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는 "된다"는 뜻인가?소이연은 매장 직원에게 턱시도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이때 또 다른 매장 직원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나 그거 입어볼래요!"문서아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매장 직원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문서아는 드레스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다른 직원이 그녀를 막아섰다."손님 죄송하지만 이 드레스는 소이연 씨 것입니다."매장 직원은 거듭 사과하며 말했다."뭐? 쟤 거라고? 내가 먼저 봤으면 내 거예요! 나 지금 당장 입어볼 거예요!" 문서아가 억지를 부렸다. 심지어 매장 직원의 손에서 옷을 낚아채더니 흥분한 듯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대보았다.오랜 시간을 골랐지만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오직 이 드레스뿐이다."정말 예쁘다."소나은은 비록 그녀를 칭찬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질투를 느꼈다.사실 그녀도 이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손님, 이 드레스는 소이연 씨가 주문 제작한 드레스라서요...""얼마죠?"문서아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말했다."지금 바로 결제할게요." "돈 문제가 아니고요...""당신, 내가 컴플레인 거는 수가 있어요!"문서아는 악랄하게 협박했다.매장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소이연을 바라보았다.소이연은 의아했다. 그녀는 한 번도 여기서 드레스를 맞춘 적이 없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그녀의 가슴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올랐다. 이 드레스는 육현경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 선물인 것 같았다."카드 긁어줘요!"문서아는 VIP 카드를 꺼내 매장 직원을 향해 의기양양해서 말했다."이 드레스는 소이연 씨 몸에 맞춰서 주문 제작된 거라... 특히 허리가 엄청 얇아서 손님한테는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매장 직원이 다시 설득했다."지금 내 몸매를 의심하는 거예요?"문서아는 분노하며 말했다."지금 당장 입을 테니 똑똑히 봐요!"말과 함께 드레스를 들고 피팅룸으로 향했다."문서아, 싸가지없이 굴지 마! 몇 번을 말해, 이 드레스 내 거야!
소나은은 온 힘을 다해 지퍼를 당겨보았다.문서아는 이따금 배에 힘들 주며 숨을 들이마셨지만 결국 지퍼는 올라가지 않았다."야, 안 올라가".소나은은 숨을 헐떡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럴 리가?! 내 허리가 얼마나 얇은데!" 문서아는 이런 충격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만약 여기서 그대로 나가게 되면 비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그녀는 절대 체면을 잃고 싶지 않았다."정말 안 돼, 더 당기면 망가져.""아, 괜찮아. 좀 더 힘줘 봐!""만약 정말로 망가지면 소이연의 함정에 빠지는 거야! 소이연이 무조건 너한테 배상하라고 할 걸.""어차피 내가 이걸 못 입어도 나한테 결산하라고 할 거야!"문서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치를 떨며 말했다."허리가 이렇게 얇아도 못 입는데, 소이연도 절대 못 입어. 두 사람 다 못 입으면 무슨 자격으로 널 비웃겠어. 절대 너한테 결산하라는 말 못 해."소나은이 음흉하게 말했다.문서아는 흠칫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빨리 벗겨줘.""그래."두 사람은 마음을 다잡고 탈의실에서 나왔다.소이연은 옆 VIP 소파에 앉아 육민과 함께 간식을 먹었다.소이연은 그대로 나오는 문서아를 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문서아는 분노를 억누르며 도발적으로 말했다."소이연, 확실히 난 못 입겠어. 하지만 내가 못 입는다고 해서 네가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지. 네가 입을 수 있다면 내가 이 드레스 사줄게!"소이연은 천천히 과자를 입에 넣고 옆에 있던 커피도 한 모금 마셨다.문서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아무리 애를 써도 드레스를 입지 못했는데, 소이연은 여유롭게 이렇게 많은 음식을 먹고 있다니?!소이연은 휴지로 입을 닦고 육민을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분부한 뒤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이와 동시에.문서인이 서둘러 가게에 도착했다."서인 오빠."소나은이 급히 달려갔다.문서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떻게 왔어?""내가 서인 오빠한테 메시지 보냈어."소나은이 황급히 말했다."너랑 우리 언니 사이가 이렇게
물론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고마워."소이연은 육민이를 향해 미소를 짓고 머리를 돌려 문서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카드 긁어.”문서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소이연이 입을 수 있다니, 입을 수 있다니!’"승복하는거지? 왜, 한 입으로 두말하려고?!"소이연은 일부러 문서아를 약 올렸다.문서아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큰소리를 쳤는데 인제 와서 말을 번복한다면 그녀는 얼굴을 들고 이곳을 나갈 수 없을 것이다."얼마죠?!"문서아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물었다."손님, 이 드레스는 순 수제 맞춤 제작이라 17억 87만 원입니다."매장 직원이 말했다."뭐라고요?!"문서아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아무리 맞춤 제작이라고 해도 보통 수천만 정도였다.그런데 17억이 넘다니?!"이 드레스는 프랑스에서 제작하였고 5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으며 모두 최고 거장들이 수제로 한 땀 한 땀 만든 작품입니다."매장 직원은 인내심 있게 설명하며 명세서 한 장을 제시했다"여기 명세서 확인 부탁드립니다."문서아는 얼굴이 새파래졌다.17억을 주고 한 번 입을 드레스를 사는 것도 아까운데 소이연에게 주는 건 더 아까웠다."너 이렇게 비싼 드레스를 살 돈이 어딨어!"문서아가 소이연에게 따져 물었다.소이연은 이 드레스의 가격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17억이 넘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건 네 알 바가 아니야. 넌 이 드레스 결제나 해. 난 바로 포장해서 가지고 갈 테니까."소이연이 담담하게 말했다.문서아의 독기 가득한 두 눈은 금세 빨개졌다.그녀의 카드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다.비록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벌었기도 했고 또 가문에서도 그녀에게 돈을 보태주었지만 그녀는 종래로 돈을 모으는 습관이 없었다. 지금 카드에는 많아야 2억을 넘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소이연도 살 수 있는 물건을 자기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다."내 카드로 결제해."문서
소이연은 육민의 손을 잡고 매장을 떠났다.건물을 나서는데 누군가 다급히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왜, 돈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소이연은 예리한 눈빛으로 숨을 헐떡거리는 문서인을 노려보았다."나 그렇게 인색한 사람 아니야."문서인은 헐떡거리며 말했다."어차피 이미 쓴 돈 아까워하지 않아. 우리 문씨 가문에 이 정도는 돈도 아니니까."소이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그렇다.이 정도 돈은 문씨 가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씨 가문에 돈이 부족하지 않은 건 소이연이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기 때문이다!"요즘 너한테 전화해도 안 받고 문자해도 답장이 없더라고."문서인은 소이연의 비웃음을 무시하며 말했다."너 혹시, 네 여자친구는 소나은이라는 거 잊은거......""헤어졌어도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그건 네 생각이고."소이연은 차갑게 문서인을 노려보았다."난 내 인생에서 너의 존재를 이미 지워 버렸어. 난 가치관도 개판이고 인성도 별로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어. 넌, 그럴 자격 없어.""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귀찮아진 소이연은 바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문서인은 소이연과 싸우고 싶지 않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아까 매장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이 꼬마가 입고 있는 턱시도 2억 원이라며?" 당연히 그는 육민이가 입고 있는 턱시도를 말하고 있었다.육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문서인을 노려보았다."그래서?"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너 지금 은하 그룹 회장이라고 돈 좀 있나 본데, 이렇게 사치를 부리다가 언젠가는 다 써버릴 거야. 내가 여러 번 말했지. 그 소방관은 네 돈을 노리는 거야. 이러다 너 돈 다 써버리면 그땐 널 떠날 거라고!"문서인은 점점 흥분해서 말했다."하지만 내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어."소이연은 하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문서인, 내 앞에서 착한 척하지 마, 난 안 속아!"말을 끝낸 그녀는 육민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바로
하지만 육현경에게서 더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소이연은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돌려 육민에게 물었다."민이야, 오늘 밤 아빠 야근이래.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갈래?""좋아."육민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엄마 집으로 놀러 가고 싶어."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육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집에 도착한 후, 소이연은 육민에게 애니메이션을 켜주고 육민을 위해 요리를 할 생각에 빠졌다.비록 해외에서 오랜 시간 혼자 지내왔지만 돈을 벌기 바쁘다 보니 혼자 요리해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돈이 없을 때는 라면만 먹었고 돈이 있으면 배달 음식을 먹었다.긴 고민 끝에 그녀는 결국 배달을 택했다.고급 레스토랑의 배달 음식이면 안전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소이연은 육민의 옆에 앉아 배달 앱에 집중하고 있었다."엄마, 나 다른 채널 돌려봐도 돼?"육민이 물었다."응, 마음대로 해도 돼."소이연은 리모컨을 가리켰다.육민은 리모컨을 들고 스스로 TV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소이연은 음식을 주문한 뒤에야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육민이가 보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놀랍게도 우주 과학에 관한 내용이었다."너 이거 알아들을 수 있어?"소이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응."육민의 표정은 태연했다."......"밤 7시, 두 사람은 같이 저녁을 먹었다.육민은 가정 교육이 잘 되어서 밥 먹을 때 절대 떠들지 않았다.밥을 먹고 나서 육민은 소이연을 도와 뒷정리도 말끔하게 했다. 그러고는 또 소이연한테 TV를 같이 보자고 했다. 그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두 사람이 나란히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은 너무나 따뜻해 보였다."저 사람 예수진이야."육민은 화면에서 나온 리얼리티 쇼 참가자인 여배우를 가리키더니 흥분하며 말했다.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저 사람 좋아해?""좋아해.""사람 보는 눈이 있네."소이연이 말했다.예수진은 확실히 예뻤다. 그리고 또 순수한 아름다움이 포인트인 그녀
"엄마, 볼이 왜 빨개?"육민은 한바탕 손짓을 하고 나서야 그녀의 표정에서 이상함을 발견했다.그러더니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육민의 시선 때문에 소이연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그녀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저 어린애가 아무 뜻 없이 내뱉은 말이라는 걸.그녀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잠깐만, 일단 내 옷이라도 가져올게.""알겠어."육민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이연은 흰 티를 육민에게 입혀주었다. 무릎까지 딱 떨어져서 바지는 필요가 없어 보였다.그녀는 육민을 자기의 포근한 침대에 앉히고 육민의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말려주기 시작했다.머리를 말리는 동안 육민은 피곤했는지 그 자세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머리를 다 말리고 소이연이 뒷정리하는 사이 육민은 어느새 그녀의 침대에서 소르르 잠에 들었다.너무나 귀여운 육민의 모습에 소이연은 심장마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그녀는 육민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그러고는 휴대폰 들고 밝기를 조절한 다음 육현경에게 문자를 보냈다."민이 잠들었으니까 그냥 자게 내버려 두고 내일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문자를 보냈지만 이번에는 칼답이 아니었다.소이연은 잠시 답장을 기다리다가 휴대폰을 옆에 놓더니 샤워가운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한참 뒤, 소이연이 씻고 나오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소이연은 다급히 인터폰을 확인했다. 육현경이 문 앞에 서 있었다.‘내 문자 못 본 거야?!’그녀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민이 잠들었다니까요."육현경의 시선은 이내 그녀의 옷차림으로 향했다.소이연은 급기야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고개를 숙였다. 문을 열고 나서야 가운차림에 속옷도 입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쾅!".문은 거세게 닫혀 버렸다.육현경은 입술을 오므렸다.소이연은 다급히 방으로 들어가 단정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젖은 머리까지 정리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들어와요."육현경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슬리퍼는?""잠깐
“…”소이연은 그가 메시지를 못 본 줄 알았다.“그럼 왜 왔어요?”“밥 먹으러요.”진짜 할 말이 없었다.“화장실은 어디 있어요?”육현경이 물었다.“방에 있어요.”혼자 살기 때문에 공용 화장실을 거실과 연결해 투명한 서재로 만들었다.육현경이 방에 들어갔다.침대에서 곤히 잠든 육민을 보고 화장실에 들어갔다.소이연이 돌아서려던 순간,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육현경이 문을 닫자마자 화장실에 버럭 뛰어들었다.육현경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이연 씨, 이게 지금…”소이연은 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방금 샤워를 마치고 갈아입은 옷과 속옷들을 치우지 않았던 것이다.한 손에 옷을 움켜쥐고 다급하게 몸 뒤에 숨겼다.육현경이 보고 피식 웃었다.소이연이 옷을 갖고 바로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이현 씨.”육현경이 뒤에서 불렀다.소이연이 고개를 돌린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육이현이 글쎄 브라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그것도 가느다란 손가락에 걸고 높이 쳐들었다.방금 실수로 바닥에 떨어트린 걸 주은 거야?어떤 물건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모르나?이건 실례라고!소이연이 홱하고 빼앗아 도망치 듯 나왔다.귀까지 빨개졌다.…육현경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소이연은 소파에 앉아 이미 진정한 뒤였다.다 큰 성인들끼리 부끄러워할 것 없어.소이연이 육현경을 보내려고 일어서는데 그가 손에 드라이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소이연은 의아했다.육현경이 소이연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콘센트를 찾아 드라이기를 꽂으며 말했다.“머리 말려 줄게요.”“…”“민이 잘 챙겨주고 저녁까지 차려줘서 고마워요.”“드레스는 이미 선을 넘었어요.”소이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매장에서 환불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육현경이 말을 이었다.“당신이 다른 사람이 사주는 드레스를 입는 게 싫지만 훌륭한 사업가라면 최대의 잉여 가치를 거절하면 안 되거든요.”소이연은 이 남자가 이토록 예의 바르게 제 욕심을 차리는 것에 감탄했다.육현경은 더는 말하지 않고
그동안 알고 지내면서 육현경은 이름 외에 자신의 가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맞습니다.”육현경이 대답하더니 이내 물었다.“언제 알았어요?”“방금.”소이연이 대답했다.“어렵지 않았어요. 성이 육 씨이고 홀아비에 씀씀이도 적지 않았으니까.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은 건…”육현경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소문보다 훨씬 잘 생겼어요.”“고마워요, 칭찬으로 받아 줄게요.”“…”소이연은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숨길 생각은 없었어요.”육현경이 직언했다.솔직히 소이연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 아직 물건을 사서 주고받는 사이까진 아니었으니까.오늘 물어본 것도 마침 17일이 육 어르신 칠순 잔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니 시간을 내라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시킬지 그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누가 나를 소방관이라고 하길래 내가 설명하면 거짓말한다고 할 것 같아서요. 17일에 정식으로 소개를 하려고 했어요.”육현경이 아무렇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살짝 비꼬는 느낌도 있었다.소이연은 누굴 비꼬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 사람은 항상 눈썰미가 안 좋았어요.”육현경이 피식 웃었다.문서인에 대한 평가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늦었어요. 일찍 쉬고 민이 잘 부탁할게요.”“조심히 가세요.”육현경을 보내고 그제야 소이연이 침대로 돌아왔다.살면서 처음으로 침대에 다른 누군가를 들였다.이런 느낌은 너무 묘해서 전혀 싫지 않았다.희미한 불빛에 육민이 쌔근거리면서 자는 모습이 보였다.마음이 왠지 모르게 따뜻해졌다.이튿날 아침.소이연이 간단하게 아침을 차렸다.토스트, 계란과 우유.육민은 소이연이 무엇을 만들든, 계란후라이를 태워도 연속 맛있다고 칭찬했다.칭찬 소리에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둘이서 아침을 다 먹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소이연이 문을 열자 문씨 아저씨가 공손히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이연 아가씨. 우리 집 큰도련님께서 고객을 만나야 돼서 제가 작은 도련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
맛이 아주 좋았다. 송승우는 하지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송승우와 송문수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수는 두 사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어요.” “다 먹을 수 있어?”송승우가 물었다. “다 못 먹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득 찬 작은 만두 한 바구니에서 그녀는 많아야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괜찮으면 하나만 줘. 나도 아침을 안 먹었거든.”송승우가 말했다. “오빠 아침 안 먹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먹을 수도 있었잖아요.”하지수는 놀라서 물었다. “열고 나면 김이 빠져서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리고 나도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하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만두를 집어 송승우의 입술에 내밀었다. 만두가 작아서 송승우는 한 입에 물었다. 송승우의 입술이 하지수의 손가락에 닿았다. 하지수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녀는 만두를 옆의 팔걸이에 놓았다.“편할 때 다시 먹어요.” 송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는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의 접촉이 지수도 부끄러워하겠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에는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없지만 유적지가 많았다. 송승우는 첫 번째로 하지수를 성벽으로 데려갔다. 하지수는 체력이 괜찮았다. 송승우과 함께 오랫동안 걸었다. 송승우는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고대 인들이 남긴 지혜를 감상하며 하지수는 송승우의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도 인증샷 찍자.”송승우가 말했다. “네?” 송승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전환했다. “지수야, 조금 더 들어와야 찍혀.” 하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송승우의 카메라에 나왔다. 하지만 거리를 두기로 했다. “웃어봐.”송승우가 말했다. “웃으면 안 예뻐요.”하지수가 거부했다. “말도 안 돼 너 웃으면 제일 예뻐.”송승우는
“가식 떨지 마!”송문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송문수를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호의로 말했다.“빨리 나가. 내 잠 방해하지 마!”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려 나갔다. 그녀는 원래 호텔 고객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준비해 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송문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하지수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수가 나가자 송문수는 화난 기색으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수에게 깨어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고 송승우가 전화한 것임을 눈치챘다. 어젯밤 송승우가 전화를 걸어 오늘 하지수와 함께 서울을 구경하자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거절했다. 그는 하도경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사실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송승우는 송문수가 안 가면 자기가 하지수와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송문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승우는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만 말한 것 같고 하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 체면을 세워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체면을 참 중시하는구나!송문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침대로 갔다. 하지수는 어떻게 사귀던 연인과 비밀 데이트를 할 수 있는데 자기는 소파에서 자야만 하는 것인가. 송문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 위에 하지수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송문수는 더욱 짜증이 났다. 원래 그는 하지수가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하지수가 최근 보여준 호의에 변화를 기대하고 착각한 것이었다.어쩌면 진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결국 송문수는 스스로를 모욕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송승우를 좋아했으니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하지수는 급히 호텔 출입구로 나갔다.그녀는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송문수가 욕실에서 나왔다. 송문수의 몸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수는 살짝 긴장했다.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누운 적은 단 한 번이었다. 그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그 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접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이불 속에 누운 하지수는 몸이 경직되어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그 향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송문수가 침대에 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방의 조명이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지수는 몰래 눈을 뜨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그때 송문수가 방금 자신이 누워 있던 의자에 몸을 눕히는 모습을 보았다. 송문수는 애초에 하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래서 하지수를 침대에 옮긴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그가 자고 싶었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답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 같았다.송문수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를 소파에서 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지수의 마음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방금 생긴 작은 기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오해했을 뿐이었다. 그날 밤 하지수는 불안한 잠을 잤다.사실 송문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송문수에게는 큰 키와 체격 때문에 소파가 고역이었다.그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두려웠고,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게다가 다리를 펼 수도 없어 쭈그려 웅크리고 자야 해서 매우 불편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지수가 큰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송문수의 긴장감이 커졌다. 하도경 말이 맞아, 그렇게 많은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정말 달라졌네! 다음 날. 하지수는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서둘러 음소거를 해제한 뒤 송승우의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송문수 역시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자마자 전화 소리에 깨
하지수는 송승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지나갔으면 지나가야지.”하지수는 그와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송승우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하지수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사실 조금 피곤했지만 침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송문수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하지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여자는 도대체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지?오후에도 소파에서 두 개의 담요조차 덮지 않고 자고 있었고, 지금도 핸드폰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핸드폰이 이불이 되냐?송문수는 짜증이 났다. 그는 큰 몸을 움직여 하지수를 안았다.하지수는 주위의 움직임을 느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하게 몸을 비틀었다.송문수는 순간 가슴이 멈췄다.그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하지수가 곧 깨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왜 그녀를 안았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그랬나?이때야 하지수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수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송문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다음 순간, 하지수가 그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은 뒤 다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요한 모습으로 자는 것을 보고 송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혼잣말이 흘렀다. 뭐야, 대변호사라면서 경계심이 높다고?잠들어서 팔려 가고도 모르겠지. 송문수는 하지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그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불안한 마음으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럴 수가!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는데...하지수에게는 단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송문수는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떠나자 하지수는 눈을 뜨고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방금 깨어났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송승우는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떠났다.당시 송씨 가문 사람들은 매우 다급해졌다. 결혼식 준비는 모두 끝났는데 신랑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송씨 가문의 체면이 손상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송씨 가문은 급하게 송문수가 하지수와 결혼하도록 결정했다. 송씨 가문에서는 물론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그러나 하지수는 본래 기댈 곳이 없는 처지였기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고 송문수가 자신을 결혼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결국 승낙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송문수 역시 승낙한 것이었다. 하지수는 송씨 가문 부모가 어떤 방법을 써서 송문수에게 강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매우 급작스럽고 어설픈 결혼이었지만 사회 상류층에서는 이 일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결혼 후 첫날 밤, 그녀는 송문수를 거절했다. 그녀는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이 어수선했어도 첫 번째 밤만큼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송문수와의 결혼을 받아들였지만 감정을 천천히 키워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송문수는 결혼 후 더욱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며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외도하곤 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하지수는 매일 그가 일으킨 문제들을 수습할 뿐 감정적으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승우가 한 번 돌아왔다. 그제야 하지수는 알게 되었다. 송승우가 떠날 당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긴급한 기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어서였고 송씨 가문 사람들조차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송씨 가문은 한때 그가 납치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한 달 뒤에서야 송승우가 가족에게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1년 후, 연구가 끝난 뒤에야 그는 가족들에게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는 하지수가 이미 송문수와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후였고 모
“너도 같이 갈래?”하도경이 송문수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그를 무시하고 오고 가는 손님들과 잔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도경은 어이없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 잘 굴리네.얼마나 더 연기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하지수는 방에 돌아와 씻고 화장을 지운 후 호텔에서 준비한 편안한 가운으로 갈아입고 호텔의 고급스러운 침대에 누웠다. 분명히 피곤한데도 정작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밤 송문수는 어디서 머물게 될지 궁금했다. 호텔에 체크인할 때 숙박 정보를 확인해 보니 그들의 이름이 함께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니 같은 방에 머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언제쯤 돌아올까? 하지수의 마음에는 잔잔한 떨림이 일었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신 후, 호텔의 통유리창 앞 의자에 앉아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나라의 중심 도시답게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눈부셨다. 하지수는 이 야경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이 울렸다. 그녀는 화면을 확인하며 잠시 멈췄다. 놀랍게도 송승우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수야, 서울에 있단 소식 들었어.” “네. 이연 언니가 결혼해서 서울에 왔어요.” “언제 돌아가?”“아마 내일쯤 돌아갈 것 같아요. 오늘은 너무 늦었고 이연이랑 육현경은 자기들만 신혼여행 떠나고 우리한테 잔치 뒷정리를 맡기고 갔어요.”하지수는 송승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송승우는 웃는 이모티콘을 몇 개 보냈다.“나도 뉴스 봤어. 참 신기하더라.”“그나저나 내일 돌아가기 전에 내가 내일 시간이 좀 나니? 여기까지 온 김에 서울 구경할래? ” 송승우는 현재 서울에 발령받아 일하고 있고 1년이 넘게 여기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장안시에서 근무했지만 탁월한 능력 덕분에 본부로 전근되어 지금은 연구소에서 핵심 연구원으로 활약 중이다. 송씨 가문의 부모님은 항상 송승우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국가에 공헌하는 사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