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진은 그의 뒤를 따랐고 둘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예수진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 유리 앞의 진지한 얼굴의 계지원을 보고 주춤했다. 그들은 분명히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아직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예수진은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지금 너무 배가 고팠다. 온 오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연이와 놀았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많이 먹어도 괜찮겠지? "돌아왔어?" 가연이 열정적으로 물었다. "아이구, 하연이는 잠에 들었네."가연은 계지원에게서 하연을 건네받았다."오늘 하루 노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자게 해요." 계집원이 말했다. 가연은 항상 하연을 아꼈다. 그런 하연이 지금 잠에 들었으니 깨우기도 아까워 하연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밥은 이미 다 해놨어. 손 씻고 와서 먹어." 예수진은 헐레벌떡 식탁 앞으로 달려갔다. 예수진이 연예계에 진출한 뒤 가연은 항상 그녀를 위해 다이어트식을 준비했다. 예수진의 것만 빼고 다른 건 모두 평범한 메뉴였다. 오늘 예수진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먹기로 했다. 맛있어 보이는 갈비찜을 보고 그녀는 군침이 돌았다. 가윤이 식탁으로 돌아오자 예수진이 갈비찜을 집어 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매번 그녀를 위해 다이어트식을 준비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예수진이 정상적으로 밥을 먹었으면 하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 말이다. "배고파?"가연이 물었다. "배고파 죽겠어. 놀이동산에는 맛있는 게 없어." 예수진은 갈비찜을 뜯으며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말을 뱉었다. "오늘 빨리 저녁 먹네." 시간은 아직 5시밖에 되지 않았다. "지원이 미리 나한테 문자를 줬어." 가연이 설명에 예수진은 고개를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여유롭게 천천히 반찬을 집어 들었다. "나도 배가 너무 고팠어요." 계지원이 대답했다. 예수진도 그가 그녀를 위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하연을 위해 했을지도 모른다.
"하루 많이 먹는다고 해서 살찌지 않아요." 계집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니요. 내일 일어나면 분명히 2키로가 쪄 있을 거예요. 만약 그 살이 다 내 얼굴에 붙는다면, 혹은 내 허리에 붙는다면..." 예수진은 내일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원 씨, 아까 내가 많이 먹는 거 보면서 왜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말라면서요." 진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다. 예수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분명히 체중계에 올라갔을 것이다. 이윽고 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실 얼마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원아, 많이 먹어." 가연이 계지원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 그녀는 예수진이 체중에 대한 집념에 이미 습관되었다. "그래요." 계지원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녁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연은 잠에서 깨었다. 계지원은 잠에서 깬 하연과 놀아 주었고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 하연이는 밥을 먹은 뒤 계지원과 함께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산책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그들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시간이 되자 하연은 가연과 함께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샤워를 마친 뒤 계지원은 하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오후에 너무 피곤했기에 하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잠에 들어 버렸다. 계지원이 하연이 방에서 나온 시각은 밤 10시였다. 그는 그대로 자신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예수진은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 계지원은 갑자기 아침에 예수진을 도와 함께 짐을 싸기로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짐 다 쌌어요? 내가 도와줄까요?"계원이 물었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둘은 그렇게 어색한 대화를 한참이나 나누었다.원래 연애하는 사이는 편한 관계가 아닌가? 지금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간 것만 같았다. "샤워하러 갈게요." "그래요." 그가 샤워하러 들어간 뒤 예수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까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그는 정말 조금의 유혹도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궁금했다. 전에 육씨 가문에 있었을 때 예수진이 그렇게 그를 유혹했는데 그는 어떻게 참았단 말인가.지금은 그는 조금만 다쳐도 금방 달아올랐다. 예수진이 손으로 더듬거리자 계지원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빨리 자요. 내일 한참 차로 이동해야 돼요.” “내일 가면 우리 이거... 못해요.” 밤에 카메라가 없어도 녹화를 하는 중이었기에 아무렇게나 할 수 없었다. “수진씨...” 계지원이 입을 열었다. “지원 씨, 내가 싫어요?” 예수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녀의 말에 계지원은 멍해졌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역시 이 남자는 뒤끝이 너무 길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연구해야죠.”예수진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얼굴은 빨개졌다. 계지원의 심장 박동 소리도 빨라졌다. 사실 오늘 그는 정말 실망했다. 예수진이 예전에 그의 테크닉이 좋지 않다고 한 건 인정한다. 그가 다른 여자와 경험도 없었고 첫 경험에 이성을 잃었었다. 하지만 오늘 예수진이 그의 다리 얘기를 한 건 그는 견딜 수 없었다.계지원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외출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눈길에도 개의치 않았다.하지만 예수진의 한마디 말에 그는 마음이 아팠다. 예수진을 탓하는 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단지 완벽한 몸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진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계지원은 몸을 움찔거렸다. 예수진이 이미 그의 몸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약한 불빛 아래서 예수진의 몸은 몽환적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계지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예수진이 그의 테크닉이 좋지 않다고 했기에 그는 일부러 참고 있었다. 사실 매일 밤 그는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이니 그는 밀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수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귓가에 뜨
“몇 시예요?” 예수진이 피곤한 듯 물었다. ‘오늘 녹화를 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 일러요. 피곤하면 조금 더 자요.” “늦지 않겠어요?” 예수진이 물었다. 그녀는 사실 침대에서 좀 더 자고 싶었다. “괜찮아요.” “그럼 조금 더 잘게요.” 예수진은 몸을 뒤척였다. 몸을 움직일 때도 조금 힘들었다. 다시 그에게 장난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건드리면 반응이 너무 컸다. 예수진은 계지원에게 등을 대고 누웠지만 그에게 백허그를 당했다. “걱정 말고 자요. 내가 참을 테니까.” 믿기지 않았지만 예수진은 결국 잠에 들어 버렸다.그렇게 잠을 자고 예수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등 뒤의 계지원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녀가 잠에 들었을 때 누군가가 누르는 것 같더라니, 다 그의 탓인 것이다. “깼어요?”계지원이 물었다. 그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기운이 넘쳤다. 정말 힘들지 않은 것인가.그는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다리가 불편해서 그녀가 움직였으니까... 예수진은 다시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 몇 시예요?” “오후 2시요.” “네?” 예수진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튕겨져 올랐다. “그럼 지각한 거 아니에요?”“내가 제작진한테 미리 말해놨어요.” “그럼 안 되죠? 지금 권력 남용하는 건가요? 이런 소문이 돌면 나 연예계에서 퇴출 당할 수도 있어요.” “걱정 말아요.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어요.” “무슨 뜻이에요?” “당황하지 말아요.” 계지원이 침착하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가 이불을 펄럭이자 예수진은 급하게 시선을 다른 데로 옮겼다. “이미 몇 번 본 적 있지 않아요?” 계지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남자는 부끄러운 것도 모르나.’ “좀 더 누워있어도 돼요. 우리 1시간 후에 출발해요. 나 먼저 하연이랑 놀다 올게요.” 계지원은 진짜 딸바보임이 틀림없었다. 예수진은 편하게 침대에 누었다. 생각해 보니 아직 시간이 남았다. 카메라가 없으니 그녀는 메이크업할 필요도 없었다.
예수진은 서둘러 클릭했다. 그 안에는 그들 가족 셋이 놀러 간 일을 간단히 적어 놓았다.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댓글 창을 열었다.[너무 부러운 거 말해도 돼요? 너무 달콤해요. 이 커플 미쳤어요...][평소에 계 감독님 보면 항상 수줍어하고 내성적이고 깊은 사람인데, 정말 사랑하면 숨길 수 없나 봐요.][그들은 정말 잘 어울려요,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잘생기고 예 사람들이 있죠.][아아, 나 다시 사랑을 믿게 됐어요...][너무 잘 어울려요. 이 커플 너무 좋아해요!] 예수진은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는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들을 “풍속을 해친다”,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공공장소에서는 주의해야 한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분명 계지원의 잘못이었다. “봤어요?”전화 너머로 소이연의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일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 “자매간의 감정 발전을 챙기는 거, 잘못된 건가요?”소이연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예수진은 서둘러 동조했다. “그러고 보니 , 당신 요즘 기분 좋은 것 같은데요?”“네?”“심문헌 씨랑 감정이 잘 발전되고 있어요?”“음, 괜찮아요.”소이연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사실 그녀와 심문헌 사이의 감정은 이 기간 동안 정말 급격하게 발전했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가짐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그녀와 심문헌은 정말 잘 지내고 있다.“당신을 축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예수진은 한숨을 쉬었다. 다소 모순적인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심문헌이 육현경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현경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있다면 이미 임아영과 결혼했을 테니 소이연이 그를 위해 홀로 살 필요는 없었다. “그냥 축하해 줘요.”“그래요.”“말 돌리는 거 참 잘하네요, 당
예수진은 빠르게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계지원과 함께 집을 나섰다. 계지원은 그녀에게 저칼로리 식사를 준비해주었고, 그녀는 침대에서 대충 대답했다. “진짜로 일정에 지장 없겠어?”예수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들킬 가 봐 너무 두려워했다. 그녀는 연예계에서 몇 년 더 활동하고 싶었다. “괜찮아, 안심해.”“알았어.”예수진은 자신에게 계지원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약속한 일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이후에, 예수진은 계지원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원래 험난한 산길 대신 계지원은 그들을 마중 나올 헬기를 직접 보냈다. 자동차로는 여섯 시간이 걸려야 했던 곳을, 그들은 단 두 시간이면 도착했다. 그들은 네 시간을 아꼈다. 도착했을 때, 두 팀의 게스트가 여전히 오고 있었다. 하도경과 가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도경이 계지원이 헬기를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런 방법도 있어?!”이 말을 적어도 열 번은 반복했다. 추측건대, 이번 회차의 하이라이트는 하도경이 만들어냈다. 두 번째 여행 녹화는 산에 있는 아주 큰 농장에서 진행되었고, 이번 프로그램의 녹화는 현지 농작물 판매를 촉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게스트들에게 각자 할 일이 주어졌다. 그들은 직접 요리뿐만 아니라 채소와 과일도 직접 수확해야 했다. 이번 방송이 끝나기 전에 현장에서 직접 판매 방송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남녀 게스트가 따로 일을 했다. 모든 부부나 연인은 떨어져야 했다. 여성 게스트 그룹은 주로 채소 따기를 담당했다. 남성 게스트 그룹은 주로 가축 먹이주기를 맡았다. 그들은 직접 농장으로 들어갔다.농장에는 유기농 작물과 자연농작물 외에도 많은 가금류와 가축이 키워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기획팀이 준비한 메뉴에 따라 채소를 따기 시작했다. 예수진은 정말로 곤란해졌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육씨 가문에서 자랐고,
너무 무거웠다. 예수진은 다른 야채를 찾아보았다. 가지는 자주 보는 야채였기에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가지는 자주색이었다. 그 특징이 명확했다. 가지를 2개 꺾고 다음은 고추를 찾으러 나섰다. 길게 생긴 게 고추일 것이다. 예수진이 흥분하는 듯 소리를 쳤다. 자신의 똑똑함에 그녀도 탄복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자신이 똑똑한지 몰랐을까? 고추를 따고 배추를 찾으러 떠났다. 배추는 아마 엄청 크겠지. 땅에서 제일 큰 것 고르면 되겠네? “아, 이거네.” 예수진이 또 다른 야채터로 가서 배추를 한 포기 뜯었다. 그리고 배추를 바구니에 담고 쪽파를 찾으러 떠났다. 파는 녹색이야. 그리고 쪽파니까 아마 작겠지. 예수진은 야채의 이름으로 그 특징을 파악해 쪽파를 찾았다. 그리고 나머지가 뭐가 있었지? 예수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름을 떠올리려 했다. 빈대풀이였던가? 야채 이름이 왜 이렇게 이상하지? 이제 이름으로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없으니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그리고 그녀는 핸드폰도 휴대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임무는 제작진들이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을 압수해 갔기에 그녀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예수진은 몇 바퀴 돌고 돌았다. 그곳에는 야채가 너무 많아 아무렇게나 집어도 그게 맞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제작진에게 물었다. “야채 하나라도 잘못 고르면 오늘 식자재는 전부 제공되지 않는 건가요?” “맞습니다.” 제작진이 대답했다. “마지막 야채는 어떤 건가요?” 예수진이 제작진에게 정보를 캐내려고 했지만 제작진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건 당신들이 낸 문제 아닌가요?” “저는 촬영 스텝입니다. 내용은 모릅니다.” “그럼 이 야채를 아는지 봐보실래요?” “빈대풀...” 제작진이 조심스럽게 읽었다. “어떻게 생긴 거예요?” 예수진이 물었다. “본 적 없습니다.” 제작진이 고개를 저었다. 예수진이 그를 빤히 쳐다보자 제작진은 그녀의 눈길에 얼굴이 빨개져 어쩔 수 없이 말
역시 그녀가 너무 빨리 자만한 것이다. 계지원은 그녀보다 더 귀하게 컸는데 어떻게 이걸 알 것인가.“몰라요?”예수진이 풀이 죽어 물었다. “고수.” 계지원이 답했다. “빈대풀 아닌가요?” 예수진이 놀란 듯 물었다. 계지원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참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확신해요.” “진짜 확신해요?” “확신해요.” “이번 방송이 나간 후에 따로 회자 되지 않을까요? 예수진이 이런 상식도 없다고...” 계지원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이런 야채를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예요.” “당신이 이렇게 말하니까 안심이 되긴 하지만... 이 야채를 진짜 알아요? 방송이 나간 후에 욕을 먹는 것보다 오늘 밤에 먹을 밥이 없는 게 더 걱정돼요.” “빈대풀은 사실 고수의 다른 이름이에요.” 계지원이 답했다. “아, 그럼 고수네요. 그런데 왜 빈대풀이라고 하는 거죠?” “그건 제작진들이 일부러 그런 거죠.” “진짜 나빠요.” 예수진이 투덜거렸다. “우리 고수 따러 가요.” 계지원이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예수진의 바구니를 한 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야채를 따로 갖다. 그런 계지원이 뒷모습을 예수진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자신이 다리가 불편함에도 그는 그녀가 힘들까봐 배려를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에 예수진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감동한 것이다. 예수진은 빠르게 걸어가 계지원의 옆에서 그를 부축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그는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은 그도 좋았기에 자꾸만 솟아오른 입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 “지원 씨는 어떻게 이런 걸 알아요?” 예수진은 한 손으로 고수를 뽑으며 그에게 물었다. “상식이죠.” “그럼 내가 상식이 없는 건가요?” 예수진이 소리쳤다. “농담이에요.” 계지원이 웃으며 답했다. “예전에 식물 관련된 책을 읽기 좋아했어요. 그래서 많은 식물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거죠.” 그럼 그는 지금
이제 송문수도 정신을 차렸으니 하지수는 본인도 원래의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송문수의 사무실이 워낙 커서 둘이 같이 쓴다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그녀는 사무실을 옮기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하지수가 OA의 서류들을 훑어보려 할 때 송문수의 비서가 마침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하지수를 보자마자 놀란 기색을 비추며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 오셨어요?”“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송 대표님이랑 같이 회의 참석한 거 아니었어요?”“회의라니요?”“지금 회의 중 아니에요?”“저희 오전 회의 없어요, 오후 3시에 첫 회의에요.”“그럼 송 대표는 어디 갔어요? 거래처랑 계약하러 간 거예요 아니면 현장 나간 거예요?”어디를 가든 대동하던 비서도 없이 혼자 나선 송문수에 하지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아침에 연락 오셔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좀 늦는다고 저한테 오후 회의자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거 다 프린트해서 지금 대표님 책상에 올려두려고 들어오는 길이었고요.”제 손에 들린 서류들을 들어 보이며 말하는 비서에 하지수의 미간은 더욱더 찌푸려졌다.집안일은 다 허영지와 하지수가 책임지고 있는데 출근 시간까지 늦춰가며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도대체 뭔지 하지수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알겠어요, 나가서 일 보세요.”“네.”서류를 송문수 책상 위에 올려둔 비서가 인사를 하며 나가자 서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곧바로 송문수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문수 씨, 지금 어디야?][나 회사에 있지, 왜 그래?]보낸 지 1초 만에 온 답장이었지만 내용은 역시나 거짓말이었다.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저를 속이는 건가 싶었던 하지수는 오락가락했던 지난날 송문수의 태도를 떠올렸다.생리가 온 그날만 해도 하지 못해서 안달 나 하던 사람이 생리가 끝났다는 데도 저를 피하는 게 안 그래도 이상했는데 하지수는 설마 송문수에게 이제 제가 필
아까는 앉아서도 잘만 자더니 제대로 누우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 송문수는 하지수를 기다리며 한참을 뒤척이고 있었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은 인영에 그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사이로 거실 쪽을 내다보았다.그리고는 하지수가 아직도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사실 송문수는 인내심이 없는 게 아니라 하지수가 그녀가 쓰던 방으로 들어가 버릴까 봐 그게 걱정돼서 확인한 것이었다.그 뒤로도 몇 번 더 훔쳐보던 송문수는 마침내 티비를 끄는 하지수에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가 자는 척을 했다.한편 드디어 티비를 끈 하지수는 먼저 본인 방으로 가 세수를 마친 뒤에야 송문수의 방안으로 들어섰다.자고 있는 송문수를 발견한 그녀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천천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곁에 나란히 누웠다.오랜만에 푹 자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는 싶었지만 하지수는 본능적으로 자꾸 송문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그 때문에 자는 척하던 송문수는 온몸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하지수랑만 있으면 몸이 멋대로 긴장하는 거라 그건 송문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런데 곧이어 제 몸에 닿아오는 부드럽고 따뜻한 하지수의 온기가 느껴지자 송문수는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구나 싶었다.하지수가 있으니 평범하던 세상도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다음날부터는 송문수도 일 때문에 바빴고 하지수도 아버님의 생일 파티 준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둘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사실 둘 중에 더 바쁜 건 송문수였다.그래서 하지수도 평소에는 그 얼굴도 자주 볼 수 없었다.항상 밤늦게 귀가하는 송문수는 터덜터덜 들어와 잠든 하지수를 품에 안고 자다가 그녀가 깨어나기도 전에 출근해버렸다.밤에는 분명 온기가 느껴졌는데 일어날 때는 늘 비어있는 옆자리에 하지수는 못내 서운한 감정도 들면서 송문수가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
“왜 안 먹어?”송문수의 재촉에 하지수는 손으로 게를 잡고 뜯었는데 다른 곳보다는 맛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리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어때? 맛있지?”“맛있어.”하지만 기대에 찬 송문수를 보며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하지수를 긍정을 듣고서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송문수는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하도경이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현경이랑 지원이는 바빠서 같이 몇 번 못 왔었어.”“그랬구나.”“술 마실래?”“나 생리 왔잖아.”영혼 없이 답을 하던 하지수는 신나서 술을 제안하는 송문수에 또 체념한 듯 말했다.반복되는 실망에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송문수의 무관심이 이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아, 맞다. 그럼 음료수라도 마실래?”“물 줘 그냥.” 그녀의 대답에 송문수는 직원에게 물과 맥주를 부탁했다.지금 술을 마시면 좀 있다 돌아갈 때 운전은 또 하지수의 몫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신난 송문수를 위해 하지수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는 건 좋은 연애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지수는 송문수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하지수는 정말 상대방에게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다.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간간이 소이연과 예수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어디에서 데이트하는지 많이 궁금하길래 솔직하게 알려주니 예수진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진짜 송문수답다, 연애 고자잖아 이건.][지수 씨, 문수 씨한테 거기 별로라고 얘기 못 했어요?][안 했어요,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나도 문수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보고 싶어요.][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건 아니죠. 지수 씨, 부부 사이에는 그렇게 내외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용기 내서 말해야죠.]소이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하지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친구들 말고는 다른 사람 데려간 적도 없는 곳이야. 네 기억에 남을 만한 맛집이니까 기대해.”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또 괜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영화는 별로여도 식당은 좋은 데로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차가 부둣가에 도착하고 송문수와 함께 차에서 내린 하지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걷자니 발이 아파왔지만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어 애써 참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그런데 식당은커녕 눈에 보이는 건 보트에 타라고 저를 향해 손짓하는 송문수뿐이어서 하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바다에서 먹는 거야?”역시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었던 걸까.송문수는 하지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며 보트에 태웠다.곧이어 출발한 보트는 물살 때문에 심하게 휘청였는데 워낙 물을 무서워하던 하지수는 난간을 꽉 붙잡고 몰아치는 파도를 버텨내고 있었다.“와아!”송문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 보였지만 하지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정신이 아니었다.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이 다 젖어버린 그녀는 번진 화장부터 열심히 세팅한 머리까지 지금 걱정투성이였다.데이트한다고 치마까지 꺼내입었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생리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는 화장실도 하나 없었다.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데이트코스로 선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본인을 위로하며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지수가 기대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놀라움은 끊이지 않았다.파도를 헤치며 달리던 보트는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멈춰 섰는데 해변가에 세워진 집으로 가려면 맨발로 거기를 걸어가야 했기에 딱딱한 모래 때문에 하지수는 안 그래도 아픈 발이 더 아파왔다.그래도 아무 말 없이 송문수를 따라갔더니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이 바로 시골 식당이었다.두 사람은 허름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