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독팀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네, 이따가 깨워주세요.” 원빈은 급히 옆에 있던 소파로 향했다.예수진과 유청하는 같이 연습을 시작했다.“안되겠어요.” 유청하는 한번 연습하더니 하기 싫어졌는지 말했다. “한 명이 빠지니까 애초에 배역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계속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네요. 일단 좀 쉬고 원빈 씨 일어나면 이어서 해요.”예수진은 이제 세상 물정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연예계에 돌아온 뒤 딱 한 가지 지조가 있었다.바로 미움받지 않으려면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청하에게도 가서 쉬라고 했다.예수진은 구석진 곳에 앉아 대본을 연구하며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매번 대사를 할 때마다 스스로 녹음했다.그리고 가장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 골랐다.이렇게 오후 내내 기다렸다. 원빈은 그제야 일어나 기획팀이 가져온 점심을 먹고 드디어 세 사람이 처음으로 맞춰보았다.아주 당연하게도, 원빈과 유청하는 개인적인 연습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대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수진 씨, 정말 미안해요. 이 작품이 이렇게나 난이도가 있는 작품인 줄은 몰랐어요. 그냥 대충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제가 얕봤네요.” 원빈이 사과했다.“괜찮아요, 연습을 많이 하면 되죠.”결국,오후 5시 반이 되니 두 사람은 각종 이유를 대며 연습실을 떠났다.또 예수진 혼자 남았다.됐어, 누가 한가하래?예수진은 거울을 보며 혼자 연습하다가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예수진이 시간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였다.중요한 건 방금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오려는데 갑자기 화장실의 불이 꺼졌다.심지어 건물 전체가 깜깜해졌다.“악!”예수진은 깜짝 놀랐다.익숙지 않은 화장실 안에서 갑자기 깜깜해지니 너무 놀랐다.많은 공포영화에 필수로 등장하는 배경이 바로 화장실이었기에 생각할수록 너무 무서웠다.예수진은 급히 자신의 휴대폰으로 플래시를 켜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
예수진은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나야, 계지원.”계지원?!예수진은 깜짝 놀랐다.그래서 방금 그 귀신이 계지원이었다고?아니지, 계지원이 귀신은 아니지.그래.물건이든 아니든, 계지원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이렇게 늦은 밤중에 연습하고 있었나?“근데 네가 방금 나 밀치면서 휴대폰을 잃어버렸어.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좀 찾아줄래?” 계지원이 그녀에게 말했다.예수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자기가 잃어버려 놓고, 혼자 찾을 순 없나?!이렇게 깜깜한데 어디 가서 찾으라고?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알겠다고 했다.그녀가 어떻게 계지원의 미움을 사겠는가.분명 연예계에서 숨도 못 쉬게 만들 것이다.그녀는 몇 발자국을 내디뎌 휴대폰을 찾아주려 했다.발걸음을 옮기자마자,“윽.”어둠 속에서 계지원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미안.” 예수진은 급히 사과했다.아마 그녀가 그를 밟은 것 같았다.예수진은 전기가 나가니까 정말 한 줄기 빛도 없이 너무 어두워서 손을 뻗으면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였기에 방송국 건물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괜찮아.”예수진은 옆으로 조금 더 걸어갔다.계지원이 어디에 넘어져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아, 맞다.골절인 것 같았는데.그가 정말 안쓰러웠다.예수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최대한 계지원과 멀어졌다.두 걸음 정도 내딛자, 발에 갑자기 뭔가 밟혔다.아마 지팡이인 것 같았다.감당을 못 할 정도로 세게 넘어졌는데, 넘어지고 나니, 생각보다 엄청 아프지는 않았다.다만 입술에 뭔가 부드러운 게 느껴졌는데, 아마 계지원의 살에 닿은 것 같았다......그녀는 정말 일부러 그의 몸 위로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말도 안 되는 짓이다.계지원의 신음 소리는 더 커졌다.어쨌든 많이 아플 것이다.예수진은 급히 계지원의 몸에서 일어났다. “미안, 미안해......”계지원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입장 바꿔 생각하면
예수진은 조금 절망적이었다.설마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어차피 지금 그녀가 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 그녀의 휴대폰을 찾으러 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는 연습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부딪혀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갑자기 어둠 속은 고요했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서로의 옅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너 휴대폰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후 계지원이 입을 열었다.예수진은 계지원이 이미 증발해버렸다고 생각할 뻔했다.“연습실에 있어. 가방 안에.” 예수진이 말했다.“가지러 갈 거야?”“나 못 해. 너무 깜깜해서 무서워. 그리고 네가 방금 내 지팡이 걷어차 버렸잖아.”“아, 거기 오른쪽에 있어.” 예수진이 알려주었다.아마 계지원이 몸을 숙여 더듬거리는 것 같았다.무엇인가를 찾은 것 같았다!예수진은 지팡이가 땅에 부딫히는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계지원이 그녀의 옆에서 일어나는 것이 느껴진 것 같았다.그래서 계지원은 휴대폰을 가져다주려는 건가?!이렇게 착하다니.아니, 그는 지금 스스로 살기 위함이였다.“그럼 여기서 기다려.” 계지원이 말했다.“다리까지 절면서 혼자 갈 수 있는 건 맞아?” 예수진은 생각 없이 말했지만, 정말 비웃는 것은 아니었다.다만 계지원이 너무 혼자 다 짊어지려 하는 것 같았기에 불쌍한 생각이 조금 들었다. “나...... 몸은 불편해도 의지는 있어.”예수진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네.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녀는 그냥 얌전히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다.여기저기 가서 벽에 부딪히느니, 얌전히 앉아서 성공하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계지원은 지팡이를 짚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걸어갔다.부딪힌 건진 모르겠지만, 가끔 한 두번씩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예수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얼마나 지났을까.조용하니까 너무 무서웠다.그녀는 계지원이 그녀를 버리고 도망간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한 두번이 아
"괜찮아요, 고마워요." 예수진은 감사의 인사를 하며 거절했고, 계지원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봐라. 이건 위선일 뿐이다. 밤이 더 깊어졌고 지금이 대체 몇 시인지도 감히 잡히지 않았다. 설마 오늘 밤 정말 여기서 밤새 앉아있어야 하는 건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예수진응 그저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했다. 2차전이 며칠 뒤에 있을 예정인데 감기 걸리면 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진은 마음속으로 약간 당황했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급해도 소용없으니 말이다. 지금 두 사람의 휴대전화는 모두 연결되지 않았다. 신호도 전혀 잡히지 않았기에 아무 방법이 없었다. 예수진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살아오면서 세상 물정을 몰랐고, 엄마가 바뀌기도 한 경험까지 했으니 이런 사소한 일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다. 걱정하지 말자, 이 밤은 곧 지나갈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예수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로 했다. 그녀는 복도의 벽에 기대어 편안한 자세를 찾아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내일 상대 배우들과 함께 리허설을 해야 하는데, 잠을 설치면 힘이 빠져 합작을 방해할 수 있다. 지금 예수진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예수진은 눈을 감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사실 꽤 나른한 상태였다. 예수진은 3년 전 연예계에 있을 때 늘 잠이 부족하다고 하소연을 했었다. 잠이 적은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계지원의 경우 하루 수면시간이 6시간을 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의 예수진은 만약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나 잘 수 있었다. 그 후 많은 일을 겪으면서, 예수진은 자신이 잠이 많은 것에 대해 약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잠들면 기분 나쁜 일들이 사라졌기에 오늘 밤도 아마 금방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예수진은 무릎을 껴안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으며 몸을
계지원은 예수진이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리가 불편해 잘 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비틀비틀 걸었다. 마침내 앞쪽에서 희미한 소리를 들은 계지원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직 가까이 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몸이 밀려졌다. 계지원의 손에서 휴대전화가 손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심하게 넘어졌다. 그는 넘어지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예수진이 옆에서 소리를 크게 질렀다. 계지원은 온몸에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그저 작은 신음소리만 냈다. 예수진은 좀 진정된 것 같았지만, 계지원은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고 지팡이도 옆에 없어 일어날 수 없었다. 그는 예수진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좀 찾아달라고 말했다. 예수진은 휴대전화를 찾는다고 하고는 그의 몸을 몇 번이나 밟았기에 계지원은 예수진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는 살짝 의심이 들었다. 예수진이 그에게서 좀 멀리 떨어졌다. 계지원이 안심하는 순간 계지원의 가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하마터면 그가 튕겨 나갈 뻔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예수진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는 것이다. 그가 그 사실을 느끼기도 전에 예수진의 입술이 사라졌다. 그 순간, 계지원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나중에 예수진이 그의 휴대전화를 찾아주었지만 휴대전화는 이미 고장 나 있었다. 계지원은 사실 지금 이 상황이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수진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좋았고, 사실 불빛이 없어서 더 좋았다. 하지만 계지원은 예수진의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첫째, 예수진은 어둠을 무서워한다. 둘째, 예수진은 내일 리허설을 해야 하고 휴식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예수진은 계지원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수진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계지원은 그녀의 휴대전화를 찾아주었다. 그녀의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배터리가 없었기에 계지원은 울고 싶어졌다. 자신의 수고가 헛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진이 실망할 까봐 울컥했다.예수진이 재채기를 하자
예수진은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곧 그녀는 즉시 계지원과 거리를 두고 말했다. "깨워서 미안해요.” 예수진은 계지원을 다시 만난 뒤로 계속 그에게 사과하는 것 같았다. 그를 건드려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계지원의 목젖이 삶적 움직였다. 그는 평소에도 잠을 잘 못 자는 편인데 어젯밤에는 거의 잠을 못 자 피곤했다. 예수진을 안고 있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약간 졸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깬 예수진은 자신들이 다정하게 붙어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몸을 벽에 살짝 기대고 있었다. 계지원도 자신도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으니 직원들도 출근했겠죠?" 예수진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며 바닥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앉아서 하룻밤을 잤더니 몸이 정말 찌뿌둥했다. "제가 가서 볼게요." 예수진은 그 말을 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수진아." 계지원이 그녀를 불렀다. 예수진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너 옷...... 단추." 계지원이 귀띔했다. 그의 말에 예수진은 바로 자신이 입고 있는 캐주얼하고 헐렁한 셔츠를 보았다. 그녀는 셔츠 단추가 세 번째 단추까지 잠기지 않아 속살이 잘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감사해요.” 예수진이 자연스럽게 셔츠 단추를 잠갔다. 계지원이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옷 매무새를 빠르게 정리한 후 예수진을 다시 밖으로 나가며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계속 나를 예수진이라고 부르면, 외부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계지원은 가슴이 떨렸다. "알겠어요.” 예수진이 그 자리를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되지 않아 방송국 직원들이 왔다. 그들은 다리가 불편한 계지원을 부축해 휴게실로 갔다. 계지원은 어젯밤 사무실 건물에 배선에 문제가 생겼지만 밤늦게 수리하기 어려워서 정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방금 제가 청하 씨한테 전화했더니 그때서야 일어났어다고 하던데요?" 원빈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예수진도 청하가 애초에 오지 않아 그에게 뭐라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결국 그녀가 잘못한 일이였기에 할 말이 없었다. "배우들이 아침 일찍 와서 리허설 준비하느라 아침도 안 먹었을 것 같다면서 계 감독님이 아침 식사를 사준다고 했대요. 매니저한테 시켜서 연습실마다 아침식사를 많이 가져다줬어요." 원빈은 맛있게 먹으며 설명했다. “계 감독님이 이렇게나 사려 깊으실 줄은 몰랐네요.” 계지원은 오랜 세월 육씨 가문에서 생활했고, 가족들의 요구를 가장 잘 들어주었기에 개인 생활을 토대로 그는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잘 어울린 편이였다. "그런데 아까 스태프들 얘기 들었어요?” "뭐요?” "계 감독님이 어젯밤 이곳에 갇혀 있었대요.” "어, 정말요? 전 못 들었어요." 예수진은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태연하게 아침을 계속 먹었다. 그녀가 계지원과 있다가 바로 나간 것도 혹시라도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볼 까봐 걱정해서였다. 연예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들의 생각에 뉴스로서 가치가 있다면 모두 사실이 된다. "듣기로는 혼자 있었던 것 같지 않던데… 설마 계 감독님 몰래 연애 하시는 중은 아니겠죠? 설마 우리 배우들 중 한 명인가?” "푸...!"예수진은 마시던 우유를 내뿜었고 원빈의 몸에 우유가 다 튀었다. 예수진은 얼른 냅킨을 꺼내 그를 닦아주며 말했다. "허걱! 미안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고의 아닌 거 알아요. 그런데, 뭘 그렇게 당황해요?” "당황한 거 아니에요. 우유를 잘못 삼킨 것 뿐이예요.” "그래요?" 원빈은 예수진을 바라보았다. 예수진은 재빨리 화제를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군지 알아요?” "수진 씨도 이런 소문에 관심 있었어요?” "저도 여자잖아요. 원빈 씨야 말로 무슨 남자가 이렇게나 소문을 좋아해요?” "다 나를 지키기
원빈이 힘껏 입으로 바람을 불자 예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됐어요?" 원빈이 긴장하며 물었다. 예수진은 이제 다 빠져나간 듯 조심스럽게 눈을 깜박거렸다. 그녀의 입꼬리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고 그때 그녀의 시선이 대기실 입구에 머물렀다. 원빈도 같이 예수진의 시선이 머문 곳을 보았다. 대기실 입구에 프로그램 감독 스태프들과 몇몇 심사위원들이 서있었고, 원빈과 예수진은 서둘러 거리를 벌려 앉았다. 두 사람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방금 이 행동이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담당 감독이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예수진 씨랑 원빈 씨, 벌써 그렇게나 가까워진 거야?” "하하. 상대역이잖아요." 원빈은 서둘러 설명했다. "유청하 씨는 아직 안 왔어요?" 계지원이 화제를 돌렸다. 계지원은 예수진을 보지 않았다. 예수진은 계지원이 어젯밤에 여기서 갇혀 있었기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배우들에게 아침 식사를 보내며 얼굴도장을 찍고, 지금도 이곳에 나타났다. 예수진은 계지원이 언제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는지 생각했다. 계지원은 이전에는 그가 집중하고 있는 영화 말고는 다른 사업을 확장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설마 육씨 가문에서 지내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변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녀처럼? 예수진은 지금 연예계에 복귀하며 배고픈 늑대처럼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하씨 지금 오고 있는 길인데 차가 좀 막힌데요." 예수진이 설명했다. 담당 감독은 계지원의 불편한 기분을 눈치챌 수 있었지만 원래 말을 잘하는 계지원ㅇ라 왜 기분이 나쁜지는 알 수 없었다. 연출을 고민하다 보면 촬영 전에 가끔 진지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계지원은 자신이 특별히 여러 번 섭외한 끝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었다. 계지원이 참여한다고 비록 시청률이 많이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프로그램의 수준을 끌어올려 주었기에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담당 감독이 조감독에게 말했다. "유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
결국 송승우에게 차 키를 내어준 하지수가 허영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뒤 자연스레 뒷좌석에 타려 하는데 송승우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지수야, 넌 앞에 타.”“어머니랑 같이 앉을게요.”“장안시에 길은 나도 잘 몰라서 알려줄 사람이 필요해.”단호한 그의 말을 하지수가 거절하기 어려워하자 허영지가 나서며 말했다.“그럼 내비게이션 켜. 바로 윌런 호텔로 갈 거야, 호텔 사장이랑 얘기 다 끝나서 아마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야.”말을 마친 허영지는 또 일부러 하지수를 보며 말했다.“지수는 나랑 같이 타자, 말동무해줘.”“네, 어머니.”제 옆에 앉지 않아도 된다고 저렇게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좋아하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표정을 굳힌 채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윌런 호텔로 출발하자 허영지가 하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수야, 어제 내가 한 말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무슨 말이요?”“너랑 문수 아이 얘기 말이야.”“아, 네.”“그냥 대답만 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애가 생기지.”허영지가 거리낌 없이 남사스러운 말을 하자 하지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어젯밤에 문수 씨랑도 얘기했어요.”“문수도 알겠대?”“네.”“그럼 난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지?”하지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허영지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나는 할머니 될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그런 허영지와 반대로 하지수가 송문수의 아이를 낳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송승우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고 있었다.윌런 호텔에 도착한 뒤 세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사장 사무실로 향해 파티 당일의 규모와 배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비즈니스적인 자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를 꺼리던 송승우는 얘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그렇게 심심해하던 송승우는 문득 무슨 생각에서인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허영지와 하지수도 담긴 사진이었지만 그 둘은 파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이연 언니가 왔다고?”오랜만에 들려온 소이연의 소식에 하지수는 흥분하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가야지, 오랫동안 못 봐서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육현경 씨랑 이연 언니가 나 엄청 많이 도와줘서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 하고 싶었어.”“계지원 씨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예수진 씨 배도 점점 불러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냥 거기서 보기로 했어.”“그래. 그럼 퇴근할 때 연락해. 나는 먼저 어머님이랑 아버님 생일파티 준비하고 있을게.”“응.”밥을 다 먹은 두 사람은 각자 알아서 집을 나섰고 하지수는 바로 송 씨 가문별장에 시어머니를 모시러 갔다.하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송승우가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게 보였다.그와 단둘이 만나는 건 아직 어색했기에 하지수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송승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모시러 온 거야?”“네.”“집에 계속 계시는 거예요?”“나갔으면 좋겠어?”헛웃음을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다급히 해명했다.“아뇨, 그냥 전에는 계속 일로 바쁘셨던 분이 계시니까 물어본 거예요.”“전에는 연구과제 때문에 바빴는데 이제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서 한가해.”“아, 네.”고개를 끄덕이는 하지수를 보며 그녀가 저를 불편해하는 걸 느낀 송승우는 올라오려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문수는?”“출근했어요.”“주말에도 출근해?”“요즘이 회사한테 중요한 시기라서 일요일만 쉬기로 했대요. 내일은 안나가요.”사실 송문수에게는 거의 휴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처리해야 할 일이 매일 산더미여서 그는 시간만 나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송문수 많이 변했네.”“송문수가 변해서 너도 걔를 다시 보게 된 거야?”냉소를 흘리며 묻는 송승우에 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감정이라는 게 원래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생기는 거잖아요.”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기척 없이 생겨서는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다.하지수의 말로부터 그녀가 이제는 정말로 송문수를
“하지수, 변호사 일할 때는 똑똑하더니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나 봐?”자는 척하고 자신을 놀려먹은 건 송문수인데 오히려 바보라고 핀잔을 듣자 화가 난 하지수가 얼굴을 붉혔다.“네가 나한테 뽀뽀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하라고 가만히 있은 거잖아!”송문수가 언성을 높여 말해서야 이유를 알게 된 하지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어이가 없어진 송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누가 너 팔아넘겨도 모르겠다.”“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내가 당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인 줄 어떻게 알고...”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입을 맞춰오며 진득한 키스를 이어나가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아...”아까 자신이 한 건 그저 뽀뽀이지 이렇게 치열을 훑고 지나가는 키스는 아니었는데 입속 깊은 곳까지 뜨겁게 만드는 키스는 옆에서 핸드폰이 울리건 말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송문수도, 하지수도 그 벨 소리를 무시한 채 키스를 이어나가다 둘의 입술이 다 번들번들해질 때가 되어서야 송문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지수를 놓아주었다.송문수의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진 하지수는 나른한 눈빛으로 송문수를 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던 송문수는 갑자기 욕설을 내뱉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그의 샤워 소리가 들릴 때에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도 시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자율적인 일상을 보내왔던 하지수였기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문수를 만난 뒤부터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송문수가 만약 자신을 팔아넘겨도 그를 도와 돈을 세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었다.생리대부터 바꾸러 제 방으로 돌아간 하지수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송문수도 옷을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서 8시 정도면
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새 깨어난 지도 모르고 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고 송문수는 다정한 눈을 한 채 떨리는 손으로 제 옆에 누운 하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하지수는 방금 일어난 탓에 낯선 주위를 한참이나 둘러보고서야 여기가 송문수의 방임을 기억해냈다.관계 빼고는 별짓 다 한 어젯밤이 떠오른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혼자 자는 게 습관 되어있어 송문수의 품에 안긴 뒤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아마도 바쁜 일정 때문에 피곤했던 것 같다.완전히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송문수를 바라보았다.자고있는 그의 모습은 평소처럼 차갑지 않고 쫙 펴진 미간 덕분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여 공격성이 다분하지도 않았다.왜 눈을 뜬 모습과 감은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송문수의 얼굴을 찬찬히 보던 하지수는 날카로운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전에는 그 눈빛이 마음속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아 두려웠었는데 지금의 하지수는 더 이상 잠들어있는 송문수도, 깨어있는 송문수도 두렵지는 않았다.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깨어있는 송문수를 마주할 때는 하지수가 주동적으로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잠들어있을 때는 그야말로 하지수 세상이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송문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하지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릴 때가 돼서야 행동을 멈추었다.물론 자의로 멈춘 건 아니고 입맞춤을 하던 와중에 눈을 떠버린 송문수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깜짝 놀라 잠시 멈칫한 것이었다.당황한 하지수는 빠르게 도망가려 했지만 자신을 눌러버린 송문수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분명 방금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송문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몽롱한 느낌은 전혀 없는 눈으로 그는 하지수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의 진득한 눈빛을 당해내지 못한 하지수는 서둘러 눈을 피했
“미안해 문수 씨... 평소엔 이때가 아니라서 나도 몰랐어...”“응.”이 일은 애초에 하지수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던 송문수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한탄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수를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3년 동안 아무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던 그인지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게 된 이 상황에 송문수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한숨을 쉬는 송문수를 본 하지수는 그가 자신에게 실망한 줄로 알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다음에 다시 할까?”하지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송문수는 이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생리 끝나면 당장 해.”자신한테 자꾸 일이 생겨버려 송문수가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하지수는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며 청심환을 하나 먹고는 말했다.“그럼 편히 자, 난 내 방 가서 잘게.”“어디 간다는 거야?”“내 방 가야지.”“하지수, 네 발로 직접 내 방 찾아와 놓고 이제 돌아가겠다는 거야?”갑자기 터진 생리 때문에 관계를 못 가진 것도 화가 나는데 사람까지 가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송문수는 언짢은 티를 팍팍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 생리 와서 어차피 못하잖아.”“그게 왜?”“아까 문수 씨도 생리 끝나면 하자고 했잖아. 지금 하는 건 나도 좀...”송문수가 되묻자 하지수는 아주 난감해하며 답했다.“하지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아까 너 안 놔줬으면 여기 진작에 피바다 됐어.”“...”“관계까지 할 사이에 뭘 내외를 하고 그래. 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앞으로 쭉 같이 자자고? 나랑?”“왜, 싫어?”“아니.”당연히 싫진 않았지만 하지수는 그저 송문수가 관계도 없는 잠을 자신과 함께 자겠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그렇게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빨리 와서 자. 아까 너무 움직였더니 피곤해.”송문수가 먼저 침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눕자 하
송문수의 입술이 하지수의 입술을 지나 그녀의 귓가에 닿을 때, 이런 식의 스킨십은 처음 해보는 하지수는 온몸이 떨려왔다.태어나서 딱 한 번, 송문수와 차에서 해본 게 전부인 그녀는 송문수의 유혹을 당해내지 못하고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목에 자신의 고개를 비볐다.그렇게 하지수를 안달 나게 하던 송문수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걸 확신하고는 점차 행동을 대범하게 하기 시작했다.자연의 섭리인 것마냥 물 흐르듯 움직임을 이어나가던 송문수가 갑자기 멈췄을 때 하지수는 온몸이 뜨거워 나고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온몸이 나른해진 그녀는 송문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 송문수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가 그를 보며 물었다.“왜 그래?”제 아래에 누워있는 하지수를 보며 정말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된 송문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문수 씨?”하지만 하지수는 아까는 그렇게 늑대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하고 거친 숨만 연신 내뱉는 게 이상했다.“문수 씨...”“지수야.”송문수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그 숨결에 의해 뜨겁게 달궈진 피부에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곧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었는데 다른 여자들한테는 다 곁을 내주면서 왜 자기 앞에서는 갑자기 멈추는 건지 하지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본인이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 송문수가 싫어하는 걸까 봐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송문수가 잔뜩 실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 생리 왔어.”“뭐?”송문수의 말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송문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속옷에 피 묻어있어, 아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지수는 수치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이틀 뒤가 예정일인데 왜 갑자기 오늘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수는 송문수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민망해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하마터면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