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는 묵묵히 죽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하도경은 먼저 육현경의 손이 부어오른 것을 보며 상처를 붕대로 감아주었다. 그의 눈빛에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느끼는 듯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육민, 그 작은 아이를 생각하자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친부모인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육민은 복이 많고 크게 될 사람이라 절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없다. 하도경은 육현경을 붕대로 감아준 뒤,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워.” 육현경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담배 한 대 피우고 온다고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 가서 긴장 좀 풀어.” 하도경은 육현경이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다. 육현경의 능력으로 영상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는다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할 일을 찾고, 할 일이 있어야 헛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수야, 너도 와서 담배 피워." 육현경이 뭐라 말하기 전에 하도경이 송문수를 불렀다. 송문수가 급히 달려왔다. 소이연은 그들을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그녀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긴장을 풀어야 했다. 단지, 그녀 스스로 자신을 편안하게 하지 못할 뿐이었다. 긴장을 풀면 육민이 생각났고, 육민이 생각나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베란다 밖. 세 사람은 묵묵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도경과 송문수는 묵묵히 육현경을 바라보았다. 몇 번이고 입을 떼려 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최근 육씨 가문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예수진이 육씨 가문의 친자가 아닌 것이 밝혀졌을 때부터 편안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계지원은 사고를 당했고 육현경은 송사에 휘말렸고 지금은 또 육민에게 사고가 났다. 정말 좋은 일이 있어서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일까?! "시간이 늦었어, 너희 먼
그녀는 공포 가는 한 눈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민아!” "이연아." 육현경은 얼른 그녀를 안으며 달랬다. "이연아, 나야 현경이. 지금 꿈을 꾼 거야.” "아니...... 민이가......" 소이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심아윤이 육민이 육민을 절벽으로 밀어내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렸지만 그렇게 빨리 뛰지 못했고, 눈앞에서 육민의 작은 몸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고, 그녀의 모습에 심아윤은 크게 웃고 있었다. "이연아, 일어나." 육현경은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공포가 가시지 않은, 초점 없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육현경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육현경, 심아윤이 우리 민이를 절벽에서 밀어서 떨어뜨리는 걸 봤어......” "아니야!" 육현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민이에게 어떤 위험한 일도 생기지 않도록 내가 구할 거야.” "그런데......" 소이연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하지만 눈앞의 육현경을 보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너무나 생생한 꿈을 생각하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내가 지켜줄게, 내가 지켜줄게." 육현경은 소이연을 다시 품에 꼭 안았다. 소이연은 육현경의 가슴에 기대어 그의 강한 심장 박동을 들었다. 그 소리가 그녀를 좀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육현경의 전화벨이 울렸다.차분해졌던 마치 응급상황에 처한 고양이처럼 감정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육현경은 그녀의 끌어안고 달래며, 한 손으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전화가 걸려오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기 시작했다. 소이연도 육현경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소이연은 직감적으로 전화를 한 사람이 심아윤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애써 감정을 누르며 전화를 받는 육현경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여보세요." 육현경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소이연이 지금 그
"육현경, 너답지 않네? 벌써 자제력을 잃은 거야?” 심아윤은 비아냥거렸다. “난 네가 매일 같은 표정, 같은 태도로 날 대해서 넌 감정도 없는 줄 알았지. 이제 보니 너도 이렇게 흥분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육현경은 이를 갈았다.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는데? 모든 걸 다 잃은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심아윤은 자조적으로 육현경에게 반문했다. "네가 우리 집안을 망하게 하려 할 때, 내가 먼저 장안시에 온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야겠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우리 오빠랑 같이 감옥에 갇혔을 것 아니야! 어쨌든 넌 네게 혐의를 피할 수 있는 증거를 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맞아. 내가 너를, 너희 집안을 해쳤어. 그러니까 나에게 복수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내가 갈게. 나한테 하고 싶은 거 다 해!” 육현경의 목소리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지금 널 보고 싶지 않아. 육현경, 우리 게임을 하나 할까?" 심아윤이 사악하게 말했다. 육현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심씨 집안사람은 타인을 어떻게 괴롭히고,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넌 똑똑하잖아? 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하루 줄게. 지금이 새벽 1시 2분이니까 내일 이 시각까지, 날 찾지 못하면, 육민 신체 중에 일부를 너에게 보내 줄게. 2시간마다 한 번씩, 어때?” "심아윤!” "육민은 울지도 떠들지도 않고 아주 얌전히 있어. 그런데 이따가 내가 민이 몸에 손을 대면 울지 않을까......” "그만해!” "왜? 더 이상 못 듣겠어?" 심아윤은 더 크게 웃었다."육현경, 이 모든 일은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너도 한번 나 때문에 괴로움이 어떤 거라는 걸 당해봐야지 않겠어!” 심아윤은 말을 다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육현경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심아윤이 뭐라고 했어?" 송문수가 육현경의 안색을 보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심아윤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24시간 이내에 찾으래,
그는 육현경의 눈동자에 핏발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감옥에서 막 나온 그는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계속 밤을 새우며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정말 두려웠다 "잠깐 눈 좀 붙여. 이렇게 널 몰아붙이는 것보다,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쩌면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라." 하도경이 그를 설득했다. 육현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쩍 마르고 약한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꼼짝 도하지 않으며 가끔 펜으로 종이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심아윤이 전화로 협박하자 소이연은 갑자기 냉정한 태도를 되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무너졌지만, 그녀는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12시간 동안 CCTV를 계속 주의 깊게 보며 추측하고, 배제하고, 추측하고를 반복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도경은 육현경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소이연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송문수는 하도경을 잡아당기며 그들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육현경과 소이연의 신체적 한계를 알 수 없지만, 이 순간 그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신이 죽을지언정 침대에 편안하게 누울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들을 계속 놔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소한, 후회는 덜 할 것이다. 방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저녁 8시. 심아윤이 요구한 시간까지 3시간 남았다. 소이연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일어서자마자 주저앉았다. 너무 오래 앉아있다가 일어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소이연." 육현경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소이연은 2초도 채 되지 않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세웠다. 그녀는 육현경에게 말했다. "심아윤의 동선을 분석해 봤어. 의심스러운 점을 너랑 같이 얘기하면 심아윤이 어디 있는지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아.” 육현경은 소이연과 테이블로 갔다.
"CCTV 사각지대를 제외하고 심아윤이 있을 만한 찾아봐야 해. 우리는 여기서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했어. 내 말은, 심아윤은 일을 감히 크게 벌이지 못한다는 거야. 그녀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쓸 수 있는 수단도 많지 않을 거야. 즉, 심아윤은 장안시 교통의 소위 사각지대 지도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 "그리고 사각지대 지도를 손에 넣지 못한 이상 사각지대를 피해 숨어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 소이연은 자신의 도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CCTV를 통해서 민이 학교부터 심아윤의 차가 마지막으로 정차된 곳까지의 모든 길의 사각지대를 표시해 봤어. 언뜻 보면 사각지대가 많지 않아. 심아윤의 성격으로는 쉽게 모험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소이연은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나 같아도 모험하지 않을 거야." 송문수가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즉, 우리가 심아윤에게 속았다는 얘기야. 심아윤은 사실 처음부터 차에서 내리지 않았을 거야." 소이연은 말을 한 뒤 잠시 멈추었다. 육현경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하도경과 송문수는 깜짝 놀랐듯 했다. "명진 씨가 보내온 영상만 봐도 운전기사만 내렸을 뿐 다른 사람은 내리지 않았어. 정말 차에 다른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을까? 일부러 운전기사를 차에서 내리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들이 내리지는 않았을까?" 소이연은 육현경을 바라보았다. 육현경은 급히 이명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진 씨, 당장 심아윤의 차가 멈추었던 주차장의 CCTV 영상과 운전기사가 떠난 후의 영상을 확보해.” "네." 분위기가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심아윤은 공업단지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 초 단위로 흐르는 것 같았다. 육현경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재빨리 컴퓨터 앞으로 가 이명진이 보내온 동영상 파일을 열어 8배 속도로 보았다.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린 지 한 시간 후. 한 시간 내내 승용차가 눈에 띄게 움직였다.육현경이 재빨리 영상의
그들의 최후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능한 몸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육현경은 소이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은 급히 그의 식당에 연락해 가능한 한 빨리 식사를 배달해 달라고 말했다. 배달된 식사는 식탁 위에 두 겹으로 놓아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소이연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도경 씨, 이번이 현경이 마지막 식사일까 봐 두려워요?” 소이연은 말을 하며 하도경의 눈시울을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요, 당신 둘은 아마 만 살까지도 살 수 있을 거예요.” 소이연은 가볍게 웃었다. 웃으면서 눈물이 나왔다. 육현경은 그녀에게 휴지 한 장을 건넸다. 이번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죽만 먹었더니 배고파. 빨리 먹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어." 송문수가 분위기를 띄웠다. 모두가 조용히 먹기 시작했지만 다들 입맛이 없어 억지로 먹었다. 하도경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 말이야, 이전에 계지원이 정말 싫었어.”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하도경의 눈은 계속 붉어 있었다. 사실 그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진이 싫다고 했으면서 빼앗아 갔어. 하지만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직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갑자기 모든 사랑과 증오가 삶 앞에서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문득 느꼈어. 심지어 계지원이 살 수만 있다면, 나는 그와 예수진이 잘 되게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하도경은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마 계지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계지원에게 이렇게 큰 사고가 날 줄 알았다면 진작에 그에게 예수진과 함께 행복하기만 하면 후회 없이 물러날 수 있다고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마." 송문수는 휴지를 가져다주며 위로했다. ”계지원이 죽은 것도 아니고...... 계지원은 죽지 않을 거야. 며칠 후면 깨어날지도 몰라. 너무
소이연은 육현경의 가슴에 기대어 그의 강한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실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몸이 매우 지쳐 있고 피곤한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는 순간 온통 피비린내 나는 장면으로 뒤덮였다. 모두 심아윤의 손에 들려있는 작고 무기력한 육민의 모습이었다. "육현경."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조용히 있고 싶지 않았다.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안 좋은 일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응." "내가 미워?” 소이연이 갑자기 그에게 물었다.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어.” "몇 번이고 널 밀어냈는데 원망한 적 없어?” "없어." 육현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나를 밀어낼 때마다, 난 널 어떻게 다시 끌어당길까 생각했지, 너를 미워할 시간이 없었어.” 소이연은 코가 시큰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헌신적일 수 있지? "소이연, 내가 왜 널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았어?" 육현경은 고개를 숙여 작고 하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네가 말했잖아..." 소이연은 웃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이런 감정은 처음인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첫눈에 반했다고." 육현경이 인정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아는 사이였어?” 그들은 모두 장안시 출신이었고, 상류층 사람들이었지만, 육씨 가문의 지위는 소이연의 가문에 비교할 수 없었기에 그들이 함께 어울릴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더구나 육현경은 거의 외국에서 자랐다. "응. 네 어머니 장례식에서 만났었어." 육현경이 말했다. 소이연은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를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도 어머니를 잊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에 갔었어.”육현경이 말했다. “그때 넌 작은 몸으로 로비에 꿇어앉아서 울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고,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있었어. 난 처음으로 연민이라는 감정을
나중에도 그녀를 좋아했는데, 왜 말을 하지 않은 것일까? "나중에는 외국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귀국할 때마다, 심아윤이 계속 내 곁에 있어서 사실 한동안 내 감정을 분간할 수 없었어.” "그래서 심아윤에게 마음이 갔어?" 심아윤 얘기가 나오자 소이연은 가슴이 떨렸다. 정말 싫었다. "아니. 스무 살에 귀국해서 술집에서 널 다시 만났을 때, 너에 대한 내 감정과 심아윤에 대한 감정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았어. 심아윤은 그저 어렸을 때부터 정략결혼을 완벽한 상대이라고 은연중에 내게 강요된 상대일 뿐이었어. 하지만 모든 널 만난 후, 모두 헛된 것이 되었어. 너에 대한 내 감정과 심아윤에 대한 감정이 아주 달라서 통제할 수 없었어.” 소이연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육현경이 이렇게 오랫동안 묵묵히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는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를 만나기 전에는 육현경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 사람은 단지 풍문으로 들어본 사람일 뿐이었다. 자기 자신과는 영원히 만날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미안해." 소이연은 갑자기 사과했다. "응?" "너에 대해 그동안 많은 오해를 했어.” "괜찮아." 육현경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사실 난 만족해. 네가 문서인과 만날 때, 난 이미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어. 너와 함께 할 기회, 너에게 고백할 기회, 나에 대한 너의 진심을 느낄 기회를 이미 놓쳤다고 생각했어. 난 이번 삶에 여한이 없어...... 흠!” 소이연이 손으로 육현경의 입을 막았다. 그녀는 계속 듣고 싶지 않았다.육현경의 유언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녀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육현경이 그녀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말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육현경이 앞으로 다시는 자기에게 이런 말을 말할 기회가 없을까 봐,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을까 봐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서야 송문수는 마침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캐나다에 있는 회사도 이제 정상적으로 흘러가자 귀국한 거였지만 그도 그냥 예수진 아들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것뿐이었다.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송문수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배가 부른 채로 있던 예수진이 벌써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백일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오랜만에 온 장안시였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귀국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저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그런지 온통 먼지투성이여서 일단 도우미부터 부른 송문수는 아주머니가 정리를 마친 다음에야 침대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떠나기 전만 해도 이곳에서 사랑하던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이제는 그 모든 게 다시는 들춰선 안 될 과거가 돼버린 것 같았다.해외에 있던 시간 동안 송문수는 부단히 하지수를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물론 정말 잊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하지만 하지수와 송문수가 반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할 때도 같은 집에 살던 하지수는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그저 우연히 한 번, 그녀의 뒷모습이 화면에 스친 게 전부였다.몸을 뒤척이던 송문수는 내일의 백일잔치에 대해 생각했다.내일 가면 친구들이 무조건 술을 권할 텐데,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탓에 송문수는 지금 자신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푹 쉬면 조금은 낫겠지 싶어 그대로 잠을 청한 송문수는 이튿날 아침이 돼서야 눈을 떴다.언제부턴지 부모님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에 송문수는 이젠 밤을 새우는 게 오히려 힘겨웠다.그렇게 여유롭게 준비를 마친 그는 한 번 더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집을 나섰다.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각에 집을 나선 그는 문득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어쩜 그리 특이하게 살아왔는지, 참으로 유치했던 것 같다.해외에서 반년 동안 혼자 살아서
“보름 넘게 준비한 건데 서두르는 건 아니지.”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일인데도 송문수는 참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갔다가 언제 와?”“그건 몰라. 상황 봐서 잘 되면 빨리 오는 거고 잘 안되면 못 오는 거지.”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송문수에 그의 결심이 바뀔 리 없다는 걸 알아챈 송승우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하지수의 손을 맞잡았다.무의식중에 눈물을 흘리던 하지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빠르게 표정을 감췄다.“가자.”그리고는 송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그녀는 송문수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마지막 작별인사도 전하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하지수의 몸에 감히 시선을 두지 못하던 송문수도 그녀가 송승우와 함께 차에 타서야 차창 너머로 비치는 그 뒷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그는 한참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사실 캐나다도 송문수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회사에 유능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 아무에게나 CEO라는 직급을 쥐어 보내면 될 일이었지만 송문수는 본인이 가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여기서 다정하게 지내는 둘을 보고 있는 게 더 가슴 아플 것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어서.손 하나 잡았다고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계속 보는 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이곳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송문수는 캐나다에 도착해서야 육현경과 소이연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출국 소식을 알렸다.그리고 언제 돌아갈지는 모른다는 말까지 남기자 다들 깜짝 놀랐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몸 잘 챙기라는 소리들뿐이었다.그리고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얘기들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는데 역시나 예수진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그녀는 굳이 송문수에게 따로 문자까지 보내며 물었다.[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이렇게 가겠다고? 다 버리고? 송문수, 너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해졌니? 내가 너였으면 당장이라도 송승우랑 싸웠어!][어차피 못 이
둘의 이혼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고 두 사람은 각각 손에 이혼 증명서를 들고 법원에서 나왔다.“이제 끝난 거지?”“네.”하지수에게 건네받은 이혼 증명서를 들춰보던 송승우는 안에 적힌 내용을 다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따라온 건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송문수는 하지수를 보고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절차대로 서류만 제출했다.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송승우는 감정이란 게 저렇게 쉽게 사라질 수도 있나 싶었다.둘 사이에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혼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송승우는 다른 건 묻지 않았다.이제 두 사람이 이혼했으니 송승우는 저와 하지수도 떳떳해진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송문수만 연락을 끊는다면 하지수를 다시 자기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래서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송승우가 먼저 송문수를 불러세웠다.“시간 되면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어. 엄마 아빠가 전화해도 안 오던데, 많이 바쁜 거야?”“응.”“바쁘다고 가족들도 다 내팽개치는 건 아니지. 워라벨도 신경 써야지.”어른스러운 말투로 나무라듯 말하는 송승우를 송문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서울에서 일할 때 1년이 넘도록 안 오던 게 누군데.부모님이 굳이 송승우를 부르지 않은 건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 봐서였다.무튼 송승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언제든지 시간을 뺄 수 있는 여유 적적한 일이라 여기는 사람.“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도우미들 시켜서 너 좋아하는 거...”“나 해외에 잠깐 나가봐야 해.”“뭐라고?”송문수가 송승우의 지루한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송승우는 당황하며 물었다.“엄마 아빠가 말 안 했어?”“무슨 말이야 그게?”금시초문이었던 송승우는 하지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녀 역시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우리 회사 전기차 해외 매출이 자꾸 오르니까 전
그런데 그때, 협탁에 놓인 물과 알약 한 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쪽지에는 “단기 피임약”이라는 말도 적혀있었다.그 약과 물을 번갈아 보던 하지수는 피가 차게 식는다는 게 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나도 명확한 송문수의 의사에 하지수는 가슴이 아려왔다.성인 남녀 둘이 충동적으로 서로를 원해서 가졌던 하룻밤이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걸 이렇게 약으로 알려주다니.알약을 집어 든 하지수는 참으로 처량하게 웃어 보였다....그렇게 점심이 다돼서야 하지수는 별장으로 돌아갔다.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탓에 그녀는 송승우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별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송승우는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얼굴로 이제야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와 달리 허영지와 송기명은 살갑게 하지수를 걱정해주었다.“지수야, 어제 어디 갔었어? 전화는 왜 꺼놓고. 수진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문수랑 같이 갔다고 해서 문수한테 연락해보니까 문수는 또 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그러던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어디 다친 데는 없지?”“없어요.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문수 씨 집에서 잔 것뿐이에요.”송문수 집에서 잤다는 하지수의 말에 송승우는 더는 못 참겠는지 언성을 높였다.“하지수, 너 나랑 한 약속 잊었어? 네가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자!”“내가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송승우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저 질문에만큼은 답을 할 수 없었다.가스라이팅으로 어렵게 얻어낸 기회라는 걸 다른 사람한테는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 문수 씨랑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직은 뭘 하든 합법적이란 소리죠.”“하지만...”“이혼하고 나서 얘기해요. 나 피곤해서 먼저 올라 가볼 게요.”몸도 마음도 다 힘들었던 하지수는 송승우를 화를 살필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렇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
“너 내일 후회할 거야.”이런 하지수를 앞에 두고 참는 건 송문수에게도 곤욕이었다.온몸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었다.“후회 안 해.”“딱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번 밖에 못 해봤다는 거야. 그리고 그 한 번도 진짜 별로였어.”“뭐?”아까부터 한번을 강조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그 한 번도 다 너한테 맞춘 거였잖아.”고작 한 번이라니, 그럴 리가.그런데 또 곱씹어 보니 둘이 함께 잔 건 한 번뿐인 것 같긴 했다.하지만 송승우와 그렇게 오래도록 사귀면서 송승우 방까지 들락날락하던 게 하지수인데 그런 그녀의 인생에서 저와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이번엔 내가 움직일 거야.”하지수는 잔뜩 풀린 눈으로 당차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나 또 밀어내면 그땐 진짜 물어버릴 거야.”말을 마친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닥에 눕힌 뒤 그 위에 올라탔다.“반항하지 마.”곧바로 하지수의 입술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송문수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이 상황에 그녀를 밀어내면 하지수가 정말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송문수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그렇게 내일 그녀의 원망도 다 받아낼 심산으로 송문수는 하지수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이 밝아오자 하지수는 몸을 뒤척였다.온몸에 차에 깔리기라도 한 듯 무거웠고 발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던 그녀는 힘겹게 눈부터 떠보았다.익숙하고도 낯선 이곳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송문수의 집이었다.그리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것들이 마침내 온전한 하나가 되었을 때, 하지수는 얼굴을 붉혔다.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대담한 모습을 그녀는 차마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술이 깬 지금에 와서는 절대 못 할 일이
송문수는 자신마저도 취해버린 것 같았다.그래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입술을 뗀 하지수가 오랜만에 얌전해진 송문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자신의 키스에 몸을 맡기며 가만히 있기만 하는 그에 하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문수 씨, 내가 하는 키스가 그렇게 별로야?”별로라니, 흥분해서 자칫하면 이성이 끊길뻔했는데.여기서 입을 열면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아 송문수는 이번에도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어디가 별론지 얘기해주면 내가 고칠게, 응?”송문수는 아까부터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부단히도 움직이는 그의 울대가 그의 초조함을 대변하고 있었다.하지수 앞에서만큼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송문수라 하지수가 한마디만 더 하면 그는 정말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지수...”그래서 그만하라고 말하려 하는데 하지수가 본인의 손가락을 송문수의 입에 가져다 댔다.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진 지 아는 송문수는 지금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며 간신히 참고 있었다.이대로 가면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데, 그걸 다 알면서도 그는 하지수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점점 과감해지는 건지 이젠 하다 하다 손까지 집어넣어 송문수의 몸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녀의 손길이 지나간 곳이면 그게 어디든 불에 덴 듯 뜨거워 났다.송문수 역시 술을 마신 몸이라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느슨해져서 이 상황을 즐기는 일이 없게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하지 마 하지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손을 움직여왔다.“아!”그러다 결국 송문수에게 손이 잡혀버린 그녀는 울망울망한 눈으로 송문수를 올려다봤다.자칫하면 그곳까지 갈 수도 있었는데 뭐가 아쉬워서 저런 표정을 짓는지.송문수는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만해 하지수.”“왜?”“별장에 데려다줄게.”저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있으면 송문수도 빨려 들어갈
술에 취한 하지수의 고집을 당해낼 수 없었던 송문수는 결국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밤늦은 시간에 별장에 들어가면 다른 가족들을 깨울 수도 있으니 집에서 잠만 재운다는 핑계를 대가며 말이다.송문수가 하지수를 침대에 눕히고 자리를 뜨려 하자 하지수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가지 마.”손끝에서 느껴지는 하지수의 온기에 송문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수, 잘 봐. 나 송문수야.”“알아, 네가 송문수인 거. 나 버린 무책임한 놈이잖아 너!”풀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송문수가 감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왜 날 송승우한테 넘긴 거야? 내가 물건이야? 네가 뭔데 날 송승우한테 준다 만다냐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지수는 침대에 올라 선 채 송문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서 있지 말고 일단 앉아, 그러다가 넘어져.”“안 넘어져.”하지수는 송문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질문만 퍼부었다.“왜 날 밀어내는 건데! 내가 어디가 별로야? 몸매가 별로야 아니면 내가 못생겼어? 뭘 그렇게 일일이 다 따지고 들어? 넌 보는 눈이 그렇게 높아?”“일단 누워.”“싫어.”송문수가 그녀를 잡아주려고 손을 뻗으면 하지수는 곧장 몸을 돌려 피하곤 했다.그렇게 휘청대는 하지수를 보는 게 송문수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내 말에 대답부터 해. 왜 날 싫어하는 거야?”“난 너 싫어한다고 안 했어.”그의 대답에 송문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하지수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넌 그냥 내가 싫은 거잖아! 나 말고 밖에 있는 그 못된 여자들을 더 좋아하는 거잖아. 나도 그 여자들처럼 변하면 나 좋아해 줄 거야?”“그런 거 아니야.”“변명하지마! 넌 그냥 몸매 좋고 능숙한 그런 여자들만 좋아하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혼자 화를 내는 하지수가 송문수는 어이없기만 했다.술을 마신 하지수는 아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예수진:[저 둘이 나랑 지원 씨보다 더한 것 같아요.]소이연:[수진 씨도 본인들이 너무했다는 건 아네요.]예수진:[... 송문수랑 지수 얘기나 해요.]소이연:[일단 오늘은 지수 씨도 스트레스 풀게 그냥 놔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봐요.]예수진:[그래요.]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하지수는 5병의 맥주를 모두 비워냈다.이미 한계에 다다른 그녀는 해롱해롱해지고 몸에 힘도 빠지자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속도 쓰리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아팠다.누가 자신을 억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에 하지수는 당장이라도 속 시원히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습관적으로 또 참아내고 있었다.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탓에 늘 불안에 떨며 살아와서 그런지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감정을 숨기고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이는 게 하지수라는 사람이었다.“다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예수진이 말을 꺼내자 소이연도 남편을 보며 말했다.“현경아,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도 이만 갈까?”아내 바라기였던 육현경은 이미 입가에 가져다 댄 술잔도 바로 내려놓고는 그녀를 따라나섰다.그들이 떠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하도경 역시 예수진의 눈짓에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그럼 나도 갈게.”아직 술을 덜 마신 게 아쉽긴 했지만 예수진의 눈빛을 당해낼 수 없었던 하도경은 결국 소이연 부부의 뒤를 따라갔다.모두가 자리를 뜨자 예수진은 그제야 술을 퍼마시고 있는 송문수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수 집에 좀 데려다줘.”“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안돼, 난 손님 집에서 안 재워.”“하도경은 너희 집에서 잤잖아.”“지수랑 하도경이랑 같아? 걔는 내 남편이 될뻔한 사이였잖아.”아무 말이 막 하는 예수진 때문에 계지원은 마음이 아파왔다.하룻밤 사이에 두 남자의 마음을 후벼 파 놓은 예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터뜨리는 송문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어쨌든 아직은 이혼 전이니까 네가 지수 남편이야. 지수 안전은 너한
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자 예수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너랑 나랑은 다르지.”“뭐가 다른데?”“난 너 안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야.”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예수진에 하도경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헤어질 때 준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도경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수진이었다.“진짜 사랑했던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어, 내 말이 맞지 지수야?”일부러 하지수를 언급했지만 그녀는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고 오히려 송문수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냥 친구로 지낼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럴 수도 있지.”하지수는 입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냈고 예수진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송문수를 노려보며 저 싹수면 이혼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우리 진짜 오랜만에 모인다, 다음에 만날 때쯤이면 우리 애도 다 태어났겠어.”“도경아, 오늘은 진짜 취하기 전엔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말자.”계지원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하자 하도경도 눈치 있게 대꾸했다.“좋아.”어차피 예수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더 다칠 마음도 없었기에 하도경은 공허한 제 가슴에 술이나 퍼부으려고 맥주를 따기 시작했다.그렇게 남자들 앞에 한 병씩 놓아준 하도경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 여자분들은 물, 우유, 음료수 중에 고르세요.”“전 물 마실게요,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전 맥주 주세요.”평소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예수진과 소이연이 마실 때만 한 잔씩 같이 마시던 하지수가 갑자기 맥주를 요구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요즘 송승우 옆에만 있느라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송승우는 좀 어때?”궁금한 건 못 참는 예수진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하지수를 향해 물었다.“아직도 죽겠다고 난리야?”“아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다 큰 남자가 왜 자기 목숨으로 가족들 협박하는 거야?”처음에는 송승우를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