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태자의 후궁 시비원경릉은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는 게 미련이 철철 넘칠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그리고 옹정 군주는 어쨌든 손위 사람이라 원경릉이 가서 뵙자 옹정 군주가 입가에 신분에 걸맞지만 낯선 미소를 머금고, “태자비, 예는 됐네.”말을 마치고 옹정 군주는 고개를 돌려 딸 유민 현주를 봤다.관례로 보나 황실의 법도로 보나 유민 현주는 원경릉에게 예를 취해야 하지만 원경릉은 친밀하게 대하려고, “예는 됐습니다. 앉으세요.”하고 말했다.그런데 유민 현주는 아예 예를 취할 생각도 없이 꼼짝 안고 앉아서 담담하게 눈을 내리 깔고 원경릉을 쳐다보지 조차 않았다.난감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싸늘해 졌는데, 자리에 있던 몇몇 부인은 불안한 나머지 일어났다. 덕비도 당황해서 옹정 군주를 보며 그녀가 한 마디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손을 뻗어 무릎 위에 비단에 주름을 펴고 유민 현주와 마찬가지로 교만하고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원경릉은 이런 난처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지만 다행히 덕비가 상황을 원만하게 수습하며, “다들 가족이니 예의에 구애될 게 뭐가 있나, 태자비도 어서 앉게.”호비도, “그래, 어서 앉게, 고생 많았네.”호비는 이미 배가 불러서 나한상에 앉아 몸을 뒤로 기대야 겨우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원경릉이 앉고 덕비가 원경릉을 보고 칭찬하며, “태자비, 자네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큰 일을 해낼 줄 몰랐어, 마음으로 자네의 매력에 감동했네. 아니 경성의 규방에 자란 규수가 어디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나?”덕비는 일부러 이렇게 얘기한 것으로, 덕비와 원경릉 사이는 이렇게 격식을 차린 말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일부러 대놓고 칭찬해서 옹정 군주 모녀에게 들려 주려는 생각이었다.호비도 웃으며 말을 이어, “덕비 언니 말이 맞아요, 태자비는 정말 능력이 있다니까요, 우리 여자들의 자랑이고 모범이에요.”원경릉이 두 사람을 보고 약간 허탈한 것이 원래 난처한 상황인데 둘이 갑자기 과찬을 늘어놓는 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옹정 군주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말을 멈추었다. 특히 호비의 웃음소리는 그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때 손왕비는 원경릉에게 눈짓으로 그녀를 상대하지 말라고 했다.원경릉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자리에서 일어서서 덕비에게 다가가 공손히 말했다.“덕비 마마님, 천천히 계시다 가세요.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원경릉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비가 말을 꺼냈다.“본궁도 좀 걸어야겠어요.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배가 뭉치는 것 같네요.” “지금 시기에 배 뭉침을 조심해야 합니다.” 원경릉은 호비를 부축하며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지금 몸이 어찌나 무거운지 일어서면 발도 안 보입니다. 날이 갈수록 몸이 무겁고 힘들어요. 하루빨리 애를 낳고 싶다니까요?"덕비는 호비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자네는 그래도 무공을 배웠잖아. 태자비는 저 여린 몸으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고.” 덕비와 호비의 관계가 좋아 보이자 옹정 군주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옹정 군주는 덕비를 바라보며 말했다.“덕비 마마, 본군주는 지금까지 고고한 덕비 마마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태자비에게 아첨을 하는 모습이 보여 조금 그렇네요. 마마께서 후궁의 기강도 잡지 않으시는 것 같고, 본군주는 마마님과는 결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옹정 군주의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였다.‘방금 덕비의 말에 태자비를 아첨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고? 그냥 사실을 말한 것 아닌가?’옹정 군주의 말에 덕비가 얼굴을 붉혔다.“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네요. 그럼 군주는 이만 나가주시지요.”덕비의 말에 옆에 있던 유민 현주(柔勄縣主)도 콧방귀를 뀌며 옹정 군주를 따라 나갔다.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원경릉은 몸으로 호비를 막았다. 혹여나 두 사람이 지나가면서 호비의 배를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옹정군주는 속에서 천 불이 끓었고 원경릉이 호
다행히도 원경릉이 넘어지면서 호비의 팔을 잡아끌어 호비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지는 않았다. 호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했다.“배가 너무 아픕니다.”임신한 호비가 배를 부여잡고 아프다고 신음하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조마조마했다. 기왕비는 한달음에 달려와 호비를 부축하며 물었다.“태기가 올라온 게 아닙니까?”옹정 군주와 유민 현주도 호비가 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지라 두려움에 입술을 덜덜 떨었다. 사실 옹정 군주도 호비를 다치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분풀이를 하려고 원경릉을 밀친 건데 예상 밖으로 호비를 다치게 했다. 심지어 호비는 황제의 아이를 품고 있는데, 만약 그녀의 뱃속의 아이가 잘못된다면 옹정 군주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옹정 군주가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본 유민 현주가 갑자기 바닥에 납작 엎드리더니 큰소리로 말했다.“태자비가 일부러 호비 마마를 잡고 넘어지셨습니다. 태자비가 호비 마마님의 배에 아이를 해하려고 했습니다!”원경릉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누가 나를 밀쳤는지 몰라서 그따위 말을 하는 건가?”“호비 마마를 해치려고 태자비께서......!”원경릉은 유민 현주의 뺨을 후려쳤고, 유민 현주는 멍한 얼굴로 원경릉을 노려보았다.“감히 나를 때려? 간이 부었구나!”유민 현주가 원경릉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옹정 군주는 두 사람 사이를 막더니 원경릉의 팔목을 잡았다.“당신이 아무리 태자비라고 해도 우리를 이렇게 업신여겨서는 안 되지!”원경릉은 치미는 화를 참으며 미색에게 두 사람을 끌어내라고 했다.그녀의 부름에 미색이 훌쩍 달려와 두 사람을 밖으로 끌어냈다.“분수도 모르고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소란을 피웁니까?” 미색도 화가 났다.옹정 군주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홀대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민 현주는 억울하다는 듯 붉어진 뺨을 부여잡고 원경릉에게 욕을 해댔다.미색은 두 사람을 밖으로 밀어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비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명원제가 도착하자 옹정 군주는 원경릉을 가리키며 말했다.“황상,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밀었습니다. 그녀는 저주받은 문둥산에 오른 것도 모자라 이제 호비 마마의 뱃속의 아이까지 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명원제는 옹정 군주의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옹정 군주의 말을 무시하고 눈짓으로 우문호에게 상황을 잘 처리하라고 한 후, 호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호비의 태기가 잡힌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나자 명원제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호비를 끌어안았고, 원경릉과 덕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호비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명원제의 소매를 붙잡고 거친 숨을 몰아내쉬었다. 얼마나 힘든지 그녀가 눈을 질끈 감자 땀이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황상, 소첩...... 아파 죽겠습니다.”“이제 내가 여기에 있으니 안심해라.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호비는 나한 침상 위에 누워있었고, 덕비는 중앙에 놓인 탁자를 치워 어의가 그녀를 진찰하기 편하게 자리를 마련했다.시간이 지나도 호비가 힘들어하자 산파가 호비의 치마를 젖혔다.“세상에...... 황상, 마마님께서 오늘 아이를 낳으실 것 같습니다.”산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덕비는 급히 명원제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황상, 일단 밖에 계시지요. 태자비와 산파가 안에 있고, 어의도 준비되어 있으니 일단 밖에서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다. 짐은 호비의 곁을 지킬 것이야. 정말 아이가 나오려고 하거든 그때 나가겠다.”명원제는 덕비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 남겠다고 했다.호비는 몹시 괴로운 상황에도 원경릉을 위해 몇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명원제를 불렀다.“황상...... 저를 이렇게 만든 것은 태자비가 아닙니다. 태자비는 소첩을 밀지 않았습니다.”명원제는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한 번 훑어본 후, 돌아서서 호비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은 너에게 집중해라.
덕비는 원경릉이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을 보고 위급한 상황임을 알았다.“폐하께서 정 걱정이 되신다면, 태후 마마님을 이곳으로 모시십시오. 태후는 만복을 가진 분이십니다. 황실의 어르신이 계시는 곳에서 그 누가 수작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명원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하인을 불렀다.“태의원의 어의들을 모두 불러 밖에 대기시키고, 여기에 있는 어의는 태자비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게!”명원제는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세상 어느 신이라도 호비를 돌봐주길 간절하게 빌었다. 그는 옹정 군주의 말을 듣고 원경릉이 호비를 해하려고 한건 아닌지 의심했지만 그가 지금까지 봐온 원경릉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소심전은 봉쇄되고 고사가 직접 사람을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으며 그 어떤 잡인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구사는 호비가 있는 소심전(素心殿)은 봉쇄해 외부인이 어의를 제외한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했으며, 물론 안에 있던 사람들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했다.옹정 군주는 유민 현주도 소심전 안에 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해하려고 했다며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화가 난 미색이 달려려고 하자 기왕비와 손왕비가 필사적으로 미색을 막아섰다. 안왕비는 두 모녀가 저렇게 떠들면 오해를 일으킬 것이고, 후에 태자비의 명성에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주후(褚後)에게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주후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 하인을 시켜 두 사람을 태후전으로 보냈다. 우문호와 예친왕은 더 이상 이상한 소문이 날까 걱정이 돼 저녁 연회에서 호비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숨기고, 그녀가 곧 아이를 순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회에 온 많은 손님들은 경사가 났다며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명원제도 밖으로 나와 신하들과 손님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소심전의 앞뜰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지만,
진북후가 분노하자 우문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안왕은 이럴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연기하며 진북후를 보았다.“본왕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옹정 군주가 말하길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밀치는 바람에 호비 마마께서 탁자에 배를 부딪혔다고 합니다.”안왕은 진북후에게만 들릴 정도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뭐? 태자비가 호비를 밀쳐? 도대체 왜 그런 거지?”연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진북후의 큰 호통 소리에 술잔을 내려놓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밀쳤대!”“세상에, 태자비가 왜?”“모르지, 감히 황제의 자손에게 해를 끼칠 생각을 하다니 태자비 간도 크다니까?”진북후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더욱 화가 나서 우문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태자! 만약 호비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가 태자와 태자비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우문호는 진북후의 손을 거칠게 잡아떼며 안왕을 힐끗 보았다.“넷째 형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겁니까?”우문호의 말에 안왕은 당황한 표정으로 진북후를 보았다.“나리, 호비 마마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해 제가 위로를 해드리려고 한 말인데, 본의 아니게 나리를 화나게 했네요.”진북후는 안왕의 억울하다는 표정을 보고 우문호와 원경릉이 호비와 뱃속의 아이를 해하려고 판을 짰다고 굳게 믿었다.“감히 본후의 딸을 해하려고 해? 북당도 나에게 이래서는 안 되지. 내가 뭐가 아쉬워서 북당에 딸을 보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황상도 일 처리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 안되겠다. 지금 당장 내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제왕과 회왕은 진북후를 제지시켰다.“나리께서는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부황께서 호비 마마를 지키고 계신다니 일단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호비 마마께서 한참 아이를 낳고 계실 겁니다. 나리께서 가셔도 딱히 할 일이 없으십니다.”태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서서 진북후를 설득하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심
“폐하, 후작께서 강경하게 들어오시려고 하셔서 소신이 막을 수 없었습니다.”구사가 말했다.호비는 진북후가 왔는지도 모르고 고통스럽게 소리를 질렀고, 진북후는 그 소리를 듣고 더욱 화가 났다.“본후가 지금까지 얼마나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호비는 강해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다니! 태자비, 도대체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명원제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우문호는 그런 부황의 모습을 보고 급히 달려와 진북후를 가로막으며 말했다.“후작 나리, 아무리 화가 났어도 황제 앞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소란을 피운다면 이곳에서 쫓아낼 겁니다!”진북후는 우문호의 협박을 듣고 더 크게 화가 났다. 그는 손가락으로 우문호를 가리키며 혀를 찼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태자가 본후에게 협박을 하다니요? 본후가 변방을 지키며 병사들하고 전장에 나갔을 때, 태자는 걸음마도 못 뗐을 거요.”우문호는 진북후의 업신여김에 화가 나 주먹을 휘두르고 싶지만 부황 앞이니 억지로 화를 눌렀다.“구사, 병사들을 불러 진북후부의 노부인을 입궁하도록 하게. 진북후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니 집안 어르신을 불러야겠어. 호비 마마가 출산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되는 진북후를 여기에 둘 이유가 없다!”노부인을 부르는 말을 들은 진북후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진북후의 얼굴에 한순간 두려움이 도사렸다.명원제는 고통스러워하는 호비의 손을 잡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기도를 하고는 진북후와 우문호를 보며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부황의 명령에 우문호는 진북후를 억지로 끌어내 밖으로 나왔다.“후작, 나오세요. 호비가 왜 저렇게 됐는지 본왕이 천천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진북후는 우문호에 대해 여전히 적의를 품고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 그를 따라 나갔다. 진북후는 밖으로 나오면서 이상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안왕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우
진북후는 위태부의 멈추지 않는 욕설을 듣고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위태부는 진북후의 굳은 표정에 흠칫 놀라 말을 멈추고 진북후를 응시했다.“태자비께서 왜 호비 마마를 해하려고 하겠나? 무슨 이유로?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해하면 무슨 이득이 있다고?”“그건…… 옹정 군주와 안왕에게 물어야지 왜 본후에게 묻는 겁니까?”위태부는 화가 나서 말했다.“태자비와 호비 마마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결국 후작도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닌가?”“……”’“태자비가 정말로 호비를 해하려고 했다면, 황상께서 태자비를 저 안에 두셨겠는가? 후작은 북당의 황제가 그만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가?”진북후는 위태부의 말을 듣고 함참 고개를 떨구고 생각을 하다가 주먹을 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안왕 이 자식이! 본후를 농락하고 감히 본후와 태자 사이를 이간질시켜?”위태부는 그제야 진북후가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위태부는 남의 미움을 사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위태부의 나이를 생각하면 감히 그가 그를 욕할 수 있겠는가? 위태부는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뭐 어쩔 거야? 기껏해야 죽이기 밖에 더 하겠어?’우문호는 위태부의 그 점을 보고 진북후와 함께 둔 것이다. 사실 위태부가 수다스럽고, 했던 말을 지겹게 또 하는 버릇이 있지만 그는 황실의 오랜 대신으로 전반적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안왕은 밖에서 진북후가 궁안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원경릉의 의술 실력으로 문제없이 호비를 구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진북후는 원경릉의 덕을 또 한번 보게 되는 것이고 완전히 원경릉의 편이 될 것이다.안왕이 진북후와 태자 사이에 분란을 일으킨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황제로 하여금 진북후에게 실망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럼 후에 명원제가 진북후를 조정 세력에서 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우문호와 원경릉의 편인 진북후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안왕의 말 한 마디, 손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