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우문호오경(새벽3시~5시)이 되었을 때 냉정언부에서 우문호를 데리다 주었다.우문호는 떡이 되도록 취해서 들어올 때부터 이미 인사불성으로, 원경릉은 사람을 시켜 우문호를 침대에 눕히고 만아를 시켜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고 한 뒤 얼굴과 손을 닦아 주었다.몸에서는 술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냉정언부 사람 말이 우문호가 술 5근을 마셨다고 한다.원경릉은 가슴을 칼로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둘이 함께 한 시간은 앞뒤로 따져도 대략 2년 가량으로 한 이불을 덮고 서로 익숙해지면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따지고 보면 진정한 위기는 지금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우문호 곁에 앉아 손가락으로 우문호의 얼굴을 매만지는데, 그동안 우문호도 힘들어서 얼굴 피부도 전에 비해 많이 상했다.경조부에 발령받고 매일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나날에 쉬는 날도 거의 없고, 우연히 짬이 나면 다른 일로 바빴다.정말 고생이 많았다.마음이 얼마나 괴로우면 이렇게 취하도록 마셨을까?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우문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처음엔 막연하다가 일말의 복잡한 눈빛이 되더니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기 얼굴에 대더니 울먹이며, “왜 아직 안 잤어?”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 당겨 가슴에 묻고 원경릉의 귓불에 턱을 대고, “얼른 자, 눈가까지 벌게졌어.” 원경릉은 우문호의 품을 파고들며 손을 그의 어깨에 올렸는데 몸이 노곤해서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우문호는 다시 잠들었는지 숨소리는 고르지만, 원경릉의 이마에 닿은 우문호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우문호는 잠들지 않았다.원경릉은 부부 사이에 이렇게 평온을 가장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두 손을 우문호 가슴에 올리고 우문호를 보며, “궁에서 벌어진 일 나 다 알아.”우문호가 낮게 ‘응’하더니 눈을 감고 잠시 후 눈을 떠서, “엉뚱한 생각하지 마,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어.”원경릉은 눈가가 젖은 채로, “날 원망해?”우문호가 약간 놀란 듯, “
폐태자 되면?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실망할 리가 없지. 자기가 태자가 되길 바란 적도 없고.”우문호가 웃으며, “그럼 됐어, 누구를 다치게 하고 누구를 실망시키던 상관없는데 당신이 다치거나 실망할 까봐 두려워.”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품에 안았다.원경릉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 말을 듣고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와, “난 자기가 이 일때문에 나랑 멀어질 까봐 무서웠어.”우문호는 원경릉의 등을 쓸어주며 중얼거리듯, “그럴 리 없어. 난 시비를 가릴 줄 알아, 원경릉이 나를 위해 했던 모든 일을 전부 마음에 새겨 뒀는 걸. 원래는 내가 당신한테 미안하지. 당신이 아이를 낳을 때, 어마마마께서 당신한테 그럴 때도 내가 나서서 당신을 위해 뭔가 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내가 어떻게 당신이랑 멀어질 수가 있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해. 이생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화롭든 몰락하든 당신은 나랑 하나로 묶여 있어. 누구도 먼저 손 놓기 없기야.”원경릉은 우문호의 가슴에 엎드려, “응, 누구도 먼저 상대방의 손 놓기 없기.”이 순간 원경릉은 생각했다. 우문호를 위해서 어떤 일을 겪는다 해도 충분히 감내하리라.궁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이 며칠이 갔다.밖에서는 저마다 의견이 떠들썩한 게 모두 현비가 태후를 찌른 걸 알고 있어서 대세를 관망하고 있는 중이나, 그 중엔 일부는 악한 마음이 꿈틀대며 조정 대신들과 사통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월 초파일 조정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태자를 연좌제로 끌어내리려는 폐위 상소를 준비하고 있었다.현비 소식은 자연스럽게 세상에도 전해져 백성들이 경악했고, 소씨 집안도 당연히 이 일을 알았다. 기왕이 원래 소씨 집안에 집을 한 채 먼저 줬는데 더는 주지 않았다. 다행히 소씨 집안사람들이 이사 들어가지 않고 먼저 다른 집을 사두었다.소씨 집안 쪽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소식이 전해진 후 아무도 감히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씨 집안은 그대로 몰살일지도 모른다며
설치는 기왕기왕부.확실히 기왕은 좋아서 죽는 중이다. 연일 심복인 대신들과 만나 탄핵 상소를 올릴 상의를 했다.기왕은 전에 갖은 계책을 동원해도 우문호를 끌어내릴 수 없었는데 현비가 자기를 이렇게 도와줄지 몰랐다.기왕은 주명양을 주씨 집안으로 돌려 보내 그쪽 상황을 알아보고 주재상이 어떻게 말하는지 살폈다. 태상황과 주재상 쪽에서 우문호를 변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기왕은 되도록 일찍 전략을 알아챈 뒤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했다.주명양은 요즘 기왕에게 상당히 냉담했으나 이 말을 듣고 기왕이 태자가 될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기민하게 친정으로 돌아가 스파이 역할을 맡았다.기왕은 기왕비의 도움을 구하길 마다하지 않은 게 기왕비의 인맥은 여전히 기왕비의 수중에 있어 우연히 기왕을 한 번 돕기는 했지만 전심을 다하지는 않은 걸 알 수 있었다.기왕비는 기왕이 투지가 불타올라 큰소리 치는 것을 듣고 무표정하게, “응? 그래서? 탄핵 상소 뒤에는요? 우문호를 끌어 내린 뒤에는요?”“그럼 내가 태자가 될 기회가 생기지.” 기왕비의 이 무관심한 표정은 정말 적응이 안된다. 꼭 기왕이 매사를 기왕비에게 구걸하는 것 같다.“당신이 기회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넷째가 기회가 있는 거예요? 아니면 일곱째가 기회가 있는 거예요?” 기왕비가 매정하게 반문했다.‘넷째의 야심은 이미 아바마마께 들켰는데 무슨 기회가 있다는 거야? 안왕부에 데리고 있던 여자 참모를 죽여서 아바마마께서 본보기를 보이셨다고. 일곱째는……” 기왕은 말없이 옷자락을 떨치고 앉아 표독스럽게, “수저가 좋을 뿐이야. 황후의 몸에서 태어났다 거 뿐이라고. 내가 그랬으면 벌써 태자가 됐지. 걘 영 쓸모가 없는데 아바마마가 어떻게 태자 자리를 걔한테 물려주실 수가 있어? 원래부터 기회는 있었지, 적자에 주씨 집안이라는 뒷배에 원씨 집안 계집애까지 후궁으로 맞았으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바보가 소중히 여길 줄을 모르더니 이젠 다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어. 두 눈 멀쩡히
기왕비의 방문아이들이 기왕비를 알아보고 달려오며 ‘큰어머니’하고 부르는데 기왕비가 웃으며 아이들에게 가서 손에 약과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가서 놀아라!”아이들이 같이 예를 취하고 폴짝폴짝 뛰어갔다. 만두가 이리 나리에게 약과 하나를 던져 주었다.이리 나리가 입에 넣으려고 달려오는데 눈늑대가 날름 가로채서, 이리 나리는 계속 달리다가 나무에 부딪혀 눈더미를 맞았다.기왕비가 깔깔 웃고 말았는데, 초왕부는 이렇게 생기가 넘치니 여기 오는 게 점점 좋아진다.누군가 와서 기왕비를 본관으로 모시고 갔다.잠시 후 원경릉이 손난로를 든 채 꽤 두툼하게 꽁꽁 차려 입은 것이 북극곰 같다.기왕비가 웃으며, “새로 좋은 모피를 구했는데 줄게요. 태자비라는 분이 이렇게 입고 초라하지도 않아요?”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왕비에게 눈을 흘기며, 가볍게 인사하고 같이 들어가자고 하더니, “됐어요, 전 기왕비 마마의 모피를 누릴 복이 없네요. 이렇게 입는 게 어디가 초라한 데요? 일반 백성들은 좋은 솜저고리 하나도 못 해 입는데, 이 목화 솜 괜찮아요.”“아무리 좋아도, 모피만큼 따듯하진 않죠.” 기왕비가 앉아보니 너무 추워서, “어떻게 본관에도 난로를 안 피워요? 여긴 하루 종일 아무도 안 와요?” “찾아오는 분이 뜸해서 좋죠, 조용하니까요.” 현비가 태후를 찔렀다는 소식이 퍼지고 누가 세배를 하러 오고 싶겠어? 그 중엔 약점을 잡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덩달아 재수 옴 붙을 까봐 피했다. 정초에 누가 이런 대역무도한 일에 끼고 싶을까?기왕비가 웃으며, “맞아요, 고요해서 좋네요.”원경릉이 눈을 치켜 뜨며, “어떻게 온 거예요?”기왕비가 맥이 탁 풀려서 의자에 기댄 채로 눈살을 찌푸리며, “기왕부는 아주 시끌벅적해요. 쓸데없이 떠들썩한 게 문제지만. 혼자 고민하느니 여기와서 얘기나 하려고요.”원경릉은 기왕비가 온 이유를 짐작하고 ‘돌직구’로, “위로할 필요 없어요. 전 괜찮으니까. 다섯째도요.”기왕비가 서서히 웃음을 지으며, “괜찮은 거 알아요. 위
현비를 찾아간 우문령기왕비가 듣더니 눈을 내리깔고, “다섯째가 다 알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까지 전부 생각했군요, 그러니 그 책을 필사하죠.”원경릉은 불경에 대해 잘 몰라서, “지장보살 본원경이 무슨 내용이예요?”기왕비가, “지장보살은 무량겁 전에 인도의 브라만 여자였는데, 어머니가 불·법·승 삼보(三寶)를 믿지 않아 악한 길을 걸었기로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브라만 여자는 죄에 빠진 중생을 제도해 해탈 시킴과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의 속죄를 위해 돌아가신 엄마를 제도하겠다고 불상 앞에서 서원했어요. 지장보살 본원경은 본래 이렇게 한없는 효와 서원을 대표하는 거예요.”기왕비가 말을 마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원경릉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마음이 순간 꽝꽝 얼어붙었다.우문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기왕비가, “현비 마마는 이제 기회가 없지만 태자 건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폐태자는 후폭풍이 심하기 때문에 아바마마께서는 그 길을 택하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아바마마께서 어떻게 하실 지 대략 짚이는 데가 있어요.” 원경릉도 기왕비 말에 동의했고, 아마 우문호도 그럴 거다.경여궁.태후를 찌른 후 현비는 경여궁으로 보내졌는데 원래 시중을 들던 현비 사람들은 전부 전출되었고, 내무부에서 새 사람을 몇명 보내 시중을 들게 했다.현비는 막 보내온 사람들이 시중을 들자 한동안 소란을 피우며 물건을 던지고 부쉈지만 어제부터 조용해져서 여우 털을 두른 망토를 걸치고 종일 바람이 아무리 심해도 몸이 굳어질 때까지 계속 문 앞에 앉아 있었다.이때 우문령이 몸종을 데리고 들어갔다. 우문령이 은덕을 베풀어 한 번만 만나 뵐 수 있게 해달라고 아바마마께 빌었기 때문이다. 우문령은 현비가 멍하니 복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현비가 고개를 들어 우문령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왜 울어? 나 아직 안 죽었어.”우문령이 다가와 현비의 손을 잡고 울며, “어마마마, 들어가요, 여긴 추워요.”현비는 우문령의 손
현비의 발악“그럴 리 없어!” 현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음험한 표정으로, “날 죽이면 태자의 생모를 죽이는 게 되는 걸. 폐태자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데 폐태자는 국본을 동요해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상하게 하는 일이니, 매사에 나라와 천하를 중히 여기는 네 아바마마께서 그런 위험한 길을 택하실 리 없어. 설령 분을 꾹 누르더라도 이 일을 덮으실 것이야.”우문령은 현비가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큰언니 말이 아마 정월 초파일 아침 일찍 다섯째 오빠를 폐하라는 상소가 올라올 거라고 하던 걸요.”“누가 감히 그런 짓을?” 현비가 고개를 돌려 우문령을 보더니 악에 받쳐서, “그런 상소를 올리면 네 아바마마께서 목을 베실 거다. 부부생활이 몇 년인데 내가 그이 성격을 몰라? 네 아바마마께서 국본을 흔드는 꼴을 허락하실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태후 마마를 다치게 했어도 태후 마마도 소씨 집안 사람인데 태후 마마께서 캐묻지 않으시겠다면 누가 따지고 들 수 있어?”“맞다,” 현비가 우문령에게, “황조모는 뭐라고 하시든? 따지겠다고 하셨어? 넌 가서 내 대신 태후 마마께 사죄 드리고 내가 한 모든 일은 전부 소씨 집안을 위해서 였다고, 태후 마마도 소씨 집안 딸이니 내가 한 일을 전부 이해해 주실 줄 안다고 전해라.”우문령이 고개를 흔들며 한손으로 눈물을 닦고, “아바마마께서 소녀가 황조모를 뵙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황조모께서도 화가 나셨을 거예요.”“나도 태후 마마께 화를 안 내는데 태후 마마께서 나한테 화날 게 뭐가 있어?” 현비는 우문령의 손목을 잡고 날카롭게, “그리고 사람을 시켜 우문호에게 전해라. 소씨 집안 사람 목숨을 이렇게 많이 죽였으니 소씨 집안에서 조만간 복수하러 올 거라고. 얼른 소씨 집안 대문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이야.”우문령이 입이 딱 벌어지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마마마, 소씨 집안에 죽은 사
현비의 굳은 생각궁인들이 황후에게 현비가 공주를 인질로 잡고, 공주를 찔러서 다치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 두 눈이 홀딱 뒤집어질 지경인데 그렇다고 졸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현비가 얼마나 독한 인간인지 태후를 찌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마음 속엔 오직 소씨 집안만 중요하다.“마마, 공주를 구해주소서, 공주께서 심하게 놀라서 울고 만 계십니다. 현비 마마는 이미 광증으로 정말 공주를 다치게 하셨어요. 현비 마마께서 태자비가 와야 공주를 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궁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다.황후는 숨이 잘 안 쉬어지는데 얼른 폐하를 청하라고 분부했다.태자비를 입궁 시킬지는 황제가 결정할 일이다.그런데 뜻밖에도 이 순간 명원제와 주요 신료들은 어서방에서 회의 중으로,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정월 초파일 태자 일을 상의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요했기 때문에 목여태감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저지당했다.황후는 황제 쪽에서 보기 싫다는 말이 없으니 일단 가마를 준비하라고 시키고 본인이 직접 가는데 피를 토할 심정이다. 만약 오늘 이렇게 소동을 부릴 줄 알았으면 당초에 현비에게 계책을 쓰지 않는 거였는데, 현비가 소씨 집안을 위해 이렇게 모질고 매정한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어?만약을 대비해 경여궁으로 가는 길에 황후는 사람을 출궁시켜 태자비를 오라고 했다.경여궁에 새로 온 시위들은 현비가 손을 삐끗해서 공주를 다치게 할 까봐 꼼짝도 하지 못했다. 현비는 마음속으로 이미 거의 절망했다.우문령에게 소씨 집안이 이번 대화제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현비는 분명 음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불을 내서 전체 소씨 저택을 다 태웠는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어떻게 믿을 수가 있어?’ 현비의 친정이다, 그들 목숨이 얼마나 중한데? 폐하께서 소씨 집안 사람들의 죽음의 진상을 은폐하기로 선택한 이상 소씨 집안을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현비가 낳은 아들이 소씨 집안을 거의 멸문에 이
현비의 인질우문령이 힘겹게, “어떻게 소씨 집안의 억울함을 풀어주나요? 아바마마께서 다섯째 오빠에게 처분을 내리시기를 원하는 거세요? 소씨 집안은 어마마마의 친정이고, 저와 다섯째 오빠는 어마마마께서 낳은 자식입니다.”현비가 고개를 저으며 원한에 사무친 말투로, “아니, 네 아바마마는 네 오빠에게 처분을 내릴 리가 없어, 태자를 폐위할 리 없지, 그래. 너희들은 전부 내 친자식이다. 내가 너희를 낳았지. 그래서 너희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한테 빚을 진 거야. 하지만 나도 엄마 아빠에게 빚을 졌고, 소씨 집안에 빚을 졌지. 그런 소씨 집안이 오늘 이토록 수치와 모욕을 당했으니 나는 죽어 저승에 가서도 부모님과 소씨 조상을 뵐 낯이 없구나. 네 아바마마에게 반드시 소씨 집안에 작위를 올려주고 호화 저택을 하사하며,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이 목숨과 바꿔 요구할 거다. 어미가 원하는 것은 이게 전부야.”현비는 고개를 숙이고 작지만 집요하게, “그거 알아?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 하단다. 어마마마가 네 아바마마에게 시집올 때 네 황조모는 이미 태상황 폐하의 황후셨어, 어마마마가 주씨 집안의 그 여자보다 네 다섯째 오빠를 먼저 낳았지. 네 황조모가 만약 피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어마마마를 태자비로 삼았어야 해, 네 아바마마가 보위에 오르면 소씨 집안은 태후와 황후를 동시에 배출한 집안으로 얼마나 영화롭겠냐? 하지만 네 황조모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 어마마마는 오래 참았지. 계속 피붙이의 정을 고대하며 말이야. 그런데 아니더구나. 날 실망시켰어. 세상에 이렇게 집안에 불효하다니, 하지만 결국 내가 태후를 다치게 했으니 내가 불효, 불충, 불의한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이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니?”현비는 우문령의 귀에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데 침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이 혀를 깨물어 약간 썩은 냄새가 섞인 것이 우문령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돌계단 쪽으로 돌리는데 볼이 아팠다.원통하고 분해하는 말투가 더욱 우문령을 당황하게 만들었다.황후가 와서 이 모습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