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살아온 날만아가 몰래 밖을 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날름 먹었다.정집사가 이 모습을 보고 눈빛이 매서워지며, “못 먹게 하는 건가요?”“아뇨,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어요.” 정집사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거짓말 하지 말아요, 방금 고작 한 입도 몰래 먹었잖아요.”초왕부 전체가 나서서 전심을 다해 보호하겠다더니 태자비는 입만 살아가지고 겉과 속이 다르구나.만아가 창피하다는 듯 혀를 쏙 내밀고, “몰래 먹는게 아니라 이틀전에 맹세했거든요, 식탐부리지 않기로. 사식 아가씨랑 녹주가 감독하기로 해서 둘이 볼까 봐 그런 거예요.”“그래요?” 정집사는 여전히 석연치 않아서, “초왕부에 있으면서 태자비 마마와 다른 사람들이 잘 해주던 가요?”“얼마나 잘해 주는데요.” 만아가 두 손을 탁자위에 겹쳐 놓고 고개를 끄덕이며, “초왕부 사람들이 다 저에게 잘해 주세요. 그래서 그날 순왕부로 오라고 하셨을 때 제가 갈 수 없었던 거예요. 제 목숨은 태자비 마마께서 구해주신 걸요.”“태자비 마마께서 구해 주셨다고? 위험한 일을 당했어요?” 정집사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긴장했다.만아는 전에 주명양 곁에서 시중을 들 때 어떻게 태자를 모함했는지, 또 초왕부에서 와서 겪은 일도 전부 정집사에게 얘기했다.“그래서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진짜 너무너무 좋아요. 예전에 둘째 아가씨 밑에서 밥을 배불리 먹으려면 매를 맞았어야 했고, 그땐 몸에 성한 데가 없었어요. 전부 멍이 들어서. 지금 초왕부에서는 맞는 건 물론이고 욕 한마디 하는 사람도 없고, 먹고 싶으면 내가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요. 초왕부에 들어온 이래 저랑 호명이는…… 호명이는 제가 만난 그 거지 아이로 저흰 다시는 배고플 일이 없죠.”정집사가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만아를 바라보더니,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만아가 당황하며, “왜 우세요?”정집사가 눈가를 훔치며 억지 미소를 지으며, “감정이입이 돼서 그래요, 전에 그렇게 힘든 날을 보냈는 줄 몰랐네요.
대마왕만아가 정집사에게 차를 따라 주며 궁금한지, “언제 경성에 오셨어요? 남강엔 아직 가족이 있어요?”정집사가 찻잔을 들고 한 입 마시니 뜨거운 차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데, 차 잎에 조악하지 않은 게 초왕부에서는 하인에게도 아주 잘 대해주는 걸 알 수 있다.“저요?” 정집사가 잔을 쥐고 천천히 눈을 들어 만아를 보더니 앞이 뿌예지며, “전 딸이 하나 있어요.”“딸은 요? 아직 남강에 있어요? 어떻게 두고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만아가 어렵사리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 방언이 터졌다. 정집사도 마음이 움직여, “혹시, 얘기 하나 해줄까요? 태자비 마마를 곁에서 모실 때 얘기를 들려드리면 시간도 때울 수 있고.”만아는 얘기를 좋아해서 기쁜 나머지, “좋아요, 저 얘기 듣는 거 좋아해요. 어서 말씀하세요.”정집사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하더니, “얘기는 청이라는 사람한테서 시작해요. 8살이 되는 해에 청이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성녀(聖女)로 추대 받았는데, 성녀는 지위가 높고 백성들은 성녀를 받들어 모시며 신앙의 지존자로 믿었어요. 그리고 청이는 성녀가 된 첫날부터 마을의 장로들에게 ‘우리에겐 철천지원수가 있다. 아주 나쁜 사람으로 우리 백성을 조종하고 마구 짓밟고 잡히는 사람은 다 죽이는 대악마가 바로 그 원수다. 우리는 반드시 그를 원수로 삼아야 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성녀 청이가 자라 외부 일을 알게 되면서 그 대악마가 사실 장로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위해 애써서 어느 지역 백성들은 그를 깊이 우러르고 존중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가 하는 일은 백성들을 위해 모든 백성을 똘똘 뭉치게 해서 중요한 시기에 외적을 무찌르는 거였어요. 전혀 딴판이었던 거죠, 장로들의 비방과 중상모략과…… 당시 성녀 청이는 대악마 통치자의 힘이 그 마을에 미치지 않아서 장로들의 비방을 믿었어요, 그러다 청이는 뒤늦게 깨닫았던 거예요. 사실 선악이나 흑백의 대결이 아니라 권력 다툼이었다는 사실을.”“청이는 그런 권력 다툼을 싫
성녀 청이정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청이가 18살이 되던 해 몰래 마을을 떠나 대마왕을 찾아가서 얘기했죠. 자기의 기구한 팔자는 어떤 살도 눌러 버릴 수 있고 그와 평생 함께할 수 있다고 말이죠. 대마왕은 마음이 움직여서 청이를 측실로 맞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딸도 하나 낳았어요.”“아니 왜 정실이 아니고 측실이예요?”정집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왜냐면 대마왕의 어머니는 계속 유약한 그 여자에게 마음이 있어서 대마왕이 그 여자와 혼인하지 않아도 정실의 위치는 그 여자를 위해 남겨두어 집안에서 그녀의 자리를 지켜 준 거죠.”“하지만 마을 장로들이 성녀가 대마왕과 혼인하는 걸 내버려 둘까요?” 정집사가 고개를 흔들고, “방금 말했듯이 성녀는 몰래 도망쳐 나와서 아무도 성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을 뿐더러 성녀가 대마왕에게 시집갔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마을에 있을 때도 성녀는 대마왕을 사모하면서도 여전히 겉으로는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적대시했으니까요. 아무도 청이가 성녀의 존귀한 지위를 버리고 대마왕에게 시집갈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었죠.”만아가 긴장해서, “그럼 만약 장로들에게 발각되는 날엔 어떻게 해요?”정집사가 미간을 움찔거리더니 입술을 떨며, “성녀를 잡아가서 성약(聖藥)을 먹여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능지처참하듯 칼질을 하고 온천에 넣어두죠, 능지 도법은 대단해서 피를 많이 흘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죠. 그리고 성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정신을 잃지도 않은 채로 12시진을 물에 담가져 있다가 건져낸 후 살을 벗기고 뼈를 부러뜨리죠, 그때 죽게 되는 겁니다.”만아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서, “맙소사, 너무 잔인해요.”“성녀는 이건 잔인한 축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잔인한 건 발각되는 즉시 남편과 아이와 헤어져야 하는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마을 장로가 성녀의 행방을 찾아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성녀는 잠시 숨을 수밖에 없었죠……”정집사가 두 손으로 양팔을 꽉 잡고 표정도 상당히 고통스럽게 변하더니, “하지만 성녀는
진짜 신분만아가 정집사의 얘기에 완전히 빠져 성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원래 재미있는 이야기인 줄 알고 원경릉에게 들려주려 했는데 다 듣고 보니 원경릉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아 들려주기엔 적합하지 않았다.하지만 만아가 계속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걸 원경릉이 알아차리고, “만아야, 왜 그래? 저녁 내내 우거지상이네.”원경릉은 사실 정집사가 만아에게 신분을 밝혔을 까봐 걱정이 됐지만 또 정집사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다.“쇤네 아무 일도 없어요!” 만아가 생각을 좀 하더니 역시 못 참겠는지, “성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원경릉이, “어느 성녀가 불쌍해?”만아는 원래 뭘 감추는 성격이 못돼서 정집사 얘기를 원경릉에게 전해주었다.얘기가 끝나자 원경릉은 한동안 놀라서 당황하고 만아 본인도 눈물을 흘렸다. “죄송해요, 쇤네 이런 얘기를 해 드리면 안되는데. 괴롭게 해드렸네요.”원경릉이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흔들며, “괜찮아, 그냥 얘기인데 뭘. 진짜가 아니라.”“쇤네 생각에 정집사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처럼 울 것 같은 모습을 봤거든요.”“울 것 같다고 다 자기얘기를 한다고 할 수는 없어. 너도 정집사 얘기를 듣고 나하테 전하면서 울잖아. 그냥 인간의 동정심이야. 그래, 생각하지 마. 얼른 가서 씻고 자.” 원경릉은 만아가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호수에 뛰어드는 일이 생길 까봐 걱정이 됐다.“그럼 쇤네는 물러갑니다!” 정집사는 용감하게 사랑하고 미워했던 사람이다. 남강왕을 지독하게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남강 북쪽을 배반한 채 남강왕과 함께 하며 자식을 낳았던 게 분명하다. 이토록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 영원히 헤어져야 했으니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야?원경릉은 요즘 감정이 풍부하고 예민해 진 게 어쩌면 임신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을 잘 대입하곤 한다. 만약 자기가 목청청이면 남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달려갔는데 모든 게 잿더미로
왕강과 소홍천원경릉은 마음이 어지러워, “그럼 우리가 만아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만아가 남강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면 말이야.”“적어도 만아를 위한 세력을 공고히 해서 조정의 지원을 얻어내고, 남강에서 입지를 튼튼히 할 수 있도록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도록 해 주는 거지.”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안도하며 약간 놀리듯이, “그럼 만아에게 남편감을 하나 찾아줘야 하나?”“난 중매 안 서, 우리 집에는 어디다 내놔도 부끄러운 서일만 있고, 마땅한 사람이 어딨어?” 우문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더니, “사촌 소형 어때? 나이도 적지 않고, 그리고 왕 선생도 있고.”“왕 선생 아직 아내가 없어?” 원경릉이 놀란 것이 천문을 좋아하는 왕강은 결코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눈이 천정에 붙어서 잠자리 시침을 드는 사람은 있는 모양인데 아내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원경릉이 머리를 흔들며, “됐어, 쓸데없이 소개하지 마, 안 어울려.”만아는 성격이 단순하고 왕강은 겉으로는 박식해 보이지만 눈빛이 좀 그게……순수하지 않은 게 단순히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 같지 않다.부부가 얘기하고 있는데 기라가 알리러 왔다. “나리, 소 문주님이 오셨습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흘끔 보고, “남강이나 홍엽관련 소식이 있는 게 틀림없어.”“얼른 가봐!”우문호가 원경릉 손을 잡고, “같이 가서 듣자, 어쨌든 지금 당신이 알면 안되는 일도 없으니.”“지금 없다는 건, 예전엔 있었다는 소리야?” 원경릉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전에도 없었어.” 고개를 들고 원경릉을 부축해 문지방을 넘더니 그녀의 배를 보고 머리를 치며, “입궁해서 태상황 폐하께 청진기 빌려 달라는 걸 또 까먹었네.”원경릉이 눈을 빛내며, “내일 내가 할머니 모시고 입궁하니 태상황 폐하께 물어볼게.”“그래, 갈 때 조심하고.” 우문호가 잔소리를 했다.만아가 소홍천을 서재로 모시고 왔다. 소홍천이 자리에 앉자마자 우문호 부부가 들어왔다.원경릉이 들어와 소홍천을 보는데 순간 눈앞이
소홍천이 가져온 소식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부라리며, “예의 없이 굴래 진짜!”우문호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여자를 앞에 두고 화장한 걸 가지고 농담하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말이다.“진짜 안 이쁜데.” 우문호가 구시렁거리며, “전에 청순한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아.”“닥쳐!” 원경릉이 소리를 지르고 소홍천에게 사과하며, “소문주님 상식으로 저이를 판단하지 마세요. 상남자가 이렇게 분위기를 몰라요.”“안 예뻐요?” 소홍천이 얼굴을 만지며 원경릉에게 물었다.“예뻐요……하지만 솔직히 지금 화장은 진한 편이라 좀 연한 게 문주님께 잘 맞는 것 같아요.” 원경릉은 소홍천이 진심으로 의견을 구하는 눈빛이라 망설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분장이야!” 우문호가 눈을 부릅떴다.소홍천이 약간 당황해서, “홍매문 사람들은 이게 이쁘다고 했는데.”“화장이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그만 따지고, 이렇게 늦게 온 건 무슨 소식이 있어서야?” 우문호가 물었다.소홍천이 표정을 가다듬고 원경릉을 흘끔 보더니, “에……태자비 마마께서 아셔도 되나요?”“괜찮아,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소홍천이 안도하며, “그럼 다행이예요, 태자 전하께서 전에 저에게 알아보라고 하셨던 일을 조사해 보니 심인(沁人)이라는 아가씨 더군요. 취춘루(醉春樓)의 간판으로 외모도 애교도 으뜸이죠. 당연히 태자 전하도 직접 본적이 있을 것으로 이 점은 굳이 제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게 그렇지 않으면 우리 홍매문이 나서서 알아보게 할 리가 없었겠죠. 하지만 태자 전하께서 모르고 있는 점이 이 여자는 상당히 요염하고 몸이 굉장히 유연한데 두 다리를 어깨 위로 구부릴 수 있을 정도로 어떤 자세도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는 군요. 이것도 이 여자가 취춘루의 간판이 된 원인이기도 한데 수많은 거상, 관리, 명문 세가의 자제들, 심지어 태자 전하를 포함한 황실 종친에 이르기까지 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천금을 바쳐서 라도 같이 지내지 못해 안달이죠.”소홍천이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보고 탄복하며, “남자의 저
화난 소홍천우문호도 깜짝 놀라 바로, “어떻게 그럴 수가? 우리도 만불산에 가서 옥허도사를 만났는데 사숙조는 광인이 되어 경호에 뛰어든 뒤 익사했다고 했어. 그런데 홍엽은 사숙조와 무슨 비밀스런 얘기한 거지?”“아뇨,” 소홍천이 어리둥절해 하며, “정보를 잘못 탐문한 건가? 어쩐지 보고한 사람이 그 사숙조가 옥허도사보다 어려 보인다고 하더라니. 틀렸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옥허도사가 그 사람을 사숙조라고 부르는 걸 분명 들었다고 했으니 옥허가 나중에 들어온 제자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사숙조가 나중에 될 수는 없잖아요? 옥허가 다른 문파에서 갈아탄 걸지도 모르죠?”“다시 알아보세요!” 원경릉이 의자 손잡이를 꽉 잡고 심하게 긴장했다.소홍천이 원경릉의 안색을 보더니, “태자비 마마, 괜찮으세요? 안색이 굉장히 안 좋으신 데.”원경릉이 가슴을 누르며, “배가 나오다 보니 숨이 좀 차서 그래요.”“아!” 소홍천이 동정의 시선을 보냄과 동시에 우문호를 원망하며, “태자비 마마께서 전하의 아이를 품고 계신데 간판 기생이나 찾아 다닐 때예요, 집에서 마마 곁에 있어드리세요.”“좀 조용히 못해!” 우문호가 퉁명스럽게, “공무 때문이라고 공무, 귀가 먹었어?”소홍천이 진정하라고 손짓하며, “알았어요. 그만 할 게요. 시간도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죠.”소홍천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나가다가 문득 돌아서서 원경릉에게, “제 화장이……정말 별로 예요?”원경릉이 영혼 없이, “약간 진해서 조금만 옅게 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그럼…… 태자비 마마 화장대를 잠깐 빌려도 괜찮을 까요? 다시 한 번 해 보게요.”“이렇게 늦은 시간에 뭘 또 해봐?” 우문호가 밖으로 쫓아내며, “가 가, 어서.”소홍천이, “있다가 누굴 만나야 된다고요!”“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를 만난다는 거야? 게다가 이렇게 야하게 입고?” 우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다는 듯 따졌다.“전하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따져요? 화장대를 빌려서 화장 좀 고치겠다는 건데 태자 전하 걸 쓰는
소홍천의 사랑원경릉은 그 일에 아무 느낌도 없는데 괜히 우문호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 간이 작으면 하지를 말던가. 원경릉이 걸으며, “난 소홍천이 자기와 오래 된 사이니, 그녀에게 지금처럼 그렇게 박정하게 대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야.”“우리는 늘 이렇게 치고 받는 사이야. 전진 장군, 왕강, 사촌 소형까지 이건 우리들의 우정의 표현이라고.”원경릉은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견고한지 털끝만치도 의심하지 않지만, “다른 일은 치고 받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소홍천을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면서 지금처럼 정성을 다해 화장한 걸 본 적 있어?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는 거야. 그녀가 오늘 밤 만날 사람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람일 거야. 유달리 긴장하고 있던 거 못 느꼈어?”“하지만 소홍천이 좋아하는 그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야.”“사람은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 원경릉이 어이없다는 듯 우문호를 보며, ‘누구는 쓰레기 같은 찌질이들 안 만나봤는 줄 알아? 그런 인간들 겪고 난 뒤엔 행복해 질 수 없기라도 해?’우문호는 ‘쿵’하고 한 방 맞은 느낌으로 얼른, “사람은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할 수 있어, 원 선생의 그 생각은 위험한 거야.”원경릉이 째려보며, “나랑 자기는 이미 혼인을 했고 지금까지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린 예가 될 수 없지만, 소홍천이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녀와 맺어질 수 없었는지 몰라도 이미 끝난 일은 다시 걱정하지 마, 소홍천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워 줘야지.”원경릉은 원래 몇 마디 더 하려고 했다. 소홍천이 자신을 많이 도와줬고 공무든 아니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에 온 몸을 바쳐왔기에 원경릉 부부는 소홍천에게 빚을 많이 졌다. 원경릉은 소홍천과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 돕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우문호는 절친이니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비록 원경릉이 캐묻지 않았지만 우문호는 취춘루 간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