하다가 마지막엔 미색에게 낯짝을 들 수도 없을 만큼 욕을 잔뜩 먹었는데 주명양과 주명취의 일을 샅샅이 들춰내서 까발려 원용의의 결백을 밝혔다.미색이 이 일을 마치고 늑대파에 사람을 뽑아 요부인을 살피도록 했는데 이 개 만도 못한 남녀가 감히 분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을 건드릴 까봐 서다. 그래서 훼천에게 지켜보도록 하고, 만약 그들이 요부인 집에 접근하는 날엔 밖으로 내쫓아도 일체의 책임은 미색이 지기로 했다.요부인이 훼천을 보고 놀랄 수도 있어서, 훼천은 요부인과 같은 집 안에서 살지 않고 근처 방을 빌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우문군과 훼천요부인의 눈동자는 물처럼 맑고 온유하지만 또한 차가워서, “예전의 기왕비는 이미 죽었어요. 지금 저는 그런 바램이 없습니다. 평온한 생활을 하고 싶어요. 첫째 황자님 돌아가시죠. 다시 오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선 아무 희망도 찾지 못하실 걸요?”“너……”우문군은 요부인의 공손하지만 말이 먹히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화가 뻗쳐서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렸는데 요부인 손에 있던 강아지가 갑자기 우문군에게 달려들어 깨물었다.우문군이 더욱 화가 나서 발로 강아지를 차더니, “개새끼가!”요부인은 강아지가 안타까워서 얼른 달려가 안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해요, 또 이러면 봐 주지 않을 테니까.”우문군이 시무룩하게, “봐줘? 다섯째한테 가서 고소하지, 와서 도와 달라고. 내가 무서워하나 어디 한 번 보라고.”우문군 뒤에서 스르륵 장검이 나와 우문군의 목에 닿자 차가운 감촉에 몸을 흠칫 떨며, “누구냐?”요부인도 깜짝 놀랐다. 차가운 얼굴에 키가 큰 남자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들어와 우문군에게 검을 들이댄 것이다.“꺼져!” 훼천이 차갑게 소리치며 검을 거둬들였다.우문군이 홱 고개를 돌려 전혀 안면이 없는 낯선 남자를 보고 의심의 눈초리로 요부인을 보더니 다시 훼천을 보고 순간 알겠다는 눈빛으로 분노를 터트리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천한 계집 같으니, 감히 남자와 밀통을 해? 간이 아주 배밖으로 나왔구나!”요부인은 빠르고 냉정했으나 여자의 정절을 짓밟는 말에 모욕감이 들면서, “무슨 헛소리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몰라? 모르는 사람이 네 집에 막 들어와?” 우문군이 혈기방장해서 분노가 충천한지라, “말해, 너희들 정을 통한지 얼마나 됐어? 너는 아직 아바마마께서 하사하신 것을 누리는 황실의 아녀자로 감히 이런 비천한 관계를 맺다니 참으로 염치도 없구나.”요부인이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전신을 부르르 떨며 우문군의 따귀를 때리며, “헛소리라고 했지!”이번엔 우문군이 따귀를 때리려 하자 훼천이
쌍둥이 실종 사건요부인은 한동안 넋이 나간 채로 강아지를 안고 있는데 의자 두 개가 발로 차서 부서진 거 빼고 나머지는 다 정상이다.이 일은 묻어두고 원경릉에게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 그녀나 아이들이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초왕부에도 파란만장한 사건이 있었다.원경릉이 최근 경호와 홍엽 일로 골치가 아픈데 경단이가 요즘 자주 삐쳐서 집 나간다고 소동을 부리는 바람에 오원부부는 자연스레 긴장이 빡 돼서 우리 떡들을 데리고 외출했다. 일종의 가족나들이라고 하자.쌍둥이는 아직 작아서 데리고 나가지 못하고 두 상궁과 탕대인에게 맡겨 놓았는데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조신한 아이들이라 울지도 떼쓰지도 않고 먹으면 자고, 깨면 먹었다. 하여간 쌍둥이들의 길다면 긴 한달 간의 인생에서 먹고 자는 거 빼고 중요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기본적으로 손 갈게 없어서 유모는 대부분 젖을 먹이고 애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 햇볕을 쪼이고 안고 방으로 들어가 재우는 게 일과다.이날도 막 마당에 안고 나왔는데, 호랑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길래 유모들이 살짝 호랑이에 눈길을 주는 사이 작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쌍둥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유모는 상궁들이 안고 갔는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상궁들이 전에 자주 그랬기 때문으로 짬이 나면 와서 쌍둥이들을 안아주다가 바쁘면 다시 재우곤 했다.하지만 유모가 방에 들어가도 기상궁과 희상궁 둘이 얘기하고 있길래 놀라서, “공자님들 안고 계신 게 아니었나요?”희상궁이 유모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 “아니, 왜? 공자들은?”유모가 그제서야 당황해서, “세상에, 누가 안고 갔지?”“누가 안고 가는지 못 봤다고?” 희상궁이 다급해서 유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더니, “빨리 안 찾고 뭘 해?” 온 초왕부가 공자들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 초왕부 사람들은 전부 본 적이 없다고 하고 녹주는 유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마당의 침대에 누이는 걸 보고 일하러 갔다고 했는데 뒤에 누가 접근했는지 몰랐다.희상궁은 손발이
요부인의 불륜“얘들이 어떻게 온 거지? 목여는 어서방에 온 사람이 없었다는데.” 명원제가 의혹의 눈으로 그들 부부를 바라봤다.원경릉이 올 때 이미 변명거리를 생각해 둬서, “제가 안고 왔습니다. 막 입궁했는데 태자가 따라와서 경단이가 집을 나갔다고 하는 바람에 쌍둥이들을 여기에 두고 목여태감이 잠시 봐 줄 거라는 생각에 다급하게 경단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목여태감, 내가 불렀는데 듣지 못했는가?”명원제가 반신반의하며 목여태감을 보자 목여태감이 머리가 혼미한 게 나이가 많기도 하고, 태자비가 왔는데도 모른 것이 무안해서, “아마……그런 것 같습니다.”명원제가 어이없어 하며 원경릉 부부를 내보냈다.부부는 아이를 안고 허둥지둥 나왔다. 원경릉은 쌍둥이도 초능력을 쓸 줄 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우문호는 머리가 터질 거 같은 게 이제 막 한 달 된 아기가 집을 나가다니 이게 사는 건가? 부부는 이 문제를 차마 더는 언급하지 못하고 그저 만두에게 쌍둥이 일을 주진에게 전하라고 만 했다.명원제는 경단이가 집을 나간 일을 떠올리고 손자를 아끼는 마음에, 밤에 황귀비와 상의해서 구실을 만들어 집안잔치를 열자고 했다.집안잔치를 열면 진비가 황귀비 앞에서 간청했던 우문군 부부 입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황귀비가 대단히 곤란한 게 우문군이 아직 첫째 황자지만 황제가 어명 없이는 우문군의 입궁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비는 울며불며 애원하니 승낙할 수도 없고 안 하면 진비를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진비에게 출궁해서 첫째 황자와 하루 만날 것을 폐하께 청해보는 수밖에 없다.진비는 비록 아들이 입궁할 수 없어도 나가서 만나면 소원을 이루는 셈이다.어쨌든 자기가 낳은 아들이니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서서히 용서가 될 수밖에 없다.그리고 진비가 전에는 우문군이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잘못 하나 저질렀다고 어떻게 단정을 지어버릴 수가 있으며 우문군이 지금 이런 지경에 빠진 건 요부인 탓이
황실의 불륜녀우문군은 요부인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어렵사리 어마마마를 만났으니 이 일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조용히, “어마마마, 아직 개인적인 은자가 좀 있으십니까? 아들에게 좀 빌려주세요.”“왜? 생활도 연명하기 어려운 것이냐?” 진비가 놀라서 묻는데 황제가 그들에게 각박하게 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우문군이 한숨을 쉬며, “어마마마는 모르시겠지만 물가는 치솟고 우리는 매달 그 쥐꼬리만한 은자로 생활 하니 아쉬운 대로 쓰는 것도 부족해서 황자비(皇子妃) 혼수까지 다 내다팔아 지금 우리는 가난하기 그지없어 옷도 헌 옷 뿐이라 새 옷을 지어본 지가 언제 인지 모르겠습니다. 밥을 배불리 먹는 것조차 몇 번이고 생각을 해봐야 하고 이 집에도 원래 시중 드는 사람이 몇 있었는데 월급도 줄 수 없어서 하나 둘 다 내보냈습니다. 어마마마 소자 정말 살기가 힘듭니다.”진비가 듣고 가슴이 미어졌다. 다행히 이번에 출궁할 때 우문군을 도와주려고 장신구 한 상자와 천냥 지폐를 가져와서 그에게 주었다.궁으로 돌아가니 궁에서 집안잔치가 성대하게 열려 일가족이 화기애애하게 가무를 즐기며 귀비까지 나와서 술을 마시고 있다.이 사람들의 영광은 한이 없는데, 자신의 아들은 첫째 황자인데도 불구하고 밖에서 유리 걸식하고 있으니 진비는 속이 터졌다. 황귀비 사람이 와서 잔치에 오라고 권했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진비전으로 돌아갔다.황귀비는 분명 진비가 서운할 것을 알고 괜히 쓸데없는 말로 흥을 깨지 않게 안 오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렵사리 태상황 폐하께서 오늘 기분이 좋으시니까.두 군주는 오늘도 입궁했는데 명원제는 두 손녀를 아껴서 상을 내리고 앞으로 어마마마를 잘 모시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 했다.이 말이 진비 귀에 들어가서 진비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방명전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울며, “폐하, 손녀에게 상을 내리시니 신첩의 마음도 기쁩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내린 상이 동요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동요는 황당무계한 일을 저질러 동거를 하는데, 그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