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현경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예수진은 그대로 자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필경 새벽 4시라 그녀도 졸려서 눈이 막 내려올 지경이었다.그때 육현경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자.”그냥 인사치레로 건넨 말인데.이 순간 따뜻한 이불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더 강렬했지만 어쩔 수 없이 육현경을 따라 야식을 먹으러 나갔다.길가에 있는 포장마차에 자리 잡고 앉았다.다행히 한밤중이라 인적이 드물고 완벽하게 무장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오빠. 적게 마시면 안 돼?”예수진이 말렸다.자리에 앉자마자 필사적으로 술을 들이부어서 도저히 봐줄 수 없었다.눈앞에 이렇게 많은 안주를 두고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이렇게 마시면 입 돌아간다고요.육현경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계속 마셨다.“이연 언니랑 싸웠어?”예수진은 어쩔 수 없이 이유를 캐물었다.그가 술잔을 들고 잠시 멈칫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이연은 나와 싸우지 않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처리하지.화라도 내면 적어도 내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겠는데 말이야.“오빠, 이연 언니와 심아윤. 세 사람 대체 무슨 상황이야?”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자 예수진의 급한 성격이 발동했다.며칠 전에 육현경이 할아버지한테 감시당해서 자세한 상황을 알아내지 못했다.지금 딱 말하기 좋은 시간인데 그가 또 침묵 모드로 들어갔다.“나 심아윤과 결혼하지 않아.”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근데 지금 온 국민이 두 사람이 결혼하는 줄 알고 있잖아.”예수진의 말투가 거칠어졌다.“육 씨와 심 씨가 공개적으로 결혼을 발표했는데 그 인간들 멍청한 것도 아니고 자기 얼굴에 침을 뱉겠냐고!”육현경이 입술을 깨물었다.확실히 어려웠다.그날 모두 앞에서 결혼을 발표할 때 솔직히 그도 한동안 멍해 있었다.그동안 항상 할아버지를 존중했었는데 이렇게 선처리 후보고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심아윤과 결혼하기 싫다
육현경이 술잔을 움켜쥐었다.“솔직히 말해서 오빠는 내 사촌이지만 이번 일만큼은 이연 언니가 오빠한테 목맬 가치가 없다고 봐. 그런 과거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 아주 어렵게 자신감을 갖고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난 상상 못 하겠어. 나중에라도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야.”예수진은 너무 괴로웠다.그렇게 좋은 여자인데 팔자가 왜 이렇게 사나워.한 번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하고 끝이 없어!“이연이…”육현경이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이대로 떠나버릴까 봐 두려워.”그녀가 살아온 지난날을 잘 알아서 두렵고, 자신의 마음을 꼭 닫아버리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까 봐, 이대로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그에게 시간이 필요했다.결혼하기 싫어도 육 씨 가문의 안위를 무시하고 심 씨 가문과 얼굴을 붉힐 수 없었다.그리고 친척들과 할아버지와의 혈연 관계도 끊어낼 수 없는 노릇이다.심지어 이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소이연에게 상처를 주는 건 똑같았다.그가 명성, 재산, 권력을 포기한다면 강력한 세력들 앞에서 소이연을 보호할 수 없다.결혼을 무르려면 전략적인 과정이 필요하다.하지만 목적에 도달하기 전에 소이연이 멀리 떠나버릴까 봐 걱정이다.그때면 다시는 소이연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소이연은 한번 마음을 접은 일에는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문서인에게도 그랬다.오늘 저녁에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봤지만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옛정이 되살아나서 만난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그녀의 성격은 그토록 강인해서 절대 돌아서는 법을 모른다.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기다려 달라고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예수진은 그의 말을 듣고 또 안쓰러웠다.내심이 강한 육현경이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마음은 오죽할까?얼마나 좋아하면 잃어버릴까 봐 이토록 노심초사할까?또 얼마나 좋아하면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을 내려놓을까?예수진은 두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
예수진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맥주병을 보면서 물었다.“오빠, 더 마실 거야?”오빠의 주량이 좋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마셨으니 취할 만도 하지.나도 지금 머리가 어지러운데…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런가? 아무튼 더 마시면 엄청 취할 것 같아.“기다리고 있어.”육현경이 입을 열었다.“누구를?”“기사.”예수진은 그제야 모두 술을 마신 상태라는 것이 생각났다.그리고 소이연의 차를 운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역시 우리 오빠는 취해도 제정신이라니깐.오빠의 이런 면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이성적인 사람은 보통 잘못을 쉽게 저지르진 않아.하지만 이런 사람한테는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잘 쉬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예수진은 어쩔 수 없이 육현경과 함께 술을 마셨다.마시고 있는데 육현경이 갑자기 물었다.“너 아직도 계지원 좋아해?”예수진은 넘기려던 술을 그대로 뿜어버렸다.육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쳐다보았다.“쯧쯧.”그녀는 재빨리 티슈를 뽑아 식탁에 묻은 술을 닦고는 자신의 입도 닦았다. 그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했다.“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내가 미쳤다고 인정하겠어?육현경은 예수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그녀는 그의 눈빛에 머리가 욱신거렸다.아, 다시 생각해 보니 눈치 빠른 오빠가 내 속내를 모를 리 없잖아?내가 단순한 토끼라면 오빠는 늙은 여우니까.“이제는 안 좋아해.”예수진은 부인했다.하지만 좋아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앞으로도 그래야 할 거야.”육현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응?”이 오빠 정말 내 친오빠가 맞아?오빠가 실연했을 때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술도 같이 마셔주고 위로도 해주고 여자친구를 대신 달래주고!그런데 오빠는?내 기분이 어떻든 상관도 안 하고 뭐? 앞으로도 그래야 할 거라고?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그 사람한테 절절 매는 줄 알겠다!그래. 사실 그렇긴 하지.그런데 좀 위로해 주면 죽냐?나처럼 멘탈이 강한 사람이어야 8년 동안 짝사랑이나
계지원은 그녀를 놓아준 뒤 더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육현경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혼자 걸을 수 있겠어?”그는 육현경이 많이 마셨다는 것을 눈치챘다.“응.”“가자.”계지원의 말에 육현경은 몸을 일으켰지만 취기 때문에 비틀거렸다.계지원은 결국 그를 부축해서 조수석에 앉혔다.예수진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서 같이 차에 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현경이 말로는 이 차가 소이연 씨 차라던데. 차를 돌려줄 겸 너도 데려다줄게. 타.”계지원의 말에 예수진은 뒷좌석에 올라탔다.차는 도로에서 안정적으로 달렸다.길에 차가 거의 없었지만 계지원은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운전했다.그는 한결같이 부드럽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얹혀살아서 그런가? 난 이 사람이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그 성격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반했을지도…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계지원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어.내 주위에 널린 게 잘생기고 훌륭하고 돈 많은 남자인데 말이야.아, 이건 하늘이 나에게 내린 벌일 거야!피할 수 없는 그런…차가 갑자기 길가에 멈춰 섰다.예수진은 인상을 찌푸렸다.“뭐 하시는 거죠?”“현경이가 연고 좀 사달라고 해서. 조금만 기다려줘.”계지원의 대답에 예수진은 의아했다.누가 다쳤기에 연고를 사? 오빠는 안 다쳤는데.아, 참. 내 손등이 좀 부은 것 같은데…그녀는 어두운 가로등 불빛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계지원은 연고를 사 왔고 육현경을 사우스 타운에 데려다주었다.“잠깐만 기다려. 나 현경이 데려다주고 올게.”“네.”예수진은 너무 졸려서 하품만 하고 있었다.계지원이 육현경을 데려다주고 차에 다시 탔을 때, 예수진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피곤했는지 가벼운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계지원은 그녀가 깰까 봐 더 천천히 운전했고 안정된 속도를 유지했다.소이연의 차고에 도착한 그는 주차를 마친 뒤 뒷좌석 문을 열었다.예수진은 뒷좌석에 뻗어 있었고 살짝 벌어진 입 옆으로 침이 흘렀다.정말 잘 자네.계지원의
계지원은 입을 열었다.“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수진이가 잠드는 바람에…”“아, 괜찮아요. 원래…”소이연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먼저 수진 씨를 침대에 눕히죠.”계지원은 더 묻지 않고 예수진을 소이연의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예수진은 잠에 들어서부터 지금까지 미동도 없었다.그녀를 내려놓은 계지원은 소이연의 방에서 나왔다.소이연은 그를 배웅해 주려고 따라나갔는데 객실에 나온 계지원은 그녀한테 아까 사놓은 연고를 건네주었다.소이연이 멈칫하자 계지원은 설명해 주었다.“현경이가 전해달래요.”소이연은 입술을 깨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저녁에 장지원한테 감금당하는 바람에 목에 아주 큰 멍이 들었다.나는 그가 못 본 줄 알았는데…“고마워요.”소이연은 연고를 건네받았다.그녀는 계지원을 난처하게 만들기 싫었고 작은 일에 연연하기 싫었던 것이다.계지원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갔다.소이연 씨가 이토록 침착한 걸 보면 정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난 현경이가 다시 소이연 씨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장담 못 하겠어.“아, 참.”계지원은 말을 이었다.“그 안에 숙취에 도움 되는 약도 있어요. 내일 아침 수진이가 숙취 심하면 그 약 한 알 주면 돼요. 부탁할게요.”“알겠어요.”소이연은 대답하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계 감독님, 만약 수진 씨를 행복하게 할 자신이 없다면 선은 지켜주세요.”계지원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겠죠.”소이연은 솔직하게 말했다.“네.”계지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소이연의 말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그는 예의 있게 인사를 했다.“실례했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아닙니다.”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저 몇 번 마주친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예수진과 얽힌 관계라서 그런 것 같았다.아니, 육현경과 얽힌 사람이라 그런가?계지원은 집을 나섰고 소이연은 방으로 돌아왔다.예
예수진은 전화기 너머로도 소이연이 얼마나 바쁜지 알 수 있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언니는 바삐 돌아야만 안 좋은 일을 잊어버릴 수 있나 봐.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작은 배역으로부터 시작해서 늘 앞으로 달리기만 했어.소이연은 휴대폰을 놓고 회의실로 향했다.오전에는 경쟁입찰에 대해 토론을 하고 오후에는 새로운 브랜드 창립에 대해 연구해야 했다.한 기업이 계속해서 발전하려면 부단히 개발해야 한다.회의가 끝날 때는 이미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소이연은 계속해서 수십 개 지어는 수백 개의 OA 지시 요청을 검토했다.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소이연은 한눈 보고는 끊었지만 얼마 안 지나 전화벨이 또 울렸다.모르는 번호였기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받았다.“여보세요.”“안녕하세요. 저는 남원 경찰서 민경인데요. 어제 장지원 씨와 문서인 씨 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소이연 씨께서 직접 오셔서 또 한 번 조사서를 작성하셔야 할 것 같아요.”“네. 지금요?”소이연은 재빨리 대답했다.“지금 오시면 더 좋고요.”“바로 갈게요.”소이연은 하던 일을 뒤로 미루고 사무실을 나섰다.장문기는 그녀가 퇴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놀라워했다.“회장님.”“나 컴퓨터 안 껐어. 안에 OA 지시 요청 있는데 그것 좀 검토해 줘. 모르는 것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고.”“알겠습니다.”장문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소이연은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그녀의 운전 실력이 좋지도 않거니와 어젯밤에 제대로 자지도 못했기에 피로 운전을 할 수도 있어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한 것이다.경찰서에 도착한 그녀는 문서인을 발견했다.문서인이 그녀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하기 싫어서 받지도 않았던 것이다.그녀는 업무를 처리하느라고 어젯밤 장지원에 관한 일을 잊어버렸다.“소이연 씨, 문서인 씨. 저를 따라 사무실로 가시죠. 관건적인 디테일에 대해 다시 확인해 주셔야 해요.”민경은 두 사람한테 말했다.“네.”소이연은 조사에 임하
소이연은 이렇게 쓰러질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어젯밤에 거의 자지 못하고 오늘 업무량도 많았지만 그녀는 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문서인 앞에서 그녀는 쓰러졌다.쓰러진 찰나,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예수진은 집에서 소이연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그녀는 오늘 모든 스케줄을 미루고 장안시에서 제일 유명한 셰프한테 영양식을 예약했다. 소이연이 요즘 살도 많이 빠지고 팔목도 가늘다 못해 건드리면 부러질까 봐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연 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이연 언니는 분명 나보다 강하고 우수하고 예쁘고 어른스럽지만 꽤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이야…아름답고 강하지만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그녀는 저녁 7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아니, 이 언니는 어젯밤에 자지도 못하고 오늘 하루 종일 일했으면 됐지.또 새벽까지 야근하겠다는 거야, 뭐야?언니는 본인이 아이언맨인 줄 아나 봐.예수진은 씩씩거리면서 소이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전화기는 꺼져…”언니 전화가 꺼졌다고? 그럴 리 없어.이연 언니는 늘 24시간 전화를 켜두고 다녔어. 배터리가 다 나가서 전화가 꺼질 리도 없고.언니는 누구보다도 세심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이니까.예수진은 원래 급한 성격이라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이연의 차 키를 들고나갔고 곧장 은하 그룹으로 향했다.도착한 그녀는 소이연 사무실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그 바람에 장문기는 깜짝 놀랐다.그는 소이연을 대신해 OA 지시 요청을 검토하고 있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그녀에게 문자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이번에는 전화를 걸려 했는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던 것이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본 그는 더더욱 놀랐다.이… 이 분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연예인 예수진 씨잖아!실물을 영접한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가깝다니!나 환각이 생긴 건가?이때 그는 예수진이 급히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육 씨 그룹 대표 사무실.육현경은 전화를 끊은 뒤 다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지원아, 문서아한테 문서인 집에 있는지 물어봐 줘.”“무슨 일 있어?”“물어보고 문자 줘. 있는지 없는지만 알면 돼.”그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었고 다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장안시에 모든 감시 카메라를 돌려서 소이연이 퇴근 후에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그리고 장안시 안에서 소이연을 찾아내! 그리고 소이연에 관한 소식이 있으면 곧바로 나한테 전화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마.”“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전화 한편에서 공손하게 대답했다.전화를 끊으려던 육현경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싶었다.“소이연 휴대폰 마지막 통화기록이 누구인지도 알아봐.”“네.”그는 전화를 끊었고 마침 계지원한테서 문자가 와있었다.“문서인 씨 집에 안 계신대.”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문서인, 제 무덤을 파다니…지난번에 그가 문 씨 그룹을 인수하지 않은 것은 계지원을 위해서였다.문서아와 계지원이 사귀고 있으니 그는 계지원의 체면을 지켜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은…육현경의 낯빛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다.이명진은 곁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지도 못했다.하지만 육현경의 모습을 본 그는 큰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했다.대표님한테 큰일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사모님에 관한 일이겠지.이명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하고 완벽하신 대표님은 왜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실까.깨어난 소이연은 머리가 어지러웠다.저혈당으로 인해서 쓰러진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그제야 온 하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단 사실을 알아차렸다.너무 피곤하면 입맛도 없다.“깼어?”귓가에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이연은 고개를 돌렸고 문서인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위험 앞에서 본능적으로 긴장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아무리 아닌 척해도 숨길 수 없었다.그녀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침대에 묶
“좋아.”송문수가 대답했다. 그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한 대를 향해 걸어갔다. 헬멧을 쓰고 차에 탑승했다. 하지수는 송문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뒤에서 하도경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문수는 운전 실력이 뛰어나. 그의 차는 여러 번 개조된 슈퍼카라서 안전해. 게다가 그의 레이싱 친구가 장안시에서 특별히 가져온 거라 절대 사고 나지 않을 거야.”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하도경 옆에 서 있었다. 세 팀으로 나뉜 자동차들이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했다.온 산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수는 내내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녀는 놀라 죽을 것 같았다. 오히려 하도경은 매우 신나 보였다. 그는 주변의 응원단과 함께 소리쳤다. “문수 왔어!”하도경이 흥분하며 말했다.“1등으로 달리고 있어!” 하지수는 그의 자동차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훨!”송문수는 그녀 앞을 스쳐 지나갔다.아직 두 바퀴가 남았다. 하지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었다. “문수는 레이싱에서 거의 지지 않아. 타고난 실력이 있거든.”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말했다.“사실, 문수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단순히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 아니야. 진지하게 임하는 일은 뭐든 잘 해내지.” 하지수는 하도경을 바라보았다. 하도경이 송문수에 대해 이렇게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송문수라는 사람의 능력을 떠나 육현경과 계지원의 비교로 보면 송문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도경은 친구로서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야. 문수를 잘 이해하면 그가 가진 많은 면을 알게 될 거야. 그런 모습은 너를 놀라게 할 거야.”하도경은 하지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반복했다. 하지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경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그녀는 하지수의 체면을 세워주지
하지수는 그들이 사치스러운 고급 클럽에 가라 생각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산 정상에 와 있었다. 서울 시내와는 꽤 먼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야?”하지수는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렇게 외지고 조용한 곳이라면 송문수가 그녀를 처리할 생각인지 의심이 들었다.“클라이맥스 레이싱해 본 적 있어?”하도경이 하지수에게 답했다. “레이싱?” “몰랐지? 문수는 슈퍼 레이서야.” “...”그녀는 전혀 몰랐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그저 그가 놀이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을 뿐, 레이싱이 취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게다가 매우 위험하다. 하지수의 표정이 확실히 변화했다. 하도경은 그런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못한 듯 말했다.“오늘 문수가 몇몇 레이서들을 초대했어. 곧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차를 운전할 때 정말 멋져.” 하지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송문수가 이미 차에서 내린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주변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하지수는 급히 차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질주해 왔다. 하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두려워졌다. 차가 멈추고 많은 남녀가 내렸다.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문신을 하고 있었다.보기에는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문수.”한 남자가 다가왔다. 드레드락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갑자기 드리프트 하러 오다니?” 송문수는 원래 서울에서 레이싱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감정을 발산하고 싶어서였다. 어젯밤 송승우의 전화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서 오늘 오후와 저녁에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그는 레이싱 그룹에 메시지를 남겼고 놀랍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하루 만에 모였다. 일정도 이미 잡혔고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지수가 그의 생활권에 참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참여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하지수는 착한 소녀여서 어릴 적부터
하지수는 송문수와 하도경을 따라 나갔다. 차는 천씨 가문의 차량으로, 운전사는 천씨 가문 소속이었다. 하도경은 조수석에, 송문수와 하지수는 뒷좌석에 앉았다.송문수와 하도경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대화의 대부분은 그들 간의 이야기였다. 하지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받았다.“승우 오빠.”하도경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문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하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송문수는 금세 원래의 태도로 돌아와 하도경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문수랑 함께 있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문수랑 함께 있다고? 어디야?”송승우는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물론 호텔 앞에는 없었지만, 하지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그는 오늘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분명히 말했다.송문수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를 고려할 때, 송문수는 하지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하지수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지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지수가 어릴 때부터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하지수에게 잘 위로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송문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완전히 다른 답이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구경하러 나갔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둘이 나가서 놀고 있다고?”송승우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송문수와 하도경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어요.” “너... 개의하지 않냐?”송승우가 물었다. “뭘 개의치는데요?”하지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은, 너와 송문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함께 놀
“오해라고?”송문수는 무관심한 듯 말했다. “오해야.”하지수는 확신하며 말했다.“승우 오빠가 사진을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안 올린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나? 너희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 그건 웃기는 일이다. “아니야.”하지수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송문수가 이렇게 말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성적도 좋지 않고 평소엔 느긋하게 지내던 그가 지금은 그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내 말은, 그저 관광객으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가 올리면서 상황이 애매해진 거야. 그래서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어.”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그래서 돌아온 거야.” 송문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하지수가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결국 돌아와서 내가 본 건 이런 장면이라니!”하지수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속상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걸까? 부부로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속상한 건지, 아니면 그에게 진짜 호감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송승우가 돌아왔고 송승우가 하지수를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송승우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입술을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 “네가 정말로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송문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어때?”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송문수는 사실 출소 이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수는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
송문수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하지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정말 자각이 없는 걸까?하지수는 송문수의 붉어진 얼굴과 귀를 바라보며 찡그렸다. 이건 착각일까? 송문수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보이다니?그녀가 잘못 본 걸까? 하지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송문수의 뺨을 만졌다. 송문수는 순간 얼어붙었다.하지수가 말했다.“정말 뜨거워.” “너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재빨리 몸을 떼었다. 하지수는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단지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감정은 천천히 쌓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네가 얼굴이 붉어졌다고 생각해.”하지수가 말했다. “내가 붉어졌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야?”송문수는 부인했다.“이건 화가 난 거야 알겠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뭘 그렇게 화내?”하지수가 물었다. “내 사람을 쫓아냈으니 내가 뭐로 화내지 않겠냐?” “내가 보완할 수 있어.” “하지수, 너 조금 자제할 수 없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이렇게 무례하게.” 송문수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내가 내 남편한테... 그게 무례한 거야?”하지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도 붉어지고 귀와 목도 빨갛게 변했다. 마치 익은 게살 같았다. 송문수의 아담한 목이 움직였다. 그 깊은 욕망이 그를 자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하지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아직도 안 입고 있니?” 하지수는 붉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녀는 송문수를 흔들지 못했다.비록 그녀가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이 많았다. “정말 성가셔.”송문수는 하지수가 오랫동안 아무 행동을 하지 않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늘 그 여자도 그냥 형식적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도덕적으로 강요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지수의 관계를 깔끔하게 끊고 싶어 했다. “한번 해보면 어때?”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보지 않을 거야.”송문수는 단칼에 거절했다.“하지수, 너...” 송문수는 정말 화가 나버릴 지경이었다. 하지수가 몰래 연습했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알겠어?” “필요 없어.” “송문수, 그렇게 싫어해?”하지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이제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울지 마.”송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수가 언제 이렇게 잘 울었어?크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후 하지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성숙하고 침착해져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송문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송승우에게만 보여줬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하지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하지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 큰 거래를 성사했고 가격이 맨몸으로 뛰어다니게 할 만큼 좋았다. 여자는 올 때 모든 매력을 한껏 발산하려 했고, 돈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고 나니 뭔가 대박을 터뜨린 기분이었다.잘생길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큰 만족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둘은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는데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장면이 벌어졌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