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성도 자신이 너무 많이 관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결국 여기는 계지원의 팀이고, 그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방금 예수진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몇 마디 한 건데 계지원이 신경 쓸 줄 생각 못 했다.그녀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계지원에 의해 쫓겨난 예수진은 계속 옆에 있는 것도 조금 민망해졌다. 계지원은 한 번도 누구에게 성질을 내지는 않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 수 있다.현장 첫 리허설이 드디어 끝났다.계지원도 많은 피드백을 주지는 않았고, 우선 사람들이 조금 쉴 수 있게 해줬다.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예수진을 보고 말했다. “잠시 얘기 좀 할까요?”사람들이 모두 동정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예수진도 자신의 처지를 매우 동정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해줄 수 없었다.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지원을 따라 그의 VIP 휴게실로 따라 들어갔다.예수진은 축 늘어져 깍듯하게 서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뭔가 잘못을 저지를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만약 이런 모습이 계지원의 마음을 풀 수 있다면, 그녀는 이것보다 더 비참한 모습도 보일 수 있었다.사람은 어느 정도가 되면, 사실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아진다.“술은 아직 안 깼어?” 계지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깼는데 잠이 안 깨.” 예수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해도 죽을 목숨인데 핑계 대려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아서 그것도 힘든 법이다.“아침은 먹었어?” 계지원이 물었다.“......” 이건 다른 문제 아닌가?갑자기 계지원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대강 아침밥을 가져오라는 내용이었다. 짜증은 났지만 예수진은 반박하지 않았다.심지어 지금 그녀는 계지원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폭풍우 전 고요함이 바로 이런 걸까?공기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계지원은 전화를 끊은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수진은 허수아비 마냥 그의 앞에 서서 밖에서 갑자기 노크
“안에 휴게실 있으니 가서 좀 자.” 계지원이 말했다.예수진은 그를 보고 있었다.정말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똑바로 들은거 맞아. 가서 조금 자.” 계지원이 다시 말했다.예수진의 마음을 읽은 것 같았다. 예수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계지원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수진이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계지원은 이미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방을 그녀에게 빌려주었다.예수진은 한참을 고민하고 휴게실을 몇 번이나 둘러보았다. 비록 크진 않지만, 아주 편해 보였다.그녀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 이미 누워있는 것 같았다.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 것만 같았다.그래.영혼만 간 것이 아니라 사람도 갔다.그녀는 그대로 크지 않지만 부드러운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아주 깨끗했고, 고급 세제의 은은한 향뿐,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그녀는 계지원이 이 휴게실에서 잔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다행이다.아니면 그의 냄새가 나서 잠을 못 잤을 것이다.그녀는 편안히 몸을 돌려 신발과 외투를 벗고 잘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급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문을 나서자 방금 나갔던 계지원이 보였다.중요한 건 그가 지금 그녀가 방금 반 이상 남긴 영양죽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계지원은 그릇째 먹고 있었고, 수저가 한 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저는 그녀가 썼던 수저를 썼다. 분위기가 민망해졌다.예수진은 정말 땅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그녀는 방금 도대체 뭐 때문에 나온 걸까.방금 먹은 아침을 치우지도 않고 당연히 치웠을 거라고 생각했다.분명히 치워주는 스태프가 있을 거라고, 계지원이 하지는 않을 거라고.이제 됐다! 그녀는 또 계지원에게 미움을 샀다.그녀의 운은 인생의 전반전에서 이미 다 쓴것만 같았다. “나도 아침 안 먹었어.” 계지원이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귀도 눈에 띄게 빨개졌다.“아.” 예수진은 짧게 대답했다.그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예수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휴게실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녀는 계지원이 휴게실의 고급 소파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예수진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물었다. "나 얼마나 잤어?” "하루 종일.” 점심시간 잠깐도 아니고 오후 내내도 아니고 하루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지금 밤 10시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을 잔 것이다. "왜 안 깨웠어?" 예수진이 놀라며 물었다. 그녀는 깜박하고 알람을 맞추는 것을 잊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종일 잘 수도 있다. 예수진의 수면의 질은 항상 좋았다. "혼자 잘자 놓고서 왜 화를 내고 그래." 계지원이 불쑥 말했다. "옛날에나 잘 잤지! 지금은 작은 소리로 날 부르기만 하면 벌떡 일어날 수 있다고!" 예수진은 얼른 반박했다. 계지원은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통제 불능으로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기뻐서 웃는 것인지 그냥 순간을 넘기기 위해 웃는 것인지 감이 안 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희미한 미소안에는 슬픔이 섞여 있는 듯했다. 한마디로 그는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계지원의 마음은 희로애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닫혀 있는 듯했다. 아마도 그는 예수진을 그렇게 대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깨워줄게.” 다음에 어떻게 감히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잘 수 있겠어? "신발부터 신어." 계지원이 말하자 예수진은 그제서야 자신이 아직 맨발인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계지원을 보며 물었다. "돌아가자고?” "밤 10시인데 야근하라는 거야?” "아냐, 아냐, 아냐." 예수진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어디 감히 대 감독을 야근시킬 수 있겠는가? 방금 막 잠에서 깬 예수진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라 반응이 다소 느렸다. 지금은 밤 10시다. 예수진은 자고 일어나면 항상 오늘이
"예수진." 계지원이 그녀를 불렀다. 예수진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계 감독님, 감사합니다." "물건." 계지원 말했다. "무슨 물건이요?" 예수진이는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가방과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그녀에게 더 이상의 다른 물건은 없었다. "이거." 계지원이 포장된 음식을 그녀에게 건넸다. 예수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배상해야 할 죽." 계지원이 설명했다. 예수진은 순간 문득, 오전에 무심코 남은 죽을 포장 해 가겠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 죽은 오전에 계지원이 샀던 죽이라 배상할 필요가 없었다. 예수진은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인사했다. “계 감독님,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계지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예수진이 그에게 꼭 이래야 하는 것일까? 그는 자동차 창문 버튼을 누르며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 예수진은 계지원의 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숨을 돌렸다. 방금 계지원이 조금 화가 났다는 것을 예수진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들 사이의 왕래는 다소 좋지 않았다. 계지원이 그녀를 죽이고 싶다 해도 예수진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예수진은 영양죽을 들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매일 밤, 너무 늦게 들어와서 그녀들을 깨울까 봐 걱정되었다. 방금 집에 들어왔다. “수진아, 들어왔어?” 거실에 조명이 하나밖에 없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파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도 알기 힘들었다. 예수진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놀랐어?" 가연은 다소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에요."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렇게나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분간은 정말 바쁠 거예요.” 가연은 하연이를 돌봐야 해서 항상 일찍 잠에 들었다. 가연의 일과는 기본 적으로 하연이에게 맞춰져 있었다."며칠 뒤 하연이 세 번째 생일인데, 생일날 너랑 같이
하연과 가연의 방. 가연이 인기척에 놀라서 깼다. 그녀는 현재 어느 정도 나이가 들은 상태라 약간의 인기척만으로도 쉽게 잠에서 깼다. "하연이가 보고 싶어서요." 예수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가연은 몸을 뒤척이며 다시 잠을 잤다. 예수진은 침대 곁으로 가서 자고 있는 하연이의 장밋빛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떨결에 엄마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하연이를 임신한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예수진은 심지어 3달이나 생리를 하지 않았고 아랫배가 눈에 띄게 나오기 시작했지만 자신이 임신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때 가연이 예수진에게 임신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예수진은 정말 놀랐다. 그녀는 드라마 캐릭터 때문에 자주 살을 빼거나 쪘기 때문에 생리불순인 적이 많았었다. 그런 생활이 이미 익숙해서 임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예수진은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한 끝에 아이를 낳기로 했었다. 가연도 예수진이 아이를 낳는 것을 지지해 주었다. 그녀는 집에 아이가 있으면 더 활기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개월의 임신기간은 예수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임신 초기에 입덧도 하지 않았고, 임신 후기에도 잠을 잘 못 자지도 않았다. 심지어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까지 3시간밖에 걸리지 않고 순산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거의 아프지도 않았다. 정말 천사 같은 아이 같았다.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하연이에게 뽀뽀를 했다. 그녀는 하연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고, 세상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다 주고 싶어했다. 예수진이 연예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한 이유 중 한 가지는 하연이를 위해서였다. 예수진의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연이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녀는 육씨 가문에서 자라면서 의식주에 대한 걱정 없이 자랐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돈이 없을 때 무력감과 삶이 무너지는 것도 경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였다. "네. 계 감독님, 정말 감사해요.”예수진은 90도로 인사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빠르게 답장을 보냈고, 계지원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예수진이 문서를 열어보니 경합에서 연기할 역할 분석을 담은 내용들이였다. 캐릭터의 성격은 그녀가 본 오리지널 버전보다 훨씬 섬세하고, 시각적 감각도 매우 강렬했다. 언제 어떤 표정으로 연기해야 할지 기준을 정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진을 위해 캐릭터를 분석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역할이 작아도 캐스팅될 수 있으니 힘내.” 예수진은 괜히 웃었다.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계지원이 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비서가 준비해서 각 사람마다 보내준 것일거다. 캐릭터마다 이렇게 하나하나 섬세하게 분석했다면 계지원의 팀이 우승하지 못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예수진은 캐릭터가 분석되어 있는 대본을 들고 거울을 보며 여러 번 연기 연습을 했다. 역시 계지원이 자세히 분석한 대본으로 연습하지 이 캐릭터에 확실히 다른 영혼이 생긴 것 같았다. 분량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드라마에서 전체를 보면 이 캐릭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연기를 잘한다면 시청자들에게 다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예수진은 어제의 경험을 통해 알람 맞추는 걸 까먹지 않았고, 그렇게 오래 자지는 않았다. 예수진의 오늘 컨디션은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리허설실로 들어갔다. "예수진 씨." 유청하가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유청하가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다. 예수진도 30분 일찍 왔는데 이미 배우 절반이 와 있었다. 보아하니 모두들 이번 경합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 어디 갔었어요?" 한쪽 구석에서 유청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예수진이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만약 계지원의 대기실에서 하루 종일 잠들었다고 한다면 내일 연예뉴스 헤드라인에 ‘한물간 여자 스타가 경합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기 위해 유명 감독을 유혹했다.’라는 기사가 뜰
계지원이 도착하자 모두가 그의 주의에 모여들었다. "어제 스케줄대로 오늘도 리허설을 계속해주세요.” 계지원은 이어 말했다. "일단 한번 해 보죠. 예수진 씨는 어제 불참했으니 일단 같이 진행해 보고 안되면 따로 가서 연습해주세요.” "네." 모두가 동의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예수진은 매우 배우들과 합을 맞추었는데, 어제 계지원에게 받은 대본이 매우 유용했다. 그녀는 어젯밤에 혼자 집에서 두 번 연습했고, 금세 캐릭터의 느낌을 찾았다. 오늘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니 더 느낌이 살았다. 한 번의 연습 공연을 마치자 모두가 예수진의 연기에 놀랐다. 예수진의 연기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제는 예수진의 연기는 정신없고 혼란스러웠지만 오늘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전에는 예수진의 캐릭터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부각되는 부분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예수진의 캐릭터가 분명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였다. 캐릭터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긴장감을 주었고 관객들에게 기억되기 쉬웠다. 또한 분량이 많지 않아 관객들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나쁘지 않네요." 계지원은 다른 배우들의 칭찬을 인정했다. 모든 배우들은 계지원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의 계 감독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안색은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계지원의 카리스마였고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오늘 계지원의 기분은 모두가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분명 방금 연습 공연 중에 실수한 배우가 두 명이나 있었는데, 계 감독은 화를 내지 않고 따뜻한 말로 격려했다. 오늘은 계 감독님의 촬영운이 좋은 날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눈에서 저런 미소가 나오겠는가!하루 종일 리허설을 하고 모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조 감독이 와서 오늘 첫 방송을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배우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을 총괄 PD
”수진 씨." 감독이 갑자기 예수진의 옆에 왔다. 예수진은 재빨리 일어났다. "앉아요, 앉아요." 감독이 그녀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 밤 보니까 말도 별로 안 하고, 술도 안 마시던데 오랜만에 연예계에 복귀해서 적응이 안 돼요?” 사실 그녀는 예전에도 이런 회식자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때는 각종 행사들로 바빠서 매니저도 그녀에게 이런 회식 자리에 참석하게 해 줄 방법이 없었다. "좀 적응이 안 되네요." 예수진은 웃으며 급히 자신의 술잔에 술을 채우고 말했다. "감독님, 제가 한 잔 올려드리겠습니다.” "하하. 좋아요." 감독도 거절하지 않았다. 예수진은 그렇게 감독의 비위를 맞추었다. "수진 씨 주량이 세네요." 감독이 칭찬했다. "아니에요, 평소에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아요." 아무리 주량이 세더라도 밖에서 숨기지 않으면 술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은 영광이네. 자, 우리 한 잔 더 마셔요." 감독은 열정으로 말했다. 예수진은 그렇게 할 수 없이 감독이 따라 주는 술 두 잔 더 마실 수밖에 없었다. 잠시 술을 마시다가 감독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수진 씨, 연예계를 떠난 몇 년 동안 어디 있었어요? 뭐 하고 지냈어요?""그냥 작은 도시서 쉬면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때 왜 갑자기 퇴출당한 거예요?” 감독이 물었다. 예수진은 그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작은 일이 있었어요.” "누구 미움이라도 샀어요?” 예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진 씨는 아직도 나한테 아무것도 말하지 않네요. 나는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고 수진 씨를 이 프로그램에 섭외했는데.” 감독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육씨 가문이요." 예수진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어쨌든 지금 육씨 가문은 연예계 일을 관여하지 않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이유도, 더 이상 그녀를 표적 삼을 이유도 없었다. "육씨 가문?"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