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현경은 꽤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소이연이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밤 12시였다. 이대로라면, 내일 일어나서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녀는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끄고 육현경에게 갔다. "육현경, 일어나.” 소이연이 그를 깨웠다. 육현경은 미간을 좁히며 당황해하며 일어났다. "늦었어. 집에 가서 자... 아!” 소이연은 비명을 질렀다. 소이연이 육현경의 위로 넘어지며 두 사람은 함께 소파에 쓰러졌다. 소이연의 몸이 굳었다. 따스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읍!” 소이연은 빠르게 반항했다. 하지만 육현경이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 소이연은 육현경의 가슴에 안겨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육현경의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두 사람의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육현경은 그녀의 행동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화가 난 얼굴을 보며 그는 그제야 그녀의 작은 몸이 자신의 몸 아래에 깔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정신 차리고... 읍!” 육현경이 다시 한번 소이연에게 격렬한 키스를 했다. 거칠었던 키스가 부드럽게 바뀌며 소이연은 키스에 점점 빠져 들었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힘껏 몸을 뒤틀며 육현경을 밀어냈다. 육현경이 마침내 소이연을 놔주자 그녀는 이를 갈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육현경!”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육현경은 웃으며 자신의 혀로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았다. 소이연은 그를 쏘아보았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그녀에게 소용이 없었다. "미안해." 육현경이 사과했다. 소이연은 그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졌다. "비켜." 소이연이 차갑게 말했다. 육현경은 소이연의 부드러운 몸이 자신의 품에서 떠났다. 방금 꾼 꿈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꿈속에서 소이연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꿈속에서의 절망감은 그가 깨어나는 순간 자제력을 잃게 만들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육현경은 자신의 감
12월, 장안시의 날씨는 이미 완전한 겨울이었다. 송문수는 12일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았다. 장안시는 서른 살이 되는 생일을 중요하게 여겨, 생일 파티를 유난히 성대하게 치르는 관습이 있었다. 때문에 송문수의 생일 파티에 그의 ‘죽마고우’ 들과 장안시의 인사들이 초대되어 매우 시끌벅적했다. 소이연도 초대된 손님 중 하나였다. 그동안 은하 패션의 프리미엄 의상 출시로 바빴는데, 오늘 파티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깔끔하고 우아한 정장을 입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하지수가 송문수의 손을 잡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변호사인 하지수는 평소 보수적인 옷차림으로 다녔지만 오늘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체형이 송문수와 함께 있으니 꽤 잘 어울렸다. 재벌가 사모님으로서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이연 씨.” 귀에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연은 시선을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살이 많이 빠져 보였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한 것 같다. "오랜만이에요." 소이연이 먼저 인사했다. "그러게요, 오랜만이에요." 계지원은 빙긋 웃으며 우아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소이연은 마음이 좀 아팠다. 계지원은 사실 예수진에 비하면 비참한 편도 아니었고 훨씬 행복했다. 하지만 그의 온몸이 부서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경이가 왔네요." 계지원이 파티장 입구를 보며 그녀에게 귀띔해 주었다. 소이연은 계지원의 시선을 따라 입구를 보았다. 육현경이 심아윤과 함께 파티장에 들어왔다.다음 순간. 계지원은 소이연이 이미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뒤뜰. 소이연은 그네에 앉아 바람을 쐬었다. 그녀는 이런 비즈니스 모임이 지루했지만 때때로 참석해야 했다. 그녀는 하지수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소이연은 하지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피곤하죠?” "힘들어서 발이 부러질 것 같아요." 하지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소이연은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소이연은 희미한 불빛 아래 있는 하지수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며 흐르는 것을 보았다. "몇 년 만에 봤더니, 다 큰 처녀가 되었네." 남자가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수는 입술을 꽉 다물고 있다가 한참만 에야 입을 열었다. "승우 오빠.” "나를 잊은 줄 알았어." 송승우가 웃었다. "밖이 춥다. 들어가자.” 하지수가 신발을 신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잠깐만." 송승우가 하지수를 부르며 몸을 구부리며 하지수의 하이힐을 집어 들었다. 송승우의 갸름한 손가락으로 하지수의 발을 들어 신발을 신겨주었다. "형, 제수한테 그런 행동은 좀 아닌 것 같은데.”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어디선가 건조하면서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키가 큰 송문수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수는 내 여동생과 마찬가지야.” "하지만 지금 내 아내이고, 형 제수야." 송문수는 진지한 말투로 건들거리며 말했다. "이런 일은 내가 할게.” 송문수가 그들 앞으로 다가오자, 송승우가 하이힐을 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아, 형. 형이 데리고 온 여자친구가 로비에서 형을 계속 찾고 있어. 여기에 처음 와서 낯설 텐데 형이 잘 챙겨야지." 송문수기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송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는 떠났다. 송문수는 고개를 돌려 하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분명히 멍하게 서 있는 것을 본 그가 또다시 그녀를 향해 비꼬며 물었다. "왜, 내 형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건가?”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숨겼다. 그녀는 송문수 앞에서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송문수는 비웃으며 하지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 안 따라오고 뭐 해? 설마, 내가 정말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신겨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하지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문수야, 넌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송문수의 아버지 송기명이 엄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송승우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오래됐는데, 문수 성격은 여전하네.”“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자랑은 형이었는데, 내가 뭘 변하겠어? 변했다고 해도, 형 발톱만큼도 못 따라가지.” 송문수는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전 저기 친구 있어서 인사 좀 하러 갈 테니까, 당신네 가족들끼리 얘기 잘 나누세요.”“문수야!” 송기명은 화를 참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이 두 형제의 성격이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인지도 의문이었다.송승우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해서 걱정할 일이 없었다.유일한 반항이라곤 송씨 그룹을 포기하고 과학 연구를 해야 했는데,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지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나라의 업적을 세우는 일이니, 결국 과학 연구를 선택했다.하지만 송문수는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도, 재주도 없었다.어렸을 때는 싸워서 부모님을 부르고, 커서는 그렇다 할 직업이 없어, 술을 마시거나 여자를 꼬시고 다녔다.만약 나중에 송씨 그룹을 그에게 맡겨야 한다면 송씨 그룹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갔다.이제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하지수였고, 그녀가 송문수를 도와 송씨 그룹을 관리해 주길 바랐다.“너 가 안가?” 송문수가 하지수에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처럼 제멋대로는 아니었고, 한 가족이 모두 모였는데 당연히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보니까 너도 별로 안 가고 싶나 보네.” 송문수가 하지수를 비웃으며 말하고는, 혼자 자리를 떠, 육현경 무리로 향했다.이때 육현경과 심아윤, 하도경, 계지원이 같이 있었다.소이연은 아마 갔을 것이다.“오, 오늘의 스타님 아니신가?!” 하도경이 놀리며 말했다.송문수는 그를 흘끗 보고 말했다. “넌 오늘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왜 여자친구 안 데려왔어?”“여자친구가 부끄럽대.”“킥.” 송문수가 경멸하는 눈으로 보
“응.” 육현경은 짧게 대답한 뒤 송문수에게 말했다. “갈게.”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육현경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육현경이 가자마자 하도경도 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넌 왜 이렇게 일찍 가?”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연회도 끝났는데, 술이나 먹으러 가자.”“안 가 안 가, 나 일찍 가서 여자친구랑 같이 있어야 돼, 외롭게 혼자 둘 수 없어.”“하도경, 너 그 사랑에 빠진 얼굴 좀 안 하면 안 되냐? 토 나와.”“네가 안 해봐서 그래.” 하도경은 신경도 안 썼다.“꺼져.” 송문수는 어이가 없었다.하도경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지금 행복하다.“잠시만.” 송문수가 하도경을 다시 불러 세웠다.“나 진짜 너랑 술 먹으러 못 가...”“가져가.” 송문수가 갑자기 하도경에게 밴드 두 개를 건넸다.하도경은 밴드를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너한테 이런 게 있다고? 송문수, 너 혹시 게이는 아니지?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지?!”“병신.”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직도 네 여자친구한테 안 꺼지고 뭐해?”하도경은 송문수가 건넨 밴드를 받아 들었지만, 왠지 등골이 오싹했다.하도경이 간 뒤, 송문수가 계지원을 보며 말했다. “너 무슨 일 있...”“없어, 너 일 끝나면 같이 술 먹으러 가자.”송문수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술집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같이 술을 먹으러 가자고?계지원은 요즘 진짜 이상하다.송문수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고,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송기명은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두 아들이 한 놈은 체면을 하늘 끝까지 살려주고, 한 놈은 고개도 들지 못하게 했다.손님들을 모두 보내고, 하지수는 송씨 집안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별장으로 향했다.허영지가 차에서 갑자기 간곡하게 말했다. “지수야, 너랑 문수도 결혼한 지 3년인데, 아기 가질 생각은 없니?”하지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아기?아직 같
깊은 밤.송문수는 술에 취해 돌아왔다.자신의 방문을 열자, 하지수가 우두커니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는 방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았다.지금은 새벽 2시 반이었다.그는 술에 취해 엉망이 된 계지원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이 시간에 하지수는 자기 방에서 안 자고, 여기에서 뭐 하는 것인가?하지수는 워라밸이 탄탄해서, 그의 부모님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그래서 그들은 각방을 써왔다.예전에는 그의 부모님이 반대하셨지만, 그가 매일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하지수가 잠을 심각하게 못 자서 이제는 납득하셨다.어쨌든 그의 부모님 눈에 그는 능력이 없고, 개선할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너 잘 못 들어왔어?” 송문수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차갑게 비웃었다. “우리 형 방은 옆방이야.”하지수는 낯빛이 살짝 변하더니 다시 빠르게 숨겼다.송문수의 재수없는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다.실랑이할 가치도 없었다.“안 가?” 송문수가 눈썹을 찡그렸다.하지수는 움직이지 않았다.송문수는 하지수 앞에서 옷을 벗었다.하지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정면으로 보지 않았다.송문수는 차갑게 웃고는 욕실로 향했다.나올 때는 가볍게 샤워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하지수가 여전히 그의 방에 앉아있었다.“하지수, 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약간 화난 듯 말했다. “오밤중에 귀신인 척이라도 하는 거야? 빨리 나가, 나 잘 거야.”“너희 부모님께서 우리한테, 아이를 가지래.” 하지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문수는 어안이 벙벙했다.그러고는 욱해서 말했다. “내가 무슨 도구야? 싫어!”“너 29살이야. 나이 더 먹으면 퀄리티가 낮아져.”“하지수.” 송문수는 가슴에 화가 가득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하지수는 몸을 일으켜 송문수를 향했다.사실 그녀도 샤워 가운 하나만 걸치고,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하지만 잘 묶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단정해 보였다.송문수는 그대로 하지수가 자기 몸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
하지수의 작은 손이 송문수의 옷에서 나와 불을 끄려고 했다.조금 움직이자, 송문수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하지수는 깜짝 놀랐다.190이 넘는 그의 키는 그녀가 보기에 굉장히 컸다. 그에게 깔린다면 죽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송문수의 얼굴이 하지수와 가까워졌다.그녀의 입술에 다가가는 그 순간.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피했다.송문수는 눈썹을 찡그렸다.“왜, 몸은 팔고 싶은데, 순결은 지키고 싶어?” 송문수가 비웃으며 말했다.“아이 가지는데 키스는 필요 없잖아.” 하지수가 반박했다.“그래서 우리는 지금 교배하는 거냐?”“후세를 잇는 거지.” 하지수가 듣기 좋은 말로 골라서 했다.“후세를 잇긴 개뿔.” 송문수가 화를 냈다.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했다.그는 하지수의 몸에서 일어나 말했다. “너 우리 형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애 낳고 싶으면 우리 형한테 가, 어차피 다 같은 송씨 가문 자식인데, 다 똑같잖아!”“송문수...”“하지수 내 말 잘 들어. 나 그렇게 궁하지 않아. 너같이 송장 같은 여자는 내 눈에 못 든다고. 꺼져.”하지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비록 송문수가 시도 때도 없이 화내는 것은 익숙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화난 모습이었다.하지수가 일어나지 않자, 송문수는 닭을 쫓듯 침대에서 그녀를 끌어내려 그의 방 밖으로 던져버렸다.“쾅” 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마치 별장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하지수는 넘어져 아픈 자신의 엉덩이를 문지르며 옷가지를 정돈했다.사실 그녀도 오늘 밤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송문수는 말이 안 통했다.그녀는 몸을 일으켰다.하얗고 깨끗한 손이 그녀의 눈앞에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송승우를 보며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섰다.“죄송해요. 깨웠네요.” 하지수가 사과했다.“시차 때문에, 못 자고 있었어요.” 송승우가 설명했다.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외국에서 지내다가, 이제야 귀국해서 연구해도 된다는 통지를 받았다.“문수랑 이렇게 오랫동안 같
하지수는 송승우를 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돌아오면 이제는 외국으로 안 가고, 계속 장안시에 있을 거예요. 가끔 서울 본사에만 가고요.” 송승우가 이어서 설명했다.“그럼 잘 됐네요. 집에서 가깝고.” 하지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저...”“늦었어요, 승우 오빠 일찍 주무세요.”“...네.” 송승우가 입에 맴돌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하지수는 침대로 돌아왔다. 분명 졸리고 힘든데 잠은 오지 않았다.눈을 감으니 머릿속에 별생각이 다 떠올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했다.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승승우와 그가 어젯밤 데리고 온 그 여자 성소희도 있었지만, 송문수는 없었다. 그는 보통 12시까지는 자기 때문이다.“오해했어요, 오해. 저는 승우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요.” 허영지가 농담을 했다.그래도 내심 여자친구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비록 송승우의 사업은 지지하지만, 그가 빨리 가정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저도 그러고 싶어요. 근데 승우 씨가 저한텐 아무 감정이 없나 봐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더 열심히 해볼게요.”성소희는 외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 비교적 오픈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고, 말하는 것도 아주 시원시원했다.“그래요?” 허영지가 성소희의 농담에 웃음 지었다.“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겨우 20살인데, 제가 거의 삼촌 뻘이에요.” 송승우가 진지하게 말했다.“전 아저씨가 좋은데요?” 성소희가 집요하게 말했다.송승우는 답이 없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수는 식탁에 앉아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식사가 끝난 뒤, 허영지는 하지수를 한쪽으로 끌고 가 말했다. “어젯밤에 문수랑 얘기했니?”“절대 반대해요.” 하지수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쓸데없는 놈.” 허영지가 참지 못하고 낮게 욕을 했다. “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형이랑 이렇게
그리고는 간호사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소이연 씨 보호자 계세요?”“네!”“아기 나왔습니다. 3.15킬로...”“산모는요?”간호사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한 육현경은 아이는 신경도 안 쓰고 소이연의 상태부터 물었다.“산모분은 아주 건강하십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상처 처리하고 계시니까 곧 나오실 겁니다.”“아빠 맞으시죠? 아이 한 번 안아보실래요?”그제야 안도한 육현경이 아이를 안아 들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하얗지? 내가 본 아기들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지금 네 아들은 못생겼다는 소리야?”“솔직히 말하면 좀 못생기긴 했어.”하도경의 시비에 예수진이 너무 솔직히 답하자 계지원이 그게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아들 외모를 저렇게 평가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는지 헛기침을 해댔다.“나도 안아볼래.”예수진의 말에 육현경은 바로 아이를 넘겨주었다.“우리 공주님, 너무 귀엽다. 왜 하필 혈연관계인 거야!”피가 섞인 남매라서 자기 아들과 맺어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예수진에 하지수도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나도 봐봐.”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떡잎부터 남다른 예쁜 아이였다.장차 아주 예쁘게 클 것 같아서 하지수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딸이야?”“딱 보면 딸이지, 이 얼굴이 남자일 리는 없잖아.”간호사가 대답하려던 그때 분만실 분이 또 한 번 열리고 소이연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자 육현경은 다급히 달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생했어.”“이제 돌아가서 쉬자. 우리 이제 아이는 그만 가지자.”소이연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팠던 육현경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간호사에게서 휠체어를 받아 병실로 향했다.친구들도 그런 육현경을 따라 병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성큼성큼 걷던 하지수가 휑한 옆자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문수가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왜 움직이지 않는지 의아해진 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자 송문수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