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 군주 따지러 오다정오가 되자 과연 옹정 군주가 유민 현주 및 몇몇 부인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옹정 근주의 기세가 아주 시퍼런 게 원경릉에게 원한이 쌓이고 쌓인 모양이다.기상궁이 날듯이 달려와 원경릉에게, 이 사람은 손부인(孫夫人), 이 사람은 상부인(常夫人), 이 사람은 구씨 집안의 둘째 부인이라고 소개했다.구씨 집안 둘째 부인이라고? 원경릉이 자세히 보니 이 부인은 붉은 비단옷을 입고 흰색 여우가죽 망토를 둘렀는데 망토에 특별히 금테를 두르고 작약무늬를 수놓은 게 존귀함을 더했다.마흔이 안되 보이고 눈매가 박정한 것이 생긴 건 곱상한데 볼이 약간 처진 게 옹정 군주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몇몇 부인이 들어온 뒤, 하녀들에 둘러싸여 있는 두 명의 연약한 여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원경릉이 유민 현주는 알아봤고, 다른 하나는 녹색 긴 치마를 입은 여자인데 구씨 집안의 다섯째 아가씨일 게 틀림없다.뜻밖에 이름도 잊었네. 구정물인가 뭔가 했는데.구정물은 이목구비를 따로따로 보면 괜찮다. 갸름한 얼굴에 봉황 눈매, 높은 콧대에 통통한 입술까지.하지만 모아 놓고 보면 영 어색한 게 봉황 눈매는 삼백안 같아서 각박해 보인다. 콧대가 높은 건 좋은데 얼굴에 살이 없어 광대뼈도 같이 튀어나와 각박한 느낌을 더했다. 게다가 지금 쌀쌀맞게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이 눈 흰자위를 까뒤집은 것처럼 느껴졌다.유민 현주는 원래 고결한 느낌으로 지금 이마에 상처가 있고 일부러 자세를 낮춰 가련한 인상을 풍기려고 한다.원경릉은 오늘 쟤들 둘이 올 줄 몰랐다. 결국 오늘 할 얘기는 여자애들이 같이 있어서 좋을 게 없어서다.하지만 기왕 온 거 같이 하지 뭐.안으로 들어와 앉으라고 하고 원경릉이 접대 멘트를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옹정 군주가 먼저 탁자를 치며 소리치길, “태자비, 우리 사이의 맺힌 건 일단 차차하고, 이 일은 자네가 우리 유민일 위해 제대로 처리해야 겠네.”원경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군주께서는 말씀 하시지요, 이렇게 성
원경릉의 반격옹정 군주의 표정이 굳어지며 제 말에 자기가 걸려 넘어진 꼴이 됐다.옹정 군주는 순간 입을 열지 못하는데 구씨 집안 둘째 부인이 옹정 군주를 위해 나서서, “비록 태자 전하께서 명을 내려 악당을 엄히 처벌했다고 해도, 현주가 납치 되고 이미 순결을 잃었으니 당연히 태자 전하께서 책임을 지셔야 지요. 결국 이 일은 태자 전하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둘째 부인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확실히 여자 집에선 순결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현주는 원하세요?”말을 마치고 원경릉은 유민 현주를 봤다.유민 현주는 원래 아직 울고 있을 상태지만 이런 질문을 받고 약간 턱을 치켜 들고 꽃잎에 빗물이 떨어지듯, “이제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요? 제가 원하고 원하지 않고 문제가 아니잖아요.”원경릉이 공감이 간다는 듯, “현주는 너무 괴로워 말아요. 저도 여자인데 현주의 처지를 십분 공감해요. 안심하세요. 내일 회주 관아에 서신을 써서 악당의 신상을 낱낱이 밝히고 만약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으면 제가 직접 현주 일을 주관하지요, 그리고 현주가 시집갈 때 저도 현주에게 혼수를 보탤 겁니다.”사람들이 당황하며 순간 원경릉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옹정 군주가 정신을 차리고 불같이 화를 내며, “태자비, 일부러 이러는 건가? 설마 우리 유민을 그 악당 놈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이젠 아주 제 정신이 아니구나!”“그래요, 태자비 마마께서 그렇게 말하는 건 지나치신 게 아닐까요?”“같은 여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사람을 너무 심하게 깔보시는 군요.”부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원경릉이 이상하다는 듯, “뭐가 제 정신이 아니고, 심하게 깔보는 거죠? 군주와 현주 본인들의 뜻 아닌가요? 현주와 다섯째 아가씨가 악당에게 납치를 당해 악당에게 순결을 잃었다고 두 분이 말씀하셨죠. 저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저는 두 분의 의견을 존중해 드렸습니다. 말씀 그대로 나서서 일을 처리하는데 왜 제 정신이 아닌 거죠?”원경릉은 고개를 돌
막 나가는 태자비옹정 군주가 기함을 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원경릉에게, “너…… 너는 태자비로서 어찌 배포가 편협하기로 이 같은가, 태자 전하는 평생 너 때문에 수절하겠구나!”“맞아!” 원경릉이 한손으로 찻잔을 치자 찻잔이 떨어져 사방으로 파편이 튀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분노를 이글이글 뿜으며, “시집오고 싶은 사람은 와도 돼, 하지만 시집 온 뒤에 내가 걔를 죽일 수 있나 없나 봐. 옹정 군주, 내가 이미 체면 봐 줄 거 다 봐줬어. 소심전에서 나한테 그랬지. 그때 마마들이 계셔서 그분들 난처하실 까봐 당신이랑 안 싸웠는데, 그렇다고 내가 만만한 인간이란 뜻은 아니거든.”“너……” 옹정 군주는 열 받은 나머지 얼굴까지 일그러지며, “지금 이 말 정말 매몰차구나, 우리 유민이 혹시라도 그 일때문에 이마와 용모에 상처를 입었는데도 이렇게 할 셈이냐? 저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혼사를 치른다는 말이야? 저 아이의 일생을 망치려 들어?”원경릉이 싸늘하게 유민 현주를 힐끔 보고, “의원으로서 전문가의 눈으로 보건데 이마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 하지만 심보가 못되고 머리가 나쁜 건 못 고치겠네. 군주는 어서 데리고 돌아가는 편이 낫겠어. 혼수를 많이 보내면 아마 시집 보낼 수 있을 거야.”“맙소사.” 구씨 집안 둘째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자빠지며, “이게 현 태자비가 지닌 아량이란 말입니까? 당신은 아주 돼먹지 못한 여자예요,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요.”“태자비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데?” 원경릉이 반문하며, “아량이 넓은 태자비라는 게 두 눈 멀쩡히 뜨고 온갖 천한 잡년들이 우리 태자한테 들러붙어서 안 놔주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건가? 아량이 넓은 태자비는 초왕부가 어디라고 뻔뻔하게 쳐들어오는 것들을 참아내야 해? 둘째 부인, 어르신 방에 자리 있던 거 같은데? 초두취에 괜찮은 아가씨가 몇 있다고 회왕비가 그러더라. 나리께 보내 드릴까?”같이 따라온 부인들이 이 말을 듣고 도리어 원경릉을 비난하려 들자, 원경릉이 매섭게 쏘아 보고
마지막 일격“해도해도 이건!” 구씨 둘째 부인이 옹정 군주가 이미 열 받아서 반쯤 제정신이 아닌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옹정 군주를 위해 나서며, “유민 현주의 신분이 존귀한데 감히 그녀를 비천한 하녀 취급을 하다니, 태자비 마마께서 이 말을 뱉으신 것은 사람들이 유민 현주의 뒤에 계신 어른을 욕하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겁니까? 천자의 고모님의 체면을 무시하시는 겁니까?”“둘째 부인, 시할머니를 들먹여 날 겁줄 생각 하지도 마!” 원경릉이 아랑곳하지 않고 옹정 군주와 한바탕 해볼 심산이라, 자연히 둘째 부인의 말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어 차갑게, “시할머니께서 오셔도 난 이렇게 말할 거야. 당신들이 말끝마다 유민이 순결을 잃어서 좋은 집에 시집을 못 보낸다고 하는데, 니들 다 유민 현주가 다른 집에 시집가면 남의 멀쩡한 남자 억울하게 만든다는 거 알면서, 왜 우리집 태자 전하는 억울함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여자를 왜 태자 전하한테 떠넘겨? 태자 전하가 쓰레기통이야?”유민 현주가 이 말을 듣고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워 벌떡 일어나 원경릉에게 달려들며 소리치길, “너 죽고 나 죽자!”식칼 하나가 바로 원경릉의 몸 뒤에서 번쩍했다. 식칼은 푸르스름하니 날카롭게 갈려 있고 칼등에는 고기가 약간 붙어 있는데, 원경릉이 식칼을 휘둘러 유민 현주의 걸음을 막아냈다.“누구든 날 한 번 건드려봐 어디. 오늘 누가 태자 전하를 마음에 품으면 그년이랑 전부 다 죽여버릴 테니까!” 원경릉이 울부짖으며 광기가 눈에 어리는데, “그동안 아주 질렸어. 어느 집이든 시집 못 가는 여자 있으면 다 태자 전하께 들이밀 걸 생각하지. 니들은 뭘 믿고 내 남편을 나눠 가지려고 해? 니들은 지금 태자 전하께서 대단한 것만 보이지? 경조부 부윤에 나라에 공을 세운 것만 보이지 그지? 그런데 내가 뒤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 알기나 해? 폐하께 미움을 받던 때 영락하고 초라해서 뜻을 펼치기엔 요원하던 시절에 니들은 다 어디서 뭐했어? 이제 폐
악마 원경릉그래서 본관을 나가 바깥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비로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태자비, 오늘 일은 내가 결코 이렇게 끝내지 않을 거네. 어른을 이토록 존경하지 않다니 칼로 하마터면 날 다치게 할……”옹정 군주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원경릉이 식칼을 들고 쫓아 나오며 소리치길, “하마터면 아니야, 내가 지금 베어버릴 테니까. 어디 입궁해서 고소해봐!”칼날을 번쩍이며 바로 옹정 군주를 베러 달려드는데 옹정 군주가 놀라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주저 앉아 부들부들 떨었다.다른 사람들도 보고 놀라서 얼른 물러서고 마당은 공포로 가득하다.태자비가 미친 거 아냐?미색이 죽자고 원경릉을 끌어 안고 달래며, “태자비 마마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다시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태자 전하를 연모하는 사람을 전에도 7~8명은 베셨잖아요. 됐어요, 그만하세요.”원경릉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진인하고 독기 어린 눈으로 유민 현주의 얼굴을 보며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더니, “이 얼굴 눈에 거슬려, 또 한번 내 눈에 띄는 날엔 얼굴에 칼자국을 내서 못 볼 꼴로 만들어 주지!”유민 현주는 회주에서 납치된 이후로 간이 작아진 데다 특히 악랄하고 음흉한 얼굴에 대해 격한 공포가 생겼는데, 지금 원경릉의 그런 얼굴을 보니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이 되살아나 순간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하녀들이 바로 와서 옹정 군주를 부축하고 기세 좋게 쳐들어 왔던 사람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갔다.원경릉은 그들이 모두 도망간 것을 확인하고 바로 식칼을 미색에게 찔러 주며 대문을 보러 달려갔다. 조각이 들어간 나무문에 또렷하게 칼자국이 남은 것이 마음이 아파서 옆에 선 미색에게, “이런 문 한 쪽 바꾸는데 은자가 얼마나 들까?”“이게 무슨 나무죠? 보아하니 꽤 이름있는 나무 같은데. 은자 수십 냥은 줘야 할 걸요?” 미색이 말했다. 원경릉이 가슴에 피가 맺히듯 한스럽게, “문 한쪽을 망가뜨리고, 살인자란 오명까지 썼는데 앞으로 누구든 감히 태자를
눈덩이처럼 커지는 오해태자 전하는 가엾기도 하시지, 뛰어난 사람은 여복이 많은 게 당연한데 이런 난폭한 여자 기세에 눌려 살아가다니 말이다. 초왕부에는 암컷이면 파리새끼 한 마리도 못 들어가는데 미인과 후궁은 말해 뭐할까.조정의 관원들 조차 우문호를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이 느껴지고, 더욱 심한 건 태자가 돈도 제대로 쓰지 못해서 여기저기 외상을 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불쌍하기도 하지!우문호는 그날의 일을 전혀 몰랐던 것이 원경릉이 절대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우문호가 초왕부로 돌아왔을 때는 옹정 군주가 왔다 갔다는 말을 들었으나, 나중에 태자비가 정에 호소하고 이성적으로 설득시켜 앞으로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로 정리된 줄 알았다.우문호는 귀찮은 게 들러붙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상대했는지 과정을 알아 뭐해. 어차피 원 선생이 다 평정했는데.’그래서 조정 문무백관의 측은한 시선을 한 몸에 받자 우문호는 어리둥절해서 열심히 해석해보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 말없이 누군가 우문호에게 예를 취하며, “이해합니다. 이해해요!”심지어 이날 조정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위태부가 우문호를 잡아 끌더니 종고루(鐘鼓樓) 귀퉁이로 가서, 한숨을 쉬더니 가슴이 아픈 듯 사랑하는 태자 전하를 보고 비분 강개하며, “태자비도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전하를 그렇게 대하십니까?”우문호가 어리둥절해서, “태자비가 절 어떻게 했는데요? 태자비는 저에게 잘 하는데요.”“예, 그러지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받은 일을 언급하지 않는 법이지요……”“아니……” 우문호가 변명하려 했지만 위태부가 비틀거리며 소매속에서 은자 지폐를 꺼내 얼른 태자의 손에 쥐어 주며 태자의 손을 꼭 쥐더니, “자기를 함부로 하지 마세요. 먹고 마시고, 쓸 때는 쓰셔야 합니다.”우문호가 초점 없는 눈으로 흘깃 보니 지폐 겉에 백 냥이라고 써 있는게 아닌가.‘세상에, 노인네가 돈도 많네.’우문호가 뒤에서 제왕과 손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람같이 지폐를
오늘은 내가 쏜다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 다 늙은 남자가 옷 맵시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거야?“애도 아닌데 새 옷이 왜 필요해?” 우문호가 말했다.제왕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지금 형은 태자라고. 또 경조부 부윤이고. 먹고 마시고 쓰는 데 전부 격식이 있는 거야. 사람들에게 하찮게 보이면 안돼.”제왕은 누리는 것에 가장 신경을 쓰기 때문에 궁상맞은 걸 못 본다.우문호는 영문을 모르겠지만 많이 물어볼 수도 없으니 일단 지폐나 잘 챙겨 넣었다. 문득 자기가 백만장자가 된 기분이 들면서 저들이 뭐라고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우문호가 초왕부로 돌아오는 길에 서일에게, “오늘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돈을 주지? 서일, 밖에 무슨 얘기가 나도는 거 아냐?”서일이 주변을 경계하며 우문호에게, “전하, 전하 봉급이 아무리 적어도 소인 건 안됩니다.”말을 마치고 백합화가 수 놓인 염낭을 꽉 쥐었다.우문호가 하찮다는 듯, “네 것은 나도 관심 없어. 내가 지금 가진 게 돈 뿐이거든. 오늘 몇 사람이나 나한테 돈을 줬다고.”서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입니까? 그럼 지금 얼마나 가지고 계신 가요?”“1200냥.” 우문호가 부티를 풍기며 말했다.서일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살랑거리며, “나리, 남안에 있을 때 소인에게 은자 한 냥 빌릴 수 있냐고 물으셨는데 이제 부유해 지셨으니, 갚아야 하지 않을까요?”“그러지.” 우문호가 눈웃음을 지으며, “나중에 은자로 바꿔서 갚아주마. 이자로 50닢 더 주마.”서일이 기뻐서, “태자 전하 감사합니다.”우문호는 마차가 경조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고, “관아에 가는 게 급하지 않으니 태극루(太極樓)에 좀 다녀오너라. 요리 몇 개 시키고 좋은 술 몇 병 준비하고, 저녁식사는 태극루에서 들기로 하지.”“나리, 손님 초대 하시게요?” 서일이 물었다.“그래, 관아에 형제들 초대하려고, 이 달엔 아직 밥 산적이 없으니.” 우문호가 호기롭게 말했다.서일이 툭 던지며, “또 사시게요? 지난달 한
혼인의 계절결국 이리 나리는 술기운이 올라 우문호의 손을 잡아 끌어 손등을 툭툭 치더니, “내 못난 제자가 말이야, 비록 야박하긴 해도 사람은 괜찮아, 태자가 잘 보살펴 주게, 제자를 일반적인 상식으로 판단하면 안되지만, 같은 말을 또 반복하는데, 남자는 말이야, 기개를 잃으면 끝이라고. 강하게 나갈 땐 밀고 나가야 해. 덮어놓고 여자한테 당하면 못 써, 약자 앞에 강하고 강자 앞에 약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은 제자보다 더 세게 나가는 거야. 내일 내가 남편의 위세를 어떻게 부리는지 알려주지, 따끔하게 혼 내주면 고분고분해 진다고.”“원 선생 진짜 잘해요.” 우문호는 이미 거진 취했지만 생존욕구가 강해서 이리 나리가 원 선생의 사부라는 것을 잊지 않고, 속으론 구시렁거려도 겉으론 말하지 않았다. 우문호 기회주의자 거든? 우문호가 이리 나리에게 털어놓은 걸 바로 원 선생에게 일러바치면 우문호만 손해 아냐, 그런 수법엔 당할 우문호가 아니지.“잘한다고? 다 잘한다고?” 이리 나리는 믿을 수가 없다.“잘…….해요 다 잘하죠!” 우문호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나리는 턱을 쥐고,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당혹감을 드러낸 채, “혼인한 남자가 설마 전부 정박아인 건 아니겠지?”이상하다. 이리 나리의 못난 제자는 의술 빼고 뭐하나 좋은 점을 찾으려 해야 찾을 수가 없는데.“혼인한 남자는 전부 행복합니다.” 우문호에게 행복한 미소가 번지며, “이리 나리, 혼인하시죠.”이리 나리는 생각에 잠겼다.혼인?우문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갔다. 원 선생이 전신에 술냄새가 난다고 할까봐 일단 이상한 온천에 가서 몸을 담갔다.아니 몇 번을 얘기했는데 또 취해서 목욕을 해? 원경릉은 잔뜩 열이 받았다.한동안 어장을 안 써서 거미줄 앉았던데 잘됐네.정신 쏙 빠지게 난리 브루스를 추던 시절은 그래도 행복했었다.눈 깜짝 할 새 날이 추워졌지만, 그나마 좋은 소식도 있다. 원경병이 회임을 한 것이다.우리 떡들은 걸을 수 있게 되었다.원용의는 정혼을 했다.미색은 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