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엽과 독대이번 초청에서 원경릉은 반드시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 우문호가 홍엽에게 타고난 적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화제는 홍엽이 있으면 우문호는 말하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명함첩이 간지 1시진이 지나고 홍엽이 왔다.널찍한 붉은 옷을 입고 머리는 빗어서 옷에 붙이고 시원시원 잘생긴 모습은 여전한데 얼굴에 흉터는 보이지 않고 원래 매끈한 피부로 돌아가 있다. 손목에 불꽃 색 유리 구슬을 끼고 넓은 소맷자락에 감춘 채 예를 갖추자 그제서야 붉은 산호가 불꽃처럼 빨갛게 동글고 윤기가 나는 것이 원경릉이 특별히 보자 그 붉은 빛이 소용돌이치듯 느껴지고 단 번에 잠시 현기증을 느끼게 할 수 있을 정도다. “태자비 마마께서 직접 저를 초대하실 줄 몰랐습니다. 과분한 총애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원경릉도 인사치레 말로, “전에 공자께서 오셨는데 제가 바빠서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해 마음에 걸려서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 공자님을 청하는 것이니 사죄의 의미로 받아주세요.”홍엽이 웃으며, “사죄라니 무슨, 얘기를 나눈 다니 좋군요.”홍엽은 원경릉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원경릉은 오늘 화장도 별로 하지 않고, 집에서 일상복인 흰 옷에 머리도 간단하게 말아 올려 구름 비녀를 꽂았다. 다섯 아이 엄마가 세월아 네월아 머리 빗고 단장할 시간이 없지만 손님을 청한 관계로 금실로 수놓은 비단 겉옷을 걸쳤다.이렇게 꾸민 게 오히려 화목한 가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원경릉이 차와 간식을 준비했는데 전부 희상궁이 직접 만들어서 상당히 정갈했다.홍엽은 사양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입에 대는데 먹는 모습이 아주 우아해서 늑대골같이 지옥 에서 지낸 사람인 줄 모르겠다. 원경릉은 홍엽을 보며 이리 나리와 훼천의 얘기를 떠올리며 눈앞에 이 품위 있고 고상한 미남이 그들이 얘기한 그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사람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접시 하나에 케이크가 8조각이었는데 홍엽 혼자 아주 깨끗이 부스러기 하나 남
소중한 원숭이원경릉이 원숭이에 집착하며 계속, “그래서 그 박사라는 말은 원숭이가 가르쳐 준 말인가요? 당신은 제 신원을 알고 경호 일을 알고, 원숭이가 말한 그 세계를 알아요.”홍엽이 담담한 얼굴로 원경릉을 보고 아무 말이 없다.원경릉도 홍엽을 보고, “하지만 처음에 원숭이 말을 당신은 완전히 믿을 수 없었죠. 그래서 진실을 찾았어요. 아닌 가요?”홍엽이 작은 소리로, “태자비 마마, 전 이 화제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건 그저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건드려서는 안되는 거예요.”“좋아요, 원숭이 일은 얘기하지 않기로 해요. 한 마디만 묻겠는데 제 외모가 당신의 어머니와 매우 닮았나요?”홍엽이 원경릉을 보는 눈빛이 약간 어두워지며, “눈매나 이목구비는 약간 닮았지만 아주 닮았다고 할 수는 없군요.”원경릉은 홍엽에게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이 지금 이 모습이 아니라 현대의 원경릉 모습이란 걸 말하지 않았다. “원숭이가 당신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였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나도 그래요. 그러니 공자가 얘기하고 싶을 때 언제든 절 찾아 주세요.”홍엽이 찻잔을 보고 은은하게, “원숭이가 저를 구했어요. 원숭이가 아니었으면 전 벌써 늑대골에서 죽었겠죠. 저랑 501일을 같이 지냈어요. 죽기 전에 박사님하고 한 마디 했죠.”원경릉은 홍엽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죽었나요? 정말 죽었나요?”바꿔 말해 만약 현대의 몸이 버티지 못하면 그녀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과 원숭이를 기꺼이 바꿀 겁니다.” 홍엽의 목소리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났다.홍엽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정성스런 대접 감사했습니다. 그럼 물러갑니다!”원경릉이 당황해서 홍엽을 보고 미묘한 감정이 들어, “공자, 알려줄 수 있나요, 북당에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홍엽이 뒤를 돌아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몰라요, 그냥 오고 싶었고, 누굴 좀 만나고 싶어서.”“북당의 강산 때문인 건 아니죠?”“피곤하군요, 그럴 가치가 없어요!” 홍엽
부창부수“그건 모르는 거지, 어쩌면 앞으로 내가 막 나가는 행동을 하면 당신이 그자랑 나를 비교해 보고 그자가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우문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원경릉의 반응에 신경이 쓰였다.“홍엽은 정말 날 좋아하는 게 아니야. 단지 자신에게 남은 온기와 내가 상당히 비슷하니까 나한테 접근하는 것 뿐이야. 어린 자아를 치유하고 있는 거지.”“응?” 우문호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홍엽의 어머니와 내가 닮았고, 난 또 원숭이의 전 주인이었는데. 마침 어머니와 원숭이는 모두 홍엽이 가장 친근하게 여겼던 사이야, 그래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우문호가 생각해보더니, “네 말에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자가 경호에서 나한테 한 말은 2년 뒤에 널 빼앗아 손에 넣겠다는 야심이라고.”“홍엽은 사실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자기에게 그런 얘기를 한 건 어쩌면 자기를 도발하기 위해서 였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러고 싶은 건가 스스로 시험해 보는 거든지, 방금 얘기하다가 홍엽이 지금 마음속으로 방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 원래는 복수란 목적이 있었지. 하지만 복수 뒤에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됐어. 허전하고 허무하고. 왜냐면 복수가 생각처럼 그렇게 기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홍엽은 원숭이가 묘사한 그 세계를 한없이 동경하는 거지. 어쩌면 자신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만약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방향을 바꿔 북당을 노리고 야심을 품을 거야. 홍엽은 일을 해내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해. 목적이 있고 방향이 있어야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우문호가 혀를 내두르며, “당신이 그자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아?”원경릉이 웃으며,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거든, 대화와 표정을 통해 대략적으로 상대방의 심층심리를 짐작할 수 있어.”“그럼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지 말해봐?”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차를 건네 주며, “홍엽을 경성에서 쫓아내고 싶다고 생각해.”우문호가 차를 받아 들고 구시렁거리며, “맞아, 그
갈데까지 간 주명양과 우문군우문호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 둘은…… 진짜 그 나물에 그 밥이야. 둘이 똑같이 썩었어!”“이 일을 제가 반박하면 그 사람들 같은 수준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반박을 안 하면 파리를 삼킨 것처럼 괴롭다고요.” 제왕이 툴툴거렸다.“그 인간들 신경 쓰지 마, 앞으로 찾아오면 문 닫아 걸면 그만이야.” 우문호도 그들 부부는 건드리면 안되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게, 내내 저렇게 황실의 명예를 땅에 처박는다고요.” 제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형, 그 사람들 잠잠하게 할 사람 어디 없어요? 이렇게 작은 일로 주재상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겠죠?”“막 나가는 여자 상대라……” 우문호가 생각하더니, “딱 한 명 적합한 사람이 있긴 한데 말이야.”“누구요?” “네 여섯째 형수!”제왕이 아!하더니, “맞아요, 막 나가기로 치면 형수님 적수가 없죠. 그리고 이 일은 우리가 가서 따지면 제 얼굴에 침뱉기지만 형수님은 그럴 리 없죠.” 이 일은 미색에게 얘기하니 미색이 이를 갈며, “솔직히 얼마나 오래 참아왔나 몰라요. 진작에 따끔하게 혼을 내고 싶었는데 이 일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앞으로 분수에 맞게 살게 하죠.”미색이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욕을 하며 꽝 하고 문을 열어 젖히자, 주명양이 처음엔 거세게 반항하다가 마지막엔 미색에게 낯짝을 들 수도 없을 만큼 욕을 잔뜩 먹었는데 주명양과 주명취의 일을 샅샅이 들춰내서 까발려 원용의의 결백을 밝혔다.미색이 이 일을 마치고 늑대파에 사람을 뽑아 요부인을 살피도록 했는데 이 개 만도 못한 남녀가 감히 분수를 모르고 다른 사람을 건드릴 까봐 서다. 그래서 훼천에게 지켜보도록 하고, 만약 그들이 요부인 집에 접근하는 날엔 밖으로 내쫓아도 일체의 책임은 미색이 지기로 했다.요부인이 훼천을 보고 놀랄 수도 있어서, 훼천은 요부인과 같은 집 안에서 살지 않고 근처 방을 빌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우문군과 훼천요부인의 눈동자는 물처럼 맑고 온유하지만 또한 차가워서, “예전의 기왕비는 이미 죽었어요. 지금 저는 그런 바램이 없습니다. 평온한 생활을 하고 싶어요. 첫째 황자님 돌아가시죠. 다시 오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선 아무 희망도 찾지 못하실 걸요?”“너……”우문군은 요부인의 공손하지만 말이 먹히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화가 뻗쳐서 때리려고 손을 들어올렸는데 요부인 손에 있던 강아지가 갑자기 우문군에게 달려들어 깨물었다.우문군이 더욱 화가 나서 발로 강아지를 차더니, “개새끼가!”요부인은 강아지가 안타까워서 얼른 달려가 안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해요, 또 이러면 봐 주지 않을 테니까.”우문군이 시무룩하게, “봐줘? 다섯째한테 가서 고소하지, 와서 도와 달라고. 내가 무서워하나 어디 한 번 보라고.”우문군 뒤에서 스르륵 장검이 나와 우문군의 목에 닿자 차가운 감촉에 몸을 흠칫 떨며, “누구냐?”요부인도 깜짝 놀랐다. 차가운 얼굴에 키가 큰 남자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들어와 우문군에게 검을 들이댄 것이다.“꺼져!” 훼천이 차갑게 소리치며 검을 거둬들였다.우문군이 홱 고개를 돌려 전혀 안면이 없는 낯선 남자를 보고 의심의 눈초리로 요부인을 보더니 다시 훼천을 보고 순간 알겠다는 눈빛으로 분노를 터트리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천한 계집 같으니, 감히 남자와 밀통을 해? 간이 아주 배밖으로 나왔구나!”요부인은 빠르고 냉정했으나 여자의 정절을 짓밟는 말에 모욕감이 들면서, “무슨 헛소리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몰라? 모르는 사람이 네 집에 막 들어와?” 우문군이 혈기방장해서 분노가 충천한지라, “말해, 너희들 정을 통한지 얼마나 됐어? 너는 아직 아바마마께서 하사하신 것을 누리는 황실의 아녀자로 감히 이런 비천한 관계를 맺다니 참으로 염치도 없구나.”요부인이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전신을 부르르 떨며 우문군의 따귀를 때리며, “헛소리라고 했지!”이번엔 우문군이 따귀를 때리려 하자 훼천이
쌍둥이 실종 사건요부인은 한동안 넋이 나간 채로 강아지를 안고 있는데 의자 두 개가 발로 차서 부서진 거 빼고 나머지는 다 정상이다.이 일은 묻어두고 원경릉에게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 그녀나 아이들이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초왕부에도 파란만장한 사건이 있었다.원경릉이 최근 경호와 홍엽 일로 골치가 아픈데 경단이가 요즘 자주 삐쳐서 집 나간다고 소동을 부리는 바람에 오원부부는 자연스레 긴장이 빡 돼서 우리 떡들을 데리고 외출했다. 일종의 가족나들이라고 하자.쌍둥이는 아직 작아서 데리고 나가지 못하고 두 상궁과 탕대인에게 맡겨 놓았는데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조신한 아이들이라 울지도 떼쓰지도 않고 먹으면 자고, 깨면 먹었다. 하여간 쌍둥이들의 길다면 긴 한달 간의 인생에서 먹고 자는 거 빼고 중요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기본적으로 손 갈게 없어서 유모는 대부분 젖을 먹이고 애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와 햇볕을 쪼이고 안고 방으로 들어가 재우는 게 일과다.이날도 막 마당에 안고 나왔는데, 호랑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길래 유모들이 살짝 호랑이에 눈길을 주는 사이 작은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쌍둥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유모는 상궁들이 안고 갔는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상궁들이 전에 자주 그랬기 때문으로 짬이 나면 와서 쌍둥이들을 안아주다가 바쁘면 다시 재우곤 했다.하지만 유모가 방에 들어가도 기상궁과 희상궁 둘이 얘기하고 있길래 놀라서, “공자님들 안고 계신 게 아니었나요?”희상궁이 유모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 “아니, 왜? 공자들은?”유모가 그제서야 당황해서, “세상에, 누가 안고 갔지?”“누가 안고 가는지 못 봤다고?” 희상궁이 다급해서 유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더니, “빨리 안 찾고 뭘 해?” 온 초왕부가 공자들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 초왕부 사람들은 전부 본 적이 없다고 하고 녹주는 유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마당의 침대에 누이는 걸 보고 일하러 갔다고 했는데 뒤에 누가 접근했는지 몰랐다.희상궁은 손발이
요부인의 불륜“얘들이 어떻게 온 거지? 목여는 어서방에 온 사람이 없었다는데.” 명원제가 의혹의 눈으로 그들 부부를 바라봤다.원경릉이 올 때 이미 변명거리를 생각해 둬서, “제가 안고 왔습니다. 막 입궁했는데 태자가 따라와서 경단이가 집을 나갔다고 하는 바람에 쌍둥이들을 여기에 두고 목여태감이 잠시 봐 줄 거라는 생각에 다급하게 경단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목여태감, 내가 불렀는데 듣지 못했는가?”명원제가 반신반의하며 목여태감을 보자 목여태감이 머리가 혼미한 게 나이가 많기도 하고, 태자비가 왔는데도 모른 것이 무안해서, “아마……그런 것 같습니다.”명원제가 어이없어 하며 원경릉 부부를 내보냈다.부부는 아이를 안고 허둥지둥 나왔다. 원경릉은 쌍둥이도 초능력을 쓸 줄 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우문호는 머리가 터질 거 같은 게 이제 막 한 달 된 아기가 집을 나가다니 이게 사는 건가? 부부는 이 문제를 차마 더는 언급하지 못하고 그저 만두에게 쌍둥이 일을 주진에게 전하라고 만 했다.명원제는 경단이가 집을 나간 일을 떠올리고 손자를 아끼는 마음에, 밤에 황귀비와 상의해서 구실을 만들어 집안잔치를 열자고 했다.집안잔치를 열면 진비가 황귀비 앞에서 간청했던 우문군 부부 입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황귀비가 대단히 곤란한 게 우문군이 아직 첫째 황자지만 황제가 어명 없이는 우문군의 입궁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비는 울며불며 애원하니 승낙할 수도 없고 안 하면 진비를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진비에게 출궁해서 첫째 황자와 하루 만날 것을 폐하께 청해보는 수밖에 없다.진비는 비록 아들이 입궁할 수 없어도 나가서 만나면 소원을 이루는 셈이다.어쨌든 자기가 낳은 아들이니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서서히 용서가 될 수밖에 없다.그리고 진비가 전에는 우문군이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잘못 하나 저질렀다고 어떻게 단정을 지어버릴 수가 있으며 우문군이 지금 이런 지경에 빠진 건 요부인 탓이
황실의 불륜녀우문군은 요부인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어렵사리 어마마마를 만났으니 이 일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조용히, “어마마마, 아직 개인적인 은자가 좀 있으십니까? 아들에게 좀 빌려주세요.”“왜? 생활도 연명하기 어려운 것이냐?” 진비가 놀라서 묻는데 황제가 그들에게 각박하게 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우문군이 한숨을 쉬며, “어마마마는 모르시겠지만 물가는 치솟고 우리는 매달 그 쥐꼬리만한 은자로 생활 하니 아쉬운 대로 쓰는 것도 부족해서 황자비(皇子妃) 혼수까지 다 내다팔아 지금 우리는 가난하기 그지없어 옷도 헌 옷 뿐이라 새 옷을 지어본 지가 언제 인지 모르겠습니다. 밥을 배불리 먹는 것조차 몇 번이고 생각을 해봐야 하고 이 집에도 원래 시중 드는 사람이 몇 있었는데 월급도 줄 수 없어서 하나 둘 다 내보냈습니다. 어마마마 소자 정말 살기가 힘듭니다.”진비가 듣고 가슴이 미어졌다. 다행히 이번에 출궁할 때 우문군을 도와주려고 장신구 한 상자와 천냥 지폐를 가져와서 그에게 주었다.궁으로 돌아가니 궁에서 집안잔치가 성대하게 열려 일가족이 화기애애하게 가무를 즐기며 귀비까지 나와서 술을 마시고 있다.이 사람들의 영광은 한이 없는데, 자신의 아들은 첫째 황자인데도 불구하고 밖에서 유리 걸식하고 있으니 진비는 속이 터졌다. 황귀비 사람이 와서 잔치에 오라고 권했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진비전으로 돌아갔다.황귀비는 분명 진비가 서운할 것을 알고 괜히 쓸데없는 말로 흥을 깨지 않게 안 오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렵사리 태상황 폐하께서 오늘 기분이 좋으시니까.두 군주는 오늘도 입궁했는데 명원제는 두 손녀를 아껴서 상을 내리고 앞으로 어마마마를 잘 모시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 했다.이 말이 진비 귀에 들어가서 진비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방명전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울며, “폐하, 손녀에게 상을 내리시니 신첩의 마음도 기쁩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내린 상이 동요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동요는 황당무계한 일을 저질러 동거를 하는데, 그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