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아라제왕은 안왕이 이런 마음씀씀이가 있는 줄 모르고, 전에 가지고 있던 안왕에 대한 인상을 고치고 그와 같이 손왕이 숙나라 사신으로 가는 것을 천거하는데 동의했다.안왕이 기뻐하며 제왕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탄식하며, “만약 형이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아바마마도 마음이 놓이실 거야.”제왕은 경조부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이 말을 듣고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왕이 멀리 간 뒤 마부에게 초왕부로 가자고 하고 이 일을 우문호에게 알렸다.우문호가 듣고 급히, “둘째 형수가 어젯밤 일부러 감췄던 거야. 숙나라에 가시겠다고?”탕양이, “전하, 소신이 얼른 주재상 어른을 찾아가 입궁전에 손왕 전하를 막아보고, 적극적으로 이 일을 막아 달라고 하겠습니다.”우문호가 하늘을 보더니, “이미 늦은 것 같다. 지금이면 이미 조례가 열렸어.”우문호가 잠시 중얼거리더니, “안돼., 내가 입궁해야겠어. 여봐라, 조복을 준비해라.”“전하, 못 들어가십니다.” 탕양이 말리며, “폐하의 성지 없이 입궁 못하십니다.”“지금 그걸 따질 때냐. 가서 얘기하자!” 우문호가 얼른 방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의관을 정제한 후 탕양과 함께 말을 달려 출발했다.궁문에 도착하자 과연 저지당했는데 수문장 오석(烏石)이 위엄 있게, “전하, 폐하의 성지에 전하께서는 금족기간으로 성지 없이는 입궁하실 수 없으시니 돌아가시지요.”“오장군, 중요한 일이 있네, 미안하지만 통행을 부탁하네.” “안됩니다. 성지는 거역할 수 없으니 소신을 곤란하게 하지 마시고 전하께서는 돌아가시지요. 소신은 전하를 뵌 적이 없으며 전하께서 금족령을 범하신 것을 모릅니다.” 오석의 태도는 강경했다.오석은 진짜 새까맣고 고집 센 바위처럼 꿈쩍도 안 하고 오직 명령에 따라 일할 줄만 알아서 정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문호는 알고 있다. 만약 진짜 치고 들어가면 황제를 노하게 하고 만조 백관의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탕양이, “오장군, 재상께서는 입궁하셨는가?”“아직입니다!” 오석이 답했다.우
의기양양 손왕제왕이 이 말을 하고 차를 한 모금 한 뒤 계속 우문호에게, “이번에 넷째 형 사람이 전력을 다해 천거한데다, 원래 둘째 형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바마마께서 비록 별로 원하지 않으셨지만 최종적으로 동의하실 수밖에 없었어요. 형, 이 일 제가 아무리 궁리해봐도 이상하단 말이예요. 왜 넷째형이 가려고 하지 않죠? 넷째형은 홍려시 시경이고, 이번에 다른 6국 사람과 교섭할 수 있는데 넷째형에게 공을 세우고 잘난 척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형은 이상하지 않아요?”우문호가 하는 수 없이, “이상한 게 맞지. 이게 보통의 일이면 넷째가 뭐 하러 그렇게 많은 사람을 내세워 천거했겠어? 속으로 확실히 알았던 거야. 이번에 숙나라엔 낌새가 있기 때문에 피하고 안 간 거지.”제왕 얼굴이 핏기가 가시며, “맙소사. 무슨 낌새죠? 둘째형 위험한 거예요? 그럼 얼른 형에게 알리러 가요.”우문호는 손왕이 너무 걱정할까 봐, “그냥 우리 추측일 뿐이니 일단 형을 찾아가지는 마. 내가 형한테 얘기할 게. 네 호들갑에 형이 더 놀라. 형이 덩치만 컸지 간은 콩알만 해.”“그럼 얼른 형한테 얘기해서 알려줘야 지요. 저야 넷째 형이 호의를 베풀 리가 없다는 걸 아니까. 하여간 개가 똥을 끊지!” 제왕이 발끈해서 시쳇말로 욕했다.우문호가 제왕을 돌아가라고 달랜 뒤 탕양을 손왕부로 보냈다.손왕부는 지금 흥청거렸는데 숙나라 사신 소식이 전해지고 손왕비는 하인들에게 전부 상을 내렸는데 매우 흥겨운 때에 탕양이 와서 손왕비가 탕양에게도 상을 내리며 희색이 만연했다.탕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른 손왕을 모시고 갔다.손왕은 속으로 만족스러워, 우문호를 보고 신이 나서 배를 탕탕 치며, “다섯째야, 형이 숙나라에서 돌아오면 아바마마 앞에서 너에 대해 잘 말씀드려 주마.”손왕의 기름진 얼굴에 기쁨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손왕을 서재로 끌고 가더니, “좋아 죽겠죠?”“당연하지?” 손왕이 우문호를 쳐다보고, “왜? 형이 간다는데 기쁘지 않아?
욱한 손왕손왕은 우문호가 계속 듣기 싫은 말만 하고 축하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자 약간 화가 나서, “다섯째야 너 형이 가서 공을 세울까 봐 눈꼴 사나운 거야? 형이 눈에 거슬려?”우문호는 손왕이 이렇게 얘기할 생각 못하고, “제가 어떻게 형이 눈에 거슬립니까? 전 형이 공을 세워서 출세하시기를 간절히 바래요.”손왕이 못 마땅하다는 듯, “거짓말 마, 태자가 된 지 오래됐고 권력을 쥔 지도 오래됐지? 정말 형이 공을 세워 출세 하는 걸 바랬으면 전에 왜 발탁 안 해줬어? 형이 널 원망하는 게 아니야, 단지 넷째가 이번에 어렵사리 인심 써서 나더러 가서 식견도 좀 넓히라고 한 거건데 넌 오로지 안 좋은 말만 하고 정이 싹 떨어지는 구나.”손왕은 우문호의 놀란 얼굴을 보고 자기가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참 기분이 들떠 있어서 우문호와 흥을 깨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곧, “난 이틀 있으면 출발해서 내일 손왕부에서 연회가 있어, 넌 금족기간이라 올 수 없으니 사람을 보내 술을 보내 네가 날 위해 송별 인사를 한 것으로 치도록 하마.”손왕은 말을 마치고 갔다.우문호는 약간 타격을 입었다. 둘째형이 자신의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사실 이때 손왕은 한참 기분이 좋을 때로 우문호가 한 말은 흥을 깨므로 그 점을 원망하는 게 아니다.우문호를 경악하게 한 건 우문호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손왕을 발탁한 적이 없다는 것이며, 이 말이 지금 처음으로 툭 튀어 나왔다는 건 손왕 마음 속에 계속 있었다는 뜻이다.탕양이 밖에서 듣고 손왕이 간 뒤에 들어와, “전하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손왕 전하는 사람을 너무 아름답게만 보고 안왕 전하께서 진심으로 자신을 발탁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우문호가 쓴 웃음을 지으며, “형은 사실 내가 그동안 형을 발탁하지 않은 걸 마음에 두고 있었어, 형을 발탁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형 성격이 미지근하고 위기의식이 적어서 한직에 발령할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 했어. 매일 무사태평하게 지내는 게 뭐가 나빠
퍼붓는 손왕비손왕비도 듣고 화가 났다. 자기 남편은 자기가 잘 아는데 성격이 유약해 정말 누가 기분을 건드린 게 아니면 이렇게 화를 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마음이 영 불편한 게, 초왕부에 그동안 걸핏하면 일이 생겼고 그때마다 자기가 사심없이 여러모로 애쓰며 도왔다. 다섯째가 태자가 돼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되어도 둘째형을 발탁하지 않은 것도 그럴 수도 있지 했건만, 어렵사리 이런 기회를 얻었는데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비꼬는 말이나 하다니 해도 너무 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분이 삭지 않아, 마차를 준비시켜 황실 별장으로 가서 원경릉에게 좀 따지기로 했다.원경릉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고 최근 대부분 별장에서 태상황을 돌보며 지냈다. 폐기종과 천식은 일단 발작하면 밤새 숨을 쉴 수가 없기때문에 태상황 곁에서 떠나지 못했다. 적어도 날씨가 따듯해 져야 병세가 호전될 것이다.원경릉은 손왕비가 온다는 소리에 태상황께 안부인사를 하는 김에 자기와 수다나 떨 줄 알았으나 태상황이 막 잠이 들어서 일단 본관에서 먼저 손왕비를 만났다.“혼자 오셨어요? 미색이랑 요부인은 안 오시고?” 원경릉이 웃으며 묻는 게 미색과 요부인 두사람은 지금 손왕비와 가까이 살아서 보통 외출할 때 같이 움직인다.손왕비가 담담하게, “둘은 안 왔어, 내가 안 불렀거든.”원경릉이 들어오면서부터 손왕비 안색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왜 그래요? 기분 나쁘세요? 누가 건드렸어요?”손왕비가 약간 화가 난 눈빛으로, “태자비, 말 좀 묻자. 사실대로만 대답해.”“완전 살벌한데요?” 원경릉이 방금 안에서 약을 나누고 아직 손을 닦지 않아서 손을 닦은 뒤 자리에 앉아, “말씀하세요, 반드시 사실대로 답할 게요.”손왕비가 다가와서, “어디 얘기해 봐, 요 2~3년간 내가 태자비에게 어떻게 했어?”원경릉은 손왕비의 얼굴빛에 엷은 분노가 비치는 데다 이렇게 강렬한 적대감이 섞인 질문을 하는 것을 듣고 갈피를 잡지 못해, “둘째 형님은 저한테 잘 해 주셨죠. 그동안 안팎으로 형님이 도와
손왕비의 하소연원경릉은 손왕비가 봇물 터지듯 좔좔 쏟아낸 얘기를 듣고 최근 2~3년을 떠올려보니 확실히 무슨 일이 터지던 손왕 부부는 항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 쪽에 서 주었다. 누가 옳고 그른 지 따지지 않는 이런 형제의 정을 다치게 해서는 안되기에 서둘러 달래며 사과했다. “형님 말씀이 맞아요, 이 일은 태자가 제대로 못했네요. 제가 가서 혼낼 게요. 태자란 사람이 말이죠, 형님도 아시지만 둘째 아주버님을 존경할 뿐 아니라, 악의 없이 그런 말을 할 건 형이 멀리 나가신 적이 없어서 걱정돼서 일 거예요. 거기다 숙나라와 우리 북당은 계속 긴장관계라 숙나라에서 둘째 아주버님을 불리하게 하는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좋은 뜻으로 한 말일 텐데, 듣기 싫게 말한 거로 태자와 실랑이 하지 마세요. 아직도 태자를 모르세요? 이 인간 입에서 어디 좋은 소리가 나오던 가요. 평소 저한테 하는 잔소리도 한마디도 좋은 소리가 없고, 아바마마께도 몇 번이나 말대꾸를 했는지. 입은 걸지만 마음은 착해요. 보통의 상식으로 보시면 안될 거예요.”손왕비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비로소 좀 풀리며, “나도 그냥 태자비한테 얘기나 하려고 그러지, 태자비도 태자 혼내지 마. 남자들은 다 체면을 중시 하니까. 한마디만 전해주면 돼. 둘째형은 다섯째가 좋아할 걸 기대하고 당연히 자기 일처럼 좋아 했어야 했다고. 축복하고 당부하는 말이 그런 음모론보다 훨씬 나았다고 말이야.”“알겠어요, 안심하세요. 있다가 꼭 전할 게요.” 원경릉이 달랬다.손왕비는 원경릉이 긴장한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나도 알아 이번에 득달같이 와서 이런 얘기하는 건 지나치다 싶어, 그렇게 큰 일도 아니고, 하지만 자네 둘째 아주버님은…… 뭐랄까? 마음속에 섭섭함이 있어. 맏이가 사고를 쳐서 아바마마 슬하에 손왕이 첫째잖아. 아바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리고 싶은데, 그런 게 본인 성격과 상충되니까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여, 책임은 아무튼 져야 하겠고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어도 재주가 없으니 좌절감이 드나 봐.
숨막히는 정국우문호가, “맞아, 숙나라 쪽 소식이 와서 소홍천이 직접 가져왔는데, 숙나라가 확실히 움직이기 시작 했어. 대주와 전쟁이 눈앞으로 닥친 거지.”“대주 쪽에서 편지는 왔어?”“정정이랑 연락이 됐어. 어제 전서구가 날아왔는데 이미 정확하게 배치를 마쳤고 우리도 준비하라고. 우리 두 나라는 군사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대군도 국경을 압박하다가 필요할 때 대주를 도와야 해.”“하지만 아직 무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잖아.” 원경릉이 당황하며 ‘정말 전쟁이 시작된다고? 얼마나 원하지 않던 일인데!’우문호가, “소홍천 말이 우리가 보낸 밀정이 병여도의 행방을 이미 알아냈으나 병여도를 망가뜨리는 데 쩔쩔매고 있는 모양이야.”“그쪽에서는 만들기 시작 했어?”“아직, 병여도에 대해 파악을 다 못 했어. 하지만 이번에 대주에서 사람을 보내올 게 틀림없으니, 그들은 대주 사람을 협박해 병여도의 비밀을 알아낼 가능성이 커. 소홍천이 오늘 가져온 정보가 바로 이런 추측이고 또 하나 더 있는데 숙나라가 각국의 사신들을 잡고 협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사신들 나라가 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말이야.”원경릉이 경악하며, “숙나라는 지금 이미 북막과 같이 출병했는데 독고는 2:1로 대주와 싸우겠다는 거야? 우리와 대주는 이미 동맹을 맺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지켜 볼 수 없잖아. 둘째 아주버님이 이번에 가시는 건 엄청 위험할 거야.”원경릉이 자세히 생각하자 너무 두려워서, “아니, 숙나라는 원래 자기가 이번 경축행사에 참여하길 원했잖아, 다시 말해 그들은 자기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고 싶었던 거야. 자기가 금족령이 아니었으면 갔을 테니까 숙나라 사람의 야심이 아주 환히 보인다. 둘째 아주버님은 가시면 안돼.”“아바마마께서 이미 응하셨어. 일국의 군주는 식언할 수 없는 법. 아바마마는 일찍부터 이 단계를 예상하시고 넷째를 보내려고 한 게, 숙나라 홍엽은 아직 넷째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넷째에게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
병여도를 외웠다고?“기억나?” 우문호가 화들짝 놀라다가 곧 원경릉이 오해했다는 것을 알고, “어디가 바뀐 건지를 아는 것으론 부족해. 바뀌기 전이 뭐였는지 알아야 하거든.”“나 기억하는데, 그 부호…… 부호 아니고 그건 일종의 문자야. 말했잖아 나 안다고. 자기들이 계속 연구한 게 병여도였어? 제조 방식이 아니고? 고쳐진 부분 내가 자기한테 얘기했는데.” 원경릉이 이마를 쳤다. 원경릉은 계속 그들이 어떻게 주조할지 궁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게, 병여도를 해석하는 사람을 대주에서 보내오지 않은 게 중도에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지 아직 바뀐 부분을 규명하고 있을 줄 몰랐다.우문호가, “당신이 얘기 했지. 하지만 바뀐 부분이 원래 뭐였는지 얘기 안 했어. 그리고 이 일은 꽤 신중해야만 하는 일로 당신도 알아야 해. 작은 부분 하나라도 그르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 우리가 이런 전차에 대해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 구조나 작동방식을 알지 못해. 정정에게 들었는데 그 전차 제조에 성공한 뒤 말이 끌 필요가 없고 사람은 안에 앉아서 발판을 밟으면 앞으로 갔다고 해. 그리고 보호덮개로 전차를 모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니 작은 부분도 실수해서는 안돼. 작은 오차에도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원경릉이, “전차 제조에 대해 난 아는 게 없고, 구동방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자기가 나한테 병여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그릴 수 있거든. 못 믿겠으면 내가 그려줄 게. 다 그린 다음에 그 부호를 문자로 바꿔줄 테니 병부에 가져가서 보여봐. 병부 주조서(鑄造署)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난 그릴 수만 있고 해석은 못해. 자기가 잘 생각해봐.”우문호는 원경릉이 이토록 수월한 듯 얘기하니 차마 흥을 깰 수가 없어서, “그래 당신이 만일 시험삼아 그리면 일곱째를 시켜 병부에 가져가서 그 가짜 병여도를 가져와 당신이 회상한 게 완벽한지 볼 수 있게 해 줄게.”“그럴 필요 없어, 가짜를 나에게 줘. 내가 혼란 시킬 수 있어. 내 머릿속에 기억한 건 전부 진짜 병여도야.”
병여도가 드디어제왕이 병여도를 가져와서 우문호는 제왕과 함께 서재 문을 밀고 들어가니, 원경릉이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들고 바닥에 놓인 병여도의 먹을 말리고 있는 것이 벌써 다 그렸다.우문호가 놀라서 손에 든 가짜 병여도를 펼쳐 두 폭의 그림을 찬찬히 비교하는데 놀랍게도 바뀐 부분을 제외하고 정말 완전히 똑같다.만약 먹 흔적이 아직 젖어 있지 않았다면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 그림이 원래 잃어버렸던 병여도라고 생각할 뻔 했지만 물론 종이질도 다르기는 하다.제왕이 화들짝 놀라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원경릉을 숭배의 눈동자로 바라보며, “세상에, 형수님은 정말 신이십니다.”우문호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감격해 원경릉을 안고 몇 번이고 뽀뽀하며, “원 선생 머리 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전부다 기억하고 있다니 너무 대단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원경릉은 만아에게 불을 건네 주더니 손목 관절을 풀고, “내 잘못이야, 진작에 자기가 아직도 병여도 원본 그림에 매달려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려줬을 것을. 하지만 자기도 잘못 했어. 예전에 어디가 바뀌었는지 얘기했는데, 똑바로 기억하지 않다니.”우문호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이 말을 듣고, “당신 기억력이 이렇게 엄청날 줄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은 바뀐 부분이 어디인지만 알고 원본이 어땠는지 기억 못하는 줄 알았지. 그리고 당신이 얘기한 변경된 부분에 대해 나도 확실하지 않고.”“대주에서 보낸 기술자는 입막음을 당한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응.” 우문호가 분하다는 듯, 지금 병여도가 있는데 주조 기술자가 살해당해 북당이 무기를 제조하는 길은 아직도 더듬어 가야 한다.“다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면 안돼?” 이제 병여도가 있으니 병장기 제조에 참여한 적이 있는 사람이 오기만 하면 되는데 쉬운 일 아닌가?“요청했지. 하지만 대주에 핵심 기술자가 많지 않은 데다 대주가 전쟁을 앞두고 있어 한창 제작 중이라 파견할 수가 없어, 대주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을 더이상 잃어서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