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진은 정말 그를 자극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계지원이 이렇게 힘든 모습을 보며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이런 말이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 것이다. 계지원이 반응을 보자 그녀는 자신이 또 한 번 그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그저..." 예수진이 설명하라고 했지만 매번 이런 순간에 그녀는 긴장하여 말이 자꾸 꼬였다. "의사는 회복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어요. 예전에 물리치료를 받아봤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어요." 계지원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에게서 별다른 감정은 보이지 없었다. 하지만 상처받은 그의 모습은 보아낼 수 있었다. 계지원은 하윤을 안고 휠체어에 앉아 앞으로 먼저 앞질러 가는 바람에 예수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계지원의 뒷모습을 바아보았다.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 놀이공원에서 하루 동안 놀고 점심도 아무렇게나 먹고 하윤의 넘치는 힘에 이끌려 온 하루 놀았다. 그래서 놀이공원을 떠날 때에는 배가 너무 고팠다. 하윤도 너무 피곤했는지 차에 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아까까지 계지원과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다가 지금은 아무런 소리 없이 잠에 들었다. "내가 안을게요." 예수진이 말했다. 하윤은 10킬로로 무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았다. 너무 오래 안으면 그것도 힘들었다. 심지어 다음날은 팔도 쑤셨다. 오늘 그녀도 하윤이와 함께 놀았지만 계지원이 하윤을 안는 시간이 더욱 길었다. 계지원이 그녀를 돌아보며 담담히 말했다. "나는 다리 병신일 뿐이에요."팔은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말에 예수진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계지원은 역시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이 남자는 너무 속이 좁았다. 그렇게 차에는 기분 나쁜 적막이 돌았다. 예수는 자석의 기대어 이 어색함을 이겨내고자 눈을 감고 그대로 잠에 들어 버렸다. 오늘 하루는 어린아이와 성인 모두에게 너무 고되었다.
예수진은 그의 뒤를 따랐고 둘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예수진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 유리 앞의 진지한 얼굴의 계지원을 보고 주춤했다. 그들은 분명히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아직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예수진은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지금 너무 배가 고팠다. 온 오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연이와 놀았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많이 먹어도 괜찮겠지? "돌아왔어?" 가연이 열정적으로 물었다. "아이구, 하연이는 잠에 들었네."가연은 계지원에게서 하연을 건네받았다."오늘 하루 노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자게 해요." 계집원이 말했다. 가연은 항상 하연을 아꼈다. 그런 하연이 지금 잠에 들었으니 깨우기도 아까워 하연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밥은 이미 다 해놨어. 손 씻고 와서 먹어." 예수진은 헐레벌떡 식탁 앞으로 달려갔다. 예수진이 연예계에 진출한 뒤 가연은 항상 그녀를 위해 다이어트식을 준비했다. 예수진의 것만 빼고 다른 건 모두 평범한 메뉴였다. 오늘 예수진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먹기로 했다. 맛있어 보이는 갈비찜을 보고 그녀는 군침이 돌았다. 가윤이 식탁으로 돌아오자 예수진이 갈비찜을 집어 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매번 그녀를 위해 다이어트식을 준비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예수진이 정상적으로 밥을 먹었으면 하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 말이다. "배고파?"가연이 물었다. "배고파 죽겠어. 놀이동산에는 맛있는 게 없어." 예수진은 갈비찜을 뜯으며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말을 뱉었다. "오늘 빨리 저녁 먹네." 시간은 아직 5시밖에 되지 않았다. "지원이 미리 나한테 문자를 줬어." 가연이 설명에 예수진은 고개를 돌려 계지원을 바라보았다. 계지원은 여유롭게 천천히 반찬을 집어 들었다. "나도 배가 너무 고팠어요." 계지원이 대답했다. 예수진도 그가 그녀를 위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하연을 위해 했을지도 모른다.
"하루 많이 먹는다고 해서 살찌지 않아요." 계집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니요. 내일 일어나면 분명히 2키로가 쪄 있을 거예요. 만약 그 살이 다 내 얼굴에 붙는다면, 혹은 내 허리에 붙는다면..." 예수진은 내일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원 씨, 아까 내가 많이 먹는 거 보면서 왜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말라면서요." 진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다. 예수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분명히 체중계에 올라갔을 것이다. 이윽고 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실 얼마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원아, 많이 먹어." 가연이 계지원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 그녀는 예수진이 체중에 대한 집념에 이미 습관되었다. "그래요." 계지원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저녁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연은 잠에서 깨었다. 계지원은 잠에서 깬 하연과 놀아 주었고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 하연이는 밥을 먹은 뒤 계지원과 함께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 산책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그들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시간이 되자 하연은 가연과 함께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샤워를 마친 뒤 계지원은 하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 오후에 너무 피곤했기에 하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잠에 들어 버렸다. 계지원이 하연이 방에서 나온 시각은 밤 10시였다. 그는 그대로 자신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예수진은 샤워를 마치고 짐을 싸고 있었다. 그때 계지원은 갑자기 아침에 예수진을 도와 함께 짐을 싸기로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짐 다 쌌어요? 내가 도와줄까요?"계원이 물었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둘은 그렇게 어색한 대화를 한참이나 나누었다.원래 연애하는 사이는 편한 관계가 아닌가? 지금 그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간 것만 같았다. "샤워하러 갈게요." "그래요." 그가 샤워하러 들어간 뒤 예수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까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그는 정말 조금의 유혹도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궁금했다. 전에 육씨 가문에 있었을 때 예수진이 그렇게 그를 유혹했는데 그는 어떻게 참았단 말인가.지금은 그는 조금만 다쳐도 금방 달아올랐다. 예수진이 손으로 더듬거리자 계지원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빨리 자요. 내일 한참 차로 이동해야 돼요.” “내일 가면 우리 이거... 못해요.” 밤에 카메라가 없어도 녹화를 하는 중이었기에 아무렇게나 할 수 없었다. “수진씨...” 계지원이 입을 열었다. “지원 씨, 내가 싫어요?” 예수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녀의 말에 계지원은 멍해졌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역시 이 남자는 뒤끝이 너무 길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연구해야죠.”예수진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얼굴은 빨개졌다. 계지원의 심장 박동 소리도 빨라졌다. 사실 오늘 그는 정말 실망했다. 예수진이 예전에 그의 테크닉이 좋지 않다고 한 건 인정한다. 그가 다른 여자와 경험도 없었고 첫 경험에 이성을 잃었었다. 하지만 오늘 예수진이 그의 다리 얘기를 한 건 그는 견딜 수 없었다.계지원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외출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눈길에도 개의치 않았다.하지만 예수진의 한마디 말에 그는 마음이 아팠다. 예수진을 탓하는 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단지 완벽한 몸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진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계지원은 몸을 움찔거렸다. 예수진이 이미 그의 몸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약한 불빛 아래서 예수진의 몸은 몽환적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계지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예수진이 그의 테크닉이 좋지 않다고 했기에 그는 일부러 참고 있었다. 사실 매일 밤 그는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이니 그는 밀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수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귓가에 뜨
“몇 시예요?” 예수진이 피곤한 듯 물었다. ‘오늘 녹화를 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 일러요. 피곤하면 조금 더 자요.” “늦지 않겠어요?” 예수진이 물었다. 그녀는 사실 침대에서 좀 더 자고 싶었다. “괜찮아요.” “그럼 조금 더 잘게요.” 예수진은 몸을 뒤척였다. 몸을 움직일 때도 조금 힘들었다. 다시 그에게 장난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건드리면 반응이 너무 컸다. 예수진은 계지원에게 등을 대고 누웠지만 그에게 백허그를 당했다. “걱정 말고 자요. 내가 참을 테니까.” 믿기지 않았지만 예수진은 결국 잠에 들어 버렸다.그렇게 잠을 자고 예수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등 뒤의 계지원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녀가 잠에 들었을 때 누군가가 누르는 것 같더라니, 다 그의 탓인 것이다. “깼어요?”계지원이 물었다. 그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기운이 넘쳤다. 정말 힘들지 않은 것인가.그는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다리가 불편해서 그녀가 움직였으니까... 예수진은 다시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 몇 시예요?” “오후 2시요.” “네?” 예수진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튕겨져 올랐다. “그럼 지각한 거 아니에요?”“내가 제작진한테 미리 말해놨어요.” “그럼 안 되죠? 지금 권력 남용하는 건가요? 이런 소문이 돌면 나 연예계에서 퇴출 당할 수도 있어요.” “걱정 말아요.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어요.” “무슨 뜻이에요?” “당황하지 말아요.” 계지원이 침착하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가 이불을 펄럭이자 예수진은 급하게 시선을 다른 데로 옮겼다. “이미 몇 번 본 적 있지 않아요?” 계지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남자는 부끄러운 것도 모르나.’ “좀 더 누워있어도 돼요. 우리 1시간 후에 출발해요. 나 먼저 하연이랑 놀다 올게요.” 계지원은 진짜 딸바보임이 틀림없었다. 예수진은 편하게 침대에 누었다. 생각해 보니 아직 시간이 남았다. 카메라가 없으니 그녀는 메이크업할 필요도 없었다.
예수진은 서둘러 클릭했다. 그 안에는 그들 가족 셋이 놀러 간 일을 간단히 적어 놓았다.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댓글 창을 열었다.[너무 부러운 거 말해도 돼요? 너무 달콤해요. 이 커플 미쳤어요...][평소에 계 감독님 보면 항상 수줍어하고 내성적이고 깊은 사람인데, 정말 사랑하면 숨길 수 없나 봐요.][그들은 정말 잘 어울려요,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잘생기고 예 사람들이 있죠.][아아, 나 다시 사랑을 믿게 됐어요...][너무 잘 어울려요. 이 커플 너무 좋아해요!] 예수진은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는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였다. 그들을 “풍속을 해친다”,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공공장소에서는 주의해야 한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분명 계지원의 잘못이었다. “봤어요?”전화 너머로 소이연의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일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 “자매간의 감정 발전을 챙기는 거, 잘못된 건가요?”소이연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예수진은 서둘러 동조했다. “그러고 보니 , 당신 요즘 기분 좋은 것 같은데요?”“네?”“심문헌 씨랑 감정이 잘 발전되고 있어요?”“음, 괜찮아요.”소이연이 무덤덤하게 답했다. 사실 그녀와 심문헌 사이의 감정은 이 기간 동안 정말 급격하게 발전했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가짐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그녀와 심문헌은 정말 잘 지내고 있다.“당신을 축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예수진은 한숨을 쉬었다. 다소 모순적인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심문헌이 육현경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현경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있다면 이미 임아영과 결혼했을 테니 소이연이 그를 위해 홀로 살 필요는 없었다. “그냥 축하해 줘요.”“그래요.”“말 돌리는 거 참 잘하네요, 당
예수진은 빠르게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계지원과 함께 집을 나섰다. 계지원은 그녀에게 저칼로리 식사를 준비해주었고, 그녀는 침대에서 대충 대답했다. “진짜로 일정에 지장 없겠어?”예수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들킬 가 봐 너무 두려워했다. 그녀는 연예계에서 몇 년 더 활동하고 싶었다. “괜찮아, 안심해.”“알았어.”예수진은 자신에게 계지원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약속한 일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이후에, 예수진은 계지원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원래 험난한 산길 대신 계지원은 그들을 마중 나올 헬기를 직접 보냈다. 자동차로는 여섯 시간이 걸려야 했던 곳을, 그들은 단 두 시간이면 도착했다. 그들은 네 시간을 아꼈다. 도착했을 때, 두 팀의 게스트가 여전히 오고 있었다. 하도경과 가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도경이 계지원이 헬기를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런 방법도 있어?!”이 말을 적어도 열 번은 반복했다. 추측건대, 이번 회차의 하이라이트는 하도경이 만들어냈다. 두 번째 여행 녹화는 산에 있는 아주 큰 농장에서 진행되었고, 이번 프로그램의 녹화는 현지 농작물 판매를 촉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게스트들에게 각자 할 일이 주어졌다. 그들은 직접 요리뿐만 아니라 채소와 과일도 직접 수확해야 했다. 이번 방송이 끝나기 전에 현장에서 직접 판매 방송도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남녀 게스트가 따로 일을 했다. 모든 부부나 연인은 떨어져야 했다. 여성 게스트 그룹은 주로 채소 따기를 담당했다. 남성 게스트 그룹은 주로 가축 먹이주기를 맡았다. 그들은 직접 농장으로 들어갔다.농장에는 유기농 작물과 자연농작물 외에도 많은 가금류와 가축이 키워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기획팀이 준비한 메뉴에 따라 채소를 따기 시작했다. 예수진은 정말로 곤란해졌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육씨 가문에서 자랐고,
너무 무거웠다. 예수진은 다른 야채를 찾아보았다. 가지는 자주 보는 야채였기에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가지는 자주색이었다. 그 특징이 명확했다. 가지를 2개 꺾고 다음은 고추를 찾으러 나섰다. 길게 생긴 게 고추일 것이다. 예수진이 흥분하는 듯 소리를 쳤다. 자신의 똑똑함에 그녀도 탄복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자신이 똑똑한지 몰랐을까? 고추를 따고 배추를 찾으러 떠났다. 배추는 아마 엄청 크겠지. 땅에서 제일 큰 것 고르면 되겠네? “아, 이거네.” 예수진이 또 다른 야채터로 가서 배추를 한 포기 뜯었다. 그리고 배추를 바구니에 담고 쪽파를 찾으러 떠났다. 파는 녹색이야. 그리고 쪽파니까 아마 작겠지. 예수진은 야채의 이름으로 그 특징을 파악해 쪽파를 찾았다. 그리고 나머지가 뭐가 있었지? 예수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름을 떠올리려 했다. 빈대풀이였던가? 야채 이름이 왜 이렇게 이상하지? 이제 이름으로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없으니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그리고 그녀는 핸드폰도 휴대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임무는 제작진들이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을 압수해 갔기에 그녀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예수진은 몇 바퀴 돌고 돌았다. 그곳에는 야채가 너무 많아 아무렇게나 집어도 그게 맞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제작진에게 물었다. “야채 하나라도 잘못 고르면 오늘 식자재는 전부 제공되지 않는 건가요?” “맞습니다.” 제작진이 대답했다. “마지막 야채는 어떤 건가요?” 예수진이 제작진에게 정보를 캐내려고 했지만 제작진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건 당신들이 낸 문제 아닌가요?” “저는 촬영 스텝입니다. 내용은 모릅니다.” “그럼 이 야채를 아는지 봐보실래요?” “빈대풀...” 제작진이 조심스럽게 읽었다. “어떻게 생긴 거예요?” 예수진이 물었다. “본 적 없습니다.” 제작진이 고개를 저었다. 예수진이 그를 빤히 쳐다보자 제작진은 그녀의 눈길에 얼굴이 빨개져 어쩔 수 없이 말
“뭐라고요?!”놀란 예수진이 언성을 높이자 육현경도 표정을 굳히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늘 소리소문없이 일을 처리하던 육현경은 이번에도 다들 벙쪄있는 틈을 타 소이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예수진도 그 뒤를 따라 나가려 하자 계지원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수진아, 오늘 이 자리 우리가 만든 거야.”“그래도 갈 거야. 당신은 엄마랑 현경 오빠 어머님한테 손님들 좀 부탁한다고 전해줘. 난 언니한테 가봐야겠어.”예수진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계지원도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가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눈치챈 송문수와 하지수도 아쉬운 듯 서로에게서 떨어졌다.“키스 다 했으면 빨리 병원 가. 이연 씨 출산한대.”출산이라는 말에 하지수도 다급히 뒤 따르려 하자 송문수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래도 안 늦어.”그렇게 몇 분도 안 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을 빠져나갔다.예수진이 둘째를 위해 연 백일잔치는 사라진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 혼자 남겨진 채로 끝이 나버렸다.그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양수가 터진 소이연이 분만실로 옮겨진 뒤였다.상황이 많이 급박한지 늘 침착함을 유지하던 육현경조차도 많이 초조해 보였다.아까부터 입구에서 서성이는 육현경을 보다 못한 예수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오빠, 가만히 좀 있어 봐. 지금 다들 긴장하고 있는데 오빠 때문에 더 진정할 수가 없잖아.”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육현경이 예수진을 보자 계지원이 다급히 나서며 분위기를 풀었다.“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수진이도 그때 오래 걸렸잖아. 낳으면 된 거지 뭐.”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계지원도 육현경 못지않게 초조해했었다.당장이라도 분만실로 뛰어 들어가 예수진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 했었다.그런데 그때, 분만실에서 소이연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주먹을 쥐고 있던 육현경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감에 따라 지켜보던 친구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었다.다들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가 갑자기 하지수의 손
“임신 때문에 살쪄서 그런 거야. 문수 씨 탓 아니야.”하지수가 당황한 송문수를 달래주자 그는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어떡하지?”“살 빼고 나서 다시 끼지 뭐.”“그래.”하지수에게 반지를 직접 끼워주는 건 송문수가 꿈에서도 그리던 장면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이유로 못하게 되는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지수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앞으로의 날은 길 것이기에 송문수는 그만 몸을 일으켰다.그런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기 시작했다.“키스해! 키스해!”갑작스러운 호응에 하지수의 얼굴이 빨개지자 송문수는 그녀가 난처해지지 않게 당분간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로 했다.사실 그날 밤, 하지수와의 잠자리는 송문수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었다.잠을 자다가도 쉴 새 없이 흥분해서 밤에 속옷을 몇 번이나 씻기도 했었다.그렇게 그녀를 원했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송문수는 하지수의 손을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의 입술이 송문수에게 닿아왔다.그녀가 먼저 한 입맞춤은 송문수의 심장을 뒤흔들기 충분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입맞춤을 당한 송문수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그때 하도경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뽀뽀 한 번에 바보 된 거야?”“...”그 말에 욱한 송문수였지만 여자친구도 없는 친구를 위해 한번은 참아주기로 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내려갈...”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닿았다가 금방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지는 키스였다.작은 그녀의 혀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송문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심장박동 또한 정직하게 빨라졌다.정말 자신을 죽이려 드는 하지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송문수는 하지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키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임신을 해도 작기만 한 체구의 하지수는 금방 송문수에게 주동권을 뺏겨버렸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기라도 하듯 무대 위로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다들 숨을 죽이고 송문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의 눈엔 눈물이 가득해서 눈을 조금만 깜빡여도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녀 역시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송문수는 그 정적 속에서 입술을 말아 물며 많은 고민을 거쳐 마침내 입을 열었다.“결혼하자.”그 대답이 들리기까지의 몇 분이 하객들에게는 한 세기만큼 길게 느껴졌다.송문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지수도 기쁨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고 송문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번 더 소리높이 외쳤다.“하지수, 결혼하자. 너랑 결혼하는 게 내 평생의 소원이었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네가 지금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 해도 넌 이제 평생 내 여자야. 다시는 너 다른 남자한테 안 보내. 아주 박력 넘치는 남자가 될 거라고.”“난 후회 안 해.”송문수와의 결혼을 하지수가 후회할 리는 없었다.그때 예수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송문수는 그제야 이 자리의 주인공이 예수진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히 하지수를 데리고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예수진이 빨간 보석함 하나를 송문수에게 보여주었다.“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지?”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송문수가 하지수를 위해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였다.익숙한 상자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기억해낸 송문수였다.송문수는 하지수에게 가장 특별한 반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까지 초빙하며 큰 공을 들였었다.“이제 네가 가져.”예수진이 그것을 송문수에게 건네주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는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보았다.반짝이는 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반짝이는 반지를 집어 든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자신이 상상해왔던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하지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데 송문수 역시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목멘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수야.”송문수의 부름에 하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맹세할게, 앞으로는 진짜 좋
그런데 하지수가 이런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송문수가 그 먼 타지로 떠나버린 것이다.그래도, 송문수가 정말 자신을 싫어한다 해도, 정말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해도 송승우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하지수의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물론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송문수에 잠깐 실망도 했었다.그러면서 송문수에게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예수진과 소이연이 저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송문수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하지수는 영원히 송문수가 오래도록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하지수를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와 손을 뻗으려 했지만 다시 움츠러들었다.지금 송문수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지 몰랐다.혹여나 자신의 선택이 하지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갈까 봐,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송문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너무 괴로워서 생긴 착각인지, 송문수는 하지수도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하지수 배 속의 아이였다.물론 송승우의 아이라 해도 송문수는 상관없었지만 하지수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가 그의 의문이었다.“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네가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고, 네가 오래전부터 날 좋아해서도 아니고, 날 위해 많은 걸 준비해줘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 다른 거랑은 아무 상관없어.”하지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송문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네가 좋아하는 건 송승우잖아.”“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송승우 안 좋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끝난 사이였어. 말했잖아, 그때 좋아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그냥 습관 같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매번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믿질 못하는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화가 치밀어올랐다.물론 송문수가 자신을 믿지 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송문수가 본인한테 자신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파티장 안의 모든 불빛은 송문수와 하지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무대 중앙에 선 하지수는 송문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송문수도 사람들 틈에서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지금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냥 가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하지수는 자신이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조용한 그 공간에서 송문수가 갑자기 무대로 향해 걸어갔다.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확실했다.그래서 하지수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모두들 숨죽인 채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졸이는 건 예수진과 소이연이었다.겁이 많은 송문수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송문수가 책임감은 있어서 하지수를 혼자 남겨두진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송문수가 하지수에게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송문수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울대는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었지만 애써 본인을 진정시키려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지수야, 이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그러다 갑자기 내뱉은 말에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았다.“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걸 찍었는지도 모르겠어.”송문수는 이번에도 장난인 척 너스레를 떨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너도 알잖아 나 이상한 거. 충동적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말을 마친 송문수가 직원을 찾아가 영상을 지우려 하자 하지수가 입을 열었다.“난 이미 진지하게 받아들였어.”그 말에 발이 잡힌 송문수는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애써 늦추며 말했다.“미안해.”송문수의 갈등과 무력함을 보아낸 하지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 만약 네가 신경 쓰인다면... 앞으로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 그럴 가치 없
오늘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외향형인지 호응도 아주 잘해줬다.“네! 궁금해요!”“한 여자를 위해선데요.”“누구예요?”“바로 하지수입니다.”영상 속의 자신이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들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이게 자신의 프러포즈 영상이었음을 깨달았다.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여기 있는지 당황스러웠지만 항상 일 처리에 미흡한 예수진이 이번에도 실수한 거라 생각해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영상을 멈추려 했다.그런데 그가 발을 내디디자마자 육현경과 하도경이 그 앞을 막아섰다.그리고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지수는 제 아내입니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죠. 사실 저는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할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제가 너무 비겁해서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저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늘 유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줬어요.”영상 속 송문수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미안해 지수야. 나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괜한 질투로 널 몇 년 간 힘들게 한 걸. 매일 밤 널 안고 자고 싶었는데도 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 한마디 못했어. 그래서 내 인생이 좀 덜 재밌었던 것 같아. 너라는 복지가 부족했잖아.”감동하며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지막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참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하는 고백 영상이었다.“사랑해, 지수야.”뒤이어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 송문수의 눈은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게 내가 아니니까 점점 비참해지더라.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네 시선을 끌려고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너무 멍청한 것 같더라.”“하지만 이젠 아니야.”“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돼도 세상에서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남자는 될 수 있어.”“더 이상 너한테 성질도 안 내고 부려먹지도 않을게. 괜한 질투 때문에 너 상처받게 하지도 않아. 우리 집은 이제 너한테 맡길 거야. 돈도
파티장에 들어와 보니 계지원과 예수진이 아들딸과 함께 와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인사를 마친 예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하지수를 불렀다.“이번에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 아들의 영원한 이모일 하지수 씨를 모셔보겠습니다.”파티장 한구석에 선 송문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하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는 제대로 볼 엄두가 안 나서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녀의 배가 꽤나 불러온 것 같았다.옷을 입어도 다 가려지지 않는 게 이미 임신 몇 개월은 된 것 같았다.정말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이렇게 빨리 임신한 하지수가 송문수는 조금은 원망스러웠다.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하지수는 누군가를 찾는 듯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한참이 지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히 눈을 피하던 송문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하지수의 시선은 이미 사라져있었다.그에 송문수는 그녀가 찾던 건 아마 송승우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끝까지 모습을 비추지 않는 송승우 때문에 그저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우선은 수진이 아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고요.”“수진이가 제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이면 꼭 사돈을 맺자고 그러더라고요.”“저도 우리 조카 귀여워서 너무 사랑하거든요.”“하지만 사돈은 저 혼자 맺는 게 아니잖아요. 애 아빠 입장도 있고 하니까요.”그러자 예수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그럼 얼른 애 아빠부터 불러서 오늘 사돈 한번 맺자!”“아이 아빠는...”그녀의 말에 담담히 웃던 하지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마른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보던 송문수는 정말 송승우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내어줬는데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런 날에 하지수를 혼자 이곳에 보내고 또 혼자 무대 위에 올리는 게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다.“수진아, 내가 무대 좀 써도 돼?”“당연하지, 오늘 이 자리는 널 위한 거야.”“아, 아니다. 내 미래의 며느리를 위한 거지.”예수진의 한마디에
하지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자 송문수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당연하지.”“진짜야?”“내가 왜 널 속이겠어?”“그런데 왜 안 데려왔어?”“이번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히 고생만 할까 봐 안 데려왔어.”“나중에 기회 되면 데리고 올 거야.”“예뻐?”“내가 안 예쁜 여자 사귀는 거 봤어? 외국 여자들은 몸매도 좋아. 원래 S라인이 내 취향이잖아.”“사진 있어?”하지만 저 질문에는 송문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다시 능청스레 대답했다.“있지.”“내가 봐도 돼?”“왜? 뭐 심사라도 해주게?”“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자는 어떻게 생겼는지.”“보면 너 상처받을까 봐 안 보여줄 거야.”“괜찮아.”송문수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 했지만 하지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다음에 직접 데려와서 보여줄게.”“지금 보고 싶어.”“카메라는 잘 안 받아서 실물보다 별로야.”“왜 안 보여주는 거야? 설마 없는 거야?”“설마 내가 너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난 원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절대 너한테 매달리지 않을 거야.”송문수가 확신에 찬 말을 하자 하지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매달린 적이 있긴 해?”그런 하지수의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아파왔지만 송문수는 꾹 참기로 했다.송승우의 아이를 가진 하지수는 이미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으니까.“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하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어져가는 송문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한편 화장실로 들어온 송문수는 물을 틀어놓고 손을 몇 번이니 씻어댔다.더 이상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까부터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었다.“더 씻으면 손 터져.”그 모습을 본 하도경이 직접 물을 꺼주자 송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도경이 건넨 휴지를 받아 손을 닦아냈다.“고마워.”“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냐. 그렇게 좋으면
백일잔치가 시작되기 전 예수진은 소이연과 친구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급히 다가왔다.“왜 혼자와?”“그럼 누구랑 와?”“우리 조카는?”“아, 엄마한테 맡겨놨어. 먹고 싸는 것밖에 할 줄 몰라서 재미없어.”“...”“그러는 너는 좀 어때?”“뭐가 어떠냐고?”“네 애 말이야.”예수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의 찻잔이 쨍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아직 파티가 시작되기 전이라 차만 마시고 있던 남자들이었는데 송문수의 손에 들려있던 찻잔이 미끄러지면서 안에 있던 차가 흘러나온 것이다.송문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찻잔을 집어 들더니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그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찻잔을 떨군 건 그저 우연이라는 듯 하도경, 육현경과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를 보며 하지수도 입을 열었다.“잘 있지. 전에는 좀 힘들었는데 이젠 잘 먹고 잘 자.”“너 살 좀 찐 것 같아.”“응, 2킬로 넘게 쪘어.”“그럼 됐어.”하지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예수진은 파티가 곧 시작한다는 말에 계지원과 함께 자리를 떴고 그녀가 떠나가 테이블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아마도 얘기를 다 나눈 남자들 때문인 것 같았다.가만히 있기도 뻘쭘했던 하지수가 주전자를 들려 하자 송문수가 빠르게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고마워.”하지수의 인사에 송문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한참 동안 둘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그러다가 결국 송문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 임신했어?”“응.”“빠르네.”송문수는 의미 없는 웃음으로 자신의 착잡한 마음을 감추려 했다.적어도 결혼한 다음에야 임신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송승우의 아이를 가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송문수는 자신의 생각이 점점 커지는 게 싫어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너 혼자 온 거야? 송승우는?”“서울 갔어.”“몸은 괜찮아졌어?”“응, 의족 해서 이젠 잘 다녀.”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