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연은 온몸이 떨렸다.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죽으면 안 돼.다시 일어섰지만 허약한 몸뚱어리 때문에 또 넘어졌다.육현경을 찾아야 돼.그 사람 찾으러 가야 돼…그녀는 기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이 순간 절망적이고 가슴이 아파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그때 얼핏 그림자를 보았다.불길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그녀 쪽으로 달려왔다.그들 몸에는 온통 불이 붙어서 타버릴 것만 같았다.하지만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었다.육현경이 살아있다.세 사람이 한참을 달리다 바닥에 엎드려 몸에 붙을 불을 끄려고 했다.소이연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육현경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몸으로 불을 껐다.드디어 불이 사라졌다.하지만 승용차는 지금도 타고 있다.모두 바닥에 누워 숨을 돌렸다.재난 속에서 살아난 느낌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체험했다.육현경은 바닥에서 일어나다가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하지만 다시 쓰러지지 않고 잠시 멈춰서 자신의 옷을 벗었다.옷은 이미 불에 타서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소이연의 몸을 감쌌다.방금 그녀는 불을 끄기 위해 드레스를 벗어서 지금 살색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있었다.육현경은 자신의 정장 옷으로 그녀의 몸을 가렸다.소이연은 거절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비록 교통사고는 당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나 못 버티겠어.”어둠속에서 심문헌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육현경이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장기를 다쳤어요?”시간이 긴박해서 그를 돌볼 겨를이 없이 차문을 망가트리고 나온 것이다.조금만 더 늦었다면 세 사람 모두 차 안에서 죽었다.“아, 아니에요…”심문헌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더니 연신 숨을 헐떡거렸다.육현경이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심문헌의 상태가 너무 이상해 다가가서 살펴봤다.그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그리고 숨을 급하게 쉬고 몸이 매우 뜨거웠다.육현경이 심문헌의 이마를 짚어보았다.방금 사람을 구하는 것
”걱정 마, 내가 해결할 수 없어.”소이연이 밀어내려 했지만 육현경은 여전히 꼭 안고 놔주지 않았다.“너라면 할 수 있어.”소이연의 말에 육현경이 살짝 당황했다. 말속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는지 소이연을 꼭 안았던 팔이 느슨해졌다.“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소이연은 그의 품에서 나와 심문헌에게 다가갔다.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니 극치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눈,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소이연은 잘못 본 줄 알았다.지금은 아직 어두운 밤이니까.그녀는 손끝으로 심문헌의 콧구멍에서 흐르는 끈적한 액체를 만지고 초점이 없는 눈과 귀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다.심씨 가문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약을 먹인 거야?정말 심문헌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거야?오늘 교통 사고가 성공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그녀와 심문헌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함정을 판 것이다.그러면 육현경과 철저히 관계를 끊게 된다.심씨 가문은 정말 독하고 음흉했다.“심문헌 씨, 왜 그러십니까?”기사도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원래는 재난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생각했는데 심문헌이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정말 교통 사고 때문에 장기를 다쳤나?기사는 어쩔 바를 몰랐다.육현경도 지금 심문헌의 상태를 똑똑히 보았다.“해결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거야.”“심문헌 구급대가 왜 아직도 안 오지?”소이연이 물었다.교통 사고 때문에 휴대폰이 부서져서 구급대가 어느 위치에 떨어졌는지 찾지 못한 모양이다.“이제 어떡해?”소이연이 육현경에게 물었다.어렵게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심문헌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육현경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날 그렇게 쳐다봐?”그는 죽어도 이런 짓은 할 수 없었다.소이연이 입술을 오므렸다.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시선을 돌려 기사를 봤다.기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허둥거렸다.“기사님은 심문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소이연이 물었다.“심 선생은 내 고용주예요. 죽는 한이 있다고 해도 할 겁니다.”기사가 단호하게 말했
이렇게 가파롭고 경사진 길을 소이연까지 안고 가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하지만 소이연은 정말 힘이 없었다.눈꺼풀을 들 힘조차 없어서 두 눈을 감고 육현경의 품에 기대었다.얼핏 주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헬리콥터의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심문헌의 구급대가 왔나 봐.정말 타이밍이… 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게 도착했다.소이연은 드디어 깊게 잠들었다.다시 일어났을 때 낯선 곳에 누워 있었다.병원도 아니고 장안의 집도 아니고 육현경의 집도 아니었다.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금도 눈꺼풀이 매우 무겁고 머리도 무거웠다.마치 오랫동안 잠을 자서 깨어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일어났어?”옆에 육현경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매우 가볍고 매우 부드러웠다.소이연은 시선을 돌려 익숙한 육현경의 얼굴을 보았다.원래는 말끔하고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크고 작은 흉터들로 가득했다.소이연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나 지금 어디에 있어?”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쉬었다. 목도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낙성이야.”육현경이 한마디 덧붙였다.“걱정 마. 여긴 안전해.”그녀는 심씨 가문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반항할 힘이 없었다.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내가 부축할게.”육현경은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고는 편하게 기댈 수 있게 등에 푹신한 베개를 놓았다.그제야 소이연은 수액을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 방도 임시 의료실로 변했다.그녀는 육현경의 도움을 받아 앉았다.“물 마실래?”육현경이 물었다.“응.”소이연이 대답했다. 목이 정말 아팠다.육현경이 일어서서 따뜻한 물을 따랐다.“내가 먹여줘?”“할 수 있어.”소이연이 가까스로 손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지금은 숨쉬는 것 마저도 힘들었다.“억지 부리지 마.”육현경은 컵을 소이연의 입가에 가져갔다.“너 3일 동안 자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수액으로 목숨을 이어 가서 힘이 없는 건 정상이야.”소이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다.육현경이 과분하게 잘해주는 태도 때문에 남은 생에 장애로 살아야 되는지 의심스러웠다.그래서 당황스러웠다.육현경이 빙그레 웃었다.얼굴에 상처 가득한 남자가 웃는 모습이 왜 이렇게 잘 생겼는지…소이연은 시선을 돌렸다.“걱정 마. 팔도 멀쩡하고 다리도 붙어 있어. 오른쪽 다리가 살짝 골절되고 곳곳에 찰과상이 있어서 피를 좀 많이 흘렸어. 하지만 의사는 곧 회복할 거라고 했어.”육현경이 진지하게 대답했다.“너는?”소이연이 다시 그를 보았다.난 괜찮다면 너는 어떤데?많이 다쳤어?교통 사고는 당하지 않았지만 사람을 구했을 때 많이 다쳤다.지금 그의 두 손은 붕대에 감겨져 있었다.그런 손으로 자신에게 물을 먹여줬다.“난 괜찮아.”육현경이 담담하게 말했다.소이연은 물을 천천히 삼켰다.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지금 정말 피곤해서 온몸에 힘이 없고 나른했다.“좀 더 누워 있어. 죽 가지러 갈게.”육현경이 방에서 나간 뒤에 소이연은 침대 가드에 기대어 큰 방을 훑어보았다.여기가 낙성이라면 대체 어디지?현경의 집인가?혹시 심아윤이 오지 않을까?소이연은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그때 심문헌이 떠올랐다.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진심으로 심문헌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한 사람의 생명이기도 하고 그녀의 비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심아윤과 대립할 때 심문헌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도와줄 수 있다.소이연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았다.그제야 교통 사고로 휴대폰이 잿더미가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소이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육현경이 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벌써 왔어?미리 다 끓여 놓은 거야?그래서 깨어나기를 계속 기다린 건가?소이연은 가슴이 뭉클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의사가 그랬어. 일어나면 담백하게 먹으라고 했지만 소금도 좀 먹어야 체력이 빨리 회복된다고 했어. 야채 죽을 끓였는데 일단 이거라도 먹자.”육현경은 말하면서 소이연의 옆에
그가 말하는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민이를 불러올까?”육현경이 물었다.“의사 말로는 지금 네가 5일 정도는 누워서 쉬라고 했어. 보름 뒤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내가 말하는 자유로운 움직임이란 신체의 다른 기능들이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고 골절된 다리는 적어도 3개월은 지나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어.”“부르지 마.”소이연은 거절했다.육민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그래.”육현경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두 사람이 침묵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소이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 화장실 가고 싶어.”“내가 안아줄게.”소이연이 거절하기 전에 그가 번쩍 안아서 들어올렸다.안고 보니 아직 수액을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육현경은 수액을 보다 다시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이건 영양 수액이야. 방금 죽을 먹었으니까 이젠 보충하지 않아도 돼. 지금 빼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알았어.”육현경이 주사를 빼는 동작은 그나마 능숙한 편이어서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주사를 빼고 그녀 대신 피가 멎도록 꼭 눌러주었다.“됐어.”한참 뒤에 소이연이 재촉했다.“이거 유치 주사야. 오래 눌러야 돼.”“못 참겠어.”소이연은 당장 쌀 것 같았다.육현경은 그제야 반응하고 재빨리 그녀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조심스럽게 변기 옆에 세우더니 소이연이 말하기 전에 이미 바지를 내렸다.소이연의 옷은 진작에 갈아 입혔다.옷이 헐렁한 것이 아마도 그의 옷과 바지 같았다.바지를 벗길 때 전혀 힘이 들지 않아 벗기는 줄도 몰랐다.“얼른 싸.”육현경은 태연했다.이런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소이연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변기에 앉았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바지를 확인했다.생리가 온 것 같았는데 지금 생리대가 없이 아주 깨끗했다.육현경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어제 끝났어.”“…”소이연이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쳐다봤다.그래서…그래서 네가 바꿔준 거야?아무리 태연한 사람이라도 지금 이
소이연은 기막혀서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육현경은 태연한 얼굴로 얘기했다. “최근 며칠 동안은 내가 당신을 보살펴 주었어.”그래서?“얼굴 씻겨주고, 몸을 닦아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육현경은 최근 며칠 동안 그녀를 위해 한 일을 하나하나 얘기했다.“그만하면 안 돼?” 소이연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좋아.” 육현경은 또 다시 웃었다.그 웃음은, 참 예뻤다.“안 씻어.” 소이연은 거절했다.모르는 것과, 세세하게 잘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여긴 정확히 어디야?” 소이연은 물었다.씻으려는 마음을 저버리기 위해 그녀는 다른 화제를 찾았다.“낙성 시에 있는 나의 주택이야. 심씨 가문까지 차로 2시간 정도의 거리야. 여긴 나 외에, 가정부 두 명, 경호원 다섯 명, 주치의 한 명 있어.” 육현경은 대답했다.“심아윤은 왔었어?” 소이연이 물었다.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그들의 현재 관계로 보아,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다.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단지 심아윤의 안위이다.만약 심아윤이 본다면, 육현경이 그녀를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 믿기 어려울 것이다.그날 밤처럼.위험한 상황인 걸 육현경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막지 못하였다.“그녀는 여길 몰라. 정확히 말해, 심씨 가문 사람은 내가 여기에 개인 주택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육현경은 얘기했다.소이연은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진짜야, 거짓말 안 해.”소이연은 입술을 살짝 물더니, 직설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 그날 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몰랐어.” 육현경은 대답했다.소이연은 눈썹을 찌푸렸다.“낙성 시에 와서 한 달 동안, 나는 단지 심씨 가문을 도와 심씨 그룹 일을 처리하고, 겸사겸사 심아윤과 함께 심씨 그룹에서 주최하는 자선 연회를 계획 및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야. 심씨 가문 사람이 암암리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는 나도 몰랐어. 그들은 여전히 나를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어.”“그럼, 왜 내가
소이연은 머리를 끄덕였다.육현경의 분석에 대해 찬성하는 바이다.“방금 심씨 가문에게, 관건이 되는 인물이 하나는 심문헌이고, 하나는 나라고 했어.” 육현경은 소이연을 보고 이어서 분석했다. “하지만 심태섭이 심문헌과 나를 대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어. 심문헌은 싹을 잘라 후환을 없애려는 태도였고, 나한테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과 같은 편이 되게끔 나를 끌어들이고 있어. 그리고 나를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의 난제는 바로 너야, 하여 심씨 가문에서 너를 기필코 해하려고 했을 테고.”소이연은 눈빛이 흔들렸다.육현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육현경은 이어서 얘기했다. “자선 연회가 열리던 그날 밤, 너와 심문헌이 동시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는 것을 눈치챘어. 심씨 가문 사람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니. 사실 난 심씨 가문의 생각을 완전히 맞출 그런 능력은 안 돼, 모든 것은 다 내가 가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분석 역시. 난 예언자도 아니고, 사전에 너를 보호할 준비도 철저하게 하지 못했어. 심씨 가문에서 너와 심문헌을 차 사고로 위장해서 다치게 할 것이라는 생각 역시 마지막에야 알게 되었어.” 육현경의 목젖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마치 그날 밤 사고가 떠오른 듯이. 만약 조금만 불행했어도, 지금의 소이연은 이미 처참하게 저 세상에 갔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낙성 시에 오지 말라고 말리는 이유야. 네가 오지 않으면, 심씨 가문에서 심문헌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은 있지만, 네가 오면, 그들은 무조건 심문헌을 표적으로 삼을 테니. 그 누구든 굴러오는 이익을 마다할 사람은 없어, 하물며 심씨 가문 같은 그런 능구렁이들은 더 그럴 것이고.”소이연은 침묵을 지켰다.그녀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낙성 시에 오게 되면 위험천만하다는 것을.하여 연회에서 미리 심문헌과 함께 떠났던 것이었다.하지만, 육현경의 얘기대로, 그들은 신선이 아니기에, 그 누구도 심씨 가문
”심문헌은 어떻게 되었어?” 소이연은 갑자기 물었다.많은 일에 대해서, 그녀는 현재 아무런 대처 방안도 없고, 또한 자신에게 그런 스트레스를 주기 싫었다.그녀는 자신과 심문헌은 같은 편이란 것은 똑똑히 알고 있다.“죽지 않았어.” 육현경이 대답했다.그리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전화 좀 쓸 수 있을까? 전화해야겠어.” 소이연은 예를 갖추며 육현경에게 부탁했다.육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육현경이 아직 심문헌에게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그렇다면, 그녀와 육현경 사이, 도대체 어떤 사이이고, 어떤 입장이지?소이연은 강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하게 한 마디 얘기했다. “조금 더 쉬고 싶어.”“너 심문헌의 취미를 알아?” 육현경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알아.” 소이연은 육현경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예전에 심문헌 사무실에 비즈니스상 갔을 때, 그는 자기 추문에 대한 자료를 그녀한테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신임을 얻었다.추문은 바로… 그와 남자의 사진…아마 이것 때문에 그녀가 심문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신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공인으로서, 이런 일은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그 추문만 폭로되면, 심문헌은 끝장나게 된다.심문헌이 성의를 보였고, 그녀에게 안정감을 줬다.“너무 길게는 하지 마.” 육현경은 휴대폰을 소이연에게 건네주었다.소이연은 놀랐다.아깐 분명 싫어하는 눈치였는데.지금은 또 이렇게 흔쾌히 내주다니.육현경의 마음은 실로 알 수가 없었다.이럴 땐, 그녀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육현경은 소이연에게 전화를 건네주고 자리를 피해줬다.그녀를 존중해주려는 마음이다.소이연은 기억했던 번호를 눌러 심문헌에게 전화 걸었다.“소이연 씨?”가냘픈 소리가 들렸다.그녀의 휴대폰이 아닌데, 어떻게 그녀인 것을 알았을까?“그래요.”“전화 주실 줄 알았어요.” 수신자가 웃는 듯했다. “어때요? 육현경은 잘 보살펴드리고 있어요?”“네, 잘해주셔요.”“저도 잘 있습니
그는 너무 기뻐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러면 오늘밤에 같이 자는 거 어때?”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푸!” 송문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전에 마시던 물을 내뿜었다.“싫으면 말고…” 송문수의 격한 반응에 지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런 거 아니야.” 송문수는 다급히 해명했다.지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로 전에 문수가 분명히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송문수는 연신 입을 닦으며 말을 덧붙였다.“너랑 같이 자는 게 절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그럼 나 먼저 씻을게.”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네 방에서 잘까? 아니면 내 방?”“난 다 좋아.”“그러면 네 방에서 자자. 네 방이 더 크니까.”“그러자.”“나 씻을게.”“응.”“너도 빨리 씻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수는 얼굴이 타오르듯 빨개졌다.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하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송문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방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그는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 숨도 안 쉬어지고 물컵을 들고 있던 손도 떨릴 지경이였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로서는 남녀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이런 경험이 처음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하지수라니, 송문수는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남아있던 물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나서 바로 방으로 돌아가 샤워하기 시작했다.오늘 밤이 지나면 둘 사이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송문수는 샤워를 마쳤다.평소라면 몇분이면 끝낼 샤워를 오늘에는 한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씻었다. 행여나 깨끗이 못 씻었을지 몇 번이나 더 씻은 후 겨우 욕실을 나와 침대에서 하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지수가 이미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지수는 더 오래 걸렸다.아마도 그와 똑
하지수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그녀는 송문수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직 아이를 가질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송문수도 민망해하며 말했다.“저희 둘 사이 일은 걱정하시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네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러는 거야.” 송문수 어머니는 핀잔을 주었다.“네가 조금 더 잘했으면 지금쯤 애가 뛰어다니며 놀 나이가 됐을 거야.”“엄마! 그만 하세요.”문수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그래, 알았어. 근데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건데, 너 다시는 지수 같은 여자애 못만난다는거 기억해. 지수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혼자 살게 될 거라는걸.”“알겠어요, 알겠다고요.”송문수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반대는 하지 않았다.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송승우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자리를 박차 거실을 나갔다.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송문수는 송승우가 왜 화가 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하지수도 송승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지수도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눈길이 가게 된 것이었다.송문수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송승우에 대한 마음은 일찌감치 접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송문수는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하지수는 정말 송문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송승우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에 대해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가장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역시나 아버지의 생일파티와 그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저녁 아홉 시, 송문수와 하지수는 집으로 돌아갔다.야근을 자주 하는 탓에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은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샤워만 하고 각자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일찍 돌아온 탓에 오히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송문수는 깍지를 끼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심장은 더욱 빨리 뛰고 따뜻함은 배가 되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문수 역시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하지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로, 로비로 들어갔다.그곳에는 문수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문수의 형, 송승우도 앉아 있었다.둘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승우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도발하는 건가? 송문수와 하지수가 일부러 도발을?송문수의 부모님 역시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흐뭇하게 웃고 계셨다.이 얼마나 바라왔던 일인가.문수의 어머님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얼른 들어와, 지금 바로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네, 엄마.”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도 그런 문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게 이렇게도 설레는 일인지 처음 깨달은 듯싶었다.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송문수와 하지수는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유독 송승우만 얼굴이 굳은 채로 한 술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은 특별히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송문수 어머님은 반찬을 덜어주며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송문수 아버님도 문수의 업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도 하시곤 하셨지만, 문수를 지지해 주시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는 시끌시끌하였다. 송승우만 빼고 말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혼자만 쓸쓸한 저녁 식사였다.식사가 끝난 후, 수다는 계속되었다. “곧 너의 아버님 환갑인데 난 시끌벅적 크게 보내고 싶은데 어때?”“좋아.” 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는 대로 해. 엄마랑 아빠가 기분 좋은 게 최고
업무를 마친 송문수가 고개를 들자, 하지수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문수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지수?”지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송문수를 바라보다가 넋이 나간 것이었다.전에는 문수가 멋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멋져 보였다.선명한 옆선, 뚜렷한 이목구비…문수의 얼굴에는 남성미가 흘러넘쳤다.눈에 콩깍지가 씌었나?지수는 마치 첫사랑을 만나기라도 한 듯 심쿵하고 말았다.그녀는 작심이라도 하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더 이상 문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돌아서서 송문수와 눈을 마주쳤다.송문수 역시 지수가,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서로의 눈길이 오가는 순간, 송문수는 자신이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녀를 꽉 끌어안고 싶었다.사무실 분위기는 어느새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그때, 송문수의 전화벨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타오르던 분위기가 천둥번개를 맞은 것처럼 부서지고 말았다.하지수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한편으론 자신의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송문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엄마.”“아직도 퇴근 안 했어?” 전화기 너머로 문수 어머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퇴근하려고.”“기다리고 있을게.”“알겠어.”송문수는 통화를 마치고 하지수한테 말했다.“엄마가 빨리 오라고 하시네.”“그래.”하지수는 가방을 챙기고 송문수랑 같이 퇴근했다.차에 탄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해하고 있었다.평소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업무를 논의하던 두 사람이 오늘은 서로의 눈은커녕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 되었다.하지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썼다.송문수도 역시 창밖을 내다보았다.그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가 하지수한테 빠지다니!그녀 앞에만 서면 심장이 고장 날 것만
허영지는 송문수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말했다.“문수, 지수, 수고했어.”송문수와 하지수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둘이 너무 일에 몰두한 나머지 허영지가 말하지 않았으면 사무실에 들어온 것조차 몰랐다.“엄마, 어떤 일로 오셨어요?”송문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아버지가 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같이 왔지.”“아버지도 오셨어요?”송문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기어코 오겠다고 해서 말리지도 못했어. 근데 두 시간 후에 네 아버지를 데리고 갈 거야.”허영지는 웃으면서 말했다.“아버님은 많이 좋아지셨어요?”하지수는 다정하게 물었다.“의사 선생님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하셨어. 하지만 다시 그럴까 봐 걱정돼.”“맞아요. 아버님은 확실히 주의하셔야 해요.”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고 나서 물었다.“어머님, 뭐 좀 드시겠어요? 비서보고 준비하라고 할게요.”“됐어. 그냥 너희 얼굴을 잠깐 보러 온 거야. 일하는 걸 방해하지 않을게.”허영지가 상냥하게 말하고선 떠나려고 하자 하지수는 일어서서 배웅하려고 하였다.그러나 허영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나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해. 난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을게. 참, 저녁에 집에 와서 먹어. 이제 곧 아버지 60세 생신이잖아. 얼마 전에 또 죽다가 살아났으니 축하할 겸 나쁜 기운도 제거하려고.”“알겠어요.”송문수가 대답하자 하지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오늘 문수 씨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할게요.”“내가 오씨 아줌마에게 반찬을 몇 개 더 준비하라고 할 테니 잊지 말고 와.”“네.”허영지는 기쁜 심정으로 떠났다. 얼마 전에 정말 너무 지쳤다.송기명의 일, 회사의 일, 송문수와 송승우의 일, 허영지는 하마터면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지금 모두 순조롭게 풀려서 다행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다시 송문수와 하지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도 이제 아이를 가질 때가 되겠지?이것은 지금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다섯 시 반.하지수는 송문수에게 퇴근하자고 하였다. 요새는 매일
“회사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다.”송기명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말에는 송승우가 괜한 말을 했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송승우도 알아들었다.송문수가 회사를 이끌고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다시 보게 된 건가? 그가 보기에 송문수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서 운 좋게 성공한 것이었다.그는 늘 송문수를 얕잡아 보았다.“그럼 먼저 가볼게요.”송승우는 자기의 물건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그래.”송승우가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에 문 앞에 잠시 멈춰서 말했다.“저는 장안시에 출장하러 왔어요. 여기에 며칠 머물다가 월요일에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알었어.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주머니에게 말해.”아주머니는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오씨 아주머니였다.송승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예전에 그가 돌아올 때마다 집에서는 늘 열정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고 아버지는 출근하지도 않고 그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쌀쌀한 태도로 대하다니!송문수가 잘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송승우는 굳은 얼굴로 떠났다.허영지는 송승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원래 좋은 말을 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말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송기명에게 다가가서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문수의 능력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대견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우에게 차갑게 대하면 안 돼요. 예전에 우리가 문수에게 불공정하게 대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문수 때문에 승우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싶지 않아요. 두 아이를 평등하게 대해야죠.”송기명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여전히 불쾌했다.어쨌든 자기는 아직 은퇴도 안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지 않았는데 송승우가 어찌 자기 사무실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겠는가?그는 그동안 자기가 송승우에 대한 사랑과 칭찬이 너무 지나쳐서 그를 자고자대하게 만들었고 기본적인 예의와 공손함도 잊
송승우가 막 재무제표를 보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을 들었다.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꺼져! 들어오기 전에 노크할 줄도 몰라?”문 앞에 선 송기명과 허영지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들은 줄곧 송승우를 그들의 자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 앞에서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들이 갑자기 이런 말투로 말하는 것을 보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송기명이 회사에 있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직원을 욕하지 않았다.송승우는 문 앞에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자 계속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말귀를 못 알아...”그가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송기명과 허영지가 문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송기명의 비서가 보였다.송승우의 안색이 굳어졌고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그는 원래 화나 있었다. 회사의 재정이 갈수록 좋아졌고 송문수가 회사를 점점 잘 이끌고 있는 것을 보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생겼다. 그래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낸 것이었다.“왜 여기에 있어?”송기명은 들어오면서 송승우에게 물었다.송승우는 그제야 자기가 아버지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챘다.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회사에 오는 이유를 몰랐다.며칠 전에 그가 특별히 전화해서 물어봤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에서 좀 더 쉬게 하고 빨리 회사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회사에 제가 필요하는지 보러 왔어요. 문수가 혼자 회사에 있어서 걱정돼서요.”송승우는 다급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송승우에 대한 송기명의 태도는 차가웠다.그는 자기의 사무실 의자를 향해 다가갔다.송승우는 급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무리 친부자 간이라도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남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사실 송승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송기영은 자기의 의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앉지 않았다.분명 꺼려서 앉지
“왜 이렇게 하는 거지? 쓸데없는 짓이 아닌가? 사든지 말든지 그들이 결정하라고 하면 우리의 매출에 도움이 안 되잖아!”송승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송문수에게 물었다.“제가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저는 판매량을 높이려는 목적이 아니고 직원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이것은 일종의 직원 복지이고 보상입니다.”송문수는 정중한 표정으로 설명하였다.“그동안 회사에 변고가 생겼는데 직원들은 우리와 함께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요. 이때 우리가 직원에게 복지를 주면 직원들의 열정을 자극할 수 있죠.”“그럼 직접 직원들에게 현금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이에 송승우는 비아냥거렸다.“직원에게 너무 큰 기대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런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또 다른 문제가 생길 때 그들은 회사에서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직원은 부정적인 정서가 나타나게 되죠. 반대로 우리가 적당한 보상을 주고 그들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할 수도 있으면서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 한 이사가 바로 입장을 밝혔다.“찬성합니다.”기타 이사도 연달아 맞장구를 쳤다.“나도 찬성하오.”“문수야, 어린 나이에 인심을 잘 아는구나. 참으로 대단한 친구야.”“송 회장도 드디어 후계자가 생겼네. 전에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 거였어.”“다음에 송 회장에게 축하 인사라도 해야겠어. 이런 아들을 둬서 정말 복을 받았다고.”송문서처럼 뻔뻔한 사람도 지나친 칭찬에 민망했다. 옆에 있는 송승우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아첨하는 모습을 보자 송승우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다.언제부터 송문수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었고 자기는 들러리가 되었지?회의가 끝난 후 각 부문은 신에너지 자동차의 홍보 마케팅을 합리적으로 분업해서 진행하기 시작했다.보름 후,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었다.출시
지금 송문수는 짧은 시간 내에 세계 최첨단 기술의 총 책임자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였다.이 소식이 전해지면 송씨 그룹의 매출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주식도 많이 오를 것이다.파산 직전에 있었던 송씨 그룹이 갑자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줄은 누가 알겠는가?이 모든 것은 송문수 덕분이었다.송승우는 믿기지 않아서 확실하게 조사했었다.송씨 그룹의 자금이 부족할 때 송문수가 개인 명의로 육현경을 찾아 돈을 빌려서 부족한 자금을 메웠다.지금 크레지의 기술 투자도 송문수가 하지수를 데리고 외국에 가서 받아온 것이고 회사에서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송승우는 말로 할 수 없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회사를 지킬 수 있어서 송승우도 매우 기뻤다. 어쨌든 아버지는 회사의 일 때문에 중환자실에 들어갔으니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바랐다.그러나 회사를 지킨 사람이 송문수라는 사실이...어렸을 때부터 송문수가 자신에게 뒤떨어진 사실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잘나가니까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송승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겼다....송문수는 크레지와 계약을 체결한 후 기술에 대한 검토와 연개발을 진행하기 시작했다.물론 이것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들이다. 송문수는 모든 연구개발 플랫폼을 제공하였고 지원 작업도 완료했다. 이제부터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지금 급선무는 신에너지 자동차를 생산한 후의 판매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모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마지막에 뜻대로 될 수 있는지 모르기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송문수에게 있어서 신에너지 자동차가 다시 출시되고 예상 매출액을 실현하며 자금이 되돌아온다면 송씨 그룹의 모든 위기가 해결된 것이다. 그는 이사회 회의실에 앉아서 이사들과 판매 방안을 논의하였다.회의실 현장의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지금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이사들도 의욕이 불타올랐다.송승우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송문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이사들이 송문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송문수의 지시를 순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