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은이 소씨 그룹을 넘겨 받았다는 뉴스가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온순하고 착한 소나은이 180도로 태도가 변해 소씨 그룹의 회장이 될 줄은 다들 몰랐다. 그것도 소승영이 아직 건재할 시기에 그의 자리를 박탈했다.소나은에 대한 외부 평가는 호불호가 엇갈렸다.원인과 결과를 막론하고 소씨 가문의 딸들은 역시 훌륭한 인재라고 평가했다.소나은도 소이연도 다들 능력자라고 말이다.그렇게 소씨 가문에서 실권을 잃은 소승영은 상업계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그는 도저히 분을 참을 수 없었다.유백희와 양화랑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유백희는 화가 난 나머지 혈압이 올라 고함을 질렀다.“나은에게 잘해줬는데 정말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감히 우리 몰래 이런 일을 꾸며 내다니 정말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다!”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아 양화랑을 향해 분풀이했다.“네가 간사한 것을 낳은 탓이다. 애를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우리한테까지 머리를 굴려?”“어머님, 나은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평소엔 정말 착하던 애였는데.”양화랑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가여운 척을 했다.그녀의 특기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맨날 징징대고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 나은이 혹시 너를 닮은 거 아니냐? 겉보기엔 착하고 실제로는 속이 시커먼 거 아니냐고?”유백희가 노발대발했다.“아니에요. 저 정말 이 가문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 해에 제가 아들을 낳기 위해 몸도 돌보지 않아서 하마터면 수술실에서 죽을 뻔했어요. 어머님 잊으셨어요?”양화랑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였다.유백희가 뭐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됐어요!”소승영이 버럭 화를 냈다.“좀 조용히 할 수 없어요? 맨날 싸우고 맨날 징징대고, 집안이 이렇게 시끄러우니까 애들이 정 떨어져서 저러는 거라고요!”소승영의 말에 누구도 찍소리를 내지 못했다.한참 뒤에 유백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승영아, 지금 어떡하면 좋겠어? 나은이 이렇게 설치게 내버려 둘 거야? 난 그 꼴을 못 보겠다.”
이 가문의 모든 일은 유백희가 하자는 대로 진행했었다.“그것뿐이 아니에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언론 앞에서 소이연을 욕보였어요? 우리 소씨 가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소이연한테 부탁할 일이 없다니, 내 앞길을 다 막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 나이를 먹고 이렇게까지 분수를 모르세요?”소승영은 모든 책임을 유백희에게 돌렸다.“너! 너 이 녀석이 감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소승영! 난 네 엄마야. 이런 불효자식 같으니라고!”유백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내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쫓았어요! 그동안 집에서 편히 복을 누리게 했더니 어른으로서 사리를 구분할 줄도 모르잖아요!”소승영은 말하면 말할수록 화가 더 났다.유백희에게 분풀이를 다하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테이블을 확 차버렸다.쨍그랑!테이블에 놓인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행패를 부린 소승영은 바로 돌아서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유백희는 화사 나서 눈시울이 다 붉어졌다.이 나이를 먹도록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다.애지중지하게 키워 놓은 아들이 자신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할머니, 아버지 탓이 아니에요. 할머니가 정말 어처구니없이 처사 하셨어요!”소준환도 한마디 던지고 나가버렸다.유백희가 팔짝 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동안 하나뿐인 손자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줬는데 지금 그 마음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을 탓하고 있다.“불효자야! 다 불효자야!”유백희는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양화랑은 왠지 모르게 속이 다 후련했다.그동안 유백희의 괴롭힘을 당하면서 한 번도 반박한 적이 없었다.실은 소나은이 소씨 가문의 경영권을 손에 넣은 것을 알고 있었다.소나은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양화랑은 이해했다.자신이 낳은 자식이니 당장이라도 출세해서 모두를 굴복시키게 하려는 그녀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겉으로는 좋은 마음으로 다정하게 위로했다.“실은 어머님, 소이연 쪽은 방법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에요.”유
유백희는 결국 타협했다.소나은이 자신의 머리 위에 기어오르는 꼴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건방진 것! 소이연의 손에서 지분을 가져오면 혼 줄을 내주겠다!유백희는 양화랑을 데리고 은하 그룹으로 향했다.소이연이 마침 회의하고 있었다.지난번 입찰 건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다시 계획하고 있다.전에 입찰한 3개 회사에서 모두 기권해서 다시 입찰자를 모집하거나 자체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서로 의견이 달라서 회의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장문기가 소이연의 옆에 다가와 작게 말했다.“회장님의 할머니께서 사무실에 와 계십니다.”소이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장문기가 바로 해명했다.“계속 데스크에서 소란을 피웠어요. 회장님이 회의 중이라 방해할 수 없어서, 회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모셨어요.”“그래, 알았어.”소이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솔직히 장문기는 전보다 일을 더 조심스럽게 처리하고 있다. 지난번 재판을 통해 자신도 책임이 있다는 걸 느끼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그보다 집안싸움에 있어 그녀의 태도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장문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소이연이 사무실로 들어갔다.너무 오래 기다린 탓에 유백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하지만 소이연을 보자마자 잘 보이려고 다정하게 웃었다.“이연아, 이제 회의가 끝났구나. 네가 이렇게 바쁠 줄은 몰랐어.”유백희가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하지만 소이연은 손을 피하고 곧바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 거리를 두었다.유백희가 왜 왔는지 잘 알고 있다.소나은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소씨 그룹을 손에 넣다니 솔직히 그녀도 예상 밖이었다.이것이 바로 심아윤이 소나은에게 준 사례금이라는 것을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알 수 있었다.비록 이번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소나은이 아직 쓸모가 있기에 심아윤이 다시 투자를 한 것이다.그러면 소나은은 완전히 심아윤의 꼭두각시가 된다
소이연이 담담하게 웃었다.“너도 알다시피 지금 나은이가 소씨 그룹을 장악하고 있어. 고작 1% 지분이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지금 네 손에 10% 지분이 있지? 2%만 네 아버지한테 주면 나은도 더는 설치지 못할 거야.”유백희가 소나은을 말할 때 의미심장하게 말하더니 이내 다정한 태도로 바뀌었다.“걱정 마. 할미가 절대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게. 우리한테 팔기만 하면 시가 2배 가격으로 살 수 있어.”“싫어요.”소이연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얼마를 부른다고 해도 팔지 않아요.”“이연아, 네가 가져도 소용없잖아. 나은의 손에 소씨 그룹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게다가 넌 지금 은하 그룹을 경영하느라 바빠서 소씨 일에 관여할 시간이 없잖니?”“시간이 있든 없든 그건 제 일이에요. 지분은 내 어머니의 유산이에요. 소씨 가문이 파산해도 팔지 않아요.”소이연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그리고 소나은의 능력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자면 아버지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있어요.”“소이연!”유백희가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이런 장면에 익숙한 소이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좋게 말할 때 듣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유백희가 위협했다.“알아서 하세요.”소이연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내가 지금 당장 기자를 찾아가서 네가 날 존중하지 않고 때렸다고 할 거야. 그러면 넌 지위고 명예고 다 잃을 거야!”유백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유 여사님!”소이연은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귀찮았다.정말 그렇게 부를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기자들 앞에서 하신 말씀 잊으셨어요? 제가 소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저한테 부탁할 일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소씨 재산을 탐내지만 않으면 감사하겠다고 했죠?”소이연이 비웃었다.“걱정 마세요. 여사님이 말한 대로 해줄 테니까.”“너!”유백희는 그녀를 당해내지 못했다.솔직히 설득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저 바빠요.”더는 유백희와
기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양화랑은 마지못해 말했다. "소이연은 시어머니에게 폭언을 퍼부었을 뿐 아니라 시어머니를 몇 번 밀쳐 넘어뜨릴 뻔하기도 했어요. 일흔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겠어요. 제가 어머님을 부축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마… 지금도 상심이 크셔서 평정심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저희 시어머니를 난처하게 하지 않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시어머니는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지고 가정이 더 화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화랑은 유백희를 부축하고 떠났다. 기자들은 그들을 쫓아가지 못했다. 유백희는 나이도 많고 기절까지 한 상황에,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 소이연은 로비 앞에 서서 아래층에 흩어져 있는 기자들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뒤따라오는 장문기에게 말했다. "방금 유백희가 내 사무실에서 찍은 동영상을 언론에 보내.” "네." 소씨 가족을 상대할 때, 그녀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봐주지 않았다. 오후. 언론에서는 소이연이 어른들을 존중하지 않고 유백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고, 곧 실시간 검색어에 상위권에 링크되었다. 그러자 반박 뉴스가 보도되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유백희가 얼굴을 때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비웃으며 욕했다. '노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노인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 늙었다', '인과응보'는 등 유백희에게 수많은 악플이 쏟아지자 그녀는 분노했다. 그녀는 양화랑의 뺨을 세게 때렸다. 양화랑의 뺨이 부어올랐다. "이 멍청한 년, 이 따위 생각을 해서 소이연에게 날 이렇게 당하게 해! 이렇게 될 줄 뻔히 알면서 나한 테 이런 일을 시킨 거지! 내가 사람 노릇도 못하고 살게 하려고 이런 거지!?” 유백희는 화가 치밀어 양화랑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부었다. 양화랑은 맞아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의 눈에도 분노가 가득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줄곧 유백희
"감히!"유백희는 분노가 치밀었다. 소승영은 유백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섰다. "소승영, 나한테 이러면 벼락 맞을 거야!" 유백희는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는 이미 끌려 올라가 그녀 자신의 방에 갇혔고, 그녀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아무도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양화랑은 유백희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소나은이 소씨 가문을 장악하고 있어 그녀의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의 마음속에는 모두 소준환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유백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소나은은 친자식이었으니, 소나은이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은하 그룹. 소이연이 업무를 보는 중, 장문기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회장님, 심문헌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누구?"은하 프리미엄 제품 융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장문기가 그가 온 목적을 전달했다. 소이연은 침묵에 잠겼다. 현재 입찰한 협력업체들이 모두 철수한 상황이었기에, 이사들과 오늘 오전 회의에서 상의한 결과, 스스로 투자하고 독립적으로 운영, 판매할 계획이었다. 비록 리스크가 비교적 크고, 자금이 부족할 수 있지만, 경영권을 제삼자에게 방해받지 않고 더욱 여유 있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들어오라고 해.” 소이연은 사업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훤칠하고 반듯한 몸매에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엄청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이연 씨." 심문헌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소이연은 일어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은하 그룹의 고급 패션에 투자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왜 저와 함께 일하고 싶으시죠
소이연은 심문헌의 회사 서류를 닫았다. 마음속에 답이 있는데도 안색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심 선생님께서는 저와 심씨 집안 사이의 숨겨진 관계를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심문헌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알기 때문에 소이연 씨에게 협력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소이연은 눈썹을 가볍게 추켜올렸다. "적의 적은 친구예요." 심문헌은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심아윤과 소나은의 협력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닙니까?” 소이연은 심문헌을 자세히 살폈다. 그는 심아윤과 소이연 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밑바닥을,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내막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과는 자신이 협력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소이연은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 심문헌은 직접적으로 말했다. "소이연 씨는 일단 거절하지 말고, 내가 왜 심아윤을 겨냥해야 하는지, 우리의 협력이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들어주세요.” 소이연은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켰다. 심문헌이 말했다."할아버지 세대에 앞서 증조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심씨 가문은 규칙을 정했고, 우리 할아버지는 정치를 하고, 심아윤의 할아버지는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수십 년 동안은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심씨 가족은 서로를 지지했죠.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심아윤의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각종 정치활동에 자주 참석하는 등 정치권으로 고개를 돌렸고 심진우 역시 할아버지를 따라다녔어요. 심진우는 자신이 심씨 그룹의 후계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모든 사업은 심아윤이 도맡아 한다고 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가며 우리 집안의 정치권 입지를 없애려는 야망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계획을 실천하려면, 심종원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세력의 뒷받침이 필요하게 되는데, 심종원이 가장 먼저 노리는 대상은 바로 장안시 제일의 부자인 육씨 가문이었죠. 그 결과, 육현경과 심아윤의 갑작스러운 혼인 소식이 들려오게
"집안의 힘을 지키기 위해 소이연 씨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심 선생님이 저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닐까요? 재력적인 면을 따지면, 저는 육씨 가문, 심지어 장안시의 다른 상업계 거물들보다도 한참 뒤 떨어지고, 능력적인 면에서도... 정계는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고 아는 것도 없어요. 심 선생님은 저랑 협력하고 싶어 하시지만 솔직히, 심 선생님께는 어떤 면에서도 득이 될 게 없어요.” "소이연 씨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네요. 육현경이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소이연 씨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죠...” "감정과 능력은 별개예요.” 소이연은 반박했다. "물론 이것도 그중 하나이기는 합니다. 두 번째로, 심태섭이 정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 집안에서는 그의 영역인 재계에 발을 들여놓을 겁니다. 현재로선 소이연 씨가 제가 재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발판의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소이연 씨의 재력은 부족하지만, 나는 당신이 다크호스라고 생각해요. 곧 많은 사람을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심문헌은 소이연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고, 자신이 결심한 일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육현경과 심아윤이 순조롭게 결혼하지 못하게 하려는 공통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육현경과 심아윤이 결혼했으면 합니다." 소일심은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그녀는 화가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육현경과 심아윤이 결혼하길 바랐다. 그들이 원만하게 결혼하고, 자신은 그들의 세계에서 순조롭게 빠져나오기를 원했다. "소이연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육현경은 심아윤과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날 찾아오신 거죠?” 소이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육현경을 찾아가셨어야죠.” "그를 직접 찾아가는 것은 너무 목적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저희 집과 심태섭은 아직까지는 미묘한 단계에 있고, 완전히 집안을 들쑤실 정도는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