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아는 김소혜가 진정되자 말을 아꼈고, 밤에 방으로 돌아가서 권재민에게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재민이 방으로 돌아오자, 윤아는 소파에 화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재민은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 웃음을 터뜨리고는 윤아의 옆에 앉았다.“왜 그래, 와이프? 또 누가 화나게 했어?”“권현우 그 사람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할 거래요? 아니 자기가 되게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결국엔 자기를 숨길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한 생명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게 인간이 할 짓인가?”“사고 운전자도 찾지 못해서 태성 그룹이 또 큰 손해를 보잖아요.”윤아는 팔짱을 끼고 화가 난 듯 말했다.“아이고, 내 보물은 나보다 돈을 걱정하네.”재민이 윤아에게 키스하며 농담하자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하는 걸 보고 윤아는 재민을 쳤다.“저쪽으로 가, 나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재민은 윤아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우리는 서두를 필요 없어. 그 사고 운전자는 찾을 거야.”“현우 쪽은 이번에 잡히진 않았지만, 큰 타격을 입혔으니까, 이제 그들이 고생할 차례야.”윤아는 재민의 말을 듣고 아까까지만 해도 내던 화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물었다.“정말이야? 계획이 있어?”“어,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 봐.” “대체 뭐한 거야?”재민이 뭔가 감추는 것처럼 말하자 윤아는 여전히 궁금해하며 계속 물었다.“묻지 마, 곧 알게 될 거야.”재민은 윤아의 궁금한 모습을 보며 웃었지만, 여전히 말해주지 않았다.영국에서 사후 처리를 마친 권재아는 국내 뉴스를 보고 재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재민아, 이게 무슨 일이야?”“누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재민의 말에도 불구하고 재아는 여전히 걱정했다.“내가 돌아가야 하나?”“괜찮아, 영국에서 며칠 더 즐겨. 돌아올 때면 여기 일은 거의 해결될 거야.”“알겠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그래, 윌과 잘 보내고 있어. 돌아오면
권재민은 일단 한 판 이겼지만, 권현우가 감옥에 갇혔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태성 그룹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폭탄, 권은우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에릭과 같은 외부의 위협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은우는 현우가 체포된 것을 알고 매우 골머리를 앓았다. 권건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 현우를 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은우는 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권건하는 스스로 요청할 뿐만 아니라 권기태에게도 부탁했다.은우는 재민과 재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큰아버지인 권기태에게는 존경과 동정심을 느끼고 있어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은우는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결국 현우를 구할 수 없었다.“큰아버지, 제가 안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제 능력 밖이에요. 아니면 직접 재민에게 부탁해 보시겠어요?”“안 해. 내가 그의 아버지인데 어떻게 아들한테 그런 부탁을 해?”은우는 권기태의 고집스러운 태도에 매우 난처했고 곧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큰엄마한테 부탁해 보시겠어요?”그러자 권기태는 화를 내며 말했다. “이 녀석아, 나를 놀리는 거야?”“그럼 재아 누나에게 부탁해 보시겠어요?” 은우가 다시 제안했다.권기태는 표정을 관리하고는 자신에게 아직 딸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재민은 어렸을 때부터 재아의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재아에게 부탁하면 재민이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딸의 마음속에 더는 친절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권기태는 여러 번 재아에게 전화했지만 한 번도 받지 않았다.“뭐야, 재아도 이제 반항하는 거야?”권기태가 겨우 가라앉은 화가 다시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속이 타들어 간 은우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해결책을 고민했다.“왜 이렇게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해? 그냥 앉아있어!”은우는 권기태의 화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조용히 앉았다가 갑자기 재아가 현재 영국에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큰아버지, 누나 지금 영국에 있어요. 전화번호 앞에
남진혁은 전화를 받을 때 약속에 나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소개팅 상대를 소개해 주었는데, 윤아가 문제가 생겨 진혁은 소개팅 대상에게 전화해 사과하고, 병원에도 연락했다.진혁이 도착했을 때, 권재민도 막 도착했고, 의사도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재민은 차에서 내려 강윤아를 병원 카트에 눕히지 않고 직접 안고 들어갔다. 윤아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그는 마음이 아파 빠르게 걸었다. 이윽고 재민은 윤아를 치료실의 침대에 눕히고, 옆에서 구부정하게 서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괜찮아, 윤아야. 괜찮아.”의사는 간호사에게 윤아에게 진통제를 투여하도록 지시하고, 신속하게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가 끝난 후, 윤아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통증은 멈췄지만 재민은 여전히 걱정스러워했다.“선생님, 제 아내의 복통은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요? 생명에 위험은 없나요?”“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께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태성 그룹에 최근 일어난 많은 일로 인해 부인이 스트레스를 받아 감정 기복이 심했을 것입니다.”“그로 인해 뇌 혈류 공급이 불충분해져서 간접적으로 태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어요.”“하지만 임신 7개월 차에는 조산 위험이 있으므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의사와 상담하세요.”“이 시기에는 영양 관리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산 위험이 있어요.”“조금 있다가 안정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이 약은 태아에게 해가 없으니 안심하시고요.”의사는 재민에게 말한 뒤, 윤아에게도 조언했다.“사모님, 앞으로는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과로하지 마세요. 격렬한 운동이나 야근은 피하고, 기분 좋게 지내며 충분한 수면을 취하세요.”“오늘 밤 수액을 맞고 내일이면 집에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집에서 잘 쉬세요.”의사가 말을 마치고 나가자, 진혁이 재민에게 신호를 보내고 그를 따라 나갔다.“재민아, 내가 선생님 모실게.”그들이 나간 후, 재민은 병상 옆에 앉아 윤아의 손을 잡고
권재아가 인터뷰를 한 외국인들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모든 인류가 인종을 떠나 평화롭고 평등하게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재아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윌과 함께 잘 놀라고 한 후 헤어졌다.전화를 끊은 후, 재아는 강윤아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윤아야, 우리가 대영박물관 다 보고나면 오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식당과 도서관에 갈 거야.”“여기가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촬영 장소라는 거 알지? 교회에서 사진 많이 찍어줄게.”“도서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기념품을 사서 갖고 올게.”윤아는 음성 메시지를 듣고 매우 감동받고 기뻤다.전화를 끊은 후, 김소혜의 언질에 재아에게 해외 지사의 상황을 물었다. 재아는 문자를 봤는지 바로 전화를 걸어왔고, 윤아는 자신이 재아의 일정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해했다.“언니 일정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니야?”“괜찮아, 윌이 화장실에 갔어. 나는 기다리면서 할 일도 없고.”하지만 재아는 개의치 않다는 듯 말했다.“해외 지사는 이제 안정되었어. 안케빈은 경찰 조사로 위기에 처해 있어서 당분간 지사에 문제를 일으킬 시간이나 방법이 없어.”“그린 가문도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여. 유가족들도 모두 해결했고 나도 괜찮아. 며칠 뒤에 돌아갈 거야.”윤아는 해외 지사의 상황을 항상 걱정하고 있었는데, 재아의 말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서다은은 에릭의 국내 활동이 지지부진하자 초조해하며 변장하고 다시 경성에 몰래 왔다. 에릭이 경성에서 산 별장의 주소를 가지고 있던 다은은 그곳으로 향했다. 에릭은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다은을 반갑게 맞이했다.“다은 씨, 경성에는 어쩐일로 왔어요? 일단 들어와요. 이사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집 정리가 덜 됐어요.”다은은 에릭의 말을 무시하고 신발을 벗고 소파 옆에 앉았다. 열 시간 비행기를 탄 다은은 매우 지쳤고 에릭은 그런 모습에 부엌에서 물 한 잔과 과자 몇 개를 가져왔다.“다은 씨, 일단 물 마시고 과자도 먹어요.”
권은우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에릭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은우는 앉자마자 곧장 에릭에게 부탁했다. “에릭 씨, 권현우를 구해주세요.”에릭은 그제야 감옥에 있는 현우를 떠올렸고 망설임 없이 그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은우가 돌아간 뒤, 권기태에게 현우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했다.에릭은 돌아와서 비서에게 현우를 구출하라고 지시했지만, 경찰서에서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도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다. 이에 에릭은 이 일이 권재민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재민이 정말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권기태는 현우가 석방되지 않자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담당자에게 현우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자의 비서는 이에 대해 반박하려 했지만, 담당자의 눈짓에 그만두었다. 비서가 나가고, 권기태와 담당자 사이의 분위기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권기태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것이라 태도가 덜 강경했다.“진짜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온 건 부탁을 하러 온 겁니다.”강승관도 권기태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것처럼 했다.“말씀하세요.”“제 둘째 아들이 며칠 전 오해로 체포되었어요. 좀 도와주셔서 그를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사실 그냥 가족 문제예요. 제 둘째 아들이 장난을 치다가 형을 화나게 해서 형이 그를 여기에 보낸 거거든요.”강승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사건 담당 경찰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게 하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강승관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이 사람은 금융감독원에서 보내온 사람이고, 상부의 명령 없이는 저희가 마음대로 풀어줄 수 없습니다.”“저희도 공무집행 중이라 이해해 주시죠.”그러자 권기태는 화를 내며 말했다.“당신, 사람이 좋게 좋게 말하니까 귀에 안 들어가나봐?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풀어줘.”급한 권기태와 달리 강승관은 앉아서 웃으며 말했다.“정말 죄송하지만, 저희는 할 수 없으니 이제 돌아가시죠.”권기태는 더 말하려 했지만,
강윤아는 꿈에서 깜짝 놀라 깨어났고, 권재민도 갑작스러운 그녀의 움직임에 눈을 떴다. 그는 윤아의 이마를 만지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윤아의 머리와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재민은 급히 침대 옆 램프를 켜고 윤아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윤아는 깨어났지만, 여전히 그 끔찍한 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자 재민은 인중을 꼬집어 그녀를 현실로 끌어내려 했고, 윤아는 약간의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윤아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두려움에 떨며 재민의 팔을 꼭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재민은 윤아를 안고는 달래주며 조금씩 진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윤아는 자신이 꾼 끔찍한 꿈을 재민에게 들려주었다.“재민 씨, 나 아까 되게 무서운 꿈을 꿨어. 얼굴을 가린 사람이 나를 잡아가서 엄청 좁은 방에 가뒀어.”“방 안에는 달라 침대 하나였고 랜턴도 없이 엄청 작은 창문 하나밖에 없었어. 문도 못 찾아서 살려달라고 그렇게 소리 질렀는데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어.”“그러다가 기절을 해서 다시 깨어났을 땐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두손 두발이 다 묶여 있었어.”“그리고 어떤 여자애가 들어왔는데, 온몸이 기계에 묶여 있는 게 죽은 사람 같았어.”“소리를 질렀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고, 눈은 거즈로 가려져서 얼굴을 볼 수조차도 없었어.”“그 여자애를 잘 고정하고는 의사가 내 곁으로 왔어. 얼굴을 꽁꽁 가렸는데 약간 먹이를 바라보는 늑대의 눈빛이었어.”“그리고는 내 배를 가르더니 우리 아기를 꺼냈어. 엄청 조그맣고 핏덩이 같은 그런 애를 한쪽으로 버리더니 내 피를 뽑기 시작했어.”“내 피가 그 여자애한테 수혈한 것 같은데 난 점점 죽어가는 모습이어서 엄청 놀라서 깼어. 근데 모든 게 너무 생생해.”윤아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재민은 윤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그건 그저 꿈일 뿐이지 현실이 아니야. 나는 너를 무슨 짓을 해서든 지킬 거야. 그 누구든 너에게 손대면, 내가 죽여버릴 거야.” 재민의
고승아는 처음에는 김지민과 몇 가지 업무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회사에 새로 와서 여러 절차에 익숙하지 않다며 지민에게 조언을 구하는 핑계로 그에게 접근했다.며칠이 지나자 두 사람은 친해졌고, 사적으로 함께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한 프로젝트 협업에 대해 분석하고 공부했다. 지민은 능력 있고 학구열이 높은 승아에게 호감을 가졌다.승아와 지민이 사례를 분석할 때, 지민은 승아의 분석이 정확하고 독특하다고 느꼈다. 그녀가 자신에게 능숙하지 않다고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었다. 그러자 지민이 농담하듯 말했다.“승아 씨는 이 분야에 정통한 것 같아요. 내가 가르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승아는 전문적인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지민이 농담할 때, 잠시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농담도 참. 지민 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어젯밤에 미리 공부한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거예요.”지민은 승아가 겸손하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한편 승아는 지민이 더 이상 말하지 않자 그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으신가요? 권은우 사장님이 저에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여러분께 물어보라고 하셨어요.”지민은 승아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뇨, 그럴 리가요. 무슨 문제든지 물어보세요.”“정말요?” 승아는 놀란 척했지만, 그건 지민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컴퓨터에 접근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그날, 승아는 특별히 어려운 전문적인 문제를 골라 지민에게 질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민은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아봐야 했다.지민의 컴퓨터에는 프로젝트의 기밀 파일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평소 다른 컴퓨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이 컴퓨터를 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컴퓨터를 켜야만 했다. 그러자 지민은 미안한 표정으로 승아
김지민은 윤기태를 따라 권재민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재민이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지민은 더욱 불안해졌다. 재민은 말없이 있었고, 지민도 설명할 생각을 잊고 서 있었다.이윽고 기태가 컴퓨터를 재민의 책상 위에 놓았다.“김지민 씨, 컴퓨터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지민은 다가가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긴장한 탓에 평소에 잘 알고 있던 비밀번호도 여러 번 틀렸다. 그리고 마침내 올바른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컴퓨터를 기태에게 넘겼다.기태는 이메일을 열어보았고, 가장 최근에 보낸 이메일은 어젯밤에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의료 프로젝트와 다른 몇 가지 프로젝트 자료였다.기태는 컴퓨터 화면을 재민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대표님, 이메일이 있습니다. 이게 증거입니다.”재민은 컴퓨터 화면을 흘깃 보고 급히 다가와 화면을 살피는 지민을 바라보았다.지민은 자신의 이메일 함 속 그 이메일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이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고, 이 일 또한 제가 저지른 게 아닙니다.”“저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왔고, 회사가 주는 월급과 대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회사에 그 어떤 악감정도 없는 제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또한 이렇게 뻔한 수법을 쓰고 염치도 모르겠습니까.” “대표님, 부디 저를 믿어주세요!”재민은 다소 긴장해 보이는 지민을 차갑게 바라보았다.“그럼 이 이메일은 어떻게 된 건가요?”“대표님, 이메일은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그럼 누가 당신의 컴퓨터와 문서 비밀번호를 알고 있나요?”지민은 심사숙고한 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승아가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뒤돌아서 있었다. 또한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 승아를 배제했다.“아뇨, 대표님, 제 비밀번호는 저만 압니다. 게다가 제 비밀번호는 너무 복잡해서 일반 사람은 기억할 수 없어요.”재민은 지민의 모습과 말에 그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