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헌은 한참 동안 아무 말하지 않았다. 소이연은 원래 설명하려 하지 않았지만, 심문헌이 힘들게 발걸음 한 것을 알기에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심 선생님의 말씀을 다 이해합니다. 정말로 저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 집안일에 관여하고 싶지도, 능력도 없어요. 심 선생님이 하시려는 일은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고 제 능력 밖의 일이에요. 저는 제 삶에 큰 욕심을 두지 않고, 그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반박하겠죠. 저도 현재 제 삶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적어도 제 스스로 삶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심문헌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이 때문입니까?” 그가 물었다. 소이연의 안색이 변했다.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어요." 심문헌이 직접적으로 말했다. "선생님께서 그런 분이라면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아이를 이용해 협박하는 게 아닙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그렇게까지 비겁한 사람은 아닙니다." 심문헌은 급히 해명했다. "엄마는 강하다고 했습니다. 소이연 씨는 아이에게 보다 낫고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심 선생께서 그런 마음이 없으시다면 다시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소이연은 비꼬며 말했다. "그러죠." 심문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돌렸다. "소이연 씨는 자신의 운명을 손에 쥐고 싶지 않습니까? 심아윤의 협박 때문에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참으려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희망을 육현경에게 걸었나요? 육현경은 결국 사업가입니다. 소이연 씨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부인하지 않지만, 자신의 이익 앞에서 단호하고 확고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심 선생님도 사업가이고, 저희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 제가 어떻게 심 선생님을 믿고 협력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이익만 일치할 뿐인가? 단지 원하
소이연은 심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당신을 도와 심아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번 협력으로 사업을 더 발전시키는 것뿐이에요.” "그걸로 충분해요." 심문헌이 말했다. "큰일은 서둘러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초가 없는 성공은 빠르게 실패하는 법이니까요.” "은하 패션 운영전략에 관해 말씀드릴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투자만 하고, 다른 일은 전적으로 소이연 씨에게 맡길 겁니다.” "알겠습니다." 소이연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심문헌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사업에는 그다지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괜찮으시다면 협력을 축하하는 의미로 식사를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죄송해요, 요 며칠은 시간이 없어요." 소이연은 거절하며 말했다.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하거든요.” "그럼 모자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게요." 심문헌은 그녀를 존중하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연락을 위해 소이연 씨의 전화번호와 카톡 아이디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두 사람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심문헌은 은하 그룹을 떠났다. 그가 떠나자마자, 그 소식이 심씨 가문에 전해졌다. 심아윤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심진우가 비웃으며 말했다. "재계 진출을 노린 게 분명해. 그렇게 하면 우리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동안 심문헌의 할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고, 그들의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빈번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심씨 가문의 주도권은 이미 서서히 그들의 집안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심문헌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계에 진출하려는 사람들 중 누가 소이연을 찾지 않겠어? 소이연이 아무리 재주가 좋다 해도, 그를 재계에서 입지를 다지게 할 수 있을까? 그가 소이연을 많이 밀어줄 것 같아서 걱정돼." 심아윤은 소이연에게 앙금이 깊다. "소이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심태섭이 불쑥 입을 열었다. 두 남매는 자연스럽게 공
소이연은 사실 육현경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했다. 그녀와 심문헌의 협력은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소문들이 이미 흘러나와 내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재계에서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심씨 가문이 소이연의 작은 그룹과 협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육씨 그룹과 같은 큰 그룹과 협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협의가 끝났고 최종 결과만이 남았었다. "들어와." 소이연이 방문을 열었다. 육현경은 소이연을 따라 소파에 앉았다. "왜 심문헌과 협력하는 거야?”. 육현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회가 있었고 뜻이 맞았고, 그리고 가치가 있으니까." 소이연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심씨 가문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어?” "이번 협력이 나에게 유익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 "소이연, 정말 심문헌의 목적을 모르는 거야?" 육현경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만 얻으면 돼.” "심문헌은 아마 너에게, 심태섭이 정계에 진출하려고 하기 때문에, 정계에서 자신 집안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을 거야. 하지만 심문헌은 그의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것을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야, 맞지?" 육현경은 한 자 한 자 명확하게 말했다. 소이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심태섭이 심씨 가문의 오랜 계율을 깨뜨린 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이야. 이미 때가 된 일인데, 네가 지금 끼어드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육현경이 물었다. "심문헌은 심아윤의 표적이 된 내가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게 해 줄 거야." 소이연은 차갑게 말했다. "그가 물러나는 건 어때?” "그렇게 할 생각 없어.” “소이연, 넌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야.” "그럼 내가 너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 거야?" 소이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육현경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믿음이 안 가?”"네가 지금 말했잖아, 심태섭은 지금 하늘과 같다고, 같은 심씨 가문의
육현경은 꽤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소이연이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밤 12시였다. 이대로라면, 내일 일어나서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녀는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끄고 육현경에게 갔다. "육현경, 일어나.” 소이연이 그를 깨웠다. 육현경은 미간을 좁히며 당황해하며 일어났다. "늦었어. 집에 가서 자... 아!” 소이연은 비명을 질렀다. 소이연이 육현경의 위로 넘어지며 두 사람은 함께 소파에 쓰러졌다. 소이연의 몸이 굳었다. 따스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읍!” 소이연은 빠르게 반항했다. 하지만 육현경이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 소이연은 육현경의 가슴에 안겨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육현경의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두 사람의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육현경은 그녀의 행동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화가 난 얼굴을 보며 그는 그제야 그녀의 작은 몸이 자신의 몸 아래에 깔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정신 차리고... 읍!” 육현경이 다시 한번 소이연에게 격렬한 키스를 했다. 거칠었던 키스가 부드럽게 바뀌며 소이연은 키스에 점점 빠져 들었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힘껏 몸을 뒤틀며 육현경을 밀어냈다. 육현경이 마침내 소이연을 놔주자 그녀는 이를 갈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육현경!”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육현경은 웃으며 자신의 혀로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았다. 소이연은 그를 쏘아보았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그녀에게 소용이 없었다. "미안해." 육현경이 사과했다. 소이연은 그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졌다. "비켜." 소이연이 차갑게 말했다. 육현경은 소이연의 부드러운 몸이 자신의 품에서 떠났다. 방금 꾼 꿈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꿈속에서 소이연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꿈속에서의 절망감은 그가 깨어나는 순간 자제력을 잃게 만들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육현경은 자신의 감
12월, 장안시의 날씨는 이미 완전한 겨울이었다. 송문수는 12일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았다. 장안시는 서른 살이 되는 생일을 중요하게 여겨, 생일 파티를 유난히 성대하게 치르는 관습이 있었다. 때문에 송문수의 생일 파티에 그의 ‘죽마고우’ 들과 장안시의 인사들이 초대되어 매우 시끌벅적했다. 소이연도 초대된 손님 중 하나였다. 그동안 은하 패션의 프리미엄 의상 출시로 바빴는데, 오늘 파티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깔끔하고 우아한 정장을 입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하지수가 송문수의 손을 잡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변호사인 하지수는 평소 보수적인 옷차림으로 다녔지만 오늘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체형이 송문수와 함께 있으니 꽤 잘 어울렸다. 재벌가 사모님으로서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이연 씨.” 귀에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은 시선을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살이 많이 빠져 보였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한 것 같다. "오랜만이에요." 소이연이 먼저 인사했다. "그러게요, 오랜만이에요." 계지원은 빙긋 웃으며 우아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소이연은 마음이 좀 아팠다. 계지원은 사실 예수진에 비하면 비참한 편도 아니었고 훨씬 행복했다. 하지만 그의 온몸이 부서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경이가 왔네요." 계지원이 파티장 입구를 보며 그녀에게 귀띔해 주었다. 소이연은 계지원의 시선을 따라 입구를 보았다. 육현경이 심아윤과 함께 파티장에 들어왔다.다음 순간. 계지원은 소이연이 이미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뒤뜰. 소이연은 그네에 앉아 바람을 쐬었다. 그녀는 이런 비즈니스 모임이 지루했지만 때때로 참석해야 했다. 그녀는 하지수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소이연은 하지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피곤하죠?” "힘들어서 발이 부러질 것 같아요." 하지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소이연은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이연은 희미한 불빛 아래 있는 하지수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며 흐르는 것을 보았다. "몇 년 만에 봤더니, 다 큰 처녀가 되었네." 남자가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수는 입술을 꽉 다물고 있다가 한참만 에야 입을 열었다. "승우 오빠.” "나를 잊은 줄 알았어." 송승우가 웃었다. "밖이 춥다. 들어가자.” 하지수가 신발을 신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잠깐만." 송승우가 하지수를 부르며 몸을 구부리며 하지수의 하이힐을 집어 들었다. 송승우의 갸름한 손가락으로 하지수의 발을 들어 신발을 신겨주었다. "형, 제수한테 그런 행동은 좀 아닌 것 같은데.”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어디선가 건조하면서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키가 큰 송문수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수는 내 여동생과 마찬가지야.” "하지만 지금 내 아내이고, 형 제수야." 송문수는 진지한 말투로 건들거리며 말했다. "이런 일은 내가 할게.” 송문수가 그들 앞으로 다가오자, 송승우가 하이힐을 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아, 형. 형이 데리고 온 여자친구가 로비에서 형을 계속 찾고 있어. 여기에 처음 와서 낯설 텐데 형이 잘 챙겨야지." 송문수기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는 떠났다. 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분명히 멍하게 서 있는 것을 본 그가 또다시 그녀를 향해 비꼬며 물었다. "왜, 내 형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건가?”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숨겼다. 그녀는 송문수 앞에서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송문수는 비웃으며 하지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 안 따라오고 뭐 해? 설마, 내가 정말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신겨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하지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문수야, 넌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송문수의 아버지 송기명이 엄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송승우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오래됐는데, 문수 성격은 여전하네.”“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자랑은 형이었는데, 내가 뭘 변하겠어? 변했다고 해도, 형 발톱만큼도 못 따라가지.” 송문수는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전 저기 친구 있어서 인사 좀 하러 갈 테니까, 당신네 가족들끼리 얘기 잘 나누세요.”“문수야!” 송기명은 화를 참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이 두 형제의 성격이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인지도 의문이었다.송승우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해서 걱정할 일이 없었다.유일한 반항이라곤 송씨 그룹을 포기하고 과학 연구를 해야 했는데,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지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나라의 업적을 세우는 일이니, 결국 과학 연구를 선택했다.하지만 송문수는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도, 재주도 없었다.어렸을 때는 싸워서 부모님을 부르고, 커서는 그렇다 할 직업이 없어, 술을 마시거나 여자를 꼬시고 다녔다.만약 나중에 송씨 그룹을 그에게 맡겨야 한다면 송씨 그룹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갔다.이제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하지수였고, 그녀가 송문수를 도와 송씨 그룹을 관리해 주길 바랐다.“너 가 안가?” 송문수가 하지수에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처럼 제멋대로는 아니었고, 한 가족이 모두 모였는데 당연히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보니까 너도 별로 안 가고 싶나 보네.” 송문수가 하지수를 비웃으며 말하고는, 혼자 자리를 떠, 육현경 무리로 향했다.이때 육현경과 심아윤, 하도경, 계지원이 같이 있었다.소이연은 아마 갔을 것이다.“오, 오늘의 스타님 아니신가?!” 하도경이 놀리며 말했다.송문수는 그를 흘끗 보고 말했다. “넌 오늘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왜 여자친구 안 데려왔어?”“여자친구가 부끄럽대.”“킥.” 송문수가 경멸하는 눈으로 보
“응.” 육현경은 짧게 대답한 뒤 송문수에게 말했다. “갈게.”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육현경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육현경이 가자마자 하도경도 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넌 왜 이렇게 일찍 가?”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연회도 끝났는데, 술이나 먹으러 가자.”“안 가 안 가, 나 일찍 가서 여자친구랑 같이 있어야 돼, 외롭게 혼자 둘 수 없어.”“하도경, 너 그 사랑에 빠진 얼굴 좀 안 하면 안 되냐? 토 나와.”“네가 안 해봐서 그래.” 하도경은 신경도 안 썼다.“꺼져.” 송문수는 어이가 없었다.하도경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지금 행복하다.“잠시만.” 송문수가 하도경을 다시 불러 세웠다.“나 진짜 너랑 술 먹으러 못 가...”“가져가.” 송문수가 갑자기 하도경에게 밴드 두 개를 건넸다.하도경은 밴드를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너한테 이런 게 있다고? 송문수, 너 혹시 게이는 아니지?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지?!”“병신.”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직도 네 여자친구한테 안 꺼지고 뭐해?”하도경은 송문수가 건넨 밴드를 받아 들었지만, 왠지 등골이 오싹했다.하도경이 간 뒤, 송문수가 계지원을 보며 말했다. “너 무슨 일 있...”“없어, 너 일 끝나면 같이 술 먹으러 가자.”송문수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술집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같이 술을 먹으러 가자고?계지원은 요즘 진짜 이상하다.송문수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고,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송기명은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두 아들이 한 놈은 체면을 하늘 끝까지 살려주고, 한 놈은 고개도 들지 못하게 했다.손님들을 모두 보내고, 하지수는 송씨 집안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별장으로 향했다.허영지가 차에서 갑자기 간곡하게 말했다. “지수야, 너랑 문수도 결혼한 지 3년인데, 아기 가질 생각은 없니?”하지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아기?아직 같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