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그녀는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 인줄 알았다.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수진아......”“가 줘.” 예수진은 시선을 돌려 계지원을 보았다.걱정하는 듯한 얼굴이었다.“육씨 가문이 힘들게 할 거야. 우리 엄마......” 예수진이 잠시 멈칫했다.“육 여사님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야. 일단 누군가 걸려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당신이 지금 내 곁에 남는다면, 눈엣가시가 될 뿐이야.비록 육씨 가업은 결국 육현경 소유가 되겠지만, 육씨 가문은 그렇게 편파적이지 않으니까.잘 알고 있겠지만, 육 여사님은 사랑받고 자라서 할아버지가 억울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예수진은 벌써 호칭을 고쳐 부르고 있었다.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지금 이 모든 일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었다.계지원은 조용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겨우 25살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애지중지 공주처럼 자랐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다.하지만 갑자기 크는 건 정말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갑자기 병실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예수진이 바라보았다.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그 순간 여자는 갑자기 예수진의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수진아,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예수진의 눈빛이 흔들렸다.이 사람의 신분을 알 것 같았다.그녀도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싫다.왜 악의를 품고 그녀의 인생을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그녀는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더라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그때는 내가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다 같은 예준모 자식인데 왜 네가 육씨 가문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없는지 생각했었어.그래서 순간 충동적으로 너랑 가희를 바꿔치기했어. 너희는 너무 닮았고, 아기때였으니까......” 가연은 점점 더 무너져 갔다.지금도 너무 후회된다.사실 나중에는 그녀도 후회하며 예수진을 다시 데려올 생각도
고요한 병실 안.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예수진의 시선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그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그녀는 정말 그가 너무 미웠다.이 모든 비극이 마치 그에게서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그가 대역 배우를 찾아주지 않았다면, 촬영장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육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갑자기 들통나지 않았을 것이다.계지원, 이 사람이 바로 재앙이 아닐까?그를 만난 뒤로, 그녀는 정말 좋았던 적이 없었다.“몸 잘 챙겨.” 계지원이 평온하게 말했다.이마의 상처에도 마치 아픔을 못 느낀다는 듯,그녀를 위로할 뿐이었다.그녀는 정말 그의 갑작스러운 호의가 싫었다.그녀는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동정심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계지원은 병실을 떠났다.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육현경은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괜찮겠어?”계지원은 어지러운 듯 한참 뒤에야 진정한 뒤 말했다. “괜찮아.”“어제 수혈 얼마나 했어?” 육현경이 물었다.“얼마 안 돼.”육현경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말했다. “일단 다친데부터 해결하자.”“그래.”두 사람은 진찰실로 들어갔다.의사 선생님은 계지원의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셨고, 육현경은 옆에서 말했다. “수진이한테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나는 도리상 고모 편에 설 수밖에 없어.”계지원은 말이 없었다.침묵은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반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이번 일은 수진이의 잘못이 아닌, 윗사람의 원한이야.어쨌든 수진이는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 인물이니까 죄가 없더라도 관계를 이어갈 순 없어. 우리 고모가 잔인하다고 할 수도 없고.다른 사람이었어도 자기 친딸은 밖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남의 자식이 당연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으면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야.중요한 건, 그 애가 자기 남편이랑 바람난 여자의 딸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배신의 산물이야.”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나 먼저 간다.” 육현경은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계지원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소이연 쪽 사건도 해결하러 가야 해. 나 지금 시간 없어. 어쨌든 난 네 모든 선택을 존중해.”“현경아.” 계지원이 정중하게 말했다. “고맙다.”육현경은 계지원의 어깨를 살짝 치며 말했다. “한 집식구는 두말하면 잔소리야.”계지원은 조금 감동스러웠다.육현경이 그런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다 안다는 듯 위로까지 해주었다.오래 보지 않은 사람은 육현경이 강할 뿐만 아니라 따뜻하다는 것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육현경은 병원에서 나왔다.그는 차에서 창밖의 경치를 보며 무거운 한숨만 내쉬었다.사실 머릿속에는 갑자기 예수진이 어렸을 때 그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오빠라고 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작았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나 컸다......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육현경은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은하 그룹 재무 담당자의 개인 계좌에서 해외 송금 기록이 여러 개 발견되었습니다.”“나한테 보내줘.”“네.”육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소이연 사건이었다.육현경은 송금 기록을 보고 소이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단서 찾았어.”“응?” 소이연도 집에서 그녀의 사건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고 있었다.누락된 내용이 있는지 보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집에 예수진이 없으니 굉장히 허전했다.“내가 가서 얘기해 줄게.”“알겠어.” 그녀는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그에게 물었다. “수진 씨 전화기 꺼져있던데, 오늘 스케줄 있어?”“...... 이따가 다시 얘기해.”소이연은 육현경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어젯밤 그녀는 예수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육현경이 그녀에게 예수진은 스케줄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을 전했다.그녀도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예인인데 바쁜 건 늘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오늘도 예수진의 휴대폰은 꺼져있었고 그녀는 갑자기 불안
“진짜 똑똑하다.” 육현경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소이연은 알게 모르게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지금 육현경은 어린아이를 대하듯 애지중지하고 있었다.이런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그녀는 말을 돌렸다. “이따가 얘기해 주겠다던 수진 씨 일도 알려줘. 무슨 일 있어?”육현경은 얼굴이 조금 어두워지며 말했다.“너도 아주 힘들 시기라 굳이 말하고 싶진 않지만, 난 감히 너한테 거짓말 못 하잖아.”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그 “감히”라는 단어가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육현경은 정말 소심했다.“수진이 어젯밤 촬영장에서 사고 났었어. 아직도 병원이야......”“뭐?”“걱정하지 마. 비록 큰 사고였지만 상태 괜찮아. 간 손상으로 출혈이 많았을 뿐이야.지금은 이미 깨어났고, 별일 없으면 일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어.” 육현경이 설명했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소이연은 조금 화난 듯 말했다. “적어도 내가 가서 같이 있어 줄 수는 있잖아.”그녀는 예수진이 자신에게 콩팥도 떼어줄 것처럼 잘해준 것을 떠올렸다.그런 예수진이 사고를 당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일단 진정해.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육현경은 소이연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어서 말했다. “수진이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혈해야 했는데, 수진이 혈액형이 AB형이었어.”“그래서?” 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고모랑 고모부 두 분 다 A형이야.”“......” 소이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당연히 알아들었다.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 육현경을 쳐다보았다.육현경은 그녀가 속으로 추측한 말과 어젯밤에 있었던 모든 일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소이연은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있었다.그녀는 예수진이 자기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뒤에 얼마나 힘들어할지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었다.“나 병원에 다녀올게.” 소이연은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켜 나가려고 했다.“소이연.” 육현경이 그녀를 잡았다.소이연은 화가 가득한 눈빛으로 육현경을 보았다.“
“그건 내 일이고.”“게다가, 수진이가 널 만나줄지도 모르겠어. 걔도 자존심이 있잖아.한순간에 백조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됐는데 걔가 태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거라고 생각해?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 우리가 시간을 좀 줘야 해......”“육현경......”“중요한 건, 계지원이 계속 같이 있어 줄 거야.” 육현경은 소이연의 말을 끊었다.소이연은 멍해져 곧바로 말했다. “계지원한테 뭘 기대해?계지원은 수진 씨가 육씨 가문 아가씨일 때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수진 씨가 이렇게 됐다고 한들 이 흙탕물에 발이나 담그겠어?!게다가 고모님이 아무도 수진 씨 못 도와주게 한다며. 양자인 계지원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수진 씨와 같이 육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싶대?! 계지원이 수진 씨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겠어?!”“내가 예전에 말했었잖아. 계지원이 예수진을 거절하는 건 옳은 일이야.” 육현경이 말했다.소이연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가 무슨 말을 하던, 그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육현경은 천천히 또 자세히 모든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소이연은 깜짝 놀랐다.순식간에 육씨 가문의 큰 사건을 두 가지나 알게 되었다.“그래서, 넌 지금 계지원을 믿어야 해.” 육현경이 결론지었다.소이연은 망설여졌다.“나도 너와 수진이 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나도 너희가 잘 지내는 거에 반대하지 않아.수진이는 착한 아이야. 육씨 가문 사람이든 아니든, 잘 지낼 가치가 있어.다만 너도 수진이한테 전화해 봐서 알겠지만, 휴대폰이 계속 꺼져있어. 이건 다른 사람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겠지.” 육현경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소이연이 입술을 깨물었다.육현경의 의견에 동의하는 셈이었다.혹시 예수진은 지금 정말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닐까......일주일 뒤.소이연 소송 사건은 여전히 실검에 올라있었고, 어딜 가나 구설에 오르내렸다.하지만 예수진이 육씨 가문 사람이 아니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이것도 이해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빽빽한 가랑비가 예수진의 몸 위로 떨어졌다.퇴원할 때 의사는 아직 몸이 약한 상태이니 꼭 몸 관리를 잘하고 따뜻하게 굴어야 야며 격렬한 운동도 하지 말고 집에서 한 달 동안 쉬라고 하였다.하지만 이것들은 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내보냈다.그녀는 어느 순간 목숨도 소중하지 않은데 다른 것이 왜 중요하냐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냥 이렇게 혼자 쓸쓸히 길을 걷고 있었다.신기한 건 그녀가 그렇게 유명한데, 정말 엄청나게 유명한 탑 급 연예인인데도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곁눈질로 그녀를 보는 시선들은 마치 미친 사람을 쳐다보듯 했다.미친 사람이 아니면 또 누가 이런 비 오는 날 비를 피하지도 않고, 뛰지도 않고 다 맞고 있을까.예수진의 발걸음은 한 네온사인 앞에 멈췄다.위에 걸려있던 큰 광고는 그녀의 광고였지만, 이미 다른 광고로 바꾸는 중이었다.아직 비가 오고 있었지만 정말 기다려졌다.그녀는 떼어진 광고판을 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트럭 안으로 던져지더니 일꾼은 트럭을 몰고 가버렸다.모든 지역에 이제 그녀의 사진은 없었다.그녀는 마치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다시는 찾을 수 없게.하늘은 점점 어두워졌다.오전부터 밤이 되도록 걸었다.예수진의 발걸음은 육씨 가문 별장 대문 앞에 멈춰 섰고, 익숙한 건물을 보며 갑자기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왜 여기까지 온 걸까.그녀는 갈 곳이 없어서 목적 없이 걸었을 뿐인데.자기도 모르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제는 들어갈 수도 없다.이렇게 가까운 데 멀게만 느껴진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하지만 그녀는 이미 너무 지쳐버렸다.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그녀는 그대로 축축한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비가 멈추지 않는 하늘을 보며 가로등 아래서 그렇게 웃고 있었다.그녀는 아마도 다시는 즐겁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얼마나 지났을까.밤은 점점 더 깊어져 갔고,우산 하나가 그녀의 머리 위에 나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힘들 줄, 정말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오늘 널 부른 것은,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단지 네 진짜 신분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었어.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시는 육씨 가문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우리는 널 다시 받아들일 수 없어.” 육청호는 그녀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예수진, 네가 예준모의 혼외 자식이 아니었다면 우리 육씨 가문도 너한테 이렇게 쌀쌀맞게 대하진 않았을 거다.”맞다.그녀의 잘못은 그녀가 혼외자라는 것이었다.허락되지 않는 탄생이었다.“하지만,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제가 태어나고 말고를 선택할 수 없잖아요.” 예수진이 말했다.화내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왜 제가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거죠?”육청호의 굳센 시선에 감정의 파도가 일었다. “네 잘못은 없다. 다만 이런 일이 네게 일어났으니, 네가 받아들여야지.”예수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세상은 원래 이렇게 불공평한 거였구나.그녀는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었는데도 이렇게 복수를 당했다.“네 생각에 우리가 널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 널 받아들이는 건 우리 육씨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고,예준모가 우리 머리 위에 올라타도록 내버려 두는 짓이다. 우리 육씨 가문도 견디기 힘들 것이야.” 육청호는 천천히 말했다. “육씨 가문은 이 사람을 잃을 수 없어.”육씨 가문은 장안시에서 제일가는 재벌인데, 이렇게 꽉 막혔다니.“가라.” 육청호가 쫓아내며 말했다.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 멀리 가면 갈수록 좋다.”“네.”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받아들이는 것 외에 또 뭘 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육씨 가문 사람이 아니다.심지어 그녀는 육씨 가문의 수치이다.그녀는 육청호의 앞에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건강하세요.”책상에 올려둔 육청호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어렸을 때부터 사랑으로 키운 아이에게 어떻게 감정이 없겠는가.
예수진이 침묵하면서 계단으로 내려갔다.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층계를 하나씩 내리 디뎠다.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여기서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그녀가 절반쯤 내려왔을 때 갑자기 한 그림자가 곁에 나타났다.예수진은 누가 왔는지 쳐다보지도 않았다.“데려다줄게.”귓가에 계지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가 놀랄까 걱정되어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한 것이다.“됐어요.”예수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가장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계지원이다.“수진아.”“계지원.”계단 입구에서 육은숙이 싸늘하게 불렀다.그녀의 손을 부축하던 계지원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예수진이 그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다행히 계지원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쓰러져서 입원한 동안 계지원이 떠난 후 다시는 오지 않았던 때처럼 말이다.그는 정말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한 번도… 그녀에게 어떤 기대도 주지 않았다.“잊지 마. 네가 어떻게 육씨 가문에 남게 되었는지.”육은숙이 뒤에서 계지원에게 경고했다.예수진은 그의 안색도 살피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본인이나 잘 챙겨요. 계지원.”계지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럴 능력이 없으면 주제넘게 굴지 말아요.”예수진이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으며 떠났다.그녀는 지금 이 순간 정말 피곤했다.마치 이 세계와 작별하는 것처럼 진이 빠졌다.육 씨 저택에서 나오자 웃음이 나왔다.자신이 엄청 대단해 보였다.그런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멀쩡하게 걸어서 나왔다.하지만 결국은 참지 못하고 축축하게 젖은 도로에 주저앉았다.육씨 저택에서 멀리 떨어졌겠지?
“좋아.”송문수가 대답했다. 그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한 대를 향해 걸어갔다. 헬멧을 쓰고 차에 탑승했다. 하지수는 송문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뒤에서 하도경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문수는 운전 실력이 뛰어나. 그의 차는 여러 번 개조된 슈퍼카라서 안전해. 게다가 그의 레이싱 친구가 장안시에서 특별히 가져온 거라 절대 사고 나지 않을 거야.”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하도경 옆에 서 있었다. 세 팀으로 나뉜 자동차들이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했다.온 산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내내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녀는 놀라 죽을 것 같았다. 오히려 하도경은 매우 신나 보였다. 그는 주변의 응원단과 함께 소리쳤다. “문수 왔어!”하도경이 흥분하며 말했다.“1등으로 달리고 있어!” 하지수는 그의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훨!”송문수는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갔다.아직 두 바퀴가 남았다. 하지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문수는 레이싱에서 거의 지지 않아. 타고난 실력이 있거든.”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말했다.“사실, 문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단순히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야. 진지하게 임하는 일은 뭐든 잘 해내지.” 하지수는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하도경이 송문수에 대해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송문수라는 사람의 능력을 떠나 육현경과 계지원의 비교로 보면 송문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도경은 친구로서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야. 문수를 잘 이해하면 그가 가진 많은 면을 알게 될 거야. 그런 모습은 너를 놀라게 할 거야.”하도경은 하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반복했다. 하지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그녀는 하지수의 체면을 세워주지
하지수는 그들이 사치스러운 고급 클럽에 가라 생각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산 정상에 와 있었다. 서울 시내와는 꽤 먼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야?”하지수는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렇게 외지고 조용한 곳이라면 송문수가 그녀를 처리할 생각인지 의심이 들었다.“클라이맥스 레이싱해 본 적 있어?”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답했다. “레이싱?” “몰랐지? 문수는 슈퍼 레이서야.” “...”그녀는 전혀 몰랐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그저 그가 놀이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레이싱이 취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게다가 매우 위험하다. 하지수의 표정이 확실히 변화했다. 하도경은 그런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말했다.“오늘 문수가 몇몇 레이서들을 초대했어. 곧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차를 운전할 때 정말 멋져.” 하지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송문수가 이미 차에서 내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주변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하지수는 급히 차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 왔다. 하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두려워졌다. 차가 멈추고 많은 남녀가 내렸다.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보기에는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문수.”한 남자가 다가왔다. 드레드락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갑자기 드리프트 하러 오다니?” 송문수는 원래 서울에서 레이싱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감정을 발산하고 싶어서였다. 어젯밤 송승우의 전화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서 오늘 오후와 저녁에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그는 레이싱 그룹에 메시지를 남겼고 놀랍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하루 만에 모였다. 일정도 이미 잡혔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지수가 그의 생활권에 참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참여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하지수는 착한 소녀여서 어릴 적부터
하지수는 송문수와 하도경을 따라 나갔다. 차는 천씨 가문의 차량으로, 운전사는 천씨 가문 소속이었다. 하도경은 조수석에, 송문수와 하지수는 뒷좌석에 앉았다.송문수와 하도경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대화의 대부분은 그들 간의 이야기였다. 하지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받았다.“승우 오빠.”하도경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문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하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송문수는 금세 원래의 태도로 돌아와 하도경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문수랑 함께 있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문수랑 함께 있다고? 어디야?”송승우는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물론 호텔 앞에는 없었지만, 하지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그는 오늘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분명히 말했다.송문수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를 고려할 때, 송문수는 하지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하지수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지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지수가 어릴 때부터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하지수에게 잘 위로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송문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완전히 다른 답이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구경하러 나갔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둘이 나가서 놀고 있다고?”송승우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송문수와 하도경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어요.” “너... 개의하지 않냐?”송승우가 물었다. “뭘 개의치는데요?”하지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은, 너와 송문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함께 놀
“오해라고?”송문수는 무관심한 듯 말했다. “오해야.”하지수는 확신하며 말했다.“승우 오빠가 사진을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안 올린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나? 너희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 그건 웃기는 일이다. “아니야.”하지수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송문수가 이렇게 말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성적도 좋지 않고 평소엔 느긋하게 지내던 그가 지금은 그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내 말은, 그저 관광객으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가 올리면서 상황이 애매해진 거야. 그래서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어.”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그래서 돌아온 거야.” 송문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하지수가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결국 돌아와서 내가 본 건 이런 장면이라니!”하지수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속상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걸까? 부부로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속상한 건지, 아니면 그에게 진짜 호감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송승우가 돌아왔고 송승우가 하지수를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송승우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입술을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 “네가 정말로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송문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어때?”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송문수는 사실 출소 이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수는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
송문수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하지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정말 자각이 없는 걸까?하지수는 송문수의 붉어진 얼굴과 귀를 바라보며 찡그렸다. 이건 착각일까? 송문수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보이다니?그녀가 잘못 본 걸까? 하지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송문수의 뺨을 만졌다. 송문수는 순간 얼어붙었다.하지수가 말했다.“정말 뜨거워.” “너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재빨리 몸을 떼었다. 하지수는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단지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감정은 천천히 쌓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네가 얼굴이 붉어졌다고 생각해.”하지수가 말했다. “내가 붉어졌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야?”송문수는 부인했다.“이건 화가 난 거야 알겠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뭘 그렇게 화내?”하지수가 물었다. “내 사람을 쫓아냈으니 내가 뭐로 화내지 않겠냐?” “내가 보완할 수 있어.” “하지수, 너 조금 자제할 수 없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이렇게 무례하게.” 송문수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내가 내 남편한테... 그게 무례한 거야?”하지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도 붉어지고 귀와 목도 빨갛게 변했다. 마치 익은 게살 같았다. 송문수의 아담한 목이 움직였다. 그 깊은 욕망이 그를 자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하지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아직도 안 입고 있니?” 하지수는 붉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녀는 송문수를 흔들지 못했다.비록 그녀가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이 많았다. “정말 성가셔.”송문수는 하지수가 오랫동안 아무 행동을 하지 않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늘 그 여자도 그냥 형식적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도덕적으로 강요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지수의 관계를 깔끔하게 끊고 싶어 했다. “한번 해보면 어때?”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보지 않을 거야.”송문수는 단칼에 거절했다.“하지수, 너...” 송문수는 정말 화가 나버릴 지경이었다. 하지수가 몰래 연습했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알겠어?” “필요 없어.” “송문수, 그렇게 싫어해?”하지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이제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울지 마.”송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수가 언제 이렇게 잘 울었어?크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후 하지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성숙하고 침착해져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송문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송승우에게만 보여줬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하지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하지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 큰 거래를 성사했고 가격이 맨몸으로 뛰어다니게 할 만큼 좋았다. 여자는 올 때 모든 매력을 한껏 발산하려 했고, 돈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고 나니 뭔가 대박을 터뜨린 기분이었다.잘생길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큰 만족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둘은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는데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장면이 벌어졌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