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우문령이 풍경을 보더니 일말의 의아함과 깊은 신뢰의 눈망울로, “정말요? 정말? 정말요?”우문령은 3번이나 물어보고 공손하고 두손으로 풍경을 받아 자신의 손바닥에 놓는데 태도가 경건하기 그지 없다.원경릉은 우문령의 공손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이 풍경은 그녀에게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 한 줄기 빛인 듯 싶다.원경릉도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사실 인간은 절망 속에서 신앙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리 나리는 그 점을 알고 우문령에게 풍경을 보낸 것이다.우문령까지 갈 필요도 없이 원경릉 본인조차 자신이 과학을 연구하는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허망한 부처에게 구원을 바랬던 적이 있다.원경릉은 주지 후배가 생각났다. 주지 후배는 과학의 끝은 신학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건 어쩌면 진리일지도,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아마 후배 본인이 내심으로 바라는 것일 것이다.사람은 신앙을 필요로 한다. 특히 절망의 때엔.정신적으로 무장을 해제 시키다니 이리 나리는 우문령에게 이 점에 있어서는 지고지순의 최고봉이다.우문령은 풍경을 창가에 걸고 창문을 열자 북풍이 불며 풍경에서 ‘딸랑 딸랑’소리가 났다. 동에서 나는 소리는 영원과 맞닿은 듯, 심리적인 작용이 더해 정말 복음이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이다.우문령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고 여전히 빨갛게 부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슬픔 속에서도 한 줄기 감동을 드러냈다.원경릉도 웃는데 눈가가 흐려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궁인들이 음식을 가져왔다. 원경릉이 권하는 가운데 우문령은 마침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비록 아직 슬픈 모습이지만, 다행히 다독여졌다.원경릉은 우문령이 죽을 먹는 것을 보고 마음에 한숨이 나오는 것이 우문령은 위로가 되었지만 우문호는 쉽지 않다.우문령이 죽을 다 먹자 원경릉은 우문령을 재웠다. 너무 피로가 쌓인 데다 풍경 소리가 위로를 주니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원경릉은 우문령 곁을 한동안 지키다가 나왔다.황귀비가 휘장 밖에서 우문령이 잠든 것을 보고 마음에 놓
두 소씨 집안우문호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너무 빨리 그러는 것도 두렵다.원경릉이 봉기궁을 나와 태상황의 건곤전으로 갔다.태상황의 건곤전은 전체 궁중에서 가장 현비의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일 것이다.원경릉은 인사를 드리고, “안풍친왕께서는 안 계신가요?”상선이 웃으며, “그분들은 소씨 집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공주마마의 혼례를 치른 뒤 경성을 떠나실 것입니다.”태상황이 담담하게, “세속을 떠난 사람들이 돈 냄새 풀풀 풍기는 데서 어떻게 살겠어?”원경릉은 그들 부부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며 즐겁기론 신선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안다.잘됐네, 만약 언젠가 원경릉과 우문호가 안풍친왕 부부처럼 매일 오늘 저녁에 뭐 먹을 까만 생각하며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그분들은 이일 때문에 오신 건가요?” 안풍친왕비와 상현정에서 얘기할 때가 떠올랐다. 만약 전부 안풍친왕비 말 대로 그렇게 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안타깝게도 하필 이렇게 한참 곁가지로 흘러버렸구나.태상황은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두 발은 발등상에 올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밖에서 비쳐 드는 햇살을 보며, “꼭 그것만은 아니고, 안왕비 일도 있고, 겸사겸사 돌아와서 보려고.”원경릉은 소씨 집안이라고 해서 현비의 소씨 집안인 줄 알고 놀랐는데 안풍친왕비의 친정이란 게 생각났다.상선이, “모레가 소국후(蘇國侯) 어르신 기일이라 겸사겸사 제사에 참석하실 겁니다.”“그렇군요. 제가 듣기로 전에 소국후께서도 한때 권력의 중심으로 소씨 집안이 지금의 주씨 집안과 같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지금은 연달아 조정에서 물러나는 겁니까?”“이것도 소국후 어르신이 살아 계실 때 엄명을 내리신 것으로 소씨 집안 자손들은 반드시 서서히 적어도 3대 내에 조정을 떠나야만 하고, 만약 조정에 출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면 직책을 요구하나 3대가 지나면 시험을 봐서 공명을 얻어 조정에 출사할 것으로 성취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하셨지요.” 상선이 말했다.소국후 어르신
주명양의 패악주명양은 기왕비의 코에 삿대질을 하고 막돼먹은 여자처럼 발악을 하며, “왕야를 도울 능력이 있으면서 어떻게 쏙 빠져서 있을 수가 있어? 왕야께서 득세하시면 널 막 대하시기라도 하신데? 팔이 바깥쪽으로 굽었나, 출가외인은 지아비를 따라야 하는 거 알아 몰라?”군주 희열(喜悅)은 올해 12살로 이미 지혜가 다 자란 아이로 주명양이 자기 어마마마를 비난하는 것을 듣고 굳은 표정으로, “후궁, 자중하십시오!”주명양은 이렇게 작은 꼬맹이에게 지적질을 당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가 완전 뚜껑이 열려서 바로 따귀를 때리며 독살스럽게, “닥치지 못해? 어디서 나서?”희열이 얼굴에 따귀를 때리기 전에 기왕비가 주명양의 손목을 잡고 반대편 손으로 주명양의 얼굴에 따귀를 날린 뒤, 순식간에 차갑고 음침한 눈빛으로 내뱉는데, “감히 군주의 털 끝 하나라도 건드렸다 가는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릴 줄 알아!”주명양은 머리가 한쪽으로 나가 떨어졌다가 화를 내며 뒤를 돌았는데 기왕비의 얼음처럼 냉정하고 준엄한 눈빛을 마주하자 주명양의 마음에 한기가 밀어닥치는 기분이었다.주명양이 기왕부에 시집온 뒤로 기왕비는 늘 온유하고 담담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도 마음에 없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 당하기 쉬운 사람이란 인상이었다.그런데 기왕비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람은 우아하고 선한 외피를 쓰고 그 아래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사자 같은 사람이다.주명양은 교만한 게 습관이 돼서 기왕비는 건드리면 안되는 사람이란 걸 알아도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다시 기왕비의 얼굴에 따귀를 때리며 싸늘하게, “주명양이 네가 괴롭히고 싶으면 괴롭혀도 되는 존재인 줄 알아? 날 때린 거 갚아준 거야.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주명양의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기왕비가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오너라, 후궁을 아각(雅閣) 접객실로 데려가라, 일단 이틀간 가둬 두고 내 명령 없이는 물 한방울도 줘서는 안된다.”주명양이 하하 웃으며, “누가
희열군주와 기왕비희열군주가, “어마마마, 알아요, 절대로 저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기왕비는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희열이는 철이 들었네.”희열군주가 작은 소리로, “앞으로 어마마마를 반드시 보호할 거예요, 아무도 괴롭히지 못하게, 아바마마도 안돼요.”희열군주의 부드러운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기왕비가 위로를 받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있으니 어마마마는 아무리 큰 괴로움을 당해도 괜찮아. 너는 가서 쉬렴. 내일 널 데리고 찾아갈 데가 있어.”“어디 가는데요?” 희열군주가 물었다.“초왕부. 네 숙모를 만나게, 어마마마가 부탁할 게 있어서.” 기왕비가 바로 결심한 것 같다.“좋아요, 숙모 만나보고 싶었어요.” 희열군주는 원경릉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마마마가 병에 걸렸을 때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 숙모가 어마마마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다.기왕비는, “희열아, 어마마마는 널 데리고 세배하러 가는 게 아니라, 널 숙모에게 맡기러 가는 거야.”희열이 놀란 눈으로, “네?”기왕비가 웃으며 안심시키길,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숙모가 의대를 열 건데 어마마마는 숙모가 너에게 의학을 가르쳐 줬으면 해.”“의학이요?” 희열이 조금 당황해서,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여자아이는 여자로서 지식에 통달하고 바느질을 배우거나 거문고, 바둑, 서화 같은 취미를 익히거나, 어마마마께 집안을 다스리는 것을 배우면 나중에 시집가서 집안을 잘 꾸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기왕비는 진지하게, “아니, 희열아,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신 건 배워야 해. 하지만 여자아이가 갈 길이 오직 혼인 하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란다. 넌 더 많은 걸 배워야 해. 어마마마는 능력이 부족해서 여지껏 친정에서 자금을 원조받아 겨우 일정한 인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 네 앞길이 평탄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할 수 있는게 뭐가 없을까 하고. 그런데 사람이 일생동안 경험할 일을 미리 다 예측할 수는 없어. 오늘의 영화가 내일의 낭
희열이를 제자로 받아줘다음날 아침 일찍 기왕비는 희열 군주를 데리고 초왕부로 갔다.원경릉은 마침 할머니와 약을 달이고 있었는데 문둥산에 약처방은 나갔지만 병이 나은 뒤 기혈을 보강해야 해서 할머니는 여러 체질에 맞는 적합한 약을 몇 종류로 배합하고 있는 중이다.기왕비가 희열 군주를 데리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 할머니는 원경릉에게 손님을 접대하라고 하고 할머니 혼자 약을 배합했다.원경릉이 손을 씻고 나가니 희열이 원경릉을 보고 얼른 예를 취하며, “희열 숙모님을 뵙습니다!”원경릉은 희열을 본 게 두세 번 뿐이지만 착하고 조신한 아이로 원경릉이 매우 좋아해서 함빡 웃으며, “해가 서쪽에서 떴나, 오늘은 어마마마께서 널 데리고 오셨네. 내가 널 데려갈까 걱정도 안되시나?”기왕비가 웃으며 나무라길, “무슨 말이에요, 태자비 마마가 희열이를 좋아하는 건 희열이 복인데 여기 남겨두면 되는 것을. 있다가 이불 보내 드릴 게요.”원경릉이 웃으며, “그럼 제 목숨은 기왕비 마마 손에 끽!”원경릉은 두 사람에게 앉으라고 하고 희열이 먹게 간단한 군것질을 내오라고 했다.기왕비가, “다섯째는 요즘 어때요?”현비 일은 비공개지만 기왕비는 촉이 좋아서 알고 있었다.원경릉이 눈을 내리 깔고 아이 앞에서 많이 얘기하고 싶지 않아 담담하게, “이겨 나갈 거예요.”“그럼 됐네요!” 기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슬퍼했다.기왕비가 희열이에게, “넌 후원에 가서 동생들이랑 놀아 주렴.”희열이는 우리 떡들을 좋아해서 즐거운 듯, “좋아요!”희열군주가 일어나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고, “숙모님, 희열이는 먼저 물러나겠습니다.”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가 보렴.”희열군주는 기뻐 깡총깡총 뛰어서 후원으로 갔다.원경릉이 기왕비에게, “군주가 말도 잘 듣고 철도 들었네요. 잘 키우셨어요.”기왕비가 미소를 거두고 정색하며, “방금 그 말 농담 아니에요. 전 희열이를 태자비 마마에게 맡기고 싶어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들어줘야 해요.”원경릉이 놀라서, “저한테 맡긴다
공주와 군주의 혼인“아뇨, 희열이를 정식으로 태자비 앞에 무릎을 끓고 머리를 조아려 스승으로 모시게 할 거예요.” 기왕비가 엄숙하게 말했다.원경릉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무슨 자극을 받은 거예요? 제가 군주를 보호하기를 원한다는 거 알겠어요. 하지만 희열이를 제자로 받지 않아도 보호할 거예요. 희열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태자의 조카이니까요, 또 기왕비 같은 총명한 엄마가 있으니 억울한 일을 당할 경우는 없을 게 분명해요.”기왕비는 마침내 일어나서 원경릉에게 예를 취하며, “반드시 승낙을 해 주셔야 합니다. 오늘 희열이 아버지가 희열이의 혼사로 세력을 확장 시킬 거라고 하더군요. 기왕은 절대로 빈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일찍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요. 앞으로 군주의 혼사는 제가 지나치게 관여할 수 없어요. 하지만 태자비가 희열이의 사부가 되면 희열이를 위해 맞서 싸울 수 있죠.”“혼사요? 군주가 올해 아직 몇 살인데? 어떻게 혼사 얘기가 나와요? 아직 만15살 안됐죠?” 원경릉이 어이없어 했다.기왕비가 흥분해서, “ 올해 12살이예요. 3년 뒤면 15이 되죠. 그리고 지금도 정혼은 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나올 까봐 두려워요. 태자비, 희열이는 나한테 목숨인 걸 알잖아요. 정혼이라니. 가능성조차 싫어요.”원경릉은 기왕이라는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사람을 떠올렸다. 특히 지금 번번히 좌절 당하는 마당에 돈도 떨어졌을 것이고 정말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군주를 마음대로 세도가에게 줘버릴 경우 그야말로 큰일이다.원경릉이, “좋아요, 기왕 이렇게 하고 싶다면 기왕비 뜻대로 하죠.”기왕비는 눈물을 머금고, “고마워요!”원경릉이 뾰로통하게, “고맙긴 뭐가 고마워요? 2년간 날 얼마나 도와줬는데. 진짜 기왕비랑 저랑 사이좋은 동서사이가 될 줄 상상도 못했네요.”기왕비는 눈물을 훔치고 지난 일을 떠올리는 웃음이 나서, “그러게요, 인생 진짜 아무도 모른 다니까요.”원경릉이 희열 군주를 제자로 받았다는 사실을 기왕비는 여기저기 알
우문령의 혼례날친왕들은 같이 여동생을 시집까지 보내기 위해 궁문에서 기다리고 있다.우문호는 붉은 색 태자 조복을 입고, 보석관을 쓰고 얼굴색은 좀 피곤하고 초췌했으며 복잡한 눈빛이다.여자 가솔들은 환송을 하지 않고 친왕들이 꽃가마가 나가는 것을 환송하는데 몇몇 친왕은 멋진 말을 타고 의장대가 길을 여는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이리 저택으로 갔다.우문호가 말을 몰아 10m쯤 나갔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 처연한 눈빛으로 층층이 쌓인 황궁 전각의 기와지붕을 보고, 마지막으로 원경릉의 얼굴을 보더니 마치 뭐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다시 말을 몰고 갔다.날씨가 좋다. 햇살이 빛나고, 바람도 따스하게 불며 봄 느낌이 물씬 피어 오르는 것이 찬 기운이 천지에서 물러난 것 같은 느낌이다.해 그림자는 높다란 홰나무 사이에서 떨어져 얼룩얼룩한 궁의 붉은 담장을 비추었다. 궁의 담장은 사람의 마음이 산산이 흩어져도 여전히 우뚝 솟아 있다.원경릉 혼자 궁 안으로 돌아가는데 방금 우문호가 이별 앞에서 얼핏 보인 행동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부부는 일심동체라 알 수 있었다.오늘 우문령이 혼인하니 제일 기쁜 사람은 사실 경여궁의 현비라야 했다.하지만 그녀는 죽고, 다시는 이 장면을 볼 수 없다.원경릉은 경여궁으로 갔다.구사가 사람을 시켜 지키고 있고, 안에는 향도 태우지 않고 지전도 사르지 않고 아무도 안에서 지키고 있지 않은 가운데 현비의 유체는 고요히 침대에 놓여있었다.날이 차서 시체를 7~8일간 방치했으나 큰 면적의 부패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냄새가 나서 원경릉이 들어올 때 사방의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니 나아졌다.손등에 담녹색의 시반이 나타나고 상태를 보니 며칠 지나면 부풀어오르면서 부패가 일어날 것이다.전에 여기엔 난로가 놓여 있었고, 나중에 난로를 가져간 뒤에도 문과 창문을 닫아 두어서 바람이 통하지 않았는데 만약 날이 이렇게 춥지 않았으면 시체는 썩어서 부풀었을 것이다.시체의 외관을 아무도 수습하지 않아 현
조용한 결혼 피로연궁에서는 피로연이 열렸고 황실의 종친들을 초대했는데 원경릉은 피로연을 즐길 기분이 아니라 대충 먹고 초왕부로 돌아왔다.초왕부로 돌아오니 할머니는 복도에 앉아 햇볕을 쬐고 계신데, 원경릉은 할머니 발치에 앉아 할머니 무릎에 기어가서 들릴 듯 말듯, “할머니, 피붙이 사이에서 왜 계산이 넘쳐나야 하는 거예요?”“그건 다른 얘기야!” 할머니는 세상을 꿰뚫어 보고 원경릉의 심정을 훤히 알고 계시기에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시며, “천하에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대부분 아름답지.”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온유한 눈빛을 보고 시공을 넘어 자기에게 온 할머니의 사랑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은 이런 사랑이다.원경릉은 우문호에 비해 너무 너무 행운이었다.“인생이란 게 그래.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나면 따스한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사람은 다 그래. 길 거리의 거지도 온갖 질시를 받고 초라하고 궁핍하지만 결국 연민을 얻게 될 때가 오는 법이거든.”원경릉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의 이 저기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이리 저택은 분명 흥청거릴 것이다. 하지만 원경릉은 그 떠들썩함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을 보내 우문호를 지켜 보기만 했다.우문호는 어쩌면 취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마취시키려고 말이다. 오늘밤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자. 우문호도 자신을 놔줘야 하니까.원경릉은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준 뒤 소월각으로 돌아갔다.우문호가 늦게 서야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제 막 해시를 지났을 뿐인데 초왕부로 돌어왔다.심지어 술기운도 하나 없다.원경릉이 우문호의 망토를 벗겨주며, “술 안 마셨어?”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턱으로 원경릉의 뺨을 누르는데 턱이 무척이나 차갑다. “안 마셨어, 마시면 감정을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원경릉은 가슴이 아팠다. 우문호와 같이 앉아 뜨거운 차를 따라주고 그윽한 눈빛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오늘 꽃가마가 나가고 어마마마를 뵙고 왔어.”“고마워!”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