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온 김소혜는 기분이 여전히 엉망이었다. 김소혜는 소파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서만옥은 줄곧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사돈댁, 다 생각 차이에요. 이혼도 마찬가지고요. 부정적인 것만 보면 당연히 기분이 우울하고 답답해지겠죠. 근데 각도를 바꿔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차츰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나 좀 봐요. 나도 그런 적이 있었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기 마련이고 삶이란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사돈댁은 멀지 않아 둘째 손주도 얻게 되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근본도 없는 여자랑 사생아밖에 없어요.”“이미 헤어진 이상, 더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감정 낭비 하지 마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잃었다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하면 안 되잖아요. 자식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김소혜는 자기를 위해 아픈 상처까지 들춘 서만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사돈댁, 나는 그냥 너무 억울해서 그래요.”“뭐가 억울하죠? 모든 사람이 다 사돈댁 편이잖아요. 게다가 둘째 손주도 곧 태어날 건데 억울할 필요 없어요.”김소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권재아랑 강윤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굳게 마음을 먹은 듯 서만옥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전 이미 다 가졌어요. 그 두 사람 때문에 더 이상 화내지 않을 거예요. 걔네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마침 은찬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은찬이는 밝고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김소혜는 은찬이를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졌고 은찬이를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윤아랑 말했다.“윤아야, 나 오늘에도 여기에 있으면 안될까? 어제 은찬이랑 잘 놀고 있었는데 재민이가 나보고 쉬라고 해서. 우리 예쁜 손주랑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어머님도 참, 당연하죠. 차라리 오늘 다 가지 말고, 여기서 작은 가족 파티 하죠. 이따가 요리를 더 하라고 얘기해 놓을게요.”저녁 식사 때, 재민은 내일에 재아랑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
에릭의 말을 듣자 권은우랑 권현우는 한시름을 놓았다. 그리고 권재민때문에 받은 타격까지 잊어버렸다.그들은 고승아가 하루빨리 권재아의 부서에 발을 붙이길 원했다. 그러다가 권재아를 단번에 쓰러뜨리고 태성 그룹에 큰 타격을 가하기만을 기다렸다.에릭은 잘 알고 있었다. 태성 그룹을 상대하기엔 지금의 에릭 그룹은 한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그는 부하더러 태성 그룹이랑 경쟁하라고 시켰고 재민의 일부분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동시에 현우랑 은우도 기회를 잡아 태성 그룹에 사람을 넣을 수 있게 된다.하지만 은우는 태성 그룹에 새 직원을 안배하면 사람의 이목을 끌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짧은 시간 내에 적합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 내부 옛 직원 중에서 찾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컨트롤하기 쉽도록 평소 존재감이 낮은 사람으로 뽑았다.은우랑 현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한기현은 또 다른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서 재민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억을 잃게 만든 킬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 킬러는 다름 아닌 세븐 고스트의 사람이었다.기현은 이 정보를 알아낸 후 바로 재민에게 알려줬다. 재민은 자기 앞에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현을 바라보며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다. 기현은 최선을 다해 재민이가 부탁한 일을 했다. 그리고 기억을 잃었을 때, 기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민은 영원히 윤아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기현은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재민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물었다.“이 봐,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멍을 때려? 너 설마 날 사랑하기라도 하는 거야?”재민은 변함없는 기현을 보면서 웃었다.“듣고 있어, 계속 얘기해 봐.”기현은 다른 사람 앞에서 계속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재민이 자신을 보며 웃자, 몸서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설마 정말 날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겠지?”재민은 웃음을 거두고 그를 노려봤다. 기현은
재민은 안토니를 동정해서 그의 다리를 치료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안토니가 장애인이 되어 출소하면 자기 평판에 영향을 줄 것 같아서였다. 물론 재민이 정말로 치료해 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를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에릭이랑 권현우는 재민의 행동을 주시했다. 재민의 비서 실장 윤기태가 감옥에 가서 안토니란 사람을 봤다는 얘기를 듣고 에릭은 의문스러웠다.그래서 현우랑 은우와 물었다. 그들은 안토니란 이름을 듣자 매우 흥분했고, 하나하나 에릭에게 다 알려주었다.“따지고 보면 권재민의 탓이죠. 뭐. 예전에 권재민이 좋다고 계속 따라다닌 여자가 있었는데, 송해나라고 대그룹 아가씨였어요. 그리고 권재민의 어머니도 송해나를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 했고 며느리로 삼고 싶어했죠. 근데 권재민은 지금 걔 아내밖에 몰라서 송해나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걔네 집안까지 망쳐버렸어요.”“그러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송해나는 안토니를 알게 되었고, 안토니는 해외에 스티븐 그룹이라는 회사가 있었어요. 송해나는 복수하기 위해서 안토니랑 사귀었고, 자기 집안 그룹이랑 스티븐 그룹의 합작을 추진했어요. 심지어 더 좋은 협력을 위해서 안토니랑 약혼까지 했어요.”“안토니는 초반에 송해나를 도와서 회사까지 차려서 권재민을 상대했어요. 심지어 임신한 권재민의 와이프랑 아들을 밀항선에 던져서 아프리카로 보냈다니깐요. 그래서 권재민이 직접 아프리카까지 찾아가서 지 와이프랑 아들을 구해왔죠. 근데 구체적인 과정은 우리도 잘 몰라요.”“그 후에, 송해나랑 안토니는 또 권재민의 고모를 꼬드겨서 강윤아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해치려고 했는데 결국엔 실패했어요. 권재민은 안토니가 송해나를 도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안토니를 상대하기 시작했어요. 안토니랑 송씨 그룹이 파트너 사이였기에 권재민은 먼저 송씨 그룹을 무너뜨리고, 나중에 스티븐 그룹까지 무너뜨렸어요. 심지어 스티븐 그룹이 탈세한 증거까지 찾아서 법원에 제출했어요.”“안토니는 송해나를 데리고 도망쳤는데, 권재민한테 잡혔고 감옥에 들어갔어요.
이틀 후 아침,재민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자기를 찾아온 재아를 봤다.“재민아, 큰일 났어. 어제 영국 지사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대.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났나 봐, 바로 숨을 거둔 사람도 있고 다친 사람도 있대. 정확한 인명 피해 상황은 아직 알아보는 중이래.”“어제 사고가 생긴 후부터 지금 거의 12시간이 지났어. 피해자 가족들이 회사에 찾아가서 항의했대. 어젯밤에 너무 깊게 자서 벨 소리를 듣지 못했어.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야 알게 됐어. 지금 국내 여론까지 이 소식이 퍼져 회사 주가도 영향 받았어.”“지금 영국은 새벽 12시인데, 피해자 가족들이 아직도 회사 앞에 있대. 최대한 안정시키라고 지시를 하긴 했어. 나 지금 바로 영국에 가봐야 할 것 같아. 10시 비행기니까 바로 공항으로 가려고. 넌 집에서 엄마랑 윤아를 잘 돌보고 있어.”재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얼른 가봐,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고.”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떠났다. 하지만 재민은 혼자 떠나는 재아가 걱정되어 윌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얘기해줬다.“윌, 지금 바로 공항에 나가봐야 될 것 같아요. 누나가 10시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 가서 우리 누나를 좀 챙겨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윌이가 영국을 잘 아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도와주세요. 안전이 제일 우선인 거 알죠?”“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공항에 갈 테니 걱정하지 마요.”윌은 전화를 끊은 후 여권과 비교적 중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공항으로 달려갔다.재아는 대기하다가 윌이 온 것을 발견했다.“윌, 왜 왔어요?”“재민 씨가 얘기해주면서 재아 씨를 챙겨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저도 걱정이 돼서 와 봤어요. 영국에 아직 힘이 있으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도울 수도 있잖아요.”윌은 재아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는 묵묵히 재아를 위로했고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비행기에 오른 후, 재아는 여전히 불
재아는 비행기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윌에게 잘 쉬겠다고 약속했지만 불안한 마음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재아는 눈을 뜨고 책을 보려 했다. 겸사겸사 불안함을 잠재우려 애썼다. 그때 누군가 자기 귀에 이어폰을 끼워 넣은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부드럽게 웃으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윌이 보였다.재아는 윌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만 봐도 불안하던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서를 안정시키려고 다운로드한 노래예요. 엄청 힐링한 노래들이어서 들으면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어요. 내가 계속 재아 씨 곁을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재아는 윌을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후 윌의 손을 꼭 잡았다. 윌은 다른 손으로 재아에게 담요를 잘 덮어주었다. 두 사람은 기대고 조용히 노래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아는 잠이 들었다.재아가 다시 깨어났을 때, 약 4, 5시간 후면 영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윌은 진작에 깨어났고 옆에서 독서하고 있었다. 윌은 재아가 깨난 것을 보고 기내식을 주문했다.“깨어났네요. 지금 국내는 오후 3,4시가 다 되어갈 거예요. 잠을 깨우고 뭐 좀 먹어요.”“배고프지 않아요. 뭐 먹고 싶지도 않고요.”“안 돼요, 뭐라도 먹어야죠. 별로 많이 주문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4,5시간 정도 더 걸려야 영국에 도착할 수 있어요. 착륙하기 전 한 끼 정도는 먹어야죠. 영국에 도착한 후면 사고를 수습하느라 식사할 시간도 없을 거예요.”윌은 먹을 것을 재아 앞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젓가락을 건네주면서 재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착하죠, 얼른 말 들어요.”재아는 자기를 아이처럼 달래는 윌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져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윌은 발견하지 못했다.고통스러운 비행시간은 윌 덕분에 별로 슬프지 않았다. 재아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멘탈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재아랑 윌은 비행기에서 내리자 그들을 마중하러 나온 지사
재아는 윌이랑 설명을 해준 후, 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의 상황을 얘기해줬다. 그리고 윌의 조사 결과도 같이 알려줬다.재민은 안케빈의 이름을 듣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졌다.“누나,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마. 사건의 흐름만 컨트롤하면 돼. 가능한 빨리 가서 처리할게.”하지만 재아는 재민이 오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다.“아니야, 재민아, 국내의 상황도 만만치 않아. 권현우가 지금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텐데, 네가 떠나면 걔네들은 그 틈을 타서 무슨 짓을 할 거야. 회사를 엄마나 윤아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봐.”재민은 냉소를 지었다.“괜찮아. 권현우, 권은우 따위는 상관하지 않아도 돼. 아무 일도 못 벌일 거야.”“그리고 윤아랑 엄마 쪽은, 내가 사람을 시켜서 보호하라고 할게. 회사는 기태가 나 대신 봐줄 거야. 여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재아가 전화를 걸었을 때 국내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재민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었다. 재민은 이쪽의 일을 다 처리한 후 영국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재아의 연락을 받고 시간을 앞당기려고 했다.재민은 전화를 마치고 베란다에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달콤하게 잠 든 윤아를 보다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 자고 있던 윤아는 쥐에게 이마를 물린 꿈을 꾸었다. 꿈에서 윤아는 손을 뻗어 쥐를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쥐는 얼른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이런 나쁜 쥐야, 꺼져!”재민은 꿈을 꾸고 있는 윤아가 손을 뻗어 자기를 때리려 하자 바로 피했다. 그러다가 자기를 나쁜 쥐라고 욕하는 윤아를 보면서 웃음을 금치 못했다. 재민은 윤아의 코끝을 살짝 쥐었다. 그러자 윤아는 또 욕을 했고 재민은 더 크게 웃었다.재민은 아침에 일어난 후 영국으로 가야 된다는 것이 생각났다. 윤아가 자기를 보고 싶어 할까 봐 그는 포스트잇에 글을 남겼다. 그리고 윤아가 아침 먹으러 간 틈을 타 방에 가득 붙이려고 했다.다음 날 아침, 윤아는 일어나자마자 자기가 꾼 꿈을 얘기해주었다. 재민은 듣자마자 윤아를
은우랑 현우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망설이었다.“권재민 사무실에는 다 기밀문건이어서 평소 자리를 비우기 전 꼭 문을 잠그곤 해요. 그 사무실에 들어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몰래 잠입할 수는 있잖아요? 머리를 좀 써봐요.”화가 난 에릭이 그들을 욕하려고 할 때였다. 고승아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이게 무슨 상황이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요? 너무 화내지 말아요. 건강에 안 좋아요. 그리고 우린 파트너 사이고, 다들 한배에 탔는데, 한명이라도 빠지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을 거예요.”고승아는 말하면서 에릭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술을 들어 에릭이랑 한잔 마셨다.에릭은 승아를 보자 화가 가라앉았고 농담을 했다.“승아 씨는 예쁘게 생겼는데 말도 예쁘게 하네. 권 사장, 아까는 내가 실수했어요. 양해해줘요.”“모순도 다 해결됐으니 계획이나 의논해요. 권재민이 출국한 거 다들 아시죠? 생각해둔 계획 있으세요?”에릭은 승아에게 자기의 계획을 얘기해주었다. 승아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다.계획을 다 짠 후, 승아가 물었다.“어제 기사, 혹시 세분의 걸작인가요?”에릭은 웃으며 승아를 항해 잔을 들었다. 승아는 에릭이 묵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승아는 에릭에게 기대어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며 애교를 부렸다.“에릭 씨, 지금 권재민을 상대하는 거예요, 아니면 날 상대하는 거예요? 저 어제 라엘 와이너리랑 계약을 체결하려고 했는데, 에릭 씨가 이러는 바람에 저 하루 더 기다렸잖아요. 어제 기사가 나오자마자 라엘 와이너리쪽 책임자가 좀 더 고려해 보겠다고 얘기하는 거 있죠. 제가 온 하루 동안 계속 설득했잖아요.”“난 우리 승아 씨 실력을 믿으니까 걱정하지 않고 했죠. 이런 일로 영향 받을 사람은 아니잖아요.”이튿날, 컨디션이 좋은 윤아는 기태에게 연락하여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윤아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 팀장이 찾아왔다.“사모님, 대표님 떠나기 전 추진하라고 얘기한
태성 그룹 해외 계열사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과 이어진 유가족의 공개적인 항의는 회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권재민이 출국하기 전, 윌 챈들러가 이미 사건 현장을 조사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정말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처럼 보였다.권재아도 서류 작업을 중단하고 윌과 함께 다시 현장을 조사했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재민은 비행기에서 내린 후, 바로 재아와 윌을 찾기보다는 먼저 한기현이 보낸 김한과 김영을 만났다.재민은 다행히 기억이 돌아와 번거로움을 피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재민을 본 김한과 김영은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기현 씨가 당신들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했는지 말했습니까?”“네, 말씀하셨습니다.”“알겠습니다. 다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는데,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현장으로 가는 거로 하시죠.”그 후 재민은 그들을 데리고 재아와 윌을 만나러 갔다. 둘을 만나고, 재아가 대체적인 상황을 설명하자, 재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우선 그 사고 유가족을 먼저 만나보러 가시죠.”그리고 그들은 유가족이 있는 회의실로 갔다.재민은 재아와 윌더러 안에 들어가 보상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과 김한, 김영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재아는 유가족들이 슬퍼 보였지만, 진짜로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비통함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몇몇은 몰래 휴대폰을 놀았고 조는 사람도 있었다.재아와 윌이 들어간 후, 유가족들은 슬퍼하는 척하며 울부짖었지만, 재민은 그들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도 없음을 발견했다. 그러자 재민은 머리를 돌려 김한에게 지시했다.“이 사람들 통장에 거액의 돈이 입금된 적이 있었는지 조사해. 그들의 친척과 친구들, 최근에 만난 사람들과 간 곳들까지 모두 다 철저히 알아봐.”그리고 조금 지나 재아와 윌이 나왔는데, 고개를 저으며 재민에게 말했다.“안통해. 협조할 생각이 아예 없어보여.”회의실 밖에 있는 재민을 본 유가족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다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