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이 방으로 돌아오자 등자월은 이미 깨어 있었고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채 이도현을 보며 온통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도련님! 배고프지 않으세요? 제가 뭐 좀 가져올까요?” “괜찮아! 나중에 먹자!” 이도현은 웃으며 대답했다.“자월아! 난 잠깐 명상할 테니 방 안에서 지키고 있다가 아무도 날 방해하지 못하게 해.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날 깨워줘.” 이도현은 방금 얻은 선학신침을 정련하고 음양탑의 다섯 번째 층을 열 수 있을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음양탑 안의 보물을 얻지 못했다.“네! 도련님!” 등자월은 대답하며 작은 의자를 가져와 문 앞에 앉아 문을 가로막았다. 이 장면을 본 이도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 한결같은 소녀는 정말로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는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선학신침의 공간으로 들어가 막 얻은 양침을 정련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제 막 입정을 하려고 할 때 그의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이도현은 이 시점에서 방해를 받자 약간 짜증이 났다.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해 보니 그가 저도 모르게 침대에서 펄쩍 뛰어올랐다.“헐! 죽을 노인네가 전화를 하다니, 이번엔 무슨 일이야? 내가 하산한 지 벌써 2~3년이 됐는데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지?”이도현은 마음속으로 놀라며 투덜거렸고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이런 젠장! 무슨 일로 전화하신 거예요? 이제서야 양심이 발동한 거예요. 아니면 양심이 돌아온 거야?”전화를 받자마자 이도현은 한바탕 농담을 던졌다.“이 자식아! 말이 그게 뭐냐! 너 눈에 아직 날 스승으로 생각하는 건 있냐 없냐! 진짜 하늘을 뒤집어버릴 작정이냐? 나 지금 당장 내려가서 너 두들겨 패는 거 보고 싶냐?” 전화기 너머로 태허노도의 욕설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아요! 와봐요! 한번 와서 나 때려봐요! 안 오면 당신은 내 손자가 되는 거예요!”이도현은 뻔뻔하게 말했다. 이것은 그들의 스승과 제자 사
“너 산에 있을 때는 왜 네가 이렇게 잔인한 줄 몰랐을까?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냐? 교룡 척추가 이렇게 빨리 융합된 건 네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교룡 척추가 흡수한 살기가 많아져서 그것이 너의 억제를 뚫고 너와 융합되었기 때문이야. 다행히 네 선배들이 네 상황을 자주 보고해 줘서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었고 네 선배들을 네 곁에 두게 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너 이 망할 놈의 자식은 벌써 변태가 되었을 거야! 만약 그때 네가 진짜로 변태가 되었다면 그때는 아마 내가 직접 산을 내려가서 너를 혼내야 했을 거야!” 전화기 속에서 태허노도는 화가 나서 수염을 불며 말했다. 이게 무슨 제자야. 이도현을 제자로 받은 이후로는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수련 재능은 좋지만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산에서 내려간 지 겨우 3년 만에 이렇게 되었다!3년 동안 그는 거의 매일 사람을 죽였고 이제는 증오에 사로잡힌 마귀가 될 뻔했다.물론 이도현이 사람을 죽이는 건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살인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 살기는 그의 마음을 미혹하고 그를 마도에 빠뜨릴 수 있다. 만약 마음이 살기와 악기에 지배당하면 그 사람의 무사 생활을 끝나는 것이다.“스승님... 그렇게 심각하진 않아요! 저 괜찮지 않나요? 그 일... 저도... 저도 예상하지 못한 거예요. 그렇지만 스승님, 걱정 마세요... 제가 선배들을 책임질게요!” 이도현은 얼굴이 붉어지며 어색하게 말했다. 이 말은 정말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누가 네게 그 말을 하라고 했냐! 그 책임지는 건 당연한 거고! 내가 오늘 너한테 전화를 건 이유는 네가 계속 이렇게 살인을 이어가면 신선이라도 널 구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려는 거야!” 태허노도는 철이 없는 제자를 나무라듯 말했다. “노인네! 왜 날 저주하는 거예요! 나 이제 막 교룡 척추가 융합되어 위기를 해결했는데 당신은 여기서 나를 저주하고
“스승님! 진짜로... 진짜로 이렇게 심각한 건가요...” 이도현은 아직도 믿기 어려워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지! 진짜 아니면 내가 너한테 전화하겠냐?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아주 중요한 거니까 꼭 기억해라! 지금부터 넌 살인을 멈추고 가능하면 사람을 죽이지 마라. 그리고 조용한 곳에서 한동안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봐라. 네 마음을 고양시키는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네가 무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자신을 그냥 조금의 의술만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매일 생활을 위해 분주하고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육의 죄업을 갚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의 단맛, 쓴맛, 짠맛을 체험해 봐라! 이것이 네 마음을 고양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태허노도가 매우 엄숙하게 말했다. “왜요?” 이도현은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이 늙은이가 하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평범한 사람처럼 살라고 하다니, 자기가 안 평범한가? 인생의 희로애락 같은 건 이미 충분히 겪은 것 같은데 말이다. 어렸을 때는 평범한 아이였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장난치고 짝사랑도 하고 대학 때는 연애도 했으며 졸업하고 나서는 밥벌이도 했다.이게 평범하지 않냐? 이보다 더 평범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의 이 평범한 삶 속에는 남들이 겪지 못한 경험들도 섞여 있었다. 좋은 일도 많이 했고 헌혈도 했고 골수도 기증했으며 심지어 남편 노릇도 잘하고 마지막에는 척추가 망가져서 황야에 버려지기까지 했다. 이게 그의 인생의 드라마틱한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80세에 죽지만 그는 18세에 벌써 황야에서 잠들었다. 만약 그의 스승이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남들보다 몇 년은 덜 살았을 것이다. ‘이런 삶의 경험이 있는데 어떻게 인생을 못 겪었다는 거지? 이게 인생의 희로애락이 아니냐? 그걸 다시 체험할 필요가 있을까?’ 이도현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네가 지난 3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살기가 이미 네 오장육부를 침식하고 네
이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왔다면 그는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그의 스승이 한 것이기에 그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그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의 스승만큼은 절대 그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같겠냐? 아무리 대단한 암살자라고 해도 그들이 몇 명이나 죽일 수 있겠냐?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긴 하지만 전쟁에 참가한 병사의 수는 얼마나 많으냐? 그들 한 사람당 몇 명이나 죽일 수 있겠냐? 너 스스로 생각해 봐라! 네가 하산한 지난 2년 동안 네가 죽인 사람이 몇이나 되냐?” 태허노도가 말했다. 이도현은 스승의 말을 듣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 2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자신조차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고 몇천 명, 몇만 명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스승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때로는 그가 사람을 죽일 때 자신도 모르게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마치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죽여버려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전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 스승의 말을 듣고 나니 이 상태가 정말로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제 안의 살기와 폭력을 없애고 교룡 척추에 융합된 음흉한 기운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까요?” 이도현은 물었다. 그의 내공은 뛰어나고 의술도 뛰어났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스승만큼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스려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너는 이 몇 년 동안 너무 빠르게 내공이 성장했다. 특히 하산한 이후로 네 선배들이 말하기를, 너의 내공은 지금 이미 무서운 경지에 이르렀고 성급 강자들도 너를 당해낼 수 없다고 한다! 내공이 너무 빨리 성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내공과 마음의 경지가 서로 맞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왜 많은 고수들이 주화입마하는것 같으냐? 사실 마음의 경지가 내공을 따라가지
태허노도가 말을 끝내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이미 이도현에게 문제의 본질을 짚어주었으니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이도현의 몫이었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마다 각자의 인연이 있고 사람과 사람의 길은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떻게 나아갈지는 태허노도가 이도현에게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는 문제였다. 전화를 끊은 이도현의 마음은 한동안 평온을 되찾지 못했다.그는 자신의 몸에 그렇게 큰 숨겨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중주왕과 진씨 가문 그들을 처리한 후 자신이 변했던 모습을 떠올리자 그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때 그는 완전히 살육과 욕망에 사로잡힌 기계 같았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단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싶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선배들과 한지음이 떠올랐고 특히 한지음과 조혜영의 나체가 그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스쳐 갔다. 그 당시 그의 가장 직접적인 생각은 그들을 소유하고 그들을 침대에 눕혀서 거칠게 유린하고 싶은 충동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도현은 만약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변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저 살육만 일삼고 욕망만 있는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그게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차라리 웅나라의 그 동물인간들이 더 귀여울 정도였다. 적어도 그 동물인간들은 자기 생각이 있고 말을 듣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도련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괜찮으세요?”이도현이 전화를 끊고 난 후 생각에 잠겨있으며 얼굴 표정이 계속해서 변하는 모습을 본 등자월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 나 괜찮아!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을 뿐이야.” 이도현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자월아! 가서 신영성존과 도광을 불러와.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좀 있어.”등자월은 곧장 나가서 신영성
“수련? 당신이 수련이 필요하다고요?” 도광은 눈을 크게 뜨며 이도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수련이란 보통 파벌의 제자들이 매일 장로들의 보호 속에서 산문 안에서 수련하며 온실 속의 꽃처럼 바람과 비를 겪지 않은 상태에서 공법만 배우고 실전 경험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그들을 사회의 위험을 알게 하고 배운 무술을 실제로 사용하게 하기 위해 파벌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 수련을 시킨다. 그것이 바로 수련이다.하지만 이도현 같은 사람이 수련이 필요할까?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하지 않는 날이 있었을까? 성급 강자를 죽일 때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이도현이 수련이 필요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도광뿐만 아니라 신영성존도 이해하지 못했다.“나는 내공 수련이 아니라 마음의 수련이 필요한 거야. 내 내공이 너무 빨리 발전해서 마음의 경지가 따라가지 못해. 나는 여러 곳을 다니며 감성을 찾고 지혜를 계발하며 마음의 경지를 높여야 해.”이도현은 자신을 문학적인 표현으로 포장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도광은 말없이 입을 삐죽였다. 그는 이도현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사람이 하는 말인가? 최근에 내공이 너무 빨리 발전해서 마음이 문제라니. 젠장! 이도현은 아마 미녀 몇 명을 찾아서 놀려는 거겠지. 이건 너무하잖아.’도광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이도현의 내공이 얼마나 빨리 발전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심경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주인님, 얼마나 가실 계획입니까? 어디로 가실 건가요? 제가 몇 명을 붙여드릴까요?” 신영성존이 공손하게 물었다.“그럴 필요 없어! 나 혼자 가면 돼.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 걸으면서 결정할 거야. 어디로 가든 그때 가서 생각할 거다.”“도련님!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도련님 곁에서 시중들며 저도 감성을 키우고 싶어요!” 등자월이 급히 말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도광은 그 말을 듣자 눈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거 확실하네, 이 소녀가
잠시 후, 이도현과 그들은 여관을 떠났다. 그들이 여관을 막 나섰을 때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여관 밖에 있던 군중들은 이도현이 나타나자마자 카메라와 휴대폰을 들고 연신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이도현은 마치 유명 인사가 된 듯 이들에 의해 사진이 찍혔다. 연예인 대접을 받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고 자칫하면 유명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들은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처럼 이도현의 길을 막을 용기는 없었다. 이도현이 나타나자 그들은 서둘러 길을 비켜 주었다. 이 사람은 정말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고 이곳 조성지에서는 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사람을 죽이면 정말 죽는 것이라고 다들 알고 있었다. 죽어도 억울할 따름이고 자식이 단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이도현은 눈도 돌리지 않고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발걸음을 재촉해 그곳을 빠르게 떠났다. 그는 외딴곳에서 신영성존이 준비한 헬기에 올라타 조성지를 떠났다. 이도현이 떠나자 조성문의 대부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도현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며칠 동안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완성에 도착한 이도현은 신영성존 그들에게 산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등자월을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한지음과 연진이에게 자신의 결정을 전하라고 했다. 세번째 선배인 인무쌍, 여덟번째 선배 신연주, 아홉번째 선배 이추영은 이미 떠났고 열번째 선배만이 이도현의 산장에서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몇 마디 당부를 하고 나서 이도현은 등자월의 눈물이 가득한 얼굴을 뒤로 하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뚜렷한 목적이 없었기에 이도현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스승님께서 그에게 평범한 사람의 삶을 체험하고 인생의 신맛, 단맛, 쓴맛, 짠맛을 느끼며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깨달으라고 했
이도현은 이번 일을 통해 자신의 상황이 스승이 말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었으나 도리어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도현은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 번잡한 도시에서는 도저히 마음을 차분히 할 수 없었다. 그가 겁을 주어 놀란 아이와 그의 행동에 겁먹어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을 보자 이도현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그가 멈춰서 보니 이미 자신이 산속 깊은 곳에 와 있었다. 산속을 헤매며 이도현의 마음은 서서히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자연의 고요함은 그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었고 이전의 초조함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 순간 이도현은 무척이나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다. 마치 마음속에 큰 짐이 내려간 듯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 무위! 평온함! 이게 바로 자연의 도법인가? 이게 바로 스승이 말한 마음의 경지인가? 자연에 가까워지고 자신을 놓아주는 것. 그렇지만 이 깊은 산속에 사람이 어디 있겠어! 어떻게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는 거지? 혹시 스승의 뜻이 내가 원시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야? 젠장!”이도현은 마음을 차분히 하고 경지를 높이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스승이 말한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스승은 그에게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깨달으라고 했지만 이 깊은 산속에는 귀신조차 없었다. ‘어떻게 사람 사는 모습을 깨달을 수 있을까? 설마 이 산속에서 야생 멧돼지와 교감하라는 건가?’“젠장... 신경 쓰지 말자. 며칠 더 여기서 지내보자!” 이도현은 투덜거렸다. 그리하여 이도현은 며칠 동안, 이 깊은 산속에서 동굴을 찾아 거처로 삼고 야생 생존을 해보기로 했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명상을 했다. 단순히 명상만 하고 수련은 하지 않았다. 명상이 끝나면 산속에서 사냥을 하고 요리하며 그 즐거움을 누렸다. 밤에는 동굴
이도현은 형수가 차린 밥상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형수, 저 먹고 왔어요! 번거롭게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이도현은 말을 마치고 급히 노문호에게 눈길을 돌렸다.그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수유 중인 형수의 가슴이 너무도 풍만하여 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기세는 이도현이 침을 놓을 때보다 더 매서웠다.“노 선생, 그동안 잘 계셨나요? 집안에도 별일 없으시죠?”이도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럼요, 무탈합니다! 그저 한의원이 너무 바쁠 따름이죠. 게다가 도현 씨의 명성이 자자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이 도현 씨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가 없다니까 그냥 돌아갔어요.”“그래도 우리 한의원이 이제 많이 유명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어요. 도현 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몸이 곧 쓰러졌을 거예요.”“좋은 소식이네요. 이건 노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기에 백성들이 다 믿고 맡긴다는 거잖아요.”이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에잇! 놀리지 말아요! 저의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도현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서 좀 쉬다가 일하러 와요! 저는 계속 일해야 하니까 이만 가볼게요. 도현 씨가 돌아온 걸 축하할 겸 우리 저녁에 영식이네 집에 모여서 밥 먹어요!”“그... 괜찮을까요? 또 형수를 귀찮게 해야 하는데.”솔직히 말해서, 이도현은 형수 집에 가서 밥 먹고 싶지 않았다. 형수의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꽃무늬 이불이 푹신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형수가 무서울 뿐이었다.“귀찮을 게 뭐 있어요. 도현 씨는 아이의 양아버지이고, 한집안 식구끼리 이런 말을 하면 섭섭하죠!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저희를 무시하는 거로 여길 거예요!”이도현이 거절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형수가 다급하게 말했다.이도현은 형수가 다급하게 그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더 거절하면 그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도현 씨, 현진
“이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방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 젊은이는 부귀의 상이고 걸음걸이도 씩씩한 데다가 온몸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반짝이고 있어. 딱 봐도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지, 절대 그렇게 소질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제야 믿겠어? 내 말이 맞는다는 거!”제일 먼저 반응한 할아버지께서 나서서 이도현을 가리키며 듣기 좋은 단어만 골라서 칭찬했다.그러나 이도현은 계속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 할아버지께서 조금 전까지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는데,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다니 참으로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이었다.“그러니까! 나도 그랬지. 이 젊은이는 딱 봐도 복이 있고 부귀한 사람이라고. 근데 너희는 귓등으로 듣기만 했어!”다른 사람도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신의, 만나서 반갑네. 난 이춘식이야. 우리 같은 이씨로서 오백 년 전에 한 가족이었을 거야. 넌 정말 우리 이씨 가문에 큰 체면을 세워줬어!”“이신의, 난 김두만이라 하고 나의 외할아버지도 성이 이씨야. 우리도 한 집안이라고 볼 수 있어!”“이신의, 나도 이씨 성을 가진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자네와 똑같이 생겼어!”수염이 새하얗고 이가 싹 빠진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이도현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연세가 이렇게 많으신 분이라면 이분의 외할아버지는 진작에 돌아가셨을 건데, 이렇게 나와 친한 척한다고! 자기 외할아버지더러 날 저승으로 데려가라는 거야 뭐야!’ “퉤! 뻔뻔스럽기는! 고아 주제에 어디 감히 외할아버지가 있다고 이신의와 친한 척하려고 해!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지야말로 이씨야!”뻔뻔한 사람이 또 한 명 나타났다.이도현은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이 어르신들이 너무 무서웠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할뿐더러 그럴듯하게 말하여 진짜인 줄 알았다. 이것도 모종의 경지라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이도현은 황급히 한의원 안으로 도망쳤고 그제야 고요함을 되찾았다.“도현 씨, 돌아왔군요! 하하하... 이 자식, 왜 이제야 돌아왔
이도현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하게 내디딘 걸음을 도로 거두었다. 그는 성급 고수보다 눈앞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이도현이 자신이 이곳의 의사라고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노영식이 한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걸어 나왔다.“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만 떠드세요! 다 진료해드릴 테니까 새치기하지 말고 줄 서서 기다리세요.”“신의 양반, 우리가 진료 보는 데 방해하려고 떠들어댄 것이 아니라, 반반하게 생긴 도시 사람이 염치없이 새치기하려고 해! 규칙을 어기려고 해!”한 할아버지가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이도현은 이 말을 듣고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이런! 내가 언제 염치없이 굴었어?’“새치기! 누가 새치기했어요?”노영식이 물었다.“이 사람이요!”“바로 저 젊은이예요. 도덕심이라고는 일도 없어요!”“맞아요! 염치가 전혀 없어요! 우리가 온 오전 줄을 서도 새치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저 사람은 오자마자 새치기했어요. 그러고도 도시 사람이라고! 퉤!”또 한차례의 비난을 받은 이도현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냥 들어가서 일하려는 것뿐인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잠깐 사이에 벌써 세 번이나 욕을 먹었어. 게다가 한의원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설사 내가 진짜 진료받으러 왔다고 해도, 새치기하면 어때서? 한번 욕하면 그만이지, 끝없이 욕할 줄이야. 시골 사람이 제일 순박하다고 들었건만 왜 이 어르신들은 이렇게 다르지?’“이도현 씨... 돌아왔어요...”노영식은 이도현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기뻐하며 그에게 달려갔다.이도현은 손을 뻗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오늘 운이 안 좋았다.“언제 돌아온 거예요? 미리 전화하지 그랬어요. 저희가 알았으면 마중하러 가는 건데!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삼촌이 이도현 씨를 오랫동안 그렸어요... 그리고 저의 아내도 거의 매일 밤 이도현 씨 얘기를 했어요. 도현 씨가 돌아오기만 하면 아이의 양아버지로 모시겠다고!”노영식은 감
조금 거친 섬섬옥수로 능수능란하게 계산기를 눌렀는데 그런 진지한 모습이 여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듯했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노영식의 아내, 이도현의 형수였다.한의원이 확실히 아주 바빠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낳은 지 몇 달도 안 되는 형수가 이렇게 나와서 일을 도울 리 없었다.그러나 형수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것을 보아하니 그녀가 이 일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긴 한의원에서 일하면 한 달에 오십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지금 월급이 올랐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촌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일자리였다.그리고 지금 부부가 모두 한의원에서 일하기에 한 달에 최소 백만 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무조건 농촌에서 고소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더군다나 부부가 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가정을 돌볼 수 있었다. 일도 지체하지 않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이 일자리는 그야말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 못지않았다.이도현은 이 부부가 하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질투에 눈이 멀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 부부도 충분히 빡세게 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형수는 아이를 낳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데 벌써 일하러 나왔다.백성들은 역시나 응석받이로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년은 쉬었을 것이었다.물론 도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좋으니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 아니겠어?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겨우 두 발짝 걸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에잇! 거기! 앞에 총각! 너 뭐 하는 거야! 양심이 있다면 뒤에 가서 줄을 서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고 있는 게 안 보이냐? 빨리 가서 줄 서!”“맞아! 맞아! 뒤에 가서 줄 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는 거 못 봤냐! 어디서 새치기야! 뒤에 가서 얌전히 줄 서! 참! 요
이도현은 이 가족의 감사 인사를 마다하고는 남자에게 앞으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어떤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본연의 가치를 잃기도 하는데 좋은 마음에서 출발한 일도 나쁜 일로 만들 수 있었다.특히 이번 일처럼, 만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은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남자는 사람을 불러 아내와 아이를 들것에 싣고 산에서 내려왔다. 떠날 때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절의 스님을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앞으로는 이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돈을 어디에 쓰든 절대 너희 같은 양심 없는 가짜 스님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이도현도 떠나갔다. 그는 재물을 탐내고 하마터면 사람까지 죽일 뻔한 이곳에 1분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머무르다가 사람을 죽이고 싶어질까 두려웠다.물론 그는 아무것도 폭로하지 않았다. 마치 하늘과 땅에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도리를 이루었다.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만약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 세상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었다.만물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도리가 있는 법이고, 하물며 나쁜 사람은 그들보다 한층 더 나쁜 사람에게 응징받을 것이기에 이도현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이도현이 보기에는 이 스님들이 구제 불능한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어젯밤 이도현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임산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스님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여자의 남편이 너무 미신을 믿어서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부처님께 예배드리러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었다.누가 옳은지 그른지, 또 누구의 책임인지 분명히 따질 수 없었다. 다행
이게 그들이 말한 보호란 말인가! 보호해 준다고 해놓고, 아내는 이 절에서 죽을 뻔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는 정말 후회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이 그저 미련한 바보 같았다. 자신의 월급 절반을 절에 바치고 돈을 그렇게 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막 정신을 차린 여자가 배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아마 곧 낳을 것 같아. 여보 나 좀 살려줘.” 이도현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휴. 하느님! 당신이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의술은 자신 있지만, 출산 경험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남자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사라곤 그 혼자뿐이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이 일은 그의 몫이었다. “세상에 대체 어떻게 이 타이밍에 애를 낳겠다는 거야? 조금만 더 참아서 내일 병원에서 낳으면 안 되나? 이 시점에서 출산이라니,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 아니야?” 이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그는 해본 적도 없는 출산을 도와야 했다. “신의여! 제발 제 아내를 구해주세요! 그녀가 곧 아이를 낳아요!” 남자는 이도현 앞에 달려와 애원했다. “어서 뜨거운 물을 다시 준비해라. 정말 너희 집안에 큰 빚을 져서 갚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는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라!” 이도현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네.”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급히 방을 나갔고, 겁먹은 동생만 남았다. “뭐 하려고 멀뚱히 서 있어! 얼른 산모의 바지를 내려! 안 내리면 입으로 애를 낳게 하려는 거야? 아이고! 너도 여자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냐?” 이도현은 짜증을 내며 그녀를 나무랐다. 당황한 여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언니의 바지를 내렸다.그 후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침대 시트로 여인의 하체를 가렸다. 그는 여인에게 침을 놓으며 기를 돌게 했다. 정신없이 손을 움직인 지 약 30분
어떤 것들은 정말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한 이도현은 지금은 깊이 믿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행히 이도현은 얼마 전 주씨의 아내와 그의 장인과 관련된 일을 겪고 나서, 미리 대비해 몇 가지 부적을 더 준비해 두었다. 음양탑에 보관해 두면 급하게 필요할 때 주사와 황지를 찾아다녀야 했다. 주사는 약국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집에 비축해 둘 법한 물건이다. 그러니 대비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지금처럼 바로 쓸 수 있게 말이다. 이도현은 임산부의 동생을 돌려세우고 그녀를 방에서 잠시 나가게 한 후, 황색 부적 한 장을 꺼내 임산부의 몸에 대고 몇 번 그리며 주문을 중얼거렸다. 임산부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비로소 멈췄다. 이 과정을 거친 그는 상당히 지쳤다. 몇십 분 동안 정신과 체력이 크게 소모되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 언니는 어떤가요? 왜 아직 깨어나지 않는 거죠?” 여동생은 이도현의 치료가 끝나자 조급히 물었다. “나는 의사이지, 신선이 아니야.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는 법이야. 가서 그녀의 남편을 불러 몸을 따뜻한 물로 닦아 주게 해.” 이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의 의술은 뛰어났지만, 이 여인의 상태는 이미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억지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마치 염라대왕과 생명을 놓고 다투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난다면, 그는 진정 신선이 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여동생은 무언가 할 말이 있었지만, 방금 이도현이 보인 위엄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고 언니의 남편을 불러왔다. 두 사람은 이도현의 지시에 따라 여인의 몸을 따뜻한 물로 닦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덕분에 여인의 미약했던 숨소리가 점차 강해지더니, 마침내 여인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살았다! 내 아내가 살아났어. 그녀가 죽지 않았어.” 남자의 격한 말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
곧 이도현의 차가운 시선이 절 안의 스님들에게 향했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동안 방해라도 한다면, 즉시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너희들이 듣든 말든 상관없지만, 감히 방해하려 한다면, 그 순간 너희의 마지막이 될 거다!”이도현은 말을 마치며 손을 휘저어 은침 하나를 던졌다. 은침은 대전 앞에 서 있는 돌사자를 명중했다.쿵!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사자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절의 스님들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하고 있던 생각들은 한순간에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마치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이도현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이 정도로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작은 침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돌사자가 산산이 부서져 버리다니, 이게 그들의 몸에 닿기라도 한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아무리 그들이 뚱뚱하다 해도 이런 강한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뭘 멍하니 서 있느냐! 빨리 방을 찾아서 이 사람을 안으로 옮겨!” 이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도현의 위압적인 분위기 아래, 스님 몇 명이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여인을 한 방으로 옮겨놓았다.“모두 나가라! 그리고 따뜻한 물을 준비해라.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오면 안 돼!”“너는 따라 들어와라!” 이도현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을 가리켰다. 아마도 이 부부의 친척일 터였다.“저요?” 여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놀란 듯 물었다.“들어와!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따라 해! 산모와 어떤 사이냐?” 이도현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녀는 제 언니예요.”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돌사자를 산산조각 내는 이도현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대답을 들은 이도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여인을 한 번 더 보고, 남편을 보며 더욱 할 말을 잃었다.아내가 이 지경인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산속으로 오다니, 대체
“스님. 제 아내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심장이 뛰고 있어요!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남자는 거의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떨며 외쳤다.보아하니, 아내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런 스님들을 믿는 걸까? 그리고 아내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병원이 아닌 이 산으로 온 이유는 뭘까?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으면서 병원에 안 가는 경우가 있을까? 산간 마을이라고 해도 최소한 마을 의사나 경험 많은 산파나 어르신을 부르기라도 할 것이다.이 남자는 참으로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아내를 데리고 이 깊은 산속에 와서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아미타불! 시주님, 이 여 시주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세요. 이번 생의 죄업은 이미 갚았고, 업보도 끝났으니, 다음 생엔 반드시 큰 부귀와 건강을 누릴 것입니다!”“시주님, 이제 길을 비켜주세요. 이 썩은 껍데기를 태워버리게 해주세요. 아미타불, 꽃이 피고 지고, 사람이 나고 죽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생로병사는 모두 정해진 법입니다. 이 모두가 전생의 업이고 현세의 결과입니다. 시주님, 왜 그리 집착하십니까?”스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고선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를 본 이도현은 속이 끓어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허튼소리인가.스님의 신호를 받고, 젊고 힘센 스님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남자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불태우려는 참이었다.이쯤 되자, 이도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이건 두 생명이 달린 일인데,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멈춰!” 이도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번에 여인을 태우려는 스님들을 발로 차며 막아섰다.“뭐 하는 거에요!” 여인을 태우려던 스님이 분노하며 소리쳤다.“뭐 하는 거냐고? 사람을 구하려는 거지. 저 여인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네가 사람을 태우려 하니, 정말 출가한 사람 맞는 거냐? 출가한 자는 자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