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의 혼인은 어디로?원용의가 속눈썹을 바르르 떨더니 얼른 고개를 들고, “만약 사랑이 괴로움과 상처를 의미한다면 자신을 그렇게 학대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사랑하고 말고는 저에게 조금도 신뢰를 주지 못해요. 사랑은 일종의 감각이지 조건은 아니니까요. 사랑은 사라질 거지만 조건은 그렇지 않죠. 무과 장원급제자는 선량하고 무공이 강하고 착실한데다 승부욕이 있어요. 이런 성격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죠. 남편감으로 적합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보세요. 제왕 전하께서 처음에 뼈 속 깊이 사랑하는 주명취를 찾았지만 마지막에 결국 결말이 어땠나요?”원용의는 마지막 말을 할 때 평정심을 가장하지 못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원경릉은 뭐라고 반박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얼핏 그럴싸한 얘기가 아닌가.“정말 결정한 거야?” 원경릉은 이렇게 묻기만 했다.원용의가 한참을 침묵하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셈이죠.”원경릉이, “만약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난 찬성하지 않을 게 확실해. 네가 혼인하는 걸 찬성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가 쫓기듯이 혼인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거야. 만약 일곱째와의 감정을 포기했다면 제일 좋은 건 원래 계획대로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다니다가 힘들면 돌아와서 이미 감정은 다 내려놨으니 다시 마땅한 사람을 찾아 혼인하거나, 마음 속에 여전히 그가 있으면 그때 무과 장원 급제에게 시집을 가도 그에게 불공평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원용의가 작게, “만약 그에게 시집가는 걸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그에게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럴 수 있다고 믿고요.”원용의는 고개를 들고 흥분한듯 원경릉을 보고 웃으며, “사실 원 언니는 절 위해 기뻐해 주세요. 줄곧 한가지를 마음속에 두는 고집스런 성격은 피곤 해요. 전 포기할 수 있어요. 넓게 볼 수 있죠,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 절 축복해 주세요. 잘 할 거예요.”원경릉은 하는 수 없이, “만약 네가 진심으로 나에게 축복을 원한다면 나도 진심을 다해 축복해. 하지만
원용의와 무과 장원사식이 얘기로 무과 장원과 원용의는 3번 만났다고 했다.원용의가 봄에 산책을 나갔을 때 우연히 무과 장원을 만났고 둘이 같이 꼬마를 구해주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고 했다.안면을 튼 뒤 서가(西街) 장신구점에서도 한번 만났는데 그때 무과 장원이 모친의 생신선물을 사러 왔다가 마침 가게안에서 물건을 사고 있던 원용의를 만났다.세번째 만남은 바로 무과 장원이 원용의에게 매파를 넣은 것으로 이 각 잡힌 청년은 뜻밖에 자기가 직접 따라 왔다.“할머니는 무과 장원이 말주변이 없고, 충분히 똑똑하질 못한데다 남녀의 사랑을 이해못한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용의 언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모르는 건 좋은 일이고, 사람이 그렇게 똑똑해서 뭐하냐며, 말주변이 없는 것도 부부간에 대화를 좀 적게 하면 되는 거라고 자기는 괜찮다고 해요.”“용의는 일곱째를 얼른 잊어버리게 할 사람을 찾고 싶은 거구나.”“맞아요, 전에 누군가를 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찾는 거란 말을 들었 대요. 이 말은 태자 전하께서 제왕 전하께 하신 말씀인데 제왕 전하는 안 들으시고, 언니가 새겨 듣네요.”원경릉은 기가 막혔다. 우문호는 자기가 결혼 좀 했다고 무슨 전문가라도 되나 보지? 어디 남의 사랑에 ‘지적질’이야.“원 언니, 설득하지 마세요. 저도 해봤고 집안 사람들이 다 해봤는데 듣지를 않아요.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놔두세요. 이렇게 계속 제왕 전하를 그리워하는 것도 옳은 건 아니니까, 어쨌든 인간은 앞으로 나가야 하잖아요. 제왕 전하는 주명취를 내려놓지 못하신 거 같은데, 이제라도 정신차렸으면 됐죠. 만약 앞으로 3년이고 5년이고 더 기다렸는데도 여전히 제왕 전하께서 주명취를 못 잊고 계시면 그야말로 꽃다운 시기를 날려 보내는 게 아니고 뭐예요?”원경릉은 사식이가 이렇게 세상사를 깊이 숙고하고 있을 줄 몰랐다. 처음 막 왔을 때에 비해 사고가 많이 성숙했고, 요 일년동안 모두 성장하고 있다.사식이도 눈깜짝할 사이에 다 큰 처녀가 되었고, 유치함이 눈에 띄게
우문호의 비자금일반 하인들이 전부 수령한 뒤엔 각 분야 총무들 차례로, 보통 총무는 2냥씩이다.만아와 기라는 소월각의 총무로 두 사람은 모두 2냥의 은자 외에 500닢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아는 헤헤 웃으며 사식이에게, “있다가 만둣국 사줄 게요.”“앗 싸!” 사식이가 눈을 깜박이며, “다음엔 제가 통닭 쏠게요.”사식이는 지금 초왕부에서 월봉을 받는데 원씨 집안 쪽에도 받고 있어서 양쪽으로 월봉을 받는다.사식이는 초왕부에서 은자 5냥을 받는데 처음엔 필요 없다고 했지만, 나중에 원경릉이 용돈으로 쓰라고 해서 겨우 받게 되었다.서일 차례가 되어 직접 손을 뻗어, “태자비 마마 감사합니다!”묵직한 돈 주머니가 서일 손에 놓이자 열어보고 다시 얼른 덮더니 눈을 크게 뜨고, “맙소사, 잘못 됐죠?”“맞아요, 10냥!”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가져가세요. 이달에 분주하게 저를 따라 산 넘고 물 건너 고생이 많았어요.”우문호가 한쪽에서 듣더니 질투의 눈초리로 서일을 째려보며, “쟤가 10냥이면 나는?”“셋 다 10냥씩 입니다.” 원경릉이 나눠 주자 우문호가 한 손으로 받으며 불만스럽게, “그럼 내가 서일이랑 같은 거잖아?”원경릉이, “6품 관원이 일년에 받는 녹봉이 고작 은자 45냥인데, 자기는 한달에 10냥인데 적다는 거야? 이 10냥은 사실 용돈에 불과하잖아. 먹고 마시는데 드는 비용은 집에서 쓰니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왜 모자라는 걸까? 난 한달에 2냥도 아직 못쓰는데.”원경릉이 장부를 대조해 보더니 지출 장부에서 과연 손을 댄 흔적을 발견했다. 매달 구매하는 고기가 의외로 많이 는 것으로 초왕부의 고기는 대부분 궁에서 공급해 주므로 필요해서 구매하는 양은 적다. 그런데 여기 장부에 궁에서 보내오는 고기를 지출할 은자로 처리해 놓았다.원경릉이 계산해 보니 우문호가 적어도 대충 은자 20냥을 횡령했다.원경릉은 알면서도 입을 다문 게, 우문호가 지금 경조부 부윤으로 있으니 슬하의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밥도 사고 술도 사는데 돈
제왕의 본심비록 우문호가 제왕과 동그란 얼굴 계집애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는 했으나 이 날은 짬을 내서 냉정언과 구사를 초대해 같이 술을 마시기로 약속하고 겸사겸사 일곱째 집에 같이 술 마시러 갔다. 헤헤거리며 원경릉에게 동그란 얼굴 계집애가 일곱째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해주겠 노라고 자신이 이 일을 해결할 것처럼 떵떵거렸다.구사는 결혼한 이후 소위 남자들끼리 모임에 흥미가 별로 없고 시간 나면 얼른 집에 가서 아내랑 같이 있는데 일치감치 아이들이 생겨서 태자 전하 집안과 사돈을 맺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그래서 구사는 대충 몇 잔 마시고 가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우문호가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맞다, 너희들 알고 있어? 원용의가 시집간데.”구사는 바로 자세를 고쳐 앉고 무의식적으로 냉정언과 함께 제왕을 봤다.제왕은 막 잔을 들고 시시껄렁하게 미소를 띠고 떠들다가 우문호의 말을 듣더니, 번지던 미소가 순간 입가에 딱딱하게 굳었다.그런 뒤 세사람은 제왕의 미소가 울고 싶은 표정으로 바뀌더니, 다시 영혼 없는 미소로 바뀌는 것을 봤다. 제왕이 “그래요? 그거 정말 축하할 일이군요. 어느 집안 공자께서 이런 행운을 채 가셨을까? 원용의는 좋은 아가씨죠, 누가 장가를 들던 복 받은 겁니다.”구사가 살짝 제왕의 어깨를 두드리며, “제왕 전하, 울고 싶으면 우세요. 비웃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제왕이 하늘을 보고 하하하 세번 웃더니, “울긴 왜 웁니까? 이렇게 좋은 일에. 저와 그녀는 비록 그런 적이 없지만 어쨌든 한때 부부였는데 당연히 진심으로 기쁘죠. 어? 그런데 전에 그녀가 떠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길을 떠나지 않고 혼인을 하게 된 거죠? 여자의 마음이란 이렇게 변덕스럽다니 까요. 그래도 어쨌든 잘됐네요. 잘 됐어요. 한 잔 하죠.”제왕은 잔을 들더니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한 얄팍한 미소를 띠고, “자, 우리 그녀를 위해 건배합시다.”우문호가 술 주전자를 밀어주며, “한 주전자 어때?”“좋아요, 좋아!” 제왕이 잔을 내려놓고
차였어제왕은 한 소리 듣고 몹시 부끄러운지 퉁명스럽게, “누가 포기 못한데요? 마음 속에 그녀가 있었던 적 한번도 없거든요.”“이 닭대가리가!” 우문호가 한대 갈기며, “남의 약혼자를 헐뜯으면서 마음속에 그녀가 없어? 넌 자신의 생각도 인정하질 못하냐? 말 좀 겸손하게 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죽이기라도 한데?”제왕이 술 한주전자를 마시고 약간 어지러우면서도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이건 고집 문제가 아니라 전 그냥 그녀가 좀 더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닥치는 대로 무관을 고르지 말라는 거예요. 만약 좋은 사람을 찾으면 저도 분명 축복할 거라고요.”우문호가 제왕을 보고 절망하며 오늘밤 자기는 노숙 당첨임을 직감했다.“가자!” 우문호가 화가 나서, “다들 가자, 술 더 안 마셔.”제왕이 술 주전자를 잡고, “ 왜 안 마십니까? 계속 마셔요!”구사처럼 둔해 빠졌어도 눈치를 챈 게 뒤쪽 병풍을 흘끔 보니 아래 꽃신 두 켤레가 보였다.우문호가 한숨을 쉬며, “어휴, 넌 평생 혼자 살아도 마땅해.”말을 마치고 냉정언과 같이 일어나 나갔다.“다들 왜 가십니까? 더 마셔요!” 제왕이 고함을 쳤다.우문호는 술 한잔을 제왕의 얼굴에 끼얹고, “마셔, 마시고 죽어라. 아내도 없는데 마셔.”제왕이 일어나서 좀 화가 나는지, “맞아요, 전 아내가 없어요. 죽었어요.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왜 제 상처에 소금을 뿌려요?”병풍 뒤에서 원경릉이 허탈하다는 듯 원용의를 부축하고 나왔다. 사실 원경릉은 우문호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은 것이 이런 결말을 맞게 될까 봐서 였다. 제왕이 다른 건 뭐 특별한 게 없는데, 고집불통에 말을 꼭 저딴 식으로 한다.제왕이 원용의를 얼핏 보고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순간 굳어서 웅얼거리듯, “당……당신이 왜 여기?”“태자 전하께서, “ 원용의는 서늘한 눈빛으로 마치 마지못해 냉정하게 예의를 차린 얼굴로, “저에게 여기서 왕야의 진심을 들어보라고 하셨어요. 듣고 나니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잘 알았어요.”
상심한 원용의우문호가 제왕을 연무장으로 끌고 가며, “가자, 형이랑 대련하자.”“안가!” 제왕이 몸부림치며, “이거 놔, 난 형의 적수가 아닐 뿐더러 형의 모래주머니 노릇도 하기 싫어. 서일이랑 해.”우문호는 제왕을 다짜고짜로 연무장에 끌고 가서, 그대로 아주 떡이 될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패더니 정신 못 차리는 제왕에게, “넌 지금 아직도 주명취 생각이야?”제왕이 땅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며 억지로 눈을 뜨려고 애쓰는데 간신히 실눈을 떠 우문호의 파랗게 질린 얼굴을 봤다.형은 조금도 힘든 기색이 없잖아.“형,” 제왕이 한손으로 우문호를 잡아당기며, “누워 봐, 물어볼 게 있어.”우문호가 앉아서 한 발로 머리를 차고, “물어도 되는데 말 같은 소리를 물어봐라.” 제왕이 고개를 돌려 우문호를 보는데 자기 입가에 피가 베어 나와있다. “즐거워?”“안 즐거워!” 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내가 묻는 건 형은 형수랑 같이 있으면 즐겁냐고?” 우문호의 비자금 주머니가 반쯤 밖으로 삐져나오는 걸 보고 제왕이, “비자금까지 숨겨야 되고, 밥 한번 사려면 벌벌 떠는데 즐거워?”“넌 몰라 임마,” 우문호가 헤벌쭉 웃더니, “이건 부부 사이의 감정이야. 그리고 뭔 재주로 내가 밥 사게 만들 건데? 네가 나보다 한참 부자잖아.”“여유는 다른 얘기고, 내 말은 형이 별로 잘 못 지내는 거 같아서.”“그건 너지. 여우 같은 마누라에 토끼 같은 새끼에, 내가 못 지낼 게 뭐가 있냐?” 우문호가 코웃음을 쳤다.여우 같은 마누라에 토끼 같은 새끼라고? 제왕은 멍하니 입가에 피를 닦으며, “그래, 평범한 백성들이 추구하는 게 그거지? 전에 주명취와 같이 있을 때 바란 것도 그거였어.”우문호는 제왕을 한 대 더 때리고 한숨을 쉬며 제왕 일은 상관 않기로 하고, “가자, 죽어야 정신을 차리지. 앞으론 너 상관하나 봐라.”이 돌대가리, 제왕이 알아듣게 하려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아도 모자라겠다.제왕은 팔베개를 하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며, 달달 떨면서
출장과 친정진북공은 구사의 아버지로 일찌기 숙북(肅北)을 평정한 장군으로 진북후(鎮北侯)로 봉해졌다가 후에 여기에 더해 공작(公爵)의 지위에 봉해졌다. 구사의 아버지 구공(顧公)은 전형적인 무장 성격으로 성질이 급해 성지가 내리자 다음날 바로 찾아와 태자 뵙기를 청했다.이번은 군영 내의 순시로 적어도 3개 군역을 다니게 되니 보름은 족히 필요했다. 우문호는 아직 짐도 다 꾸리지 않아서 성지에서 언급한 대로 2~3일 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우문호는 경조부 일을 아직 더 인계해야 해서 구공에게 이틀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부윤 나리는 가라고 해서 그냥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구공은 우문호는 내버려두고 자기만 먼저 남영으로 가서 우문호를 기다리겠다고 했다.우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같이 가기로 한 구공이 먼저 갔다.우문호는 부득이 관아에 가서 보좌관에게 잠시 책임을 맡겼다.보좌관이 일을 분배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구공은 정말 남영으로 출발해버렸고, 우문호는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아예 하루를 완전히 늦게 출발하기로 하고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이번에 출장을 다녀와서 경호에 한번 다녀와야 겠다고 했다.본래 가고 싶었는데 일에서 몸을 뺄 수가 없었다.원경릉은 경호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말이 나온 김에 설날 연휴에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가자고 했다.우문호는 다음날 서일을 데리고 출발했다.우문호가 떠난 다음날 폭설이 내렸다.이번 눈은 오래 묵혔다 내린 것으로 계속 내리길 바랬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내린 것이다.연말이 되고 초왕부도 안팎으로 바빠졌으나 다행히도 탕양이 여러모로 애를 써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처리하는 통에, 원경릉도 반나절 짬을 내서 할머니를 모시고 정후부 할머니를 문병하러 갈 수 있었다.가는 김에 정후부에 생활비도 좀 전하기로 했다. 원경릉은 할머니를 꽁꽁 싸맸는데 전문가를 불러 할머니를 위해 두꺼운 솜옷을 만들어드렸다. 할머니는 환경보호주의자로 동물성 모피를 쓰지 않아서 더 많이
엄마엄마원경릉이 놀라 경단이를 봤다.경단이가 조막만한 손으로 원경릉의 치마꼬리를 잡고 머리를 들고 입에 침방울을 튀기며 맘마마마 오물거리는데 뭘 씹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엄마’라는 소리를 낸 모양이다.원경릉은 얼른 찰떡이를 내려놓고 한 손으로 경단이를 안아 올려, “뭐라고 그랬어? 한 번 더 해보자.”경단이가 ‘아웅아웅’ 하더니 머리를 원경릉의 가슴에 폭 대고 , “엄마, 엄마!”원경릉은 미친 듯한 기쁨이 차올라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경단이 얼굴에 연거푸 뽀뽀를 하며, “경단아 엄마라고 불러봐, 엄마.”최근 많이 바빠서 거의 아이들을 데리고 있지 못했다. 엄마라는 발음이 어머니보다 쉬워서 전에 애들에게 엄마로 가르쳐 주긴 했지만, 다 합쳐 2번밖에 못 가르쳐서 경단이가 부를 수 있을 거라고 완전 상상도 못했다. 경단이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엄마한테 꼭 붙어 있는데 세상에나, 만두가 질투의 화신처럼 뒤뚱뒤뚱 일어서더니 살집이 많은 주먹으로 경단이를 때리고 입으로, “엄마, 엄마!”할머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만두가 제법 묵직하다는 것도 잊고 한 손으로 번쩍 안아 올려, “우리 만두도 똑똑하네, 하지만 동생은 때리면 안돼요, 알겠지? 동생은 ‘아이 예쁘다’ 해 주는 거야.”“낭빠나빠……” 만두가 경단이를 가리키며 웅얼웅얼, “뙈찌, 떼찌!”경단이도 몸을 틀어 형 만두에게 매달려 때리려고 하는데 조그만 주먹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제법 격렬하게 싸운다.원경릉이 보고 있다가 웃긴 건지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얼른 떼어놓고 둘 다 칭찬도 하고 혼도 냈다. 찰떡이는 동그마니 앉아 칠흑 같은 눈동자를 별처럼 반짝이며 형들에게 활짝 웃었다.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작은 주먹을 들썩들썩 휘두르더니 몸도 같이 까딱까딱 한다.“어머? 이거 편 가르고 편 먹기인가?” 할머니가 즐거워 하며 찰떡이에게, “우리 찰떡이는 누구 편인가? 둘째 형이야 큰형이야?”“때찌, 때찌……” 찰떡이가 소리를 지르는데 ‘때찌’라는 말이 훨씬 또렷한 것이 경단이나 만두보다 발음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