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맞자마자 엄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맞을뻔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육민은 남자아이 머리에 있던 쓰레기통을 치우고 작은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나랑 엄마한테 사과해!”육현경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육민은 조용하고 소극적인 편이라서 표현을 잘 못했다.소이연의 앞을 제외하면 그에게는 애교도 부릴 줄 몰랐다.이제는 이렇게 당당하게 상대방에게 요구할 정도로 컸다.남자아이는 울면서 사과하려 하지 않았다.남자가 그의 아들을 끌어다 뺨을 내리쳤다.남자아이는 아버지한테 맞고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이래도 사과 안 해!” 남자는 큰 소리로 혼냈다.남자아이는 너무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집안의 대장이었고 한 번도 아빠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얌전히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아주 작은 목소리였다.“크게 말해!” 육민이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우리 엄마한테도 사과해.”남자아이는 소이연의 앞으로 가 말했다. “죄송합니다.”소이연의 입꼬리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그녀는 먼저 말썽을 일으키면 안 되지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히 괴롭힘을 당해서도 안 된다는 주의였다.“앞으로 다른 친구들 또 괴롭힐 거야?” 육민이 물었다.“아니.” 남자아이가 대답했다.“나중에 또 네가 다른 친구들 괴롭히는 거 보면 그때는 진짜 안 봐줄 거야!” 육민이 협박했다.작은 몸에서 놀랄만한 박력이 터져 나왔다.“다시는 안 그럴게.” 남자아이가 급히 대답했다.육민은 훈육이 끝나고서야 소이연의 곁으로 돌아왔다.소이연은 육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육현경도 소이연의 곁으로 가 앞의 남자와 여자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이 학교에서 다시는 당신들과 당신 아들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잠깐.” 소이연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육현경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소이연이 마음 약해진 줄 알았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결정을 존중하고자
소이연은 차가운 눈으로 눈앞의 남자와 여자를 보고 있었다. 불쌍한 사람은 반드시 미운 점이 있는 법이다.그녀는 육민의 손을 잡고 육현경에게 말했다. “나는 민이 좀 씻겨 줄게. 이따가 또 경기 있어. 그리고나서는 알아서 해.”육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소이연의 마음이 약해질 줄 알고 괜히 걱정했다.그녀는 먼저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스스로 손해 볼 일도 하지 않는다.털털하고 패기가 넘친다.소이연은 육민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육현경은 차가운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는 소이연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더 심한 것을 원했다.그가 집안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지 않았는가?그들에게 집안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해 줄 것이다.......소이연은 더럽혀진 육민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으며 마음이 아파 물었다. “민아, 힘들지?”“안 힘들어요. 엄마가 저 지켜주고, 아빠도 그 사람들 혼내줬잖아요. 제가 그 남자애한테 복수까지 해서 이제 하나도 안 힘들어요.”육민은 헤벌쭉 웃다가도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뀌며 물었다. “엄마, 힘들어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욕해서 힘들어요?”“민이 엄마가 되면 강해진다는 말 알아?”“네?” 육민은 아마 잘 모르는 듯했다.“그러니까, 엄마가 되면 엄청나게 강해져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다 이기는 거야. 엄마는 민이가 있어서 아무도 못 건드려. 게다가 민이도 엄마 지켜줬잖아? 엄마 너무 감동해서 하나도 안 힘들어.”“내가 평생 엄마 지켜줄 거예요.” 육민이 약속했다.“근데 민아, 민이는 아직 어려서 정말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엄마를 보호할 수 없어. 나중에 커져야 보호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나중에 만약에 엄마한테 위험한 일이 생겼는데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하면 꼭 엄마 말 들어야 해?” 소이연은 진지하게 말했다.육민은 조금 내키지 않았다.그는 절대로 엄마를 두고 가지 않을 것이다.“엄마랑 약속해.” 소이연이 엄하게 말했다.정말 육민이 아랑곳
소이연은 살짝 웃으며 힘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괜찮다는 표시였다.그녀도 그런 형식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선생님이 줄을 세우고 조를 나누는데 한 학생의 부모가 한 명밖에 없는 것을 보았다.이런 귀족학교에서는 보통 학교 행사에 부모가 빠지면 안 된다.마침 곤란해하고 있을 때,육민이 갑자기 물었다. “선생님, 저희 엄마가 참여하시면 안 될까요?”“엄마 여기 있잖니?”“저 엄마요.” 육민이 소이연을 가리켰다.선생님은 단지 어린아이의 말로만 생각하고 깊은 생각 없이 급히 말했다. “당연히 가능하지.”그래서 소이연에게 요청했다.소이연은 육민이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고 다른 여자아이에게 잠시 엄마의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곧 경기가 시작된다.소이연은 육민 팀과 다른 팀이었지만 아주 가까이 있었다.“엄마, 잘 뛰어요?”“당연하지.” 소이연은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아니면 네 운동실력이 누구한테서 왔겠어?”“엄마한테서 물려받은 거였구나!” 육민은 더욱 흥분했다.“그러니까 좀 이따가 안 봐줄 거야. 경기장에서는 엄마고 아들이고 없는 거야.”“저도 잘할 거예요.” 육민은 자신감이 넘쳤다.호루라기가 울리자 경기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현장이 시끌벅적했다.소이연도 온 정신을 집중해 바통을 받을 준비를 했다.그녀의 차례가 되자 소이연이 바통을 넘겨받아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선두에 설 생각으로 쫓아가는 것이 분명했다.육민은 이미 한번 뛰었고 소이연이 경기에 나오자 큰 소리로 응원했다.심아윤이 소이연보다 한발 앞서서 바통을 받은 것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심아윤은 운동 쪽으로 뛰어나진 않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소이연의 앞에서 달렸다.머지않아 소이연에게 따라 잡히려고 했다.소이연이 추월하려던 그때 그녀는 갑자기 소이연 쪽으로 붙었다.소이연은 온 힘을 다해 전력 질주하며 심아윤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심아윤이 갑자기 소이연의 라인으로 오는 바람에 두 사람은 세게 부딪쳤다.결국 심아윤이 소이연의 아래 깔린 채 넘어졌다.모든 사
심아윤은 아파서 말도 안 나오는 듯했다.육현경은 몸을 숙이고 앉아 말했다. “업어 줄게.”심아윤은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육현경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녀를 못 안고 갈 리가 없는데 업고 가는 것을 선택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육현경의 넓은 등에 업혔다.육현경은 심지어 그녀의 허벅지를 잡아주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그녀를 목에 매달고 몇 걸음 걸어가 옆에 보이는 벤치에 내려주며 말했다. “헬기 불러서 병원 데려다줄게.”“그럴 필요 없잖아?” 심아윤이 말했다.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병원에 가는 게 내가 좀 더 안심돼…” 육현경은 말끝을 흐렸다.심아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것이 맞는지 지나칠 정도로 걱정해서 오히려 사이가 멀게 느껴졌다.이건 마치 공적으로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듯했다.선생님과 학부모들도 모두 와서 안부를 물었지만 곧 병원으로 갈 거라는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당연히 이번 학부모 참여 경기는 종료되었고 더 이상 다시 진행하지 않았다.기다리는 동안, 심아윤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현경아, 소이연 때문이 아니야.”육현경의 시선은 경기장을 향해 있었다.방금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뒤 시상식을 준비하고 있었다.소이연은 육민을 데리고 시상식 현장으로 가서 그들에게서 조금 멀어졌다.이때 심아윤의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보았다.“고의가 아니었어.” 심아윤이 말했다.“나 정확히 봤어.” 육현경이 대답했다. “네가 라인을 넘어가서 부딪힌 거잖아.”심아윤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민망했다.그녀는 육현경이 이렇게 꾸밈없이 말할 줄 몰랐다.비록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그녀에 대한 육현경의 책임감은 느낄 수 있었다.그녀가 다쳤는데 걱정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심아윤은 속으로 화를 참으며 말했다. “맞아, 내 실수야. 그냥 오해할까 봐 설명해 준 거야.”육현경이 짧게 대답했다.여전히 차가웠다.이때, 헬기가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소이연은 예전에 늘 하던 대로 민이를 씻기고 동화책 한 권을 스스로 보게 한 뒤 자신도 샤워를 했다.옷을 벗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허리를 보니 새파랗고 큰 멍이 들어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팠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샤워를 했다.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구급상자를 꺼내 타박상 연고를 꺼냈다.거실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약을 바르기 편하게 옷을 들어 올렸다.허리를 내놓고 심지어 잠옷 바지도 살짝 내렸다.그녀가 거울을 보고 연고를 바르려던 그때 시선이 갑자기 한곳에 멈췄다.거울 속에서 갑자기 육현경이 거실의 창문 쪽에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계속 그곳에 서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소이연은 급히 옷을 내리고 바지를 올렸다.얼굴도 좋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그녀는 분명 비밀번호를 바꿨다.육현경이 이렇게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그녀는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올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민이가 문 열어줬어.” 육현경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이연이 입술을 깨물었다.화재도 도둑도 막았지만 자기 아들은 막지 못했다.그녀는 스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뭐 하러 왔어? 민이 데리러 온 거야? 민이 자. 내일 주말이니까 안 데려 가도 돼.”육현경은 이미 소이연의 앞까지 와 있었다.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지금 집안은 그녀가 거울을 보고 있던 곳에만 밝은 조명을 켰을 뿐 다른 곳은 모두 약한 불빛이었다.불빛 아래의 육현경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소이연이 방어적인 태도로 말했다. “뭐 하려고?”육현경은 그대로 그녀의 잠옷을 벗겼다.“육현경.”“안 다쳤다며?” 육현경이 물었다. 시선은 그녀의 허리 부분의 파랗게 부은 멍 자국을 향해 있었다.정말 흉했다.“심아윤 씨 보다 안 심해.”“소이연, 너 진짜 아프다고 할 줄 몰라?”“타박상은 원래 이런 거야. 보기에만 이렇고 실제로는 안...... 아!” 소이연이 짧은소리를 질렀다.육현경이
소이연도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 알 수 없었다.그녀도 도대체 육현경이 약을 어떻게 바르는지 다 바르긴 한 건지 보이지 않았다.더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그때 차가운 입술이 다친 곳을 피해 그녀의 허리에 닿았다.소이연은 매섭게 몸을 돌려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거울에 온몸을 밀착시키고는 굉장히 화가 난 듯 육현경에게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내 몸에 관심 없다며?”“참기 힘드네.”“육현경, 약혼녀가 있는 사람인 거 잊었어?” 소이연은 화가 정말 많이 났다.이보다 더 쓰레기 같을 수 있을까?!“아니.” 육현경은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아직은.”“비록 지금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약혼했잖아. 결혼도 먼 얘기가 아니야. 당신이 아무리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해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 여자인 친구 집에 이렇게 아무렇게나 막 와? 종이 계약서라도 써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거야?”육현경은 소이연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도대체 귀신에 씐 건지 스스로 컨트롤도 못 하고 그녀에게 뽀뽀를 했다.그녀의 몸에 사실 지금까지 면역력이 없었다.방금은 스스로 과대평가했다.“늦었어, 일단 돌아가 줘.” 소이연은 손님을 내쫓는 듯 말했다.육현경은 문을 나서며 말했다. “혼자 약 바르기 힘드니까, 수진이 내일 아침 일찍 올 거야. 내가 얘기해 뒀으니까 도와달라고 해.”“알아.”“잘 자......”쿵!문이 닫혔다.육현경은 그 자리에 서서 굳게 닫힌 문을 보고 있었다. 얼굴까지 부딪힐 뻔했다.사실 지금 당장 와서 소이연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하지만 한번 마주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계속 보고 싶었다.반년.반년 안에 반드시 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하지만 누가 알겠는가.예상치 못한 일은 항상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일주일 뒤.은하그룹의 입찰 모집 사업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마지막 입찰 모집 현장.마지막으로 확정된 세 가문의 협력상이 현장 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다.한창인 가운데 갑자기
소이연은 장문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지금 검찰청에 조사받으러 가, 남은 일 좀 나 대신 처리해 줘. 당연히 오늘 입찰 모집 사업은 이어서 진행할 수는 없을 거고 내가 나오면 다시 얘기하자. 뒷수습 좀 잘 해줘.”“네.” 장문기가 급히 대답했다.긴장감을 감출 수 없는 얼굴이었다.그는 회장님의 침착함이 정말 감탄스러웠다.간단하게 인수인계를 마친 뒤 소이연은 검찰청 사람을 따라 자리를 떴다.소이연의 형사 구속 사건은 아주 빠른 속도로 장안시 전체에 퍼져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이때 소이연에 관한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그녀에 대한 열기가 식기 무섭게 또 다른 충격적인 뉴스가 터져 나왔다.검색어 순위에 밥 먹듯 오르내리고 있었다.육현경은 마침 외국에서 미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예수진이 연락한 덕분에 소이연의 소식을 들었다.그는 처음에 전화를 받지 않고 끊었다.두 번째 전화가 걸려 오자 육현경은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했다.예수진은 항상 그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가 바쁠 때에는 절대 귀찮게 하지 않았다. 소이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제외하고는.그는 곧바로 회의실을 나왔다.회의하던 고위층 사람들은 모두 서로 얼굴을 보며 의아해했다.육현경이 회의 도중에 자리를 뜨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왠지 낯빛도 안 좋아 보였다.명진도 눈치채고 빠르게 대표님의 뒤를 따라갔다.“무슨 일이야?” 육현경은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오빠......” 예수진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이연 언니 큰일 났어.”육현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얼어붙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오늘 뉴스에서 봤는데 검찰에서 이연 언니를 뇌물죄, 탈세로 데려갔어. 나 지금 다른 지역에서 리얼리티 쇼 촬영하고 있어서 내일 모레나 돼야 갈 수 있어. 지금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근데 이연 언니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겠어. 오빠, 빨리 와. 내 생각에 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예수진이 빠르고 급하게 말했다.육현경은 곧바
송문수는 샤워가운을 걸치고 호텔의 통창 앞에 서서 전화를 걸었다.하지수는 걸려온 전화를 보고 받자마자 말했다. “돈 얼마나 주면 올래?”하지수와 송문수의 결혼은 원래 부모님이 계획한 것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송문수의 부모님이 하지수를 굉장히 좋아하셨다.송문수의 부모님은 그가 결혼한 뒤에도 계속 사고를 칠까 봐, 두 사람의 경제 주도권을 모두 하지수에게 주었다.송문수는 돈이 떨어지기 전에는 먼저 하지수에게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그녀는 사실 송문수가 쓰는 돈에 제한을 주지 않았다. 송문수 몫의 돈은 매달 조금도 덜지 않고 모두 그에게 주었다.하지만 송문수의 씀씀이는 매달 모자라서 그녀는 자신의 몫에서 조금 덜어주었다.어쨌든 그녀의 몫도 송씨 가문 소유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송문수는 매번 송씨 가문에 들키지 않기 위해 계좌이체로 받지 않았고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결혼한 지 3년, 이미 익숙해졌다.“돈은 필요 없어. 옷만 좀 가져다줘. 그리고 너희 변호사들 보석 수속 서류도 가져와. 현경이가 너한테 소이연 좀 보석으로 꺼내달래.” 송문수가 전달했다.하지수는 멍해졌다.오늘 오전에 난리가 났던 뉴스 기사가 인제야 떠올랐다.소이연이 검찰청으로 끌려갔다면 확실한 증거로 아마 이미 행정 구속되었을 것이다.“급해?”“다른 일 있어?” 송문수가 물었다.“우선 소이연 씨 소송 사건 먼저 확인해 봐야 해.”“안 급해. 근데 현경이가 급할 것 같은데. 그래서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지.”“최대한 해볼게.”송문수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담배 한 대를 피웠다.침대 위의 여자도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송문수가 돈을 주고 쫓아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약 한 시간 뒤.하지수는 남자 정장 한 벌을 들고 송문수의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침대 위의 여자는 잠을 설쳤는지 허리와 등이 너무 아파서 이제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그때 또 다른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주 놀랐다.하지수는 익숙하다는 듯 여자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어
이혼 시간까지 다 정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둘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다.그 숨 막힌 정적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송문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송문수는 하지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 집을 나서버렸다.서울을 떠날 때처럼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시야가 흐려졌다.하지수는 뿌얘진 시야에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담았다.이튿날, 하지수는 약속대로 송문수와의 이혼을 위해 법원으로 향했는데 송문수는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하지수가 차에서 내리며 안에 앉아있는 또 다른 이와 뭐라고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그 안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송승우일 것이기에 송문수는 시선을 돌리며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그는 이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대화를 마친 건지 종종걸음으로 송문수에게 다가가 말했다.“오래 기다렸어? 미안해.”“아니야, 내가 빨리 온 거야.”그녀가 제게 다가오자 송문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말했다.“들어가자.”“그래.”그렇게 둘은 법원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송문수가 합의서를 건네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작성했는데 맘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줘, USB 챙겼으니까 여기서 고칠 수 있어.”사실 어젯밤 송문수가 파일을 보내와서 하지수는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니 양육권 싸움도 없었고 이익을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재산분할에도 큰 문제 없었다.그럼에도 제게 40억을 주겠다는 송문수를 하지수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어차피 큰돈도 아니라서 헤어지는 대가로 주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가 그저 받기로 했다.송문수한테는 정말 적은 돈이긴 하니까.그리고 돈으로서 둘 사이를 깔끔히 정리하는 걸 송문수도 원할 것 같아 하지수는 결국 그걸 받는 조건으로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다.이혼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이 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다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핸들을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임에도 송문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집으로 향했다.차가 멈추자 하지수는 송승우를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는데 송승우의 몸은 껌딱지처럼 하지수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그를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히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마치 매일 하던 행동인 것 마냥, 그래서 몸에 배어버린 것마냥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하지수, 송문수, 송승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 도착해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보름 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집이 그리웠던 허영지와 송기명은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아무리 편한 호텔에서 자도 제집만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잠부터 청했다.그리고 송승우도 피곤해해서 하지수는 휠체어를 밀며 그를 방에 데려다주었다.순식간에 혼자 남아버린 송문수는 소파에 앉아 하지수를 기다렸다.원래는 송문수를 데려다주고 나가려 했는데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 하지수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솔직히 하지수가 언제 내려올지는 미지수였기에 송문수는 하지수가 잠에서 깬 다음에 내려올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지만 송문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 홀로 내려오는 하지수가 보이자 송문수의 심장박동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몸에 힘이 자꾸만 들어가며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몸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하지수가 자연스럽게 송문수의 옆에 자리 잡고 앉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직도 어색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부부인데도 부부답지 않았고 가족임에도 가족 같지 않은 둘의 애매모호한 사이 때문이었다.이렇게 보니 제 인생은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것 같아 송문수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나한테 할 말 있다며, 뭐야?”송문수는 더 이상의 희망을 품지 않기 위해, 하지수와 한 지붕 아래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난 충동적인 적 없어요, 그리고...”하지수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송승우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그럼 너 나랑 다시 사귈 수 있어?”터무니없는 그의 말에 하지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송승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네가 내가 아닌 송문수를 좋아한다는 걸 난 못 믿겠어. 난 아직도 네가 그때 내가 말도 떠난 일로 화내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랑 다시 사귀자. 6개월만 만나보고 그때도 네가 송문수를 선택한다면 나도 깔끔하게 포기할게.”하지수는 자신이 송승우를 다시 좋아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완벽히 포기해야 끝나는 싸움이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버렸다.하지수는 이제 송승우와의 이 지긋지긋한 인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좋아요.”하지수가 긍정적인 답을 하자 자신만만했던 송승우의 얼굴에는 바로 미소가 번졌다.자신이 한쪽 다리를 잃긴 했지만 송승우는 그래도 하지수의 사랑을 다시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송승우는 단 한 번도 송문수를 제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하지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완벽한 저를 놔두고 멍청한 송문수를 선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조건이 하나 더 있어.”“말해요.”“문수랑 이혼부터 해.”“네가 나랑 사귀겠다고 했잖아. 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게 싫으니까 당당하게 너랑 만나고 싶어.”송승우의 말에 하지수는 입술을 말아 물고 생각에 잠겼다.송문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송승우와 만나는 건 바람피우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건 서로에 대한 존중을 깨는 거라서 하지수도 썩 내키진 않았다.“알겠어요.”하지수가 이혼만 하면 저와 재결합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기에 송승우의 미소는 아까보다 더 선명해졌다.“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요.”“뭐든 말만 해.”기분이 좋았던 송승우는 하지수가 제시한 조건을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송승우는 하지수는 어차피 저 아니면 안 된다고 자신을 하고 있었다....일주일 뒤, 송승우가 퇴원하자 드디어 가족들이 전부
“네.”“회사 일을 이제는 문수가 다 책임지고 있으니까 빨리 가는 것도 맞지, 승우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이제 매일 간호할 필요도 없잖아.”하지수를 직접 키워온 허영지는 그녀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래서 빈말이지만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네.”그런 허영지의 노력을 보아낸 건지 하지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저 이제 중환자실에서도 나오고 의사 선생님도 별문제 없다고 했으니까 두 분은 먼저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도 가능하다고 하잖아요.”“그래.”송승우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마음을 놓을 수도 있었고 또 지금 하지수와 단둘이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속내가 너무 눈에 훤해서 허영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우린 그럼 먼저 갈게. 지수야, 승우 잘 부탁해. 네가 고생이 많다.”말이야 친절하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하지수의 발을 여기 묶어두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네.”하지수 역시 제 시어머니의 의도를 알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하지수의 대답을 들은 허영지는 마음이 한결 놓여 송기명을 밀며 병실을 빠져나갔다.송기명은 등 떠밀려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허영지와 송기명이 나간 병실에는 하지수와 송승우 둘뿐이었다.“과일 좀 먹을래요?”“응, 고마워.”하지수가 먼저 그 어색한 정적을 깨며 묻자 송승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배를 집어 든 하지수는 열심히 깎기 시작했는데 송승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한참 지나 껍질을 다 깎아낸 하지수는 배를 작게 썰어 송승우의 앞에 놓아주었다.“천천히 먹어요.”“넌 안 먹어?”“입맛 없어요.”송승우는 입맛 없다는 하지수에게 굳이 권하지 않고 천천히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도도하고 자신만만하던 송승우의 모습을 다시 본 하지수는 송승우의 말대로 거기에 자신의 공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송승우의 병실을 빠져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송문수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차 문도 열지 못하고 망설이던 송문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그냥 차에 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가 그를 불러세웠다.“문수 씨.”“장안시로 돌아가면 서울엔 다시 올 거야?”“안 올 것 같아 아마. 송승우도 많이 나았으니까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겠지. 그럼 엄마 아빠가 송승우 집에 데려가서 보살피려 할 텐데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와 힘들게.”“그래서 나 혼자 여기 버려두겠다는 거구나.”하지수가 내뱉은 담담한 한마디에 송문수는 심장박동이 멎는 것만 같았다.숨을 내쉴 수조차도 없이 가슴이 아파와서 그는 이를 악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여전히 침묵만 유지하는 송문수에 마지막 기대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송문수 말대로 자신은 그저 그가 마음을 다잡을 때 마침 옆에 있었던 여자일 뿐이니,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것도 욕심인 것 같았다.아무리 노력해봐도 송문수의 마음은 저를 향하지 않으니 하지수는 이제 그와의 사이를 끝내려 했다.“조심히 가.”이렇게라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했으니 하지수는 그거면 된 것 같았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지만 저 짤막한 한마디만 내뱉고 웃으며 돌아섰다.그 작은 몸통이 외로이 돌아서는 걸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왔다.정말 제가 하지수를 버린 것만 같아서, 또 하지수를 혼자만 남겨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왔다.주먹을 꽉 말아쥔 채 온몸을 떨어대던 송문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그는 제 충동을 잠재우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 결국 차에 올라탔다.하지수에게는 송승우가 있었으니, 그녀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혼자일 리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서기로 했다.한편 한참을
송승우가 병실을 옮기고 나니 가족들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엄마,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저 걱정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죠.”“너만 괜찮을 수 있다면 우린 뭐든 다 할 수 있어.”병원 침대에 누운 채 감성 어린 말을 하는 송승우를 향해 허영지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허영지는 송승우가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았다.더 이상 나쁜 생각은 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씩씩하게 본인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제가 하루빨리 마음 다잡아서 이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넌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는 애야, 넌 계속 우리의 자랑이었어.”제 손을 잡은 채 저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엄마를 향해 송승우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정말 눈물 나도록 다정한 모자지간이었다.송승우가 병실을 옮긴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송문수도 병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라이터만 만지작거리는 그는 어쩐지 제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한편 허영지와 대화를 나누던 송승우는 하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아직까지도 간호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가며 앞으로는 어떻게 재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묻고 있었다.자신의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 지수야.”“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요 뭘.”“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빨리 마음 다잡을 수 있었어. 너 아니었으면 현실을 이렇게 빨리 받아들이진 못했을 거야.”“나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하지수는 결국 그 감사 인사를 받아들인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다시 간호사를 보며 디테일하게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물었다.다들 제 자리를 잡은 듯한 모습에 송문수는 그만 병실을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송기명이 그를 불러세웠다.“문수야, 어디 가?”“장안시로 돌아가야죠 이제.”담담히 말하는 송문수에 송기명은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지금
허영지의 말에 다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고 그 시선 끝에는 하지수가 서 있었다.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지수야, 여긴 어떻게 왔어?”그런 하지수를 본 허영지는 다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하지수가 송문수의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들었다면 둘 사이에 감정이 있든 없든 마음이 아플 것은 당연지사였기에 허영지는 하지수가 안쓰러웠다.하지수는 굳어버린 고개를 힘겹게 돌리며 허영지를 향해 말했다.“일어나보니까 호텔에 아무도 없어서 왔어요.”눈 떠보니 사라져버린 송문수에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온 거지만 혹시나 송문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오지 말라고 말릴까 봐 연락은 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송문수가 또다시 허영지와 싸울까 봐 말도 없이 온 건데, 오자마자 하지수는 송문수가 내뱉는 차가운 말들을 모조리 들어버린 것이다.저를 물건 취급하며 송승우에게 넘겨주겠다는 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이제 좀 달라진 줄 알았는데, 송문수한테 저는 여전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걸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모든 게 다 저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아 하지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아직도 많이 피곤해서 전 이만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그래서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병원을 나섰다.자신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는 하지수를 보며 허영지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하지수가 친딸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키워왔던 아이였기에 허영지는 그녀를 친딸 이상으로 아껴주었다.부모도 잃은 아이가 저렇게 충격받은 모습으로 자리를 뜨는 게 가슴이 아팠지만 허영지는 끝내 송문수 더러 하지수를 위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이번에도 이기적이게 송승우를 위해 송문수를 희생시킨 것이다.송승우가 나을 수만 있다면 송문수와 하지수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송기명은 그런 아이들을 두고 볼 수만
송문수가 병실에서 나오자 허영지와 송기명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맞아주었다.아까 분명 난리를 치던 송승우였는데 그걸 어떻게 진정시킨 건지가 궁금해서 나온 눈빛이었다.“걱정 마세요, 송승우 치료에도 협조 잘하고 더 이상 난동도 안 부릴 거에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 좀 놓으세요.”높낮이가 없는 송문수의 말에 허영지와 송기명은 아들의 감정을 도통 보아낼 수가 없었다.“뭐라고 했길래 승우가 네 말을 듣는 거야?”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발언권이 없던 송문수의 말을 그 자존심 강한 송승우가 고분고분 듣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허영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수의 일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가 계속 입을 다물면 허영지가 제 말을 믿지 않을 걸 알기에 입술을 말아 물던 송문수는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지수 그만 놓아주겠다고 했어요.”지수를 송승우에게 보내겠다는 뜻의 말을 들은 허영지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송문수, 넌 결혼이 애들 장난이야?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해! 지수한테는 물어봤어? 아니면 승우 속이고 치료받게 하려고 그런 거야? 속이는 거라면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될 텐데 그때는 어쩌려고 그래! 넌 왜 항상 이렇게 생각이...”“그만 좀 해요!”또 송문수를 타박하는 허영지에 송기명은 참다못해 큰 소리를 내었다.“당신은 왜 문수 말은 안 믿어주는 거예요? 전에 당신이 나한테 우리가 문수한테는 좋은 부모가 돼주지 못했다고 했을 때 난 사실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야 알겠네, 정말 우리가 애한테 못 할 짓을 하긴 한 것 같아요. 어떻게 당신은 매번 문수를 나쁜 쪽으로만 생각해요?”“나는 그냥...”허영지는 아직 화가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송기명의 말이 서럽기도 했지만 차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송승우와 송문수 사이에 마찰이 있을 때면 그녀는 늘 송승우를 감싸주곤 했다, 그리고 그게 이젠 본능으로 자리 잡아서 허영지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더 이상 허영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송기명은
송문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던 송승우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송문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러는 거 다 지수 얻으려고 그러는 거잖아.”더 이상 상황을 회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송문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아무런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적나라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송승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렇게 앞뒤 재지 않는 게 또 송문수 답긴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지수를 얻으려는 게 아니고 네가 지수한테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너랑 함께하는 지수만 불쌍하니까.”남의 가정을 파탄 내고 남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면서도 송승우는 마치 자신이 옳다는 듯 당당하기만 했다.하지만 그 말에 송문수는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사실은 반박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었다.한번 생각을 굳히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송승우임을 알기에 그한테 저는 언제까지나 하지수에게 한참 못 미치는 인간일 뿐이었다.“난 지수한테 더 안정된 가정을 줄 수 있어. 너처럼 다른 여자들 끼고 다니는 게 아니라 지수만 아껴줄 거라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수만 바라보면서 다른 여자한테는 손도 대지 않았어. 그런데 넌, 너무 더럽잖아.”송승우는 제 동생의 입장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송문수를 무참히 짓밟아버렸다.송승우의 말대로 예전의 송문수는 한없이 더러운 사람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자신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하지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었는데 송승우의 말을 들어보니 그 모든 게 저만의 어리석은 생각인 것 같았다.“지금은 지수 찾지 말고 몸 회복하는 데만 집중해. 너 다 낫고 나면 지수는 내가 알아서 놓아줄게.”그래서 송문수는 구질구질한 변명대신 확실한 약속을 했다.그 말을 들은 송승우는 의외라는 듯 송문수를 바라보았다.물론 예전의 송문수는 헤프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송승우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하지수를 향한 송문수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그 마음이 진심이라서 송승우에게는 더 위협적이게 느껴졌던 것이고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