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과 지내본 사람들은 늘 그녀의 똑똑한 면에 탄복했었다.모두 소이연의 속내를 추측하고 있을 때, 그녀는 다른 화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제가 은하그룹에 온 지도 두 달쯤 되어가고 있는데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리고 저의 동생 소나은 씨의 도움 하에 회사에 잘 적응해하고 있어요. 회사 경영에 서투르지만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아무도 소이연의 말에 박수 쳐주지 않았다.소이연이 그녀에게 권력을 쥐여주었지만 소나은은 아무 반응 없었다.소이연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저희 회사에는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불합리한 점은 고쳐나가는 게 맞죠.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께 알릴 사항은 바로 인사 변동입니다. 은하그룹의 일부 직원들의 직무 변동이 있을 겁니다. 아, 물론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말이죠.”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회의실 안은 수군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인사 변동은 직원들에게 있어서 아주 큰 사건인데 소이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소식을 선포했다.“인사 변동 인원 명단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저를 찾아오시거나 총괄 경영자를 찾아가도 되고요. 명단에서 제외된 이사진들은 해당 부문의 직원들에게 잘 설명해 주세요. 인사 인계 절차를 잘 밟으셔야만 회사 운영에 지장이 가지 않으니깐요.”소이연은 스크린에 명단을 띄워놓고 읽어내려 갔다.“인사팀 총감독 임현재는 경영지원부 차량 운용 부장, 인사팀 부감독으로 인명…”소이연의 말이 끊나기도 전에 임현재가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네? 저더러 차량을 관리하라고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아니요. 임현재 씨는 제가 말한 이 자리가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인사팀 총감독은 지금 인사팀 부감독을 맡고 있는 오흥민 씨가 적합하고요.”“제가 은하그룹에 몸을 담은지 10년이 되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다른 자리에 안배하시다니… 너무 하신 거 아…”“임현재 씨.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저를 직접 찾아오거나 총괄 경영자 소나은 씨를 찾아
소나은은 더는 버틸 수 없었다.직원들을 사무실에서 내보내고 퇴근하려는데 임현재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그녀의 사무실 책상 위로 던졌다.“이봐요, 소나은 씨. 내가 당신 그리고 당신 아버지한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데 나한테 이러는 거죠?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지금 저를 파면한다고요? 오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어디도 못 가요. 당장 설명해요!”소나은은 임현재의 기세에 사뭇 놀랐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구조 전화를 걸려 했지만 잠금을 해제하기도 전에 임현재한테 뺏겨버렸다.“임 감독님, 진정하세요!”소나은은 긴장해하면서 그의 정서를 진정시키려 했다.“감독님이 파면 당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언니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저도 잘 몰라요. 미리 저와 상의를 한 것도 아니고요. 제가 알았다면 무조건 언니를 말…”“거짓말! 이제야 보이네요. 소씨 가문의 더러운 속내가 이제야 보인다고요!”임현재는 소나은의 말을 듣지는 않았다.“당신과 당신 아버지 그리고 소이연 씨 사이에 불화가 있어서 소이연 씨를 끌어내리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멍청하네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피는 못 속이나 보죠? 당신들이 짜고 친 판이 아니라면 은하그룹에 이런 인사 변동은 없었을 거라고요!”“임 감독님, 오해예요! 언니가 은하그룹을 독차지하려 했지만 저와 아버지가 간신히 제지시켰고 언니를 회사에서 내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언니가 독차지 한 것들을 다시…”“닥쳐!”임현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당신과 소이연 사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계속 지켜봤는데 여러 번 소이연 사무실로 가더군! 비밀을 지키라고까지 한 걸 보면 인사 변동에 관한 얘기겠지. 그리고 이창덕과 유봉도 자발적인 사직이 아니라 소승영이 쫓은 거잖아! 그 두 사람은 소승영의 왼팔 오른팔이었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내쫓다니… 당신네 집안사람들, 피도 눈물도 없는 독한 것들이야!”“임 감독님, 오해예요. 소이연이 설계한 판에서 우리가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요! 임 감독이 저와 아버지를 오해
이명진은 은하그룹의 최근 이슈를 회보했다. 그러고는 진심으로 탄복했다.“역시 사모님! 아주 완벽한 판을 짜셨어요. 홀로 은하그룹에 가셔서 늘 쫓겨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4달도 채 되지 않아서 은하그룹의 절대적 지배권을 쟁취하셨어요.”그의 말을 듣던 육현경은 큰 반응은 없었지만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이건 내부 소식인데요. 임현재가 소승영의 만행을 도처에 퍼뜨리고 있대요. 배은망덕하다느니, 교활한 여우 같다느니… 거기에 이창덕과 유봉도 합세해서 소승영의 위신이 바닥까지 떨어졌어요. 심지어 소씨 그룹 주가도 영향받았대요. 또한 은하그룹에서 소승영을 믿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모님한테 충성해야 하는 상황이래요.”육현경은 따듯한 차를 여유롭게 마시면서 이명진이 소이연에 대한 숭배심이 담긴 말을 듣고 있었다.“은하그룹에서 사모님께 걸림돌이 될만한 사람은 소나은 뿐입니다. 비록 사모님의 적수가 되지는 못하지만 둘이 정말로 충돌이 생기더라도 사모님께서 손해 볼 상황은 아니고요.”이명진은 소이연을 굳게 믿고 있었다.“아, 참. 그리고 사모님께서 은하그룹 하반기 시즌 복장 생산을 직접 관리하고 계신대요. 시간이 긴박하고 한치의 실수도 있으면 안 되어서 병문안을 매일 오지는 못한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퇴원하시는 날에는 꼭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셨고요.”웃고 있던 육현경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이명진은 몰래 웃었다.대표님은 사모님 바라기야.그리고 챙김 받는 걸 익숙해하신다니까.“나 언제 퇴원해?”육현경은 그에게 물었다.“별 이상 없으면 3일에서 5일 사이에요.”“3일.”육현경은 단호하게 말했다.“3일 후에 퇴원할 수 있게 해.”“네!”이명진은 공손하게 대답했다.이 세상에 대표님이 사모님을 만나는 것을 막는 사람은 없을 거야! 살고 싶지 않다면 모를까………소이연은 사무실 안에 놓여있는 시계를 보았다.벌써 밤 열시가 넘어가고 있었다.그녀가 소나은에게 생산 부문에 대한 관리를 맡긴 건 보
소이연이 문자를 보내자마자 “칼답”이 왔다.“안 자.”마치 그녀의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소이연은 씩 웃었다.그녀는 육현경이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것 같았다.그녀의 문자에 큰 반응은 없어도 입꼬리는 올라갔을 것이다.“환자가 이래도 돼? 일찍 자야지. 시간이 늦었는데 얼른 자.”소이연은 답장해 주었다.그러고는 이승윤에게 전화를 걸어 사립병원으로 향했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육현경에게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그녀는 차 안에서 그의 답장만 기다리면서 휴대폰만 보았다.육현경 이 인간, 은근 속이 좁다니까?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최대한 조심조심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육현경이 자고 있다면 그저 나올 생각이었다.어두운 병실 안.병실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소이연은 인상을 찌푸렸고 이내 욕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욕실의 문이 확 열렸다.소이연 앞으로 금방 샤워를 마친 남자가 걸어왔다.머리는 젖어있었고 상반신은 노출된 채 하반신만 아슬아슬하게 하얀 수건으로 가렸다.소이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육현경의 반 나체 모습을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신화에서 나올 법한 모든 것이 완벽한 남자…그녀가 봤던 모델보다도 몸매가 좋았다.육현경도 소이연이 올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그는 그녀의 카카오톡 문자에 안 오는 줄 알았기에 기다리지 않고 씻으러 갔던 것이다.그녀가 그의 몸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섹시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내 몸매가 그렇게나 마음에 드시나?”소이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의 얼굴은 사과처럼 빨개졌다.내가 왜 이 사람 몸을 빤히 보고 있었던 거지?그녀는 재빨리 돌아서서 육현경을 등지려 했다.육현경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그는 젖은 슬리퍼를 신고 욕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한 발짝 내디뎠는데 발이 미끄러졌다.소이연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바로 뒤돌아서 육현경을 부축했다.육현경이 더 다치면 큰일 나! 아직 환자라고!하지만 그녀는 육현경의
오늘은 예수진이 은하그룹 다음 시즌의 패션 앰배서더 포스터와 광고를 촬영하는 날.소이연은 아침 일찍부터 촬영장으로 가, 직접 예수진에게 스타일링을 해주었다.이번 런칭은 그녀가 은하에 입사하고 첫 신제품 런칭이고, 그녀와 은하그룹에도 모두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예수진의 옷도 그녀가 예수진의 사이즈에 맞춰 단독으로 디자인해, 직접 입으니,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렸다.“저번에 은하 디자인을 보여주시긴 했지만, 실제로 입으니까 더 놀랍네요. 지금까지 제가 입어본 사복 중에 제일 예뻐요. 디자인 감도도 좋고, 개성도 있고.” 예수진이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아낌없는 칭찬을 했다. “이번 디자이너한테 보너스 좀 넣어드려야겠어요.”소이연은 웃으며 말했다. “수진 씨가 인정하다니, 영광인데요?”“저는 다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예수진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만약 나중에 이 디자인으로 은하 패션이 유명해지지 않으면, 제 호소력이 부족한 거예요. 옷 때문은 절대 아닐 거예요.”소이연은 예수진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자신의 디자인에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지만, 정식으로 출시했던 적은 없으니, 시장에서 진짜로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예수진은 그런 그녀에게 의욕을 심어주었다.정말 가까이에서 예수진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밝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사적인 자리에서는 오히려 무덤덤한 성격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오늘 촬영 끝나면 은하그룹의 앰배서더가 되었다는 걸 밝힐 거예요. 그리고 오늘 촬영 에피소드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기사에 올려서 예열할 거고요. 당연히 에피소드랑 카피라이팅은 사전에 수진 씨 사무실로 전달해서 컨펌받을 거예요.” 소이연이 말했다.“원래 계획된 대로 진행해 주시면 돼요. 저는 다 협조할게요.” 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소이연은 예수진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놀라울 만큼 쉽다고
“문서인이 잘 만들었죠.” 소이연이 아니꼬운 듯 말했다.전에 그녀는 문씨 가문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 공은 전부 문서인에게 돌아갔다.사귀는 사이였으니, 한 번도 따지지도 않았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부질없는 일이었다.“이연 씨랑 문서인 씨는 어떻게 헤어졌어요? 그 큰 사건 때문에 감정이 식은 건 아니죠?!”“문서인이 제 의붓여동생을 좋아하게 됐어요.”“소나은이요?” 예수진이 아니꼬운 듯 웃었다. “그 여우 같은 년.”“수진 씨가 보기에도 걔가 나빠 보여요?”“눈이 보이면 다 그렇게 봐요. 근데 남자들은 10명 중에 8명은 눈먼 사람이에요.”소이연은 웃었다. 예수진의 말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속으로는 감동했다.그녀와 예수진은 고작 몇 번 만나본 사이지만, 두 사람은……말 못 할 관계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잘 맞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녀 주변에는 친구들이 얼마 없었다.당연히, 가장 친한 친구 한두 명 쯤은 있었는데, 18살 스캔들 이후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피했다. 마치 그녀와 어울리면 본인들도 더럽혀지는 것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혼자인 것이 익숙했다.그녀는 심지어 혼자 해외에서 지내면서 너무 외로운 탓에 그렇게 쉽게 문서인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끝까지 그들 사이에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술에 취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둘이 너무 잘 맞는 탓에 술을 많이 마셨다.소이연의 휴대폰이 울리고, 화면을 보니 “장 비서”라고 쓰여 있었다.“이사님, 수진 씨 촬영 에피소드랑 공식 홍보 카피라이팅 휴대폰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문제 있는지 확인해 주시고, 문제없으면 마케팅팀 통해서 수진 씨 소속사에 연락해 확인하고 저녁 10시 10분에 시간 맞춰 발행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소이연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의 카피라이팅,
소이연은 예수진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예수진은 거의 차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었고, 너무 깊게 잠들어 불러도 불러도 일어나지 않아, 데려다주고 싶어도 그녀의 집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주차장에 도착했다.소이연은 한참을 낑낑대서야 예수진을 부축해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를 부축해 집으로 가 침대에 눕혔다.여태까지 그녀는 계속 혼자 살았기 때문에, 비록 방은 2개였지만 침대는 1개였다.예수진은 그녀의 침대에 누워 편안한 듯 몸을 돌려 깊은 잠에 들었다.그녀가 이때를 틈타 예수진을 업어다 팔아도 모를 것 같았다.도대체 그녀가 겁이 없는 건지 신뢰가 쌓인 건지 모르겠다.소이연은 깊게 숨을 내쉬고 예수진에게 꿀물을 타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신은 샤워를 했다.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제야 진동 모드인 휴대폰 화면이 계속 빛나는 것이 보였다.소이연은 휴대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소이연, 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문서인의 비꼬는 목소리가 전화 저편에서 들려왔다. “예수진이랑 은하 패션 앰배서더 계약을 해?! 왜, 시녀 둘이 남자 하나 받드니까 좋아?! 너 진짜 역겹다.”“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축하할 일이 없었어. 애초에 약혼 연회에서도 깎아내리기나 하고, 만약 내가 진짜 너한테 시집갔으면, 대대로 땅을 치면서 후회했겠지.”“네가 나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있어?! 넌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18살에 미혼모로 지금은 다른 여자랑 같이 남편을 공유하질 않나, 소이연, 너 진짜 천박하고 더러워.” 문서인은 하찮다는 듯 말했다.“네 생각에 너는 깔끔하다고 생각하나 보지? 너랑 소나은이 한 침대에 있을 때, 넌 네가 얼마나 더러웠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니? 문서인, 너도 그렇게 잘난 건 아닌 것 같은데, 너 스스로 고상하고 순진한 척 하지마, 적어도 너한텐 진짜 안 어울리니까.” 소이연도 문서인에게 어느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어야 했다.“네가 내 호의를 못 받아들이겠다면, 난
“침대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예수진이 덧붙였다.소이연은 웃었다.예수진이 샤워를 하고 소이연의 잠옷을 입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소이연의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은 한 개네요.”“지금 후회해봤자 늦었어요.” 소이연은 주방의 테이블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그녀는 보통 아주 늦게 잠들었다. 12시도 안 되었으니, 잠도 오지 않았다.예수진도 자고 일어나니 잠이 오지 않았다.“무슨 후회요?” 예수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요.”소이연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예수진은 갑자기 반응해 급히 해명했다. “저 성적 취향 정상이에요!”소이연은 웃으며 내린 커피를 예수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저는 설탕이 안 들어간 블랙커피를 좋아해요. 너무 쓰면 여기 각설탕 있으니까 넣어 먹어요.”“괜찮아요, 저도 보통 블랙커피로 마셔요. 특히 정신 좀 차려야 할 때는요.”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TV는 마침 예능 채널이 틀어졌고, 예수진이 출연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진짜 제 팬이신가 봐요!” 예수진이 조금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시간을 때우면서 힐링하기 위함이었다.당연히 본인 앞에서는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늦은 시간까지 예수진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았다.예수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한 번 보고 받지는 않았다.그리고 소이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보더니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계 감독님.”예수진은 소이연을 한 번 보고는 다시 TV 화면에 집중했다.“오늘 예수진이 은하 패션 광고 찍으러 온다면서요?”“맞아요.” 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진 씨 찾아요? 지금 제 옆에 있는데.”“지금 옆에 있다고요?” 계지원이 되물었다.“네. 오늘 저녁에 저랑 술을 좀 마셨는데, 저희 집에서 잔다고 해서요.”“아, 네.” 계지원이 짧게 대답했다.아마도 한숨을 쉰 것 같았다.“무슨 일 있어요? 전화 바꿔드릴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승우 씨, 사과 따위 이제 필요 없어요.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아무 탈 없이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끝내는 거예요. 승우 씨는 문수 씨 형이잖아요. 게다가 저도 어릴 때부터 송씨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친척 같은 관계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말했다.송승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하지수는 뒤를 돌아 송문수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늦은 시간이었고 그녀도 여전히 많이 피곤했다. 송문수랑 같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었다.크레지가 아직 오지 않은 이상, 기술 투자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의 손은 또다시 송승우에 의해 붙잡혔다.하지수가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벗어날 수 없었다.송문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송승우의 행동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그가 앞으로 다가가 하지수를 데려오려던 순간, 송승우가 갑자기 말했다.“지수 씨, 방금 당신의 행동은 모든 걸 말해줬어요!”“무슨 행동이요?”하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제가 불렀을 때, 제 쪽으로 다가왔잖아요. 그게 지수 씨 마음속에 있는 진심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말고 저한테로 오세요. 하지수 씨, 제가 잘 해줄게요. 지수 씨를 혼자 두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맹세할게요...”“아니요.”하지수는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하지수를 바라보는 송승우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찼다.“승우 씨가 불었을 때 따라간 건 무의식적으로 간 거예요.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누가 불렀어도 갔을 거예요. 승우 씨인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게요. 낯선 목
송문수는 하지수가 일어나서 송승우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송승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생각했다.‘그래, 지수 씨도 아직 날 신경 쓰고 있다니까. 숨기려 해도 어떻게 숨기겠어? 이런 상태에서야 비로소 진심이 드러나는 거지.’송문수는 멀어져 가는 하지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살짝 멈칫했다. 하지수를 강제로 붙잡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사실 그는 항상 하지수의 선택을 존중해 왔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말이다.하지수는 송승우 앞으로 걸어갔고 송승우가 먼저 손을 뻗더니 그녀를 끌어당기려 했다.그러나 그가 손을 뻗자 하지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승우 씨?”그녀는 그제야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조금 전까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이제와사 분명해졌다.그녀는 자신이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흐릿할 뿐이었다.“너무 늦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송승우가 그녀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하지수는 급히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그러자 송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아까는 잠에서 덜 깨서 그랬어요. 전 문수 씨랑 같이 갈 거예요.”“뭐라고요?”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네?”하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저를 놀리는 게 재밌으세요?”송승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하지수는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그러자 송승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제가 잘못한 걸로 하죠.”그가 갑작스레 사과를 하자 하지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송승우가 왜 갑자기 사과를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과를 하는 거야?’“미안했어요.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잖아요. 결혼식장에 지수 씨 혼자 남겨두고 간 건 제 잘못이에요. 미안해요.”하지수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
하지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고 있었다.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만약 누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어색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문수 씨도 부끄러워하는 건가?’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썼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하지수는 소파에 앉아 몰래 송문수를 쳐다보았다.그는 그저 고위직 직원의 얘기를 듣고만 있을 뿐,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었다.‘단지 어색해서 그런 건가?’송문수는 언제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해명하려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면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하지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크레지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관련 부서가 계속해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송문수와 하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논의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애썼다.새벽 2시가 되었지만 송문수는 아직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방금까지도 각 부서와 회의를 하면서 협력 계획과 판매 계획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했다.회의가 끝난 후에도 송문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송문수는 그제야 그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서류든 제대로 보지 않고 사인을 해버렸었다. 하지만 이젠 점점 더 신중해졌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사인을 했다.그 덕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오늘 하루 동안의 모든 서류를 처리하고 나서야 송문수는 퇴근을 하려고 하지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송문수의 기억 속에 하지수는 늘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고 절대 늦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파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많이 피곤한 걸까?’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야
송문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아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를 더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송문수가 점점 더 발전하는 걸 보면서 하지수도 그를 더 지지해 주고 싶었고 송문수로 하여금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하지수는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습관처럼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들어갔다.그녀는 비록 알림을 꺼 놓았지만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메시지가 있으면 항상 첫 번째로 확인하곤 했다.그런데 그때, 그룹 채팅에 있는 메시지를 본 하지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할 것이었다.송문수가 회사의 공식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보낸 것이었다.하지수는 고개를 들어 송문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진지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채팅방에는 여전히 ‘하지수’라는 이름이 올라오고 있었다.“문수 씨,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거 아니야?”하지수가 물었다.“어?”송문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수는 송문수 앞에 서서 그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에는 타자를 해놓고 아직 보내지 않은 ‘하지수’도 있었다.송문수도 그제야 자신이 채팅방에 ‘하지수’라는 이름을 여러 번 입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자신도 놀란 듯했다. 그는 자신이 타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하지만 방금 그의 머릿속이 온통 하지수로 가득 찬 건 사실이었다.그때, 채팅방에서 누군가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지금 하 매니저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그걸 실수로 단체 채팅방에 보낸 거고?]메시지는 보내지자마자 삭제되었고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도 잘못 보냈네!”그룹 채팅에 두 개의 삭제 기록이 나타났다.송문수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하지수’라는 메시지들을 삭제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송승우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하지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하지수에게 송문수를 고른 게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반드시 알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로 하여금 후회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하지수는 송승우의 사무실을 떠나 바로 송문수의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업무에 몰두해 있었다.회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는 자유시간이 없었고 퇴근 후에도 여전히 업무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하느님도 부지런한 사람을 도울 거라 믿으며 송문수가 앞으로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형이 뭐라고 했어?”송문수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자기 개인 비서로 되어달라고 하더라고.”하지수는 송문수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송문수랑 같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할 생각이었다.송문수는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하지수가 그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지수가 형 요구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겠지...’이렇게 생각한 송문수는 일에 더 집중하려 애썼다. 회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로 결심한 이상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거절했어.”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분명 그녀의 말에 설렌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했다.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계속해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반면, 하지수는 송문수에게 그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송문수는 자기한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결정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왜 거절했는데?”송문수가 차분하게 물었다.“문수 씨한테 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수는 웃으며
하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송승우를 바라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이다.어린 시절 그녀는 항상 송승우를 믿었고 그가 자기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송승우는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녀는 자신이 송승우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너무 유치해서 하지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지?’송승우는 하지수와 송문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몇 번이나 말했으니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있고 송승우와의 관계는 이미 끝난 거라고 말이다.그리고 송문수가 지금 송씨 그룹의 대리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송문수의 결정이 회사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이다. 송문수한테 도움이 더 필요했고 송문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생각이 없는 건가? 어쩌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지?’“왜요? 제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했나요?”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승우 씨, 정말 제대로 일하려고 온 거 맞아요? 아니면 그냥 문수 씨를 못 믿어서 온 건가요? 문수 씨가 회사를 잘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감시하러 온 거냐고요!”“당연히 일하러 온 거죠. 아니면 왜 연구소 일까지 내려놓고 회사로 왔겠어요! 그리고 또...”“아까 지수 씨가 그러셨잖아요. 송문수를 못 믿냐고요. 맞아요. 전 송문수 그 자식 못 믿어요. 송문수가 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성과를 하나 냈다고 교만해져서 마음대로 하려 할 겁니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승우 씨는 왜 그렇게 문수 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예요?”하지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아니라면 왜 문수 씨를 그렇게 모욕하고 내 곁에서 떼어놓으려 하겠어...’하지수의 능력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송문수가 회사의 대체적인 상황을 잘 파악한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송문수에게 회사를 관리하는 재능이 있어서 해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송문수가 매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하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지어는 날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 게다가 차에서 보는 서류들도 모두 송씨 그룹과 관련된 문서였다.송문수는 원래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거나 먹고 자고 놀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송문수는 정말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송문수의 말대로 하지수는 다음 주에 회사로 찾아올 크레지를 위해 연관 업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송문수와 하지수가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사님들도 점점 두 사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맡긴 업무에 대해 불평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바로 행동에 옮기기만 했다.그러면서 송문수와 하지수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고 회사도 더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후,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갔다.요즘 들어서 그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송문수는 자주 회사의 전문 용어나 이해할 수 없는 마케팅 계획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지수 씨, 잠깐 제 사무실로 올 수 있으세요?”그때, 송승우가 갑자기 하지수를 불렀다.하지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였다. 그녀는 송문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네 마음대로 해.”송문수는 이렇게 말하고 큰 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질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수는 속으로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송문수가 많이 변한 건 사실이었지만 하지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은 혹시나 방금 들은 말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송승우는 믿을 수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장난만 치고 아무것도 해낸 적 없었던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제가 기술 투자를 따냈다고요. 다음 주 수요일쯤, 크레지 씨가 직접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하실 거라고 하셨어요.”송문수가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정말인가요?”오 이사님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다른 이사님들도 모두 송문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사님들뿐만 아니라 송기명까지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거라 생각했었다. 기술 투자를 성사하지 못한다면 즉시 프로젝트를 멈추고 더 이상의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그동안 들인 노력과 돈이 헛된 것으로 된다고 해도, 아쉽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면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기술 투자를 따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협력 또한 쉽지 않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경쟁 관계도 존재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송문수가 기술 투자를 성사한 것이었다.“금방 크레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송문수도 감격스러운지 여러 번 반복했다.“정말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오 이사님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다른 이사님들도 다들 같은 말만 반복했다.“문수 씨, 정말 대단하세요!”“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크레지 씨한테서 기술 투자를 따내다뇨... 크레지 씨는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문수 씨, 이번에 정말 큰 공을 세우셨어요. 만약 이번 기술 투자가 실패했다면 회사는 최소 3년에서 5년 동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송기명과 허영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송문수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송승우만은 계속해서 송문수의 능력을 부정했고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하지수는 송승우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그러자 그때, 송문수의 전화가 울렸다.전화 화면을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송승우는 송문수의 행동을 지켜보며 마치 트집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했다.“송문수, 회의 중에 개인 전화를 받으면 안 되는 거 몰라?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송문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실 구석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송승우는 더 화가 났다.그때, 오 이사님이 그를 꾸짖었다.“승우 씨, 지금 문수 씨는 이 회사의 회장입니다. 이 회사에 발을 들인 이상 문수 씨의 말대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수 씨가 전화를 언제 받든 그건 문수 씨가 결정할 일입니다. 저희도 문수 씨랑 여러 번 회의를 해봤어요. 진짜 급하고 중요한 전화가 아닌 이상 회의 중에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송승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송문수 이놈, 비밀리에 오 이사님이랑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왜 오 이사님께서 계속 송문수를 감싸주겠어?’이렇게 생각한 그는 다른 이사님들을 둘러보았다.다른 이사님들도 송문수가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송승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대체 송문수가 이 사람들에게 뭘 해 줬길래 다들 이렇게 그를 감싸는 걸까?’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조용히 송문수가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송승우는 점점 더 짜증이 났지만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도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송문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다.송문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승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