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자르다만약 원경릉이 생각한 대로라면 안왕은 확실히 3일의 시간 동안 아라의 심복을 제거해 버리고, 전에 아라와 접선했던 사람을 전부 안왕 사람으로 바꿨다. 물론 전에 아라를 따르던 이들도 전부 안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이나 아라가 사람의 마음을 포섭하는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 뜻밖의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안왕은 일단 전부 바꿨다.안왕은 제일 먼저 아라의 실권을 없애 버린 것이다.안왕비를 다치게 한 사람을 안왕은 쉽게 놔 줄리 없다. 안 그러면 그날 저녁에 사람들을 데리고 출궁해서 진북후를 죽이러 가지도 않았다.하지만 안왕은 충분히 참을성이 있는 사람으로 아라가 자기 눈 앞에서 사흘간 알짱거리게 내버려 두며 아라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아라는 안왕비 일은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거리낄 것 없이 출궁한 것이다.아라는 사식이가 따라붙은 것을 알았지만 전혀 사식이에게 신경 쓰지 않고 마음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전에 사식이의 무술동작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괜찮은 편이었지만 아라 자신과 비해 천지차이다.하지만 사식이가 따라붙은 건 싸우기 위해서라는 걸 알았다. 필시 아라가 무공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해 보려는 것으로 아라도 지나치게 본색을 드러내서는 안된다.아라는 사식이만 신경 쓰느라 마차 한 대가 자신의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마차가 곁에 왔을 때, 안에서 두 사람이 날아와 아라의 오른손과 왼손을 틀어쥐고 마차 위로 올리는 데도 아라는 심지어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제압되어 버렸다.익숙한 얼굴을 보고 아라는 속은 놀랐지만 겉으론 강한 척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사실 짚이는 게 있어 얼굴이 새하얘졌다.이 사람들은 전부 안왕의 수하들로 평소엔 오직 안왕이 명령하는 것만 듣고 아라가 이 사람들을 쓰려면 안왕의 친전이 있어야 했다.이때 공포가 마음을 휩싸고 돌며 아라는 마침내 깨달았다. 요 사흘 간은 풍랑 없이 평온한 날이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사나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아라
아라의 진심아라는 천천히 몸을 오그리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는데 그는 화장대에 기대 두손으로 팔짱을 끼고 천천히 창을 열었다.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 등잔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도 그늘져 잘 보이지 않는다.“불이 너무 어둡군, 내가 똑똑히 안 보이지?” 안왕이 긴 다리를 펴고 아기 팔뚝 굵기의 초를 꺼내 부싯돌로 불을 붙이고 손에 초를 들고 얼굴을 비추니 귀신처럼 음침해 보인다.아라는 전신이 자기도 모르게 덜덜 떨리며, “왕……왕야!”“아라야, 두려 우냐?” 초가 타면서 촛농이 나오자 촛농을 화장대에 떨어뜨리더니 초 바닥을 촛농에 고정시켰다. 분명히 촛대가 바로 옆에 있는데 안왕은 촛대를 손에 들고 가지고 놀기만 하며 차가운 눈을 치켜 떴다.아라가 놀라 이를 딱딱 부딪히는데, “아라야……아라가 잘못 알고 있어, 왕야는 아라를 용서한다.”안왕이 맑은 하늘에 둥근 달처럼 환히 웃자 음침했던 빛은 바로 사라지고, “아라가 뭘 잘못했지?”“아라는 왕비마마께 손을……손을 데서는 안됐습니다. 아라가 잘못했어요. 왕야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라가 오랫동안 충성을 다 바친 것을 기억하시고 아라를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라가 천천히 일어나 침대에 무릎 꿇고 절을 하는데 얼굴이 이미 창백하다.안왕이 촛대를 들고 가서 침대 곁에 걸상에 앉아 피가 베어 나온 아라의 손을 보니, 베어 나온 피가 옥색 이불에 떨어져 마치 분홍빛 장미가 핀 것 같다.안왕이, “네가 날 오래 따랐으니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겠지, 네가 내 곁에 있기 시작한 첫날부터 너한테 얘기했었다. 내가 가장 용서하지 못하는 게 바로 누군가 왕비를 다치게 하는 거라고. 기억하고 있느냐?”“기억합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라가 이마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끄덕이며 당황한 나머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라 기억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아라가 순간 지혜를 잃고 이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왕야,
아라의 최후아라가 냉소를 띤 채, “그래요, 우리 영혼은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그녀는 야심이 없고 순결해요. 그래서 총애를 받는게 당연하다고 치죠. 그런데 세상에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왕야가 편애하시는 거예요.”안왕이 생각해 보더니 곤혹스러운지, “그래? 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맞아요!” 아라가 천천히 열정적으로, “저도 사랑하는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추앙을 받고 싶지 싸우고, 야심을 가지고 싶지 않아요.”안왕이 천천히 손에 든 촛대를 내려놓더니 아무 말이 없다.한참 뒤 안왕이 아라를 보더니, “생각해 보니 확실히 내가 널 홀대했구나, 이렇게 하자, 너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줄 테니 잘 생각해 봐라. 하나는 계속 내 곁에서 머무는 것으로, 후궁이란 지위는 내가 거둬야 할 것이나 안심하거라. 예전보다 잘 대해 주마. 단지 너는 왕비를 건드려서는 안돼. 두번째는 내 봉토로 가서 계속 라 후궁으로 나를 위해 일하고 힘을 모으는 것이다.”아라가 안왕을 보고, “왕야 정말이십니까?”“반드시 당장 결정해야 한다!” 어두운 빛이 보일 듯 말듯 안왕의 눈에 비쳤다.아라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아라는 봉토로 가서 왕야를 위해 무기를 다듬고 말을 준비하겠습니다!”아라는 당연히 봉토에 가는 것을 고른 것이, 노력하기만 하면 그 쌍년을 죽이고 죽인 뒤에도 아주 끝장을 내서 자신의 원한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안왕은 아라를 보고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아라는 정말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안왕이 갑자기 표정일 사나워지는 것을 보고 아라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안왕은 아라의 반응을 기다렸던 것으로 이건 일종의 떠보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안왕의 손에서 금빛이 번쩍하더니 도금된 꽃이 조각된 촛대가 아라의 머리에 내리 꽂혔다.아라는 자신의 피가 사방으로 튀는 것을 보고 눈 앞이 온통 붉은데, 안왕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력, 야심이 넌 아직 모든 것보다 중요하구나. 봤지? 이게 너와 그녀의 차이야. 그녀
연아는 다시 임신할 수 있나요?안왕은 아라를 처리한 뒤 다시 궁으로 돌아갔다.원경릉도 궁에 돌아가 안왕비의 상태를 보니 점진적으로 안정되고 있었다. 어의가 약을 쓴 뒤로 출혈은 있었으나 심각한 건 아니고 잔류한 태반이 흘러나온 것인데 안왕비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원경릉은 어떻게 안왕비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엄마로 이 고통이 어떤 건지 알기 때문이다.원경릉이 흘끔 안왕비를 보니 눈가에도 고통의 빛이 드러났다.오늘밤은 역시 원경릉과 안왕이 침전에서 밤을 샐 것 같다.안왕비는 약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허약한 몸으로 정신적으로도 동요가 심해 원경릉은 안정제를 먹여 푹 재웠다.원경릉은 밤새 안왕과 마주하는 게 싫어서, 나가서 걸으려 하자 안왕은 안왕비의 상태가 급변할 까봐 원경릉에게 침전에서 같이 돌보기를 원했다.원경릉은 전에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안왕비 상태가 급변했던 걸 떠올리고,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안왕에게 그때 기억이 남아 있다는 걸 눈치챘다.원경릉은 장의자에 누워 쪽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안왕은 의자를 원경릉 앞으로 끌어와 원경릉을 바라봤다.이렇게 주시하니 잠이 들었다고 해도 안정을 취하기 힘든데 원경릉은 잠도 들지 않았으니 말해 뭐 해?원경릉은 눈을 뜨고 안왕의 섬뜩 거리는 눈빛을 보더니, “하고 싶은 말 있어요?”안왕이 어색한 표정에 쉰 목소리로,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겁니까?”원경릉이, “전 잘 몰라요, 그건 어의에게 물어 보세요. 어의가 어쩌면 더 잘 알 거예요.”안왕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연아는 줄곧 날 위해 아이를 낳고 싶어했어요, 만약 이번에 속을 다쳐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면 괴로워 할 거예요. 난……연아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이것 만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네요.”원경릉은 안왕의 말투에서 무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안왕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안왕비가 가장 원하는 것은 주지 못하는 느낌?원경릉은 안왕의
진북후 석방진북후가 경조부를 나서, 사바의 자유로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날이 쾌청하다. 며칠을 눈이 올 듯 말듯 꾸물거리더니 결국 안 오고 날이 맑은 것처럼, 세상사도 날씨같이 머리를 굴려 봤자 알 수가 없다.우문호가 다리를 절며 환송하는데 진북후가 우문호를 부축하며 정중하게, “태자 나리, 제가 목숨을 빚졌습니다.”우문호가, “어르신 그런 말씀 마세요. 전 경조부 부윤으로 어르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그럼 어르신은 어떻게 보답하실 생각이신 데요?”진북후가 한 손으로 우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지하게, “정말 수양딸을 거둘 생각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수양딸을 시집보내 태자의 은덕을 갚지요.”우문호가 한 손으로 막으며 엄숙하게, “집에 질투쟁이가 있어 서요, 참아주세요.”진북후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농담입니다. 태자 전하 겁내지 마세요, 태자비 마마는 좋은 분이십니다. 전하께서 이런 대우 하실 만 합니다.”진북후는 한 걸음 물러나 예를 취하고 미소를 거둔 뒤, “태자 전하 앞으로 만약 제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태자 전하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갔다.우문호는 늠름한 뒷모습과 함께 진북후부의 마차가 맞은편 길에서 오는 것을 봤다. 진북후는 마차에 올라 고개를 돌려 우문호를 한번 쳐다보고 떠났다.우문호가 씩씩거리며, “목숨을 구해줬는데 금일봉도 척 내놓지 않다니, 돈을 안 주겠다는 의도인데 아니 다 큰 어른이 예의도 차릴 줄 모르나?”다음날 아침 일찍 우문호는 구사의 부축을 받고 조정에 출사했는데 며칠 요양하고 상처는 이미 많이 좋아졌으나 특정 부위를 당기는 바람에 여전히 신중한 편이 낫다. 그래서 출입할 때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았다.우문호는 안왕을 위해 사정하며 ‘경조부 일은 형제 사이의 악감정 때문이었으며, 진북후 사건과는 무관하고 지금 형제 사이에 이미 악수하고 화해했다. 앞으로 서로 공경하며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해 아바마마의 시름을 덜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했다는 것이다.비
안왕비의 퇴원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기숙사를 새로 짓는다고 인부를 모집하자, 너도나도 자진해서 짓는 걸 도우려 왔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전에 기숙사를 헐었던 사람들이었다.안왕비가 궁을 떠나 안왕부로 돌아가던 날 원경릉이 한차례 다녀왔는데 주 목적은 안왕비가 자리를 잡은 뒤 다시 검사하기 위해서 였다.안왕비는 눈에 띠게 우울해 보였는데 가는 길에도 말이 없고 안왕부에 도착해서 안왕에게 태자비와 개인적인 얘기할 게 좀 있다고 여자들 얘기니 먼저 나가시라고 했다.안왕이 관대하게 하하 웃으며, “얘기는 좋지만 나와 다섯째의 험담은 안 돼요.”안왕비도 웃으며, “그거야 당연히 안 하죠.”안왕이 그윽하게 안왕비를 보더니 뒤를 돌아갔다.안왕비는 안왕이 문을 나가는 것을 보고 시녀 아채에게 가서 문을 닫고 밖에서 지키라고 했다.원경릉이 좀 이상해서 안왕비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이건 완전 누구 들을 까봐 중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 같은데?아직 어리둥절한 상태로 원경릉은 안왕비에게 손목을 잡혔다. 안왕비는 중상을 입고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로 이렇게 엄청난 힘을 쓰는 것이다, “태자비 마마, 제가 왕야를 대신해 사죄 드립니다!”원경릉은 안왕비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고 웃어 넘기려, “무슨 말씀이셔요, 사죄는 무슨 사죄예요?”안왕비가 깊이 한숨을 내 쉬더니 슬픈 눈으로, “부군 생각엔 제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전에 아라가 개인적으로 형부 사람과 대학사와 왕래하며 서재에서 비밀스럽게 협상을 주고받더군요. 당시 저는 의심이 들어 뒤에 친정에 갔을 때 오빠에게 물어봤더니 오빠는 별 말이 없었지만 어렴풋이 부군이 태자와 맞서고 있다는 걸 알았죠. 태자의 지위를 빼앗으려는 의도로 말이죠.”원경릉이 안왕비를 보며, 사실 남편이 하는 모든 걸 다 아내가 아는 게 당연하지만, 안왕은 은밀하게 진행하는 일이 너무 많고 안왕비가 그런 일에 물드는 걸 원하지 않았다.원경릉이 천천히 손을 빼며, “그건 남자들 사정이고 우리는 그런
원용의가 결혼을?손왕비가 기쁘게, “맞아, 친정 오촌 조카가 무과 장원급제 출신인데, 그 맹꽁이 녀석이 무술에만 심취해 있는 줄 알았더니, 용의를 보더니 한눈에 반할 줄 누가 알았나. 게다가 용의가 혼례를 치렀던 적이 있다는 걸 전혀 개의치 않더라고.”안왕비가 이 말을 듣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원용의에게, “진심으로 축하해요. 너무 좋네요. 행복해야 해요.”원경릉은 사실 축하의 말이 안 나오는 게, 원용의가 사실 일곱째를 좋아하고 일곱째의 마음에도 원용의가 있지만 서로 사이가 틀어졌을 뿐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원용의가 반드시 일곱째와 다시 합쳐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말의 예고도 없이 이렇게 쫓기듯이 시집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원용의는 이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로 얼굴이 빨개져서, “됐어요, 얘기하지 마세요.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닌데. 그냥 매파를 넣은 것 뿐이잖아요.”“듣자 하니 노마님도 수락하시려는 마음이 있으시다면서. 이제 너만 마음 정하면 되는 거잖아.” 손왕비가 웃으며 말했다.안왕비가 웃자 원용의 본인도 쑥스러워 하며 웃었으나 원경릉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다.그래서 안왕부를 나와서 원경릉은 원용의를 끌고와 마차에 태웠다.“정말 무과 장원한테 시집갈 생각이야?” 원경릉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경릉은 원용의와 사이가 이 정도로 말 해도 될 만큼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전에 동서 지간 이어서가 아니라 친구로서다.“할머니가 동의하셨어요.” 원용의가 눈을 내리깔고 작게 말했다.“넌? 혼인 당사자는 넌데 할머니가 동의하시고 말고 뭐가 중요해?” 원경릉은 마음이 급한 것이 이 꼬맹이는 늘 주관이 뚜렷하더니, 뜬금없이 이 일만 할머니 말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구는 건 아니지?하지만 원용의는 전에 일곱째의 후궁으로 시집 갔던 것도 노마님의 뜻이었다. 원용의는 손수건을 꼭 쥐고 아무 말없이 평소의 쾌활함은 전혀 없고 마치 보통의 규수 같다.그렇다. 지난 사랑이 원용의의 마음에
원용의 혼인은 어디로?원용의가 속눈썹을 바르르 떨더니 얼른 고개를 들고, “만약 사랑이 괴로움과 상처를 의미한다면 자신을 그렇게 학대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사랑하고 말고는 저에게 조금도 신뢰를 주지 못해요. 사랑은 일종의 감각이지 조건은 아니니까요. 사랑은 사라질 거지만 조건은 그렇지 않죠. 무과 장원급제자는 선량하고 무공이 강하고 착실한데다 승부욕이 있어요. 이런 성격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죠. 남편감으로 적합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보세요. 제왕 전하께서 처음에 뼈 속 깊이 사랑하는 주명취를 찾았지만 마지막에 결국 결말이 어땠나요?”원용의는 마지막 말을 할 때 평정심을 가장하지 못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원경릉은 뭐라고 반박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얼핏 그럴싸한 얘기가 아닌가.“정말 결정한 거야?” 원경릉은 이렇게 묻기만 했다.원용의가 한참을 침묵하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셈이죠.”원경릉이, “만약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난 찬성하지 않을 게 확실해. 네가 혼인하는 걸 찬성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가 쫓기듯이 혼인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거야. 만약 일곱째와의 감정을 포기했다면 제일 좋은 건 원래 계획대로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다니다가 힘들면 돌아와서 이미 감정은 다 내려놨으니 다시 마땅한 사람을 찾아 혼인하거나, 마음 속에 여전히 그가 있으면 그때 무과 장원 급제에게 시집을 가도 그에게 불공평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원용의가 작게, “만약 그에게 시집가는 걸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그에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럴 수 있다고 믿고요.”원용의는 고개를 들고 흥분한듯 원경릉을 보고 웃으며, “사실 원 언니는 절 위해 기뻐해 주세요. 줄곧 한가지를 마음속에 두는 고집스런 성격은 피곤 해요. 전 포기할 수 있어요. 넓게 볼 수 있죠,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 절 축복해 주세요. 잘 할 거예요.”원경릉은 하는 수 없이, “만약 네가 진심으로 나에게 축복을 원한다면 나도 진심을 다해 축복해. 하지만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